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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엊그제 병동 환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미친(crazy) 생각을 할 수 있고, 미친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친 행동은 절대 안 된다. 우리 사회는 미친 ‘행동’을 용허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BC 322~384)가 주창한 웅변술의 3대 요소, Pathos(감성), Logos(논리), Ethos(인격)를 생각한다. 감성은 원시적 본능, 논리는 일상적 자아, 인격은 사회적 윤리를 대변한다. 이 세 기둥이 튼튼하게 잘 어울리면 듣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인단다. 정치가들의 발언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허버트는 병동에서 화장실 변기에 비닐봉지, 우유통 쪼가리 따위를 집어넣어서 변기를 막히게 하는 짓을 한다. 하나의 변기가 막히면 모든 환자가 다른 병동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을 겪는다.  
 


리처드는 자칭 멋진 남자 ‘알파 메일(Alpha Male)’이다. 잘난 척하는 다른 환자들과 주먹다짐을 벌인다. 저보다 월등한 다른 정치인을 때리면서 ‘알파 정치가’로 치닫는 정치 풍토와 비슷하다. 그 결과로 병동과 한 나라의 ‘에토스’가 변한다.
 
토머스가 병동 복도에서 킬킬대며 웃는다. 오후 3시쯤 내 사무실 문 앞에서 오래 크게 웃는다. 내가 비명처럼 “헤이”하고 소리치면 금세 “I am sorry”하며 가버린다. 다음날 오후 3시에 또 내 방문 앞에서 벽이 흔들릴 정도로 크게 킬킬댄다.
 
토머스는 환청 증세가 있다. 그런데 그 비밀스러운 경험을 왜 내게 실시간으로 들려주는 것일까. 귀여운 강아지가 주인을 좋아해 멍멍 짖는 행위와 흡사하게, 그는 소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의 유일무이한 청중이다.
 
대니얼은 다른 사람들의 몸을 만지려 든다. 병동 복도를 무심코 지나가노라면 느닷없이 다가와 어깨나 옆구리를 건드린다. 그는 촉각으로 의사소통하려 한다. 갓난아기가 엄마 젖가슴을 만지듯이.
 
브루스는 언쟁을 즐긴다. 나는 그의 초대에 기꺼이 응한다. 그는 말이 달리면 욕설을 퍼부으며 나를 제압하려 한다. 한 번은 내게 “지옥이나 가라!(Go to hell!)”하며 고함을 치길래 “지옥에 함께 가서 얘기를 계속하자!”고 응답했다. 그가 “그래, 나는 파트타임으로 지옥을 방문할 테니까 너는 풀타임으로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하고 대꾸한다. 그러다 둘이서 동시에 폭소를 터뜨렸다. 말싸움이 그렇게 유쾌하게 끝난다.
 
나는 알고 있다. 브루스가 대화 내용과 상관없이 자기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를 내게 보여주는 이벤트를 치르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는 것을. 정치판에서도 힘의 과시에 몰두하는 정당 간에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터지곤 한다.  
 
정신과는 자연과학이기보다 인문과학에 가깝다. 근 반세기에 걸쳐 환자들을 상대해 온 나는 환자를 이해하면 할수록 그들이 정상으로 보인다. 반면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환자를 이해할 수 없으면 비정상이라는 판정을 내린다. 정신과 진단은 객관적 기준이 아닌 사회적, 주관적 소견에 의존한다.
 
‘norma’은 원래 라틴어로 ‘carpenter’s square’, 즉 ‘먹자’(목수가 나무에 먹으로 금을 그을 때 쓰는 ‘T’ 모양의 자)를 뜻했다. 정상인은 직선적인 사람이다. 그들은 에둘러 말하는 대신 직설의 정직성을 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과 비정상의 분별은 오늘도 ‘crazy’ 하기만 하다. 

서량 / 정신과 의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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