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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나와 대중의 경계에서

한국의 수도권 전철인 양재역, 신분당선과 3호선의 환승 통로에 이어지는 이 곳의 인파는 개울물 흐름 같다. 입술은 침묵하고, 기린처럼 펭귄처럼, 혹은 오리 떼처럼 양방향으로 가쁘게 순행한다. 이따금 귀따가운 조잘거림이 거슬리지만 곁가지로 제쳐지기 마련이다. 개울은 그렇게 끊임없이 흐를 것이다.     전동차에 올라서도 침묵은 계속되고, 서서도 앉아서도 각자도생, SNS에 몰입하거나, 시선의 피난처를 찾거나, 혹은 수면의 늪에 빠져 있다. 바로 옆의 승객과도 눈길 한 번 나누지 않는다.     거리에 나가서도, 상가에서도 유리벽을 친 듯이 서로 무관심하고 매정하다. 세상이 묵언고행(默言孤行)의 도가니이지 싶다.  누구나 집을 나와 떠돌더라도 보이지 않게 가정과 친지들, 동료들, 그리고 일터 같은 사회적 얼개와 제도에 연결돼 있다. 항공모함을 떠난 전투기들이 모함과 불가분의 관계인 점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흩어져 있으면 개성을 품은 시민이고, 모이면 고기압의 군중이 되곤 한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습관처럼 신문과 TV 뉴스를 잠깐 들여다본다. 지하철역까지 나오는 동안에는 아직 따끈한 뉴스의 내용과 그와 연관된 세상사가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맴돈다. 매스 미디어는 몰려오는 소식 만이 아니라 생활과 정신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적인 요인과 현상을 두뇌 깊숙이 쏟아붓는다.     21세기의 대중은 대중문화를 포식하며 놀랍게 성장하고 있다. 대중문화를 입고, 대중문화를 숨 쉬고, 대중문화 속을 헤엄치고 있는 나도 대중인가?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음을 빤히 알면서도 때때로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는 이유는 대중의 양면성 때문이리라.         지구촌이 현대에 이르러 산업화로 치달으면서 대중의 기세는 온 누리에 걸쳐 팽창 일로를 걸었다. 조직화하지 않은 상태지만 뭉치면 엄청난 위력으로 폭발할 잠재력을 내장하고도 있다. 시민사회의 보편주의를 전통사회의 권위주의보다 우위에 견인했고, 인본을 신장시킨 사회변동의 동력이 되었음은 분명한 사회사이다. 반면에 대중은 구체적인 상수 개념이 아니고 비조직적이다가 일단 군중으로 모이면 대중심리를 타고 고도의 휘발성을 띄기 때문에 위험하고 무섭다.       민주 국가에서 정당한 민의가 국정과 사회 경영에 효율적으로 반영되는 일이 최우선적 과제임은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 이름으로 사사로움이나 불순함이 개재되는 일은 오랜 걱정거리였다. 사회학자 칼 만하임이 지적한 대로 원자화되고, 불안정하고, 무기력하게 흩어져 있는 대중은 소수의 엘리트나 파시즘, 공산주의 같은 권위주의에 의해 조작, 오도되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면 대중 스스로에게도 독약이 아닐 수 없다. 대의민주주의는 금과옥조이다.  광화문과 시청 앞에 운집하는 격정적이고 유동적인 대중의 중심을 이성과 합리성으로 순화된 건실한 공중이 지탱해 줄 수는 없을까? 나와 대중의 경계에서 대중사회의 어렵고 예민한 테마, 그 좌표와 미래를 부둥켜안고 고뇌에 빠지곤 했다. 송장길 / 언론인·수필가열린광장 대중 경계 입고 대중문화 대중 스스로 파시즘 공산주의

2023-10-03

[시조가 있는 아침] 삼동(三冬)에 베옷 입고 -조식 (1501∼1572)

삼동(三冬)에 베옷 입고   조식 (1501∼1572)   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巖穴)에 눈비 맞아   구름 낀 볕 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   서산에 해지다 하니 눈물겨워 하노라   - 병와가곡집     ━   단성소(丹城疏)의 의기(義氣)     나의 생애는 추운 겨울에도 베옷을 입고 바위 굴에서 눈비를 맞았다. 구름 낀 볕 한쪽도 쬔 적이 없는데 서산에 해진다 하니 눈물이 난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이 중종의 승하 소식을 듣고 읊은 시조다. 경상도 합천 출신의 남명은 두 차례의 사화를 경험하면서 훈척 정치의 폐해를 목격하고  산림처사로 자처하며 오로지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에 매진했다.     평생 벼슬을 거절하고 자유로운 몸으로 현실에 날 선 비판을 많이 가했다. 대표적인 글이 명종이 단성현감에 제수하자 사직하면서 올린 상소다. “전하께서 나랏일을 잘못 다스린 지 오래되어 나라의 기틀은 무너졌고 하늘의 뜻도 떠났으며 백성의 마음 또한 임금에게서 멀어졌다”며 명종을 “선왕의 외로운 후사(後嗣)”, 문정왕후를 “깊숙한 궁궐의 한 과부”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지금부터라도 학문에 힘써 덕을 밝히시고 백성이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일어서게 하시라”고 촉구했다. 상소를 받은 명종은 분개했으나 “선비의 언로가 막힌다”하여 벌주지 못했다.   일본을 경계한 남명의 걱정대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인홍, 곽재우, 김면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이 신속하게 일어나 의병으로 왜군과 싸웠다. 유자효 / 시인시조가 있는 아침 삼동 베옷 베옷 입고 입고 바위 학문 연구

2023-08-24

[열린광장] ‘메구장단’이 된 친구들

한국에서 절친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아름다운 빛으로 투명하다.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고향 산천의 빼어난 경치를 둘러보았으며, 까마득한 후배들이 공부하는 모교에 들려 발소리와 말소리를 낮추며 돌아다녔다. 흰 블라우스 교복을 입고 속닥거리던 교실 건물들은 재건축되어 우리를 몰라보았고, 체육복 입고 쉬던 플라타너스 그늘은 간 곳이 없었다.     지난날 쉰을 넘기며 삶의 진창길에서 벗어나 우리는 가끔씩 주안상을 차려놓고 노래를 부르다 하나둘 쓰러지던 밤도 있지 않았던가. 이번 귀국길에는 친구들이 새로운 곳으로 데리고 갔다. 이제 동동거리며 살던 날들도 가고, 어떤 간섭도 받지 않은 채 우리는 자유로운 일상을 즐길 뿐이다.   ‘메구장단’이란 말이 있는데, 메구는 농악 마당 꽹과리의 방언이다. 연주자가 신명대로 치는 가락으로 ‘자유자재’ 라는 의미와 통하는 것 같다. 오늘날 우리들의 근황이 ‘메구장단’이란 말과 딱 어울린다고나 할까?     우리는 경기도 여주 남한강가의 파크골프장으로 갔는데, 잠깐 배우고 나도 같이 칠 수 있었다. 한나절 햇볕 속을 거닐며 네 명이 함께 운동하기에는 매우 적합했다. 파크골프장은 주로 하천부지나 공원에 조성되어 있는데, 시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활용 인구도 많아져 점점 늘어나고 있단다. 우리는 강물을 바라보며 흰구름처럼 여유롭게 떠돌다가 맛집을 향해 출발했다.     우리가 고향 도시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데 평소 소식을 하는 한 친구가 유별나게 음식을 깨작거렸다. 우리가 보다 못해 입이 그렇게 고급화됐느냐고 핀찬을 주었다. 친구는  어릴 때 하도 굶어서 위가 자라지 못해 양이 적다고 했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서로 알기에 픽 웃었지만 그녀는 가슴 밑바닥에 붙은 얘기를 끄집어냈다.     과수원 하는 부모님이 밥과 채소가 담긴 비빔밥 한 양푼에 숟가락 일곱 개를 넣어서 밥상에 올려놓으시면 동생들이 벌떼처럼 달려드는 바람에 그녀는 늘 뒷전에 물러나 있어야 했단다.  그 시절 찔레 여린 순을 따서 산소 옆에 앉아 다 먹고는 집으로 간 적이 많았다고 한다. 버스가 안 들어가는 이십리 길을 쌀자루를 이고 오는데, 해 질 무렵 무서워서 늘 울면서 걸어왔다고 했다. 여중 시절 그녀의 단촐했던 자취방이 짠하게 떠올랐다.     또 한 친구는 딸 다섯에 이어 남동생을 얻었는데, 남동생을 업고 마루에서 놀다 발을 헛디뎌 떨어진 적이 있었다. 자기 몸은 상관없지만 남동생이 잘못될세라 울었고 동생의 이마에 난 생채기 때문에 부모님이 오실 때는 숨어있었다고 했다. 그 친구는 여섯 동생 공부 뒷바라지를 해 왔다.     늘 논밭에서 농작물 사이에 계시던 부모님들을 뒤로하고 열심히 공부한 맏딸들. 앞길을 스스로 열어가는 딸들을 위해 헌신하며 마음 바탕을 튼튼하게 해 주신 부모님들. 그분들 일생을 돌아보며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다.     학교장으로 만년 평교사로, 또 간부급 국가공무원으로 산림을 관리하며 칼날 길을 걸어온 친구들. 이제는 신명나는 대로 살아가게나. 그래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체력단련을 통해 생기와 활력으로 실버사회의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오늘의 모습들이 보기 좋구나.     한국의 발전에 기여했던 사람들. 이젠 쓸모있는 땅이 된 하천부지에서 파크골프 클럽을 즐겨 잡는구나. 권정순 / 전직교사열린광장 친구 동생 공부 파크 클럽 체육복 입고

2023-07-20

[로컬 단신 브리핑] 샴버그 인근 I-90서 4중 충돌사고 4명 사상 외

#. 샴버그 인근 I-90서 4중 충돌사고 4명 사상    시카고 서 서버브 인근 고속도로서 4대의 차량이 충돌,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7일 오후 3시경 샴버그 인근 미첨 로드와 로젤 로드 사이 I-90 고속도로서 4중 충돌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운전자 1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다른 운전자 3명은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 중이다.     사건을 조사 중인 당국은 과속을 주요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날 사고 현장 정리 및 조사를 위해 동쪽 방향 I-90 도로 전체가 한 동안 폐쇄했고, 서쪽 방향 고속도로에도 정체가 발생했다.   #. 고교생들 장난으로 소가 나일스 주택가 배회    시카고 북 서버브 고등학생들의 철 없는 장난으로 소 한 마리가 주택가를 배회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지난 27일 오전 3시경 8300 밸러드 인근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노스리지 프렙 고교생들이 '시니어 프랭크'(Senior Prank, 졸업하기 전 장난)로 학교에 있던 동물들을 우리 밖으로 내보내는 바람에 소 한 마리가 주택가를 돌아다니게 된 것으로 확인했다.     경찰은 글렌뷰 소재 농장 직원 두 명의 도움을 받아 이날 오전 10시경 배회하던 소를 포획하는데 성공했다.     학생들은 ‘시니어 프랭크’를 위해 위스콘신 중부외 일리노이 서부 딕슨 지역에서 소와 돼지, 닭 등을 구매해 학교로 반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함께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인 학교 측은 이번 사건과 관련, 별도의 형사 고발을 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은 사건과 관련된 학생들에게 통금 시간 위반, 무질서한 행위, 동물 배설물 투기 등의 혐의로 소환장(citation)을 발부했다.     한편 다시 포획된 소는 동물 단체의 보호 하에 다른 곳으로 옮겨질 것으로 확인됐다.     Kevin Rho 기자로컬 단신 브리핑 충돌사 인근 인근 고속도로 입고 인근 인근 i

2023-04-28

[삶의 뜨락에서] 석린성시(惜吝成屎)

가장 비싸고 좋은 그릇, 가장 비싸고 아름다운 옷을 왜 장에만 넣어 놓고 쓰고 입지를 않을까. 아마도 오늘보다 좋은 날에 쓰고 입으려고 아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게도 비싸고 좋은 옷이 몇 벌 있습니다. 아내가 백화점에 갔다가 너무 예뻐서 사다가 주어서 장에 걸어둔 옷들입니다. 그런데 그 옷을 입고 나갈 좋은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파티도 있고 결혼식도 있고 기념식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좋은 날 입고 나가려고 아껴서 걸어둔 옷입니다.     이제 은퇴를 하고 나니 그런 옷을 입고 나갈만한 행사가 없습니다. 나의 삶에서 가장 좋았던 날이 모두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이제 그 옷을 꺼내 입을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옷장을 들여다보면서 옛말이 옳았다고 하고 후회를 합니다.     '석(惜)' 아끼고 '린(吝)' 또 아끼면 '성(成)'이 된다. 무엇이 될까요. 시(屎) 똥이 된다는 말입니다. 옛날 가난할 때 어쩌다 옷이 한 벌 생기면 그날로 입고 나갔습니다.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헌 옷보다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머님이 야단을 치면서 “야 이놈아, 물건을 좀 아낄 줄 알아라. 헌 옷이 있어야 새 옷이 있는 법이란다” 하고 야단을 치셨습니다. 그렇게 자라서 그런지 새 옷을 사다가 걸어 놓고도 다음날 병원에 나갈 때는 또 입던 헌 옷을 입고 출근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옷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20년을 입었는데도 아직도 멀쩡한 옷들이 여러 벌 있습니다. 그러니 비싸고 좋은 옷을 입을 날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내가 죽으면 그 옷은 그대로 버려지겠지요. 그 아까운 옷이….     우리 집의 장에는 비싼 그릇이 여러 벌 있습니다. 레녹스라던가 또 무슨 이름 있는 접시들, 접시 한 개에 몇백 달러 하는 것이 장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릇으로 밥을 먹어 본 일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오래전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간 일 있습니다. 아마도 그의 생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상에 오른 접시가 무척 비싼 접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접시 주위에 그려진 선이 금이라고 했습니다. 식사하면서 숟가락이 접시에 긁히지 말게 하라고 아내가 나에게 주의를 주었습니다. 나는 먹는 음식보다도 접시에 신경을 쓰느라고 음식 맛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우리 집에도 그런 접시가 있는데 아무리 특별한 날에도 나는 그런 접시에 음식을 먹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그 접시는 한 번도 제구실을 못 한 채 그냥 장 속에 있습니다. 언제 그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을까요. 아마도 그런 날이 나의 생전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접시도 제구실을 못 한 채 석린성시가 될 것입니다.     몇 번 딸에게 그 접시를 가져가라고 했더니 딸은 나보다 현명한지 그런 접시는 부담이 되어서 “No Thank you” 라고 하고는 그 접시는 아무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하는 신세입니다. 그럼 그 접시나 그런 옷을 왜 샀을까요. 우리 주위에는 평생 돈을 모으는 데만 정성을 쏟다가 가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돈을 모아 아름다운 그릇을 모아 남에게 자랑하다가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런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개업하여 돈을 벌면 아내는 다른 사람처럼 우리도 무엇을 사보고 싶다고 쇼핑을 했습니다. 식당의 장도 체리 나무로 한 것을 사야 한다고 명품점에 주문하여 몇 달은 있다가 배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이 다칠까 봐 아내는 조심하고 또 조심했습니다. 우리는 돈을 주고 우상을 만들고 그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 차려 노예생활에서 벗어나려고 하니 이제는 그 귀한 물건이 시(屎)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아깝습니다. 그러나 비싼 교훈을 얻은 것입니다. 이용해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접시 주위 접시들 접시 입고 출근

2023-02-03

[삶의 뜨락에서] 석린성시(惜吝成屎)

가장 비싸고 좋은 그릇, 가장 비싸고 아름다운 옷을 왜 장에만 넣어 놓고 쓰고 입지를 않을까. 아마도 오늘보다 좋은 날에 쓰고 입으려고 아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게도 비싸고 좋은 옷이 몇 벌 있습니다. 아내가 백화점에 갔다가 너무 예뻐서 사다가 주어서 장에 걸어둔 옷들입니다. 그런데 그 옷을 입고 나갈 좋은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파티도 있고 결혼식도 있고 기념식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좋은 날 입고 나가려고 아껴서 걸어둔 옷입니다.     이제 은퇴를 하고 나니 그런 옷을 입고 나갈만한 행사가 없습니다. 나의 삶에서 가장 좋았던 날이 모두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이제 그 옷을 꺼내 입을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옷장을 들여다보면서 옛말이 옳았다고 하고 후회를 합니다.     석(惜) 아끼고 린(吝) 또 아끼면 성(成)이 된다. 무엇이 될까요. 시(屎) 똥이 된다는 말입니다. 옛날 가난할 때 어쩌다 옷이 한 벌 생기면 그날로 입고 나갔습니다.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헌 옷보다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머님이 야단을 치면서 “야 이놈아, 물건을 좀 아낄 줄 알아라. 헌 옷이 있어야 새 옷이 있는 법이란다” 하고 야단을 치셨습니다. 그렇게 자라서 그런지 새 옷을 사다가 걸어 놓고도 다음날 병원에 나갈 때는 또 입던 헌 옷을 입고 출근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옷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20년을 입었는데도 아직도 멀쩡한 옷들이 여러 벌 있습니다. 그러니 값비싸고 좋은 옷을 입을 날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내가 죽으면 그 옷은 그대로 버려지겠지요. 그 아까운 옷이….     우리 집의 장에는 비싼 그릇이 여러 벌 있습니다. 레녹스라던가 또 무슨 이름 있는 접시들, 접시 한 개에 몇백불 하는 것이 장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릇으로 밥을 먹어 본 일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오래전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간 일 있습니다. 아마도 그의 생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상에 오른 접시가 무척 비싼 접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접시 주위에 그려진 선이 금이라고 했습니다. 식사하면서 숟가락이 접시에 긁히지 말게 하라고 아내가 나에게 주의를 주었습니다. 나는 먹는 음식보다도 접시에 신경을 쓰느라고 음식 맛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우리 집에도 그런 접시가 있는데 아무리 특별한 날에도 나는 그런 접시에 음식을 먹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그 접시는 한 번도 제구실을 못 한 채 그냥 장 속에 있습니다. 언제 그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을까요. 아마도 그런 날이 나의 생전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접시도 제구실을 못 한 채 석린성시가 될 것입니다.     몇 번 딸에게 그 접시를 가져가라고 했더니 딸은 나보다 현명한지 그런 접시는 부담이 되어서 No Thank you 라고 하고는 그 접시는 아무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하는 신세입니다. 그럼 그 접시나 그런 옷을 왜 샀을까요. 우리 주위에는 평생 돈을 모으는 데만 정성을 쏟다가 가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돈을 모아 아름다운 그릇을 모아 남에게 자랑하다가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런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개업하여 돈을 벌면 아내는 다른 사람처럼 우리도 무엇을 사보고 싶다고 쇼핑을 했습니다. 식당의 장도 체리 나무로 한 것을 사야 한다고 명품점에 주문하여 몇 달은 있다가 배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이 다칠까 봐 아내는 조심하고 또 조심했습니다. 우리는 돈을 주고 우상을 만들고 그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 차려 노예생활에서 벗어나려고 하니 이제는 그 귀한 물건이 시(屎)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아깝습니다. 그러나 비싼 교훈을 얻은 것입니다. 이용해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접시 주위 접시들 접시 입고 출근

2023-01-26

[이 아침에] ‘오죽하면 씨’에게 대박 나기를

겨울비가 내렸다. 이제 옷장을 정리할 시간이다. 정리의 여왕 곤도 마리에 정리법을 따라 만졌을 때 설레지 않는 옷, 다음 계절에 다시 입고 싶지 않은 옷, 오늘 갑자기 온도가 바뀌면 당장 입고 싶지 않은 옷들과 유행이 지난 옷, 하도 빨아서 작아진 옷, 소매 끝이 해어진 옷, 왜 샀을까 하는 옷, 입고 싶어도 맞지 않아서 입지 못하는 옷, 그리고 보기에는 예쁘나 입으면 행동거지가 불편한 옷들을 골라내고 버리기 아까운 옷들은 기부용 박스에 넣었다.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또한, 지난 3년 동안 세 번 이상 꺼내 입지 않은 옷도 걸러냈다. 하지만 코로나19 펜데믹 기간이라서 지난 3~4년 동안 입은 적이 없는 옷들이 수두룩했다. 그래서 기부하기에는 앞으로 입을 기회가 많아질 옷은 아예 집에서 입고 있기로 했다. 오늘 아침에는 홈쇼핑 센터에서 산 긴 원피스 드레스를 입었다. 그리스 여신의 옷 같다고 해서 가격도 보지 않고 산 옷이다. 과연 여신의 옷같이 뒤 천이 나풀거린다. 교회 갈 때 입기에도 좀 요란한 디자인이어서 결혼식에 갈 때 한 번 입었다. 여신이 별거냐 설거지하고 배큠하는 여신도 있어야지 하며, 이 옷을 입고 집안일을 했다. 이제 한 3년 정도 가지고 있어도 마음에 거부감이 없을 것이다.   옷 정리를 했다고 하니, 언니가 입던 옷 중에서 버리기 아까운 옷이 있으면 달라고 했다. 아는 사람이 중고 시장에서 남이 입던 옷을 파는 장사를 시작한단다. ‘새 옷 파는 장사가 아니라 중고 의류 파는 장사?’라고 다시 물으니, 사정이 딱한 사람이라 했다. 난 그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바로 이 시간 누군가는 인생의 낮은 곳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오죽하면 씨’는 지금 밑천 들지 않는 장사를 시작하려고 한다.     누구나 한번은 밑바닥 치는 삶을 산다. 난 이런 상황에서 하늘을 향해 소리 지르며 삿대질하는 사람, 모든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탓하는 사람, 불완전한 세상을 불평하는 사람, 그리고 나중에는 본인은 물론 식구들까지 원망하면서 한평생 주저앉아 사는 사람도 봤다.   하지만 ‘오죽하면 씨’는 그곳에서 일어서려고 한다.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은 도와줘야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다시 기부함과 옷장을 정리하며 쓸만한 옷 몇 벌을 보냈다. 나의 작은 도움이 힘이 되었으면 한다. 곤고하고 낙망 될 때 옆에 기댈 언덕이라도 있으면 한 발짝 앞으로 나가기가 쉽다. 백지장도 맞드는 것이 낫지 않는가.     언젠가는 우리도 한번은 그 길을 걷는다. 새해에는 ‘오죽하면 씨’에게 대박이 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에게도 만사형통하고 대박 나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입고 집안일 기부용 박스 입고 있기

2023-01-23

[이 아침에] ‘오죽하면 씨’에게 대박 나기를

겨울비가 내렸다. 이제 옷장을 정리할 시간이다. 정리의 여왕 곤도 마리에 정리법을 따라 만졌을 때 설레지 않는 옷, 다음 계절에 다시 입고 싶지 않은 옷, 오늘 갑자기 온도가 바뀌면 당장 입고 싶지 않은 옷들과 유행이 지난 옷, 하도 빨아서 작아진 옷, 소매 끝이 해어진 옷, 왜 샀을까 하는 옷, 입고 싶어도 맞지 않아서 입지 못하는 옷, 그리고 보기에는 예쁘나 입으면 행동거지가 불편한 옷들을 골라내고 버리기 아까운 옷들은 기부용 박스에 넣었다.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또한, 지난 3년 동안 세 번 이상 꺼내 입지 않은 옷도 걸러냈다. 하지만 코로나19 펜데믹 기간이라서 지난 3~4년 동안 입은 적이 없는 옷들이 수두룩했다. 그래서 기부하기에는 앞으로 입을 기회가 많아질 옷은 아예 집에서 입고 있기로 했다. 오늘 아침에는 홈쇼핑 센터에서 산 긴 원피스 드레스를 입었다. 그리스 여신의 옷 같다고 해서 가격도 보지 않고 산 옷이다. 과연 여신의 옷같이 뒤 천이 나풀거린다. 교회 갈 때 입기에도 좀 요란한 디자인이어서 결혼식에 갈 때 한 번 입었다. 여신이 별거냐 설거지하고 배큠하는 여신도 있어야지 하며, 이 옷을 입고 집안일을 했다. 이제 한 3년 정도 가지고 있어도 마음에 거부감이 없을 것이다.   옷 정리를 했다고 하니, 언니가 입던 옷 중에서 버리기 아까운 옷이 있으면 달라고 했다. 아는 사람이 중고 시장에서 남이 입던 옷을 파는 장사를 시작한단다. ‘새 옷 파는 장사가 아니라 중고 의류 파는 장사?’라고 다시 물으니, 사정이 딱한 사람이라 했다. 난 그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바로 이 시간 누군가는 인생의 낮은 곳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오죽하면 씨’는 지금 밑천 들지 않는 장사를 시작하려고 한다.     누구나 한번은 밑바닥 치는 삶을 산다. 난 이런 상황에서 하늘을 향해 소리 지르며 삿대질하는 사람, 모든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탓하는 사람, 불완전한 세상을 불평하는 사람, 그리고 나중에는 본인은 물론 식구들까지 원망하면서 한평생 주저앉아 사는 사람도 봤다.   하지만 ‘오죽하면 씨’는 그곳에서 일어서려고 한다.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은 도와줘야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다시 기부함과 옷장을 정리하며 쓸만한 옷 몇 벌을 보냈다. 나의 작은 도움이 힘이 되었으면 한다. 곤고하고 낙망 될 때 옆에 기댈 언덕이라도 있으면 한 발짝 앞으로 나가기가 쉽다. 백지장도 맞드는 것이 낫지 않는가.     언젠가는 우리도 한번은 그 길을 걷는다. 새해에는 ‘오죽하면 씨’에게 대박이 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에게도 만사형통하고 대박 나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입고 집안일 기부용 박스 입고 있기

2023-01-03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깍깍 까치가 울면

까치가 운다. 이른 아침 산책길에 이웃 지붕 꼭대기에서 까치 세 마리가 깍깍 소리내어 운다. 검은색 부리와 굽은 등이 비단결처럼 광택이 난다. 어깨와 긴 날개깃은 아침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하얗다. 오늘은 반가운 사람이 오시려나. 누구를 위해, 무엇을 바라며 까치는 저리도 목청 높여 울고 있는 것일까.     까치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새다. 옛부터 아침에 까치가 울면 귀한 손님이 찾아온다고 한다. 까치는 좋은 소식이 올 길조(吉鳥)로 여겨진다.     설날이 가까와지면 동무들과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 이래요.’라고 종달새처럼 노래 불렀다. 설날이 손꼽아 기다려지는 건 때때옷 입고 차례상 음식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알록달록 곱게 만든 설빔을 입고 수양버들에 묶인 그네를 타고 하늘로 날아 올랐다.       설 전날을 까치설이라고 부르는데 원래는 ‘작은 설’이라는 말이다. 국어학자의 말에 따르면 ‘까치 설’은 ‘작은 설’이라는 뜻을 가진 ‘아치 설’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작다’는 뜻의 ‘아치’에서 파생된 말이 세월에 따라 ‘까치’로 변형돼 ‘까치설’로 정착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외로우면 모든 것이 그리움이 된다. 작은 몸짓, 스쳐가는 미소, 다정한 눈길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불타는 사랑이 떠나간 자리는 이별의 상흔이 화석처럼 굳어있다. 목매어 불러도 한번 등 돌린 사람은 돌아서지 않는다. 다시 만날 기약이 영영 사라졌다 해도 못다한 사랑은 그리움의 생채기로 남는다.     떠나오면 잊혀진다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흔적마저 희미해지고 종국에는 민들레 홀씨로 흩어진다 믿었다.     미국 온 뒤 까치가 우는 날엔 메일박스로 달려갔다. 혹여나 바람결에 날아 올 그리운 사람들이 보낸 편지나 엽서를 기다렸다. 그리움은 그리워하는 사람의 몫이다. 까치가 울지 않는 날에도 우체부가 오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움이 서럽게 가슴 저미는 날엔 우체국 앞을 서성였다. 오늘 안 오면 내일은 사랑의 엽서가 날아 올 거야. 날 영영 잊어버리지는 않겠지. 사랑의 말들이 적힌 편지는 끝내 오지 않았다. 기다림은 가슴에 작은 모닥불 지핀다. 기다림은 세월이 흘러도 어머니가 만드신 조각이불처럼 삶을 따스하게 감싼다.     칠월칠석은 견우와 직녀가 일년에 단 한번 오작교(烏鵲橋)에서 만나는 날이다, 그 날은 까마귀나 까치를 볼 수 없다. 칠석날을 지낸 까치는 머리털이 벗겨져 있는데 오작교 다리를 놓느라고 돌을 머리에 이고 다녔기 때문이라 전해진다.     이제는 외로움으로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는다. 까치가 울어도 까치가 울지 않아도 멍 때리며 메일박스 곁을 서성이지 않는다. 외로움도 그리움도 서러움까지도 남은 인생 동안 견뎌내야 할 내 인생의 숙제다.     이젠 우체국 앞에서 바보처럼 헤매지 않는다. 돌아오지 못할 시간을 되새김질 하지 않는다. 사랑은 어제의 물레방아에서 흘러간 물이다. 지나간 시간보다 다가올 날들에 열중하며 덜 아프게, 눈물없이 살기로 한다.     첫사랑보다 진하고 애틋하며, 그리움보다 깊고 오묘한, 영혼의 밑바닥을 울리는 방울소리로, 아직 살아 움직이는 뼈마디의 노래 소리를 듣는다.     까치가 울어도, 울지 않아도 살아있는 동안 그리움의 날개 접지 않으리라.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까치 까치 까치 오작교 다리 입고 수양버들

2022-11-01

‘한복 입고 부채춤’ 문화가 중국 전통?

세계 최대의 이미지·영상 플랫폼인 게티이미지가 우리나라 전통 한복과 부채춤을 중국의 문화로 표기한 사진을 유통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는 게티이미지가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유통하면서 “중국 무용수들이 춘제(음력 1월 1일)를 기념하기 위해 전통 의상을 입는다”는 설명을 달았다고 24일 밝혔다.   반크는 “사진 설명을 보면 세계인 누구나 한복과 부채춤이 중국의 전통의상과 문화로 왜곡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2015년 2월 21일 중국 베이징의 템플 페어에서 열린 춘제 축하공연을 촬영했다.   이 사진은 현재 게티이미지에서 크기에 따라 175달러, 375달러, 499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또 사진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영어 교재에도 같은 설명이 달려 실렸다. 이에 반크는 게티이미지 측에 항의 서한을 보내고 시정을 요청했다. 방치할 경우 해외 유명 교과서, 관광 출판, 방송, 언론에도 확산하기 때문이라고 반크는 설명했다.   반크는 또 게티이미지 외에 해외 유명 사진 공유사이트에 잘못된 내용이 반영되지 않도록 시정 운동과 함께 한국의 전통문화를 제대로 소개하는 사진을 적극적으로 올리는 캠페인을 전개할 계획이다.비난 시정 요청전통문화 한복 부채춤 입고 부채춤

202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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