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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이중 슬릿 실험

어려운 말 같아 보이지만, 무엇을 두 곳의 좁은 틈 사이로 통과시켜서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려는 실험을 뜻한다. 하지만 이 간단한 실험 때문에 인류 역사에 이름이 남은 뉴턴은 체면을 구겼다.     17세기가 될 때까지 우리는 물체를 떨어뜨리면 그 무게 때문에 당연히 땅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공중에 들고 있던 사과를 놓으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누구도 왜 땅으로 떨어지는지 의심해 보지 않았다. 사과가 하늘 위로 솟구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자연의 진리였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최초로 그런 현상에 의심을 품고 왜 그런지 궁금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이작 뉴턴이다.     뉴턴은 질량을 가진 물체는 서로 끌어당긴다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질량이 클수록, 그리고 두 물체 사이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당기는 힘은 강하다고 했다. 뉴턴은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고 위대한 뉴턴의 말에 시비를 거는 것 자체가 과학자이기를 포기한 행위였다. 뉴턴은 빛에 관해서도 연구를 많이 했는데 그는 빛이 입자의 흐름이라고 생각했다. 대과학자 뉴턴이 빛은 입자라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따라야 하는데 토머스 영이라는 신출내기 과학자 한 사람이 빛은 파동이라고 토를 달았다.     당시 상황으로 봐서는 당연히 과학계에서 퇴출당할 줄 알았는데 그의 이중 슬릿 실험으로 빛은 입자가 아니라 파동이라고 교과서를 다시 쓰게 될 판이었다.   만약 빛이 입자였다면 두 틈 사이를 지날 때, 그러니까 이중 슬릿을 통과하려면 두 슬릿 중 한 곳만을 통과해야 하는데 입자라고 굳게 믿었던 빛은 두 군데 틈을 동시에 지난 후 간섭 효과를 보였다. 간섭은 파동에서만 나타나는 특별한 현상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뉴턴이 말씀하셨다고 해도 문제였다.     그 후 더욱 정교한 실험을 통해 빛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는 이중성이 밝혀졌다. 하지만 입자설과 파동설은 같이 공존할 수 없는 이론이기 때문에 당시 물리학계의 일대 사건이었다.     이상한 것은 우리가 관찰하는 순간에 그 상태가 바뀐다는 것이다. 마치 피 관찰 물체가 외부에서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상태를 바꾸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양자역학의 세계다. 측정된 정보에 의해서 정확한 예측을 하던 고전물리학자들은 이런 신비스러운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고 아예 받아드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늘의 달은 우리가 쳐다보든 보지 않든 항상 떠 있는 천체다. 하지만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보면 하늘의 달도 관찰자인 우리가 보는 순간 그 자리에 존재할 뿐 항상 있는 물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오죽했으면 아인슈타인이, "그렇다면 우리가 관찰하기 전에는 하늘에 달이 없다는 말이냐?"고 역정을 냈다는 일화가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양자역학의 근간인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서 이 세상 모든 것은 절대적이지 않고 확률로 존재하는 것이다.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 같은 토머스 영의 이중 슬릿 실험 때문에 빛의 이중성이 밝혀지고 결국, 양자역학이란 거대한 문이 열렸다. 빛은 입자의 성질도 갖지만 동시에 파동의 성질도 갖는데 이를 빛의 이중성이라고 한다.     토머스 영의 간단한 이중 슬릿 실험으로 철통 같은 뉴턴의 벽을 넘어 양자역학이 시작되었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작가)       박종진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슬릿 실험 실험 때문 이중 슬릿 인류 역사상

2024-04-12

[문주한 세금/회계] 회계사 35년, 부자 되는 길

남들과 다른, 차별화(differentiation)된 상상력을 가진 1%가 세상을 움직인다. 그리고 그들을 재빨리 알아채고, 함께 그 성공의 배에 올라타는 또 다른 1%가 있다. 나머지 98%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산다.   동굴 밖에 지금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모르면서 말이다. 그런데 혹시 이런 끔찍한 생각을 해봤나? 나중에 우리 애들이 커서 내게 물을지도 모른다. ‘아빠, 아마존이 클라우드를 시작한, 그리고 구글이 Gmail을 만든 2004년, 아빠는 그때 무엇을 하셨나요?’   130년 전, 포드가 자동차를 처음 만들었을 때 모두 비웃었다. 워싱턴포스트 신문은 포드가 자동차를 머리에 거꾸로 이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만화까지 실었다. 그러나 그 옆에 있던 라커펠러는 달랐다. 자동차 한 대 다니지 않는 전국의 큰길에 주유소부터 세우기 시작했고, 그는 결국 석유 재벌이 되었다.     창조적인 상상력을 가진 이런 사람들 1%, 그리고 그것에 재빨리 공감하고 동승할 수 있는 극소수의 1% 사람들. 그들의 주머니로 세상의 돈은 깔때기처럼 모인다. 캄캄한 미지의 땅에 첫 불을 밝히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알아챈 눈이 뜨인 사람들이 있다. 나 같이 그저 보통의 눈만 가진 사람들이 앞을 못 볼 때, 극소수의 사람들이 인류 문명의 발전과 편익을 갖다 주고, 그 보상으로 돈방석에 앉는다.  나머지 98%는 그들을 억만장자로 만드는 데 자신들의 없는 지갑을 열 뿐이다. 그들 98%의 보통 사람들은 정부에서 받은 지원금을 잠시 보관하다가, 그 2%의 특별한 사람들에게 전달해주는 ‘돈 배달부’ 역할만 할 뿐이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횃불의 맨 앞에 설 수는 없다. 그러나 주변을 살필 눈은 2개씩 갖고 있지 않은가? 애플을 보자. 아이폰을 사면 내 돈은 그 회사로 들어간다. 그나마 내가 발을 담글 수 있는, 아니 새끼발가락의 발톱이라도 걸칠 수 있는 방법은, 돈 아껴서 그 회사의 주식을 한 주씩이라도 사 모으는 것. 그것이 그나마 나 같은 98%가 그들만의 파티에 숟가락이라도 올려놓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애플이 휴대폰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2007년. 그 사이에 주가는 30배 올랐다. 전화기 하나만 산 사람과 주식까지 함께 산 사람이 갖는 부(wealth)의 차이는 악어의 입보다 더 크게, 잘못 쏜 화살만큼 더 넓게, 계속 벌어지게 마련이다.   우리가 비록 차별화된 1%의 재주와 용기는 없어도, 그리고 그 1%의 진짜를 찾은 첫 번째 사람은 아니더라도, 그 진짜 2%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세 번째 1%이기만 하면 된다. 세상의 모든 전설에는 작은 시작이 있는 법. 세상의 모든 가문에는 그 씨앗이 있는 법. 오늘이 그 전설, 그 가문을 시작하는, 바로 그 날 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어차피 행동하는 자들의 것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움직이고 보자.   문주한 한국 공인 회계사 / 미국 공인 회계사, 세무사   www.cpamoon.com회계사 세무사 워싱턴포스트 신문 인류 문명 문주한 문주한 회계사

2024-02-16

[독자 마당] 전쟁이 멈추지 않는 이유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때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들은 영웅으로 추앙을 받았다.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승리는 전쟁의 최상의 가치가 됐다.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인간도 자신의 안위가 최우선 순위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서로 화합해 분란 없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 텐데, 왜 주변 집단과 싸워야 하고, 그 싸움에서 이겨야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를 일이다.     생태계에서 약육강식이란 동종 간 강약을 겨루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먹이사슬의 하위 그룹을 제압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있는 인간이 서로 싸우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자연의 섭리에도,인간 도리상으로도 어긋나는 일이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은 종교나 이념 등의 갈등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결국은 상대편으로부터 필요한 것을 빼앗으려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두 곳의 전쟁 또한 이익 추구를 위한 욕구의 극대화에서 야기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전쟁이 계획되고 실행되는 것은 한 집단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의지에 의해서다. 그들이 병력과 물자를 전장으로 내몰 때, 일반 개인의 의지는 개입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전쟁 없는 평온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 집단에서 지도자를 잘 뽑는 방법밖에 없다. 한 집단을 이끄는 지도자가 정의·양심·겸양 등 인간적 가치를 중시하며 구성원들을 이끌고, 다른 집단과도 우호·타협·상생의 방법을 모색할 때 평화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들이 영웅인 것이다.     무능하거나 포악해서 집단을 파멸로 이끌 지도자는 필히 배격되어야 한다. 윤천모·풀러턴독자 마당 전쟁 주변 집단 안위가 최우선 인류 역사가

2023-11-28

[열린광장] 다시 불확실성의 시대에 들어 선 인류

지난 한 주 가슴 깊은 곳에 아픔을 느끼지 않은 이가 있을까. 또 다른 전쟁터에서 무고한 사람들과 어린아이까지 희생되는 것이 지구 저편의 일이라고 고개를 돌려도 마음속은 혼란의 파고가 인다. 참으로 슬프고 고통스러운 때를 만났다. 인류가 다시 커다란 불확실성의 시대에 돌입한 여러 가지 현상을 보고 듣는다. 이제 엔데믹의 상황에서 막 생활을 가다듬는 인류가 아니었던가.     2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지구 저편 전쟁으로 인해 이미 수백만 명의 피난민과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 위에, 지난주 또 다른 전쟁이 발발했다. 짧은 시간에 사상자는 이미 1만 명을 넘었는데 이 가혹한 전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수년간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투쟁에서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 그런데 그 그간에 자비함을 얻어 남은 자가 된 인류는 오히려 더 악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중 사람의 마음이 자고해 져서 스스로 혼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제, 인류는 스스로 대답해야 하는 시기를 맞이했다. 평화로운 시대에는 아침 햇살과 저녁 황혼을 즐기며 감사하면 된다. 그러나 이제 다시 마주친 혼란의 시대엔 스스로를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거주하는 이 땅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 삶의 여정을 재 정의할 필요는 없는지 있는지….   정신의학자 빅토르 프랭클은 유대인 수용소에서 3년이나 지내며 자신이 만난 최악의 상황과 주변 사람을 관찰했다. 그리고 세계 2차 대전이 끝나면서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 그는 극도로 힘든 환경과 우울한 시간에서 발견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는 “어떤 환경에서든 나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존재 가능하다면 당신의 대답은 무언가”라고 반문했다. 나는 그가 지금의 인류에게 묻는 메시지에  공감한다.   영성을 기초로 삼는다면 한 가지 더 대답해야 할 것 같다. 과연 주께서 내 삶을 향해  요청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이 그것이다.     인류는 지금 스스로 만든 혼돈 가운데 있다. 지구 저편에서 계속되는 전쟁도 결국은 스스로 만든 혼돈의 일부가 아닐까.     성서에서 오늘의 질문에 대한 기록을 읽는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주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변함없는 자비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동행하는 것이 아니냐.”     당시 이 작은 외침의 말을 깨닫지 못한 그 백성의 회복이 늦어진 역사가 동시대 다른 기록과 일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현대인에게 말해주고 있는가. 다시 큰 불확실성의 시대와 맞닥뜨린 우리 모두에게 뜻밖의 평화가 임하되 늦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우리 자손들의 삶의 여정에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김효남 / HCMA 디렉터·미주장신 교수열린광장 불확실성 인류 정신의학자 빅토르 유대인 수용소 지구 저편

2023-10-19

[아메리카 편지] 진보라는 패러독스

기록을 깨는 무더위와 예상치 못한 폭우가 이어진 올여름이다. 한반도뿐 아니라 슬로베니아 등 중부 유럽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인류의 가장 큰 숙제인 기후 변화 대처 방법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폭염과 산불 등 지구의 종말 같은 재앙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18세기 계몽주의의 후손인 우리는 미래를 향한 전진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인류의 삶이 계속 진보(progress)한다는 생각은 19세기 들어서야 형성된 개념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각종 재해가 줄을 잇는 오늘날, 인류가 과연 끊임없이 발전해서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호메로스와 더불어 그리스 서사시의 양대 전통을 이루는 헤시오도스는 『일과 날』에서 인류의 시대를 다섯 단계로 구분한다. 티탄들(거인족)이 지배하던 태평스러운 황금의 시대에서 시작해 올림포스 신들이 지배했던 은의 시대를 거치고, 무섭고 사나운 종족이 전쟁을 일삼고 죽음의 테마가 특징적인 청동의 시대에 다다른다. 네 번째 영웅의 시대는 트로이 전쟁의 배경이 되는,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같은 그리스 신화 영웅들이 거닐던 시대다. 그리고 마지막 철의 시대는 전쟁·질병과 번뇌가 가득한 현재로, 헤시오도스 자신이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한탄하며 작품을 끝맺는다.   영웅의 시대를 제외하고는 인간세계가 점차 타락해 가는 이미지를 그린 헤시오도스의 역사관은 그 이후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인류 역사가 퇴화하는 관념을 지지했고, 주기적으로 재앙과 질병 또는 홍수로 인구가 숙청되었다고 믿었다.   오늘날 우리는 무서운 속도로 발달하는 고도의 기술과 과학만을 바라보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 결과로 타격받고 있는 인류의 웰빙과 참된 행복은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닐까.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패러독스 진보 인류 역사가 오늘날 인류 재앙과 질병

2023-08-18

"인류 문명 발원지는 동아시아"

최용완(84) 글샘터 명예 회장이 인류의 문화, 문명이 우리 민족에서 시작돼 세계 각지로 확산했다는 내용의 영문 장편 에세이 ‘Civilization Begins in East Asia(문명은 동아시아에서 시작됐다)’를 최근 출간했다.   영국 런던의 오스틴 매컬리 퍼블리셔스가 출판한 이 책은 그가 3년 전 펴낸 ‘동아시어는 인류 문명·문화의 어머니(도서출판 천산)’의 영역본이다. 최씨는 “천산 출판사 측의 의견에 따라 동아시아가 아닌, 동아시어라고 표기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이 책에서 약 5만 년 전 구석기인들이 한반도에 정착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북상한 농경민이 만주 지역에서 유목 생활에 적응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북한과 만주 지역의 석탄을 이용, 금속 도구와 무기를 생산하며 일군 홍산문화권이 이후 황하 문명으로 이어지고 바닷길을 따라 갠지스, 인더스 문명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최씨는 이런 주장의 근거로 전 세계 고인돌 약 6만 기 중 절반을 차지하는 고인돌이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에 밀집돼 있으며,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 고인돌이 분포한다는 점을 들었다. 고창, 화순, 강화 지역의 고인돌 유적은 지난 2000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최씨는 “인류 문명이 아프리카에서 유럽을 거쳐 아시아로 왔다는 것은 백인 입장의 역사관”이라며 “세계를 지배한 인류 문명은 한반도에서 서진, 유럽과 미국을 거쳐 가까운 미래에 다시 동아시아로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건축학과를 나온 최씨는 1961년 숭례문 중수 공사 당시 도면 책임자로 활동한 것을 계기로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최씨는 “1964년부터 많은 이와 대화하며 한국 역사에 관한 책을 써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60년 만에 뜻을 이뤘다”고 말했다.   최씨의 책은 반스앤노블, 아마존 등에서 구입할 수 있다. 글·사진=임상환 기자동아시아 발원지 인류 문명 문화 문명 세계 고인돌

2023-06-01

[디지털 세상 읽기] 교황의 흰색 패딩, 가짜인 줄 알았나

얼마 전 교황이 흰색 패딩을 입은 모습이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 이미지가 미드저니(Midjourney)라는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낸 것인 줄 몰랐던 사람이 많다.     물론 모두가 속은 것은 아니다. 만약 누군가 그 사진이 사실인지, AI가 만들어낸 것인지 맞혀보라고 했다면 대부분 가짜 이미지임을 알았을 것이다. 손가락이나 옷섶 부분이 이상한 걸 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그런 의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디테일을 살피지 않았다. 그러니 관련 기사를 읽지 않고 이미지만 보고 넘긴 이들은 그냥 “교황은 저런 패딩을 입나 보다” 하고 지나쳤다.   저널리스트 출신의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타인의 해석』에서 우리가 거짓말에 속는 이유는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인류 사회의 기본 룰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회는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기에 사람들이 일상의 모든 것을 의심하고 직접 확인해야 한다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게 된다. 그런데 교황의 패딩처럼 생성 AI가 만든 콘텐트가 쏟아져 나온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일일이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런 세상에 들어와 있을지 모른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지평설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소식은 가짜가 늘어난 탓에 사람들이 진짜(과학)마저 의심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글과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생성 AI’는 완벽하지 않아도 인류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 구성원이 합의하고 공유하는 현실이야말로 그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 기준인데 이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교황 흰색 흰색 패딩 대부분 가짜 인류 사회

2023-04-18

[디지털 세상 읽기] 교황의 흰색 패딩, 가짜인 줄 알았나

얼마 전 교황이 흰색 패딩을 입은 모습이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 이미지가 미드저니(Midjourney)라는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낸 것인 줄 몰랐던 사람이 많다. 만약 누군가 그 사진이 사실인지, AI가 만들어낸 것인지 맞혀보라고 했다면 대부분 가짜 이미지임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그런 의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지만 보고 넘긴 이들은 그냥 “교황은 저런 패딩을 입나 보다” 하고 지나쳤다.   저널리스트 출신의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타인의 해석』에서 우리가 거짓말에 속는 이유는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인류 사회의 기본 룰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일상의 모든 것을 의심하고 직접 확인해야 한다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게 된다. 그런데 교황의 패딩처럼 생성 AI가 만든 콘텐트가 쏟아져 나온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일일이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런 세상에 들어와 있을지 모른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지평설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소식은 가짜가 늘어난 탓에 사람들이 진짜(과학)마저 의심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글과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생성 AI’는 완벽하지 않아도 인류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교황 흰색 흰색 패딩 대부분 가짜 인류 사회

2023-04-12

[이 아침에] 나의 정체성

대답하기에 난감할 때가 더러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뭣 때문에 사는가’처럼 종교나 철학적인 의미를 함축하는 질문을 뜬금없이 받을 때면 더욱 그렇다. 자연의 섭리 안에서, 아버지,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한 자연인의 입장에서 정체성(正體性)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정체성을 태어난 본래의 모습을 일컫는 통념적 의미로 해석할 때 어차피 나는 한국인이라는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타고났다고 하겠다. 뿌리를 밝히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타고난 자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는 일제 강점기 평양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자유를 찾아 남하하는 가족을 따라 서울로 이주해 살다 6·25에 참전한 전쟁세대이다. 그 후 세계의 곳곳을 다녀 보기도 하고 8년간의 호주생활을 거쳐 지금은 LA 근교에 정착하여 47년째 미국 시민으로 살고 있다. 태어난 곳은 북한이지만, 뼈를 묻을 곳은 타향 땅이 될 것이 뻔하다.타향(남한 포함)살이 햇수가 어느덧 고향에서 보낸 세월(약14년)의 5배가 훨씬 넘는 현실에 나 자신 놀라게 된다. 어찌 됐든 한국인이라는 라벨(Label)은 생명이 다할 때까지 변할 수 없는 나의 정체성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현존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약 20만 년 전에 아프리카 대륙에 출현한 후 점차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였다는 아프리카 기원설은 과학계의 통설이다. 유네스코 선언문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공동 조상에서 유래되었고 같은 종에 속한다고 한다. 과학적인 근거에 바탕을 둔 넓은 견지에서 볼 때, 정체성을 특정 집단에 예속된 배타적인 것으로 여기고 외부세계와의 연관성을 배제하는 태도는 근시안적이고 비과학적인 입장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하겠다.   진정한 나의 참모습에 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숲 전체를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평양이 고향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나의 정체성의 일부이다. 내가 평양에서 태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지구라는 행성에서 태어난 것 또한 사실이다.     평양이라는 도시의 존재는 지구라는 행성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평양이 내가 태어난 고향이라면 서울과 시드니, 그리고 LA는 제2, 제3, 제4의 고향이고 지구는 큰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한국의 얼을 간직한 한국인인 동시에 세계시민(Global Citizen)이기도 하다.     공자, 부처, 예수의 가르침은 유교 문화권이나 불교 문화권 또는 기독교 문화권의 울타리 안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니다. 톨스토이의 인류애적인 사상은 러시아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공동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인류라는 동일 ‘종(種)’에 속한다. 특정 집단 특유의 획일성만을 강조하는 입장을 고집하다 보면, 나무 하나의 특성만 보는 데 그치고 숲 전체의 다양성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DNA에는 유원인 이래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해온 인류 공동의 자산이 되는 요소들이 융합되어 녹아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인간은 특수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특수성의 공통점은 세계로 통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적 보편성을 지닌다는 뜻이다.     근착 타임지에 실린 유발 하라리의 기고문(The Dangerous Quest for Identity, Feb. 6, 2023)을 읽고, 넓은 의미에서, 그의 세계인적인 입장에 공감하면서 나의 정체성을 정리해 보았다. 라만섭 / 전 회계사이 아침에 정체성 기독교 문화권 불교 문화권 인류 공동

2023-04-09

[이 아침에] 나의 정체성

대답하기에 난감할 때가 더러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뭣 때문에 사는가’처럼 종교나 철학적인 의미를 함축하는 질문을 뜬금없이 받을 때면 더욱 그렇다. 자연의 섭리 안에서, 아버지,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한 자연인의 입장에서 정체성(正體性)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정체성을 태어난 본래의 모습을 일컫는 통념적 의미로 해석할 때 어차피 나는 한국인이라는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타고났다고 하겠다. 뿌리를 밝히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타고난 자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는 일제 강점기 평양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자유를 찾아 남하하는 가족을 따라 서울로 이주해 살다 6·25에 참전한 전쟁세대이다. 그 후 세계의 곳곳을 다녀 보기도 하고 8년간의 호주생활을 거쳐 지금은 LA 근교에 정착하여 47년째 미국 시민으로 살고 있다. 태어난 곳은 북한이지만, 뼈를 묻을 곳은 타향 땅이 될 것이 뻔하다.타향(남한 포함)살이 햇수가 어느덧 고향에서 보낸 세월(약14년)의 5배가 훨씬 넘는 현실에 나 자신 놀라게 된다. 어찌 됐든 한국인이라는 라벨(Label)은 생명이 다할 때까지 변할 수 없는 나의 정체성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현존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약 20만 년 전에 아프리카 대륙에 출현한 후 점차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였다는 아프리카 기원설은 과학계의 통설이다. 유네스코 선언문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공동 조상에서 유래되었고 같은 종에 속한다고 한다. 과학적인 근거에 바탕을 둔 넓은 견지에서 볼 때, 정체성을 특정 집단에 예속된 배타적인 것으로 여기고 외부세계와의 연관성을 배제하는 태도는 근시안적이고 비과학적인 입장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하겠다.   진정한 나의 참모습에 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숲 전체를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평양이 고향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나의 정체성의 일부이다. 내가 평양에서 태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지구라는 행성에서 태어난 것 또한 사실이다.     평양이라는 도시의 존재는 지구라는 행성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평양이 내가 태어난 고향이라면 서울과 시드니, 그리고 LA는 제2, 제3, 제4의 고향이고 지구는 큰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한국의 얼을 간직한 한국인인 동시에 세계시민(Global Citizen)이기도 하다.     공자, 부처, 예수의 가르침은 유교 문화권이나 불교 문화권 또는 기독교 문화권의 울타리 안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니다. 톨스토이의 인류애적인 사상은 러시아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공동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인류라는 동일 ‘종(種)’에 속한다. 특정 집단 특유의 획일성만을 강조하는 입장을 고집하다 보면, 나무 하나의 특성만 보는 데 그치고 숲 전체의 다양성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DNA에는 유원인 이래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해온 인류 공동의 자산이 되는 요소들이 융합되어 녹아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인간은 특수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특수성의 공통점은 세계로 통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적 보편성을 지닌다는 뜻이다.     근착 타임지에 실린 유발 하라리의 기고문(The Dangerous Quest for Identity, Feb. 6, 2023)을 읽고, 넓은 의미에서, 그의 세계인적인 입장에 공감하면서 나의 정체성을 정리해 보았다.         라만섭 / 전 회계사이 아침에 정체성 기독교 문화권 불교 문화권 인류 공동

2023-03-28

인류는 전쟁의 비극에서 배운 게 없다

인류는 전쟁의 비극에서 배운 게 없다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독일 소도시의 한 고등학교에 제1차 세계대전 발발소식이 전해진다. 열아홉 살 소년 파울 보이머는 선생님의 선동에 친구들과 자원입대한다. 파울은 교회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프랑스 병사를 죽인다. 죽은 병사의 주머니에는 가족사진이 들어 있었다. 서부전선에 투입된 파울은 포탄 구덩이 속에서 겨우 숨을 쉴 수 있을 정도만 입을 들어 올린 채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전투는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그때 어디선가 하모니카 소리가 들린다. 때마침 나비 한 마리가 너풀너풀 나타난다. 파울은 자신도 모르게 나비를 따라 참호에서 몸을 일으킨다. 나비를 향해 손을 내미는 순간 타는 듯한 아픔이 가슴에 파고 들어왔다. 적의 저격병에게 당한 것이다. 파울의 손은 나비가 내려앉듯 힘없이 내려앉았다. 전쟁이 끝나기 한 달 전이었다. 그날 전선사령부가 본국에 보낸 전황보고는 단 한 줄이었다. “서부전선 이상 없음..”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자전적 전쟁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고발했다. 병사들의 평균 생존시간이 단 5일이라는 서부전선에서  레마르크는 전쟁이 인간을 어떻게 파탄시키는지를 몸으로 체험했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29년 반전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썼다. 출간 바로 다음 해 루이스마일스턴에 의해 영상화된 이 작품은 전쟁 초기의 광적인 상황과 참혹함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제 1차 세계대전은 주로 참호전이었다. 참호전은 참혹했다. 전쟁이 시작된 1914년 8월 참전한 유럽 강대국들은 이 전쟁은 낙엽이 질 무렵, 아무리 늦어도 크리스마스 이전에는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모두 자국이 승리한다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그래서 전쟁터로 달려가는 병사들과 그들을 환송하는 각국 국민들은 마치 축제라도 벌이는 기분이었다. 겨울옷을 지급받은 병사들은 없었다.     1차 세계대전의 전쟁터는 아비규환의 지옥이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어느 나라도 무더기로 죽어가는 병력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단숨에 베를린을 점령하고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겠다던 프랑스군의 희망도 물거품이 됐고 단숨에 파리를 점령, 개선 행진을 하겠다던 독일의 기대도 환상에 불과했다. 전쟁이 시작된 지 겨우 두 달이 지난 1914년 10월 하순, 각국은 현대식 소총, 기관총, 포병 앞에서 정면으로 수행되는 보병 돌격전은 무모한 노력임을 알게 됐다. 결국 전투 방법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고 이에 양측 병사들은 땅에 깊은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앉을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를 공격하던 독일군은 자기가 점령한 지역을 사수하기 위해 참호를 구축했다. 프랑스 군과 연합군은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해 독일군 방어 진지를 공격했다. 전선 돌파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임을 곧 인식한 연합군도 반영구적인 참호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양측 병사들은 이후 참호 속에서 적이 감행해 오는 공격을 분쇄하는 데 집중했다. 양측 병사들은 4년 동안 이 참호에 머물렀다. 수백만의 병사들이 수천 킬로미터 이상 길게 형성된 좁은 진흙 구덩이 속에서 살다가 죽어갔다. 다음은 1917년 이프르 전투에 참전했던 영국군 채프먼의 증언이다.“많은 병사들이 쓰려져 죽은 곳에 바로 매장 되었다. 새로운 참호를 파다보면 십중팔구 지표 바로 아래 묻힌 채 썩어가던 상당수의 시신이 발견되곤 했다. 이런 시신과 더불어 참호의 여기저기 버려진 상당량의 음식 찌꺼기를 쥐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쥐들은 엄청나게 컸으며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부상병의 상처를 뜯어먹기도 했다.” 참호 속에서 전사한 프랑스의 알프레드 주베르 중위는 죽기 전 다음과 같은 일기를 남겼다.“인간은 미쳤다! 이 지독한 살육전이라니! 이 끔찍한 공포와 즐비한 시체를 보라! 지옥도 이렇게 끔찍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미쳤다!”   1차 세계대전은 전쟁 초기 두 달 동안의 공세적 기동전을 제외하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전선인 진흙 구덩이 속에서 양측의 병사들이 서로 상대방 참호를 향해 대포와 기관총, 소총을 쏴대며 죽어갔던 참호전이었다. 참호의 깊이는 병사들의 키보다 더 컸고 사격할 때는 사격판 위에 올라서야 했다. 경계병들은 참호 밖으로 머리를 살짝 내놓고 상대방의 참호를 바라봐야 했는데 이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상대방의 기관총이 겨냥하고 있는 높이가 바로 그 높이였기 때문이다. 차라리 더 높이 올라서서 가슴이나 어깨에 총을 맞는 것이 이마에 맞는 것보다 더 나을 지경이었다. 참호는 병사들이 먹고 자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의 지형 및 기후상 참호는 항상 물이 질퍽거리는 진흙탕이었고 비가 많이 올 경우 진흙탕에 빠져 익사하는 병사들도 많았다. 칠흑 같은 어둠, 추위, 질퍽거림은 참호에서의 삶을 지옥과 다를 바 없게 했다. 쥐와 이, 파리, 옴벌레, 벼룩, 구더기들은 참호 속에서 병사들과 함께 사는 더러운 동물들이었다. 병사들은 이 동물들이 옮기는 질병들 때문에도 쓰러져갔다.   양측은 참호전으로 전쟁 방식을 바꾼 후에도 상대방의 참호를 향해 매일 포탄을 퍼부어댔다. 계속되는 포사격과 폭탄의 폭발음은 공포를 극대화하는 것이었고 폭사하지 않은 병사들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전쟁 기간 동안 영국군이 발사한 포탄은 1억7000만발 이상이었다. 파괴력으로도 500만 톤이 넘는 것이었다. 영국군은 4년 동안 적군을 향해 히로시마급 핵폭탄 250발 이상을 발사한 것이다.  독일이나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로 포탄을 무수히 쏴댔다. 독일군이 9일 동안 쉬지 않고 폭탄을 쏴대는 동안 참호 속의 프랑스 병사들은 모두 울고 있었다. 독가스는 전쟁의 잔혹함을 극한으로 끌어 올렸다. 오늘날 독가스를 사용하는 국가나 인간은 반인륜적 범죄를 행한 것으로 인식될 정도로 독가스는 비인간적인 무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쌍방에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전쟁 피해가 참혹하다. 러시아군이 퇴각하면서 우크라이나 거리 곳곳에 한 달 이상 방치한 러시아군 병사들의 시신이 심각하게 부패하고 있으며, 일부는 개가 뜯어먹고 있었다고 전한다. 러시아가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현재까지 최대 3만 명 이상의 러시아군 병사가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푸틴 탐욕의 희생자들이다. 상대방을 죽이면 기뻐하고, 자기편이 죽으면 슬프다. 그래서 전쟁은 비극이다. 문명의 시대에 야만의 세계가 공존한다. 생명보다 귀한 것이 없다고 배웠는데 때로 생명은 하나도 귀하지 않다. 이 모순이 당혹스러울 때 이세룡 시인의 시를 만났다.     “세계의 각종 포탄이 모두 별이 된다면/그러면 전 세계의 시민들이/각자의 생일날 밤에/멋대로 축포를 쏜다 한들/나서서 말릴 사람이 없겠지요//포구가 꽃의 중심을 겨누거나/술잔의 손잡이를 향하거나/나서서 말릴 사람이 없겠지요//별을 포탄삼아 쏘아댄다면/세계는 밤에도 빛날 테고/사람들은 모두 포탄이 되기 위해/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릴지도 모릅니다/세계의 각종 포탄이/모두 별이 된다면”시인은 몇 해 전 작고했고, 최근작은 아니지만, 이 놀라운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우리를 매혹시킨다. ‘세계의 포탄이 모두 별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마치 지금 우리의 바람을 막 적어놓은 듯하다.     김지민 기자인류 전쟁 프랑스 병사 자전적 전쟁소설 전쟁 초기

2022-06-15

[칼럼 20/20] 지구의 날과 다행성 종족

세계 최고 부자는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다. 경제매체 포브스가 5일 발표한 억만장자 명단에서 순자산 2190억 달러로 1위에 올랐다. 지난달 진보 성향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부자들의 탐욕을 지적하자 머스크는 돈을 모으는 이유를 트위터로 밝혔다. ‘인류를 다행성 종족으로 만들기 위해’ 돈을 번다는 것이다.     ‘다행성 종족(Multi-Planetary Species)’은 여러 행성에 거주하는 생명체를 뜻한다. 인간에 한정하면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도 살 수 있는 종족이 되는 것이다. 머스크는 ‘다행성 인류’를 실현하기 위해 2026년에 인간을 화성에 보내고 궁극적으로 화성 이주를 실현하겠다고 한다.     지구를 떠나는 이야기는 SF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2006년 발표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파피용’이 대표적이다. 14만4000명의 지구인이 태양빛을 동력으로 하는 거대 우주선 ‘파피용’을 타고 이주할 행성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공상소설이기는 하지만 미래 세계보다는 인간 본성의 문제가 주제다.   지구 탈출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꿈 같은 이야기였다. 주로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등장했다. 인간의 무관심과 무지로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새 행성을 찾아 이주한다는 것이 전형적인 줄거리다.     오늘(4월 22일)은 ‘지구의 날(Earth Day)’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위한 날이다.  1969년 샌타바버러 기름 유출 사고가 계기가 됐다. 1970년 위스콘신주 상원의원 게이로드 넬슨과 젊은 사회운동가 데니스 헤이즈가 지구 보존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출발했다. 당시 미 전국에서 2000만 명이 산업화 이후 150여년간 방치했던 지구를 살리자는 운동에 동참했다. 올해로 반세기를 넘은 ‘지구의 날’은 현재 193개국이 기념하고, 연인원 10억 명이 지구 살리기에 동참하고 있다.     초창기 지구 살리기는 자연훼손과 대기오염 방지가 목표였지만 2000년대 들어 지구온난화 문제와 청정에너지 개발이 주요 관심사가 됐다. 지구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평균기온 상승이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2030년 지구 평균온도는 섭씨 1.5~2도 올라갈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 지구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2도 높다. 과학자들은 2도 상승을 마지노선으로 정했지만 이를 낮추자는 의견이 많다. 1.5도만 올라도 지구 곳곳이 물에 잠기면서 5억 인구의 생활에 피해를 줄 수가 있다.     장기적인 기후변화는 감지하기 어렵다. 서서히 다가오는 지구온난화는 인류가 직면한  재앙이다. 해결을 위한 노력도 지구촌 전체의 공조로 이뤄져야 한다.     다른 행성 이주는 두 가지가 충족돼야 가능하다. 지구가 더 이상 살 수 없는 곳이라는 전제에, 행성간 이동·이주를 가능하게 할 기술개발이 합쳐졌을 때다. 지금으로서는 둘 다 현실적이지 못하다. 아직도 지구는 살 만한 곳이고, 이동 기술은 초보 단계를 겨우 넘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당분간(?) 인류가 발 딛고 살아야 할 곳은 지구다. 더 정확히 말해 인간이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곳은 지구뿐이다. 보전해야 할 곳도 역시 지구뿐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우리의 위대한 국립공원들(Our Great National Parks)’에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내레이터로 나온다. 재임기간 기후변화 문제에 높은 관심을 보였던 오바마는 시리즈 마지막 편에서 자연보호 동참을 촉구하며 이렇게 말을 맺는다.     “더 이상 허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남겨 줄 자연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이 바로 행동할 때입니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다행성 지구 지구온난화 문제 다행성 종족 다행성 인류

2022-04-21

[그림세상] 박수근이 나무 그림을 그린 뜻

 코로나19와 함께하는 세 번째 봄이다. 첫해는 바이러스 공포에 전 세계인이 숨 막히는 봄이었고, 두 번째 봄은 백신에 희망을 걸며 역병의 종결을 꿈꿨던 시간이었다. 어느덧 코로나와 맞서는 세 번째 봄인데, 혼돈의 끝은 보이지 않고 모두들 지쳐가는 느낌이다. 동트기 직전의 깊은 어둠처럼 여전히 미몽의 시간이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도 마음을 추스르고 코로나 다음의 세계에 대해 냉철히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과거 사례를 놓고 볼 때 인류 문명은 팬데믹 이후에 극적인 반전의 역사를 써왔는데, 그 극단적 사례 모두가 지금 우리 앞에 가능한 선택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류 최악의 팬데믹이라고 하는 중세 흑사병 이후 유럽은 르네상스라는 빛나는 근대문명을 일궈냈다.     대역병 이후엔 희망적 사례뿐만 아니라 비극의 역사도 존재한다. 20세기 초 전세계 인류를 강타한 스페인 독감의 경우 그 결과는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최악의 인류 공멸의 길이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겪은 팬데믹이 앞으로 어떤 역사로 나아갈지 혼돈스런 상황이다. 세계적으로 미술계는 전례 없는 호황으로 희망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특히 한국미술 시장은 지난해부터 ‘불장(Bull Market)’이 이어지면서, 지난주 화랑미술제 매출액이 지난해 대비 두 배를 훌쩍 넘어섰다. 그야말로 지금 미술계만을 놓고 보면 봄기운이 완연하고 곧바로 르네상스가 새롭게 열릴 것 같은 기대감까지 든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포성으로 근심이 깊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경제적 상황도 밝지만은 않다. 팬데믹 이후 인력난과 물류난으로 인플레이션 공포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이 먼 나라 이야기 같다가도 하루가 달리 올라가는 기름값을 접하면 세계화 속에서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는 점을 비로소 실감한다.   미술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지금 상황이 제2의 르네상스로 이어지기를 누구보다 바란다. 그럴 만한 조건도 충분하다.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 이후 미술이 급속히 발전하게 된 것은 미술이 기념과 구원의 매개물로 재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죽음을 목격하고 나서 중세인들은 미술을 통해 자신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게 됐다. 미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미술 구매 붐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곧바로 르네상스로 꽃피웠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미술시장이 호황인 것은 단순히 자산시장 팽창의 결과로 볼 수만은 없다. 코로나 사태로 고립과 고독의 시간이 이어지면서 스트레스도 커졌지만 동시에 예술과 교감할 수 있는 정서적 성숙함도 깊어졌다. 요즘 미술관이나 화랑에 가면 작품과 심리적 교감을 나누려는 진지한 관람객을 예전보다 훨씬 더 자주 만나게 된다. 분명 코로나 이후 우리는 미술의 정서적 치유능력에 훨씬 더 공감하게 됐다. 이러한 미술에 대한 재인식은 분명 최근 불고 있는 미술시장의 호황을 설명하는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최근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박수근 특별전에서 본 나무 그림들이 마음 속 깊이 다가온다. 한국의 반 고흐, 또는 20세기 국민화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박수근은 화가의 길을 걸으면서 나무를 자주 그렸다. 특히 벌거벗은 죽은 듯한 앙상한 줄기의 나무가 처연하게 화면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박수근의 나무 그림은 화가의 고된 삶을 그린 자화상이자 한국 근대사의 힘든 역경을 표현한 시대적 명작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박수근의 나무 그림을 자세히 바라보면서 새로운 점을 깨달았다. 앙상한 가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미세하게나마 푸른 새싹과 작은 꽃망울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록이나 사진으로는 결코 보이지 않지만 신기하게도 실제 작품 앞에 서면 푸른 색채감이 잿빛 사이로 분명히 느껴진다. 마치 작가는 썩어 말라빠진 앙상한 고목이 죽은 것이 아니라 단지 추운 겨울 속에 웅크리고 있을 뿐이라고 조용히 읊조리는 듯하다. 박수근이 그린 헐벗고 황폐한 나무는 죽은 고목이 아니라 추위를 이겨내는 나목이었다고 소설가 박완서씨가 말했듯이 화가 자신도 나목 속에 초록의 푸른빛을 숨겨 놓은 것이다.   박수근의 나목을 바라보면서 이 봄을 지나고 나면 코로나로 얼어붙은 인류의 마음이 푸르른 생기를 되찾으면서 더 따뜻해지기를 꿈꿔봤다. 분명 코로나는 금세기 인류가 겪은 첫 번째 공동의 역경이었다. 그것이 파괴적 미래로 이어지기보다는 인류를 한층 더 성숙한 길로 인도하는 번영의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양정무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그림세상 박수근 나무 한국미술 시장 전세계 인류 지난주 화랑미술제

2022-03-27

[시론] 헌옷 더미와 북극곰

 최근에 보도된 뉴스 중 충격적인 내용 하나가 내 시선을 끈다. ‘산더미’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거대한 헌옷 더미의 사진이 기사와 함께 보도된 것이다. 오랫동안 입어서 낡고 해져서 쓰레기로 버려졌다면 기삿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놀랍게도 산더미 쓰레기 속에 들어있는 옷들 중에는 몇 번 입지 않은 거의 새 것 같은 옷들을 비롯해 앞으로 얼마든지 더 오래 입을 수 있는 멀쩡한 옷들이 쓰레기로 버려졌다는 것이다.     이 멀쩡한 옷 쓰레기들을 다 태워버리려면 인체에 해로운 오염물질이 공기 속으로 퍼지고, 땅속에 묻어 버려도 화학물질 때문에 썩지도 않는다는 난감함을 보도하고 있다.     멀쩡한 옷을 몇 번 입다가 쓰레기 통에 버리는 것은 옷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다. 매일 TV, 신문, 컴퓨터, 기타 매체 등에는 고급 개인 용품에서부터 부엌 살림 기구, 가구, 자동차, 레저용품 등에 걸친 광고가 홍수처럼 쏟아져 사람들의 호기심과 소유욕을 부추기고 있다.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고 호기심이나 욕심에서 새 상품을 사고 있다. 아직 쓸만한데도 버려지는 물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신문기사에 보여진 것처럼 지구상 어느 땅에 쌓여있을까? 또는 눈에 안 보이는 바다 속에 그냥 쏟아버렸을까?   뉴스를 보면서 보도 내용과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는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북극곰의 사진이다. 한때는 거대한 빙산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다 녹아버려서 바닷물에 둥둥 떠있는 작은 얼음 덩어리 끝에 서있는 익사 직전 흰곰의 아슬아슬한 모습이다. 까마득한 오랜 세월 겹겹으로 쌓여왔던 거대한 북극의 빙산들이 지난 백여년 동안 꾸준히 오른 대기온도에 따라 서서히 녹으면서 북극곰들의 생존이 위태롭게 됐다는 것을 경고하는 한 환경단체가 올린 사진이다.     대기온도의 상승 때문에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생물들은 북극의 흰곰들만이 아니다. 섭씨 1도 내지 2도 정도의 기온 상승 때문에 지구의 생태계에는 심각하고 파괴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언젠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할 수 있다는 우울한 예측이다. 만물의 영장이요, 문명의 주역인 사람들까지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환경주의자들의 과장된 우려만은 아니다.     넓고 넓은 태평양 한가운데 흩어져 있는 작은 섬들의 주민들은 차츰 높아지는 수위 때문에 수백년 살아왔던 섬을 떠나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다. 아름다운 해변가에 지은 고층아파트가 차츰 밀려오는 파도에 해변이 잠식 당하면서 아파트 건물 입구까지 바닷물이 들어올 위험을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인류 생존에 위협이 되는 심각한 환경문제를 제기하는 과학자들이나 언론 보도는 다 쓸데없는 걱정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까? 아직까지 지구는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행성이다. 이 아름다운 낙원에 생존하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보호하기 위해, 환경보호 운동은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의 책임이요, 각국 정부의 필수정책이 돼야 할 것이다.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헌옷 더미와 녹아드는 얼음 덩어리 끝에 서있는 익사 직전 북금 곰들의 사진은 환경파괴가 얼마나 무서운 재앙이 될 수 있는가를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김순진 / 교육박 박사시론 북극곰 헌옷 헌옷 더미 산더미 쓰레기 인류 생존

2022-01-23

[독자 마당] 지구촌 상생의 길

 ‘다사다난했던 한 해’란 문구는 매년 이맘때면 빠짐없이 인용되는 진부한 표현이다. 하지만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이를 대체할 다른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또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2년째 이어지는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예로부터 모두가 희구하던 태평성대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지난 시대에서나 찾아 봐야 할 과거인 듯하다.     오늘날의 디지털 첨단문명은 세상 모든 국가와 민족을 지구촌 한 가족으로 만들었다.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소식들을 실시간으로 보고 들으며 인류는 교감하고 있다. 세계가 단일 생활권의 한 공동체로 축소됐다. 지구촌 우리 모두는 다 같은 공동 운명체인 것이다.   인류 역사를 통해 볼 때 이는 큰 도약이다. 모든 세상사가 변증법적 정·반·합으로 순치돼 간다면, 그 과정에서의 순작용과 부작용 또한 같이 감내하면서 더 큰 도약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 지구적 천연 재해에 더해, 인위적 재난인 전쟁, 범죄, 기아, 질병 등은 인류의 공통된 시련이며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풍수해, 가뭄, 산불 등의 재해는 우리가 자연을 오염시키고 훼손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특히 지금의 우리 삶에 극심한 고통을 주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의 발원과 전파도 결코 자연현상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일의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개선과 치유가 급선무지만, 그보다 먼저 이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 사람, 한 나라만 잘 한다고 해서 지구촌의 공생을 기대할 수 없다. 전세계 모든 사람, 모든 나라가 상생을 위한 자각으로 화합과 협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지금보다 더 좋고 아름다운 지구촌으로 만들어 가야 할 결의를 다져야 한다. 윤천모 / 풀러턴독자 마당 지구촌 상생 지구촌 상생 지구촌 우리 인류 역사

2021-12-27

[독자 마당] 인간과 바이러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을 지탱할 근거에서 생존을 이어가며 번식하고 생육한다. 이를 우리 인간에게 대비하면 의식주를 갖추는 일이다. 요즘 우리 생활 안팎에 깊이 혼재돼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또한 이 같은 원리에 따른 수단과 방법을 가진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생존 근거로 동물이나 인간을 숙주로 한다. 이들 바이러스의 전파나 감염에 숙주는 체내 자체 방어기제로 대응한다.     그럼에도 감염을 막을 수 없을 때는 백신 등 외부 수단을 동원한다. 하지만 쉽게 막아낼 수 없어, 지난 역사에서 많은 수난을 겪었다.     이전 세계사에 등장했던 혹심한 전염병과 유행병은 우리에게 실제로 다가오지 않았기에 먼 곳의 일로 생각됐었다. 그런데 지금의 코로나는 처음 세상에 알려진 이후 2년이 지나는 동안 지구촌 곳곳에 파고 들어, 모두의 생활 전반에서 그 흐름을 바꾸고 헝클어 놓고 있다.     삶의 출발점인 의식주를 위한 모든 활동들이 막히고 묶이게 되니, 이로 인해 개인과 공동체의 생기와 활력이 꺾이고 위축된다. 마치 인류 역사가 멈춰서거나 퇴보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병원체와 숙주의 관계를 확대하면 작용과 반작용의 운동 법칙에 닿아 있다. 서로의 관계가 평형을 이루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을 때 자기 보호를 위한 조처가 반발이나 공격으로 나타나게 된다.     병원체가 숙주에 독소를 뿜는다면 이를 막아내고 제거해야 한다. 지금처럼 우리는 백신, 마스크, 거리두기 등으로 방어망을 친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이에 맞서 더 강하고 빠르게 변이, 전파되면서 공격력을 키워 가게 된다.     지금 인류와 바이러스는 서로간 상생, 공생의 관계를 위해 일정한 질서로 안정을 찾기까지 과도기적 혼란을 겪고 있다. 우리의 모든 역량과 인내를 더욱 다져야 할 때다. 윤천모·풀러턴독자 마당 바이러스 코로나 바이러스 이들 바이러스 인류 역사가

2021-12-10

[살며 생각하며] 남자를 자르고 2000년을 산 사마천

고금의 지극한 글이란 모두 피눈물로 이루어진 것이다. 언제나 사람들의 손과 입을 떠나지 않는 글이란 피를 찍어 쓴 것들이다. 그 글에는 군말이 없다. 자기 자랑도 없다. 절절한 내면의 깊은 울림만이 샘솟는다. 삶에 지쳐 절망에 빠질 때, 나는 사마천(司馬遷)을 떠올린다.  2000년이 넘도록 그 사내를 가리키는 단어는 궁형(宮刑)과 〈사기(史記)〉였다. 이 완벽한 암(暗)과 명(明)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수염 없는 남자 사마천의 일생에 대한 관심은  〈사기〉의 파란만장함이 지은이의 삶에도 녹아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비롯된다.      사마천이 남긴 〈사기〉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3000년 통사다. 사마천은 당시 자신이 섬기던 한 무제에게 밉보여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미처 마치지 못한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성기를 잘라내는 궁형(宮刑)을 자청하고 풀려나는 치욕을 감수했다. 그는 〈사기〉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사람의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이것은 죽음을 쓰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천명과 인간세상을 통찰한 불후의 역사서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이 남자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치욕인 궁형을 당하고 나서 그 울분을 친구 임안(臨按)에게 토로하면서 죽음에 대해 한 말이다. 사형을 선고받고 궁형을 자청하여 풀려나기까지 사마천은 3년 가까이 옥에 있었다.    지독한 고문에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여러 차례 자결을 생각했다. 당시 지식인들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자결하는 것은 얼마든지 용인되었다. 하지만 사마천은 죽음 대신 수치스러운 궁형을 택했다.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아니 〈사기〉의 내용을 완전히 바꾸기 위해서였다. 사마천은 감옥에 있는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늘의 도는 사사로움이 없어 항상 착한 사람과 함께한다고 한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착한 사람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들은 굶어 죽었다. 공자는 일흔 명의 제자 중 안연(顔淵)만이 학문을 좋아한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안연은 항상 가난해 술지게미나 쌀겨 같은 거친 음식조차 배불리 먹지 못했다. 또 젊은 나이에 죽었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베푼다고 한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춘추시대 말기 도적인 도척은 날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간을 회 쳐 먹었다. 온갖 잔인한 짓을 다하며 돌아다녔지만 하늘이 내려준 목숨을 다 누리고 죽었다. 도대체 하늘의 도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시작으로 인간의 행위와 사상에 관한 깊은 통찰을 했다. 그리하여 복잡다단하고 다중적인 인간의 본성과 그 행위에 대해 누구보다 치밀한 분석을 가할 수 있었다. 나아가 보통사람들이 역사를 추진하는 원동력임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사기〉는 지배층 위주가 아닌 수많은 보통사람들의 역사서로 거듭날 수 있었다.    〈사기〉의 진정한 가치는 여기에 있다. 이것을 철학적, 윤리학적으로 말하면 이른바 도덕과 행복의 관계 문제에 해당한다.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행복하고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 불행하다면 도덕과 행복은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인간이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살아야 할 까닭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하늘의 도, 하늘의 이치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침묵한다.     사마천은 스무 살 무렵 천하를 떠돌며 역사의 현장을 찾아 현지인들은 물론 땅 밑에 잠들어 있는 과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혼이 담긴 문장을 통해 이들을 불러냈다. 〈사기〉를 읽을 때마다 새삼 발견하게 되는 그 생생함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마천이 걸었던 길을 걸으면서 새삼 인간의 길을 묻는다. 사마천이 궁형을 받은 것은 그의 나이 48세 때의 일로 3년 후 출옥했다. 성기를 잘린 37세의 사마천-. 그 비분과 원한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러한 원인은 자살로까지 사람을 몰아붙이는 절망으로 통한다. 이러한 원한은 복수의 집념으로 해서 잔학한 비수로 화할 수도 있다. 이러한 원망은 자포자기의 늪으로 사람을 끌고 가는 허무감으로 경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붓을 들었다. 역사와 인생의 변천과 그 실상을 적어 최후의 심판자가 누구인가를 정립하여 스스로의 사명을 통해 자기증명을 만세에 제시하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이 곧 〈사기〉다. 130권. 52만 6500자. 당시엔  종이가  없었다. 그는 이것을 대쪽[竹簡]에 한 자 한 자 썼다. 죽간 하나에 200자씩을 쓴다고 하고 20수만 쪽이 되는 것이다. 쑥처럼 흐트러진 머리와 때 묻은 얼굴로 밀실에 앉아 십 수 년 동안 묵묵히 죽간에 글을 써넣고 있는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섬뜩한 생각마저 든다.     사마천은 기록되지 않으면 영원히 묻히고 말 가슴 아픈 이름들을 위하여, 그들의 행적을 한 자 한 자 새겨 세상 앞에 드러냈다. 부당한 권력을 비판하고 약자를 옹호했다. 역사가 앞에서는 절대권력자도 그저 작은 먼지 같은, 지나가는 자연현상과 비슷할 따름이었다. 기록자는, 기록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후세의 사람들은 사마천을 간언ㆍ궁형ㆍ저술로 이어진  그의 치열한 인생을 평가해 ‘중국의 최고 역사가’라고 부른다.  살며 생각하며 사마천 남자 남자 사마천 치욕인 궁형 인류 역사상

2021-11-23

[문장으록 읽는 책]

 인류 최초의 이야기로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인류에 남아 있는 이야기 중 가장 오래된 이야기의 중심축이 사랑이 아니라 우정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사랑 이야기가 인류 최초의 서사일 것이라 짐작한 나의 사고방식도 어쩌면 로맨틱 러브 중심의 현대적 분위기에 물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목숨까지 바칠 만한 격정적인 사랑이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서양에서는 아벨라와 엘로이즈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유행했던 12세기경이니, 인류 역사 전체에서 사랑이 이토록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인 셈이다.     황광수·정여울 『마지막 왈츠』   1944년생 황광수와 1976년생 정여울. 두 문학평론가가 나눈 문학적 교감과 우정에 대한 에세이집이다. “44년생 황광수와 76년생 정여울은 어떻게 이토록 절친한 벗이 되었을까요. 우리 사이엔 아무런 실용적 목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우리의 우정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었으니까요.” 단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직감적으로 서로의 눈빛을 알아보았지요. 우리 두 사람 모두 ‘같은 대상’을 향해 미쳐 있음을. 그것은 ‘문학’이었습니다.”   정여울은 서문에서 “인류는 끊임없이 적이 될 수도 있는 타인을 친구로 만들며 세파를 견디고 변화에 적응해 왔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썼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록 읽는 책 사랑 이야기 길가메시 서사시 인류 역사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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