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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어떤 서사도 안전하지 않다

그러므로 모든 서사는 안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서사도 안전하지 않다/ 모든 부류의 사물은 결국 서사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람의 생애 역시 서사 아닌 것이 없다/ (…) 어떤 대상에 대해서 함부로 발설하려하지 말 것,/ 그 남자의 구부정한 등이 한권의 서사인 것처럼/ 훌쩍거리며 국물 마시는 당신도 결국 한 권의 서사이다/ 젖은 길바닥에 버려진 우산이나 페트병도 알고 보면 글씨들 빼곡한 한 권의 책// 히아신스는 눈물처럼 맑은 문장이다
 
-송종규 시인의 ‘히아신스’ 부분
 
 
 
단맛 들어가는 복숭아, 생의 절정을 만끽하며 울어대는 매미들, 냉커피를 들고 더위를 식히고 있는 사람들, 이 모든 풍경이 전개가 조금씩 다른 책이라고 생각하자 세상은 커다란 도서관이 된다. 부동, 혹은 움직이는 책들로 가득한 세상이라니, 보르헤스의 소설 ‘바벨의 도서관’이 연상된다. 보르헤스는 우주를 거대한 도서관으로 묘사했다.  
 
서사는 이야기의 진술이다. 드라마틱한 전개를 위해 픽션이 가미되기도 한다. 리얼리티에도 약간의 보완이 있겠고 다소 왜곡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인생도 부풀려지거나 축소될 때가 많다.
 
그 남자의 구부정한 등은 한 권의 책이다. 남자의 뒷모습은 에필로그처럼 한 생을 감지하게 한다. 훌쩍거리며 국물을 마시는 여자도 절절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여자의 눈물은 휘발성이 강하지만 영롱한 이슬이다. 갈피마다 갖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은 순환이라는 기승전결을 거쳐 마침표가 찍힌다.  
 
인생은 한 권의 자서전이다. 우리는 누구도 만들어내지 못한 문장 하나를 만들기 위해 땀 흘리며 그렇게 사는 것 같다. 히아신스같이 맑은 문장이거나 때로 표범처럼 날쌘 문장이거나 나만의 명문장을 얻고 싶어 한다.
 
파격 없이 지지부진한 일상들도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따라 문장의 격이 달라진다. 문장을 구성하는 것 중 발견과 묘사의 힘이 크다고 본다. 어휘의 바다를 유영하며 종횡무진 하는 상상력이 있다면 분명 참신한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데, 이야기의 기발함과 묘사의 특이성으로 눈에 확 띄는 책도 있고 지나치게 소박해 누구도 진가를 알아채는 이가 없는 책도 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함부로 발설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시인의 조언이 가슴에 닿는다. 한 권의 책을 두고 섣부른 판단이나 자기중심적인 해석은 옳지 않겠다. 취향이나 선호도가 다를 수는 있어도 태생의 의미나 무게의 경중을 두고 지나치게 두둔하거나 폄하하지는 말아야겠다.
 
저마다 웅숭깊은 이야기를 지닌 인생들이 있어 세상이라는 도서관은 늘 풍성하다. 양서도 있겠고 해로운 책들도 많을 것이지만 악서라도 한 줄쯤은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어떤 서사도 안전하지 않다. 또한 완벽하지도 않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 이야기는 흔들리면서 이어질 뿐이다.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자란 어머니, 어머니의 서사와 더불어 성장한 나, 이 돌고 도는 인생유전이 굽이치는 여름밤, 좋은 시 한 편을 읽는 일은 첨탑이 높은 교회당에 들어설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처음과 끝이 손을 잡고 무심하게 돌고 있는 시간의 수레 위에서 우리들의 안전하지 않은 이야기는 길기만 하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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