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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그때도 좋았고 지금도 좋다

길가에 서 있는 자두나무 가지로 만든/ 매운 칼 같은 향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손가락 끝에서 미끄러지는 생기의 방울들,/ 달콤한 성적 과육,/ 안뜰, 건초더미, 으슥한/집들 속에 숨어 있는 마음 설레는 방들,/ 지난날 속에 잠자고 있는 요들,/ 높은 데서, 숨겨진 창에서 바라본/ 야생 초록의 골짜기:/ 빗속에서 뒤집어엎은  램프처럼/ 탁탁 튀며 타오르는 한창때.
 
- 파블로 네루다의 ‘젊음’ 전문
 
 
 
연령층이 다른 중년 이후의 여자들 몇이서 만남을 가졌다. 대체로 연령대에 따라 관심사가 다르다. 50대는 아직 욕망의 잔해가 있다. 외모에 대해서도 포기가 없고 사회적 성취도에 대해서도 양보가 없다. 60대는 비교적 사는 일의 각박함을 내려놓기도 한다. 살아온 날들을 쓰다듬으며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열망으로 아직은 역동적이다. 70대는 말할 것도 없이 건강이 관건인 것 같다. 시간에 대해 초조함이 크다 보니 마음이 바빠지고 있다.  
 
그런데 공통적인 것은 젊음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리움이라고 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쓸쓸함이다. 70대는 십년만 젊어 육십이면 좋겠다고 말하고 60대는 오십만 되었어도 좋겠다고 한다. 50대는 사십이면 겁날 것이 뭐가 있을까 싶다고 했다.
 
나이에 관한 한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보니 그저 아쉬움의 토로이겠으나 자기의 나이가 가장 위기의 나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누구나 늘어가는 나이를 반갑게 맞이하기가 꽤 어려운 게 아닌가 싶다.
 
젊음의 말초신경은 미세한 것까지 감지되고 행동이나 사고력도 민첩하다. 생기의 물방울들이 파르르 떨려 삶의 기능은 절정에 이른다. 야생초록의 골짜기를 말처럼 달려가는 진취성이 있어 당돌하기까지 하고 설탕 같은 키스로 녹아내리는 육체는 단내를 풍긴다.  
 
젊음은 생의 한창때인 어느 한 지점을 말하는 것이겠다. 젊음으로 표상되는 푸르름은 찬란하긴 했으나, 최고의 시절이었을 것이지만, 모든 청춘이 푸르지는 않았다. 신체적으로 왕성한, 피돌기가 빠르고 심장 박동은 거친, 그런 때 우린 얼마나 큰 혼돈을 겪기도 했었나. 지금 생각해보면 젊음은 반짝이는 순간임에는 틀림이 없다. 가장 좋은 때, 그래서 불안하고 불안정했는지도 모른다. 주어진 젊음을 맘껏 내 것이라고 누리지 못했다. 현실이라는 피치 못할 그물에 걸리기도 했겠으나 미래라는 불모의 세계는 우리를 과하게 끌어안기도 했다.
 
오늘은 내 생의 가장 젊은 날이다. 심지의 불이 타면서 초가 녹듯 젊음의 기운을 태워가며 늙는다면 우린 언제나 젊다. 탁탁 튀며 타오르는 한창때는 아닐지라도 계절을 느낄 오감이 살아있고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는 뛰는 심장이 있다. 아직 탐색해야 할 세계가 있고 아직 알아야 할 것들을 향한 열망이 있는 한 우리는 젊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좋았다. 퍼덕이는 날갯짓으로 충분했다. 지나간 날들, 거기에는 지금보다 앳됨이 있었고 꿈꾸던 것이 아직도 배회하고 있을 것이어서 매운 칼 같은 향내로 가끔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때도 좋았지만 지금도 좋다. 주름진 모습으로 시간과의 화해를 모색하는, 내일보다는 젊은 오늘, 지금도 좋다. 이 말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날들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파블로 네루다는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칠레의 시인이다. 사회주의 정치가이기도 하다. 영화 ‘일 포스티노’는 네루다를 주인공으로 시인과 우편배달부의 우정이 아름다운 영화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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