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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평온함 아래 미칠듯한 내면이 날뛴다

고립감이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올해 미국의 약 5780만 명의 성인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고 매년 4만 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통계는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존 카사베츠 감독의 1974년 작품 ‘영향 아래 있는 여자(A Woman Under the Influence)’는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 현대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압력과 그로 인한 고통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준다. 특히, 70년대 여성의 정신 건강 문제를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섬세하게 다루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모호하게 흐릿해지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은 몽타주 기법인 시점 쇼트와 반응 쇼트를 교차하며 관객을 주인공의 시선에 몰입시켜 극적인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반면 카사베츠는 시점 쇼트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탐구하는 동시에,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특징을 보인다. 그는 시점 쇼트 이후 인물의 반응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관객 스스로 인물의 심리를 추론하고 영화의 의미를 해석하도록 유도한다. 일상적인 공간을 뒤틀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인물의 불안정한 심리를 카메라의 움직임과 편집으로 생생하게 표현하여 관객을 깊은 심리적 혼란 속으로 끌어들인다.   주인공 메이블은 신경쇠약으로 고통을 받는 세 아이의 엄마다. 그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소외감을 느낄뿐더러 불안과 고독을 끊임없이 드러낸다. 그녀의 불안정한 행동으로 가족들에게 상처를 입히지만, 동시에 아이들을 끔찍하게 아끼는 모성애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단순히 ‘비정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복잡한 감정과 욕망을 가진 인간임을 시사한다.   남편 닉 역시 마찬가지다. 성실하고 정이 많은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가부장적인 태도와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며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얼핏 보면 서로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관계는 금이 간 유리처럼 뒤틀려 있다. 닉은 표면적으로 메이블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형적인 가족의 이미지를 연기하는 데 집착한다. 메이블이 정신 병원에서 퇴원했을 때, 가족과 밥을 먹을 때조차 그는 부인을 생각하기보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메이블을 통제한다.     이는 정신적으로 괴로운 메이블이 의자에 올라가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부르며 날갯짓을 하자 정점에 달한다. 닉은 이상행동을 하는 그녀를 보고 화를 누르지 못하고 힘으로 제압한다. 무력이 사용된 순간 이 관계는 수평적인 이해관계로 성립되지 않는다. 메이블의 절규는 정신적인 고통을 넘어,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억압에 대한 묵언의 항변처럼 들린다. 메이블은 날 수 없는 백조나 다름없다. 사회적으로 부여된 여성의 역할과 남성 중심적인 사회 구조에 갇혀 자유롭게 날 수 없는 것이다.     영화를 구성하는 건축적인 특징 또한 메이블의 억압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층에 위치한 메이블의 침실은 곧 식당으로 사용된다. 이는 메이블이 개인적인 공간 없이 가족을 위한 헌신만을 강요받는 상황을 보여준다. 침실, 계단 옆 통로, 부엌, 화장실까지 이어져 있는 주택의 구조는 메이블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자유를 억압한다. 통 유리된 메이블의 방 또한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그의 삶을 반영한다.   영화는 부부가 아이들을 재우고 집안을 정리하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다만 그 이면에는 깊은 균열과 불안이 도사리고 있음을 암시한다.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내면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씁쓸함과 함께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카사베츠는 이 영화를 통해 70년대 여성들이 겪었던 사회적, 심리적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메이블의 정신적인 불안은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과 가부장적인 가족 구조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구조적인 문제의 결과라는 것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영향 아래 있는 여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며,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정하은 기자 [email protected] 비정상 사회적 심리적 사회 구조 가족 구조

2024-08-07

비정상적 불안, 의심 행동, 쉽게 화 내면…

시니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환중 하나가 바로 치매, 알츠하이머다. 다른 만성 질환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서 더 문제다. 다만 조기에 징후를 발견하면 진행을 늦출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캐나다 알츠하이머 협회가 공개한 알츠하이머 또는 치매에 걸렸을 수 있다는 조기 징후를 발견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대화 중 올바른 단어를 찾지 못하거나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고력, 기억력 또는 일상 업무 수행 능력에 지속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치매는 일상 생활에 지장을 주는 기능 상실을 초래하는 뇌의 변화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용어다. 치매는 집중력, 주의력, 언어 능력, 문제 해결 능력, 시각적 지각 능력 등을 저하시킬 수 있다. 치매는 또한 감정을 조절하기 어렵게 만들고 성격 변화까지 초래할 수 있다.   알츠하이머 협회의 2023년 통계에 따르면 670만 명의 미국인이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으며, 이는 치매 환자의 60~80%를 차지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그 숫자가 더 많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세계보건기구의 추산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치매는 7번째 주요 사망 원인이다.   치매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검사를 시행하고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의료 전문가에게 진찰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인 감염부터 비타민 결핍까지 치료 가능한 여러 질환이 치매와 유사한 증상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먼저 이를 배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치매의 10가지 경고 신호   다음은 주의해야 할 몇 가지 증상이다.     1.일상적인 작업의 어려움   치매 환자는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월별 청구서를 확인하거나 요리하는 동안 레시피를 따르는 것과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알츠하이머 협회는 지적한다. 또한 작업에 집중하기 어렵고,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마무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2.반복 질문과 이야기 반복   클리블랜드 클리닉에 따르면 질문을 반복해서 하거나 최근 사건에 대해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은 경증 또는 중등도 알츠하이머의 일반적인 징후다.   3.의사소통 문제   배우자가 대화에 참여하거나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생각하다가 갑자기 말을 멈추거나, 단어나 사물의 이름을 떠올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지 관찰해봐야 한다.     4.길 잃기   치매 환자는 시각 및 공간 능력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메이요 클리닉에 따르면 이는 운전 중 길을 잃는 것과 같은 문제로 나타날 수 있다.   5.성격 변화   배우자가 비정상적으로 불안, 혼란, 두려움,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거나 쉽게 화를 내고 우울해 보인다면 걱정할 필요가 있다.   6.시간과 장소에 대한 혼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리거나 어떻게 그곳에 도착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면 이는 위험 신호다. 펜실베이니아 펜 메모리 센터의 공동 책임자인 제이슨 칼라위시 박사는 시간에 대한 방향 감각 상실도 걱정스러운 징후 중 하나라고 말한다.     7.물건을 잘못 놓는다   알츠하이머 협회에 따르면 치매 환자는 물건을 비정상적인 장소에 놓을 수 있으며, 잘못 놓인 물건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되돌리기 어려울 수 있다고 한다.     8.판단력 흐려지는 문제 행동   가족 구성원이 돈을 다룰 때 점점 더 판단력이 흐려지거나 몸단장과 청결을 소홀히 하는 것 같다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9.흥미 상실 또는 무관심   때때로 특별히 사회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가족, 친구, 직장 및 사교 행사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일상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치매의 경고 신호이다. 2023년 알츠하이머병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무관심은 치매만큼 심각하지 않은 기억력 감퇴나 사고력 장애 증상인 경도인지장애(MCI)에서 알츠하이머병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경도 인지장애가 있는 사람은 치매에 걸릴 위험이 더 높다.   10.오래된 기억을 잊어버림   점점 더 지속되는 기억 상실은 종종 치매의 첫 징후 중 하나다.   치매의 다양한 유형   다음과 같은 질환은 치매의 주요 원인이다. 또한 알츠하이머 치매와 혈관성 치매 등 두 가지 이상의 치매 유형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혼합형 치매가 있을 수도 있다.   ▶알츠하이머병   알츠하이머병은 뇌에 아밀로이드 플라크와 엉킨 섬유가 생기고 신경 세포 간의 연결이 끊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손상은 처음에는 기억 형성에 관여하는 뇌 영역인 해마에서 나타나고 점차 확산된다.   ▶혈관성 치매   두 번째로 흔한 치매 유형은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의 손상으로 인해 발생한다. 기억력보다 집중력, 조직력, 문제 해결력, 사고 속도에 더 두드러지게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있다.   루이체 치매. 루이체라고 하는 뇌의 비정상적인 단백질 침착은 뇌 화학에 영향을 미치고 행동, 기분, 운동, 사고에 문제를 일으킨다.   ▶전두측두엽 장애   뇌의 전두엽과 측두엽의 퇴행성 손상은 65세 이하에서 치매의 가장 흔한 원인이다. 증상으로는 무관심, 의사소통, 걷기 또는 작업의 어려움, 감정 변화, 충동적이거나 부적절한 행동 등이 있다.    ◆도움말을 찾을 수 있는 곳   배우자에게 문제가 되는 증상이 나타나면 주치의를 방문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확실한 진단을 받으려면 신경과 전문의, 노인병 전문의 또는 노인 정신과 전문의와 같은 전문가에게 진찰을 받아야 한다.   이런 곳이나 전문가를 찾을 수 없는 경우 국립 노화 연구소는 가까운 의과대학의 신경과에 문의할 것을 권장한다. 일부 병원에는 치매를 전문으로 진료하는 클리닉도 있다.   흡연이나 고혈압과 같은 개선 가능한 위험 요인이 치매 위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전문가는 환자의 병력과 습관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가족력도 마찬가지다.   ◆치매는 어떻게 진단하나.   의사가 치매를 진단하는 데 사용하는 몇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인지 및 신경심리 검사는 언어 및 수학 능력, 기억력, 문제 해결력 및 기타 유형의 정신 기능을 평가한다.   ▶혈액 검사는 치매 진단에 있어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검사로, 현재로서는 임상 환경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의사는 알츠하이머병의 특징인 베타 아밀로이드와 p-tau217의 수치를 측정하는 검사를 지시할 수 있다.   ▶MRI 또는 PET 영상과 같은 뇌 스캔은 뇌 구조와 기능의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검사를 통해 뇌졸중, 종양 및 치매를 유발할 수 있는 기타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정신과적 평가를 통해 정신 건강 상태가 증상을 유발하거나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60세 이전에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유전자 검사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메이요 클리닉에 따르면 초기 발병 형태의 알츠하이머는 개인의 유전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검사를 받기 전후에 유전 상담사와 상담하라. 장병희 기자비정상 의심 치매 증상 치매 환자 알츠하이머 협회

2024-03-17

[문장으로 읽는 책] 적어도 두 번

미스터X는 나에게 성별을 결정하기 어려우면 자기처럼 뚱보가 되라고 했다. 살이 찌면 남들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보는 게 아니라 그냥 뚱뚱한 살만 본다고. 하지만 난 살이 찌면 축구할 때 빨리 달릴 수 없어 그건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미스터X는 로또에 도전하라고 했다. 여자든 남자든 중요한 건 돈이 많아야 하고 돈이 많으면 사람들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따지지 않고 부러워한다고 했다. 나는 미스터X의 조언대로 로또에 뛰어들었고 내 정체성 숫자를 찍었다. … 미래엔 인간보다 로봇이 많아질 텐데 그때가 되면 난 비정상이 아니라 그냥 인간이 될 수 있다. 차라리 인간 따윈 그만두고 로봇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로봇은 남자, 여자 구별 없이 그냥 로봇일 뿐이니까.   김멜라 『적어도 두 번』   ‘퀴어’는 최근 한국 문학의 주요 키워드다.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정상·비정상 이분법에 반기를 들고,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구호 아래 ‘일상의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체성 정치’의 일환이다. 그중에서도 김멜라는 단연 압도적이다. 매혹적이고 그로테스크한 글쓰기로, 최근 읽은 퀴어 문학 중 최고다. 인용문은 소설집 『적어도 두 번』 중 ‘호르몬을 춰줘요’에 나온다. 소설가 구병모는 “한번 닿으면 뇌리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을 얼음의 문장과 마취제도 없이 몸속을 휘젓는 그로테스크의 칼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추천사를 썼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남자 여자 비정상 이분법 정체성 정치

2023-03-29

시애틀발 대한항공 엔진 이상…하반기 A330 기종 3번째 사고

시애틀 국제공항을 떠나 인천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여객기 엔진에 이상이 발생해 승객들이 불안에 떨었다. 여객기는 엔진 1개만 가동한 채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22일(한국시각) 항공업계에 따르면 시애틀에서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던 A330 항공기는 이날 오후 5시 5분께 포항 상공에서 2번 엔진 비정상 메시지를 감지했다.   한국 언론은 대한항공 측을 인용해 시애틀발 인천공항행 KE402 여객기의 2번 엔진(우측)에 비정상 알림이 떴고, 기장은 안전절차에 따라 해당 엔진 가동을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2번 엔진을 중단한 해당 여객기는 1번(좌측) 엔진만을 가동해 예정시각보다 약 40분 늦은 오후 5시 16분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항공기에는 승객 202명과 승무원 14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착륙 과정에서 다친 사람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의 여객기 기종은 A330-200으로 비행 중 엔진 한 개가 고장 나도 다른 엔진으로 3시간가량 비행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측은 여객기 착륙 후 엔진결함 등 정비에 들어갔다.   한편 대한항공 A330 기종의 비행 중 엔진 이상은 올해 하반기에만 세 번째다. 해당 기종은 지난 7월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에서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중 엔진 이상으로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 비상착륙한 바 있다. 지난 10월에는 호주 시드니로 향할 계획이던 여객기가 이륙 직후 인천공항에 회항했다. 국토교통부는 잇단 A330 엔진 이상에 엔진 전수점검을 하고 항공사에 반복 정밀점검을 권고하는 등 안전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김형재 기자시애틀발 대한항공 시애틀발 인천공항행 대한항공 여객기 엔진 비정상

2022-12-22

[전문가 칼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엊그제 병동 환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미친(crazy) 생각을 할 수 있고, 미친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친 행동은 절대 안 된다. 우리 사회는 미친 ‘행동’을 용허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BC 322~384)가 주창한 웅변술의 3대 요소, Pathos(감성), Logos(논리), Ethos(인격)를 생각한다. 감성은 원시적 본능, 논리는 일상적 자아, 인격은 사회적 윤리를 대변한다. 이 세 기둥이 튼튼하게 잘 어울리면 듣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인단다. 정치가들의 발언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허버트는 병동에서 화장실 변기에 비닐봉지, 우유통 쪼가리 따위를 집어넣어서 변기를 막히게 하는 짓을 한다. 하나의 변기가 막히면 모든 환자가 다른 병동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을 겪는다.     리처드는 자칭 멋진 남자 ‘알파 메일(Alpha Male)’이다. 잘난 척하는 다른 환자들과 주먹다짐을 벌인다. 저보다 월등한 다른 정치인을 때리면서 ‘알파 정치가’로 치닫는 정치 풍토와 비슷하다. 그 결과로 병동과 한 나라의 ‘에토스’가 변한다.   토머스가 병동 복도에서 킬킬대며 웃는다. 오후 3시쯤 내 사무실 문 앞에서 오래 크게 웃는다. 내가 비명처럼 “헤이”하고 소리치면 금세 “I am sorry”하며 가버린다. 다음날 오후 3시에 또 내 방문 앞에서 벽이 흔들릴 정도로 크게 킬킬댄다.   토머스는 환청 증세가 있다. 그런데 그 비밀스러운 경험을 왜 내게 실시간으로 들려주는 것일까. 귀여운 강아지가 주인을 좋아해 멍멍 짖는 행위와 흡사하게, 그는 소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의 유일무이한 청중이다.   대니얼은 다른 사람들의 몸을 만지려 든다. 병동 복도를 무심코 지나가노라면 느닷없이 다가와 어깨나 옆구리를 건드린다. 그는 촉각으로 의사소통하려 한다. 갓난아기가 엄마 젖가슴을 만지듯이.   브루스는 언쟁을 즐긴다. 나는 그의 초대에 기꺼이 응한다. 그는 말이 달리면 욕설을 퍼부으며 나를 제압하려 한다. 한 번은 내게 “지옥이나 가라!(Go to hell!)”하며 고함을 치길래 “지옥에 함께 가서 얘기를 계속하자!”고 응답했다. 그가 “그래, 나는 파트타임으로 지옥을 방문할 테니까 너는 풀타임으로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하고 대꾸한다. 그러다 둘이서 동시에 폭소를 터뜨렸다. 말싸움이 그렇게 유쾌하게 끝난다.   나는 알고 있다. 브루스가 대화 내용과 상관없이 자기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를 내게 보여주는 이벤트를 치르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는 것을. 정치판에서도 힘의 과시에 몰두하는 정당 간에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터지곤 한다.     정신과는 자연과학이기보다 인문과학에 가깝다. 근 반세기에 걸쳐 환자들을 상대해 온 나는 환자를 이해하면 할수록 그들이 정상으로 보인다. 반면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환자를 이해할 수 없으면 비정상이라는 판정을 내린다. 정신과 진단은 객관적 기준이 아닌 사회적, 주관적 소견에 의존한다.   ‘norma’은 원래 라틴어로 ‘carpenter’s square’, 즉 ‘먹자’(목수가 나무에 먹으로 금을 그을 때 쓰는 ‘T’ 모양의 자)를 뜻했다. 정상인은 직선적인 사람이다. 그들은 에둘러 말하는 대신 직설의 정직성을 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과 비정상의 분별은 오늘도 ‘crazy’ 하기만 하다.  서량 / 정신과 의사·시인전문가 칼럼 비정상 정상 병동 화장실 병동 복도 엊그제 병동

2022-01-25

[잠망경] 정상, 비정상, Crazy?

엊그제 병동 환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미친(crazy) 생각을 할 수 있고, 미친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친 행동은 절대 안 된다. 우리 사회는 미친 ‘행동’을 용허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BC 322~384)가 주창한 웅변술의 3대 요소, Pathos(감성), Logos(논리), Ethos(문화)를 생각한다. 감성은 원시적 본능, 논리는 일상적 자아, 문화는 사회적 윤리를 대변한다. 이 세 기둥이 튼튼하게 잘 어울리면 듣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인단다. 정치가들의 발언에도 너끈히 적용되는 원칙이다.   허버트는 병동에서 화장실 변기에 비닐봉지, 우유통 쪼가리 따위를 집어넣어서 변기를 막히게 하는 짓을 한다. 하나의 변기가 막히면 모든 환자가 다른 병동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을 겪는다. 한 당원(黨員)이 정치적 뗑깡을 부리면 당 전체가 고통을 받는 이치와 비슷하다. ‘Ethos’가 망가진 상태!   리차드는 자칭 ‘알파 메일’잘난 척하는 다른 환자들과 주먹다짐을 벌인다. 저보다 월등한 다른 정치인을 때리면서 ‘알파 정치가’로 치닫는 정치풍토하고 비슷하다. 그 결과로 병동과 한 나라의 ‘에토스’가 변한다.   토마스가 병동 복도에서 킬킬대며 웃는다. 오후 3시쯤 내 사무실 문 앞에서 오래 크게 웃는다. 내가 비명처럼 “Hey!” 하고 일갈하면 금세 “I am sorry!” 하며 가버린다. 다음날 오후 3시에 또 내 방문 앞에서 벽이 흔들릴 정도로 크게 킬킬댄다.   토마스는 환청 증세가 있다. 그런데 그 비밀스러운 경험을 왜 내게 실시간으로 들려주는 것일까. 귀여운 강아지가 주인을 좋아하면서 멍멍 짖는 행위와 흡사하게, 그는 소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의 유일무이한 청중이다.   다니엘은 다른 사람들의 몸을 만지려 든다. 병동 복도를 무심코 지나가노라면 느닷없이 다가와 어깨나 옆구리를 건드린다. 그는 촉각으로 의사소통하려 한다. 갓난아기가 엄마 젖가슴을 만지듯이.   부르스는 언쟁을 즐긴다. 나는 그의 초대에 기꺼이 응한다. 그는 말이 딸리면 욕설을 퍼부으며 나를 푸짐하게 제압하려 한다. 한 번은 내게 “Go to hell!” 하며 고함을 치길래 “지옥에 함께 가서 얘기를 계속하자!” 고 응답했다. 그가 “그래, 나는 ‘파트 타임’으로 지옥을 방문할 테니까 너는 ‘풀 타임’으로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 하고 대꾸한다. 그러다 둘이서 동시에 폭소를 터뜨렸다. 말싸움이 그렇게 유쾌하게 끝난다.   나는 알고 있다. 부르스가 대화 내용과 상관없이 자기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를 내게 보여주는 이벤트를 치르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는 것을. 정치판에서 힘의 과시에 몰두하는 정당 간에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터지는 사실 또한.   정신과는 자연과학이기보다 인문과학에 가깝다. 근 반세기에 걸쳐 환자들을 상대해 온 나는 환자를 이해하면 할수록 그들이 정상으로 보인다. 반면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환자를 이해할 수 없으면 비정상이라는 판정을 내린다. 정신과 진단은 객관적 기준이 아닌 사회적, 주관적 소견에 의존한다.   ‘normal’은 워낙 라틴어로 ‘carpenter’s square’, 즉 ‘먹자’(목수가 나무에 먹으로 금을 그을 때 쓰는 ‘T’ 모양의 자)를 뜻했다. 정상인은 직선적인 사람이다. 그들은 에둘러 말하는 대신 직설의 정직성을 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과 비정상의 분별은 오늘도 ‘crazy’ 하기만 하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비정상 crazy 정상 비정상 병동 화장실 병동 복도

2022-01-25

LCCC 골프장 갈등, 법정 비화될 조짐

오렌지카운티내 유명 회원제 골프장 회원 한인들이 골프장측의 비정상적인 운영에 항의하는 서명운동〈본지 2월18일자 A-3면>을 벌이고 가운데 결국 이 문제가 법정소송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곳은 부에나파크 지역 '로스 코요테스 컨트리 클럽(LCCC)으로 운영은 AGC(American Golf Corporation)가 맡고 있다. 한인 회원들은 ▷LCCC측이 회원권을 제한없이 판매하고 있고 ▷회원권 할인 판매로 그 가치가 급락했으며 ▷회원수 급증으로 티타임 예약조차 못할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을 뿐 아니라 ▷클럽 내 비품이나 수건의 관리 소홀 등 위생과 쾌적함도 무시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회원들에 따르면 지난 26일 일부 회원들과 AGC측이 본지 보도후 10여명 이상이 참석한 가운데 LCCC에서 미팅을 가졌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아무런 성과없이 마무리 됐다. 미팅에 참여한 한인 인사는 "AGC측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 개선방안을 제시할 줄 알았으나 오히려 회원권을 계속 판매하겠다는 등 자신들의 입장만을 전달했다"며 "이제는 법적으로 소송절차를 밟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LCCC 한인 회원 박모씨는 "골프장측에 횡포가 너무 심하다"며 "서명한 한인들은 벌써 200여명이 넘어서고 있다"고 전했다. 장열 기자

2010-03-29

유명 골프장 한인 회원들 '뿔났다'···'로스 코요테스 클럽' 회원권 판매 남발

오렌지카운티내 유명 회원제 골프장 한인 회원들이 골프장측의 '나 몰라라식' 운영에 맞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나섰다. 문제가 되고 있는 곳은 부에나파크 지역의 '로스 코요테스 컨트리 클럽(LCCC)으로 운영은 AGC(American Golf Corporation)가 맡고 있다. 한인 회원들은 "지난 2년간 LCCC측의 회원권 판매 남발로 피해를 입었다"면서 "그동안 여러 방법으로 시정을 요구했지만 무시당해왔다"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이 골프장 회원권 가격은 지난해 기준 1만9000달러에 달한다. 16일 현재 LCCC측에 제출할 항의서에 서명한 한인 회원은 136명이다. 서명에 동참한 회원들은 ▷LCCC측이 회원권을 제한없이 판매하고 있고 ▷회원권 할인 판매로 그 가치가 급락했으며 ▷회원수 급증으로 티타임 예약조차 못할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을 뿐 아니라 ▷클럽 내 비품이나 수건의 관리 소홀 등 위생과 쾌적함도 무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회원권 할인 판매로 빚어진 불만은 한인 뿐만 아니라 회원 전체에 팽배한 상황이다. 지난 2009년 3월 LCCC 이사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LCCC의 연간 평균 라운드 횟수(9홀 기준)는 2만8667번으로 마운틴 게이트 클럽(2만5000번) 요바린다 클럽(2만2500번) 등 인근지역 8개 골프클럽 중 가장 높았다. 또 당시 회원 160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중 무려 88%가 '매니지먼트사를 교체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84%는 '사용료를 낸 만큼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서비스의 질적 저하는 계속되고 있음에도 회원들의 골프장 월이용료는 2003년 이후 30% 가까이 오른 630달러(서비스 이용료 포함)에 달한다. LCCC 회원인 스텐리 배씨는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문제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AGC가 회원들의 불만사항을 수년동안 계속해서 무시해 왔다는 것"이라며 "LCCC 회원 대다수가 한인인 점을 감안하면 향후 서명에 동참하는 회원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GC측의 크리스티나 청 미디어 담당은 "2주 후 열릴 회원들과 미팅에서 이 문제들에 대해 논의하겠다"고만 짧게 답했다. 장열 기자

201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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