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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석린성시(惜吝成屎)

가장 비싸고 좋은 그릇, 가장 비싸고 아름다운 옷을 왜 장에만 넣어 놓고 쓰고 입지를 않을까. 아마도 오늘보다 좋은 날에 쓰고 입으려고 아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게도 비싸고 좋은 옷이 몇 벌 있습니다. 아내가 백화점에 갔다가 너무 예뻐서 사다가 주어서 장에 걸어둔 옷들입니다. 그런데 그 옷을 입고 나갈 좋은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파티도 있고 결혼식도 있고 기념식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좋은 날 입고 나가려고 아껴서 걸어둔 옷입니다.  
 
이제 은퇴를 하고 나니 그런 옷을 입고 나갈만한 행사가 없습니다. 나의 삶에서 가장 좋았던 날이 모두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이제 그 옷을 꺼내 입을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옷장을 들여다보면서 옛말이 옳았다고 하고 후회를 합니다.  
 
'석(惜)' 아끼고 '린(吝)' 또 아끼면 '성(成)'이 된다. 무엇이 될까요. 시(屎) 똥이 된다는 말입니다. 옛날 가난할 때 어쩌다 옷이 한 벌 생기면 그날로 입고 나갔습니다.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헌 옷보다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머님이 야단을 치면서 “야 이놈아, 물건을 좀 아낄 줄 알아라. 헌 옷이 있어야 새 옷이 있는 법이란다” 하고 야단을 치셨습니다. 그렇게 자라서 그런지 새 옷을 사다가 걸어 놓고도 다음날 병원에 나갈 때는 또 입던 헌 옷을 입고 출근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옷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20년을 입었는데도 아직도 멀쩡한 옷들이 여러 벌 있습니다. 그러니 비싸고 좋은 옷을 입을 날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내가 죽으면 그 옷은 그대로 버려지겠지요. 그 아까운 옷이….  
 
우리 집의 장에는 비싼 그릇이 여러 벌 있습니다. 레녹스라던가 또 무슨 이름 있는 접시들, 접시 한 개에 몇백 달러 하는 것이 장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릇으로 밥을 먹어 본 일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오래전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간 일 있습니다. 아마도 그의 생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상에 오른 접시가 무척 비싼 접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접시 주위에 그려진 선이 금이라고 했습니다. 식사하면서 숟가락이 접시에 긁히지 말게 하라고 아내가 나에게 주의를 주었습니다. 나는 먹는 음식보다도 접시에 신경을 쓰느라고 음식 맛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우리 집에도 그런 접시가 있는데 아무리 특별한 날에도 나는 그런 접시에 음식을 먹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그 접시는 한 번도 제구실을 못 한 채 그냥 장 속에 있습니다. 언제 그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을까요. 아마도 그런 날이 나의 생전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접시도 제구실을 못 한 채 석린성시가 될 것입니다.  
 
몇 번 딸에게 그 접시를 가져가라고 했더니 딸은 나보다 현명한지 그런 접시는 부담이 되어서 “No Thank you” 라고 하고는 그 접시는 아무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하는 신세입니다. 그럼 그 접시나 그런 옷을 왜 샀을까요. 우리 주위에는 평생 돈을 모으는 데만 정성을 쏟다가 가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돈을 모아 아름다운 그릇을 모아 남에게 자랑하다가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런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개업하여 돈을 벌면 아내는 다른 사람처럼 우리도 무엇을 사보고 싶다고 쇼핑을 했습니다. 식당의 장도 체리 나무로 한 것을 사야 한다고 명품점에 주문하여 몇 달은 있다가 배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이 다칠까 봐 아내는 조심하고 또 조심했습니다. 우리는 돈을 주고 우상을 만들고 그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 차려 노예생활에서 벗어나려고 하니 이제는 그 귀한 물건이 시(屎)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아깝습니다. 그러나 비싼 교훈을 얻은 것입니다.

이용해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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