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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독백

옛날 정신과 수련의 때 뉴저지 큰 정신병원에서 주말 문라이팅, ‘알바’를 한 적이 있다. 노인 병동에서 두 노인이 하는 대화를 엿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쪽이 자기는 변비가 심하다고 투덜댄다. 다른 쪽은 수십 년 전 취중운전으로 아들이 감옥에 갔던 이야기를 한다. 둘은 서로 말을 오버랩하지 않고 상대가 말을 멈추면 자기 말을 한다. 상대의 말에 대한 반응은 없다.
 
계속해서 웃는 표정으로 독백을 이어가는 그들! 화자(話者)와 청자(聽者)가 말을 ‘주고받는’ 행위를 대화(對話)라 하지 않는가. 자기 말만 열심히 할 뿐 상대가 하는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그들이다.
 
그룹테러피 중 환자들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혼잣말을 하는가. ‘멘탈 체크, mental check’를 하기 위해서라고 누가 답한다. 나도 가끔 그런다. 할 일이 많을 때, “가만있자, 무엇부터 먼저 하지?” 하며 자신에게 소리 내 묻는다. 멘탈 체크는 자신에게 짧게 물어보거나 좌절감에서 내뱉는 욕지거리처럼 순간적인 이벤트일 때가 대다수다.
 


환청증상이 있는 환자가 병동을 걸어가며 길게 하는 혼잣말은 뭐냐, 하는 질문이 터진다. 환자와 환청 목소리와의 대화인 경우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안개 자욱한 새벽에 선친의 유령과 나눈 대화는 참으로 리얼한 장면이다. 맨해튼 한복판을 홀로 걸어가면서 허공을 향하여 크게 소리쳐대는 남루한 옷차림의 노숙자의 독백 또한 리얼한 대화로 보아야 한다. 두 경우 다 대화의 상대자는 실상이 아닌 완전 허상이다.
 
중학교 때 끄적거렸던 내 시(詩)는 노골적인 독백이었다. 이윽고 대담한 시인들이 대화체의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차츰 문어체가 구어체로 바뀐다. 우아한 아어(雅語)보다 투박한 구어(口語)가 판을 친다.
 
내가 좋아하는 김수영의 시 ‘눈’(1956)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중략) …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줄담배를 피는 문학청년의 만성 기관지염을 들먹이며 시인의 기백을 부추기던 김수영!
 
환자들 사이에 언쟁이 벌어진다. 환청이 있으면 조용히 듣고 있을 일이지 꼭 그렇게 큰 소리로 대화를 해야만 하느냐? 누군가 언론의 자유를 내세운다. 언론의 자유라는 건 남들 앞에서 말도 안 되게 소리치는 행동이 아니라니까!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내 행동은 다 옳으니까 비판하지 말아라, 하는 논조가 있고, 이유야 어쨌든 남들을 괴롭히는 행동은 나쁘다, 하는 ‘원칙과 상식’을 강조하는 유파(流派)가 몇 있다. 한국 정치판과 비슷한 데가 있네.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깔려야 할 기본 도덕을 역설한다. 환자들은 그런 고상한 발언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대화, conversations’는 어원학적으로 당신이 어머나, 하며 놀랄 정도로 이상한 말이다. 14세기에 라틴어로 ‘거주하다’라는 뜻과 ‘성교하다’의 명사형으로 거의 동시에 쓰인 적이 있었다가, 18세기경 ‘대화’라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의미로 변천된 말이다. 독백은 중이나 수도승이 하는 말이고 대화는 친근한 남녀들이 ‘주고받는’ 말이라는 학구적 견해가 있다. 어떤가. 좀 이상한가.
 
엊그제 ‘독백’이라는 제목으로 쓴 내 단시(短詩)의 전문이 이렇다. “캄캄한 방에서 내가 너를 대면하는 동안/ 너는 내게 무슨 말이든지 한다/ 그래요 당신도 그러잖아요/ 제3자인 저도 이 대화가 참 재미있습니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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