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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의 통일정책, 이대로 좋은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22시를 기해 발효된 휴전협정으로 끝났지만 한반도는 아직도 긴장 상태다.     남한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며 경제개발과 새마을운동 등을 통해 급속한 경제 발전의 틀을 마련했고 이후 민주 사회로 발전해 갔지만, 북한은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책’보다 독재 세습체제 확립과 군사적 대결에만 몰두했다. 인민을 위한 정책이 뒷전이다 보니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겪었고 지금도 어려움은 이어지고 있다.   사실 6·25 전후  북한의 경제는 남한에 앞서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상황이 달라졌다. 남한은 미군이 안보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해 준 덕에 경제 성장과 사회 발전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적화통일만이 경제 부흥을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지금까지 핵무기 개발에만 매달리고 있다.   1990년대 냉전 종식과 함께 체제 경쟁도 끝났지만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며 세계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만일 북한도 그 흐름에 편승했다면 시장경제로 전환할 수 있었고, 남북한 경제교류 확대와 함께 자연스럽게 시장 통합도 이뤄질 수 있었다고 본다.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는 새로운 외교 철학으로 미국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그는 소련은 더는 미국을 주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경제성장과 안보를 함께 꾀하는 협력 국가라고 했다. 경쟁적으로 군비를 늘리는 것보다 개혁, 개방 정책을 통해 실질적인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1989년 12월 몰타회담에서 미·소 정상은 양국의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1990년대가 시작되며 냉전 종식과 함께 체제 경쟁도 끝이 난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 체제가 더는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줬다. 아쉬운 것은 북한 체제가 이러한 국제적 흐름을 타지 못했다는 점이다. 반면 당시 노태우 정부는 이런 기회를 잘 활용했다. 1991년의 남북한 기본합의서, 1992년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등이 그것이다.  1994년에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 ‘제네바 합의’가 성사되기도 했다.   합의서에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내용도 담겨 있지만, 기본적으로 상호불가침·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군사적 측면이 컸다. 냉전 종식의 흐름에서 북한이 가진 남한에 의한 인위적 흡수 통일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대신 핵 개발에 대한 야욕을 포기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북한은 냉전이 종식되면서 자본주의 체제가 사회주의 체제를, 즉 우월한 체제가 열등한 체제를 흡수하는 ‘흡수통일’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북한은 체제 유지를 강화하는 이른바 ‘경제·핵 무력 병진 노선’을 택한 것이 아니겠는가.   북한은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력 정책’ 헌법화를 발표하며 ‘비핵화’는 더는 협상 의제로 다루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어 지난해 말부터는 남북관계를 ‘전쟁 중인 두 교전 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노골적으로 남북 대결 구도를 설정하고 있다.   지난 1월 16일 북한의 김정은은 “민족 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 연설했다. 남북 관계가 사실상 적대적 두 국가의 관계임을 선언한 것이다. 더 나아가 북한은 ‘대남 흔적’ 지우기 작업을 하고 있다. 주민들이 자녀 이름에 ‘하나’, ‘한국’, ‘통일’ 등 통일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북한은 통일이 아니라 한반도에 적대적 두 국가의 고착화를 확고한 정책으로 하고있다. 그렇다면 남한도 통일정책의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박철웅 / 일사회 회장기고 통일정책 한국 사회주의 체제 독재 세습체제 체제 경쟁

2024-06-23

[삶의 뜨락에서] 황금보다 빛났던 아름다운 시절

‘Dawn of the Belle Epoque’가 원제인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를 읽었다. 오늘날 세계 예술과 패션, 화려한 문화를 자랑하는 성지로서의 매력을 가진 파리는 바로 이 벨 에포크 시대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파리는 문명의 중심이다. 왕국도 제국도 아닌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인류 전체이다”라고 빅토르 위고는 당당하게 말했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웠던 시대, 벨 에포크, ‘빛의 도시 파리’를 눈부시게 밝혔던 예술가들의 이야기,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베르트 모리조, 오귀스트 로댕, 클로드 드뷔시, 사라 베르나르 등 파리를 거점으로 활동하며 재능을 꽃피웠던 수많은 예술가의 이야기를 당시 프랑스 정치와 경제 상황과 곁들여 맛깔스럽게 쓰인 보물과 같은 예술사이다.     Mary McAuliffe는 예술사상 가장 다이내믹했던 이 시기(1871~1900), 파리에 모여든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 맞춰 그들의 작품활동, 작품세계 그리고 그들의 친분까지 흥미롭게 적어 내려간다. 이 시대의 미술, 문학, 음악, 무용, 연극 등의 예술 분야는 물론이고 건축, 사업, 정치의 주요 인물들과 사회적 이슈까지 논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세계 수도로서 파리, 역사 속의 파리로 타임캡슐을 타고 다녀온 듯한 감동에 젖어 한동안 행복했다. 프랑스는 그 당시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난 후 국민의 사기가 침체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봉기가 일어나며 유혈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노동자들이 주축이 된 파리시민들은 파리코뮌(1871, 3.28~5.28)이라는 사회주의 자치정부를 세운다. 이는 세계 최초의 민주적이며 혁명적인 자치정부였고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주의 정책을 실행에 옮긴 정부이다. 비록 존속 기간이 2개월밖에 안 되지만, 이들의 활동은 사회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고 결국 유혈 상태를 맞고 무참히 짓밟힌다.     그 후 왕정파와 공화파의 적대감은 커가고 공화국과 교회 간에도 그에 못지않은 적대감이 계속된다. 이와 같은 사회적 불안으로 파생된 온갖 문제와 결핍은 오히려 이 시대를 강하게 꾸려나가는 역동적인 힘이 되었다. 그 당시 졸라는 ‘목로주점’(1877)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민중의 참된 냄새를 지닌 보통 사람들에 관한 최초의 소설을 쓴다. 영국의 셰익스피어처럼 프랑스에는 빅토르 위고가 있다.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1831), 레미제라블(1862)은 파리의 자존심이다.     프랑스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서 있던 빅토르 위고(1802~1885)의 시대가 가고 에밀 졸라의 시대가 온다. 베르트 모리조는 인상 주위 화풍의 개척자이다. 그 후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는 인상파 화가들로 기성 화단의 무시와 조롱을 받아 가면서도 착실하고 꾸준하게 그들의 입지를 굳혀나간다. 천재 조각가 로댕이 1877년에 ‘청동시대’를 출품했을 때 이 작품은 찬탄과 의혹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비평가들은 실물의 본을 뜨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조각상을 만들 수 있을지 의아해했다. 심지어는 시체로부터 본을 뜬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자 로댕은 그의 예술적 정직성과 작품에 생명과 영혼을 불어넣어 생동감을 주고자 하는 그의 깊은 고뇌에 상처받기도 했다. 그 후 로댕은 지옥의 문, 키스, 영원한 봄 등 불멸의 작품을 남겼으며 에펠은 에펠탑, 자유 여신상을 제작했다.     졸라는 1895년에 프랑스 사회를 둘로 나눈 드레퓌스 사건에서 부당하게 스파이로 몰린 유대인 군인 드레퓌스 대위를 위해 ‘나는 고발한다’를 쓰는 등 사회의 불의에 맞서 싸운다. 이 소설은 1945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는 데 크게 공헌했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그 시대를 살고 간 그들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그들은 서로 교류하고 공감하고 동지애를 아낌없이 나누며 서로 돕고 살다 간 아름다운 영혼들이어서 황금보다 빛났던 아름다운 시대를 꽃피울 수 있던 것이 아닐까.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황금 사회주의 자치정부 작품활동 작품세계 사회주의 정책

2023-03-24

캐나다 사회주의 국가답게 돌봄사회에 더 안전한 국가로 인식

 미국과 달리 유럽 선진국과 같이 사회주의적 복지를 하고 있는 캐나다가 미국보다 국민으로부터 더 큰 만족을 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앵거스리드 연구소(Angus Reid Institute)가 23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서 캐나다인의 78%가 캐나다가 돌봄사회(caring society)라고 응답해 미국의 36%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았다.   전체적으로 안전한 국가냐는 질문에서도 외국 침략 전쟁과 그에 대한 보복으로 테러를 당하고, 전미총기협회(NRA)에 의해 총기 소지가 쉬운 미국 국민 입장에서는 43%만이 안전하다고 대답해 캐나다의 89%에 비해 절반에도 못미쳤다.   정부의 시스템이 좋냐는 질문에도 캐나다는 51%로 미국의 34%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캐나다 국민은 살고 있는 나라가 자랑스럽냐는 질문에도 75%가, 번영하고 있는 국가냐는 질문에도 69%가 동의했다. 세계 문제에 있어 긍정적인 역할자냐로 보는 견해도 62%였다. 반면 인종차별적(racially divided)인 국가냐에 대해서는 38%만이 수긍을 했다.   각 주별로 볼 때 BC주는 안전한 국가에 84%, 돌봄사회에 73%, 자랑스러운 국가에 70%, 번영하는 국가에 61%, 세계 문제에 긍정적인 역할자냐에 54% 등 전국 평균에 모두 못미치는 응답을 했다.   반면 좋은 정부냐에 51%로 전국 평균과 같았고, 반대로 부정적인 의미의 인종차별적 국가냐에 44%로 전국 평균보다 높았다. 사실 인종차별적인 국가라고 보는 대답은 퀘벡주의 25%를 빼고 모두 전국 평균보다 높았다. 사스카추언주가 51%로 가장 높았고, 대서양연해주도 45%였으며, 온타리오주는 41%를 보였다.   한편 캐나다 거주자로 지난 12개월 중 미국을 방문할 대 미국 국경을 통과 절차를 밟을 때 어떤 느낌이었느냐는 질문에 유색인종( visual minorities)이 유럽계 백인보다 3배나 더 기분 나쁜 경험을 했다고 대답을 했다.   이번 조사에서 15일부터 17일까지 캐나다 대상으로는 1649명을 대상으로 실시돼, 표준오차가 +/- 2%포인트였다. 같은 기간 미국인 1025명을 대상으로 조사가 됐으며, 표준오차는 +/- 3%포인트였다.   표영태 기자미국 국가 캐나다 사회주의 캐나다 국민 캐나다 거주자

2023-03-23

[시로 읽는 삶] 색깔의 유혹

아무래도 나는 빨강이 되어가는 중이다// 빨강을 만난 건 겨울이었으나 겨울이 아니었더라도, 그 흰 눈 위에 떨어진 핏방울 혹은 얼음 속의 불// 우리는 잠시 스쳤을 뿐인데// 묻었나봐/ 꼭 여며두었던 소매 끝이거나 긴 목도리의 한쪽/ 열꽃이 번지고// 나는 사흘에 한 번 빨강을 앓고 하루에 한 번 그를 앓으며// 빨강이 되어간다/ 빨강은 얼어붙은 불이거나 불타는 얼음(…)   -유병록 시인의 ‘빨강’ 부분     코로나가 시작되고 우울감이 가중되던 때 빨간색으로 차를 바꿨다. 토스터도 커피포트도. 세상이 다 칙칙해 보이고  마음도 바닥으로만 길을 내서 빨강이면 좀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았다. 주위에서는 웬 빨강, 하면서 빨강색 차는 도난의 위험도 크다고 하고 너무 튀는 것 아니냐며 다소 의아해했다.   빨간색 차가 우울감을 해소하는 데 공헌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빨강의 역할로  좀은 기분이 나아지기도 한 것 같다. 코로나라는 터널을 어둡지만은 않게 지내왔다고 생각된다. 얼어붙은 불이거나 불타는 얼음으로 표현되는 빨강의 내부에는 생명력이 잠재해 있음은 확실하다.   ‘색채의 향연’ (장석주 지음)은 색에 관한 통찰이 매력적인 책이다. 색에 관한 작가의 관찰이 남다르다. 지은이는 “사람이 식별할 수 있는 색깔은 1000개 정도다. 놀라지 마시라, 디지털 기술로 빛의 삼원색을 조합해서 만들 수 있는 색깔은 1600개! 이토록 많은 색깔은 저마다 만물과 조응하면서 마음 깊은 곳 금(琴)을 울린다. 색깔은 오감과 비벼지면서 감정과 심리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고 기술했다.   그 많은 색깔 중에서도 빨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빨강은 생명의 원점이다. 생명은 무엇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한 절대 가치에 속한다. 그래서 빨강은 고귀하다. 빨강은 이성을 압도하는 본성의 색깔이다, 열정과 희열은 검정도 아니요 노랑도 아닌 빨강을 타고 온다. 빨강은 사랑과 열정의 신호색이다”   적색은 가시광선 중에서 가장 긴 파장을 가지고 있다. 갓난아이에게 가장 먼저 인지되는 색이라고 한다. 인류가 찾아낸 대표적인 빨강의 원천은 진드기류의 빨간색을 띤 벌레였다. 그중에서도 질 좋은 빨강을 제공하는 ‘코치닐’은 최상이다. ‘코치닐’은 선인장에 기생하는 연지벌레로 붉은색을 띠는 암컷만을 말린 후 붉은 색소로 사용된다.     에너지와 생명의 상징인 빨강,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도 크다. 격렬, 폭력, 무자비, 혈투, 전쟁, 파괴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빨강의 문화사’를 쓴 스파이크 버클로(회화복원 전문가)는 신화, 종교, 과학, 언어학, 고고학, 인류학, 미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빨강의 변화무쌍한 일대기를 추적한다. 그에 의하면 오늘날 붉은 깃발은 흔히 공산주의, 좌파, 혁명, 노동자를 상징한다. 이는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러시아 볼셰비키와 중국 공산당 등이 붉은색을 상징으로 삼은 탓이다.   하지만 사실 빨강은 각 나라의 국기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색이다. 전 세계 80%의 국기에 빨간색이 포함되어 있다. 빨강은 혁명의 색 이전에 왕의 위엄과 헌신, 정치적인 인내심을 나타내는 색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빨강은 왕실과 귀족들이 선호하는 색이었다.     흰색에서 검정에 이르기까지 잦아들고, 내치고, 부딪치면서 탄생했을 색깔들, 밝고 부드러운 색과 차고 서늘한 색들이 대치하지 않고 스며들어 가며 봄은 색깔을 탄생시킨다. 조성자 / 시인시로 읽는 삶 색깔 사실 빨강 사회주의 혁명 디지털 기술

2023-03-14

한미연합회 ‘사회주의 규탄 결의안’ 환영

한미동맹 강화와 시장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활동하는 한인 비영리단체 한미연합회(AKUS.America Korea United Society)가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연방의회 결정을 환영한다고 발표했다.   한미연합회는 8일 “연방하원은 지난 2월 2일 마리아 엘비라 살라자르 의원이 발의한 ‘사회주의 공포 규탄 결의안’(H. CON. RES. 9)을 찬성 328표 대 반대 86표로 통과시켰다”며 “이를 크게 환영하며, 연방의회가 앞으로도 이런 높은 가치의 법안을 만들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위대한 업적을 쌓아나가기를 촉구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 발표에는 미주본부(뉴저지) 김영길 총회장을 비롯해 ▶뉴욕(홍종학) ▶뉴욕 오렌지카운티(이호제) ▶필라델피아(김철수) ▶커네티컷(강병목) 등 각 지역 회장들이 동참했다.   한미연합회는 성명서에서 “북한의 핵 확산 우려 상태에서 ‘평화 논의’는 매우 위험하고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북한의 공산주의 정권은 한반도 평화를 파괴했고 한민족을 갈라놓았다”며 “여전히 수많은 이들의 인권을 위협하고 생명을 빼앗는 독재주의가 북한을 지배하고 있고, 한반도 평화법안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이며 이는 ‘가짜 평화’로, 굳건한 안보 토대 위에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가져올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미연합회 활동과 회원 가입·후원 문의는 웹사이트(usakus.org)를 참조하거나, 전화(571-695-0004) 또는 e메일(info@usakus.org)로 하면 된다.   박종원 기자한미연합회 사회주의 한반도 평화법안 사회주의 규탄 한미연합회 활동

2023-02-09

[시로 읽는 삶] 그때도 좋았고 지금도 좋다

길가에 서 있는 자두나무 가지로 만든/ 매운 칼 같은 향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손가락 끝에서 미끄러지는 생기의 방울들,/ 달콤한 성적 과육,/ 안뜰, 건초더미, 으슥한/집들 속에 숨어 있는 마음 설레는 방들,/ 지난날 속에 잠자고 있는 요들,/ 높은 데서, 숨겨진 창에서 바라본/ 야생 초록의 골짜기:/ 빗속에서 뒤집어엎은  램프처럼/ 탁탁 튀며 타오르는 한창때.   -파블로 네루다의 ‘젊음’ 전문       연령층이 다른 중년 이후의 여자들 몇이서 만남을 가졌다. 대체로 연령대에 따라 관심사가 다르다. 50대는 아직 욕망의 잔해가 있다. 외모에 대해서도 포기가 없고 사회적 성취도에 대해서도 양보가 없다. 60대는 비교적 사는 일의 각박함을 내려놓기도 한다. 살아온 날들을 쓰다듬으며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열망으로 아직은 역동적이다. 70대는 말할 것도 없이 건강이 관건인 것 같다. 시간에 대해 초조함이 크다 보니 마음이 바빠지고 있다.     그런데 공통적인 것은 젊음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리움이라고 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쓸쓸함이다. 70대는 십년만 젊어 육십이면 좋겠다고 말하고 60대는 오십만 되었어도 좋겠다고 한다. 50대는 사십이면 겁날 것이 뭐가 있을까 싶다고 했다.   나이에 관한 한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보니 그저 아쉬움의 토로이겠으나 자기의 나이가 가장 위기의 나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누구나 늘어가는 나이를 반갑게 맞이하기가 꽤 어려운 게 아닌가 싶다.   젊음의 말초신경은 미세한 것까지 감지되고 행동이나 사고력도 민첩하다. 생기의 물방울들이 파르르 떨려 삶의 기능은 절정에 이른다. 야생초록의 골짜기를 말처럼 달려가는 진취성이 있어 당돌하기까지 하고 설탕 같은 키스로 녹아내리는 육체는 단내를 풍긴다.     젊음은 생의 한창때인 어느 한 지점을 말하는 것이겠다. 젊음으로 표상되는 푸르름은 찬란하긴 했으나, 최고의 시절이었을 것이지만, 모든 청춘이 푸르지는 않았다. 신체적으로 왕성한, 피돌기가 빠르고 심장 박동은 거친, 그런 때 우린 얼마나 큰 혼돈을 겪기도 했었나. 지금 생각해보면 젊음은 반짝이는 순간임에는 틀림이 없다. 가장 좋은 때, 그래서 불안하고 불안정했는지도 모른다. 주어진 젊음을 맘껏 내 것이라고 누리지 못했다. 현실이라는 피치 못할 그물에 걸리기도 했겠으나 미래라는 불모의 세계는 우리를 과하게 끌어안기도 했다.   오늘은 내 생의 가장 젊은 날이다. 심지의 불이 타면서 초가 녹듯 젊음의 기운을 태워가며 늙는다면 우린 언제나 젊다. 탁탁 튀며 타오르는 한창때는 아닐지라도 계절을 느낄 오감이 살아있고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는 뛰는 심장이 있다. 아직 탐색해야 할 세계가 있고 아직 알아야 할 것들을 향한 열망이 있는 한 우리는 젊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좋았다. 퍼덕이는 날갯짓으로 충분했다. 지나간 날들, 거기에는 지금보다 앳됨이 있었고 꿈꾸던 것이 아직도 배회하고 있을 것이어서 매운 칼 같은 향내로 가끔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때도 좋았지만 지금도 좋다. 주름진 모습으로 시간과의 화해를 모색하는, 내일보다는 젊은 오늘, 지금도 좋다. 이 말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날들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파블로 네루다는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칠레의 시인이다. 사회주의 정치가이기도 하다. 영화 ‘일 포스티노’는 네루다를 주인공으로 시인과 우편배달부의 우정이 아름다운 영화다. 조성자 / 시인시로 읽는 삶 파블로 네루다 사회주의 정치가 안뜰 건초더미

2023-01-17

[중앙 시평] 중국 경제, 예외는 없다

앞으로 상당 기간 세계에서 가장 행보가 주목되는 국가는 중국일 것이다. 특히 중국의 경제와 대외정책은 국제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과연 중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 경제를 통해 대외정책의 기조를 예상할 수 있을까. 중국이 2030년까지 5~6%대의 고속 성장을 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중국이 특별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많다. 다른 나라의 경우엔 소득이 높아질수록 성장률이 하락하는 법칙이 작동하겠지만 중국은 예외라는 것이다. 노동력이 여전히 풍부할 뿐만 아니라 교육 수준이 이전보다 높아짐에 따라 추가적인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생각한다. 또 엘리트의 집단학습과 상호경쟁 덕분에 유능한 정치인이나 관료가 계속 배출될 것으로 믿는다.   ‘중국 특별론’은 학문의 검증을 통과하기 어렵다. 노동력의 원천은 시간이 지나면 마른다. 이농(離農)은 농촌인구가 줄고 도시가 포화상태가 되면서 사라진다. 출산율도 하락한다. 더욱이 중국은 오랫동안 고집해 온 ‘한 자녀 정책’ 때문에 노동 공급이 크게 줄 수밖에 없다. 교육으로 인한 인적자본 축적 효과도 크지 않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세대를 상대적 고학력 세대가 대체하는 기간에도 이로 인한 성장률 증가는 연 1% 이하에 머물렀다. 더욱 믿기 힘든 주장은 집단학습 덕분에 중국이 발전한다는 논리다. 과연 공산당 일당 체제에서의 집단학습이 민주주의에서의 자유로운 교육과 토론보다 인적자본 배양에 효과적일까. 그렇다면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는 ‘제로 코로나 정책’은 어떻게 나온 것인가.   실상 중국 경제는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 장기 성장률을 결정하는 중국의 생산성은 크게 하락했다. 1978년부터 2008년까지 중국 경제가 연평균 10% 성장했을 때 이 중 3분의 2는 자본과 노동, 3분의 1은 생산성이 상승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해마다 3~4% 오르던 생산성 증가율은 2009년부터 연 1% 이하로 떨어졌고, 2014년부터는 더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즉 지난 15년 동안 중국의 고성장은 공장을 짓고 주택·도로 등의 인프라에 투자한 결과일 뿐 구조개혁과 혁신의 효과는 크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본과 노동 투입에 의존하는 외연적 성장(extensive growth)은 지속할 수 없다. 노동 공급은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고 자본투자로 인한 성장률 제고 효과는 이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전의 성장률을 유지하려면 빚을 내어 더 많은 자본을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제 중국은 부채주도 고속 성장과 연 3∼4%대의 밋밋한 성장 사이 기로에 섰다.   중국이 빠진 중진국 함정의 골은 깊다. 공산당 일당 지배라는 정치제도가 그 뿌리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장기 고도성장은 사회주의 경제를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체제이행에다 농업국이었던 중국이 공업국으로 변모하는 경제발전이 더해진 결과다. 그래서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했다. 그러나 도농(都農)간 인구이동에 기반을 둔 성장의 유효기간은 끝났고, 체제이행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남겨 놓은 채 중단되었다. 바로 국유기업과 국영은행의 사유화다. 효율적인 사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도록 만들고 경쟁에서 퇴출당한 국유기업은 파산시켜야 생산성이 올라간다. 그러나 국유기업 파산은 공산당의 이익에 반한다. 더욱이 시진핑 정부가 들어선 다음 국유기업의 사유화도 중단됐다. 이런 국면에 은행의 사유화는 꿈꿀 수도 없다. 생산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주된 통로가 다 차단되었다.   국유기업과 국영은행은 공산당을 경제적으로 지탱하는 기둥이다. 국유기업은 사기업보다 국영은행으로부터 저리(低利)로, 돈을 더 쉽게 빌릴 수 있다. 이 자금을 그림자 금융에서 더 높은 금리로 대출하거나 부동산 사업에 활용하기도 한다. 심지어 국유기업 경영자가 공산당원일 경우에는 개인 특성이나 기업 성과와 관계없이 비(非)공산당원일 때보다 평균적으로 더 높은 보수를 받는다. 공산당원이라는 정치적 관계를 매개로 공산당, 기업, 은행이 밀착한 구조다. 이 밀착이 긴밀할수록 공산당원의 가치는 올라가고 공산당에 대한 충성심도 높아진다. 공산당과 국유기업 및 국영은행이 정치경제 카르텔을 형성한 셈이다. 생산성을 높이려면 이 고리를 끊어야 하지만 시진핑 주석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하다.   중국 경제 향방은 국제질서와 지정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만약 시진핑 정부가 성장률 감소를 무릅쓰고 부채를 축소하는 정책을 편다면 대외정책도 장기적 관점을 견지할 것 같다. 적어도 몇 년 동안은 대외적 위험을 회피하고 경제적 내구력을 기르는 데 집중할 개연성이 높다. 반면 부채축소라는 안정화 정책을 포기하고 인위적으로 성장률을 높이려 한다면 마음이 급하다는 신호다. 대외정책도 단기 승부 쪽에 방점을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근본적인 정치개혁 없이 중국이 중진국 함정을 돌파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정치와 경제가 서로 피 흘리며 충돌하는 지점에 중국이 와 있다. 그리고 세계가 그런 중국 위에 얹혀 있다. 정초에 소망 대신 걱정이 앞서는 이유다. 김병연 /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중앙 시평 중국 경제 장기 성장률 성장률 증가 사회주의 경제

2023-01-06

[아름다운 우리말] 말의 힘과 언어관

언어관이라는 말은 언어를 보는 관점을 말합니다. 언어관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언어신성관이 있습니다. 이 관점은 말 그대로 말을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을 신성하게 보는 이유로는 말을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동물이 구분되는 이유를 말의 사용에서 찾고, 말을 신이 주신 선물이기에 함부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언어신성관은 종교적인 관점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종교의 경전이나 기도문을 옛말로 사용하고, 바꾸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언어신성관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언어를 통해 신과 소통하기에 최초의 언어가 신의 언어에 더 닮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신성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어신성관은 일반 사회에서는 언어권위관이 됩니다. 언어권위관 역시 언어의 변화에 대해서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조어나 유행어를 잘못된 것으로 보고, 표준이나 규범을 세우려고 노력합니다. 말에 권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언어 권위관인 셈입니다. 언어권위관은 우리 삶 속에서 널리 퍼져있습니다. 아이들의 말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거나 속어를 나쁘게 보는 것 등도 모두 언어권위관에서 나오는 관점입니다. 아마 우리들도 모르는 사이에 언어권위관에 사로잡혀 있을 겁니다.   언어신성관이나 언어권위관과는 달리 언어를 의사소통의 도구로 보는 입장도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을 언어도구관이라고 합니다. 언어도구관을 최근에 나온 관점처럼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언어는 시작부터 도구관의 산물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뜻을 통하게 하는 게 언어의 역할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에서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서 서로 통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부분도 바로 언어도구관인 셈입니다. 그런데 훈민정음에서는 말이 변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아서 순경음 비읍, 반치음 등을 만들고 사용하게 됩니다. 언어권위관도 있었던 셈입니다. 거기에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글자를 만들어 소통을 한 것이니 위로의 도구, 소통의 도구였던 셈입니다.   언어도구관은언어혁명도구관 등으로 모습을 바꾸기도 합니다. 도구로서의 기능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능의 언어를 원하는지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진 겁니다. 사회주의 혁명에서 언어를 도구로 사용하면서 언어를 혁명의 도구로 보는 입장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입장에 의해서 문맹 퇴치에 앞장서게 되거나 쉬운 말 쓰기 운동 등이 일어납니다. 결과적으로는 민중을 위한다기보다는 혁명을 위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자본주의에서도 언어의 실용성을 강조하게 됩니다. 특히 국가 간의 교류 또는 침탈이 활발해 지면서 외국어 교육이 발달하게 되는데 외국어 교육의 핵심적인 관점 역시 실용성에 있었습니다.     언어관과 함께 주목해야 할 점은 말의 힘입니다. 말은 세계를 담은 틀입니다. 따라서 말을 안다는 것은 세계를 이해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한 언어를 하나의 세계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의 한계가 나의 한계라는 말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말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어에서 신과 소통하는 사제를 부르는 말은 스승이나 무당이라는 어휘였습니다. 무당이나 점치는 행위인 무꾸리 등의 어원을 말로 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신과의 소통은 말로 이루어진 것이었기에 사제의 말은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록에 남아있는 많은 시가나 무가 등에서 말의 위력을 알 수 있습니다. 가야의 구지가는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만약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위협적인 말을 통해서 지도자를 맞이하는 의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신라의 수로부인 이야기에서 해가라는 노래의 내용과 거의 일치합니다. 우리말에서 말이 힘이 되는 장면은 무수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언어관 모두 언어권위관 도구 소통 사회주의 혁명

2022-10-02

[시론] 국가 비전의 붕괴와 북한 정권의 미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11일 조선노동당 창건 76주년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연설에서 ‘조선혁명’을 이끈 당의 공적을 장황하게 치하했다.     그리고 소위 ‘사상 사업’, 즉 혁명에 대한 믿음과 김 위원장 및 노동당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하는 것과 관련한 여러 문제에 대한 해법을 촉구했다. 문제의 범위와 정도가 퍽 인상적인데, 북한 주민들의 믿음이 빠르게 약해지고 당 조직이 부패하고 무너져내리고 있는 걸 암시한다.   김 위원장은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사람들의 의식 상태와 사회적 환경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인정했다. 또 사상 사업의 요체를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참된 충신, 열렬한 애국자로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많은 주민이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다. ‘법기관’에 대한 당의 지도를 강조한 건 경찰(사회안전국)이 당 지시를 무시하고 있음을 안다는 뜻이다. 당 고위 일꾼을 두고도 “당 정책을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는 것을 체질화”해야 하며, “건전한 도덕 풍모를 소유”해야 한다고 했다(즉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간 본 칼럼에서 북한 정권이 마주한 ▶코로나19 ▶경제 침체 ▶고위층 분열 등 여러 위기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조선혁명에 대한 믿음, 즉 국가 비전에 대한 믿음이 붕괴할 경우도 특히 간부층까지 그럴 경우 정권에 치명적일 수 있다.   이런 비전은 영국의 인도 통치 말기처럼 그저 소멸할 수 있다. 200년 가까이 인도인들은 정도 차는 있어도 발전과 번영이란 영국의 비전을 믿었기에 영국의 지배를 수용했다. 하지만 1945~46년 생각이 달라졌고 영국의 통치는 어느 관료의 말마따나 ‘헝겊 인형에서 톱밥 새듯이’ 힘이 빠졌다. 47년 인도는 독립했다.   비전은 때론 순식간에 파괴되기도 한다. 루마니아 독재자였던 차우셰스쿠는 사회주의 블록에서 국가 정체성을 지키고 국익을 수호할 지도자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989년 12월 당국에 의한 반체제 목사의 교단 축출 사건이 계기가 돼 시위가 거세졌고 같은 달 21일 그의 연설은 야유 받았다. 4일 후 그는 처형됐다. 반면 벨라루스의 루카셴코는 지난해 부정선거로 신뢰를 잃었지만, 정보기관의 충성 덕에 반정부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정권을 유지했다.   북한은 수십 년간 강력한 비전에 의해 지탱됐다. 김일성 주석 땐 ‘아버지 수령의 보살핌을 받는 사회주의 지상낙원’이었고, 90년대 기근 이후엔 ‘적대적인 외세 공격을 받는 희생양’이다. 현명하고 자애로운 김씨 일가만이 핵무기 개발을 통해 북한을 속박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의 이번 연설은 두 번째 비전마저 퇴색하고 있고 주민은 물론 당 일꾼마저 정권을 믿지 않고 있다는 걸 시사한다. 동시에 김 위원장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해법을 찾은 것 같지는 않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 번쩍이는 고층 건물 영상을 방영하며 새 비전을 제시하려고 애쓰는 듯했으나 씁쓸한 실패가 됐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이 외국인들처럼 북한을 ‘잔인하고 우스꽝스러운 지도자가 이끄는 불합리한 국가’라고 보게 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경계한 “사람들의 의식 상태에서 일어나는 커다란 변화”다. 북한 정권엔 끝장일 수 있다.   어찌 될까. 영국의 인도 통치처럼 끝날까. 아니면 루마니아처럼 될까. 성난 군중이 갑자기 김일성광장에 모여 변화를 요구하면 김 위원장이 루카셴코처럼 시위대를 강제해산할 수 있을까. 경찰이 방관하진 않을까. 주민을 향한 발포 명령에 군이 따를까. 차우셰스쿠처럼 외려 그가 공격당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국가 비전에 대한 신뢰 추락으로 북한 정권이 자체 붕괴한다는 발상이 터무니없게 들릴 수도 있다. 영국령 인도에서도, 루마니아에서도 불가능해 보였었다.  존 에버라드 /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시론 북한 국가 국가 정체성 국가 비전 사회주의 지상낙원

2021-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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