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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노트] ‘비트윈 잡스’를 응원하며

비트윈 잡스(between jobs). 말 그대로 일(job)과 일(job) 사이, 즉 직업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영어 표현이다. “새 직장을 찾고 있다” “잠시 쉬고 있다”, 혹은 자조 섞인 투로 “놀고 있다”라고 말할 때 사용한다. 나는 이 표현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최근 2년 동안 미국 테크 기업들은 50만명 이상 대량 감원을 했고, 16년 넘게 구글에 몸담았던 나도 그 영향을 받았다.     나는 구글에서 나와 ‘갭 이어(gap year) 프로젝트’ 목적으로 트레이더 조 슈퍼마켓 직원, 스타벅스 바리스타, 공유운전 택시 운전사, 애완동물 돌보미, 그리고 컨설턴트 일을 했지만, 나의 본래 전문 영역인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선 지난 1년 반이 ‘비트윈 잡스’ 기간이었다. 이 기간에 생생하게 경험한 것을 공유하고자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라는 책을 썼다. 이 이야기가 공감을 얻으면서 지난달에는 한 유명 TV 토크쇼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행운을 얻었고, 미국 유수 매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인터뷰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이제 1년 반의 비트윈 잡스를 마무리하면서 배운 점을 정리해 보았다. 첫째, 인생의 변화는 정말 계획하지 않을 때 올 수 있다. 변화를 수동적으로 맞이할 수도 있고,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환영할 수도 있다. 마음먹기에 달려 있고, 그 마음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둘째, 변화 앞에서는 회복 탄력성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 회복 탄력성은 평소 훈련된 루틴으로 키울 수 있다. 루틴의 힘을 느껴보자. 셋째, ‘천천히 가도 괜찮고, 둘러가도 괜찮고, 쉬어가도 괜찮아’라는 심리 관리다. 가령 30, 40대는 축구로 친다면 아직 전반전이다. 결승골은 후반 5분을 남겨 놓고, 혹은 연장전에서 자주 나온다. 조급해지지 말자.   무엇보다 지난 비트윈 잡스 기간에 배웠던 것은 연대의 힘이다. 올 5월부터 ‘비트윈 잡스 24’ 모임을 시작했다. 비트윈 잡스 모임은 그야말로 ‘일과 일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 만나 서로 위로하고 동기부여를 하는 모임이다. 본인이 원하지 않은 때, 혹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때 회사를 떠난 사람들은 대부분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탄다. 용기와 위로가 필요한 시점에 혼자 앓이를 하는 것이다.     필자도 같은 경험이 있기에 고군분투하는 친구들을 보는 것이 마음 아팠다. 잠수 타는 이들을 수면 위로 올려내고 싶었다.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만나서 터놓고 얘기하면 일단 마음이라도 가벼워진다.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의 삶의 방식과 경험에서 힌트도 얻을 수 있다. 실질적으로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구직 팁이나 채용 정보도 공유하게 되고, 추천 채용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5월에 첫 모임 공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열댓 명 정도 모이면 카페 한구석을 빌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글을 올리자마자 하루 만에 100명 넘게 신청을 했고, 이삼일 새 150명 넘게 신청이 들어왔다. 다행히 지인들이 공간을 무료로 빌려줘 첫 모임을 무사히 가졌다. 왜 비트윈 잡스 모임이 폭발적이었는지는 모임 참석자들과 이야기하면서 대번에 알았다.   “이런 모임이 없습니다. 떠밀리듯 회사에서 나오니 이전 회사 동료들도 만나기도 싫고, 늘 취업 걱정을 하는 가족들과도 이야기하기가 부담스러웠습니다. 별일 없이 직장 다니는 친구들도 만나기 싫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피하게 되더군요. 이런 모임 정말 기다려왔습니다.” “저는 이 모임이 6개월 만에 사람 만나러 나온 첫 모임입니다.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힘든 과정을 어떻게 겪어내고 있는지 다양한 경험을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내가 계획하지 않았고 원하지 않았던 비트윈잡스 기간 동안 오히려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는 이야기, 하루하루 루틴을 지켜가면서 새로운 인생의 챕터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 나를 다시 정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비트윈잡스 기간은 ‘날 것의 나’를 만났던 시간이었고, 그러면서 썩 괜찮은 자신을 재발견한 시간이기도 했다. 예기치 못한 변화 앞에 귀중한 ‘인생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비트윈잡스’를 응원한다. 정김경숙 / 전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실리콘밸리 노트 비트윈 잡스 비트윈잡스 기간 비트윈 잡스 모임 참석자들

2024-08-26

[스티브 잡스 따라잡기] Jobs vs. Gates 2 라운드! (34)…아이폰, 사용자 편리성과 우수한 성능으로 급부상

2006년 스티브 잡스는 회사이름을 '애플 컴퓨터'에서 '애플'로 바꾸는 결단을 내렸다. 그 뿌리가 컴퓨터였지만 잡스는 미래를 내다보는 생각으로 회사명을 바꿨다. 이 때만 해도 사람들은 iPod 의 인기에 힘입은 이름 바꾸기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듬해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그 인기와 헤일로 효과는 모든 애플 제품에 영향을 미쳤다. iPod 성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애플 대세론이 등장했고 디지털 소비자 가전 업체로서의 애플의 위상이 새롭게 정의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제품의 디자인에서부터 제조 포장 유통에 이르기까지 수직적으로 통합관리되는 애플 시스템의 재발견이었다. 하지만 저항 역시 만만치 않았다. 미디어 뿐만 아니라 월스트리트 전문가 그리고 경쟁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이폰의 인기를 '찾잔 속의 돌풍'이라며 깎아내리기 바빴다. 정작 아이폰을 상대할 경쟁 제품은 전무했다. 스마트폰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사용자 편리성과 우수한 성능 측면에서 아이폰을 상대할 제품은 전무했다. 모바일 스마트폰 시장의 흐름을 아이폰 혼자 바꾸는 양상이었다. 애플과 아이폰에 대한 거부감은 사실 90년대 초반부터 디지털 세상을 평정해온 마이크로소프트(MS)에 길든 결과로 보는 게 맞다. MS 윈도즈 프레임에 갇힌 좁은 시야가 이유였다. 혁신과 새로움이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15년 넘게 길들어져 온 MS 프레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70년대 중반부터 컴퓨터 여명기를 주도했고 컴퓨터 업계를 좌지우지해온 두 사람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다시 한번 누구의 경영 철학이 옳은가를 놓고 대결상을 보이는 듯했다. 이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선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 전략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MS의 아성은 전세계 90%가 넘어가는 PC 시장을 지배하는 힘에서 나온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PC시장은 15년 넘게 연평균 15%이상의 성장 가도를 유지해왔다. 때문에 컴퓨터 시장에선 MS가 손만 대면 황금으로 변한다는 설이 실체적 믿음처럼 굳어졌고 MS 종속변수는 나날이 높아만 졌다. MS, 편리·디자인 인식 전무 MS의 성공전략에 빼놓을 수 없는 게 가격전략이다. 기본적으로 MS의 경쟁력은 소프트웨어 판매에서 창출됐다. MS는 컴퓨터제조사들과 독점적 OEM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있다. 이에 따라 컴퓨터 제조사는 만들어지는 모든 컴퓨터에 MS 번틀소프트웨어 운영체제와 오피스 등의 애플리케이션을 묶음으로 탑재해 판매해왔다. 경쟁 소프트웨어 회사 제품이 껴들어 갈 틈이 없었고 이것이야말로 숨겨진 노예계약이었다. 일반 소비자들이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구매하고 싶어도 이미 컴퓨터에 따라오는 번들 웨어 때문에 구매욕구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MS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공한 회사가 아니라 경쟁사의 시장진입을 원천봉쇄하는 방법으로 디지털 세상을 주물러왔다.또 소비자를 대상으로 사업을 벌인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커스토머는 하드웨어 제조사들이었고 소비자는 컴퓨터 가격에 책정된 MS 소프트웨어 가격을 생각도 못하면서 지불해왔다. 바로 '윈도즈 세금'이었다. 따라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 팔자는 기본적인 철학이 없었기 때문에 사용자 편리성과 창조적 디자인에 대한 인식은 전무했다. 하드웨어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던 MS가 상관할 바 아니었다. 바로 MS 가 주창해온 수평적 관리 경영법의 대성공이었다. MS가 가만 있어도 윈도스 소프트웨어는 무조건 하나씩 탑재됐다. 더 중요하게는 하드웨어 제조사가 별반 차이 없는 제품과 가격 경쟁으로 서로 피를 흘리는 상황에서도 MS는 탑재되는 윈도즈 번들 소프트웨어로 돈만 챙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런 방치전략이 결국 자신들에게 독이 되는 상황을 인식하기 까진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했다. 아이폰 성공에 따른 애플의 약진이 눈에 보이자 MS가 고작 한다는 것은 윈도즈 컴퓨터가 더 싸다는 광고였다. 한쪽에서 사용자 편리성과 하드웨어의 우수성 디자인의 창조성을 주장하며 소비자 가슴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오는데 방어하는 쪽은 그저 '우리가 더 싸다'는 식의 광고만 뿌리고 있었다. MS가 사실 창조적 노력을 게을리 한 것은 아니다. 윈도즈 CE는 모바일 운영체제의 시조였고 태블릿 PC 역시 2000년대 초반부터 빌 게이츠 직접 시도한 야심작이었다. 하지만 둘다 사용자 편리성에서 낙제점이었고 태블릿 PC 부서는 아예 MS에서 사라져버렸다. 또 애플 아이팟의 성공을 따라잡기 위해 Zune을 런칭했지만 역시 대실패로 기록됐다. MS로서는 그나마 게임 콘솔 Xbox로 위안을 삼아야했지만 그것도 대량 불량사태로 손해보는 장사를 해야했다. 여기에 구글을 쫓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퍼부은 검색엔진 사업을 펼쳤지만 지금까지도 벌 소득이 없다. 결국 MS는 소프트웨어로 벌어들인 돈으로 사업확장을 손만 대면 모두 실패하는 형국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PC 시장은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고 최근에서야 다시 성장세를 보이지만 수익성은 아직도 요원하다. 이유는 한가지 애플의 약진 때문이다. 애플, 주기적 업그레이드 지원 이런 상황이 전개되면서 소비자들은 새로운 진실에 눈을 떴다. MS와 하드웨어 제조사들의 사업 전략은 주기적인 업그레이드였다. 소비자와 사용자들은 컴퓨터를 구매하기 시작하면서 항상 업그레이드의 압박과 유혹을 받아왔다. 더 좋은 성능 더 높은 파워 그리고 더 빨라진 속도를 주장하며 신제품을 내놓는 MS와 신형 컴퓨터가 구매사이클을 이어왔지만 어느덧 소비자들은 더이상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됐다. 최악의 상황은 윈도즈 비스타가 선을 보였을 때였다. 이미 발전할 대로 발전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MS는 또다시 업그레이드를 주도하기 위해 비스타를 선뵀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제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컴퓨터 제조사와 MS에 의해 불필요한 업그레이드를 강요받아왔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융위기에 따른 불경기는 컴퓨터 제조사와 MS에 상상할 수 없는 타격을 입혔다. 하지만 그 타격을 인정하기 전에 이들은 부정하기에 바빴다. 또 전문가 미디어 그룹은 시장유지를 위해서도 MS의 아성이 건재함을 설파하는데 앞장서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시장이 아닌 모바일 시장을 새롭게 주도하고 있었다. 또 컴퓨터 시장에서의 애플 전략은 고급스런 디자인과 저전력 저사양 부품을 기반으로 사용자 만족도를 제고한 제품으로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동안 MS가 주창해온 수평적 관리 모델의 한계가 드러났고 잡스와 게이츠의 끝나지 않은 라이벌 관계가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블로그 www.jpthefreenfuse.com

2012-05-17

잡스, 번호판 없는 벤츠 타고 스티커 안 받은 까닭은

애플의 공동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번호판을 달지 않은 벤츠(사진)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벌금을 내지 않은 것은 바로 법률상 유예기간을 이용한 '절묘한 합법'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의 IT 전문 뉴스매체 맥옵서버는 26일 잡스가 2007년형 은색 메르세데스 벤츠 SL55 AMG에 번호판을 부착하지 않은 채 운전할 수 있었던 '비법'을 소개했다. 애플의 전직 선임 보안 담당자이자 현재 온라인 보안 솔루션 업체 '앤트러스트'의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존 캘라스는 "캘리포니아주 자동차법은 차를 새로 산 사람은 6개월 안에만 번호판을 받아 달면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잡스는 바로 이 점에 착안했다"고 말했다. 잡스가 이렇게까지 번호판 부착을 꺼린 이유는 평소 고수하던 '신비주의'전략대로 신분을 숨기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캘라스는 "잡스는 보안 등의 이유를 들어 승용차 리스 회사와 6개월마다 똑같은 차종으로 승용차를 바꿔 빌리기로 계약했다"며 "덕분에 아무런 문제 없이 번호판 없는 차량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잡스는 '다르게 생각하라'는 애플의 슬로건처럼 스스로도 이런 발상의 전환을 즐겼다"고 덧붙였다. 앞서 잡스와 함께 애플을 창업했던 스티브 워즈니악이 이를 두고 잡스가 주정부의 특별한 배려를 받은 것이라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자 캘리포니아주 차량국은 "누구에게든 특혜는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었다. 유지혜 기자

2011-10-28

애플 본사·저택 앞·스토어…한입 문 사과·꽃다발 물결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의 사망 이틀째인 6일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시에 위치한 애플 본사는 사옥에 조기를 게양해 그를 추모했다. 이날 본사와 그의 저택 앞 인도에 마련된 추모공간에는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꽃다발과 추모카드 등을 든 일반 추모객들이 줄을 이었다. 애플 사옥 정중앙에 있는 국기 게양대에는 미국 국기와 캘리포니아주기 애플 사기가 모두 조기의 형태로 게양돼 전 CEO 스티브 잡스의 죽음을 애도했다. 사옥 한쪽에 마련된 추모공간에는 꽃다발과 촛불 애도의 글을 적은 카드들과 애플의 상징인 사과 등이 수북이 쌓여갔다. 인근 IT업체에 다니는 래니 버티타(45.엔지니어)씨는 "점심시간에 짬을 내 잡스를 추모하기 위해 왔다"면서 "(발명왕) 에디슨과 비견할만한 대단한 사람과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라고 말했다. 팔로앨토 주택가에 자리 잡은 잡스의 저택에는 6일에도 추모객들이 모여들었다. 앞마당 도로가에 마련된 추모공간에는 꽃다발과 카드들이 놓여 있고 아이팟과 한입 베어 문 사과들도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전날 밤과 달리 경비가 대폭 강화돼 사복 보안요원들이 곳곳에 배치됐으며 뒷마당으로 들어가는 이면도로를 바리케이드로 차단하고 차량은 물론 일반인과 기자들의 접근을 막았다. 경찰 순찰차도 3대가 별도로 배치됐다. 이곳에 잡스의 명목을 비는 내용을 담은 카드를 가져온 데이비드 라그빈(45.부동산중개업.샌타크루즈 거주)씨는 "그의 사망소식을 듣고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카드를 가져오게 됐다"며 "그는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전국에 산재한 애플 스토어에도 잡스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졌다. 샌프란시스코 애플스토어 등에는 추모객들이 갖다 놓은 국화.장미 등 조화 다발은 물론 촛불 애플의 상징인 사과 하트 모양의 풍선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글귀 등이 수북이 놓여 그에 잃은 시민들의 슬픔을 나타냈다.

2011-10-07

[Rest In Peace] 애플 본사·집앞·스토어…한입 문 사과·꽃다발 물결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의 사망 이틀째인 6일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시에 위치한 애플 본사는 사옥에 조기를 게양해 그를 추모했다. 이날 본사와 그의 저택 앞 인도에 마련된 추모공간에는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꽃다발과 추모카드 등을 든 일반 추모객들이 줄을 이었다. 애플 사옥 정중앙에 있는 국기 게양대에는 미국 국기와 캘리포니아주기 애플 사기가 모두 조기의 형태로 게양돼 전 CEO 스티브 잡스의 죽음을 애도했다. 사옥 한쪽에 마련된 추모공간에는 꽃다발과 촛불 애도의 글을 적은 카드들과 애플의 상징인 사과 등이 수북이 쌓여갔다. 인근 IT업체에 다니는 래니 버티타(45.엔지니어)씨는 "점심시간에 짬을 내 잡스를 추모하기 위해 왔다"면서 "(발명왕) 에디슨과 비견할만한 대단한 사람과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라고 말했다. 팔로앨토 주택가에 자리 잡은 잡스의 저택에는 6일에도 추모객들이 모여들었다. 앞마당 도로가에 마련된 추모공간에는 꽃다발과 카드들이 놓여 있고 아이팟과 한입 베어 문 사과들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뒷마당으로 향하는 뒷길에는 잡스가 타고 다녔던 것으로 추정되는 번호판 없는 2007년형 메르세데스 벤츠 SL55가 한대 주차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잡스가 번호판 없는 벤츠를 수년간 '애마'로 이용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하지만 전날 밤과 달리 경비가 대폭 강화돼 사복 보안요원들이 곳곳에 배치됐으며 뒷마당으로 들어가는 이면도로를 바리케이드로 차단하고 차량은 물론 일반인과 기자들의 접근을 막았다. 경찰 순찰차도 3대가 별도로 배치됐다. 이곳에 잡스의 명목을 비는 내용을 담은 카드를 가져온 데이비드 라그빈(45.부동산중개업.샌타크루즈 거주)씨는 "그의 사망소식을 듣고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카드를 가져오게 됐다"며 "그는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전국에 산재한 애플 스토어에도 잡스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졌다. LA인근 애플스토어 등에는 추모객들이 갖다 놓은 국화.장미 등 조화 다발은 물론 촛불 애플의 상징인 사과 하트 모양의 풍선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글귀 등이 수북이 놓여 그에 잃은 시민들의 슬픔을 나타냈다.

2011-10-06

"우리는 선지자를 잃었다"…잡스 사망에 전 세계 애도 물결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에 전 세계가 깊은 슬픔에 빠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세계는 선지자를 잃었다. 그는 미국의 가장 위대한 혁신가 중 한 명이었다"고 애도의 뜻을 나타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잡스만큼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을 찾기는 힘들다"고 밝혔으며,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잡스는 예술과 기술을 동시에 구사한 현대의 천재였다. 그의 위대한 업적은 영원히 빛날 것이다"고 말했다. 앞서 잡스의 사망 소식은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잡스의 사진으로 장식된 애플 웹사이트 화면을 초기 화면에 올렸으며, 문자 애플리케이션인 카카오톡 등을 통해 소식을 주고 받았다. 잡스의 창조물인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활용해서다. 트위터상에는 ‘#ThankYouSteve’라는 모임이 만들어져 세계 곳곳에서 애도의 글이 올라왔다. 회사원 이지희씨는 “모두가 슬퍼하는 걸 보니, 참 귀한 삶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으며, 팝스타 레이디 가가는 트위터를 통해 “그가 만든 제품으로 애플 웹사이트를 보곤 놀랐다. 스티브에게 정말 감사한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하루 종일 사과를 먹겠다”고 추모사를 대신했다. 학생 성원윤씨는 페이스북에 “아이폰5가 안 나왔다고 투덜댔는데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주사랑 기자 jsrlee@koreadaily.com

2011-10-06

Stay Hungry Stay Foolish…스탠포드대 졸업 연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라  17년이 지난 후 저는 정말 대학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시에 스탠포드와 거의 맞먹는 수준의 학비가 드는 대학을 선택했고 평범한 노동자였던 저의 양부모님은 저축한 모든 돈을 제 대학등록금에 써야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후 저는 그만한 돈을 쓰는 데 대한 가치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삶에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대학이 그것을 아는 데 어떤 도움을 줄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저의 부모님은 전 인생을 통해 저축해놓은 모든 돈을 학비로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당시 그런 결정은 다소 두렵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제가 지금까지 한 결정 중에 가장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리드대학은 그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서체 교육 기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캠퍼스 전체를 통해 모든 포스터 모든 표지물들은 손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손글씨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정규과목들을 더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글자체들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배워 보려고 서체과목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세리프나 산세리프 활자체를 배웠고 무엇이 훌륭한 활자체를 만드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알아내지 못하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묘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당시 저에겐 이런 모든 것이 제 삶에 실제로 응용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그 모든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맥 컴퓨터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제가 만일 대학의 그 과목을 듣지 않았다면 맥 컴퓨터는 결코 다양한 서체를 가진 컴퓨터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잇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되돌아 볼 때 그것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애플을 우리 부모님의 차고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스무살이었습니다. 29살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 수 있냐구요?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잘 맞는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첫해는 그럭저럭 잘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 우리들의 미래에 대한 관점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결국 내부적으로 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회사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저는 서른 살이 된 해에 그렇게 쫓겨났습니다. 성인이 되어 제가 초점을 맞춰왔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리고 저는 너무나 비참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때는 전혀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일은 저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 중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은 제가 성공의 중압감을 벗어나 초심자의 가벼운 마음을 되찾게 해줬고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줬습니다.  이후 5년 동안 저는 NeXT 그리고 Pixar라는 이름의 다른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중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것은 쓰디쓴 약이었지만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때로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저를 이끌어간 유일한 힘은 제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는 것에서부터 나왔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에서도 같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 스스로 훌륭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언젠가 그것을 발견할 때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열일곱 살이었을 때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옳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저는 그것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후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하게 될까?" 그리고 여러 날 동안 그 답이 '아니오'라고 나온다면 저는 어떤 것을 바꿔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제가 인생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들 자부심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 그런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됩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당신이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함정을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약 1년 전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30분에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췌장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이것이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라면서 제가 길어봐야 3개월에서 6개월밖에 살수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저에게 집으로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앞으로 10년동안 해줘야 하는 말을 단 몇 달 안에 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임종 시 가족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모든 것을 정리하란 말이었고 작별인사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간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 몇 십 년간은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다는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해 갈 수 없죠.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니까요. 죽음은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언젠가 머지않은 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2011-10-06

"신화가 된 IT 큰 별"…애플스토어마다 잡스 추모 행렬

6일 시카고를 비롯한 미주 지역과 한국, 유럽 등지의 전 세계 애플 스토어에는 전날 사망한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명복을 비는 추모객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 등 언론들은 잡스의 추모 행렬을 집중 취재했다. 이곳에는 추모객들이 갖다 놓은 조화와 촛불, 애플의 상징인 사과, 하트 모양의 풍선,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글귀 등이 놓여 있었다. 잡스가 만든 제품으로 스마트폰 시대를 연 아이폰과 잡스의 사망 기사가 실린 신문은 추모객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잡스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몇 시간 뒤부터 모여들기 시작한 추모객들은 정보·기술(IT)의 혁명을 이끈 혁신적 발명가이자 기업가였던 애플의 창업주를 더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쉬워했다. 추모객들의 마음은 애플스토어 앞에 놓여 있는 글귀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잡스를 기리는 마음은 영어뿐만 아니라 스페인어, 중국어 등으로도 표현돼 있었다. ‘우리는 당신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등은 잡스에 대한 그리움과 감사, 명복을 비는 마음을 담았다. ‘나는 스티브를 사랑한다(iLove Steve)’는 글귀도 눈에 띄었다. 문장의 첫 글자를 대문자 I가 아니라 아이팟(iPods), 아이폰(iPhones), 아이패드(iPads) 등 애플의 제품을 상징하는 소문자 i로 시작했다. 소문자 i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잡스에 대한 끝 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듯했다. 애나 카이저(40)는 “잡스의 천재성을 추모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며 “어제 저녁 식사를 하다가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너무 슬펐다”고 말했다. 바버라 쳉(42)은 “IT업계에서 보면 가장 위대한 지도자를 잃은 날”이라면서 “너무 비통하다”고 말했다. 2005년 잡스가 스탠포드대학 졸업식에서 했던 연설 중 죽음에 관해 언급한 부분을 담은 글귀는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잡스는 당시 “천국에 가기를 원하는 사람도 죽기를 원치 않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가 가야 하는 최종 목적지”라면서 “죽음이 인생을 바꾸게 하는 원동력이고 죽음이 옛 것을 밀어내고 새 것을 만든다”고 말했다. 추모객들은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으로 애플스토어 앞에 놓여 있는 조화와 촛불 등의 사진을 찍었다. 애플의 창업주는 떠났지만 그가 만든 애플의 제품들은 여전히 세상에 남아 있었다. 박춘호 기자

2011-10-06

[그는 누구인가] 롤러코스트 같았던 56년…이 시대 최고의 CEO

'혁신의 아이콘(icon)'이자 이 시대 최고의 최고경영자(CEO)로 칭송받아온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 잡스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입양아로 대학 중퇴와 애플 창업 세계 최초 개인용 컴퓨터(PC) 개발 애플서 축출과 복귀 희귀암 발병과 투병 스마트폰 태블릿PC 아이폰과 아이패드 출시로 디지털시대 새 라이프스타일 창조 화려한 프레젠테이션(PT) 등 숱한 화제와 함께 유명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그는 파산지경에 이른 애플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IT기업으로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롤러코스터'와 같은 생을 마감하며 글로벌 정보기술(IT)업계의 신화로 남게 됐다. 잡스는 195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다. 그의 친어머니는 미혼모에 대학원생. 그녀는 잡스를 평범한 노동자 가정인 폴과 플래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시켰다. 굴곡많은 인생을 시작한 잡스는 리드대학에 입학했으나 6개월 만에 중퇴했다. 그는 76년 '컴퓨터 천재'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캘리포니아 로스알토스의 한 창고에서 애플을 창업했고 이듬해 개인용PC인 애플Ⅱ를 내놓으면서 PC 대중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85년 자신이 영입한 CEO 존 스컬리와 이사회에 의해 쫓겨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잡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컴퓨터 개발사 넥스트와 컴퓨터그래픽(CG) 영화사 픽사를 설립해 성공했으며 경영난을 겪고 있는 애플로 복귀해 아이맥에 이어 2001년 아이팟 2007년 아이폰 2010년 아이패드를 잇따라 성공시키면서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을 통해 디지털시대 '삶의 방식'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77년 애플컴퓨터Ⅱ로 PC시대를 열어젖힌 후 30여년 만에 태블릿PC 아이패드를 내놓음으로써 잡스는 PC시대를 접고 포스트PC를 주도해 세계 역사를 스스로 개척하고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잡스는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은 뒤 2009년 간이식 수술까지 받는 등 애플의 혁신을 주도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치열한 긴 투병생활을 했으나 끝내 병마를 이겨내지 못했다. 잡스는 올해 초 병가를 낸 데 이어 지난 8월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까지 물러났다. 잡스와 함께 애플을 공동창업한 워즈니악과 애플의 경쟁사인 구글의 CEO를 역임한 에릭 슈미트는 잡스가 CEO 자리에서 물러날 때 "이 시대 최고의 CEO"라고 칭송한 바 있다. 백정환 기자

2011-10-05

[애플의 미래는] "사후 준비 큰 변화 없을 것" 시각

IT업계의 전설 스티브 잡스가 타계하면서 애플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 전세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단 월가에서는 애플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난 9월 잡스가 이미 애플의 CEO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그의 사후를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을 반영한 듯 잡스의 사망 소식이 전세계에 퍼진 이후에도 한국.중국 등 애플 관련 업체들의 주가는 큰 변화가 없었다. 월가의 한 IT 전문 애널리스트는 "스티브 잡스는 이전에 애플 CEO로 활동할때도 업무 인수인계 작업을 오랫동안 했다"며 "팀 쿡 신임 CEO도 애플에 혁신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인정받은 인물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스티브 잡스가 몸이 안 좋은 것은 알았던 사실이었고 CEO도 팀 쿡으로 바뀌어 스티브 잡스의 사망이 심리적으로는 영향을 미칠지 몰라도 애플에 변화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애플이 잡스라는 천재의 강력한 카리스마에 의해 사실상 이끌어져왔던 기업이라는 점에서 우려도 없지 않다. 실제로 애플이 아이폰으로 대성공을 거둔 것은 잡스의 '천재적 직관력'과 '저돌적 추진력'이 결합된 결과였다. 또 "잡스를 믿고 따르면 성공한다"는 애플 직원들의 믿음도 한 몫했다. 따라서 잡스를 잃은 애플이 과거처럼 지속적으로 혁신적인 성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업사를 보더라도 천재적 리더가 떠난 뒤 내리막길을 걷는 기업들의 사례가 적지 않다. 리 아이아코카가 이끌던 자동차업체 크라이슬러 잭 에커드가 세운 약국 체인 에커드 등이 대표적 사례다. 베스트셀러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 짐 콜린스는 "'한 명의 천재가 이끄는 기업' 모델은 지속 실패 기업들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패턴"이라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2011-10-05

스티브 잡스 누구인가…슬픈 개인사 간직한 입양아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1955년 2월2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지 몇 주 만에 입양기관을 거쳐 폴과 클래라 잡스 부부로 입양됐다. 잡스의 생부 압둘파타 존 잔달리와 생모 조앤 심슨은 위스콘신대 대학원에 재학 중일 때 캠퍼스 커플로 만났으나 심슨 가족이 잔달리가 시리아인 유학생이라는 이유로 결혼에 반대해 미혼모인 상태로 잡스를 낳았다. 잡스는 명문 리드대학에 입학했으나 6개월 만에 중퇴하면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다. 당시 친구의 방바닥에서 자고 먹을 것을 위해 콜라병을 반납해 5센트를 모았으며 한 사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주는 식사를 얻어먹으려고 7마일을 걸어가기도 했다. 잡스는 1976년 '컴퓨터 천재' 스티브 워즈니악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알토스에 있는 입양 부모의 집 창고에서 애플을 창업한 후 이듬해 개인용PC 애플Ⅱ를 내놓아 성공을 맛보았다. 하지만 30세 때인 1985년 자신이 영입한 CEO 존 스컬리과 이사회에 의해 축출되다시피 애플을 떠나게 됐다. 그는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모든 것이 사라지고 너무나 비참한 기분을 느껴 몇 달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며 "공식적으로 실패한 사람이었고 실리콘밸리에서 도망가고 싶었다"고 당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컴퓨터 개발사 넥스트와 컴퓨터그래픽(CG) 영화사 픽사를 설립해 또다시 일어섰으며, 경영난을 겪고 있던 애플로 복귀하게 된다. 복귀한 잡스는 아이맥에 이어 2001년 아이팟을 시작으로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애플을 세계 최대 IT업체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잡스는 이 같은 외적인 성공에도 불구,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한 뒤 2009년 간이식 수술까지 받는 등 치열하고 긴 투병생활에 시달렸다. [연합뉴스]

2011-10-05

스티브 잡스 사망, '인류의 삶' 바꾼 애플 창업주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5일 사망했다. 향년 56세. 이 시대 최고의 최고경영자(CEO)로 칭송 받아온 잡스는 지병을 앓아오다 지난 8월 CEO 자리에서 물러나 투병생활을 했고, 끝내 임종을 맞았다. 애플은 이날 이사회 명의의 성명서에서 "애통한 마음으로 스티브 잡스가 오늘 사망했음을 알린다"고 발표했다. 애플은 "스티브의 영명함과 열정, 에너지가 멈추지 않는 혁신의 원천이 됐으며 이로 인해 우리의 인생은 풍부해지고 향상됐다. 스티브로 인해 이 세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됐다"고 말했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입양아로 대학을 중퇴한 뒤 애플을 창업한 잡스는 세계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PC)를 개발하며 컴퓨터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1985년 자신이 영입한 CEO 존 스컬리와 이사회에 의해 쫓겨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는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컴퓨터 개발사 넥스트와 컴퓨터그래픽(CG) 영화사 픽사를 설립해 성공했다. 이어 경영난을 겪고 있는 애플로 복귀해 아이맥에 이어 2001년 아이팟, 2007년 아이폰, 2010년 아이패드를 잇따라 성공시키면서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을 통해 디지털시대 '삶의 방식'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잡스는 특히 1977년 애플컴퓨터Ⅱ로 PC시대를 열어젖힌 후 30여년 만에 태블릿PC 아이패드를 내놓음으로써 PC시대를 접고 포스트PC를 주도해 세계 역사를 스스로 개척하고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한 뒤 2009년 간이식 수술까지 받는 등 애플의 혁신을 주도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치열한 긴 투병생활을 했으나 끝내 병마를 이겨내지 못했다. 잡스의 유족은 이날 성명을 통해 "스티브가 오늘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유족은 "스티브는 공적인 생활에서는 미래를 내다보는 선지자로 알려져 있지만 개인생활에서는 무엇보다 가족을 소중히 여긴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유족들은 이어 "우리는 스티브가 병마와 싸운 지난 1년 동안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의 꿈을 함께 공유해온 많은 분께 감사한다"면서 "조만간 스티브를 추모하고, 그와의 기억들을 소개하는 웹사이트를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잡스의 유족으로는 부인 로렌과 3자녀가 있으며, 로렌과의 결혼에 앞선 전처와의 사이에도 딸이 하나 있다. 신동찬 기자 shin73@koreadaily.com

2011-10-05

애플 신제품 발표장 '잡스도 아이폰5도 없었다'

지난 4일의 애플 신제품 발표 현장에는 잡스도 아이폰5도 없었다. 이날 북가주 쿠퍼티노의 애플 본사에서 진행된 신제품 발표 행사에는 아이폰 5가 아닌 아이폰4S가 공개됐다. 아이폰4S 소개는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아닌 필 쉴러 애플 마케팅담당 부사장이 맡았다. 새로 출시된 아이폰4S의 외관은 기존 아이폰4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세계 어느 곳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월드폰'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쉴러 마케팅 당담 부사장은 "아이폰4S는 CDMA와 GSM에서 모두 작동되는 듀얼 모드 칩을 장착해 세계 어디서든 쓸 수 있는 '월드폰'으로 해외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들에게 편리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기존 이동통신사들은 CDMA와 GSM 방식 중 한 가지만 제공하고 있다. 이 밖에도 A5듀얼 코어 프로세서를 채택해 작업 속도가 아이폰4보다 2배 빨라졌다. 그래픽 처리 속도 역시 7배 빨라져 그래픽이 많은 게임이 많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 수명도 크게 개선돼 음성통화는 최대 8시간 인터넷 검색은 6시간 비디오 재생은 10시간 음악 감상은 최대 40시간 동안 유지된다. 풀HD 동영상과 얼굴인식 기능을 지원하는 카메라는 800만 화소급으로 장착됐다. 음성인식 기능도 추가됐다. '어시스턴트'라 불리는 이 기능은 문자메시지를 직접 읽어서 전송할 수 있으며 같은 방식으로 알람도 설정할 수 있다. 애플은 지난해 10월 음성인식 솔루션 전문업체 시리(Siri)를 2억달러에 인수했다. 아이폰4S는 AT&T와 버라이즌에 이어 스프린트에도 공급된다. 가격은 2년 약정일 경우 16GB가 199달러 32GB 299달러 64GB 399달러다. 또 99달러짜리 저가형 8GB 아이폰4가 추가됐으며 8GB 크기의 아이폰3GS는 2년 약정할 경우 무료로 제공된다. 본격적인 판매는 오는 14일부터 국가별로 순차적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수정 기자 leesoo@koreadaily.com

2011-10-04

[경제 에세이] 안철수와 스티브 잡스의 차이

'국민 MC'로 불리며 지상파 3사의 간판격 연예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던 개그맨 강호동씨가 전격적으로 잠정 은퇴를 선언했다. 탈루로 인한 수억원의 세금 추징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 네티즌이 강씨 수사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해 결국 연예계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최근의 유별난 현상은 서울대 안철수 교수의 등장 박원순 변호사와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발표 그리고 이에 따른 주가의 요동이다. 안 교수가 언론에서 강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을 때 그와 관련된 회사의 주식이 연일 급등했는가 하면 그가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을 한 이후에는 관련 주가가 하락하는 동시에 박 변호사 관련주가 급등하는 상황이 나타났다. 이것은 얼마 전 스티브 잡스가 사임하겠다고 밝힌 직후 애플 주가가 5% 이상 급락한 것과 대조된다. 개그맨 강씨의 경우나 안 교수 바람이나 모두 한순간에 휘몰아치는 광풍과도 같은 우리 사회 여론의 쏠림현상이라는 데 맥을 같이한다. 그 중심에는 인터넷 매체들이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는 계층은 주로 젊은이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전체 국민의 일부에 불과하다. 여론 형성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에 기초하기보다는 일시적 감정에 따른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안철수 교수 관련 주가의 요동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스티브 잡스의 경우처럼 유능한 최고경영자가 회사를 그만두면 그 회사의 주가는 떨어져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안 교수의 경우 그 반대였다. 이 현상을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다. 정경유착을 기정사실화하는 일반적 인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아니면 그저 돈 버는 것이 목적인 소위 일부 작전세력의 농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튼 정상적이고 건전한 사회에서는 예상할 수 없는 현상이다. 현대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정치가 경제를 선도하기도 하고 때로는 경제가 정치를 받쳐 주기도 한다. 어떤 핵심적 지위에 있는 정치인이 중점적으로 추진하려고 하는 정책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민간회사의 주가가 오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정책의 집행과정에서 민간부문과의 협력이 필요할 것이고 이로 인해 해당 기업의 주가는 시장원리에 의해 자연스럽게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안 교수 등은 아직까지 경제와 관련된 어떤 구체적 정책도 제시한 적이 없는데도 회사의 주가가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국민의 관심사인 급식과 의료 등 복지문제나 더 나아가 국가의 비전에 대해 한마디 제시한 적이 없다. 돌연 강력한 대선주자 중 한 명으로 부상하고 그에 따라 주가가 널뛰기를 하는 현상은 우리 사회의 비이성적 열광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한 분야에 일생을 바쳐 위대한 업적을 내는 장인정신이야말로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한 일이다. 만일 스티브 잡스가 건강이 회복돼 차기 대선에 출마한다고 하면 한국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미국의 미래상이나 경제난을 타개할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그의 명성만으로 오바마의 대항마로 부상할 수 있을까. 선뜻 상상하기 어렵다.

2011-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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