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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메구장단’이 된 친구들

한국에서 절친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아름다운 빛으로 투명하다.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고향 산천의 빼어난 경치를 둘러보았으며, 까마득한 후배들이 공부하는 모교에 들려 발소리와 말소리를 낮추며 돌아다녔다. 흰 블라우스 교복을 입고 속닥거리던 교실 건물들은 재건축되어 우리를 몰라보았고, 체육복 입고 쉬던 플라타너스 그늘은 간 곳이 없었다.  
 
지난날 쉰을 넘기며 삶의 진창길에서 벗어나 우리는 가끔씩 주안상을 차려놓고 노래를 부르다 하나둘 쓰러지던 밤도 있지 않았던가. 이번 귀국길에는 친구들이 새로운 곳으로 데리고 갔다. 이제 동동거리며 살던 날들도 가고, 어떤 간섭도 받지 않은 채 우리는 자유로운 일상을 즐길 뿐이다.
 
‘메구장단’이란 말이 있는데, 메구는 농악 마당 꽹과리의 방언이다. 연주자가 신명대로 치는 가락으로 ‘자유자재’ 라는 의미와 통하는 것 같다. 오늘날 우리들의 근황이 ‘메구장단’이란 말과 딱 어울린다고나 할까?  
 
우리는 경기도 여주 남한강가의 파크골프장으로 갔는데, 잠깐 배우고 나도 같이 칠 수 있었다. 한나절 햇볕 속을 거닐며 네 명이 함께 운동하기에는 매우 적합했다. 파크골프장은 주로 하천부지나 공원에 조성되어 있는데, 시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활용 인구도 많아져 점점 늘어나고 있단다. 우리는 강물을 바라보며 흰구름처럼 여유롭게 떠돌다가 맛집을 향해 출발했다.  
 


우리가 고향 도시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데 평소 소식을 하는 한 친구가 유별나게 음식을 깨작거렸다. 우리가 보다 못해 입이 그렇게 고급화됐느냐고 핀찬을 주었다. 친구는  어릴 때 하도 굶어서 위가 자라지 못해 양이 적다고 했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서로 알기에 픽 웃었지만 그녀는 가슴 밑바닥에 붙은 얘기를 끄집어냈다.  
 
과수원 하는 부모님이 밥과 채소가 담긴 비빔밥 한 양푼에 숟가락 일곱 개를 넣어서 밥상에 올려놓으시면 동생들이 벌떼처럼 달려드는 바람에 그녀는 늘 뒷전에 물러나 있어야 했단다.  그 시절 찔레 여린 순을 따서 산소 옆에 앉아 다 먹고는 집으로 간 적이 많았다고 한다. 버스가 안 들어가는 이십리 길을 쌀자루를 이고 오는데, 해 질 무렵 무서워서 늘 울면서 걸어왔다고 했다. 여중 시절 그녀의 단촐했던 자취방이 짠하게 떠올랐다.  
 
또 한 친구는 딸 다섯에 이어 남동생을 얻었는데, 남동생을 업고 마루에서 놀다 발을 헛디뎌 떨어진 적이 있었다. 자기 몸은 상관없지만 남동생이 잘못될세라 울었고 동생의 이마에 난 생채기 때문에 부모님이 오실 때는 숨어있었다고 했다. 그 친구는 여섯 동생 공부 뒷바라지를 해 왔다.  
 
늘 논밭에서 농작물 사이에 계시던 부모님들을 뒤로하고 열심히 공부한 맏딸들. 앞길을 스스로 열어가는 딸들을 위해 헌신하며 마음 바탕을 튼튼하게 해 주신 부모님들. 그분들 일생을 돌아보며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다.  
 
학교장으로 만년 평교사로, 또 간부급 국가공무원으로 산림을 관리하며 칼날 길을 걸어온 친구들. 이제는 신명나는 대로 살아가게나. 그래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체력단련을 통해 생기와 활력으로 실버사회의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오늘의 모습들이 보기 좋구나.  
 
한국의 발전에 기여했던 사람들. 이젠 쓸모있는 땅이 된 하천부지에서 파크골프 클럽을 즐겨 잡는구나.

권정순 / 전직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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