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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세계] 금융허브 유적지 홍콩

“아시아에서 현재까지 다른 국가나 경제가 홍콩을 따라가기 어려운 것이 금융 분야다.” 이는 2017년 한 국내 일간지에 실린 전문가 분석이다.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지 20주년이 된 때였다.   불과 몇 년 새, 금융허브였던 홍콩이 금융업 쇠락지역으로 전락했다. 홍콩 항셍지수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하락했다. 1964년 이 지수가 산출된 이후 처음이다. 홍콩 증권사 중 2022년에 49곳이, 지난해에는 30여 곳이 폐업했다. 경제 전반의 활력이 떨어지면서, 전문직을 비롯한 경제활동 인구는 덜 들어오거나 탈출하는 가운데 고령자와 중국 본토 출신이 늘고 있다.   홍콩 위상이 급전직하한 원인으로 홍콩 증시의 중국화 등이 꼽힌다. 중국 본토 기업이 홍콩 주식시장의 70%를 차지하게 됐고, 그 결과 홍콩 증시는 중국 경제의 부진에 동조하게 됐다.   중국의 통제 강화를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은 1997년 홍콩 반환 이후에도 2047년까지 50년간 홍콩에 고도의 자치와 기존 영국식 제도의 유지를 보장하겠노라고 앞서 약속한 바 있다. 중국은 이를 어기고 2020년 홍콩국가보안법을 변칙 처리해 시행했다. 지난달에는 홍콩국가보안법의 확장판인 기본법 제23조가 통과됐다. 이를 두고 “관에 못을 하나 더 박는 짓” “비즈니스 허브로서 홍콩이 갖고 있던 명성을 더 해칠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돈과 금융업은 속박을 싫어하고 자유를 찾아 이동한다. 역사상 대표적인 사례가 네덜란드에서 나타났다. 이베리아반도의 카스티야·아라곤 연합 왕국은 15세기 말 현지 유대인에게 기독교로 개종하거나 떠나라고 명령했다. 유대인들이 16세기 중엽부터 안착한 곳이 관용의 도시 암스테르담이었다. 네덜란드는 17세기 금융허브로 번영했다. 연합 왕국의 재정과 경제는 점차 기울었다. 중국은 황금알을 낳던 홍콩의 자유를 더욱 옥죄고 있다. 백우진 / 경제칼럼니스트·글쟁이㈜ 대표돈의 세계 금융허브 유적지 금융허브 유적지 홍콩 항셍지수 홍콩 증시

2024-04-15

하와이 독립 유적지 한·영 안내서 발간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미주 한인 이민 120주년을 맞아 배우 송혜교와 함께 미국 하와이에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를 소개하는 안내서를 온오프라인으로 발간할 예정이라고 14일 밝혔다.   서 교수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해외에 남아 있는 우리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지켜나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꾸준한 방문"이라며 이렇게 전했다.   지난 주 하와이에 출장길에 오른 그는 호놀룰루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회 총회관 터, 대한인동지회관, 오아후 공동묘지 등을 방문해 자료 조사와 사진 촬영 등을 하고 있다. 한국어 및 영어 버전으로 제작될 하와이 독립운동 유적지 안내서는 올해 상반기 중에 발간될 예정이다.   서 교수는 "송혜교와 함께 세계 대한민국 독립운동 유적지에 꾸준히 기증해온 안내서를 잘 활용했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는다"며 "기분 좋은 일이며 성과가 점차 나타나는 것 같아 힘이 날 따름"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와 송혜교는 2012년부터 역사적인 기념일에 맞춰 해외에 있는 독립운동 관련 유적지 33곳에 한국어 안내서, 한글 간판, 부조 작품 등을 기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서 교수는 기획을, 송혜교는 후원을 맡았다.하와이 유적지 독립운동 유적지 하와이 독립운동 안내서 발간

2023-04-17

[역지사지(歷知思志)] 스카라 브레

1850년 영국 북단 오크니 제도에 폭풍이 몰아닥쳤다. 200여명이 사망했을 정도로 거대한 폭풍이었다. 이때 해변 근처 언덕의 흙이 쓸려나가면서 옛 집터가 발견됐다. 그간 평범한 언덕인 줄 알았던 그곳은 고대인의 집단거주지였다. 첫 조사가 실시된 것은 1927년. 당시만 해도 기원전 500년경의 유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970년대 추가 발굴과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3180년경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영국의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지 스카라 브레(Skara Brae)다.   이곳이 5000년 전 유적이라는 점이 밝혀지자 학계는 충격에 빠졌다. 높은 석기 수준 때문이었다. 8채의 가옥에는 돌로 만든 찬장·가구·냉장실 등이 있었으며 변기나 쓰레기 처리 시설도 마련되어 있었다.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시기(기원전 2333년)나 스톤헨지(기원전 2100년)가 세워진 때보다 오래전 일이다. 이 혁신적인 석기 문명은 약 600년간 번성하다가 기원전 2500년 마침표를 찍었다. 주민들이 돌연 떠나버렸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다. 주민들이 떠난 이유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모래폭풍 같은 자연재해나 기후와 지형의 변화를 들기도 한다.   최근 극심한 가뭄이 닥친 유럽과 중국에서는 강이 마르면서 수면 아래 잠겨있던 유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자연재해는 간혹 의도치 않게 과거에 대한 연결고리를 찾아준다. 한편으로는 현재의 기후와 환경이 과거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것이었을지 생각해보게도 만든다. 유성운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스카라 신석기 유적지 기원전 500년경 결과 기원전

202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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