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믿음] 우리가 살아내지 못한 죄
성경에 관해 질문이 많은 성도를 만났다. 이번에는 성경이 가르치는 죄의 문제와 함께 오늘날 세상을 개탄하며 걱정하는 이야기를 했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느냐며,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물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 이렇게 악한 죄가 가득한 게 말이 되느냐며 짐짓 한탄을 늘어놓았다. 이야기를 듣고 물었다. 정말 걱정이 되느냐고.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아느냐고. 왜 그러냐고 그가 눈으로 물었다. 우리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예수를 믿는다는 우리가 제대로 살지 못해서 세상이 이렇게 당신이 염려하는 죄로 가득 찼다고 대답했다. 초대 교회는 아무 힘이 없었다. 권력도 없었고 부도 없었다. 하지만 초대 교회는 부흥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삶으로 예수를 보여주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삶 속에 살아 있었다. 우리 어릴 때도 그랬다. 아주 오래전 시골 어른들은 예수를 믿지 않아도 자기 아이들이 예배당에 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그래도 가서 좋은 소리 듣고 오라고 했다.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믿음이 없는 이들도 교회에서 하는 이야기가 나쁜 말이 아니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예수 믿는 것들이 더 나쁘다는 소리가 일상의 평가가 되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주신 마지막 명령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전도이고 선교다. 그런데 그 선교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하지 않는다. 선교의 가장 강력한 도구는 우리가 예수를 믿고 그 말씀대로 잘 사는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의 삶이 자신들과 다를 때, 그것이 매력 있을 때, 사람들은 우리의 믿음을 존중하고 궁금해할 터인데, 우리의 삶이 세상 모든 사람의 삶과 다르지 않으니, 사람들이 믿는 이들의 삶을 궁금해할 일도, 존중할 일도 없고 나아가 복음을 들을 내용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살아낸, 가난하지만 행복하고, 힘없지만 담대한 삶은 복음이 세상에 전해지는 가장 큰 힘이었는데, 우리는 넉넉한 부와 부족하지 않은 힘을 가지고도, 행복하지도 당당하지도 않다. 오히려 안 믿는 사람들로부터 교회의 탐욕을 지적당하고, 교인들의 행태가 비웃음당하고, 복음이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 당한다. 그 모든 일이 성도가 잘 못 산 탓이다. 내 삶이 예수 안에서 반듯하고 가치 있는 삶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를 무시하고 있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이들이 탐욕을 이루려 부패하고 타락하고, 문란하기에 그들이 믿는 복음을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세상이 잘못되어가고, 세상에 죄가 번성한다고 한탄하며 손가락질하기 전에, 성도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한다. 왜 전도가 안 되는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선교는 강요와 회유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하는 것이다. 성경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한다. 읽고 감동할 수 있는 편지인지, 아무 가치도 없이 비웃음당하고 구겨져서 버려지는 편지인지는 성도의 삶에 달려 있다. 교회에 은과 금은 가득 쌓였지만, 예수의 이름으로 병들고 가난한 이들의 삶을 일으키는 능력은 사라진 지 오랜 시대에, 세상이 잘못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한탄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는지 나는 나에게 묻는다. 성경은, 그리고 세상마저도 오히려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내지 못한 죄를 묻고 있다. 조 헨리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예수 그리스도 초대 교회 오래전 시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