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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마지막 왈츠

인류 최초의 이야기로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인류에 남아 있는 이야기 중 가장 오래된 이야기의 중심축이 사랑이 아니라 우정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사랑 이야기가 인류 최초의 서사일 것이라 짐작한 나의 사고방식도 어쩌면 로맨틱 러브 중심의 현대적 분위기에 물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목숨까지 바칠 만한 격정적인 사랑이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서양에서는 아벨라와 엘로이즈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유행했던 12세기경이니, 인류 역사 전체에서 사랑이 이토록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인 셈이다.  
 
황광수·정여울 『마지막 왈츠』
 
1944년생 황광수와 1976년생 정여울. 두 문학평론가가 나눈 문학적 교감과 우정에 대한 에세이집이다. 병석의 황광수를 대신해 정여울이 두 사람의 대화를 정리했다. 황광수는 책이 나오기 직전 세상을 떴다. “44년생 황광수와 76년생 정여울은 어떻게 이토록 절친한 벗이 되었을까요. 우리 사이엔 아무런 실용적 목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우리의 우정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었으니까요.” 단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직감적으로 서로의 눈빛을 알아보았지요. 우리 두 사람 모두 ‘같은 대상’을 향해 미쳐 있음을. 그것은 ‘문학’이었습니다.”
 
‘결혼 아니면 이별’처럼 종착역이 분명한 사랑과 달리 우정은 끝도 목표도 없는 ‘무쓸모의 관계’다. 정여울은 서문에서 “인류는 끊임없이 적이 될 수도 있는 타인을 친구로 만들며 세파를 견디고 변화에 적응해 왔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썼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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