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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환상 속의 귀농, 귀촌

아무래도 귀촌의 향수를 자극하는 고전은 윌리엄 예이츠의 시 ‘이니스프리로 가리’일 것이다. 그가 런던에 살면서 고향 아일랜드의 이니스프리섬을 그리워하며 지었다는 그 노래는 정작 본인은 갔는지 말았는지 알 바 없지만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귀농, 귀촌 다 쉽지가 않다. 지옥 밑바닥까지 간다는 각오 없이 그곳으로 갈 수 없는 법이다. 귀촌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이 시골에 살면서 농사나 지으며 시골 생활을 만끽한다는 뜻에서 권장할 만 일이다. 내가 아는 몇몇 은퇴 교수들도 시골에서 옥수수, 호박, 가지도 심고 월동용 장작을 만들며 이런 일과를 페이스북에 올리는데 재미가 있지 싶다. 국화주를 담아 놓고 친구가 오면 한잔하며 인생과 문학을 논하는 재미가 왜 없겠는가.      귀농은 농업을 통한 수입으로 생활한다는 뜻인데 말이 그렇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꿈이 아니다. 꿈꾸는 상상 속 세상과 현실은 너무나 먼 곳임을 실감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요즘처럼 기후변화가 심하면 작물에 병도 잘 걸리고 한번 문제가 생기면 작물 전체가 다 결딴나기 때문에 그 피해는 귀농 시 한 고랑 옥수수 심는 시절과 비교할 수가 없고 경제적으로 파탄이 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자금이 많지 않은 경우 그 앞날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돈, 돈, 돈 원수 같은 돈 문제로 잠 못 자는 나날이 계속될 것이 뻔하다. 내가 농업을 시작한 1983년 늦가을 이후 그 악몽이 없어지기까지 몇 년이 걸렸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 10년도 더 걸렸지 싶다.   귀농은 한마디로 권하고 싶지 않다. 그 속에는 시적 낭만은 없고 전쟁터 한복판 지옥도 속으로 추락한다고 말하고 싶다. 꼭 귀농하겠다면 몇 년간 무보수로 꼴머슴이라도 살면서 배우고 난 후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한번 결딴이 나는 것은 아주 쉬운데 그 후에 돈이 나올 형편이 못될 경우는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시골 생활이 좋다고 소개하는 기사나 TV 프로그램에 현혹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실제 성공 사례가 있다고 쳐도 한번 성공이 계속되라는 법이 없다.     한마디로 농촌에서 돈을 벌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것은 지옥도 속이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는 게 현실이다. 절대로 쉽게 결정하면  망하는 지름길이라 말하고 싶다. 친구들이랑 국화주를 권하며 인생을 논하는 낭만이 없다는 현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도 쉽게 결정했다가 고통 속에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있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 연금을 받거나 수입원이 확실한 은퇴자들의 귀촌은 권장할 만 하지만 돈 없는 젊은이들의 귀농은 한사코 말리고 싶다.  김호길 / 시인세상만사 환상 귀농 시골 생활 전쟁터 한복판 옥수수 호박

2024-03-06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주눅 들지 않는 필살기

잘하던 일도 긴장하면 망친다. 주눅 들면 하던 일도 안 된다. 한번의 기술이나 요령으로 전세가 뒤집어지지 않는다. 평소 실력을 쌓아두어야 승부수를 띄울 수 있다.     필살기(必殺技)는 사람을 확실히 죽이는 기술이다. 필살기는 원래 한방에 죽이는 기술로 외상없이 일격에 적을 쓰러트리는 방법이다. 필살기의 창시자는 60-70년대 홍콩무협영화의 최고 아이돌스타, 살아있는 전설 ‘왕우’로 꼽힌다. 한쪽 팔 없이 수많은 적을 무찌르는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는 감동 그 자체였다.     필살기는 보통 ‘자신의 가장 강력한 기술’이나 ‘특별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기술’, ‘비장의 기술’이란 의미로 사용된다. 단순히 가장 강한 것이 아닌 타인과 구별되는 다른 기술들과 격이 다른 특별한 강함을 지녔다는 뜻이 담겨있다.   스무 채도 안 되는 삼거리 마을, 초가집이 송이버섯처럼 올망졸망 붙어있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해가 지면 채널이 잘 안 잡혀 찌지직 소리 나는 라디오 들으려고 동네사람들이 마당에 한 복판에 있는 우리집 대나무 평상에 모여 들었다. 시골 살 때는 아버지가 남긴 토지도 있어 부자 노릇을 하며 기죽지 않고 잘 지냈다.     여덟살 되던 해 도시로 이사 왔다. 내 어린 인생이 이토록 낭떠러지로 낙화할 줄이야. 서울에서 진학 온 멋진 아이는 ‘체르니’를 시작했다고 자랑했고 그 애보다 덜 예쁜 아이는 ‘바이엘’을 친다고 했다. 한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단어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 뿐이랴! 여덟가지색 크레용으로 불조심 포스터를 그려 파출소에 내 그림이 붙기도 했는데 도시 애들은 오십가지 색깔의 영롱한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렸다. 화가가 되면 굶어 죽는다며 어머니는 크레파스 살 돈을 주지 않았다. 다윗과 골리앗 싸움의 시작이었다.     따스하게 머리 쓰다듬어 주던 동네 어른들, 날 업고 키워주던 옥이 언니, 버드나무 가지 꺾어 피리 만들어 주던 삼만이 아재도 없는 도시생활은 슬프고 막막했다.       궁하면 통한다. 우물안 개구리도 탈출하면 높고 푸른 창공을 바라본다. 맨땅에 헤딩 하듯 유년의 필살기가 시작된다. 우선 어수룩한 시골 촌뜨기 말투를 고치고 동무들이 한번 할 때 열 번 하고, 그래도 안되면 백번하기로 작심, 긍정적인 투쟁에 돌입하기로 다짐한다.     인생은 한 방으로 끝장나지 않는다. 단칼에 승부 나는 기술은 없다. 움츠리지 않고 주눅들지 않고 묵묵히 열심으로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을 이겨내는 기술은 없다.   내 필살기는 타인을 죽이는 기술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필생기일 뿐이다. 타인과 비교할 때는 수평이 아니라 수직 상승이 해답이다.    비슷한 사람과 경쟁하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바로 세우고, 조건에 절망하지 않고, 없는 것 안 가진 것, 할 수 없는 것, 못난 것들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가 승부수를 띄운다.     자부심과 자긍심은 출발점이 다르다. 자부심은 자신의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이 타인의 칭찬이나 외부의 찬사에서 출발하지만 자긍심은 본인의 선택과 마음가짐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복을 느끼는 마음에 기인한다. 용기 있는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삶을 지킬 수 있다. 타인의 판단에 연연하지 않고 ‘내 모습 그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 흉내내지 않고 모방하지 않으며, 가장 독창적인,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모습으로 사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비장의 기술이다.     어머니 오른 손은 고된 농삿일로 지문이 사라졌다. 무언가 이룩하려는 사람, 꿈과 희망을 향해 끝없이 노력하는 사람,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사람의 손은 늙지 않는다. 지문이 닳아 없어져도 열리지 않는 문이 열릴 때까지 두드린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필살기 주눅 시골 촌뜨기 여덟가지색 크레용 우물안 개구리도

2023-11-21

[중앙칼럼] 레드넥, 남부 시골 촌놈의 인기 현상

구수하면서도 남성미 가득한 컨트리 음악계가 한때 부드러워진 적이 있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거칠고 투박한 음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2010년대가 그랬다. 다양성의 강조로 보수적이던 컨트리 음악계에 변화가 요구됐다. 카우보이모자, 굵직한 수염, 마초적 매력을 뽐내던 남자 컨트리 가수들이 점점 매끄럽게 변해갔다. 급기야 컨트리 게이 가수 오빌 펙의 등장은 이런 트렌드에 정점을 찍었다.   뉴욕타임스의 음악 평론가 존 카라마니카는 이들을 ‘컨트리 젠틀맨’으로 지칭하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남자 컨트리 가수들이 맑은 목소리로 헌신적인 사랑을 노래한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거친 매력이 설 자리를 잃어갈 즈음이었다. 판을 뒤집는 인물이 등장했다. 날 것의 컨트리 음악을 다시 무대로 가져온 건 신인 가수 모건 월렌이었다. 야들야들해진 음악에 쉽게 불만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던 팬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월렌은 보수적인 시골 백인을 일컫는 ‘레드넥(redneck)’이란 용어까지 과감히 꺼내 들었다. ‘레드낵 러브송’에서 월렌은 자신을 트랙터를 모는 시골 청년으로 묘사했다. 남자다움을 물씬 풍기며 칼칼하게 사랑을 외친 그는 남부 특유의 감성을 자극했다.     컨트리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월렌은 스타라면 한 번씩 거치는 버라이어티쇼 SNL(Saturday Night Live)에 출연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때 팬데믹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방역 지침을 어기고 파티를 즐기던 월렌의 사진 한장이 문제가 됐다. 논란이 커지자 SNL은 월렌의 출연을 취소해버렸다.   논란은 더 커졌다. 월렌은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려고 몰려든 민주당 지지자들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게재했다. 그러면서 ‘위선이란 비현실적(The hypocrisy is unreal)’이라고 적었다. 월렌은 소신 있게 “사회적 거리 두기 없이 거리에서 축하 파티를 해도 된다면 지금 당장 콘서트도 예약할 수 있어야 한다”고 썼다. 안티들은 비난의 돌을 던졌다. 반면 답답함을 느껴온 이들에게는 통쾌함을 안겼다.   SNL은 결국 그를 다시 출연시키기로 했다. 월렌은 쇼에 나가 “남부 시골 촌놈에게 이런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며 그간의 논란을 능청스럽게 코미디로 받아쳤다.     세상은 그런 월렌을 가만두지 않았다. 이번에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헤어지는 상황에서 장난을 치며 ‘N-word’를 사용한 영상이 공개됐다.     다시 한번 난리가 났다. 영상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맞물렸다. 심지어 ‘캔슬 컬처(cancel culture)’가 월렌을 집어삼켰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음원들이 삭제됐고, 그래미 시상식 출연도 금지됐다. 사실상 음악계의 퇴출 결정이었다.   반발은 그 지점에서 폭발했다. 특정 사상을 강요하고 입맛에 안 맞으면 모든 걸 취소해버리는 풍조에 질린 이들이 반기를 제대로 들었다. 이들은 월렌의 음반을 구입하는 행위로 PC 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대항했다. 이 때문에 월렌의 두 번째 정규 음반은 2021년 가장 많이 판매된 앨범 1위를 기록하게 된다.     잡지 디 애틀랜틱의 평론가 스펜서 코나버는 ‘월렌은 인종 비하 발언으로 추방된 후 더 유명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라는 제목의 칼럼까지 썼다. 코나버는 “사람들은 이 시대를 향해 다른 메시지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월렌의 인기 요소가 명확하진 않지만 사실상 캔슬 컬처에 대한 국민투표”라고 분석했다.   월렌은 올해 초 세 번째 정규 음반을 발표하면서 역사를 썼다. 이 음반에 수록된 전곡(36곡)이 빌보드 핫100 차트에 모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급기야 컨트리 가수로는 최초로 1위 곡(라스트 나잇)을 포함, 무려 다섯 곡이 탑 10 차트에 올라갔다.   단순한 현상이 아니다. 모건 월렌의 인기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을 방증한다. 현시대를 향한 대중의 질책이다.   장열ㆍ사회부 부장중앙칼럼 남부 시골 컨트리 음악계 남부 시골 남자 컨트리

2023-06-04

[열린 광장]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

한 해가 저무는 12월이다. 12월의 꽃은 포인세티아와 나르시서스다. 포인세티아(홍성초)는 본시 들에서 자라던 풀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멕시코의 어느 시골 소녀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기 예수께 드릴 선물이 없어 교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매우 슬퍼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소녀는 “풀 한 줌 뜯어 교회 안으로 들어가라”는 천사의 소리를 듣고 천사의 말대로 풀 한 줌 뜯어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때 소녀를 본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는데,  이 소녀가 들고 있던 풀이 빨간색의 아름다운 꽃이었기 때문이다.   포인세티아는 기적의 꽃, 희망의 꽃이다. 12월에는 이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사람들도 많이 태어났다. 먼저 유명 음악가로는 악성 루드빅 베토벤이 1770년 12월16일에  독일에서 태어나 전원교향곡을 비롯한 수많은 곡을 작곡하여 우리를 기쁘게 했다. 이에 질세라 1801년에 엑터 베를리오즈가 프랑스에서 태어나 레퀴엠을 만들어 장엄한 곡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그러니 노래의 나라 이탈리아가 조용히 있을 리가 없었겠지. 가극 작곡가 지아코모 풋치니가 1858년에 태어나 라 보헴을 비롯한 주옥같은 가극의 아리아를 우리에게 선물해 주었다. 또 미국에서는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태어나 푸치니의 가극 아리아를 멋지게 불러주었다.   그런가 하면 1608년 12월 9일에 태어난 영국의 천재 시인 존 밀턴은 실락원이란 서사시를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1795년에 토머스 칼라일이 스코틀랜드에서, 1830년에는 에밀리 딕슨이 미국에서,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가 1869년 섣달그믐에 태어났다.    12월의 탄생석은 보석의 원석으로 쓰이는 터콰즈(터키 옥)다. 매우 부드럽고 진한 청색에서 연한 청색으로 빛나는 보석이다. 이런 보석을 닮은 빛나고 훌륭한 달이 바로 12월이다. 아울러 나에게는 참으로 귀한 선물을 안겨 준 푸른 추억이 담긴 달이기도 하다.  아내와 더불어 새로운 삶을 시작한 달이기 때문이다. 바로 1959년 12월17일에 한경직 목사의 주례로 결혼을 했다.  마치 1903년 12월17일 오빌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어 타고 하늘을 훨훨 난 것처럼, 나도 새 신부와 함께 저 넓은 하늘을 훨훨 날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12월에는 아름다운 일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었지만 한 가지 일 때문에 죄다 묻혀버려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바로 크리스마스 때문이다. 그래서 바라건대 12월에는 이름답고 훌륭한 일들을 되새기면서 올 한 해를 마감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미국 시인 존 위티어의 시로 글을 맺는다.    ‘저 태양은 십이월의 날을 짧게 만드는구나/장미꽃은 어스레한 언덕 위에 쓸쓸히 피어있고/달 빛은 어두운 그림자가 둘러 덥혀 있지만/창백한 달 빛보단 그런대로 슬픈 풍경이 낫구나’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 광장 마감 가극 작곡가 가극 아리아 시골 소녀

2022-12-01

[우리말 바루기] 가을 내음

가을이 깊어가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요즘 ‘가을 내음’이라는 제목의 글이 점점 늘고 있다. ‘가을 내음’이란 말에서는 어딘지 가을의 정취가 배어 나온다. 만약 ‘가을 내음’을 ‘가을 냄새’라고 하면 어떨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이 “에이, 그럼 맛이 안 나지”라고 할 것이다.   과거에는 ‘내음’이 경상도 방언으로 취급돼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일반 글에서는 ‘내음’ 대신 ‘냄새’라는 말을 사용했다. 하지만 ‘내음’에는 ‘냄새’가 갖지 못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시 등 문학작품에서는 이전부터 계속해 사용돼 왔다. 그래서 이를 ‘시적 허용’이라고 했다. 그러다 2011년 마침내 국립국어원이 ‘내음’을 표준어로 인정함으로써 지금은 일반 글에서 사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내음’과 ‘냄새’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전은 ‘내음’을 코로 맡을 수 있는 나쁘지 않거나 향기로운 기운이며, 주로 문학적 표현에 쓰인다고 풀이해 놓았다. 그러니까 ‘바다 내음’ ‘흙 내음’ ‘시골 내음’ ‘고향 내음’ 등처럼 어떤 정서나 정취가 풍기는 표현으로 잘 어울린다.   반면에 ‘냄새’는 코로 맡을 수 있는 온갖 기운을 가리킨다. 즉 ‘냄새’는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현상 이상을 나타내지는 못한다. 따라서 ‘가을 내음’에는 ‘가을 냄새’가 담을 수 없는 가을의 독특한 향기나 분위기, 정서, 정취가 모두 스며 있는 것이다.   ‘내음’과 함께 복수표준어로 인정된 것 가운데는 ‘나래(날개)’ ‘짜장면(자장면)’ ‘손주(손자)’ ‘복숭아뼈(복사뼈)’ ‘메꾸다(메우다)’ 등이 있다.우리말 바루기 가을 내음 가을 내음 가을 냄새 시골 내음

2022-10-27

'스위스의 도시와 마을들' 곽노은 작가 대면 강의

    본보 칼럼니스트인 자유여행가 곽노은 작가가 다음 주말 버지니아 센터빌 소재 와싱톤 중앙장로교회에서 ‘스위스의 아름다운 도시와 마을들’이라는 제목으로 대면 강의를 한다.     곽노은 여행가는 지난 30여년 간 유럽의 유명한 도시는 물론 이름없는 시골 마을들을 방문하고 기록하는 유럽전문 여행가다.   스위스 강의는 먼저 루가노와 몬테뇰라에서 시작한다. 루가노는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이고, 몬테뇰라는 소설가 헤르만 헤세가 그의 마지막 43년을 살고 묻힌 곳이다. 곽 작가는 “데미안, 크놀프, 유리알 유희 등 헤세의 소설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은 누구나 그를 기억하고 그의 발자취를 돌아 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며 “몬테뇰라에는 헤세 박물관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스위스의 수도 베른 등 유명 도시들을 소개하는 시간도 갖는다. 곽 작가는 “이번 강의는 스위스의 유명한 도시 또는 마을들은 거의 모두 방문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스위스 촬영지였던 이젠발트, 브리엔츠 호수, 시그리스빌 다리도 짚어본다.   200여장의 사진과 함께 시작 될 스위스 대면 강의에는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중 제 5곡인 보리수를 감상하는 시간도 포함됐다. 강의는 누구나 참석 가능하며, 무료다.   ▷일시: 28일 오전 10시 ▷장소: 15451 Lee hwy, Centreville, VA 20121(와싱톤 중앙장로교회 은혜채플) 김정원 기자 kimjungwon1114@gmail.com스위스 도시 스위스 강의 대면 강의 시골 마을들

2022-10-20

미국 시골살이 엘리트의 고백…‘도시인의 월든’ 저자 박혜윤씨

“니어링 부부의 책 ‘조화로운 삶’은 정말 딱 떨어져요.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수 없거든요. 그 책을 보고 이런 식으로 살아야겠다 생각을 했던 거죠. 근데 현실이 그게 아닌 걸 깨달았어요. 환경이 변한다고 해서 내가 변하지 않더라고요.”   새 책 ‘도시인의 월든’(다산북스) 출간과 함께 한국을 찾은 저자 박혜윤(47)씨의 말이다. 그는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워싱턴주 시골에서 8년째 살고 있다. 부부 모두 정규직이라고 할만한 직업 없이, 적게 일하고 적게 벌면서 여백을 누리며 살아가는 생활은 지난해 나온 ‘숲속의 자본주의자’를 통해 화제가 됐다.   서울에서 속칭 명문대를 나와 기자생활을 했던 그가 시골행을 결심한 건, 뒤늦게 미국에 유학해 교육심리학 박사까지 받은 뒤였다. 기러기 생활을 하던 남편도 직장생활에 지쳐 퇴직하면서 네 식구의 미국 시골살이가 시작됐다. 사실 ‘조화로운 삶’에 일찌감치 매료된 박씨는 결혼 초에도 남편에게 시골 가서 살자고 한 적이 있단다. “저보다 더 도시적인 사람이라 단칼에 거절하더라고요. 내심 안심이 됐죠.”   반면 ‘월든’은 그가 대학 시절 처음 읽었을 때는 “누가 봐도 참 이상한 책”이라 여긴 고전이다. 이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예상과는 다른 시골 생활을 경험하면서다. 일례로, 농장을 침범해 농작물을 망치는 사슴을 두고 난생처음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단다.   그는 ‘월든’의 저자 소로에 대해 “요즘 같으면 악플에 시달릴만한 일을 많이 했다”며 책에 이렇게 썼다. “완전한 자급자족과 자연 속 고독을 그토록 예찬하면서 실제로는 친구들을 찾아다니고 빨래는 어머니에게 맡겼다.     인생의 정답처럼 찬양했던 호숫가 오두막의 삶도 불과 2년 만에 접었다.” 박씨는 소로가 “인생의 정답을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니라 모순이 가득한 그대로 자신을 보여주었던 것”이라고 적었다.   그의 책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이와 통한다. 그는 무소유를 예찬하거나 무욕을 지향하지 않는다. “저는 욕망을 억제하는 거는 믿지 않거든요. 욕망을 어떻게든지 누르면 옆에서 튀어나오기 때문에 그 욕망을 생생한 그대로 빨리 충족시키는 게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해요.”     책에는 그가 욕망을 충족하는 나름의 방식과 구체적 생활의 면면이 흥미롭게 드러난다. 그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하지 않는다. 책의 내용을 절대화하는 대신 “내 삶의 유일한 저자”는 “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을 비틀어 “반사적으로 노를 마구 젓고 싶어지지만 실은 물이 들어올 때야말로 정신 차리고 재빨리 도망을 가야 한다”고 책에 썼다. “무슨 일이든 하다 보면 무리를 하기 쉽다”는 맥락에서다.   스스로에 대해 그는 “포기를 많이, 굉장히 잘해왔다”고 했다.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 등 구직에 나서지 않은 것을 포함해 그만의 경험과 이유도 책에 담담히 적었다. “100등에서 90등, 70등까지 가는 것과 달리 3등이었을 때 2등, 1등으로 올라서는 건 어렵잖아요. 그 마지막 경쟁을 싫어해서 회피하는 걸까 라는 의문도 들어요.”     그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한들 그는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글이 공감을 얻는 데 놀란 눈치다. 이후남 기자미국 시골살 저자 박혜윤 시골 생활 워싱턴주 시골

2022-10-18

[독자 마당] 그리운 아버지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시골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본 유학을 갔으나 갑작스러운 할아버지 사망으로 집안이 기울었다. 아버지의 어깨에 8명의 동생과 홀로 된 할머니까지 있었다. 학업을 중단하고 직장을 얻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와 동생들을 모두 일본으로 부르셨다.     그때부터 가장으로 가족과 동생을 돌보며 20여년을 일본에서 살다가 해방을 맞아 귀국하셨다. 고향에 가서 할아버지 옆에 묻히고 싶다는 할머니의 간청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간청에 못 이겨 이미 결혼한 동생들과 대가족을 이끌고 한국으로 돌아오셨다. 그때가 해방 이듬해였다.     귀국한 지 4년 만에 6·25전쟁이 일어났다. 집과 재산은 모두 잿더미가 됐다. 그때 나는 국민학교 5학년이었다.     그 후부터 아버지의 고생은 시작됐다. 빈털터리가 된 아버지는 밑천 한 푼 없어 난전 장사밖에 못할 처지였지만 장사는 부끄러워 못 하겠고, 힘든 일은 해본 적이 없어 힘이 부쳤다. 겨우 취직한 것이 시청 사무직이었다. 당시 공무원의 월급은 박봉 중의 박봉이었다.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두 살 터울인 남매가 고등학교에 다녀 학비 대기가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물질이 풍족하지 못한 대신 자식 남매를 기르는데 온갖 정성을 다하셨다. 겨울에는 몸이 약한 어머니보다 먼저 일어나 큰 솥에 물을 데워 놓고 나를 깨우셨다. 아궁이 불을 화로에 담아 방 안에 들여놓고 우리 운동화를 데워, 따뜻한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갈 수 있게 하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따뜻한 밥상 한 번 차려 드리지 못했다. 세월은 자꾸 흘러 이제는 아버지보다 더 나이 많은 노년의 할머니가 됐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어린 딸이 되어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사랑합니다. 생전에 한 번도 못한 고백을 지금 합니다.  노영자·풋힐랜치독자 마당 아버지 할아버지 사망 난전 장사 시골 부농

2022-06-14

[열린 광장] “그만해… 그만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교제하는 목사가 있다. 교제라기보다는 온라인에 올라오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을 표시하는 정도다. 구름도 쉬고 바람도 자고 간다는 추풍령 자락에 있는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담백하게 써 내려가는 그의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올라오던 그의 글이 얼마 전부터 멈췄다. 몇 주가 지난 후에 다시 써나가는 그의 글이 조금 이상했다. ‘병원, 고통, 투병, 간호, 상처’ 이런 우울한 단어가 그동안의 빈자리를 채워나갔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가 사역하는 교회에서 50m 정도 떨어져 이웃하는 집에서 개를 기르고 있었는데 곰사냥과 투견의 혈통을 이어받은 맹견이라고 했다. 얼마 전, 그의 아내가 홀로 산책을 나갔다가 그 맹견에게 공격을 당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왔다고 했다. 그의 글이 멈춘 것도 그때였다.     주인들이 멀리 일을 보러 나간 사이 어찌 된 일인지 맹견을 가둔 철장 문이 열렸고, 산책하러 나갔던 그의 아내를 덮쳤다고 했다. 육중한 몸으로 달려든 맹견을 이겨내기에 그의 아내는 너무도 연약했다. 맹견의 공격을 받은 그의 아내는 살려달라고 소리쳤지만 인적 없는 산골에서 가련한 여인의 부르짖는 소리는 허망한 울림으로 사그라들 뿐이었다.     저항하고 때려도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날카로운 이빨로 팔뚝이 으스러지도록 물어뜯고 있는 맹견의 화만 돋울 뿐이었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 ‘아 이렇게 죽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할 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왼팔을 물고 흔드는 맹견의 머리를 오른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해… 그만하자….”   그러자 맹견의 눈빛이 부드러워지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이빨을 풀고 집으로 돌아가더란다. 그렇게 맹견에게서 풀려난 그녀는 부랴부랴 남편에게 연락했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남편은 아내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렸다. 동네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다는 말에 대학병원으로 가서 응급 처치와 수술을 받고 겨우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고비는 넘겼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고 했다. 철심을 박고 이식해 놓은 뼈가 잘 붙어야 하고, 큰 상처들은 성형해야 한다고 했다. 재활 치료도 해야 하고, 심리적 트라우마도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했다.     ‘그만해… 그만하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그녀가 했다던 이 말이 마음속에 남아 떠날 줄을 모른다.     코로나19라는 맹견에게 물린 세상은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해서 큰 노력을 기울였다. 마스크 쓰기와 거리 두기, 자가 격리는 기본이고, 백신도 여러 차례 맞으면서  어떻게든 코로나바이러스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런데 맹견처럼 날카로운 이빨로 아귀차게 물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웬만해선 이빨을 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도무지 벗어날 것 같지 않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위기 속에서 개에 물린 한 시골 목회자의 아내가 했다던 그 말을 되새겨본다. ‘그만해… 그만하자…’ 누가 알겠는가? 코로나바이러스가 이빨을 풀고 슬그머니 자취를 감출지 말이다. 새해에는 제발 그런 세상이 오기를 기대한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열린 광장 병원 고통 동네 병원 시골 목회자

2021-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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