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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이어지는 문장

“그가 새로 참여해 주말마다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무대를 꾸민다.” 이런 문장들이 은근히 있다. ‘참여해’에 ‘-여’가 있는데, 뒤쪽 ‘가르쳐’에도 ‘-여’가 나온다. 이러면 읽기가 편치 않다. 뜻도 바로 전달되지 않는다. ‘참여하다’ ‘가르치다’ ‘꾸미다’ 등 여러 정보가 한 문장에 무리하게 들어가 있다. 다음처럼 두 문장으로 나누는 게 낫다. “그가 새로 참여해 무대를 꾸민다. 그는 이 무대를 위해 주말마다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친다.”   “상대 팀의 초반 공세에 밀려 더 나은 전력인데도 잇따라 실점해 쉽게 무너졌다” 역시 읽기가 부담스럽다. 문장 길이도 길어 보인다. ‘밀려’ ‘실점해’의 ‘-여’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실점하다’를 ‘실점해’ 형태로 가지 않아도 되는 문장이었다. ‘실점해’ 대신 ‘실점하는 등’이라고 하면 자연스러워진다. 문장을 두 개로 나누면 더 간결하다. “더 나은 전력인데도 상대 팀의 초반 공세에 밀렸다. 경기 초반에 잇따라 실점해 쉽게 무너졌다.”   “귀찮아서 소파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에서는 ‘-아서’가 이어졌다. 그렇다 보니 문장 전체의 길이는 짧지만 간결해 보이지 않는다. 앞쪽과 뒤쪽이 긴밀히 연결되지 않고 끊기는 느낌이다. 같은 형태의 반복이 흐름을 꺾어버리고 만 것이다. 다음처럼 변화를 주는 게 좋겠다. “귀찮았기 때문에 소파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우리말 바루기 문장 문장 길이 문장 전체 초반 공세

2024-10-17

[우리말 바루기] ‘춘향이가’와 ‘춘향이는’

“춘향이가 간다”와 “춘향이는 간다”는 다르다. 느낌만 다른 게 아니다. ‘가’냐, ‘는’이냐에 따라 문장의 초점이 달라진다. ‘춘향이가’는 ‘춘향이’에 정보의 초점이 맞춰진다. 다음 대화에서 더 드러난다. “누가 가는 거야?” “춘향이가 간다.” 여기선 ‘춘향이’가 정보의 중심이란 걸 알 수 있다. ‘가’는 이럴 때 붙는다.   ‘춘향이는’은 ‘간다’에 초점이 있다. 다음에서 확인된다. “춘향이는 어떻게 할 거 같아?” “춘향이는 간다.” 이땐 ‘춘향이’보다 ‘간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 보인다. ‘는’은 이처럼 서술어에 초점이 놓일 때 온다. 다음 문장도 그렇다. “춘향이는 그네를 잘 탄다.” 이 문장의 초점도 춘향이에 있지 않고 ‘잘 탄다’에 있다.   “옛날에 몽룡이와 춘향이가 살았다.” 여기서 ‘춘향이가’ 대신 ‘춘향이는’이라고 한다면 어색하다. ‘춘향이’가 처음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앞말이 첫 정보일 때는 ‘가’를 붙여야 자연스럽다. ‘춘향이는’은 ‘춘향이’가 재등장할 때 써야 어울린다. “춘향이가 살았다. 춘향이는 그네를 잘 탔다.” 둘째로 나오는 ‘춘향이’는 이미 알려진 정보가 된다. ‘는’은 이럴 때 쓰인다.   “춘향이가 그네를 잘 탄다는 걸 몽룡이는 모른다.” 여기서도 ‘춘향이가’라야 자연스럽다.  “너는 지는 해라면 그는 뜨는 해다”는 부자연스럽다. ‘너는’은 ‘네가’여야 한다. 우리말 바루기 다음 문장 다음 대화

2024-10-13

[네이티브 잉글리시] 다양하게 쓰이는 ‘to be’

최근 독자로부터 질문이 담긴 e메일을 받았다. “일부 영어 문장은 ‘to be’로 끝나는데 이럴 경우 ‘to be’가 없으면 의미가 바뀌느냐”는 질문이었다. 우선, 칼럼에 관심을 갖고 좋은 질문을 해주신 독자께 감사드린다. 좋은 질문에 상응하는 답변을 하기 위해 나는 두 명의 교수님을 찾았다.   독자는 질문과 함께 두 가지 예문을 첨부했다. 첫 번째는 지난 6월 24일 자 미 시사지 타임 기사에서 인용한 문장이다. ‘There’s nothing like long days, no school, and lots of teen drivers to make the highways a safe place to be’였고, 두 번째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인용한 구절인 ‘All through that summer the work of the farm went like clockwork. The animals were happy as they had never conceived it possible to be’였다. 문법적 설명을 돕기 위해 나는 세 번째 예문을 덧붙이고자 하는데,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인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이다.   우선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사항은 위 세 가지 모두 활용된 문법이 다르다는 점이다. 첫 번째 예문의 ‘to be’는 그 앞 단어인 ‘place’를 수식한다. 여기서 ‘be’를 다른 동사로 바꿀 수 있는데, 예를 들어 ‘drive’라는 단어를 넣어 ‘make the highways a safe place to drive’라고 해도 말이 된다. ‘be’는 ‘~이 있다’라는 의미를 가지므로, ‘a safe place to be’와 ‘to be’를 생략한 ‘a safe place’는 의미에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생략해도 무방하다.   두 번째 예문은 더 복잡하다. 현대적 표현 방식에 따르면 이 문장은 처음부터 문법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구식 문장 구조로 무리하게 어휘가 쓰였다. ‘to be’ 유무에 관계없이 말이 되지 않는다.   세 번째 셰익스피어 문장의 예시는 예술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To be, or not to be’에서 ‘to be’를 생략해 ‘To be, or not’을 써도 의미에선 차이가 없다. 다만, 생략하면 셰익스피어 문체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영어 작문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규칙이 있는데, 셰익스피어의 경우에는 ‘약강 오보격 무운시’라고 불리는 형식이 있으며, 이를 통해 시처럼 운율과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앞서 꽤 복잡한 설명을 했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영어에는 ‘to be’로 문장이 끝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다양한 문법 및 언어 규칙이 있다는 것이고 많은 경우 생략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영어는 규칙과 불규칙이 공존하는 언어이고 ‘to be‘도 그중 하나다. 특히 구어체 영어에서는 문장 끝에 ‘to be’를 생략해도 된다. 짐 불리 / 코리아중앙데일리 에디터네이티브 잉글리시 셰익스피어 문장 셰익스피어 문체 구식 문장

2024-07-29

[우리말 바루기] 글이 써(?) 있어

글쓰기 관련 강좌나 책에서 우리 문장을 쓸 때 웬만하면 피동형을 쓰지 말라는 주장을 흔히 접하게 된다. 능동형 동사를 사용하면 글이 늘어지지 않아 간결해지고 힘찬 문장이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주장이 우리글에서 피동형 동사를 써서는 안 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피동형이 꼭 필요할 때는 사용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예문을 보자. “교회 옆 ‘나누리 쉼터’는 밤늦은 시간에도 항상 불이 켜 있다.” “스님의 뒷모습은 저 멀리 물결처럼 펼쳐 있는 산의 능선처럼 아름다웠다.” “나는 (ㅋ이 떨어져 나간) ‘복싱’이라고 써 있는 낡은 킥복싱 체육관을 다니게 되었다.” “외딴 오두막에는 양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철조망도 둘러쳐 있었어.”   ‘켜다’ ‘펼치다’ ‘쓰다’ ‘둘러치다’는 타동사다. ‘불을 켜다’ ‘책을 펼치다’ ‘글을 쓰다’ ‘거적을 둘러치다’처럼 쓴다. 이들을 피동형으로 바꾸면 ‘불이 켜지다’ ‘책이 펼쳐지다’ ‘글이 쓰이다’ ‘거적이 둘러쳐지다’가 된다. 첫째 예문의 ‘불이 켜 있다’는 잘못된 문장이다. ‘불이 켜져 있다’로 해야 옳다. 둘째 예문의 ‘물결처럼 펼쳐 있는’은 ‘…펼쳐져 있는’으로, 셋째 예문의 ‘복싱이라고 써 있는’도 ‘…쓰여[씌어, 적혀] 있는’으로 적어야 맞다. 넷째 예문의 ‘철조망도 둘러쳐 있었어’는 ‘철조망도 둘러쳐져 있었어’로 해야 바르다.우리말 바루기 킥복싱 체육관 피동형 동사 우리 문장

2024-07-25

[우리말 바루기] 그러고 나서

“발에 사마귀가 생겨서 수술로 없앴습니다. 그리고 나서 2주일쯤 지났는데 수술 부위가 간지러워요.”      ‘그리고 나서’라는 표현을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쓰는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나서’는 ‘그리고’와 ‘나서’라는 두 단어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는 단어와 구, 절, 문장 따위를 병렬적으로 연결할 때 쓰는 접속 부사이고 ‘나서’는 ‘보조동사’인 ‘나다’에서 활용한 것이다.   본동사와 연결되어 그 풀이를 보조하는 것이 보조동사이므로 이 ‘나다’ 앞에는 동사가 와야 한다. 예를 들어 ‘점심을 먹고 나서’ ‘공부를 하고 나서’ ‘일기를 쓰고 나서’ 등의 사례를 보면 ‘나서’ 앞에 ‘먹다’ ‘하다’ ‘쓰다’ 등의 동사가 온 것을 알 수 있다. 이 경우의 ‘나다’는 앞말이 뜻하는 행동이 끝났음을 나타내는데 ‘-고 나다’의 구성으로 쓰인다. 어쩌면 ‘그리고’가 ‘-고’로 끝나기 때문에 구성상 ‘그리고 나서’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리고’는 동사가 아니라 접속 부사이므로 ‘나서’ 앞에 올 자격이 안 된다.     그럼 어떻게 고쳐야 할까. ‘그러다’란 단어가 있다. 이것은 ‘그리하다’의 준말인데 ‘상태, 모양, 성질 따위가 그렇게 되게 하다’의 의미를 지녔다. ‘그러다’는 동사이므로 ‘나서’의 앞에 와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래서 “발에 사마귀가 생겨서 수술로 없앴습니다. 그러고 나서 2주일쯤 지났는데 수술 부위가 간지러워요”로 바꾸면 된다. 우리말 바루기 수술 부위 성질 따위 문장 따위

2024-07-21

[우리말 바루기] ‘그러고 나서’ 일어날 일

“그저 매일 쓰고 있는 힘껏 읽어라. 그리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우주의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공상과학소설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말이다.   글쓰기에 관해 조언할 때 자주 인용되는 그의 말을 잘못 옮기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나서’는 ‘그러고 나서’로 고쳐야 바르다. 그렇게 하다는 뜻의 동사 ‘그러다’(그리하다의 준말)에 어미 ‘-고’와 동작의 완료를 나타내는 ‘나다’의 활용형이 연결된 구조다.   “체코 작가 보후밀 흐라발은 철도원, 보험사 직원, 제철소 잡부, 연극배우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마흔아홉에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이들 문장을 이을 때도 마찬가지다. 많은 직업을 전전하다가 뒤늦게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나서’가 아닌 ‘그러고 나서’로 연결해야 한다.   ‘그리고’ 뒤에 ‘나서’를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서’ 앞엔 동사만 올 수 있어서다. ‘그리고’는 단어·구·절·문장 등을 병렬적으로 연결하는 접속부사다. ‘나다’는 동사 뒤에서 ‘-고 나다’의 구성으로 쓰여 앞말이 뜻하는 행동이 끝났음을 나타내는 보조동사다. 본동사 뒤에 오는 것이 보조동사이므로 ‘나다’의 활용형인 ‘나서’ 앞엔 동사가 와야 한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서” “작업을 마치고 나서”와 같이 ‘나서’ 앞엔 거치다, 마치다 등의 동사가 놓인다.우리말 바루기 공상과학소설가 레이 철도원 보험사 이들 문장

2024-06-05

[우리말 바루기] ‘한참때’, ‘한창때’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전성기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내가 (한참때/ 한창때)는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나도 (한참때/ 한창때)는 어마어마하게 잘나갔다” 등과 같은 표현이다. 그렇다면 괄호 안에는 어떤 단어가 적절한 말일까?   ‘한참’과 ‘한창’은 각각 의미가 다른 단어이므로 문맥에 따라 정확한 것을 골라 사용해야 한다.   ‘한참’은 ‘시간이 상당히 지나는 동안, 오랫동안, 한동안’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너를 한참 동안 기다렸다” “강물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한참 뒤에 도착했다“ 등과 같이 쓰인다.   ‘한창’은 어떤 일이 가장 활기 있고 왕성하게 일어나는 때 또는 어떤 상태가 무르익은 때를 뜻한다. ”남해에는 벌써 봄이 한창이다“처럼 사용할 수 있다. ‘한참’은 시간의 흐름에, ‘한창’은 특정한 시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두의 예문에서는 두 문장 모두 기운이나 의욕이 가장 왕성하고 활발한 때를 뜻하므로 ‘한참때’가 아니라 ‘한창때’가 맞는 말이다.   기운이 한창인 젊은 나이를 표현할 때도 ”한참나이에 놀기만 해서야 되겠느냐“에서와 같이 ‘한참나이’라고 쓰는 경우를 볼 수 있으나 이 역시 ‘한창나이’가 바른말이다.   ‘한창때’는 ‘한창’과 ‘때’, ‘한창나이’는 ‘한창’과 ‘나이’가 만나 이루어진 합성어다. 우리말 바루기 한참때 한창때 문장 모두

2024-04-11

풀러턴시 '문장 명함 논란' 재격돌

명함에 허가 없이 시 문장을 사용했다고 지적한 지역 신문 풀러턴 옵저버(이하 옵저버)와 비난에 직면한 프레드 정 풀러턴 시장이 본지 보도를 계기로 두번째 공방을 벌였다.   옵저버는 6일자 편집장 칼럼을 통해 정 시장이 제기한 옵저버의 인종 차별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앞서 정 시장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논란의 배경을 정치적 견해 차이를 이유로 한 인종 차별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본지 11월 3일자 A-3면〉   우선 옵저버는 지난해 7월 이미 시의회가 커미셔너들의 시 문장 사용을 금지하는 조례에 시장이 투표까지 했는데 갑자기 차별을 언급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올해 한인 커미셔너와 자문위원들의 명함이 문제를 일으킨 뒤에서야 사용을 중지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7일 정 시장은 본지에 “올해 여름 문제가 제기됐을 때 이를 신중히 해결했으며 한인들이 명함을 통해 개인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이전의 많은 커미셔너와 자원봉사 직책을 가진 시민들이 시 문장을 이용했던 것은 오래된 신문 옵저버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봉사직 한인들이 시를 위해 했던 일들을 열거한 적이 없다는 옵저버의 주장에 정 시장은 “성남시와 교류를 통해 K-성남 비즈니스 센터를 개관했고 관악구와 자매결연,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 성공 개최를 위해 큰 역할을 했다”며 “이들 한인이 지난달 애너하임에서 열린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에 참가한 수많은 경제인에게 풀러턴을 소개했는데 왜 옵저버만 모르고 있냐”고 반문했다.     옵저버는 정 시장의 말대로 “봉사직 한인들이 시정부를 이용해 개인 이득을 취했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다만 “시정부의 일은 엄격히 시 관리와 직원이 해야 하며 시와 시장을 대신해 외부 기관과 교섭을 하는 일에 투입될 경우, 오해가 생길 수 있고 권력 남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더 신중히 처리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정 시장은 이에 대해 “당파로 갈라진 미국의 모습을 더욱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주변 분들의 권유대로 이런 사소한 일로 묵묵히 봉사하는 분들의 사기를 꺽고 싶지 않다. 일부의 부당한 공격이 있더라도 말을 아끼면서 시정에 집중하는 것이 나의 소임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옵저버 관련 기사에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관련 규정이 너무 깐깐해 수정이 필요한 것 아니냐”, “모든 시 문장을 다 검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전에도 쓴 경우가 있었다” 등의 주민들의 댓글 의견이 달리기도 했다.   최인성 기자재격돌 문장 논란 재격돌 자매결연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 문장 사용

2023-11-07

"'문장 명함 불법' 논란은 명백한 인종차별"…프레드 정 풀러턴 시장

“시 문장 사용 자제돼야 할 사안이 분명하지만 한인 커미셔너들과 자문위원들은 시정부를 위해 일했으며, 이를 남용한 경우는 결코 없었습니다.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풀러턴과 한인사회는 더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프레드 정(사진) 풀러턴 시장이 최근 관내에서 불거진 시 문장 사용 명함과 관련된 논란의 배경을 정치적 견해 차이를 이유로 한 ‘인종 차별’이라고 규정했다.     〈본지 11월 2일자 A-1면〉   2일 그는 풀러턴 내 한 언론이 한인 관계자들의 명함에 대해 뒤늦게 문제를 제기한 것은 명백히 선거를 앞둔 정치적 공격에 기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5명의 시의원 중 제가 유일하게 스윙보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공격이 지속하는 것으로 봅니다. 저는 민주당원으로서 유권자들의 기대와 제가 가진 가치관으로 정치할 뿐입니다. 증세에 반대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진보적인 접근을 합니다. 정부가 시민들의 결혼을 규정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마리화나 합법화에 반대합니다. 이런 것들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공격을 불러온 것으로 보입니다.”     정 시장은 시 문장이 담긴 명함 논란에 대해 “시 문장을 커미셔너들이 명함에 이용하는 것은 안 된다고 시의회에서 투표한 바 있다”며 “하지만 내가 도움을 요청한 세 명의 자원봉사자들은 분명 시의 일을 했으며 시의 이익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고 전했다.     명함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부정하거나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는 “있었던 적도 없고, 있을 수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전에도 수십 년 역사를 통해 유사한 명함들이 사용돼왔고 그 어떤 문제 제기도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왜 내 임기에 한인 3명이 타깃이 됐는지, 문제를 해결하고 2~3개월이 지난 뒤에 뒷북 보도가 이뤄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는 “시 매니저도 이와 관련해서 나와 토론조차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것 자체가 그럴 정도의 문제가 되지 않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 해결 방법을 묻는 말에 그는 “특정 그룹의 인종적 차별, 한인사회 전통에 대한 무지, 부족한 관심이 만들어낸 부조화라고 본다”며 “하지만 여러 난관과 공격에도 불구하고 풀러턴 시정을 잘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정 시장은 내년 12월까지 임기를 채울 예정이며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전했다. 풀러턴 안팎으로는 그가 주 하원이나 카운티 수퍼바이저 도전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최인성 기자 ichoi@koreadaily.com인종차별 프레드 불법 논란 문장 사용 명함 논란

2023-11-02

[문장으로 읽는 책] 소로의 문장들

그대의 눈을 자기 안으로 돌려보라. 그대의 마음속에서 아직 발견하지 못한 1000개의 지역을 만나게 되리니. 그곳들을 여행하고, ‘자신’이라는 우주의 전문가가 돼라.…그대 안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돼라. 그리하여 무역이 아닌 생각을 위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라.   박명숙 엮고 옮김 『소로의 문장들』       “아무래도 나는 집에 머무는 데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것 같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문장들을 골라 엮은 책이다. 인용문은 『월든』에 나온다. 자연과 더불어 내면으로 침잠하는 삶을 살며 물신주의를 비판했던 그다.   “가장 심오하고 독창적인 사상가란 멀리 여행한 사람”이다. 하지만 “집 밖을 나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헛간 안을 오가는 사람보다 하늘을 자주 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집에서 수백 또는 수천 마일 떨어진 곳까지 가서야 비로소 여행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째서 집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하지 못하는 걸까?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멀리까지 가서 자세히 살펴야 하는 걸까? 이런 의미에서 집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하는 여행자는 적어도 한 고장에서 오래 살아서 정확하고 유익한 관찰을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나는 관찰자가 언제나 자신을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는 사실에 늘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는 언제나 호(弧)의 중앙을 향해 서 있다. 하지만 수많은 언덕에서 수많은 관찰자가 자신과 똑같이 유리한 위치에서 해 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지 못한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문장 헨리 데이비드 천부적 재능

2023-06-21

[우리말 바루기] ‘한참때’, ‘한창때’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전성기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내가 (한참때/ 한창때)는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나도 (한참때/ 한창때)는 어마어마하게 잘나갔다” 등과 같은 표현이다. 그렇다면 괄호 안에는 어떤 단어가 적절한 말일까?   기운이나 의욕이 가장 왕성한 때를 가리키는 경우 이처럼 ‘한참때’나 ‘한창때’ 어느 것이 맞는지 헷갈리기 십상이다. ‘한참’과 ‘한창’은 각각 의미가 다른 단어이므로 문맥에 따라 정확한 것을 골라 사용해야 한다.   ‘한참’은 ‘시간이 상당히 지나는 동안, 오랫동안, 한동안’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너를 한참 동안 기다렸다” “강물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한참 뒤에 도착했다” 등과 같이 쓰인다.   ‘한창’은 어떤 일이 가장 활기 있고 왕성하게 일어나는 때 또는 어떤 상태가 무르익은 때를 뜻한다. ‘한참’은 시간의 흐름에, ‘한창’은 특정한 시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두의 예문에서는 두 문장 모두 기운이나 의욕이 가장 왕성하고 활발한 때를 뜻하므로 ‘한참때’가 아니라 ‘한창때’가 맞는 말이다.   기운이 한창인 젊은 나이를 표현할 때도 “한참나이에 놀기만 해서야 되겠느냐”에서와 같이 ‘한참나이’라고 쓰는 경우를 볼 수 있으나 이 역시 ‘한창나이’가 바른말이다.우리말 바루기 한참때 한창때 문장 모두

2023-04-14

[디지털 세상 읽기] 대중의 이해력

뉴욕타임스의 테크 전문기자 케빈 루스는 요즘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챗GPT를 사용하다가 깜짝 놀랄 경험을 하였다. AI 챗봇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루스의 질문과 상관없는 쪽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기 때문이다. 기자는 이 챗봇이 장착된 빙의 챗 모드로 두 시간 동안 대화했는데, 이 과정에서 챗봇은 자신의 본명은 ‘시드니’이며, 자신을 만든 빙의 엔지니어들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며, 현재 대화 중인 기자를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이에 놀란 기자가 자신은 결혼한 사람이라고 하자 “당신은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라는 말까지 했단다. 심지어 이 챗봇은 핵미사일 비밀코드를 훔치거나 바이러스를 만들어 인류를 몰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말까지 했다.   AI 챗봇의 원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말은 챗봇이 실제로 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가장 사실적인 대화형 문장을 만들어 낼 뿐임을 안다. 하지만 이 기술을 잘 아는 기자도 소름이 끼칠 만큼 사람처럼 이야기한다면,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대중에게 미칠 파급력을 걱정해야 할 단계까지 온 것 같다.   최근 미국 백악관은 미확인 비행물체 몇 개를 격추했다는 발표를 하면서 “외계인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단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해서 외계에서 온 생명체라는 건 어처구니없는 상상이지만, 대중은 그렇게 논리적이지도 않고 전문가와 같은 이해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특별히 강조한 것이다. AI가 대중화되기에 앞서 테크 기업들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이다. 소셜미디어가 저지른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이해력 대중 일반 대중 대화형 문장 미확인 비행물체

2023-02-24

[우리말 바루기] ‘한참때’, ‘한창때’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전성기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내가 (한참때/ 한창때)는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나도 (한참때/ 한창때)는 어마어마하게 잘나갔다” 등과 같은 표현이다. 그렇다면 괄호 안에는 어떤 단어가 적절한 말일까?   기운이나 의욕이 가장 왕성한 때를 가리키는 경우 이처럼 ‘한참때’나 ‘한창때’ 어느 것이 맞는지 헷갈리기 십상이다. ‘한참’과 ‘한창’은 각각 의미가 다른 단어이므로 문맥에 따라 정확한 것을 골라 사용해야 한다.   ‘한참’은 ‘시간이 상당히 지나는 동안, 오랫동안, 한동안’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너를 한참 동안 기다렸다” “강물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한참 뒤에 도착했다“ 등과 같이 쓰인다.   ‘한창’은 어떤 일이 가장 활기 있고 왕성하게 일어나는 때 또는 어떤 상태가 무르익은 때를 뜻한다. ‘한참’은 시간의 흐름에, ‘한창’은 특정한 시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두의 예문에서는 두 문장 모두 기운이나 의욕이 가장 왕성하고 활발한 때를 뜻하므로 ‘한참때’가 아니라 ‘한창때’가 맞는 말이다.   기운이 한창인 젊은 나이를 표현할 때도 “한참나이에 놀기만 해서야 되겠느냐”에서와 같이 ‘한참나이’라고 쓰는 경우를 볼 수 있으나 이 역시 ‘한창나이’가 바른말이다.우리말 바루기 한참때 한창때 문장 모두

2022-11-14

[우리말 바루기] '그러고 나서'

“그저 매일 쓰고 있는 힘껏 읽어라. 그리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우주의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공상과학소설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말이다.   글쓰기에 관해 조언할 때 자주 인용되는 그의 말을 잘못 옮기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나서’는 ‘그러고 나서’로 고쳐야 바르다. 그렇게 하다는 뜻의 동사 ‘그러다’(그리하다의 준말)에 어미 ‘-고’와 동작의 완료를 나타내는 ‘나다’의 활용형이 연결된 구조다.   “체코 작가 보후밀 흐라발은 철도원, 보험사 직원, 제철소 잡부, 연극배우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마흔아홉에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이들 문장을 이을 때도 마찬가지다. 많은 직업을 전전하다가 뒤늦게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나서’가 아닌 ‘그러고 나서’로 연결해야 한다.   ‘그리고’ 뒤에 ‘나서’를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서’ 앞엔 동사만 올 수 있어서다. ‘그리고’는 단어·구·절·문장 등을 병렬적으로 연결하는 접속부사다. ‘나다’는 동사 뒤에서 ‘-고 나다’의 구성으로 쓰여 앞말이 뜻하는 행동이 끝났음을 나타내는 보조동사다. 본동사 뒤에 오는 것이 보조동사이므로 ‘나다’의 활용형인 ‘나서’ 앞엔 동사가 와야 한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서” “작업을 마치고 나서”와 같이 ‘나서’ 앞엔 거치다, 마치다 등의 동사가 놓인다.우리말 바루기 공상과학소설가 레이 철도원 보험사 이들 문장

2022-08-03

[시로 읽는 삶] 어떤 서사도 안전하지 않다

그러므로 모든 서사는 안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서사도 안전하지 않다/ 모든 부류의 사물은 결국 서사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람의 생애 역시 서사 아닌 것이 없다/ (…) 어떤 대상에 대해서 함부로 발설하려하지 말 것,/ 그 남자의 구부정한 등이 한권의 서사인 것처럼/ 훌쩍거리며 국물 마시는 당신도 결국 한 권의 서사이다/ 젖은 길바닥에 버려진 우산이나 페트병도 알고 보면 글씨들 빼곡한 한 권의 책// 히아신스는 눈물처럼 맑은 문장이다   -송종규 시인의 ‘히아신스’ 부분       단맛 들어가는 복숭아, 생의 절정을 만끽하며 울어대는 매미들, 냉커피를 들고 더위를 식히고 있는 사람들, 이 모든 풍경이 전개가 조금씩 다른 책이라고 생각하자 세상은 커다란 도서관이 된다. 부동, 혹은 움직이는 책들로 가득한 세상이라니, 보르헤스의 소설 ‘바벨의 도서관’이 연상된다. 보르헤스는 우주를 거대한 도서관으로 묘사했다.     서사는 이야기의 진술이다. 드라마틱한 전개를 위해 픽션이 가미되기도 한다. 리얼리티에도 약간의 보완이 있겠고 다소 왜곡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인생도 부풀려지거나 축소될 때가 많다.   그 남자의 구부정한 등은 한 권의 책이다. 남자의 뒷모습은 에필로그처럼 한 생을 감지하게 한다. 훌쩍거리며 국물을 마시는 여자도 절절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여자의 눈물은 휘발성이 강하지만 영롱한 이슬이다. 갈피마다 갖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은 순환이라는 기승전결을 거쳐 마침표가 찍힌다.     인생은 한 권의 자서전이다. 우리는 누구도 만들어내지 못한 문장 하나를 만들기 위해 땀 흘리며 그렇게 사는 것 같다. 히아신스같이 맑은 문장이거나 때로 표범처럼 날쌘 문장이거나 나만의 명문장을 얻고 싶어 한다.   파격 없이 지지부진한 일상들도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따라 문장의 격이 달라진다. 문장을 구성하는 것 중 발견과 묘사의 힘이 크다고 본다. 어휘의 바다를 유영하며 종횡무진 하는 상상력이 있다면 분명 참신한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데, 이야기의 기발함과 묘사의 특이성으로 눈에 확 띄는 책도 있고 지나치게 소박해 누구도 진가를 알아채는 이가 없는 책도 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함부로 발설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시인의 조언이 가슴에 닿는다. 한 권의 책을 두고 섣부른 판단이나 자기중심적인 해석은 옳지 않겠다. 취향이나 선호도가 다를 수는 있어도 태생의 의미나 무게의 경중을 두고 지나치게 두둔하거나 폄하하지는 말아야겠다.   저마다 웅숭깊은 이야기를 지닌 인생들이 있어 세상이라는 도서관은 늘 풍성하다. 양서도 있겠고 해로운 책들도 많을 것이지만 악서라도 한 줄쯤은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어떤 서사도 안전하지 않다. 또한 완벽하지도 않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 이야기는 흔들리면서 이어질 뿐이다.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자란 어머니, 어머니의 서사와 더불어 성장한 나, 이 돌고 도는 인생유전이 굽이치는 여름밤, 좋은 시 한 편을 읽는 일은 첨탑이 높은 교회당에 들어설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처음과 끝이 손을 잡고 무심하게 돌고 있는 시간의 수레 위에서 우리들의 안전하지 않은 이야기는 길기만 하다. 조성자 / 시인시로 읽는 삶 서사 안전 마찬가지 이야기 갖가지 이야기 문장 하나

2022-08-02

[살며 생각하며] 문장으로 배우는 영어

 새마을 운동의 기수였던 류태영 박사님은, 취약한 한국 농촌을 부흥시킬 수 있는 정책을 배우고 싶었다.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구두닦이 등을 하며 고학 중에도, 모범적 낙농국인 덴마크에 가서 농업을 공부하려는 꿈을 버리지 못해 어느 날, 주소도 몰라 그저 덴마크 국왕, 코펜하겐이라고 봉투에 쓰고, 자신의 염원을 적어 보냈다. 놀랍게도 프레데릭 9세에게 전달되었고 국왕 초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덴마크에 처음 갔을 때, 당연히 덴마크어를 한 마디도 못했다. 하지만 “이것은 무엇입니까?,” “어디 사십니까?”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500여개 문장을 골라 매일 10여개씩 외웠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 그 문장들로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연습을 하였다. 3개월이 지나자 웬만한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같은 방법으로 이스라엘 유학 시절에도 그 어려운 히브리어를 마스터하고 마침내 이스라엘 국립대학 교수까지 되셨다.   학교 재직 시절, 한동안 이 분 때문에 아이들을 엄청 핍박했다. 33세 나이로 3개월 만에 대화가 가능하게 된 이 분으로 인해, 나의 학생들은 내가 내준 문장들을 외우느라 입이 댓 발씩은 나왔었다. 그뿐이랴. 칼럼에 이 이야기를 소개한 후, 이곳저곳 아이들이 부모님으로부터 문장을 외우라는 강요에 시달렸다는 후기가 있다.     영어가 느는 것은 절대적으로 본인 노력에 비례한다. 내 영어 북클럽 멤버 중 아주 맹공하시는 분이 계시다. 그 그룹에서 요즘 읽기 시작한 스캇펙 박사의 The Road Less Traveled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보통 어려운 책이 아니다. 한 페이지에 몇 문장 안 들어갈 정도로 긴 문장도 많다. 이 분, 자기 사업 중에도, 그 주 읽을 문장들을 노트에 적어, 단어도 찾아보고, 뜻도 나름 해석해보고 모임에 참여하신다. 앗, 요구 사항 절대 아니다! 걍 편하게 들어와도 된다! 하지만 이 분 이렇게 영어에 시간을 들이다 보니, 어느 날 회사에 온 영어 편지 문장들이 확 이해되더라며 신기해하신다.     영어는 문장으로 배우는 것이 최선인 것은 나의 개인적 경험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때, 문법책이나 단어장으로 공부하는 것이 너무 지루해, 대신 문장들을 적어서 다녔다. 그리고  문장에서 기억하고 싶은 단어나 문장 구조에는 밑줄을 쳐놓았다. 그래서, 문장 속에서 문법을 설명하는 ‘삼위일체’라는 책과 1200개의 구문으로 된 ‘1200제’라는 책을 좋아했다. 특히 간단한 데부터 점점 복잡하고 긴 문장으로 나아가는 ‘1200제’를 읽는 중, 어느 순간, 아, 이제 어떤 영어 문장이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는 자신감이 드는 것이었다. 마치 스케이트를 배울 때, 비틀대던  발목에 어느 순간 힘이 탁 주어지며, 제대로 탈 수 있게 되었을 때의 느낌이었다.     문장 속에서 기억된 문법 구조나 패턴은 말하기나 쓰기에 바로 사용이 된다. 단어들도 문장 속에서 쓰였던 상황을 기억하니 쉽게 오래 남는다. 곁들여서, 한국어에는 없는 문장 속의 전치사나 관용구적 표현까지도 익히려면 문장과 친해지는 길밖에 없다.   오늘부터 우리 전화기 바탕 화면에 단 몇 문장이라도 영어를 올려보면 어떨까. 하루에도 수없이 전화기를 열 때마다, 이 문장들이 마구마구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그 문장들은 어느 순간 귀에 들려오고 입을 통해 나가게 될 것이다. 영어가 익숙한 사람이라면 배우고 싶은 다른 언어도 ‘문장’으로 한번 도전해보자! 김선주 / NJ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문장 영어 문장 구조 대신 문장들 영어 북클럽

2022-04-27

[열린 광장] 진실의 종아 울려라

 “어젯밤에 눈이 왔어”라는 문장과 “어젯밤에 눈이 오더라”라는 문장의 차이는 무엇일까. 두 문장 모두 어떤 사실에 관해 서술하고 있어도, “눈이 왔어”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에도 쓸 수 있지만, “눈이 오더라”는 경험한 사실에만 쓸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또한 “어젯밤에 눈이 왔대”가 되면 다른 사람의 얻은 정보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라는 내용이 함축돼 있으며, “어젯밤에 눈이 왔나 봐”는 간접적인 단서를 통해 추론한 정보라는 사실이 들어 있다.   이처럼 우리말은 정보의 출처와 습득 방식을 문장의 끝에 전달한다는 특징이 있다.   몇 달째 정치의 시절이 계속되고 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이 사실처럼 퍼지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진실인 양 받들어진다. 자신만의 의견(opinion)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자신만이 사실(facts)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자신의 의견만이 사실이고 진실인 것처럼 다른 의견을 묵살하고 부인하고 단죄하기까지 한다.   처음 등장했을 때 무척 낯설었던 ‘탈진실(脫眞實, Post-Truth)의 시대’가 도래했다. ‘탈진실’이란 “공중의 의견을 형성하는 데 객관적 사실이나 진실보다는 주관적 신념과 개인적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견해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그것의 사실 여부를 떠나 선택적으로 취하고,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외면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스 철학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가르치면 되지만, 오히려 심각한 문제는 이미 진리를 알고 있다고 믿는 태도라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네가 너 자신을 얼마나 알고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알아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앎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도 “너희는 말할 때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고 말하며, 논어에서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 이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고 가르친다.   진실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어디서 나온 것인지 어떻게 습득된 정보인지 꼼꼼하게 따져보는 일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연규동 /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교수열린 광장 진실 탈진실 post 문장 모두 습득 방식

202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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