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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주삿바늘과 아메리칸 치즈

내가 전 병원의 ‘lunch coverage’를 맡는 날, 점심시간 끝 무렵. ‘Code Green’, 위기상황을 알리는 확성기에서 명시하는 장소가 3층 식당이다. 어느 병동 환자가 무슨 일을 터뜨렸을까.   나이가 스물 안짝으로 뵈면서 좀 뚱뚱한 여자환자가 식당 앞 복도 벽에 등을 대고 바닥에 다리를 뻗은 채 ‘L-shaped’, 니은(ㄴ)자로 앉아있다. 병동직원 서넛이 그녀를 둘러싸고 무언지 큰 목소리로 설득하고 있는 상황. 환자는 눈을 아래로 깐 채 딴생각을 하고 있는 기색.   무슨 일입니까? 글쎄, 식사를 끝내고 다들 병동으로 돌아갔는데 이 환자 혼자서만 벽에 기대앉아 한마디 말도 없이 꼼짝달싹하지 않고 있는 거예요. 얘는 평소에 남들과 의사소통을 곧잘 하는 편입니까? 암, 그렇고 말고요.   이름이 뭐니? 도로시.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 보거라. 음, 치즈 샌드위치요. 금방 점심을 먹지 않았니? 그런데도 또 그게 먹고 싶어요. 직원에게 물어본다. 혹시 지금 식당에 치즈 샌드위치가 있습니까? 오늘 메뉴에 없었으니까 없을 겁니다. 얘는 늘 뭘 달라고 하는 버릇이 있어요. 우리가 오냐오냐, 하니까 다른 환자들도 따라 합니다.   주위에 다른 환자들은 없고 ‘Code Green’에 응수한 병원 직원들이 열 명이 넘는다. 환자는 얼른 자기의 소망이 이뤄지지 않을 것을 예감하고 복도 바닥에 드러눕는다. 간호사가 ‘주사’ 오더를 내려달라고 속삭이자마자 환자가 소리친다. 주사를 놔주세요. 나는 주사 맞기를 좋아해요.   도로시는 잠시 후 주사를 맞지 않고 물약을 마신다. 그리고 고분고분하게 병동으로 귀환한다. 몇 살이냐? 19살이요. 이마와 뺨에 여드름이 무성한 그녀가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이내 대망의 치즈 샌드위치가 병동에 도착한다. 그녀가 빵의 겉 부분을 조심스럽게 떼어내는 도중 빵 두 쪽 사이에서 샛노란 치즈가 노출된다. 아, 저 사각형의 치즈. 오늘 새벽 내가 부엌 냉장고에서 꺼내 서서 먹던 바로 그 아메리칸 치즈.   대부분의 사람은 주사 맞기를 싫어한다. 더구나 왁자지껄한 가운데 여럿이 지켜보는 ‘Code Green’ 현장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우두커니 서서 날카로운 주삿바늘이 엉덩이에 꽂히는 상황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도로시야, 너는 왜 주사 맞기를 좋아하느냐? 주삿바늘이 따끔해서 좋아요.   ‘injection, 주사’의 동사형 ‘inject, 주사를 놓다’는 어원학적으로 ‘안으로 던지다’라는 뜻. ‘~ject’로 끝나는 말로 ‘project, 투사하다’는 앞으로 던진다는 뜻. ‘reject, 거절하다’는 뒤로 던진다는 뜻. 이렇듯 ‘ject’는 기하학적이면서 다이나믹한 말이다. ‘deject, 낙담시키다’의 아래로 던진다는 뜻도 흥미롭다. 낙망이 희망의 반대말일까.   도로시는 치즈 샌드위치를 깡그리 먹어치운다. 병동직원들이 너에게 또 스페셜 트리트먼트를 해줬구나. 기분이 어떠냐? 좋아요. 그런데 그들이 왜 너에게 그러기를 꺼려하는지 알고 있니? 몰라요. 다른 환자들이 너를 질투하면 알게 모르게 큰 혼란이 일어난단다. 그녀는 뽀로퉁해서 나를 한참 째려본다.   다음 날 아침 그녀의 담당 의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다. 그는 내게 고맙다고 말한 후 도로시가 자주 ‘Code Green’을 일으킨다고 투덜댄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렇게 덧붙인다. 그녀는 ‘IQ’가 약간 낮은 편이에요. 70 좀 아래랍니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아메리칸 치즈 아메리칸 치즈 치즈 샌드위치 병동 환자

2024-12-10

[이 아침에] 노예는 투쟁할 줄 모른다

얼마 전 신문에서 공감이 가는 글을 만났다. 현대 사회를 분석하며 ‘우리는 이미 지구라는 정신 병동에 함께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는 정신과 의사의 진단이었다. 그래서 갇혀버리지 않는 일상이 되기를 꿈꾼다.   잘못된 습관에 저항하지 않아 결국은 악습이 된 두 번째 본성과, 존재로 지향하는 참된 자아로서의 본성이 대치 상태로 싸우는 것은 두 본성의 결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과 존재가 지향하는 자유는 확연히 갈라지는 길이다. 이 길을 뒤섞어 놓고 원하는 대로 선택하게 된 것은 판도라의 빗장이 풀렸음을 의미한다.   판도라는 끝을 모르는 욕망이다. 통제가 되지 않을 때는 파괴의 위력으로 다가온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공포 또한 점진적으로 높아져 미친 놀이판의 면적 또한 넓어져만 간다. 알게 모르게 사람들을 잠식하고 있는 이 사회적 불안감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밤의 어두움은 더 기괴한 느낌이다. 창조적인 영감을 주던 그때의 그 밤이 아닌 것 같아서 저녁 시간 교회에 나가는 일도 망설인다. 새벽에도, 대축일 늦은 밤에도 걸어가서 참석하곤 했는데….모든 스케줄이 태양이 떠 있을 때까지로 고정되어 버린 듯하다.   나 역시 태양의 빛을 따라서 일상을 시작하고 끝내기로 했다. 새벽 다섯시쯤에 일어나 명상 1시간, 스트레칭 40분, 그리고 아침 식사 준비를 한다. 삶은 계란과 치킨 소시지, 전날 만들어 둔 샐러드와 커피 한잔이다. 9시쯤이면 손빨래를 하고 손글씨를 쓰고 신문을 읽는다. 점심 전까지 손과 두뇌를 움직이기 위해 꼭 하는 것이 필사와 독서다. 필사는 속도가 느리긴 해도 독서보다 기억의 기능이 좋아진다. 오후 3시쯤엔 요구르트와 넛 종류로 이른 저녁식사를 한다. 중간중간 레몬수를 마시고, 과일과 집에서 구운 팥 소가 든 홀그레인 호떡도 먹는다. 먹는 일이 심플해지면 삶의 짐에서도 가벼워진다.   자유는 끊임없이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덜어내는 행위이다. 소유하려는 것은 탐욕의 반복일 뿐 자신의 모든 것을 쓰레기통으로 만들게 된다. 정신병동의 면적이 넓어지도록 놔두고 싶지 않다. 너무 풍요로워서 불행해진다면 가던 길을 바꿀 것이다.   나에게는 가난과 자유가 터닝 포인트였다. 정신병동이나 다름없었던 늪을 빠져나오도록 다그치는 각성의 소리를 따르게 되었는데, 사막으로의 여정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텐트의 역할 그 이상이 되어주지 못하는 육신을 끌어안고, 적게 먹고, 쓰고 사용하는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고 공동의 유산임을 한시도 잊지 않아야 했다.   지구촌의 기후변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마실 물 조차 모자라는 실정이다. 선진국의 미래는 생태학적 빚더미에 처해 있다는 것을 자성하도록 만든다. 개개인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자업자득이기에 그렇다.   온전해진 내면의 힘이야말로 창조목적으로 이끄는 것을 더욱 원하고 선택하게 한다. 파괴의 목적을 멈추고 생명 창조로의 전환을 위해서 정신병동에 갇히지 않으려면 생활 방식에 투쟁이 있어야 한다. 최경애 / 수필가이 아침에 노예 투쟁 본성과 존재 정신 병동 사회적 불안감

2024-10-31

[삶의 뜨락에서] 기적의 화신 P

난 환자의 가족한테 허락받고 이 글을 쓴다. 기적 같은 현실이고 해피엔딩이어서 가족도 흔쾌히 허락했다고 믿는다. 22세인 P는 인도 델리에서 NYU로 유학 온 신입생이었다. 미국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멋진 대학 생활을 위해 그는 출발 한 달 전부터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3주 동안 다이어트 약을 먹고 5kg을 감량했다. 나중에 그의 부모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는 결코 과체중이었던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너무나 잘생긴 미남이었다.     미국에서의 첫 학기가 시작되었고 모든 것은 새롭고 경이롭게 잘 진행되고 있었다. 그는 Computer Science를 전공하고자 했고 인도에서도 Computer에 특별한 재능과 관심을 두고 있는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였다고 한다. 내 환자가 된 P는 10월 초에 자기 아파트에 쓰러져 있다가 룸메이트에게 발견되어 구급차로 인근 병원인 Wyckoff로 옮겨졌다. 정밀검사를 마친 후 간(liver)에 심한 손상이 왔음을 확인한 후 간 이식 수술을 위해 우리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Northwell 병원은 신장, 간, 심장, 폐 이식을 실행한다) 간이식 병동에서 필수적인 준비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의 간 수치는 날마다 호전을 보였다. 결국 더는 간이식이 필요 없게 되자 내가 근무하고 있는 Medical Intensive Care Unit으로 옮겨왔다. 간 기능은 계속 좋아지고 있었지만, 그동안 간 기능이 저하되어 해독작용을 제대로 못 해온 결과 환자는 정신이 혼미해지다가 결국 의식을 잃게 되었다. 인공호흡기를 꼽고 뇌파검사, CT Scan, MRI 등 많은 검사를 해보았으나 큰 이상은 발견하지 못했다.     뉴욕 법에 누구든지 사망이 임박하면 장기기능자 단체(Live On)에 보고가 된다. 당연히 그는 장기기능자 중에 우선순위 상위권에 올라간다. 아주 아이러니하게도 P는 간이식을 받기 위해 우리 병원에 왔지만, 이제는 의식이 없는 관계로 (뇌사 판정) 그의 장기를 기증할 귀하신 몸이 된 상황이었다. 현실적으로 P의 경우나 교통사고사를 당한 경우 Live On 단체는 초비상이다. 병에 시달린 육신보다 건강한 육신은 수십 명을 살릴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신장, 간, 심장, 폐 이식은 잘 알려져 있으나 안구, 각막, 피부, 조직 등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미세한 부위까지도 기증할 수 있다. 내가 P를 담당하게 된 날 오전에도 Live On에서 전화가 걸려 와 그의 뇌사상태를 확인하고자 했다. 난 그가 아직 뇌사가 아니며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증후들이 있음을 보고했다. (예를 들면 자극을 주면 호흡이 가빠지고 심박동 수와 혈압이 올라간다) 인디아에서 급히 부모님과 삼촌 부부가 왔다. 그들은 이 믿기 어려운 상황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모두 환자의 손을 잡고 간절히 소리 내어 인도어로 기도했다.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그가 눈을 뜨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인 것이다. 결국 그는 눈을 떴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급히 의사를 불렀고 Live On에 전화해서 P를 장기기증자 리스트에서 내려달라고 전했다. 나는 부모님과 장시간의 대화를 나눈 결과 인도에서는 다이어트 약을 누구나 쉽게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라벨이 붙어 있지 않아 약의 성분을 추적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 불투명한 약은 P의 간에 급성으로 간 기능을 훼손했으며 불행 중 다행으로 그 손상은 임시적이어서 간 기능이 회복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만성 알코올 중독자들은 간 기능이 서서히 망가지므로 회복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며칠 후 그는 일반병동으로 옮겨졌고 의식은 완전 정상으로 돌아왔으나 몸은 근육이 많이 약해져 재활이 필요했다. P는 한순간에 잘못된 선택(혼자 다이어트 약을 사 먹는 일)으로 거의 죽음을 경험했다. 삶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그 선택이 모여 삶이란 굵직한 선을 이룬다. ‘Things happen for reason’ 이처럼 엄청난 경험이 그를 새롭게 태어나게 해줄 것을 나는 믿는다. 정명숙 시인삶의 뜨락에서 기적 화신 장기기능자 단체 간이식 병동 순간 기적

2024-03-22

[열린광장] 정신과 병동

현대사회는 통제되지 않는 정신병동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 의한 사건,사고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저지르는 사건,  정신분열증으로 인해 부모까지 살해하는 일, 실직으로 인한 보복 범행, 청소년 자살 등이 그렇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책은 부족한 상태다. 대비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지속할 것이다.     병원 응급실을 통해 정신과 병실에 입원하는 사람의 10% -30%는 약물 중독에 의한 정신 착란 증세로 인해 난폭해지는 사람들이다. 과거에는 우울증 환자, 자살 위험 환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상처가 있을 경우에는 외과 병실에 다량의 약물을 복용했을 때는 내과 병실에 입원했다 정신과 병실로 옮긴다. 그런데 보험사에서 이에 대한 치료비를 줄이고 있어 이런 숫자는 감소하고 있다.   강제 입원 환자의 70%는 피해망상증을 가진 정신질환자들로 남을 해치거나 위협적인 행동을 한 경우다. (청소년 병동의 70%는 자해나 자살 시도)     피해망상증은 여러 가지 정신 질환에서 나타난다. 첫 번째가 ‘피해망상 성격 장애’다. 하지만 이들은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어 타인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히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입원까지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두 번째는 ‘망상병의 피해망상형’이다. 이들은 단순히 피해망상만 있으며, 그 망상 외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 주로 혼자 살며 큰 문제 없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지낸다.     세 번째는 ‘조현병의 피해망상형’이다. 주로 마음이 약해진 상태에서 피해망상 증상을 보이며 사회와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 폭력성을 나타내며 보통 한 명, 또는 그와 관련된 두세 명을 공격한다.   네 번째가 조울증과 과대망상, 피해망상을 합친 경우다. 이런 환자는 여러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다. 과거 총기를 난사해 33명을 살해한 조승희도 조울증과 피해망상, 과대망상이 합쳐진 경우다.     정신과 환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의 폭력적 행동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자기를 해치려고 하는 단체와 사람들이 있어 정당방위 차운에서 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한다.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자기를 감시하고, 간섭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한다면 얼마나 무섭고 화나고 괴롭겠는가. 밤마다 우주벌레가 와서 자기 눈을 파먹는다고 호소하던 피해망상 조현병 환자가 있었다. 그는 지속하는 환각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몇 년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처럼 정신과적으로 느끼는 고통은 자기와 남을 파멸로 이끄는 경우가 많다.     정신과 의사로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다. 정신과 질환의 위험성을 알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이끄는 시민 의식,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강제 입원 치료도 가능하게 하는 법적 뒷받침, 그리고 치료비에 관한 정부와 보험 회사의 협력 등이 필요하다. 남을 해하고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무서운 정신병에 대한 이해와 협조, 대책이 시급하다.   의료인으로서 정신질환자로 인해 피해를 본 분들과 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하며 책임감도 느낀다. 난폭한 행동을 하는 정신질환자들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사회에도 책임이 있다.     우리는 이미 지구라는 정신병동에 함께 갇혀있는지도 모른다. 조만철 / 정신과 전문의열린광장 정신과 병동 정신과 환자 정신과 병실 정신과 질환

2023-12-17

[잠망경] 독백

옛날 정신과 수련의 때 뉴저지 큰 정신병원에서 주말 문라이팅, ‘알바’를 한 적이 있다. 노인 병동에서 두 노인이 하는 대화를 엿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쪽이 자기는 변비가 심하다고 투덜댄다. 다른 쪽은 수십 년 전 취중운전으로 아들이 감옥에 갔던 이야기를 한다. 둘은 서로 말을 오버랩하지 않고 상대가 말을 멈추면 자기 말을 한다. 상대의 말에 대한 반응은 없다.   계속해서 웃는 표정으로 독백을 이어가는 그들! 화자(話者)와 청자(聽者)가 말을 ‘주고받는’ 행위를 대화(對話)라 하지 않는가. 자기 말만 열심히 할 뿐 상대가 하는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그들이다.   그룹테러피 중 환자들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혼잣말을 하는가. ‘멘탈 체크, mental check’를 하기 위해서라고 누가 답한다. 나도 가끔 그런다. 할 일이 많을 때, “가만있자, 무엇부터 먼저 하지?” 하며 자신에게 소리 내 묻는다. 멘탈 체크는 자신에게 짧게 물어보거나 좌절감에서 내뱉는 욕지거리처럼 순간적인 이벤트일 때가 대다수다.   환청증상이 있는 환자가 병동을 걸어가며 길게 하는 혼잣말은 뭐냐, 하는 질문이 터진다. 환자와 환청 목소리와의 대화인 경우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안개 자욱한 새벽에 선친의 유령과 나눈 대화는 참으로 리얼한 장면이다. 맨해튼 한복판을 홀로 걸어가면서 허공을 향하여 크게 소리쳐대는 남루한 옷차림의 노숙자의 독백 또한 리얼한 대화로 보아야 한다. 두 경우 다 대화의 상대자는 실상이 아닌 완전 허상이다.   중학교 때 끄적거렸던 내 시(詩)는 노골적인 독백이었다. 이윽고 대담한 시인들이 대화체의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차츰 문어체가 구어체로 바뀐다. 우아한 아어(雅語)보다 투박한 구어(口語)가 판을 친다.   내가 좋아하는 김수영의 시 ‘눈’(1956)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중략) …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줄담배를 피는 문학청년의 만성 기관지염을 들먹이며 시인의 기백을 부추기던 김수영!   환자들 사이에 언쟁이 벌어진다. 환청이 있으면 조용히 듣고 있을 일이지 꼭 그렇게 큰 소리로 대화를 해야만 하느냐? 누군가 언론의 자유를 내세운다. 언론의 자유라는 건 남들 앞에서 말도 안 되게 소리치는 행동이 아니라니까!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내 행동은 다 옳으니까 비판하지 말아라, 하는 논조가 있고, 이유야 어쨌든 남들을 괴롭히는 행동은 나쁘다, 하는 ‘원칙과 상식’을 강조하는 유파(流派)가 몇 있다. 한국 정치판과 비슷한 데가 있네.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깔려야 할 기본 도덕을 역설한다. 환자들은 그런 고상한 발언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대화, conversations’는 어원학적으로 당신이 어머나, 하며 놀랄 정도로 이상한 말이다. 14세기에 라틴어로 ‘거주하다’라는 뜻과 ‘성교하다’의 명사형으로 거의 동시에 쓰인 적이 있었다가, 18세기경 ‘대화’라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의미로 변천된 말이다. 독백은 중이나 수도승이 하는 말이고 대화는 친근한 남녀들이 ‘주고받는’ 말이라는 학구적 견해가 있다. 어떤가. 좀 이상한가.   엊그제 ‘독백’이라는 제목으로 쓴 내 단시(短詩)의 전문이 이렇다. “캄캄한 방에서 내가 너를 대면하는 동안/ 너는 내게 무슨 말이든지 한다/ 그래요 당신도 그러잖아요/ 제3자인 저도 이 대화가 참 재미있습니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독백 대화 conversations 환청 목소리 노인 병동

2023-09-05

[잠망경] 낯가리기

에즈라는 기분장애와 성격장애가 심해서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데다가 법적인 문제조차 겹친 결과로 내 병동에 오래 머문다.     그는 증세가 완화되어 퇴원을 바라본다. 뉴욕 북부 소도시의 ‘Community Residence, 지역사회 거주소’에서 받아주겠다고 한다.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허용하는 기숙사 같은 곳. 그는 그곳의 삶이 엄격한 규율로 운영되는 폐쇄 병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에즈라가 마음을 바꾼다.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퇴원을 하지 않겠다고 우긴다. 병동 생활이 너무 힘이 든다며 시시때때로 뗑깡을 부리면서 얼마나 자주 직원들을 괴롭혀 왔는데.   직원들이 아연실색하고 있다. 앓던 이빨 빠지듯이 일상의 행복지수가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와르르 무너진다. 퇴원을 거부하는 이유인즉슨, 생각해보니 이곳이 그곳보다 지내기에 낫다는 것. ‘Better the devil you know than the devil you don’t. - 아는 악마가 모르는 악마보다 낫다.’하는 아일랜드 속담을 따르려는 속셈이다.   당신이나 나나 생후 8개월 전후해서 낯을 가리던 시절이 있었다. 아기는 엄마 아버지 얼굴이 아닌 낯선 얼굴을 처음 보는 순간 공포에 질려 운다. 두 살이 지나면서 낯선 얼굴을 보아도 크게 긴장하지 않는다. 친숙한 환경에서 생소한 환경으로 적응하는 성숙의 계단을 오르는 것이다.   아기는 유치원에 가는 첫날을 맞이하고 멀어지는 부모 모습을 백미러로 훔쳐보며 대학교 기숙사로 떠나고 결혼 후 분가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우리의 고난이 평생 지속한다. 낯설고 물선 곳으로 이사를 하고 직장을 바꾼다. 이혼하거나 이민을 가기도 한다. 에즈라는 누구나 겪는 삶의 기본설정에 동의하는 버튼을 클릭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stranger anxiety’와 ‘separation anxiety’는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다닌다.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 ‘분리장애’도 자주 일으킨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과 현재 환경과 결별하는 불안이 늘상 공존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사건건 말썽을 피우는 멀쩡한 어른을 놓고 ‘탯줄이 덜 떨어졌다’는 표현을 쓴다. 당신도 친척이나 지인 중에 그런 사람이 몇 있을지 모른다. 그들 중에는 타인과의 교류보다 경계심과 피해의식이 앞을 가리는 ‘stranger anxiety’와 인맥의 끈끈함과 결속감을 떠나지 못해서 ‘separation anxiety’에 심하게 시달리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 반대 경우도 도처에 즐비하다. 너무 낯가림이 없는 사람이 남을 쉽사리 받아드리는 성향 때문에 사기꾼들의 호구가 된다. 우리 속담에 ‘과부가 마음이 좋으면 동네 시아비가 열둘이다’라는 말이 이상한 호소력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에즈라는 탯줄이 덜떨어진 놈이다. 자유와 자율성을 누리는 독립정신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제성을 띈 폐쇄 병동의 삶을 선호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고집으로 포장된 공포심과 안일 위주의 사고방식이 앞을 다투는 정신상태. 그는 미래를 향한 낯가리기의 깊은 늪에 빠져있다.     ‘separate’는 15세기 라틴어로 ‘자르다(sever)’, 그리고 고대 불어로는 ‘젖을 떼다(wean)’라는 뜻이었다 한다. 나는 의대 시절 현미경으로 본 ‘세포분열’장면에서 하나의 세포 중간에 슬금슬금 금이 간 후 한 생명체가 두 생명체로 분리되어 늠름하게 증식하던 기적의 환희를 떠올린다. 나이 들면 들수록 귀소본능에 귀의하는 생물의 본성을 차치하더라도.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separation anxiety stranger anxiety 폐쇄 병동

2023-05-30

[잠망경] 우리가 원하는 것들

병동 직원들에게 환자들과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직원들은 별로 공감하지 않는 눈치다. 상상해 보라.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외과 의사처럼정신과 의사가 자신이라는 주체와 환자라는 객체를 완전 별개로 취급하는 정경을.   정신과에서는 주체와 객체 사이에 간극이 심하면 치료가 힘들어진다. 나나 환자나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똑같은 인간이다. 그래서 나는 우울한 감정에 휩싸여 있는 환자를 대할 때 함부로 웃지 못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수사학의 3대 요소를 생각한다. 에토스(Ethos, 도덕). 로고스(Logos, 논리). 파토스(Pathos, 감성). 그는 이 셋을 잘 운용하면 대중을 설득시키는 훌륭한 웅변이 된다고 가르쳤다.   셋 중에서 제일 강력한 것은 파토스. 고린도 전서 13장 13절에 나오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 셋 중에서 가장 유력한 것이 사랑이라는 말과 상통한다. 파토스와 사랑은 한국과 미국 정치가들이 애지중지 활용하는 대중선동술 또는 수법이다.   프로이트의 자아, 초자아, 본능(id)이라는 정신의 3대 요소에 견주어 보면 ‘love’를 본능에 비유해도 될 것 같다. 모든 인간의 생존을 좌지우지하는 돈을 자아에, 권력을 권위 있는 초자아에 결부시켜도 크게 억지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기독교의 삼위일체론. ‘Holy Trinity’!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몸이라는 강론. 불경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때도 성부를 초자아, 성자를 자아, 그리고 성령을 고귀한 차원에서의 본능이라는 가설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 병동직원이 사람이 원하는 것은 돈과 섹스와 권력, ‘Money, Sex, Power’라 농담 비슷하게 말한다. 잠시 생각에 잠긴 후에 ‘sex’를 ‘love’로 바꾸어 다시 말한다. - ‘Money, Love, and Power’. - 나는 그와 동의하면서 얼른 덧붙인다. 환자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다!   목요일 아침 병동 ‘Community Meeting’ 시간! 매일을 예식처럼 치르는 ‘조회’다. 오후에 용돈을 지급한다는 발표가 있자 환자들이 모두 흥분한다. 비즈니스 오피스에서 운영하는 각자의 금전 상태에 따라서 지급되는 포켓머니의 액수가 다들 다르다. 서로 간 액수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소리를 지르며 덤벼드는 오후쯤 파토스가 활개를 친다.   돈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설명이 잘 통한다. 너는 지난주에 얼마만큼 받았으니까 이번 주에는 이 정도다, 하면 알아듣는다. 로고스 만세! 알파벳 순서로 이름을 부르니까 규칙대로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직원에게 가까이 오지 말아라, 하는 규범을 척척 지킨다. 에토스 만점! 긴장감 넘치는 목요일 오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의 꽃이 피는 병동이다.   ‘money’는 로마의 여신 ‘Juno’의 별칭 ‘Moneta’에서 유래했다 한다. 주노는 숱한 신들의 최고 데빵 주피터의 아내로서 돈과 자본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Moneta’는 고대 라틴어로 ‘상기하다, 경고하다’라는 뜻이었는데 아직 그 잔재가 ‘monitor, 모니터하다’에 남아 있다. ‘화폐’의 형용사 ‘monetary’는 여신 이름과 거의 같은 발음이다.   로마 신화 시대에 돈 관리를 여신이 맡았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목요일 오후에도 남성보다는 여성 보조간호사가 용돈을 지급할 때 병동의 분위기가 훨씬 더 원활하다. 그 예식을 모니터하는 간호사도 여성이 하면 환자들의 삶에 대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더욱더돈독해진다. 삼위일체!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초자아 성자 자아 초자아 병동 직원들

2023-02-21

[잠망경] 이상한 사람들

저스틴은 가끔 병동 화장실에 수건이나 다른 물건을 넣어 변기를 막히게 해서 아래층 모든 병동 화장실의 변기 물 또한 불통하게 만든다. 남이 안 보는 사이에문손잡이를 정성껏 핥기도 하고 다른 이상한 짓도 곧잘 한다.   그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차림새가 깔끔한 40대 백인. 저 자신은 유머 감각이 전혀 없지만 남이 우스갯말을 하면 어설프게 웃는다. 늘 고개를 푹 숙인 자세. 내가 말을 걸면 짤막하게 대답한다.   저스틴은 남들을 상대하기가 불안하고 불편하다. 70대 홀어머니가 병동으로 전화해도 되도록 통화를 피하다가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말 몇 마디 후에 전화를 끊는다.   자폐 스펙트럼 중에서 정도가 심한 영역에 속하지만 얼굴이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저스틴과 운 좋게 긴 대화를 나눴다. 병동 변기가 막혀서 사람들이 쩔쩔매면 기분이 좋으냐고 묻자 그렇지 않다고 한다. 왜 그러는 거지? 저도 많이 생각해 봤는데 어쩔 수 없는 힘으로 그런다는 답변. 나는 본능적으로 그가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2022년 여름,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xtraordinary Lawyer Woo’ 연속극을 본다. 그녀는 IQ 164의 자폐증 장애인. 정상인들이 밥 먹듯이 하는 거짓말을 전혀 할 줄 모르고, 특정 문장을 거듭 되풀이하고, 남의 말을 즉석에서 흉내 내듯 따라 하는 버릇(반향어, 反響語, Echolaria, 메아리증) 같은 증세가 있다.   그녀는 자기 이름 우영우가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처럼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발음이 같다고 즐겁게 소개한다. 영어 번역을 어찌 하나 궁금했는데 직역 대신에 ‘kayak, deed, rotator, noon, racecar’로 옮겨 놓았네. 재미있다.   저스틴도 우영우도 거짓말을 못 한다. 저스틴은 수줍어하고 비밀스럽고 언어적 표현능력이 없지만, 우영우는 거침없이 유창한 언변이 직설적이다. 학창시절 별칭은 ‘우당탕탕우영우’. 고등학교 때 내 별명이 ‘우당퉁탕’. 우연히도 글자 하나 빼놓고 같은 호칭이다. 법정에서 막무가내로 거칠고 사나운 우영우!   키 크고 잘 생긴 같은 회사 총무팀 직원에게 우영우는 말한다. “제가 이준호씨를 한번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자기가 그를 좋아하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는 이유다. 이런 질문도 던진다. “키스할 때 원래 이렇게 이빨이 부딪힙니까?” 남자는 학구적인 설명을 부여한다. 친절하게.   진실을 파헤치는 작업에 몰두한 우당탕탕 이영우는 권모술수라는 별명을 가진 동료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진실이 뭔가 확인해야 합니다.” - “아니 그럼, 우영우 변호사는 확인해요. 나는 나대로 할 테니까.” 정상인이 비정상인과의 공감을 거부하는 장면이 서글프다.   ‘spectrum’은 빛띠, 범위, 영역이라는 말. 스펙트럼은 ‘specter(유령)’와 어원이 같다. 이상도 해라. ‘spectacle, 구경거리, 안경’도 뿌리를 같이한다. 전인도 유럽어로 ‘보다, 관찰하다’. 빛도 유령도 다 당신과 내가 안경까지 쓰고 유심히 보고 싶어하는 구경거리다. 무지개를 바라보듯.   우영우는 말한다. “사람들이 나와 너가 이루어진 세계에 살지만, 자폐인은 나로만 이루어진 세계에서 사는데 더 익숙합니다.” 그녀도 저스틴도 거짓되고 부자연스러운 정상인들과 마음껏 어울려 살기가 힘이 들 텐데. 그들이 애써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애절하다. 남들이 보기에 나도 좀 그럴까.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병동 변기가 병동 화장실 자폐증 장애인

2022-08-09

[수필] 외래 병동의 추억

“한 환자는 영어 못하는   간호사를 두었다고   의사한테 불평을 했다   그럴 때면 숨고 싶었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간호사의 일터는 다양하지만 외래병동은 나의 적성에 맞는 곳이었다. 그때는 매일 뜀박질치듯 몸으로 부딪치며 숨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하루하루였다.     미국 정식간호사 시험을 패스하고 잡은 첫 일터가 LA ‘메디컬 센터’ 외래병동이었다. 그곳에서 7년을 일하고 UC어바인 대학병원에 정착했다. 그곳 역시 외래병동이었다. 내 간호사 후반기 25년 동안 수퍼바이저를 하다 은퇴한 것이 삶의 원동력이 됐다.       1976년이었다. 첫딸이 면역주사를 맞아야 했기에 정부의 보조를 받아 의사를 볼 수 있는 저소득층 환자 병동에 갔다. 의사와 대화 중에 간호사 자리가 있다고 해서 어려운 인터뷰 후에 자리를 잡았다. 딸을 낳고 직장을 잡아야했지만 나의 영어가 짧아서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다. 이곳이 내 외래병동 생활의 첫 번째 인연이 되었다. 대다수 환자가 흑인들이었고 스패니시를 쓰는 멕시칸이 그 뒤를 이었다. 의사와 간호사들도 거의 같은 계통 사람들이었다.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흑인 특유의 영어발음은 알아듣기 쉽지 않다. 언어소통이 어려웠다. 어떤 환자는 영어 못 하는 간호사를 두었다고 의사한테 대 놓고 불평을 했다. 그럴 땐 어디라도 숨고 싶었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가끔 전화가 걸려오면 나는 딴 방에서 환자를 돕는 척 어기적거리긴 했지만 등에선 진땀이 났다. 누가 그 전화를 대신 받든지 전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외래병동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북적대는 인간 박물관이다. 생김새가 다르듯 습관과 성격도 달랐다. 매번 그들 요구를 다 들어줄 순 없었지만 최선은 다했다. 간호사들 중에는 필리핀 간호사가 많았다. 그 나라는 한때 미국의 영향하에 있었던 덕분에 액센트가 좀 이상해도 영어는 잘한다. 그들의 단결력은 우리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다.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 시집살이란 말이 실감났다. 소수민족끼리지만 먼저 자리 잡은 그들 텃세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게다. 힘든 환자의 간호는 한국 간호사에게로 떠밀기 일쑤였으니까.     힘들었던 일과였지만 외과 전문의사이자 원장이던 닥터 터너와 함께 일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가톨릭 신자였고 마음씨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영어가 서툰 것과 수줍음이 많지만 일은 열심히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느 날 한 환자가 터너와 예약을 잡아 달라고 했다. 그날은 환자가 너무 많으니 다음날로 하자고 내가 말했다. 화가 난 그가 닥터 터너한테 나를 나쁜 간호사라며 화풀이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와의 예약은 큐가 책임자입니다. 큐의 말대로 하세요.” 닥터 터너가 말했다. 그때 내 이름이 ‘큐’였다. 그 후로는 내가 영어를 잘못한다거나 본인 마음대로 예약시간을 잡아 달라고 떼를 쓰는 환자가 없어졌다. 그는 내게 영어를 잘할 수 있는 방법과 발음 교정 심지어는 우리 여행 때 첫딸 베이비시터도 해주었다.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은인이다.     점심시간이면 닥터 터너는 이곳저곳 미국 음식점에 나를 데리고 갔다. 운전도 가르쳐 주었다 그는 자주색 캐딜락 차를 타고 다녔는데 정말 멋지고 안락했다. 그 당시 우리는 차가 한 대뿐이어서 아침에 남편이 나를 직장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딸을 한인교회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데려다 준 후 일을 갔다. 저녁이면 일을 마친 남편이 역순으로 한 명씩 픽업을 해서 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매일 서서 일한 탓에 다리에 알통이 생겼다. 힘든 나날이었으나, 내가 일을 잘하니 한국 간호사 친구를 소개해 달라고 간호과장으로부터 요청을 받았다. 나는 한국 간호사 친구 두 명을 찾았다.   남미 니카라과에서 온 간호과장 릴리한테 그들을 소개해서 함께 일했다. 릴리는 일곱 살 된 아들을 데리고 사는 이혼녀였다. 그녀가 이사를 하고 싶다고 하기에 내가 사는 아파트 3층을 소개해줬다. 사람들은 직장 상사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은 좋지 않을 거라고 충고했다. 그래도 영어가 달렸던 나를 취직시켜줘서 입이 트여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해준 은인이기에 상관치 않았다.     릴리는 언제나 외로워했다. 그러면서 얼마간 닥터 터너와 애정 관계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이 들통이 난 즉시 그녀는 우리 병동에서 해고 당했다. 그 후 나는 우리 세 아이들을 위해 다른 스케줄 파트로 옮겼다. 금, 토, 일 3일간 주말에만 일하는 곳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 병원이 팔려 자동 해고됐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처럼 잠시 쉬다 UCI 대학병원 외래병동에 자리를 얻었다.     내 마지막 근무지인 대학병원은 큰 병원이었지만 한국 환자를 위한 전문 통역사가 없었다. 베트남과 중남미 환자는 병원에서 고용한 전문 통역사가 있었다. 그게 부러워 나는 간호사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시간을 쪼개 봉사자로 나섰다. 병원 응급실, 암병동, 방사선실 등 한국어 통역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어떤 날은 내가 간호사인지 통역사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종일 통역을 하러 병원 전체를 누비고 다닌 날도 있었다. 응급실에서 한인 환자가 숨진 날은 일이 끝난 후에도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 가족과 함께 밤을 새우며 지킨 적도 있었다.       어릴 때 환자를 돌보며 그들의 고통을 보듬어 주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미국의 외래병동에서 언어소통의 불편함으로 상처를 받는 환자들을 도와주었는데 은퇴한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병원에서 부탁이 오면 거실 전화기 앞에 앉아 3자 통화를 한다. 나이팅게일을 꿈꾸던 어릴 적 시절과 노인이 된 지금 그 나눔의 숲속에서 나는 잔잔한 행복을 누린다. 김규련 / 수필가수필 외래 병동 외래병동 생활 한국 간호사 정식간호사 시험

2022-03-10

[전문가 칼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엊그제 병동 환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미친(crazy) 생각을 할 수 있고, 미친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친 행동은 절대 안 된다. 우리 사회는 미친 ‘행동’을 용허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BC 322~384)가 주창한 웅변술의 3대 요소, Pathos(감성), Logos(논리), Ethos(인격)를 생각한다. 감성은 원시적 본능, 논리는 일상적 자아, 인격은 사회적 윤리를 대변한다. 이 세 기둥이 튼튼하게 잘 어울리면 듣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인단다. 정치가들의 발언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허버트는 병동에서 화장실 변기에 비닐봉지, 우유통 쪼가리 따위를 집어넣어서 변기를 막히게 하는 짓을 한다. 하나의 변기가 막히면 모든 환자가 다른 병동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을 겪는다.     리처드는 자칭 멋진 남자 ‘알파 메일(Alpha Male)’이다. 잘난 척하는 다른 환자들과 주먹다짐을 벌인다. 저보다 월등한 다른 정치인을 때리면서 ‘알파 정치가’로 치닫는 정치 풍토와 비슷하다. 그 결과로 병동과 한 나라의 ‘에토스’가 변한다.   토머스가 병동 복도에서 킬킬대며 웃는다. 오후 3시쯤 내 사무실 문 앞에서 오래 크게 웃는다. 내가 비명처럼 “헤이”하고 소리치면 금세 “I am sorry”하며 가버린다. 다음날 오후 3시에 또 내 방문 앞에서 벽이 흔들릴 정도로 크게 킬킬댄다.   토머스는 환청 증세가 있다. 그런데 그 비밀스러운 경험을 왜 내게 실시간으로 들려주는 것일까. 귀여운 강아지가 주인을 좋아해 멍멍 짖는 행위와 흡사하게, 그는 소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의 유일무이한 청중이다.   대니얼은 다른 사람들의 몸을 만지려 든다. 병동 복도를 무심코 지나가노라면 느닷없이 다가와 어깨나 옆구리를 건드린다. 그는 촉각으로 의사소통하려 한다. 갓난아기가 엄마 젖가슴을 만지듯이.   브루스는 언쟁을 즐긴다. 나는 그의 초대에 기꺼이 응한다. 그는 말이 달리면 욕설을 퍼부으며 나를 제압하려 한다. 한 번은 내게 “지옥이나 가라!(Go to hell!)”하며 고함을 치길래 “지옥에 함께 가서 얘기를 계속하자!”고 응답했다. 그가 “그래, 나는 파트타임으로 지옥을 방문할 테니까 너는 풀타임으로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하고 대꾸한다. 그러다 둘이서 동시에 폭소를 터뜨렸다. 말싸움이 그렇게 유쾌하게 끝난다.   나는 알고 있다. 브루스가 대화 내용과 상관없이 자기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를 내게 보여주는 이벤트를 치르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는 것을. 정치판에서도 힘의 과시에 몰두하는 정당 간에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터지곤 한다.     정신과는 자연과학이기보다 인문과학에 가깝다. 근 반세기에 걸쳐 환자들을 상대해 온 나는 환자를 이해하면 할수록 그들이 정상으로 보인다. 반면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환자를 이해할 수 없으면 비정상이라는 판정을 내린다. 정신과 진단은 객관적 기준이 아닌 사회적, 주관적 소견에 의존한다.   ‘norma’은 원래 라틴어로 ‘carpenter’s square’, 즉 ‘먹자’(목수가 나무에 먹으로 금을 그을 때 쓰는 ‘T’ 모양의 자)를 뜻했다. 정상인은 직선적인 사람이다. 그들은 에둘러 말하는 대신 직설의 정직성을 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과 비정상의 분별은 오늘도 ‘crazy’ 하기만 하다.  서량 / 정신과 의사·시인전문가 칼럼 비정상 정상 병동 화장실 병동 복도 엊그제 병동

2022-01-25

[잠망경] 정상, 비정상, Crazy?

엊그제 병동 환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미친(crazy) 생각을 할 수 있고, 미친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친 행동은 절대 안 된다. 우리 사회는 미친 ‘행동’을 용허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BC 322~384)가 주창한 웅변술의 3대 요소, Pathos(감성), Logos(논리), Ethos(문화)를 생각한다. 감성은 원시적 본능, 논리는 일상적 자아, 문화는 사회적 윤리를 대변한다. 이 세 기둥이 튼튼하게 잘 어울리면 듣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인단다. 정치가들의 발언에도 너끈히 적용되는 원칙이다.   허버트는 병동에서 화장실 변기에 비닐봉지, 우유통 쪼가리 따위를 집어넣어서 변기를 막히게 하는 짓을 한다. 하나의 변기가 막히면 모든 환자가 다른 병동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을 겪는다. 한 당원(黨員)이 정치적 뗑깡을 부리면 당 전체가 고통을 받는 이치와 비슷하다. ‘Ethos’가 망가진 상태!   리차드는 자칭 ‘알파 메일’잘난 척하는 다른 환자들과 주먹다짐을 벌인다. 저보다 월등한 다른 정치인을 때리면서 ‘알파 정치가’로 치닫는 정치풍토하고 비슷하다. 그 결과로 병동과 한 나라의 ‘에토스’가 변한다.   토마스가 병동 복도에서 킬킬대며 웃는다. 오후 3시쯤 내 사무실 문 앞에서 오래 크게 웃는다. 내가 비명처럼 “Hey!” 하고 일갈하면 금세 “I am sorry!” 하며 가버린다. 다음날 오후 3시에 또 내 방문 앞에서 벽이 흔들릴 정도로 크게 킬킬댄다.   토마스는 환청 증세가 있다. 그런데 그 비밀스러운 경험을 왜 내게 실시간으로 들려주는 것일까. 귀여운 강아지가 주인을 좋아하면서 멍멍 짖는 행위와 흡사하게, 그는 소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의 유일무이한 청중이다.   다니엘은 다른 사람들의 몸을 만지려 든다. 병동 복도를 무심코 지나가노라면 느닷없이 다가와 어깨나 옆구리를 건드린다. 그는 촉각으로 의사소통하려 한다. 갓난아기가 엄마 젖가슴을 만지듯이.   부르스는 언쟁을 즐긴다. 나는 그의 초대에 기꺼이 응한다. 그는 말이 딸리면 욕설을 퍼부으며 나를 푸짐하게 제압하려 한다. 한 번은 내게 “Go to hell!” 하며 고함을 치길래 “지옥에 함께 가서 얘기를 계속하자!” 고 응답했다. 그가 “그래, 나는 ‘파트 타임’으로 지옥을 방문할 테니까 너는 ‘풀 타임’으로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 하고 대꾸한다. 그러다 둘이서 동시에 폭소를 터뜨렸다. 말싸움이 그렇게 유쾌하게 끝난다.   나는 알고 있다. 부르스가 대화 내용과 상관없이 자기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를 내게 보여주는 이벤트를 치르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는 것을. 정치판에서 힘의 과시에 몰두하는 정당 간에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터지는 사실 또한.   정신과는 자연과학이기보다 인문과학에 가깝다. 근 반세기에 걸쳐 환자들을 상대해 온 나는 환자를 이해하면 할수록 그들이 정상으로 보인다. 반면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환자를 이해할 수 없으면 비정상이라는 판정을 내린다. 정신과 진단은 객관적 기준이 아닌 사회적, 주관적 소견에 의존한다.   ‘normal’은 워낙 라틴어로 ‘carpenter’s square’, 즉 ‘먹자’(목수가 나무에 먹으로 금을 그을 때 쓰는 ‘T’ 모양의 자)를 뜻했다. 정상인은 직선적인 사람이다. 그들은 에둘러 말하는 대신 직설의 정직성을 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과 비정상의 분별은 오늘도 ‘crazy’ 하기만 하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비정상 crazy 정상 비정상 병동 화장실 병동 복도

2022-01-25

"KMP 덕분에 병원 전체가 크게 성장했다"

아시안 전용 병동 개설하는 마이클 마론 홀리네임병원장 코리안메디컬프로그램(KMP)과 함께 위대한 여행을 하고 있다. KMP로 인해 병원 전체가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마이클 마론 홀리네임병원장의 KMP 설립 10주년에 대한 소회다. 지난 1997년부터 20년 넘게 병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 2008년 당시에는 생소했던 한인 전용 의료 서비스 프로그램 KMP를 과감하게 도입한 장본인이다. KMP 출범 후 홀리네임병원은 한인 환자에게 친숙한 종합병원으로 자리 잡았다. 연간 1000명에도 못 미쳤던 이 병원 한인 환자 수는 KMP 설립 10년 만에 연간 4만 명으로 40배나 늘었다. 소수계 환자를 위한 맞춤 의료 서비스가 전체적인 병원 성장까지 이끌어낸 것이다. 주류사회에서도 홀리네임병원과 KMP의 성공을 주목하는 이유다. 홀리네임병원은 KMP 10주년을 맞아 더 큰 도전을 선언했다. 한인 등 아시안 환자 전용 병동을 병원 중심부에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마론 병원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아시안 전용 병동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유와 구체적인 계획을 소개해달라. "아시안 전용 병동은 올 봄쯤 문을 열 계획이다.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병원 이용을 획기적으로 쉽게 바꾸기 위해 원스톱 의료 검진이 가능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병원 이용을 위해 아시안 전용 병동에 들어서면 한국어로 환자 등록 및 이용 안내를 받을 수 있고, 한국어 구사가 가능한 전문의에게 검진 받을 수 있다. 이곳 저곳에 갈 필요 없고, 여러 사람에게 물을 필요도 없이 한 곳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언어나 친숙하지 않은 의료 체계에 대한 두려움 없이 병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병원 입장에서는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10년 전에는 한인 전용 의료서비스 개념이 매우 생소했다. 어떻게 시작할 수 있었나. "홀리네임병원은 지역사회 소수 계층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다. KMP 이전부터 저소득층 대상 서비스를 운영했다. 이 때문에 10년 전 최경희 부원장이 한인 전용 의료 서비스 프로그램을 제안했을 때 매우 좋다고 여겼다. KMP는 전문의 치료부터 무료 검진, 건강 세미나, 커뮤니티 아웃리치까지 종합적인 의료 서비스를 한인들에게 제공한다는 비전을 갖고 있었다. 단순 마케팅이나 보여주기식 프로그램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 병원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이제 KMP는 한인을 넘어, 아시안 커뮤티니까지 확대됐다. 문화적 접근을 바탕으로 하는 의료 서비스 분야에서 우리 병원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 자부심이 크다." -KMP를 통한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은 의사들이 병원에 많아졌다는 점을 꼽고 싶다. 양희곤 KMP 메디컬 디렉터나 스티브 권 암 전문의 등 손꼽히는 실력을 갖춘 한인 의사들이 우리 병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KMP를 통해 한인 대상 종합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실력 있는 많은 한인 의사들이 우리 병원에서 일하게 됐다. 현재 우리 병원과 연계된 한인 의사는 95명이나 된다. 수준 높은 한인 의사들이 많아지면서 전반적인 병원의 의료 서비스 수준도 높아졌다. 지난해 말 연방보건복지부 산하 메디케어.메디케이드국(CMS)가 발표한 전국 병원 평가에서 홀리네임병원은 최고 등급인 '5스타'를 받았다. 버겐카운티 등 북부 뉴저지에서 최고 등급을 받은 곳은 홀리네임병원이 유일하다." -KMP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어야 하는 것이 큰 도전이었다. 우리가 첫 시도였기 때문에 그 만큼 고민이 많았다. 또 생각하는 것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험적인 측면도 컸다. 한인의 경우 무보험자가 많은 것도 어려운 점이었다. 이 때문에 무보험자 대상 대규모 무료 건강 검진을 실시했는데 이제는 연간 2만 명의 아시안이 무료 건강검진을 받을 정도로 커졌다. KMP의 도전은 후원자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모금액이 540만 달러에 달한다. 이 후원금은 유방암.B형간염.당뇨.정신건강 등의 예방 및 치료비용 지원에 쓰였다." -KMP가 병원 전체적으로는 어떠한 영향을 줬나. "KMP는 병원의 양적.질적 성장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병원 수익에 큰 도움이 되고 있으며 의료 서비스의 질적 성장에도 KMP의 역할은 지대하다. 무엇보다 문화적 다양성을 지닌 이들을 대상으로 맞춤식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롤모델을 보였다. 지난 2016년에는 KMP를 이끌고 있는 최경희 부원장이 간염 예방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연방 보건복지부로부터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더 좋은 의료진을 갖추고 환자들에게 최고의 만족을 줄 수 있는 의료 기술을 갖추는 것이 목표다. 이에 더해 병원이 단순히 환자들을 치료하는 곳이 아닌 한인 커뮤니티의 자산으로 여겨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각 가정에서 평소에도 건강을 챙기고 예방활동을 할 수 있도록 아웃리치를 늘릴 계획이다. 또 한인사회와의 연계를 더욱 확대해 우리 병원이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인정받았으면 한다." 서한서 기자

2018-03-05

홀리네임에 뉴저지 티넥 병원 아시안 전용 병동

뉴저지주 티넥의 홀리네임병원이 아시안 전용 병동을 개설한다. 마이클 마론 홀리네임병원장은 최근 본지와 단독 인터뷰에서 "올 봄쯤 한인 등 아시안 환자들이 원스톱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전용 병동을 오픈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A-4면> 전국의 종합병원 중 한인 등 아시안 환자들만을 위한 병동을 설립하는 것은 홀리네임병원이 첫 사례로 꼽힌다. 병원에 따르면 아시안 전용 병동은 병원의 가장 중심부에 자리잡는다. 이곳은 방문자 주차장과 맞닿아 있는 등 접근성을 크게 고려했다고 병원 측은 밝혔다. 마론 병원장은 "과거 유방암센터로 쓰던 1만 스퀘어피트 규모의 단독 건물을 아시안 전용 병동으로 전환할 예정"이라며 "한인 직원들이 상주해 언어적 두려움 없이 환자 등록 및 이용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또 한인 의사들도 상주하기 때문에 한인 환자들은 일반 내과를 비롯, 심장.간.암 등 각 의료 분야 외래 진료와 검사를 전용 병동에서 원스톱으로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시안 전용 병동은 이 병원 코리안메디컬프로그램(KMP) 설립 10주년을 기념해 병원이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다. 마론 병원장은 아시안 전용 병동을 두고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라고 큰 기대를 밝혔다. 최경희 병원 부원장은 "한국과 미국의 의료체계는 다소 다르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온 이들은 미국 병원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아시안 전용 병동은 한 곳에서 편리하게 모든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 한인 등 아시안을 위한 건강 정보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KMP는 지난 2008년 최 부원장의 설립 요청을 마론 병원장이 받아들이면서 시작됐다. KMP 설립 전만 해도 이 병원을 찾는 한인 환자는 연간 1000명 미만이었으나 10년 후인 현재 연간 한인 방문자가 약 4만 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 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KMP는 지난 2015년 한인을 포함, 중국.일본.필리핀계 등 아시안 환자들을 위한 아시안헬스서비스로 확대됐으며 전용 병동도 갖추게 됐다. 마론 병원장은 "KMP는 병원 운영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며 KMP에 대한 지원과 투자를 더 늘려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서한서 기자 [email protected]

201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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