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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아직 꿈이야

꿈을 꾸는 나는 꿈속에 있었어 / 설명이 되지 않는 어떤 날은 깊은 물에 잠기고 말아 / 힘껏 뛰어도 멀리 갈 수 없는 / 발이 땅에 붙어버린 꿈을 꾸기도 해 / 꿈을 꾸며 나에게 말했어 아침이 보고 싶다고 / 빨리 말하고, 천천히 걷고 싶은 오솔길은 멀지 않은데 / 새가 노래하는 아침은 더디 오고 있어 / 두 발자국 걸으면 한 발자국 뒤돌아보는 밤 / 발이 땅에 붙어 걸을 수가 없었어 / 텔레파시를 네게 전송하는 아직 밤이야 // 꿈속에 떠다니던 단어가 맞춰지고 있었어 / 먼동이 오고 있었으니 / 큰 물결, 작은 파장, 수평선 붉은 해 / 거대한 호수의 가슴에서 빠져 나오고 있어 / 알을 깨고 나온 아프락사스의 날갯짓처럼 / 새벽을 기다렸던 물새가 날고, 나는 입을 꼭 다물고 / 천국의 문을 통과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 왔던 길을 되돌아 가슴보다 큰 태양을 안아주었지 / 차갑기도, 뜨겁기도 한 태양이 부딪히며 안겨 오는데 / 꿈을 꾸는 나는 꿈속에 있었어 / 잃어버린 단어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아직 꿈이야 / 날마다 내 속에서 태어나기도 하는 아름다운 사람이야       뒤돌아보면 걸어온 길이 보인다. 곧게 뻗은 길도 보이지만 구불구불 어지러운 길도 보인다. 늘 평탄한 길을 걷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스스로의 위로에 하루 해가 저물고 있다. “나는 오늘 어떤 내가 되어가는가? 너 자신을 알고, 너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라. 너 자신과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메리칸 인디언, 체로키족의 구전이다. 과연 내가 나를 알까? 안다면 얼마나 알까? 나는 나에게 얼마나 친밀한 존재인가? 측은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바람이 불어오는 언덕 위에 서 있다. 언덕 아래로 올망졸망 집들이 보이고 풀숲 같기도 한 나무들이 희끗희끗 보이는 지붕 사이에 끼여 서 있다. 장난감 같은 자동차들이 꼬랑지를 맞대어 지나가고, 그 옆 인도에는 신기하게도 개미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져 있다. 그 무리 중 혹 한 사람이 멀리 언덕 위에서 어떤 사람이 이쪽을 향해 눈길을 주고 있음을 알아차렸다면 그는 어떤 생각을 할까? 서로의 다른 위치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까?   ‘공유몽’이란 단어가 있다. 동시에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말할 때 쓰는 말이다. 오래 소식이 없던 친구를 생각했는데 그 친구에게 불현듯 소식이 오거나, 어떤 사람과 우연히 여러 번 마주치게 되어 말을 걸었는데 그 사람을 통해 가장 필요했던 정보를 얻게 되는 상황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이처럼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의미 있는 일치를 종종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이는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율의 원리와는 다른 시간과 의미로 연결된 무 인과적인 원리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현상은 꿈 속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꿈 속에서 텔레파시를 경험하는 것은 가족, 친척, 친구, 애인 등 가까운 관계에서 흔히 보고되는 현상이다. 깊은 감정과 정서의 교류가 있을 때 텔레파시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고 꿈을 연구한 학자들의 입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 전쟁이나 재해로 헤어진 부모와 자식 간, 연인들이나, 비슷한 종류의 깊은 공포나 열정을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꿈에 텔레파시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깨어 있을 때 이성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의 꿈에 텔레파시는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의식에서 배제하고, 현실에서 금기로 여기고 무시한 것들이 무의식에 자리 잡게 된다는 점을 상기시켜 보면, 현대인의 꿈에 텔레파시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반복되는 꿈이 의식이 일상에서 알아야 할 많은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게 된다. 꿈을 꾸면서 내가 꿈속에 있다는 걸 의식한다면 꿈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꿈을 깨는 순간 사라지게 되지만 그 상황은 어떤 모양으로든 의식의 깊은 창고에 여전히 남아 있다는 아이러니를 떼어낼 수 없다. 불현듯 장자의 호접지몽(나비의 꿈)이 생각나는 밤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꿈속에 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아메리칸 인디언 파장 수평선 언덕 아래

2024-07-15

일상에 쉼표가 필요할 때 떠나볼까

1박2일 혹은 2박 3일 정도의 근교 여행은 장기 해외여행보다 실행에 옮기기가 더 쉽지 않다. 집 근처다 보니 한두 번 이상은 가본 곳이어서 괜히 집 나섰다 돈 낭비, 시간 낭비만 하는 게 아닌가 싶어 가볼까 하다가도 마음을 접게 된다. 그러나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 일상의 번잡함을 잠시 놓아 버리고 싶을 때, 어제와 조금은 다른 내일을 보내고 싶을 땐 익숙한 듯 낯선 가까운 근교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때 팜스프링스는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LA에서 100마일가량 떨어진 코첼라 밸리(Coachella Valley)에 위치한 이곳은 겨울에도 온화한 날씨와 천연 온천으로 전 세계 관광객들이 사랑하는 휴양지다.     우리가 흔히 팜스프링스라 부르는 지역은 그레이터 팜스프링스(Greater Palm Springs)다. 여기엔 팜스프링스 외에 데저트 핫 스프링스(Desert Hot Springs), 캐더드랄 시티(Cathedral City), 랜초 미라지(Rancho Mirage), 팜 데저트(Palm Desert), 인디언 웰스(Indian Wells), 라퀸타(LaQuinta), 인디오(Indio), 코첼라(Coachella) 등 8개 도시가 포함된다.     1930년대부터 할리우드 스타와 유명 인사들이 즐겨 찾던 이곳은 셀럽들의 별장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또 세계적 휴양지답게 럭셔리 호텔 체인부터 레스토랑, 부티크 등도 늘고 있다. 최근 시정부는 팜스프링스 다운타운 북쪽 끝을 '업타운 디자인 지구'로 개발하면서 이 일대에 새로운 상점과 레스토랑, 호텔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특히 4월엔 코첼라 페스티벌 및 역마차 페스티벌, ANA 인스퍼레이션 토너먼트(구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등 유명 축제와 행사가 집중돼 관광객들이 대거 몰리는 성수기이기도 하다.       ▶언제 가면 좋나   팜스프링스는 1년 내내 화창하고 건조한 날씨로 여름철엔 기온이 화씨 100도를 넘기는 경우가 많아 호텔 풀장에서 수영만 할 생각이 아니라면 여름철은 피하는 게 좋다. 여행하기 가장 좋은 때는 10월부터 5월 사이이며 성수기는 12월~4월이다. 그래서 이때는 숙박료가 비싸고 레스토랑, 골프코스, 관광명소 등이 붐빈다. 최근 몇 년간 캘리포니아는 12월~2월 사이 심한 폭우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이곳은 여전히 이 시기에도 평균 강수량이 1인치 정도로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아 여행하기 좋다.       ▶가볼만한 곳   팜스프링스에 처음 정착한 이들은 '아구아 칼리엔테'라 불리는 인디언들인데 팜스프링스를 대표하는 명소인 인디언 캐년이 바로 아구아 칼리엔테 인디언 보호구역(Agua Caliente Indian Reservation)에 속해 있다. 이곳엔 토착 야생동물을 비롯해 야생 식물, 암벽화, 하천, 60피트 높이의 폭포가 있어 아름다운 하이킹 코스를 따라 협곡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절로 된다. 인디언 캐년 외에도 팜스프링스엔 등산가들이 사랑하는 마운트 샌하신토(Mt. San Jacinto) 주립공원이 있는데 힘든 코스부터 짧은 코스까지 다양한 하이킹 코스를 만나볼 수 있다.     팜스프링스를 방문했다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에어 트램웨이를 타고 치노 캐년(Chino Canyon) 정상에 올라가는 것. 이 케이블카를 타면 절벽을 따라 해발 8516피트 높이의 정상에 1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레스토랑이 있어 간단하게 요기도 할 수 있고 커피 한 잔 마시며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이외에도 개인 소유 식물원인 무어튼 식물원(Moorten Botanical Garden)에서는 다양한 사막 식물들을 관람할 수 있는 데 자연 산책로를 따라 3000여 종의 품종이 전시돼 있다.     ▶골프 코스   그레이터 팜스프링스에는 퍼블릭 및 개인소유 골프 코스가 125개나 있다. 팜스프링스를 대표하는 골프 코스로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까지 감상하면 라운딩 할 수 있는 데저트 윌로우 골프 리조트(Desert Willow Golf Resort), 18홀 코스를 2개 갖추고 있는 인디언웰스 골프 리조트(Indian Wells Golf Resort) 등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골프 클럽인 PGA웨스트(PGA West)는 고급스러운 코스와 시설을 제공한다. 접근성이 좋은 타퀴츠크릭 골프 리조트(Tahquitz Creek Golf Resort) 역시 18홀 코스를 2개 갖추고 있어 이곳에 갔다면 예약해 볼 만하다.    사진=팜스프링스 관광청 제공  이주현 객원기자골프 쉼표가 인디언 웰스 레스토랑 호텔들 레스토랑 부티크

2024-02-29

[정호영의 바람으로 떠나는 숲 이야기] 빛이 꽃으로 피어나는 협곡, 앤텔로프 캐년

콜로라도 강을 막은 글렌 캐년 댐과 그로 인해 형성된 미국에서는 두 번째로 넓은 파웰 호수가 위치한 유타주와 애리조나 주 접경에 위치한 페이지(Page)에 있는, 미국에서 가장 넓은 인디언보호구역인 나바호(Navajo Trival)에는 전 세계 수많은 사진작가들과 관광객들이 찾는 장소가 있다. 특히 이곳에서 촬영한 흑백 사진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으로 기록돼 있어 (650만달러)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난 후 방문객이 몰려오는 앤텔로프 캐년이다. 나바호 인디언들은 '물이 바위를 통과하는 곳'이라 불렀던 이곳은 1931년 12세 인디언 소녀에 의해 발견됐는데 근처에 서식하고 있던 북미산 가지뿔 영양들이 서식하고 있어 앤텔로프 캐년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나바호 인디언들에게는 성역이어서 아무나 접근하지 못하던 곳이 후일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방문객이 찾는 장소가 됐다. 앤텔로프 캐년은 '어퍼앤텔로프 캐년(Upper Antelope Canyon)'과 '로어앤텔로프 캐년(Lower Antelope Canyon)', '앤텔로프 캐년X'가 있는데 약 4마일의 거리에 이 3곳이 위치한다.   오랜 세월 거센 급류가 나바호 사암(Navajo Sandstone) 바위 틈에 스며들어 조각해 놓은 바위 동굴의 협수로가 바람과 물의 거대한 힘과 세월에 의해 물결처럼, 빛처럼 변화무쌍하게 깎여 환상의 분위기를 연출하게 만든 장소다. 지금도 바람과 비에 강한 물살에 의해 깎이고 다듬어 지고 있다. 이곳은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내에 있어 인디언 가이드의 안내하에만 접근할 수 있다.   어퍼앤탤로프 캐년은 협수로 바닥에서 평균 120피트 높이의 홍사암 바위 틈이 갈라지며 물길이 생긴 곳이다. 약 한 블록 정도의 길이의 바위 터널을 지나는 동안 평평한 모래 바닥으로 된 동굴 같은 협곡을 걸어야 하는데 그리 힘들지는 않다. 정오를 기준으로 협곡의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태양이 빛의 기둥을 만든다. 그 빛의 기둥에 모래를 흩날리게 해 여러 모양의 형상을 연출하여 감동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위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기둥은 3월 중순에서 10월 첫 주까지만 경험할 수 있다. 이곳까지 접근하려면 나바호 인디언들의 차를 타고 모래 길을 달려야 한다.   로어앤텔로프 캐년은 어퍼앤텔로프 캐년보다 협곡의 폭이 좁고 길어 구불구불 가파르고 중간중간에 설치된 철계단을 오르내리며 발 디딜 틈도 찾기 힘든 곳 이지만 보다 다양한 빛과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사진으로 간직할 수 있다. 위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기다리지 않고, 매시간마다 변하는 바위의 색이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다. 근처에는 석양의 파웰호수를 유람선을 타고 관광할 수 있고 바위가 말발굽 모양으로 형성된 홀슈즈밴드(Horseshoe Bend), 콜로라도강의 급류 타기, 그랜드캐년 북쪽 지역 등 관광할 곳이 많다. 정호영 / 삼호관광 가이드정호영의 바람으로 떠나는 숲 이야기 협곡 나바호 인디언들 인디언 가이드 인디언 소녀

2024-02-01

칠레 독립에 묻은 인디언의 피를 담은 서부극

20세기 초 칠레를 배경으로 한 서부극. 펠리페 갈베스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칠레의 2024년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부문 출품작이다. 2023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 국제비평가협회(FIPRESCI)상을 수상했다.     식민지 시대의 1901년. 칠레의 정착민들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원하지만 여전히 모든 권력과 부는 유럽인들의 몫이다. 칠레가 독립을 선언하기 전 이 땅의 유럽인들은 되도록 많은 땅을 확보하기 위해 토지 측량작업에 한창이다.     아르헨티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티에라 델 푸에고 지역의 과두제 지주이며 스페인 재벌인 호세 메넨데즈(알프레도 카스트로)도 엄청난 면적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그는 3명의 총잡이들을 고용한다. 스코틀랜드의 전직 군인 알렉산더 맥레넌(마크 스탠리), 텍사스 출신의 카우보이 빌(벤자민 웨스트폴), 그리고 백인과 인디언 혼혈 세군도(카밀로 아린시비아)가 그들이다. 과묵한 세군도는 목적지를 향하던 중 자신의 진정한 임무가 원주민 인디언들을 메넨데즈의 땅에서 ‘제거’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들 일행은 파타고니아에 이르러 그들처럼 땅 확보에 나선 아르헨티나 기병들과 맞닥뜨린다. 그러나 그들 여정의 주목적인 원주민 학살을 이어간다. 권위적이며 오만한 맥레넌은 빌과세군도에게 강간과 살상을 명령한다. 세군도는 살상의 주역이 되길 거부하지만 맥레넌의 강압에 어쩔 수 없는 공모자가 된다. 그의 마음속에 분노와 살의가 쌓여간다.   도망가는 여성과 어린아이들을 향해 총을 쏘아대는 3명의 저격수들. 짙은 안개 속에서 산발적으로 보이는 총구의 섬광에 화면 밖 죽어가는 인디언들의 비명이 들려온다. 지옥을 보는 듯한 무자비하고 노골적인 살상은 그들이 지나는 파타고니아의 장엄한 산맥, 평온한 초원과 대조를 이룬다.     7년의 세월이 흐른다. 대통령의 특사 바쿠나가 메넨데즈를 방문한다. 그가 사주했던 인디언 학살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메넨데즈는 자신이 국가 이익에 공헌(?)했다고 주장한다. 바쿠나는 인디언 여성 키에피아와 결혼하여 외딴 섬에서 살고 있는 세군도를 찾아간다. 피비린내를 머금은 세군도의 독백, 바쿠나의 촬영을 거부하는 키에피아의 무표정에 저항과 울분이 서려있다.   땅을 정복하고 통제하려는 유럽인들의 식민주의, 돈과 땅에 무너지는 인류의 본성. 약탈과 기만의 형태로 되풀이되는 역사. 단지 그곳에 살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무자비하게 희생된 칠레 원주민들을 보며 인간 본성의 최악을 목격한다.     칠레의 독립과 건국 언저리에서 자행됐던 무자비한 학살을 서부극의 형태로 그려낸 갈베즈 감독은 유럽인들의 인종차별과 백인들의 위선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영화는 가려진 역사의 처벌되지 않은 폭력을 징벌하고 있다.   김정 영화평론가인디언 서부극 칠레 독립 원주민 인디언들 인디언 학살

2024-01-12

개척시대 백인의 탐욕·죄악 탐구, 2023년 최대 걸작…킬러스 오브 플라워 문

1920년대 오클라호마에 있는 인디언 오세이지 부족 소유지에서 석유가 발견된 후 60명이 넘는 오세이지족들이 연이어 살해된다. FBI는 이 지역에 수사관을 파견한다.     지난해 5월 칸영화제에서 초연됐고 2024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 남우주연상(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남우조연상(로버트 드니로), 여우조연상(릴리 글래드스톤) 등 다수 부문에 후보를 낼 것이 확실시되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킬러스 오브 플라워 문(Killers of the Flower Moon)’은 ‘잃어버린 도시 Z(Lost City, 2016)'의 원작자 데이비드 그랜의 동명 논픽션이 원작이다. 스코세이지 감독의 또 하나의 매스터피스이며 2023년도 최대 걸작이다.     미국의 건국 이야기는 유럽의 후손들인 백인들이 대서양을 건너와 대륙을 가로질러 가는 곳마다 인디언들을 죽이고 추방하는 일로 시작된다. 백인들을 문명의 선봉자로 묘사한 할리우드 카우보이 영화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서부 영화에 등장하는 카우보이들은 적대적이고 조악한 인디언들에 맞서 거침없이 전진하며 그들의 영토를 빼앗는다.     인디언 커뮤니티는 영화에 등장하는 그들의 부정적 이미지에 항의해 왔지만 아직도 미국 대중의 의식 속에는 백인은 선하고 인디언은 악하다는 고정 관념이 뿌리 박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잘못된 고정 관념은, 오세이지족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킬러스 오브 플라워 문’의 서사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원죄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던 스코세이지 감독의 지난 작품들의 완결판이라 해도 좋을 만큼 완성도의 경지가 압도적이다.   ‘킬러스 오브 플라워 문’은 실제 역사 속에 존재했던 사건을 면밀하게 극화한, 미국 흑역사의 치부를 해부하는 영화이며 백인들의 팽창주의와 인종차별을 고발하는 영화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자신의 관객들이 오세이지족이 겪었던 비극적 사건을 인디언이 등장하는 이전 서부 영화의 한 형대로 소비하게 될 것을 예상한다. 그리고 감히 관객들을 고정 관념의 주체로 대상화하면서 드라마로서의 카타르시스를 애초에 제거해 버린다. 대신 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백인들을 탐욕에 찬 극도의 악인들로 표현한다.     1920년대 기회의 땅 오클라호마로 미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다른 주의 비옥한 땅에 거주하다 쫓겨난 오세이지 부족도 오클라호마의 황량한 지역에 정착한다. 얼마 후 오세이지 부족이 연방 정부로부터 부여받은 땅에서 미국 최대 규모의 석유 매장지가 발견된다. 그들에게 엄청난 부가 배당된다.     오세이지 부족은 목장주이며 석유상의 위치에서 백인 하인과 운전사를 고용하고 귀족처럼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긴다. 이제까지 영화를 통해 접했던 미국의 개척사에서 보지 못한 장면들이다. 영화 속 인디언들의 기이한 일상은 오늘의 미국인들에게 ‘반전’이 아닐 수 없다.     텍사스 주 출신의 백인 윌리엄 킹 해일(로버트 드니로)과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오세이지 부족의 석유를 탈취하기 위해 청부 살인을 자행한다. 60명 이상의 오세이지 부족 인디언들이 총기난사, 약물중독, 폭탄 테러 등의 방법으로 살해당한다.     스코세이지 감독의 1대 페르소나 로버트 드니로와 2대 페르소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감독의 과거 영화들에서처럼 영웅도, 의인도 아니다. 그들은 감독이 원하는 만큼의 혐오와 증오의 대상들이며 분노 유발자들이다. 이 위대한 두 배우가 왜 스코세이지의 페르소나 배우로 수십 년을 함께 해왔는지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한다.     디카프리오는 하찮고 품위 없는 인간 어니스트를 연기한다. 역대 최고의 연기라는 평가와 함께 2016년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오스카상 수상을 점쳐본다. 드니로는 겉으로는 주변의 존경을 받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탐욕의 화신이며 이중적이고 사악한 노인 윌리엄 킹 해일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스코세이지 감독과의 10번째 협업.     삼촌 해일이 나무판자로 어니스트의 엉덩이를 세차게 때리는 장면이 있다. 보험사기를 저지르다 걸린 조카에게 벌을 주는 이 코믹한 장면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어니스트에게도 모욕적인 순간이지만 해일 자신은 보다 더 큰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자다.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반대로 자신의 탐욕에 대한 자각의 표현일까.     영화는 오세이지족이 백인들에게 희생당한 영혼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백인들의 욕망, 살인과 약탈, 배신에도 불구하고 오세이지 부족은 여전히 오늘을 살고 있다. 백인들의 인종차별과 자본주의는 이 땅에 패악을 불러왔지만 오세이지 부족의 선조들은 독립과 저항 정신을 물려주었다.     스코세이지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날 미국 소시민들의 자본주의(petite bourgeoisie)는 과연 탐욕과 배신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일까. 영화는 고통스럽게 지루하다. 3시간 30분의 긴 러닝타임 때문이 아니다. 우리의 오늘이 저들의 고통 위에 있음이 내내 우리의 양심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김정 영화평론가개척시대 플라워 오세이지족 연쇄살인사건 인디언 오세이지 스코세이지 감독

2024-01-05

[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데스 플레인스의 블랙 호크

시카고 북서부 서버브인 데스 플레인스는 교통이 좋아 한인들도 다수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다. 예전부터 시카고에서 출발한 기차가 이 곳을 지나 위스콘신 방향으로 향하기 때문에 교통의 요충지였다. 지금은 인구 6만명의 작지 않은 도시다.   이 도시의 이름은 다운타운 동쪽을 가로지르는 데스 플레인스 강에서 따왔다. 데스 플레인스 강은 프랑스식 이름으로 평원을 뜻하는 플레인을 흐르는 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프랑스 탐험대가 이 곳에서 유럽식 나무들을 만나면서 반가운 마음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알려졌다.     이후에는 독일계 이민자들이 다수 정착하게 됐다. 이 곳에는 현재도 매리빌 아카데미라고 하는 교육기관이 있다. 카톨릭 재단이 운영하는 교육기관인데 이 곳에서 100여년 전에 아메리카 원주민 학생들을 교육시키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종의 실험이었던 원주민에 대한 교육은 실패로 돌아갔고 미국이 어떻게 원주민들을 다뤘는지를 알려주는 자료로 현재까지도 종종 언급되고 있다.     1883년 트리뷴지는 40명의 수(sioux)족 인디언 남학생들이 당시 세인트 매리 트레이닝 스쿨로 불렸던 매리빌 아카데미로 이주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들은 다코타 인디언 보호지역에서 살다가 연방 정부의 교육 정책으로 시카고 서버브로 이주하게 됐다. 이들 중에서는 Sitting Bull, Black Hawk, Good Bear 등 유명한 추장의 아들들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추장들은 다코타 지역에서는 아직까지도 전설로 남아 있는 인물들이다. 대부분 서부 지역으로 진출하려는 유럽계 이민자들에 맞서 끝까지 투쟁하던 용사들이었다. 학교로 이주한 이들의 나이는 11세부터 23세였다. 이들은 부모들의 동의를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 연방 정부의 이주 정책에 의해 강제로 이주된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이렇게 원주민 보호구역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동쪽 지역으로 이주시킨 것은 미국 연방 정부의 그간 정책에 반하는 일이었다. 연방 정부는 1830년 인디언 제거법을 발효시킨 이후 미시시피강 서쪽으로 인디언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역사는 동부 지역에 정착한 유럽 이민자들이 서쪽으로 전진하면서 이미 살고 있었던 아메리칸 원주민들을 몰아내는 과정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는 협정을 맺어 인디언들이 자신들의 거주지역을 양보하기도 했지만 이들과의 전쟁은 불가피했다. 때에 따라서는 강제 이주 정책으로 인디언들을 특정 지역으로 옮기기도 했던 것이 연방 정부의 정책이었다.     하지만 이런 정책과 비교하면 세인트 매리 학교로의 학생 이전은 상반되는 정책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책이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세인트 매리 트레이닝 스쿨의 경우에도 연방 정부가 이 학교를 운영하는 시카고 카톨릭 교구청에 인디언 학생 한 명당 연 107달러씩을 지원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교가 연방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인디언 학생들을 수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학생들에게는 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서양식 문물이 주입되기 시작했다.       이들 인디언 학생들은 동부로 이주하면서 영어 이름으로 개명했다. 또 전통적인 인디언 복장을 버리고 서양식 바지를 입었다. 학교로 이주한 첫날 머리부터 짧게 자르기도 했다.     이 정책은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40명의 학생들이 학교가 정해준 바에 따라 적응을 했다. 공예반에서 기술을 배우기도 했고 제빵 기술을 익힌 학생들도 있었다. 또 4~5명은 목공 기술을 배웠고 일부는 신발과 의류 제작 기술을 배웠다. 이 기술을 배운 학생들이 다시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들어갔을 때 원주민들이 미국식 문화를 전파하는데 앞장 설 것이라는 희망적인 기대도 나올 수 있었다.     반면 일부 인디언 역사 연구가들은 이러한 정책이 인디언 말살 정책의 성격을 가졌다며 비판했다. 인디언 이주 정책이 그들이 갖고 있는 문화를 없애고 서양식 문화를 강제했다는 이유에서다. 일부에서는 “이들로부터 인디언 문화를 없애고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측의 바람과는 달리 이 정책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이유는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연방 정부는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고 차라리 그 재원을 다른 곳에 쓰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1886년 10월 28일 인디언 학생들은 원래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모든 학생들이 고향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세인트 매리에서 생활하다가 다섯 명의 학생들이 호흡기 질병을 앓다가 숨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름은 학교 기록에 따르면 인디언식으로 Red Bull, Black Hawk, Gray Bear, Walking Buffalo 등이었다.     이들의 유해는 데스 플레인스 리버와 센트럴길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세인트 메리 공동 묘지에 묻혔다. 아메리칸 원주민들의 역사는 그렇게 시카고의 서버브에도 남게 된 것이다. (편집국)     Nathan Park 기자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플레인스 블랙 인디언 남학생들 이주 정책 다코타 인디언

2023-11-29

[정호영의 바람으로 떠나는 숲 이야기] 바위산의 고요한 외침

미국 4명의 대통령 얼굴이 조각되어있는 마운트 러시모어(Mount Rushmore National Memorial)는 사우스 다코타 주의 블랙힐즈 지역으로 인디언들 땅이었다. 이곳에 미국 건국 이후 150년 동안 가장 영향력 있던 4명의 대통령조각상이 완성된 것을 불편하게 생각한 수우족 인디언 추장인 스탠딩 베어 (Standing Bear)는 마운트 러시모어 조각을 돕던 폴란드계 조각가인 코작 지올로브스키를 만나 마운트 러시모어로부터 13km 떨어진 거대 바위산에 수우족의 추장이었으며 인디언 전설의 수우족의 추장이었던 크레이지 홀스(Crazy Horse, 인디언 이름 타슈카 위코트)를 조각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인디언들에게도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 제안을 받아들인 지올로브스키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않고 1948년 6월 3일부터 혼자 조각을 시작한다.   이곳에 조각된 크레이지 홀스는 1876년 리틀 빅혼 전투에서 커스터 중령이 이끄는 미 제 7기병대를 전멸 시킨 전설적인 전사다. 1948년에 시작된 이 거대한 조각의 규모를 마운틴 러시모어의 대통령들 조각상과 비교해보면, 이들 대통령 조각의 얼굴 길이가 18m인데 크레이지 홀스 추장의 얼굴 길이는 27m에 이른다. 즉 마운틴 러시모어 대통령 얼굴 4명을 합친 면적이 크레이지 홀스 면적과 같은 셈이다.   이 조각은 처음부터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인디언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올로브스키는 백인들의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스탠딩 베어 추장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크레이지 홀스상의 쭉 뻗은 팔과 그가 타고 있는 말 사이의 공간을 만드는 데만도 2년이 걸렸으며 34년간의 어려운 작업을 쉬지 않고 진행하다 결국 그는 1982년 74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그의 아내와 후손들이 이를 물려받아 계속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작업은 정부의 재정 지원을 거절하고 순수 민간 자본으로만 충당 하고 있는데 이는 백인으로부터 짓밟힌 인디언들의 한을 그들의 지원금으로 완성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현재는 관광객들의 입장료와 뜻을 같이하는 헌금 등으로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 이 작업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후손들이 포기하지 않고 작업을 이어간다면 한 100년 정도는 더 지나야 완성 될 것이라 추측한다. 이 거대 조각이 완성될 때는 인디언 대학과, 병원, 박물관도 함께 들어서 잊혀져 갈뻔 했던 인디언의 정신을 세상에 알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1920년에 사우스 다코타 주의 역사학자 도안 로빈슨의 발상이 재능 있는 예술가들과 저항정신이 투철한 인디언 추장의 신념을 통해 전 세계인들의 발길을 이곳으로 이끌어 도전, 개척, 정의, 희생, 묵언, 저항 정신을 대변하는 '바위산들의 외침'이 되었다는 것 이다. 정호영 / 삼호관광 가이드정호영의 바람으로 떠나는 숲 이야기 바위산 외침 인디언 추장 대통령들 조각상 마운트 러시모어

2023-08-31

[수필] 7월에 만난 인디언 어린이

뜨락에 핀 장미 향내로 마음이 들뜨는 계절이다. 벗어 던진 마스크가 하늘길을 여니 반가운 얼굴이 또렷하게 다가온다. 단절되었던 만남이 이루어진다. 두 팔 벌려 부둥켜안는다. 한국에서 친구 내외, 캐나다에서 옛 교우 부부가 우리 집을 다녀갔다.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인디언 보호지역 선교사 가족이 찾아왔다. 몇 년 만인지 한참을 헤아려 보아야 했다. 7월 초가 되면 구글 OneDrive 사진과 함께 떠오르는 뜻깊은 날이 있다.     “미국에 웬 선교사?” 10년 전 대한감리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 받아 올 때 들은 질문이라고 했다. 미국 땅이지만 미국이 아닌 곳, 바로 호피 인디언 보호지역(Hopi Native Indian Reservation)이다. 미국 연방법이나 주법보다 ‘호피 법’이 위에 존재하고 그 위에 ‘마을 법’이 효력을 발휘하는 곳이다. 아직도 영어가 아닌 자기네 부족 언어인 호피어를 사용한다.     1000년을 이어 모계사회를 유지하고 있어 딸이 없으면 유산을 받을 수 없고 대가 끊긴다고 하니 흥미로운 생각이 든다. 전통을 중요시하는 만큼 무 개방, 무 문명을 고수하고 있단다. 자연 개발이나 문명의 혜택을 거부하고 사진을 찍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가장 보수적인 종족이다. 수시로 부족의 신을 위한 축제를 열기에 선교가 어려운 지역이다. 이러한 지역에 한국인 장두훈 선교사의 순교로 인해 선교가 시작됐다.     원주민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총과 무력을 피해 풀 한 포기 없는 돌산 위 편편한 메사(Mesa)로 숨어들었다. 최고 기온 화씨 110도의 뜨거운 기후, 해발 6500 피트 고지대에 생활 터전을 이루고 있다. 언덕 위에 세워져 이젠 폐허가 된 옛 성당을 통해 백인들에게 착취를 당했던 원주민의 아픔을 보았다. 오히려 한국 선교사의 노고와 헌신이 이 지역 주민에게 사랑으로 닿았다. 2대 이상혁 선교사에게 감화받은 원주민이 자기 집을 기증함으로써 Soongopavi Halayki 교회가 설립되었고 5대 박영진 선교사에 이르렀다. 선교는 열정(passion)만이 아닌 연민(compassion)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독립기념일 연휴에 그 교회를 방문해 선교사 가족에게 작은 격려를 하고 힘을 보태고자 했다. 더불어 그 지역 어린이를 위한 여름성경학교(V.B.S)를 개최했다. 오렌지카운티에서 새벽 2시에 출발하여 애리조나 주의 I-40 프리웨이 동쪽 방면으로 플래그스태프(Flagstaff), 윈슬로우(Winslow)를 지나 아무것도 없는 사막을 달렸다. 선인장밭을 지나 황야로 접어들어 총 10시간 반을 달려갔다. 그랜드캐년의 동쪽 나바호 인디언 지역보다 더 깊숙하고 외진 거주지에 다다랐다.   첫날 정해진 시간, 교회엔 우리뿐 아무도 오지 않았다. 우린 찬양을 시작했다. 어린이가 한두 명씩 오기 시작했다. 나이별로 두 그룹으로 성경 공부를 시작했지만 나중엔 네 그룹으로 55명이 참석하였다. 아이를 따라온 10대 엄마도 있었다. 그들과 청소년을 따로 그룹으로 만들었다. 마약을 접한 젊은 엄마의 고백과 재활 결심도 들을 수 있었다. 이어서 미술, 게임, 미니 올림픽 등 신나는 프로그램으로 즐거워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보았다. 푸짐한 간식, 점심, 상품을 나누며 인종을 초월한 사랑을 나누었다. 사흘 동안 더 많은 어린이가 모여들었다. 감동적인 체험을 통해 힘 있는 역사는 진행되었다.     문명을 외면하는 열악한 이 지역에서 환경을 극복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아이들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안다. 잠시 머물고 가는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왔다. 한국 친구가 좋다며 서운해하는 선교사의 두 아들을 꼭 안아 주고 헤어졌다. 마을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리의 눈길은 두 아이를 향해 있었다   그렇게 10년 동안 두 아들은 낯선 곳, 타 문화 속에서 인디언 아이들과 친구로 지내야 했다. 몇 년 만인가. 인디언 보호지역을 벗어나 한국 친구를 만나러 왔다. 선교사 자녀가 겪는 어려움이 고스란히 몰려와 콧등이 시큰해지고 뭉클해지는 이 마음을 어쩌랴.   이희숙 / 수필가수필 인디언 어린이 인디언 보호지역 한국 선교사 지역 어린이

2023-07-13

[정호영의 바람으로 떠나는 숲 이야기] 나바호 인디언들의 성지

나바호 부족공원(Navajo Tribal Park)은 약 9만1696에이커 규모의 애리조나와 유타의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모뉴먼트 밸리 안에는 여러 관광 포인트가 있는데 일반인들이 차로 둘러볼 수 있는 지역과 인디언 들이 백 컨트리(Back Country)라 부르는 인디언 가이드가 동행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 따로 있다. 특히 인디언들이 성지이라고 부르는 장소들은 인디안 가이드와 동행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특수성 때문에 인디언들이 운영하는 지프 투어를 타고 둘러봐야 한다. 인디언들이 성지이라고 부르는 빅호간(Big Hogan)은 거대 홍사암 바위 한 면에 바위 구멍이 창문처럼 하늘을 향해 뚫려있는 곳이다. 빅호간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진흙과 주니퍼 나무로 만든 둥근 형태의 나바호 인디언 거주지를 호간(Hogan)이라고 부르는데 가운데는 굴뚝같이 구멍이 나 있다. 그리고 인디언들은 그 바위 구멍을 통해서 소원을 빌면 기도가 하늘에 전달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은 나바호 인디언들이 성스러운 예식을 거행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이곳은 서서 돌 창문으로 하늘을 쳐다보는 것 보다 편안한 자세로 땅에 누워 하늘로 향한 것 같은 창문을 보는 것이 훨씬 더 감동적이다. 인디언들은 땅을 어머니라고 표현하듯이 땅에 몸을 대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언가 신성한 것이 피부 속을 뚫고 들어와 가슴에 감동으로 머무는 듯 하다. 가이드가 알려준대로 관광객 모두가 진흙암 위에 전부 일렬로 비스듬한 경사의 바위벽에 드러누우니 거대한 돌 창문을 통해 하늘이 보인다. 이때 어디선가 구슬픈 피리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마도 한 인디언이 맞은편 높은 석벽을 배경으로 피리를 불고 있는 듯 하다. 흐느끼는 듯한 피리 소리는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우리 일행의 가슴 속으로 파고 든다. 잠시후 가이드인 다니엘이 그 음에 맞추어 북을 치기 시작했다. 천천히 북을 치다 다시 빨라지는 북소리에 아무도 소리내지 않고 자연의 일부가 된 듯 흐르는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황토 바위벽에 기대어 누워있는 40여명의 마음 속에는 지금 그 시간이 정지했으면 하는 느낌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다니엘은 빅호간의 남쪽 석벽에서 그리고 피리를 부는 인디언은 그곳보다 30m정도 더 높은 맞은 편의 석벽에서 그림처럼 그들의 호흡을 맞추며 옛 그들의 조상이 그랬듯이 그들의 소원을 우리가 드러누어 있는 바닥에서부터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후 가이드 다니엘이 여자들만 앞쪽으로 일렬로 서게 했다. 그리고는 인디언 전통 춤을 가르쳐 주면서 원형으로 이끌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신명나는 장단에 맞추어 스탭을 밟는 일행들을 이끌던 인디안 가이드가 갑자기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 관광객들에게 우리의 음을 배운 인디언들이 그들의 피리와 북과 함께 이 성지에서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많은데  이런 분위기는 영원히 우리의 가슴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맛 때문에 여행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간이 충분치 않다면 삼호관광에서 떠나는 모뉴먼트 밸리 일정에 동참하면 된다. 정호영 / 삼호관광 가이드나바호 인디언 나바호 인디언들 인디언 가이드 인디언 전통

2023-06-01

[정호영의 바람으로 떠나는 숲 이야기] 인디언 전설이 살아 숨쉬는 곳

유타주 남쪽 3000미터가 넘는 판사건트 고원지대(Paunsaugunt Plateau)의 거대 계단형태의 고원을 달리다 보면 지구의 지붕 위에 올라온 듯한 느낌이다. 눈밑으로 펼쳐지는 광대한 고원의 초록숲 사이에 붉은 색의 야외극장 형태의 협곡이 나타나는데  수만봉의  핑크빛  촛대형태의 석탑들(Hoodoos)이 모여있는 곳이다. 소나무 숲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같은 곳이 브라이스 캐년이다.     1928년에 국립공원 으로 정해진 이곳은 3만5835 에이커의 넓이에,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각 색을 갖고있는 장소 중 한 곳이다. 협곡을 따라 15개의 전망대가 약 18마일의 공원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원내에 약 60마일의 하이킹 도로가 있으며 승마, 헬리콥터, 캠핑 등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1875년도 에베네저 브라이스가 근처를 탐사하는 과정에 이곳을 발견했는데 이곳의 신비로움에 반하여 협곡 근처에 집을 지어서 '브라이스 집이 있는 협곡' 이라고 부른 것이 후일 국립공원 이름으로 사용하게 됐다. 개인의 이름이 국립공원 명칭으로 사용된 것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 할수 있을 것 같다.     공원을 둘러보다 보면 어떻게 이런 모습의 자연이 형성된 것일까 의구심이 일정도로 감동적이다. 이 지역 근처에 거주하고 있던 파이우테 인디안의 전설에 따르면 욕심많은 동물들을 벌주기 위해 늑대신의 저주로 이들을 전부 돌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이로 인해 수 만봉의 탑들이 지금과 같은 인간, 짐승 , 건물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브라이스 캐년의 형성과정은 오래 전 바다같은 호수였던 이 지역에 침전되었던 모래, 자갈, 진흙 등이 수압에 의해 수십미터의 진흙층을 이루게 되고, 지각의 융기에 의해 물들이 빠져나가게 되고, 오랜세월에, 부드러운 흙과 진흙암이 부식과 침식과 날씨와 빗물에 의해 씻기고 깎이면서 지금과 같은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장소가 된 곳이다. 언뜻 보면 수많은 사람의 형태와 동물들이 군집해 있는 모습이 다시 환생할 것 같은 인디안 전설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한다.     이곳을 둘러 보는 가장좋은 방법 중 하나는 먼저 방문객센터에 들러  필요한 자료와 지도를 준비 하는 것이 좋다. 4월에서 10월에는 공원의 가장 높은  전망대인 레인보우 포인트를 보고 내려오면서 브라이스 포인트, 인스피레이션 포인트, 일출과 석양을 감상하길 권한다. 참고로 레인보우 포인트는 겨울에는 닫기 때문에 이를 유의해 여행 계획을 세워야 한다.     1924~25년에 완공된 공원 내 호텔 브라이스캐년 롯지(Bryce Canyon Lodge)는 당시 건축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있으며 1896년 유타주가 미연방에 45번째 주로 가입되었을때 계양했던 오리지널 유타주 깃발이 전시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폰데로사 소나무 숲에 위치하고 있어 오염되지 않은 공기와 밤하늘의 별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브라이스 캐년 내 승마 여행도 참여해 볼 만하다. 공원 초입 브라이스 캐년 시티 호텔과 식당들이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정호영 / 삼호관광 가이드정호영의 바람으로 떠나는 숲 이야기 인디언 전설 인디안 전설 국립공원 이름 국립공원 명칭

2023-02-02

지도에 없는 신비한 인디언 성지 ‘블루캐년’

애리조나 나바호 호피 인디언 보호구역을 중심으로 미 남서부 지역 명소를 7박 8일 일정으로 돌아봤다.   40여 년 전에 여행업을 하다 목사가 된 백원일 선교사가 애리조나 나바호 원주민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하고 있어 여행에 관해 조언을 구했다. 본인도 선교 일로 가야 한다면서 기꺼이 가이드도 해 주고 모든 예약도 다 준비해 주겠다고 했다. 단체 관광보다 개인적인 관광은 준비 과정이 쉽지 않다. 행선지도 정해야 하고 모든 숙소 및 관광 명소를 직접 예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첫날 아침 출발해 그랜드캐년 입구인 윌리엄스라는 동네에서 쉬기로 했다. 이 동네는 고속도로 공사 시작하기 전에 ‘루트 66’이라고 시카고에서 시작해 LA가 종점인 유명한 국도 선상의 소도시로 1800년대에 만들어진 역사가 깊은 도시다.   여기서 그랜드캐년까지 매일 관광 기차가 다닌다. 관광도시로 식당과 기념품 상점이 많고 관광객들이 붐비는 조그만 마을이다.   다음날 그랜드캐년 사우스림을 관광했다. 그동안 수없이 방문한 곳이지만 역시 웅장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랜드캐년 바닥 콜로라도 강까지 한번 내려가 본다고 늘 마음 먹었었는데 이번에도 위에서만 보고 다음 행선지인 나바호 네이션(Navajo Nation)의 중심 도시인 투바시티(Tuba City)로 향했다.     나바호 네이션은 그랜드캐년이 끝나는 동쪽부터 뉴멕시코주까지 북쪽으로 유타주 일부가 포함된 광활한 원주민 자치구다. 이 자치구 안에는 또 다른 원주민 호피족의 자치구가 있다. 크기가 약 3만 스퀘어 마일이다. 한국 땅 크기가 3만8000스퀘어 마일이니 나바호 자치구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투바시티는 전형적인 나바호 원주민이 사는 마을이고 길 하나를 건너면 호피 원주민 자치구가 있다.     여기 제일남부침례교회에서 백 선교사가 목회 활동을 한다. 제임스라는 나바호족 목사 부부가 반갑게 맞이하고 간단한 기도도 해 줬다.     다른 소도시와 비교해서 인디언 자치구 마을은 너무나 발전이 안 돼있고 황량하고 변변한 식당도 없다. 나바호족이 미국 개척시대에 농업을 시작한 평화로운 원주민이라 그나마 대학살을 면했다고 한다. 아메리칸 인디언 중에 인구가 가장 많은 부족이라지만 25만명밖에 안 된다고 한다.     물이 모자라는 쓸모없는 큰 땅만을 가지고 있다. 연방정부에서는 땅 사용권만 허가하고 소유권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치구에 사는 인디언은 땅을 사지도 팔지도 못하게 되어있어 발전이 없다고 한다. 정부 보조금으로는 겨우 생계유지 할 정도라고 한다.   투바시티에서 1박하고 아침에 블루캐년(Blue Canyon)관광에 나섰다. 호피족 관할 자치구 안에 있는 블루캐년은 지도에도 표시가 없는 일종의 호피족 성지다. 캐년 안은 모두 비포장도로고 사륜구동 차량이 아니면 다니기 힘들다.     새로 장만한 벤츠 스프린터를 캠핑용으로 개조해서 이번 여행에 사용하니 블루캐년을 구석구석 돌아보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블루캐년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가는 아주 외진 곳이다.   애리조나의 투바시티에서 264번 프리웨이 동쪽으로 33마일 지점서 왼쪽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사륜구동차를 타고 가는 것이 안전하다. 포장이 안 돼 있어서 흡사 빨래판 같은 곳도 있다. 비가 많이 오면 길이 유실되기도 하니 현지 원주민의 안내가 꼭 필요하다.   올해 초부터는 호피 원주민 자치정부의 규정에 따라 호피족 원주민의 안내를 받아야 출입이 가능하고 가이드 비용도 내야 한다.   붉은 돌(Red Sand Rock)들은 창조의 신이 진흙을 가지고 놀다가 지쳐서 그냥 막 뭉쳐서 던져놓은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더욱 신비한 것은 붉은 돌 위에 흰색 페인트로 마구 낙서를 해놓은 것처럼 보이는데 해파리 화석들이 하얗게 박혀있는 것이다. 들쑥날쑥한 계곡을 둘러보면 디즈니랜드의 동화에 나오는 성 같기도 하고 주변에 일곱 난쟁이와 도널드 덕도 보인다.     〈계속〉 정리=박낙희 기자레저 여행 Week& 미서부 인디언 블루캐년 여행기 하기환 NAKI 박낙희

2022-06-09

[여행박사-스티브 조 길따라 바람따라] 신비로운 협곡의 비경

서부 대륙에서 최근 가장 핫한 관광지 중 하나는 단연 엔텔롭캐년이다. 위치는 애리조나 북부 페이지(Page)에 있으며 1980년부터 사진작가들을 통해 알려 지면서 처음에는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근간에는 예약 없이는 입장 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인들의 관광지로 미 서부 대륙에 왔을 때 꼭 다녀가야 할 곳으로 추천되는 곳이다.   1931년 나바호 인디언 소녀가 들판에서 양 떼들에게 풀을 먹이던 중 몇 마리의 양을 잃어버리고 양을 찾아 헤매던 중 우연히 좁고 구불구불하는 협곡을 발견한다. 그 소녀는 처음 발견했을 때 이 협곡은 마치 천국으로 들어가는 신비의 협곡처럼 느꼈다. 바로 이곳이 오늘날 나바호 인디언의 숨은 보석이 있는 관광 명소 엔텔롭캐년이다   그랜드 캐년처럼 웅장하지 않은 아주 조그만 협곡이지만 이곳을 다녀간 모든 사람은 자연의 신비함을 공감하기에 충분한 곳이다.   이 협곡은 캐년의 다양한 종류 중 일명 슬로트(Slot) 캐년으로 불린다. 오랜 세월이 창조한 작품으로 바람, 햇빛, 비, 거대한 물로 빗어낸 자연의 조각품이라 표현된다. 기원전부터 사암 바위가 만들어지고 약 35마일 떨어진 남쪽에서 강한 폭우로 바위 쪽으로 구멍이 생기면서 바위에는 줄무늬가 생기게 된다. 연약한 사암에는 실리카는 광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물과 돌의 화학 작용으로 다양한 아름다운 바위에 색깔을 가지게 된다.   바위 틈새로 스며드는 빛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동굴 벽에 부딪히면서 다양한 모양과 형태를 가진다. 이곳은 다양한 형태의 아름다운 관광지로 주로 주황색과 노랑색을 가진 UPPER 코스, 진한 푸른색과 보라색의 LOWER 코스, 최근 오픈한 X 코스로 나누어진다. UPPER는 계곡 안에 햇빛이 V 형태로 빛이 들어오다가 A형으로 바뀌고 LOWER는 A 형태로 빛이 들어오다가 V 형태로 바뀐다. 들어오는 햇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계곡의 모습은 어느 코스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자연이 주는 선물이라 본다.     인디언 말로 “물이 바위를 뚫고 흐르는 곳(TSE, BIGHHANILLINI)”이라 불렀고 물의 힘으로 지층을 침식하여 만들어 놓은 협곡의 의미이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들어갈 수 없다.     115피트에서 130피트 높이의 틈새에 숨어있는 캐년은 길이가 656피트밖에안되지만, 빛의 마술로 연출되는 돌의 아름다움은 전 세계 어느 관광지에서도 볼 수 없는 곳이다. 관광 시 주의점은 반드시 인디언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들어갈 수 있으며 반드시 안전 서약서에 사인과 지참물 통제를 받는다.   코로나, 델타, 오미크론이 조금 사그라지는 듯하다. 하루빨리 예전처럼 자유롭게 관광하길 기대하며 아름다운 빛의 마술로 연출되는 엔텔롭으로 떠나보자.     〈삼호관광 전무〉   (필자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하기 위해 가필이나 수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스티브 조 / 삼호관광 전무여행박사-스티브 조 길따라 바람따라 협곡 비경 사암 바위 바위 틈새 나바호 인디언

2022-03-03

시민권 미국역사 2 눈물의 길

이종호의 시민권 미국 역사 〈2〉눈물의 길(Trail of Tears)     살던 땅서 쫓겨난 원주민들 중서부로 강제 이주       체로키·크리크·세미놀족 등 동남부 인디언 대부분 대상     소탕 작전 주역 잭슨·스콧   한때 미국의 영웅으로 남아       원주민인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처음부터 ‘별종’ 취급을 받았다. 백인들이 그들을 처음 대면했을 때 이들을 짐승으로 볼 것인가 인간으로 볼 것인가를 놓고 심각한 논의까지 벌였다. 결국 백인들을 인디언을 인간으로는 보되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 수는 없는 대상으로 결론 내렸다. 어린이와 부녀자까지 포함한 무차별 학살은 그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었다. 19세기 초기까지 인디언 소탕전 당시엔 ‘가장 아름다운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다’라는 말이 유행이었을 정도다.   원주민의 운명을 가장 확실하게 결정지은 사람은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재임 1829~1837)이다. 현재 20달러 지폐에 얼굴이 들어가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처음부터 백인과 인디언은 같이 살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일찍이 1812년 크리크 부족과의 전쟁 때부터 테네시 민병대장 활약하면서 굳어진 신념이었다. 원주민들에게 ‘날카로운 칼’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악명 높았던 그는 1819년에는 플로리다의 세미놀 부족을 공격, 그들 거주지를 잿더미로 만들기도 했다. 당시 플로리다는 스페인 영토였다. 미국 땅에서 탈출한 노예들이 플로리다 쪽으로 많이 달아났다. 공격의 명분은 플로리다로 도망간 노예를 색출하고 인디언 은신처를 소탕한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세미놀 부족은 근거지를 잃었고 미국은 스페인으로부터 유리한 조건으로 플로리다를 넘겨받았다.   앤드루 잭슨은 대통령이 되자 의회를 압박해 ‘인디언 이주법(Indian Removal Act)’을 제정했다. 백인들이 살던 동부 지역 인디언을 미시시피 강 서쪽 황폐한 땅으로 이주시키는 법이었다. 하지만 말이 이주였지 땅을 뺏기 위한 강제 추방이었다. 이 법에 따라 1831년부터 2년간 4000여명의 촉토족이미시시피강 유역에서 아칸소 서부지역으로 강제 이주했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어 치카소족, 크리크족에게도 이주 명령이 내려졌다. 그들은 완강히 거부했지만 총칼 앞에서 무력했다. 부족마다 적게는 수천 명, 많게는 1만 명 이상씩 오클라호마로 강제로 옮겨졌다.   잭슨이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에도 강제 이주는 계속됐다. 마지막 강제 이주 작전은 조지아주를 근거지로 1만년이 넘도록 살아온 체로키족이 대상이었다. 작전의 주역은 윈필드 스콧(1786~1866) 장군이었다. 스콧 장군 역시 크리크족 1만4500명을 오클라호마로 압송했던 전력이 있었다. 이번에는 7천명의 기병대를 이끌고 1만 6000명의 체로키족을 몰아갔다. 말뚝만 친 들판에 그들을 가두었다가 1938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오클라호마까지 강제 이주시켰다. 테네시와 켄터키를 지나 오하이오강과미시시피강을 건너는 이동 행렬은 추위와 굶주림의 연속이었다. 4000여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역사는 그 여정을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고 기록했다. 지금 조지아, 테네시 일원에는 ‘눈물의 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곳곳에 있다.   윈필드 스콧은 훗날 미국-멕시코 전쟁의 영웅이었다. 1847년, 멕시코 수도인 멕시코시티를 함락시키고 과달루페 조약을 통해 현재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와이오밍 등을 멕시코로부터 헐값에 할양받았기 때문이다. 조지아주 북쪽엔 그의 이름을 딴 호수가 있다.   최후의 원주민 학살은 1890년 운디드니라는 곳에서 일어났다. 사우스다코타주 남서쪽 끝 지역인 파인 릿지 인디언 보호구역(Pine Ridge Indian Reservation) 안에 있는 작은 강(Creek)유역이다. 1890년 12월 29일 이곳에서 미국 기병대는 수족의 분파인 라코타 족을 무장해제시키는 과정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어린이를 포함 거의 300명이 죽었다. 다큐멘터리작가 디 브라운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Bury My Heart at Wounded Knee, 1970)’는 미국 원주민의 시각에서 구전되어 오던 인디언 몰락의 역사를 생생히 채록한 세계적 베스트셀러다. 이 책은 운디드니 학살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제7 기병대가 이동 중인 원주민 라코타족을 한 곳에 모았다. 모두 340명이었다. 기병대는 이들을 무장 해제시키려 했다. 수색 과정에서 시비가 붙었다. 기병대의 기관총 4정이 불을 뿜었다. 그 자리에서 153명이 숨졌다. 남은 인디언들은 살기 위해 도망쳤다. 350명 가운데 거의 3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식으로 무수한 인디언이 근거지를 잃고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의 말은 지금 미국 곳곳에 지명으로 남아 있다. 50개 주의 이름도 반 정도는 인디언 말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표 참조〉요즘은 과거 역사 재평가가 활발해지면서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20달러 지폐 모델에서 퇴출 위기에 몰려 있다. 애틀랜타중앙일보 대표 〈[email protected]〉       〈표〉 인디언 언어로 로 된 주(State) 표.     네브래스카: 잔잔한 물결 / 다코타: 다 함께 연결된 사람들(친구) / 매사추세츠: 큰 언덕 / 미네소타: 하늘빛 물 / 미시간: 아주 넓은 호수 / 미시시피: 물의 아버지(긴 강) / 미주리: 큰 배가 있는 마을 / 아이오와: 아름다운 땅 / 애리조나: 작은 샘이 있는 곳 / 앨라배마: (크리크 인디언) 종족의 마을 / 오리건: 아름다운 물 / 오클라호마: 얼굴 붉은 사람들 / 오하이오: 거대한 강 /  와이오밍: 산과 골짜기가 굽이치는 곳 (대평원) /유타 : 산 사람들 / 일리노이: 잘 난 사람들(전사들) / 켄터키: 내일의 땅 / 캔자스: 남쪽 바람의 사람들 / 아칸소 :물이 흘러 내리는 곳 / 위스콘신: 풀이 많은 곳 / 테네시: 만남의 장소  / 텍사스: 친구 / 코네티컷: 긴 강 옆에 있는 땅   〈박스-문제풀이〉 ▶문: 미국 내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 하나만 말해보라(Name one American Indian tribe in the United States).   답: 센서스 조사 결과 인구순으로 상위 10개 원주민 부족은 다음과 같다. ①체로키(Cherokee) ②나바호(Navajo) ③수(Sioux) ④치프와(Chippewa) ⑤촉토(Choctaw) ⑥푸에블로(Pueblo) ⑦아파치(Apache) ⑧이로퀴이(Iroquois) ⑨럼비(Lumbee) ⑩크리크(Creek). 이들 중 하나를 말하면 된다.   그밖에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다음과 같은 원주민 부족을 얘기해도 된다. 블랙피트(Blackfeet) /세미놀(Seminole) /샤이엔(Cheyenne) /아라와크(Arawak) /쇼니(Shawnee) /모히간(Mohegan) /휴런(Huron) /오니다(Oneida) /라코타(Lakota) /크로우(Crow) /티턴(Teton) /호피(Hopi) /이누이트(Inuit)             〈사진설명〉 -수(Sioux)족의 한 갈래인 라코타 인디언 추장이었던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 조각상 앞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우스다코타 주 블랙힐스 산지에 있는 이 조각상은 70년 넘게 공사 중이며 현재 얼굴 부분만 완성되어 있다. 크레이지 호스의 원래 뜻은 ‘길들이지 않은 말’이란 뜻이다. 그는 리틀빅혼 (Little Big Horn) 전투에서 조지 커스터 장군이 이끄는 미국 기병대를 전멸시킨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전설적 영웅이 됐다. 사진 앞쪽 흰색 조형물은 완공 후의 모습이다. [사진=이종호]     -미국 원주민 수난사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Bury My Heart at Wounded Knee, 1970)’ 표지. [중앙포토]     - 테네시주 채터누가 도심에 있는 ‘눈물의 길’ 이정표. 조지아 등지의 수많은 원주민 부족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오클라호마 등지로 강제 이송됐다. [사진=이종호] 김평식 여행등산전문가미국 시민권 인디언 이주법 인디언 소탕전 아메리칸 인디언들

2022-01-14

이종호의 시민권 미국 역사〈2〉눈물의 길(Trail of Tears)

소탕 작전 주역 잭슨·스콧    한때 미국의 영웅으로 남아   원주민인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처음부터 ‘별종’ 취급을 받았다. 백인들이 그들을 처음 대면했을 때 이들을 짐승으로 볼 것인가 인간으로 볼 것인가를 놓고 심각한 논의까지 벌였다. 결국 백인들을 인디언을 인간으로는 보되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 수는 없는 대상으로 결론 내렸다. 어린이와 부녀자까지 포함한 무차별 학살은 그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었다. 19세기 초기까지 인디언 소탕전 당시엔 ‘가장 아름다운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다’라는 말이 유행이었을 정도다.      원주민의 운명을 가장 확실하게 결정지은 사람은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재임 1829~1837)이다. 현재 20달러 지폐에 얼굴이 들어가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처음부터 백인과 인디언은 같이 살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일찍이 1812년 크리크 부족과의 전쟁 때부터 테네시 민병대장 활약하면서 굳어진 신념이었다.    원주민들에게 ‘날카로운 칼’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악명 높았던 그는 1819년에는 플로리다의 세미놀 부족을 공격, 그들 거주지를 잿더미로 만들기도 했다. 당시 플로리다는 스페인 영토였다. 미국 땅에서 탈출한 노예들이 플로리다 쪽으로 많이 달아났다. 공격의 명분은 플로리다로 도망간 노예를 색출하고 인디언 은신처를 소탕한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세미놀 부족은 근거지를 잃었고 미국은 스페인으로부터 유리한 조건으로 플로리다를 넘겨받았다.     앤드루 잭슨은 대통령이 되자 의회를 압박해 ‘인디언 이주법(Indian Removal Act)’을 제정했다. 백인들이 살던 동부 지역 인디언을 미시시피 강 서쪽 황폐한 땅으로 이주시키는 법이었다. 하지만 말이 이주였지 땅을 뺏기 위한 강제 추방이었다. 이 법에 따라 1831년부터 2년간 4000여명의 촉토족이미시시피강 유역에서 아칸소 서부지역으로 강제 이주했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어 치카소족, 크리크족에게도 이주 명령이 내려졌다. 그들은 완강히 거부했지만 총칼 앞에서 무력했다. 부족마다 적게는 수천 명, 많게는 1만 명 이상씩 오클라호마로 강제로 옮겨졌다.       잭슨이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에도 강제 이주는 계속됐다. 마지막 강제 이주 작전은 조지아주를 근거지로 1만년이 넘도록 살아온 체로키족이 대상이었다. 작전의 주역은 윈필드 스콧(1786~1866) 장군이었다. 스콧 장군 역시 크리크족 1만4500명을 오클라호마로 압송했던 전력이 있었다.    이번에는 7천명의 기병대를 이끌고 1만 6000명의 체로키족을 몰아갔다. 말뚝만 친 들판에 그들을 가두었다가 1938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오클라호마까지 강제 이주시켰다. 테네시와 켄터키를 지나 오하이오강과미시시피강을 건너는 이동 행렬은 추위와 굶주림의 연속이었다. 4000여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역사는 그 여정을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고 기록했다. 지금 조지아, 테네시 일원에는 ‘눈물의 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곳곳에 있다.    윈필드 스콧은 훗날 미국-멕시코 전쟁의 영웅이었다. 1847년, 멕시코 수도인 멕시코시티를 함락시키고 과달루페 조약을 통해 현재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와이오밍 등을 멕시코로부터 헐값에 할양받았기 때문이다. 조지아주 북쪽엔 그의 이름을 딴 호수가 있다.     최후의 원주민 학살은 1890년 운디드니라는 곳에서 일어났다. 사우스다코타주 남서쪽 끝 지역인 파인 릿지 인디언 보호구역(Pine Ridge Indian Reservation) 안에 있는 작은 강(Creek)유역이다. 1890년 12월 29일 이곳에서 미국 기병대는 수족의 분파인 라코타 족을 무장해제시키는 과정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어린이를 포함 거의 300명이 죽었다.    다큐멘터리작가 디 브라운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Bury My Heart at Wounded Knee, 1970)’는 미국 원주민의 시각에서 구전되어 오던 인디언 몰락의 역사를 생생히 채록한 세계적 베스트셀러다. 이 책은 운디드니 학살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제7 기병대가 이동 중인 원주민 라코타족을 한 곳에 모았다. 모두 340명이었다. 기병대는 이들을 무장 해제시키려 했다. 수색 과정에서 시비가 붙었다. 기병대의 기관총 4정이 불을 뿜었다. 그 자리에서 153명이 숨졌다. 남은 인디언들은 살기 위해 도망쳤다. 350명 가운데 거의 3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식으로 무수한 인디언이 근거지를 잃고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의 말은 지금 미국 곳곳에 지명으로 남아 있다. 50개 주의 이름도 반 정도는 인디언 말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요즘은 과거 역사 재평가가 활발해지면서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20달러 지폐 모델에서 퇴출 위기에 몰려 있다.    애틀랜타중앙일보 대표 [email protected]〉   ▶미국 내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 하나만 말해보라(Name one American Indian tribe in the United States).   센서스 조사 결과 인구순으로 상위 10개 원주민 부족은 다음과 같다. ①체로키(Cherokee) ②나바호(Navajo) ③수(Sioux) ④치프와(Chippewa) ⑤촉토(Choctaw) ⑥푸에블로(Pueblo) ⑦아파치(Apache) ⑧이로퀴이(Iroquois) ⑨럼비(Lumbee) ⑩크리크(Creek). 이들 중 하나를 말하면 된다. 그밖에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다음과 같은 원주민 부족을 얘기해도 된다. 블랙피트(Blackfeet) /세미놀(Seminole) /샤이엔(Cheyenne) /아라와크(Arawak) /쇼니(Shawnee) /모히간(Mohegan) /휴런(Huron) /오니다(Oneida) /라코타(Lakota) /크로우(Crow) /티턴(Teton) /호피(Hopi) /이누이트(Inuit)     ━   ▶인디언 언어로 로 된 주(State)     네브래스카: 잔잔한 물결 / 다코타: 다 함께 연결된 사람들(친구) 매사추세츠: 큰 언덕 / 미네소타: 하늘빛 물 미시간: 아주 넓은 호수 / 미시시피: 물의 아버지(긴 강)   미주리: 큰 배가 있는 마을 / 아이오와: 아름다운 땅 / 애리조나: 작은 샘이 있는 곳   앨라배마: (크리크 인디언) 종족의 마을 / 오리건: 아름다운 물   오클라호마: 얼굴 붉은 사람들 / 오하이오: 거대한 강   와이오밍: 산과 골짜기가 굽이치는 곳 (대평원) /유타 : 산 사람들 일리노이: 잘 난 사람들(전사들) / 켄터키: 내일의 땅 / 캔자스: 남쪽 바람의 사람들 아칸소 :물이 흘러 내리는 곳 / 위스콘신: 풀이 많은 곳 / 테네시: 만남의 장소     텍사스: 친구 / 코네티컷: 긴 강 옆에 있는 땅         박재우 기자미국 이종호 인디언 이주법 인디언 소탕전 아메리칸 인디언들

2022-01-14

2022년 특별 기획 / 이종호의 시민권 미국사 <1> 아메리칸 인디언

  ━   2022년 특별 기획 / 이종호의 시민권 미국사 <1> 아메리칸 인디언      이민자는 두 개의 조국을 가진 사람이다. 마음엔 언제나 떠나 온 조국을 품고 있을지라도 현실에선 새로운 조국을 보듬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이 땅의 역사를 아는 것이다. 이민국이 발간한 ‘미국 시민권 시험 예상 문제집’에도 100개 중 29개가 역사 문제다. 거기에 정부조직, 정치 제도 등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하는 문항까지 더하면 거의 반이 역사 관련 문제다. 미국 시민권 시험은 사실상 미국 역사 시험인 셈이다. 시민권 시험 문제집에 실린 역사 문항을 중심으로 이민자라면 최소한 알아야 할 미국 역사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   백인들이 오기 전 1000만 명의 원주민이 있었다    배신·약탈·살육의 500년 원죄    연방정부 2010년에 공식 사과    원주민과 맺은 수백 건 약속 중  오직 하나 지킨 것은 '땅 뺏기'        2010년 5월 20일은 아메리칸 인디언에겐 매우 뜻깊은 날이었다. 연방의회가 정부 차원에서  미국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언에 대한 과거의 폭력 행위와 잘못된 정책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했기 때문이다. 이날 캔자스 출신 공화당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은 연방 정부에 대항하다 숨진 인디언 부족 지도자 36명이 묻혀있는 워싱턴 의회 묘지에서 과거 인디언들에 대한 사과 결의안을 낭독했다. 결의안에선 또 인디언들이 현재 보호구역 안에서 겪고 있는 빈곤과 폭력, 학대, 무시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시하면서 인디언 부족들의 권익향상과 복지증진을 위한 미 정부의 약속도 재확인했다. 행사에는 체로키, 촉토, 무스코지 등 원주민 부족 대표들이 참석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연방 정부 차원에서까지 사과했을까. 이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선  미국 독립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카리브해 산살바도르 모래톱에 처음 닻을 내렸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상륙한 곳이 황금과 향료의 땅 인도라고 생각해 그곳 사람들을 인디언(Indian)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들은 인도인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붉은 피부, 툭 튀어나온 광대뼈, 굴고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몽골계 후예로 아시아 시베리아로부터 얼어붙은 베링 해를 건너 3만 년 전부터 북미 땅에 터를 잡았던 사람들이었다.     콜럼버스의 북미 대륙 도착은 서구 역사에선 신대륙 발견으로 미화됐지만, 원주민들에겐 피로 얼룩진 수난사의 시작이었다. 미국의 서부 개척사는 영웅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인디언 입장에선 처절한 멸망사인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이 자랑하는 프런티어 정신은 백인 입장에서는 모험과 용기, 인내를 의미하는 진취적 이념이었지만 인디언에게는 자신들의 땅과 목숨을 빼앗아가는 파괴와 탐욕의 저주였다.     미국 인디언들은 콜럼버스 도착 이후 근 400년 동안 이리 쫓기고 저리 흩어지며 들판의 짐승처럼 피 흘리며 죽어갔다. 19세기 말까지도 연방군은 수많은 병력과 비용을 투입하여 인디언 소탕전을 끊임없이 벌였다. 인디언 말살정책은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 이후에도 계속됐다. 1868년 통과된 수정헌법 14조는 노예였던 흑인까지 포함해 만민평등권을 부여했지만, 원주민 인디언은 대상이 아니었다. 1883년 연방대법원은 인디언은 미국 땅에서 태어났어도 이방인이라고 판결했다. 연방의회가 인디언 원주민에게도 시민권을 준다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1924년에 이르러서였다.     콜럼버스 도착 직후 거의 1000만 명에 가까웠던 원주민 인구는 19세기 말 25만 명으로까지 줄었다. 줄어들던 인구는 191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출생률이 사망률을 앞지르며 회복되기 시작했다. 인디언 보호구역은 1851년 처음 만들어졌다. 말이 보호구역이지 인디언 격리 수용을 위한 강제 주거 제한 구역이었다. 지금은 전국 326곳에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다.       연방 센서스국 2021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아메리칸 인디언 인구는 혼혈 포함 약 679만 명이다. 전체 미국 인구의 2.09%다. 원주민이 가장 많은 주는 캘리포니아로 76만 7000여명이 살고 있고 오클라호마(52만), 애리조나(39만)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조지아에는 약 10만 명이 살고 있다. 연방정부가 인정한 미국의 전체 원주민 부족 수는 574개에 이른다. 센서스 조사에 따르면 아메리칸 원주민의 평균수명은 일반 백인보다 2년 2개월이 짧고, 20.3%가 빈곤선 이하의 소득 수준이다.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은 1607년 북미 대륙에서 처음 세워진 영국 이주민 정착지였다. 제임스타운 개척 당시의 무용담은 미국의 탄생지 신화가 되어 모든 미국 역사책의 첫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미국의 탄생지로 알려진 이곳을 세운 사람들은 광산 채굴과 탐사를 목적으로 영국 국왕의 특허장을 들고 온 사람들이었다.     디즈니 만화영화의 주인공으로 더 유명한 포카혼타스라는 11세 인디언 추장 딸이 존 스미스라는 백인 선장을 구출하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당시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포카혼타스는 17살 때 존 롤프라는 백인과 결혼해 영국으로 건너가 사회적 명사가 되었다. 훗날 레베카라는 세례명으로 개명했으며 천연두로 죽었다.)     처음에 그 지역에 살던 원주민 포와탄(Powhatan) 인디언들은 제임스타운 영국인들에게 식량을 나눠주었고 옥수수와 고구마 재배법을 알려주었으며 숲의 풍습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제임스타운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관계는 별로 오래가지 못했다. 정착민들은 원주민을 배신했고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영국 정착민들은 곧 그들과 반목하면서 그들을 약탈하고 죽이기 시작했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플리머스에 도착한 청교도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원주민들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며 농사법 전수와 식량 지원을 받으며 혹독한 겨울을 이겨냈다. 땅에 대한 소유 개념이 없던 원주민들은  땅을 소유해야겠다는 백인들의 이상한 관습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모두가 나눠 써야 할 땅이었기에 그들의 정착을 아낌없이 도왔다. 추수감사절의 감동스러운 유래도 이때 생겼다. 하지만 이들 역시 다른 이주민들이 몰려오면서 숫자가 많아지자 이내 감춰둔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624년 네덜란드인들은 불과 24달러 정도의 금속 냄비와 낚싯바늘, 유리구슬 등으로 인디언 추장을 꼬드겨 지금의 맨해튼을 빼앗았다. 모든 게 이런 식이었다. 북미 대륙에 발을 들인 유럽인들은 처음엔 원주민들과 우호적 관계를 맺었지만 결국은 배신과 약탈, 살육으로 그들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1834년 연방의회는 ‘인디언과의 교역과 접촉 규제 및 변경 평화 유지 조례’를 통과시켰다. 미시시피강서쪽지역이 인디언 주거지역이며 백인들은 허가 없이는 이 지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오랫동안 인디언들과 분쟁을 겪어 온 연방정부가 내놓은 화평책이었다. 하지만 지켜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삶의 터전을 넓혀간 백인과 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따라 온 군대에 의해 인디언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1700년대 후반부터 100여년간 연방정부와 인디언 부족 간에는 371건이나 되는 조약이 맺어졌지만 모두 휴짓조각이 되었다.   한 인디언 추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백인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지킨 것은 단 하나다. 우리 땅을 먹겠다고 약속했고, 결국 먹어 치웠다."   이종호 기자〈[email protected]〉    유럽인들이 오기 전에 미국에는 누가 살았나?(Who lived in America before the Europeans arrived?)     아메리칸 인디언(American Indian)이라고 대답하면 된다. 인디언(Indian)이나 네이티브 아메리칸(Native American), 원주민(Indigenous people) 등으로 대답해도 정답으로 인정해 준다. 2021년 현재 알래스카 원주민을 포함한 아메리칸 인디언은 약 679만명이다.  미국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들 아메리칸 인디언 과거 인디언들

2022-01-07

[부동산 가이드] 인디언 팜스 골프단지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가운데도 세월은 흘러 어느덧 2021년도 마지막 주가 되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참으로 바쁘게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우리 동네 팜스프링스에도 겨울이 되어 지난 한 주 동안 많은 비가 내려 사막의 공기가 아주 신선하다. 샌하신토산과 샌골고니아산에 눈이 하얗게 쌓여서 산에서부터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시리게 한다.     팜스프링스 다운타운에도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지지만 올해는 참으로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보낸 것 같다.     타주에서 대학을 다니는 막내아들과 직장을 다니는 세 딸들과 볼수록 흐뭇한 사윗감이 성탄을 맞아 집으로 다니러 와서 지난 일주일간은 삼시 세 끼 음식 장만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행복한 힘겨움이 이런게 아닐까?     지난 한 해 동안 믿고 부동산 거래를 맡겨 준 분들이 점점 많아져서 정신없이 바쁘게 일을 했다. 힘들지만 감사하고 거래를 하나씩 끝날 때마다 뿌듯한 성취감을 느꼈다.   10년 전 팜스프링스로 이주하면서 20년 넘게 하던 교육사업을 그만두고 낯선 곳에서 새롭게 부동산 일에 도전하면서 불안하고 두려웠던 기억이 난다.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을 팜스프링스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며 어느덧 팜스프링스 전문 부동산 에이전트로 자리매김을 했다.   팜스프링스에서 10년의 세월을 보내며 얻은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 내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실이다. 예전에 귀하게 여겼던 가치관들이 전부 바뀌고 삶의 목적과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모두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지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게 되었다. 나에게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생긴 것이다.   팜스프링스의 부동산 열기는 아직도 여전히 뜨겁다. 많은 손님들이 집을 구입하려고 찾고 있지만, 여전히 매물이 부족해 대기하는 중이고 마켓에 집을 내놓으면 며칠 만에 높은 가격에 팔린다.     예전에는 은퇴를 앞둔 바이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이 동네로 이주하거나 투자를 목적으로 집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오늘은 많은 한인들이 에어비앤비로 투자하기 원하는 인디언 팜스 골프단지를 소개한다.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과 스테이지 코치 뮤직 페스티벌이 바로 한 블럭 거리에서 열리고 커뮤니티 수영장, 퍼블릭 골프장과 식당, 호텔 등 여러 부대 시설을 갖추고 있다. 1980년대에 지은 집부터 2021년도 새집까지 단독 주택과 콘도가 있으며 RV파킹 거라지가 있는 집들도 있다.     단지 내 HOA가 여러 개가 있으며 대부분 단기 렌트가 가능하지만 안되는 집도 있다. 이 단지 내 집을 구입 할 때는 꼭 세부 사항들을 잘 아는 현지인 에이전트를 통해서 구입하기를 권한다. 물론 가드가 있는 게이트 커뮤니티다. HOA는 300달러 선으로 저렴한 편이다. HOA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앞마당 관리와 인터넷이 포함된다.     올해 들어서 라퀸타, 팜데저트, 캐테드럴 시티 등 여러 도시에서 단기 렌트에 관한 규제가 심해지면서 단기 렌트가 가능한 인디언 팜스에 투자용 주택을 구입하기가 쉽지는 않다.     콘도는 20만 달러대면 구입이 가능하고 단독 주택은 40만 달러대부터 60만 달러대까지인데 골프장 뷰, 개인 수영장이 있는지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다.   ▶문의: (760)895-7755 소피 리 / 뉴스타부동산 랜초쿠카몽가 명예부사장부동산 가이드 골프 인디언 부동산 거래 투자용 주택 뮤직 페스티벌

2021-12-29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아메리카 원주민 (2)

그리고 이 연합 정부는 그 동안 필라델피아에서 각 주정부의 대표가 난상 토론을 통해 헌법을 제정하는 등 13년이 지난 1789년에 조지 워싱턴을 간선제로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그러나 독립된 미국은 인디언 문제를 오늘날 멕시코가 된 당시의 스페인 통치와는 전혀 다른 정책으로 구사하였다. 즉, 스페인처럼 그들과 공존해서 사는 것보다는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별도의 구역을 만들어 그곳으로 쫓아내는 지역 설정이었다. 한때 독립 초기 미국 헌법의 아버지인 죤 마셜 (John Marshall) 연방 대법원장이 인디언의 권리를 인정하여 어느 주정부도 단독으로 인디언을 상대할 수 없으며 연방 정부만이 직접 상대할 수 있다고 인디언 편을 들어 주정부 마음대로 인디언을 공격을 못 하게 한 바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후 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 대통령은 그것은 죤 마셜의 이야기이며 대통령인 나로서는 연방정부가 그렇게 큰 권력을 갖는다는 것을 반대한다며 주정부는 주정부 대로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공언하였다.     따라서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미시시피강 서쪽 근처의 오클라호마 지역에 한반도보다 훨씬 큰 단일 면적의 인디언 보호 구역을 만들어 놓고 미국 동해안부터 미시시피강 사이에 사는 모든 인디언을 그리로 몰아내는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그것은 보호구역이라기보다는 미국인이 요새를 사방으로 둘러싼 일종의 거대한 감옥이었다. 초기 미국 독립 당시의 영토 개념은 뉴욕에서 지금의 LA 태평양 연안까지가 아니라 중부지역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미시시피강까지의 개념이었다.   더구나 잭슨 대통령은 군인시절 수많은 인디언을 상대로 잔혹한 전쟁을 치른 장군이었다. 잭슨 대통령은 재임 시 인디언 청소를 위해 일리노이 주의 강력한 블랙 호크 추장과 그 동맹군을 잔혹하게 학살을 하였는데 그것이 미국 인디언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유명한 “Black Hawk War”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플로리다주부터 오하이오주까지 여러 곳에 흩어진 많은 부족이 백인과의 전투 패배로 오클라호마까지 “눈물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지만 블랙 호크의 패배로 더 이상 모든 인디언들은 전의(戰意)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잭슨 대통령은 사실상 잔인하게 상대하였던 인디언 문제만 접어 논다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다. 당시 부유층들에게 집중된 참정권을 서민 대중에게도 골고루 나누어질 수 있도록 연방의 권한을 축소시켰으며, 여성 문제와 금융법에도 일대 개혁을 단행하였다. 과거 오바마대통령이 작금의 돈 놓고 돈 먹는 라스베가스식의 투기 금융은 결국 일반 대중의 눈물을 쥐어 짤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를 핑계 댄 그들만의 괴상한 방식이라고 월가에 철퇴를 내리듯, 잭슨 대통령은 당시에 연방 자금을 제일 많이 갖고 있는 미국은행(The Bank of United State)이 부자들을 위한 투기성 횡포가 심하다며, 뭉그적거리며 말을 안 듣는 재무 장관들을 3번씩이나 갈아치우면서까지 아예 은행 문을 닫아버리더니, 한 걸음 더 나가 지폐 사용은 시기 상조라며 지폐를 중단하고 동전만을 사용토록 하였다.   결국 그 후 그는 한동안 경제 불황을 겪기는 하였지만 미국의 사고방식을 절대 딴눈 팔지 않도록 역사상 처음부터 엄격하게 민주화로 걷게끔 화끈하게 틀어논 셈이었다. 그는 지금 미국 민주당의 태동력이었으며 정신적 철학의 대상이기도 하다. 또한 미국 화폐 20불짜리의 주인공이다. 인디언 보호 구역은 그 후 개념이 많이 바뀌어 현재 각주에 널리 퍼져 310개 구역에 150만 명의 인디언이 살고 있다.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 보호구역 인디언 문제 잭슨 대통령

202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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