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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소중한 선물의 유산

26년 전 중학생 아들을 데리고 멕시코 오지의 바닷가 마을에 4일간 텐트를 치고 머문 적이 있었다.   그곳 아이들은 미국과는 다른 흐트러진 머리털, 거친 피부, 찢어진 운동화, 남루한 옷차림의 모습이었지만 아들은 이들의 외모와 상관없이 동심으로 쉽게 어울렸다.   아이들은 모래처럼 반짝 반짝 빛나기도 했고, 파도처럼 팔딱 팔딱 뛰기도 했다. 파란 하늘 높이 쉴새없이 날리는 웃음은 바람을 탄 연이 펄펄 나는 듯했다. 또한 순진한 장난꾸러기 어린 하얀 순수한 양들이 바닷가에서 함께 뛰어 노는 것 같았다.   그들과 작별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기 방을 그들과 같이쓰고 싶다는 착한 아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와 이곳 아이들과 다른 점이 뭔 줄 아니?”   머뭇거리는 아들에게 나의 자문자답이 이어졌다. “지금 네가 누리는 행복은 너의 재능이나 노력으로 이룬 것은 하나도 없단다. 단지 그들은 오지서 태어났고 너는 미국서 태어난 것 뿐이야. 이런 은혜를 거저 받았으니 항상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감사의 마음이 나눔과 봉사로 이어져야 한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올해 추수 감사절에 장성한 아들과 손녀 3명을 데리고 멕시코 그 오지 마을을 다시 찾아갔다. 그리고 아이들과 같이 어울려 지내도록 했다.     준비해간 옷가지, 신발, 학용품, 장난감 등을 직접 주게 하고 저녁은 이들과 같이 추수감사절 식사를 나누도록 했다.   떡국, 김치, 불고기와 원주민이 기른 토종닭 3마리를 대접했다. 원주민의 식사기도와 이어진 손녀의 기도로 추수감사절의 감사와 나눔의 시간을 35명이 같이 가졌다. 10대 손녀 둘에게 직접 환자를 접수하고 약 정리도 하도록 시켜 봉사참여의 기쁨도 느끼기를 바랐다.     돌아오는 어두 컴컴한 차 안에서 손녀들에게 26년 전 그들 아버지에게 한 똑같은 질문을 했다. 내 답도 같았다.     그 감사함에 대한 보답은 추수감사절에 나눔과 봉사로 이어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진정한 감사함의 열매는 기쁨이고, 기쁨의 열매는 행복이라는 진리를 터득하기를 바랐다. 감사할 수 있는 감정이 인생을 풍요하게 하고 삶의 큰 에너지가 되다는 진리를 진정으로 터득하고 살기를 바라본다.   바쁘고 힘에 겨웠던 이번 여행의 준비과정들의 피곤함이 흐뭇함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최청원 / 내과의사열린광장 선물 유산 추수감사절 식사 중학생 아들 바닷가 마을

2024-12-18

[독자 마당] 어머니

시월이 오면 나에겐 잊히지 않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백합처럼 우아하지도 않았지만 늘 수줍게 핀 노란 들국화처럼 조용한 미소를 보내주었습니다.     가을 운동회 날 코흘리개 소년이 2등 상품으로 받은 작은 공책 한권을 보며 대견해 하던 그 여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늦은 여름 어느 날 오후, 흙탕물을 헤치며 미꾸라지를 잡느라 흙 범벅이 된 옷을 벗기고 씻겨주던 그 손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을 앞 들판이 누렇게 변해 갈 무렵 논두렁 뛰어다니며 메뚜기 잡아 오면 가마솥 뚜껑에 볶아주던 그 여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자꾸 벗겨지는 검정 고무신을 손에 쥐고 코스모스 핀 신작로를 내달려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 가면, 읍내 장에 다녀오며 사 온 사탕 한 봉지를 두손에 꼭 쥐여주며 환하게 웃던 그 여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학교 운동장에서 공놀이하다 발목을 삐어 누나 등에 업혀 이웃 마을 한의사 할아버지 집으로 갈 때 소년의 손을 꼭 잡고 달래던 그 여인의 손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집 뒷산 과수원의 단감이 누렇게 익어 갈 때 제대한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그 여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을 앞 들판이 온통 황금빛으로 변해가던 24년 전, 미국으로 떠나는 아들을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하며 눈물짓던 그 여인의 모습을 오늘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3년 전 대문 옆 감나무에서 홍시가 툭툭 떨어지던 날, 그 여인은 떠났습니다.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을 이 땅에 남겨두고 언젠가 한 번은 해야 하는 긴 이별을 고향 땅에서 기어이 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여든네 해 동안 이 땅에서 아홉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며 지치고 상처받은 이 여인의 영혼을 위로하여 주시고 거두어 주시옵소서.   어머니!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전명석독자 마당 어머니 버스 정류장 이웃 마을 코흘리개 소년

2024-10-22

[산불 속보] "90m 높이 화염"… 재스퍼 마을, 대형 산불에 휩싸여

 재스퍼 국립공원의 중심부에 자리한 역사적인 관광지 재스퍼가 맹렬한 산불에 휩싸였다. 24일 밤 마을로 진입한 산불은 주택과 상가를 집어삼키며 빠른 속도로 번져나갔다. 이번 산불로 인해 약 2만5천 명의 주민과 관광객들이 긴급 대피해야 했다.   제임스 이스트햄 공원청 산불 정보관은 24일 밤 화염이 마을에 진입한 후 "불길이 극도로 격렬했다"며 "소방대원들이 90~120m 높이의 화염이 연속적으로 치솟는 것을 목격했고, 불이 분당 15m씩 퍼져나갔다"고 전했다.   강풍에 더욱 거세진 불길은 재스퍼 마을 외곽에 도달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시내 중심부까지 번졌다. 공원 당국은 "상당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피해 규모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된 이미지와 동영상에는 여러 채의 주택과 상가가 불에 타는 모습이 담겼다.   소방대원들은 최대한 많은 건물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수처리장, 병원, 통신시설, 트랜스 마운틴 파이프라인(Trans Mountain Pipeline) 등 주요 기반 시설들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스트햄 씨는 "가능한 모든 자원을 최대한 빨리 투입했지만, 오늘의 기상 조건과 화재 상황을 고려할 때 불이 마을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소방대는 여러 전선에서 화재와 싸우고 있다. 재스퍼는 북쪽과 남쪽에서 동시에 위협을 받고 있었다. 북쪽의 화재는 25일 오전 재스퍼에서 5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고, 남쪽의 화재는 처음에 마을에서 8km 떨어진 곳에서 보고됐지만 몇 시간 만에 마을 외곽에 도달했다.   소방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됐다. 헬리콥터를 이용한 물 투하도 실패했고, 중장비를 동원해 방화선을 만드는 작업도 안전상의 이유로 철수해야 했다. 위험한 비행 조건으로 인해 소방 비행기도 투입할 수 없었다. 16번 고속도로와 아사바스카 강 같은 자연 장벽으로 불길을 유도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인 통제 화재도 실패했다.   결국 응급 구조대원들도 마을에서 철수해야 했고, 개인 호흡기를 갖춘 구조 소방대원들만이 남아 화재와 싸우고 있다.   에릭 반 로켐 환경부 기상학자는 26일 최대 30mm의 비가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상당한 양의 소나기와 뇌우가 이 지역을 통과하고 있으며, 이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몇 주간 지속된 극도로 뜨겁고 건조한 날씨 이후 눈에 띄는 변화다. 그러나 재스퍼의 기상 관측소가 25일 밤부터 가동을 멈춰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앨버타주 정부는 연방정부에 추가적인 소방 자원, 인력과 장비 이동을 위한 항공 지원, 그리고 외딴 지역 주민 대피를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25일 밤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방정부가 앨버타주의 지원 요청을 승인했으며, 가능한 모든 필요 자원을 동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린 디코어 씨는 60년 넘게 가족이 소유해온 말린 로지(Maligne Lodge)가 불에 타 무너진 것에 대해 애통해했다. 그는 특히 전 세계에서 온 직원들을 걱정했다. 디코어 씨는 "우리 지역 소방관들은 놀랍고, 앨버타주 소방관들도 대단하다"면서도 연방정부의 늦은 대응을 지적했다.   디코어 씨는 "월요일 밤 강제 대피령이 내려진 것을 알고 있었는데, 연방정부는 왜 그때 움직이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너무 늦은 시점인 어젯밤에야 캐나다 군대를 보내겠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족 사업의 손실을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마을에는 여러 세대를 이어온 훌륭한 가족들과 사업체들이 많다. 많은 가족과 사람들이 소지품뿐만 아니라 생계 수단까지 잃게 된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슬프다"고 말했다. 디코어 씨는 친구가 공유한 사진을 통해 호텔이 파괴된 것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디코어 씨는 "캐나다인들에게도 슬픈 일이다. 이곳은 국가적 보물이며 우리의 공원"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번 산불로 인한 피해는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재스퍼 국립공원의 상징적인 경관과 생태계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관광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이 지역 경제에도 장기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앨버타주 정부와 연방정부는 화재 진압 이후의 복구 계획에 대해서도 논의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밴쿠버 중앙일보산불 속보 재스퍼 화염 재스퍼 마을

2024-07-25

세계 유일 ‘한국어 마을’ 미국에 오픈

전 세계 최대 언어 몰입교육 기관인 미네소타의 콘코디아 언어 마을(Concordia Language Villages·CLV)에서 25년 만에 한국어 마을이 오픈했다.      미네소타주 베미지 인근에 있는 CLV는 1961년 설립된 비영리 언어교육 체험 캠프로, 한국어를 비롯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어 등 18개국 언어를 가르친다.   지난 20일 CLV에서 한국어 마을 ‘숲속의 호수’의 그랜드 오프닝이 열렸다. 아시아 언어권으로는 최초로 자체 시설이 건립된 것이다. 한옥 구조를 적용한 목조주택 4채로 구성된 한국어 마을에서 여름캠프와 주말 프로그램인 한국어·한국문화 교육이 집중적으로 실시된다.   CLV의 한국어 프로그램은 지난 1999년 개설됐지만, 자체 시설이 없어 러시아 마을의 건물을 빌려서 사용해왔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한국어 학습 열기가 높아지고 누적 방문자 수가 2000명을 넘어가면서 자체 시설 설립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그러던 중 지난 2018년 고급 핸드백 제조기업 ‘시몬느’의 박은관 회장과 유병안 건축가 등 한국인들의 후원으로 한옥의 조형미를 본뜬 전용 건물이 건립됐다.     이날 오프닝 행사에는 한국 류수영 배우의 요리 시연, 김창완 가수의 축하 무대 등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또한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를 비롯한 한미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CLV의 메리 마우스 코시르 대표는 “한국어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프로그램이며 대기자 명단이 끊이지 않는다”며 “세상에는 더 많은 글로벌 시민이 필요하며 이곳은 그것을 실제로 이룰 수 있는, 다른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어 마을에는 식당과 상업용 주방, 행정 사무실, 2개의 기숙사, 축구장 등이 있다.     한국어 마을은 이번 800만 달러 규모의 1단계 준공에 이어 더 많은 기숙사와 문화 활동 센터, 전통 양궁장이 있는 스포츠 센터, 한옥 스타일의 파빌리온 등을 포함해 건물 6개를 추가로 건설할 1000만 달러 규모의 2단계, 3단계 계획까지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스탠퍼드대학교 동아시아 언어·문화학과 교수인 다프나 주르(Dafna Zur) 교수가 촌장을 맡아 한국어 마을 캠프를 총괄하고 있다.     주르 교수는 2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기 명단이 점점 늘어간다. 선착순으로 등록자를 받기 때문에 기다려도 수업을 못 듣는학생들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 유일의 체험형 한국어 교육 마을로서 세계언어로의 한국어 확대와 한미관계에 있어 필수적인 곳”이라며 “제한적인 기숙사 인원 규모 때문에 오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다 받을 수 없어 안타깝다. 한국분들과 미국 내 한인분들의 많은 관심과 후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어 마을은 K-12 학년을 대상으로 여름캠프 혹은 연중 실시되는 1주, 2주, 4주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성인이나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한국어 수업뿐만 아니라 태권도, 부채춤, 서예, K팝 댄스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정보·등록: www.concordialanguagevillages.org/languages/korean 장수아 기자 [email protected]미네소타 한국어 한국어 마을 한국어 프로그램 한국어 학습

2024-07-23

[정호영의 바람으로 떠나는 숲 이야기] 신비한 기운 넘치는 예술가 마을, 세도나(Sedona)

애리조나 주 수도 피닉스에서 북쪽으로 120마일의 거리에 예술가의 마을이라 불리는, 예쁜 도시 세도나가 위치해 있다. 애리조나주의 콜로라도 고원지대와 모하비 사막, 소노란 사막이 교차하는 곳에 붉은 사암들이 깎아지른 절벽처럼, 중세 시대의 성처럼, 혹은 수많은 생명체들이 엉켜있는 모습으로 첨탑같이 서있는 모습이 신비하다 못해 장엄하다.   이 도시 중앙에 오크크릭(Oak Creek)이라 부르는 개울을 따라 이어진 약 16마일 길이의 오크크릭 캐년 로드는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한곳으로 뽑히고 있으며, 캠핑과 송어낚시, 그리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이곳은 볼텍스 에너지(vortex energy)라는 거대하고 강력한 신비의 에너지가 도시 몇 곳에 회오리처럼 모여 있다고 해 많은 이들이 하이킹, 산악자전거 타기를 비롯해 다양한 기체험 프로그램 참가를 위해 몰려든다.   1902년까지만 해도 이곳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2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붉은 바위산과 폰데로사 소나무와 주니퍼라고 부르는 향나무, 오크트리 등이 신비로운 모습의 바위들과 함께 어울려 있어 할리우드의 영화 촬영 장소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많은 관광객 들이 찾기 시작했다. 그 후 수많은 예술가들이 삶의 터전을 이곳으로 옮겨 그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세도나 중심가를 끼고 도로 양옆에 들어선 작고 큰 상점을 둘러보기만 해도 하루 해가 언제 떨어지는지 모를 정도로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이 관광객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세도나에서 가볼만한 곳을 소개한다.     ▶벨락(Bell Rock Trail): 세도나 지역에서 기가 많이 모여 있다는 종모양을 닮은 바위산의 1.1마일의 황톳길을 걸어가면  숲 향, 햇살, 바람, 새들의 지저귐 등으로 잊고 있던 감성의 문을 열게 한다.   ▶슬라이드락 주립공원 (Slide Rock State Park): 오크크릭 캐년의 개울이 있는 주립공원으로 물놀이와 산책을 즐기기 위해 찾는 곳이다. 원래는 사과 과수원이었던 곳인데, 공원을 감싸고 있는 붉고 흰 사암 산들의 모습이 경이롭다.   ▶에어포트 메사 (Airport Mesa): 세도나 시를 안고 있는 붉은 산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곳은 세도나 시를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특히 해 뜨는 시간과 지는 시간에는 감동으로 다가오는 장소다. 근처 있는 세도나 시와 레드락 캐년 쪽을 바라볼 수 있는 에어포트 메사 볼텍스(Airport Mesa Vortex) 포인트를 적극 추천한다.   ▶가는 길: LA에서 애리조나주 피닉스까지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공항에서 자동차를 렌트해서 17번 프리웨이 북쪽으로 약 100마일 정도 달리다 179번 하이웨이로 갈아탄 뒤 15마일 정도 달리면 만나게 되는 89A 하이웨이부터가 세도나 시다.  정호영 / 삼호관광 가이드정호영의 바람으로 떠나는 숲 이야기 예술가 마을 예술가 마을 지역 예술가들 애리조나주 피닉스

2023-11-02

작은 해변 마을에서 고즈넉한 평화를 만나다

아직 한낮 기온은 여전히 여름이지만 햇살의 느낌은 온도와 상관없이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느끼게 해준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이 돌아왔다. 이럴 땐 로드 트립이 제격인데 너무 짧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은 곳으로 차를 몰아보고 싶다면 중가주 몬터레이 베이만한 곳이 없다. LA에서 차로 5~6시간 운전하면 도착하는 이곳은 남가주 해안과는 또다른 고즈넉한 멋을 자랑하는, 그래서 조금은 이국적인 느낌마저 자아내는 해안 마을. 또 스페인 식민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유서 깊은 건축물과 박물관 등 역사적 명소도 많아 할거리도 볼거리도 많아 머무는 동안 심심할 틈이 없다. 게다가 신선한 해산물과 농산물, 와이너리까지 인접해 있어 미식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뭘 하며 놀까   몬터레이 베이는 소도시지만 즐길 거리가 많다. 다운타운 최고 번화가는 20세기 초 정어리 통조림 공장이 번성했던 캐너리 로우(Cannery Row)인데 해변을 끼고 형성된 이곳은 미국을 대표하는 문호 존 스타인벡의 동명 소설 '캐너리 로우'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식당, 부티크, 상점 등이 밀집해 있어 관광객들로 늘 활기가 넘쳐난다. 캐너리 로우에 위치한 아쿠아리움 역시 방문해 볼 만하다. 해달, 해파리, 상어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을 관람할 수 있는 이곳에선 다양한 전시도 관람할 수 있는데 현재는 심해 생물 관련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만약 박물관과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존 스타인벡 하우스(John Steinbeck House)와 박물관(Monterey Museum of Art)도 방문해 볼만하다. 그리고 몬터레이 베이에서 차로 10~15분가량 떨어진 카멜(Carmel)에서 반나절 또는 한나절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 중가주의 대표적 부촌인 카멜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해안으로 관광객에게도 사랑받는 휴양 도시. 그래서 이 작은 마을에 고급 호텔들과 고급 식당들이 즐비해 즐길 거리와 먹거리도 넘쳐난다. 또 포인트 로보스 주립보호구역(Point Lobos State Natural Reserve)이나 가랜드 랜치 파크(Garland Ranch Regional Park) 등에서 하이킹을 즐길 수 있으며 해안에서는 카약도 즐길 수 있다.     ▶17마일 드라이브     몬터레이 베이 여행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17마일 드라이브(17-Mile Drive)로 몬터레이 베이의 그림 같은 해안선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17마일 드라이브는 몬터레이 게이트(Gate of Monterey)에서 시작하면 되는데 이곳 입장료는 차량 당 11.25달러이며 드라이 브 시간은 대략 2시간 정도 소요되지만 드라이브 중간중간 명소에 들러 구경하고 식사도 하다 보면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 17마일 드라이브의 백미는 바로 페블 비치(Pebble Beach)인데 골퍼들의 성지 페블 비치 골프 코스를 품고 있는 페블비치 리조트에 들리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 이곳에선 리조트를 구경하는 것만으로 좋고 파인 다이닝과 쇼핑할 곳도 많다. 이외에도 퍼시픽 그로브, 헤른스 넥(Hearn's Neck), 스패니쉬 베이(Spanish Bay), 론 사이프러스(Lone Cypress), 버드락(Bird Rock) 등도 들러볼 만한 명소다. 만약 보다 더 색다른 경험을 원한다면 17마일 드라이브를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로 누벼보는 것도 좋겠다. 자전거는 매드독앤드잉글리시맨(maddogsandenglishmen.com)에서 대여할 수 있는데 일반 자전거 외에도 전기자전거도 대여할 수 있다.     ▶뭘 먹을까   몬터레이는 해안을 끼고 있어 신선한 해산물과 서부 농업의 중심지인 중가주에 위치하고 있어 신선한 농산물로 미식의 도시로 유명하다. 따라서 이곳을 방문했다면 맛집 순례는 필수. 신선한 해산물 요리를 맛보고 싶다면 몬터레이 베이 해산물 맛집 피시 하우스(Fish House Monterey)를 꼭 방문해야 한다. 이곳에선 랍스터, 연어, 오징어 요리가 유명한데 여기에 멋진 오션뷰는 덤이다. 또 블루 애비 레스토랑(Blue Aby Restaurant), 블랙 포 인트 그릴(Black Point Grill)에서도 오션뷰를 감상하며 맛있는 해산물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이외에도 밤바리나 트라토리아(Bambalina Trattoria)에서는 이탈리안 요리를, 캐너리 로우 브루잉 컴퍼니(Cannery Row Brewing Company)나 알바라도 스트리트 브루어리(Alvarado Street Brewery & Grill)에서는 수제 맥주와 스테이크, 피자, 버거 등 펍음식을 맛볼 수 있다.   사진=SeeMonterey.com 제공 이주현 객원기자해변 마을 해안 마을 스타인벡 하우스 남가주 해안

2023-10-05

[우리말 바루기] ‘지’를 띄어 썼다면?

 띄어쓰기는 맞춤법 57개 항 중 10개 항을 차지할 정도로 방대하고 예외도 많다. ‘지’도 혼란을 겪는 띄어쓰기 중 하나다.   우리말의 어미, 접사, 조사는 항상 앞말과 붙여 쓰고 의존명사는 띄어 쓴다. ‘지’는 어미와 의존명사의 형태가 같은 예다. ‘지’가 어미일 때는 앞말과 붙이고 의존명사일 때는 띄어야 한다.   “새로 들어온 직원이 얼마나 유능한 지 아직 잘 모르겠다” “기상 악화로 비행기가 제시간에 도착할 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와 같이 사용해선 안 된다. 이때의 ‘지’는 의존명사가 아니다. ‘-ㄴ지’ ‘-ㄹ지’의 형태로 쓰인 어미이므로 앞말과 붙여야 한다. “얼마나 유능한지” “제시간에 도착할지”로 붙여야 바르다.   띄어쓰기가 헷갈릴 때는 추측·의문을 나타내는 비슷한 형태의 어미로 바꿔 보면 명확해진다. “얼마나 유능한지”를 “얼마나 유능한가”로, “제시간에 도착할지”를 “제시간에 도착할까”로 바꿔도 무리가 없다. ‘-ㄴ지’를 ‘-ㄴ가’로, ‘-ㄹ지’를 ‘-ㄹ까’로 바꿔 의미가 통하면 기능이 같은 어미라고 생각하고 붙이면 된다.   “읽은 지 꽤 오래된 책인데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마을 어귀에서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영화 속 장소에 도착했다” “우리가 만난 지 벌써 100일째다”의 경우는 어떨까? 이때의 ‘지’는 어떤 일이 있었던 때로부터 지금까지의 동안을 나타내는 의존명사이므로 ‘읽은 지’ ‘출발한 지’ ‘만난 지’로 띄어 쓰는 게 바르다. ‘지’는 시간의 경과를 나타낼 때만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쓰고 그 외에는 붙이면 된다고 생각하면 쉽다.우리말 바루기 마을 어귀 기상 악화 어미 접사

2023-08-29

24년 전 미네소타 설립 '한국어 마을' 방문

LA한국문화원은 오는 8~9일 미네소타주 콘코디아 언어마을 내 한국어 마을인 '숲속의 호수'에서 '찾아가는 K-컬처' 행사를 연다고 4일 밝혔다.   콘코디아 언어 마을(Concordia Language Villages)은 1961년 미네소타주 베미지 지역에 설립된 비영리 외국어 교육기관으로, 한국어를 비롯해 14개의 외국어 프로그램을 캠프 형태로 운영한다.   한국어 마을인 '숲속의 호수'는 1999년 개설됐으며, 매년 미 전역에서 100명이 넘는 현지인들이 참가해 태권도, 미술, 음악, 요리, 연극, 노래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힌다. 개설 이래 지금까지 수강생은 3000여 명에 달한다.   현재 스탠퍼드대학교 동아시아 언어.문화학과 교수인 대프나 주어 교수가 촌장을 맡아 한국어 마을 캠프를 총괄하고 있다.   캠프 운영 초반에는 빈자리도 많았지만, 한류 열풍이 불면서 지금은 "숲속의 호수 등록이 BTS 콘서트 티켓을 사는 것만큼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LA한국문화원은 전했다.   LA한국문화원은 이번 캠프에서 전통미술(한지공예.민화) 체험과 케이팝(K-Pop) 댄스 워크숍, 전통 다례 체험 등을 진행한다.   정상원 LA한국문화원장은 "올해부터 새로 운영하는 '찾아가는 K-컬처' 프로그램은 미 현지인들이 한국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매력에 흠뻑 빠질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미네소타 한국어 한국어 마을 미네소타 설립 마을 방문

2023-07-04

[이 아침에] 사람이 그리웠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 이런 상황이 아닐까?   “한 여인이 먼 외딴 섬에서 혼자 살았다. 어느 날 육지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들이 자기를 데리러 왔다는 사실은 알았다.  18년 전 온 마을 사람들도 그렇게 육지로 떠났다. 그 여인은 떠나간 그들을 만나 자기들의 언어로 수다를 떨 희망을 안고 섬을 나섰다. 그러나 그녀가 도착한 육지 마을에는 그녀의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사이 모두 죽은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 종족의 마지막 생존자, 그 종족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     실제 있었던 일이다. 남가주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섬들이 있다. 산타바버러에서 70마일쯤 떨어진 산니콜라스 섬도 그중 하나다. 그 섬에는 약 1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 척박한 섬이었지만 100여명의 주민들이 먹고 살만 했다. 그들은 주변 다른 섬에 사는 추마시(Chumash)족과는 다른 언어를 쓰고 있었다.     18세기 후반부터 스페인이 캘리포니아에 진출하기 시작, 남쪽 샌디에이고부터 북쪽 샌프란시스코까지 21개의 미션(mission)을 지었다. 미션이란 가톨릭 성당과 병영을 겸한 식민지 경영의 전초 기지. 미션 근처의 원주민들을 집단 수용, 그들에게 개종과 노역을 강요하였다. 1821년 멕시코가 독립하면서 지원이 끊겨 미션들이 쇠락하기 시작했지만 19세기 후반까지도 미션은 백인들이 건설한 도시의 중심 역할을 했다.     19세기 초 태평양 해안 근처의 섬에 사는 원주민들을 육지로 데려와 미션에 수용시킨다. 1835년 산니콜라스 섬에 살던 사람들도 육지로 소개된다. 섬 전체의 주민 60여명을 배에 태우고 섬을 출발, 배가 섬에서 멀어지는 순간 한 여인이 배에서 뛰어내려 섬으로 돌아간다. 아이를 두고 온 것이었다. 배를 되돌릴 수 없는 상황, 그 여인은 그렇게 버려진다.   1853년, 그 섬에 바다 수달을 잡으러 들어갔던 백인들이 그녀를 발견해 육지로 데려온다. 아이는 죽었고, 그녀는 혼자였다. 그녀는 백인들과 같이 갔던 다른 원주민들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다른 원주민들도 그녀의 말을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수다를 떤다. 18년 동안 가두어져 있던 말의 둑이 터진 것처럼.     그녀의 출현은 당시 큰 뉴스거리였다. 그녀를 보러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녀는 그들을 위해 자신이 입었던 나뭇잎 스커트를 입고 노래를 하며 춤을 추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에게 그녀가 가져온 조개껍데기도 주고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즐겁게 떠들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육지에 온 지 7주 만에 숨졌다. 혼자서 18년 동안 살아온 그녀, 희망이 없어지자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희망은 그녀의 ‘사람’들을 만나 자기들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그녀에게 ‘사람’이란 같은 종족의 같은 말을 하는 사람, 그런데 그런 사람은 모두 죽었다.   그녀는 숨지기 직전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세례를 받았고, 후아나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가톨릭 묘지에 묻혔다. 그녀의 이야기는 ‘산니콜라스 섬의 외로운 여인 (Lonesome Woman of San Nicholas Island)’이라는 제목의 낭만적 생존 소설로 미국의 청소년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육지 마을 미션 근처 종족 언어

2023-04-23

[이 아침에] 사람이 그리웠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 이런 상황이 아닐까?   “한 여인이 먼 외딴 섬에서 혼자 살았다. 어느 날 육지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들이 자기를 데리러 왔다는 사실은 알았다.  18년 전 온 마을 사람들도 그렇게 육지로 떠났다. 그 여인은 떠나간 그들을 만나 자기들의 언어로 수다를 떨 희망을 안고 섬을 나섰다. 그러나 그녀가 도착한 육지 마을에는 그녀의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사이 모두 죽은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 종족의 마지막 생존자, 그 종족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     실제 있었던 일이다. 남가주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섬들이 있다. 산타바버러에서 70마일쯤 떨어진 산니콜라스 섬도 그중 하나다. 그 섬에는 약 1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 척박한 섬이었지만 100여명의 주민들이 먹고 살만 했다. 그들은 주변 다른 섬에 사는 추마시(Chumash)족과는 다른 언어를 쓰고 있었다.     18세기 후반부터 스페인이 캘리포니아에 진출하기 시작, 남쪽 샌디에이고부터 북쪽 샌프란시스코까지 21개의 미션(mission)을 지었다. 미션이란 가톨릭 성당과 병영을 겸한 식민지 경영의 전초 기지. 미션 근처의 원주민들을 집단 수용, 그들에게 개종과 노역을 강요하였다. 1821년 멕시코가 독립하면서 지원이 끊겨 미션들이 쇠락하기 시작했지만 19세기 후반까지도 미션은 백인들이 건설한 도시의 중심 역할을 했다.     19세기 초 태평양 해안 근처의 섬에 사는 원주민들을 육지로 데려와 미션에 수용시킨다. 1835년 산니콜라스 섬에 살던 사람들도 육지로 소개된다. 섬 전체의 주민 60여명을 배에 태우고 섬을 출발, 배가 섬에서 멀어지는 순간 한 여인이 배에서 뛰어내려 섬으로 돌아간다. 아이를 두고 온 것이었다. 배를 되돌릴 수 없는 상황, 그 여인은 그렇게 버려진다.   1853년, 그 섬에 바다 수달을 잡으러 들어갔던 백인들이 그녀를 발견해 육지로 데려온다. 아이는 죽었고, 그녀는 혼자였다. 그녀는 백인들과 같이 갔던 다른 원주민들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다른 원주민들도 그녀의 말을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수다를 떤다. 18년 동안 가두어져 있던 말의 둑이 터진 것처럼.     그녀의 출현은 당시 큰 뉴스거리였다. 그녀를 보러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녀는 그들을 위해 자신이 입었던 나뭇잎 스커트를 입고 노래를 하며 춤을 추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에게 그녀가 가져온 조개껍데기도 주고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즐겁게 떠들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육지에 온 지 7주 만에 숨졌다. 혼자서 18년 동안 살아온 그녀, 희망이 없어지자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희망은 그녀의 ‘사람’들을 만나 자기들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그녀에게 ‘사람’이란 같은 종족의 같은 말을 하는 사람, 그런데 그런 사람은 모두 죽었다.   그녀는 숨지기 직전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세례를 받았고, 후아나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가톨릭 묘지에 묻혔다. 그녀의 이야기는 ‘산니콜라스 섬의 외로운 여인 (Lonesome Woman of San Nicholas Island)’이라는 제목의 낭만적 생존 소설로 미국의 청소년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육지 마을 미션 근처 종족 언어

2023-04-19

[이 아침에] 현실과 환상 사이

어느 청명한 날, 아마존의 깊은 정글 속 작은 마을에 어마어마한 잠자리 한 마리가 폭풍과 구름을 몰고 날아들었다. 짙은 회색빛 몸체에 크고 번쩍이는 눈을 가진 거대한 잠자리는 마을 공터에 날아와 엄청난 먼지를 일으키며 천둥소리와 함께 온 마을을 공포의 도가니로 휘몰아 넣었다. 잠자리의 날개에서 나는 소리는 마치 칼로 바람을 베는 소리와 같았으며 꼬리에서는 연신 뜨거운 바람과 함께 불이 쏟아져 나와 번쩍번쩍 빛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리고 날개의 칼바람이 움막 지붕과 마을의 정자나무 가지도 갈가리 찢어 허공으로 날려 보내 마을 사람들을 경악게 했다.     마을의 어른과 아이들, 그리고 나무 밑에서 낮잠을 자던 개들도 혼비백산하여 숲속으로 달아났다. 마을 사람들은 조상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재앙의 날이 도래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마을 촌장은 덤불 속에 몸을 숨긴 채 이 거대한 잠자리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었다.     잠자리의 몸통이 열리면서 사람의 형상을 한 네 생물이 기어나와 두리번거리며 텅 빈 마을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의 머리는 둥글고 번쩍거렸고 커다란 검은 두 눈은 얼굴 절반을 덮었다. 네 생물은 광낸 구리 같이 빛나는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몸속에서 작은 물체를 꺼내 밝고 푸른 느낌의 하얀 빛을 반짝이며 마을의 움막들을 기웃거렸다. 얼마후 네 생물은 움막에서 가져온 작은 질그릇을 들고 거대한 잠자리의 몸속으로 기어들어가 횃불 모양의 불을 토하며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한동안 마을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조상들이 전해준 전설에 의하면 재앙의 날에는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져 내려 땅 위의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린다고 했다. 촌장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재앙의 날이 우려했던 것 보다는 짧고 피해가 작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겨울 마을 사람들이 사냥꾼의 별자리를 위해 정성껏 드린 제사 덕분으로 여겼다.   촌장은 자신의 움막으로 달려가 덤불 속에 숨어서 목격한 상황을 기록하기 위해 먹물과 나무껍질을 꺼냈다. 거대한 잠자리와 네 생물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곧바로 마을의 중요한 물건들을 저장하는 동굴로 달려가 자신이 기록한 나무껍질을 질그릇 속에 소중히 보관했다. 촌장은 먼 하늘을 쳐다보며 “거대한 잠자리와 사람 같이 생긴 네 생물은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더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 시간, 헤지 글로부 방송에서는 아마존 정글 속에 불시착한 아파치 헬기의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라번대학 겸임교수이 아침에 환상 마을 촌장 한동안 마을 마을 공터

2023-02-28

[삶의 뜨락에서] 우물이 있던 마을

지금은 상수도의 발달로 우물을 거의 찾을 수 없지만 우물은 우리 선조들의 삶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신라 김유신 장군 집에 있던 우물은 재매정이란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고, 궁궐에서 궁녀들이 우물 안으로 뛰어들었다는 숱한 비화가 전해지는가 하면, 민가에서는 아낙네들이 우물가에서 동네 쑥덕공론을 일삼기도 했다.     시인 윤동주는 ‘산모퉁이를 돌아 논 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라고 했다. 시인이 들여다본 우물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절망하는 청년들의 표상으로 볼 수 있으며, 윤동주의 이 ‘자화상’은 다른 시들과 함께 일제 경찰의 주목을 받았고 결국 시인은 후쿠오카 감옥에서 27세로 옥사하고 만다.     이렇듯 우물은 실생활에서 사라져도 이미지는 문학 속에서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 井底之蛙)’나 ‘우물 안에서 하늘을 본다(坐井觀天)’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우물이 없어짐과 함께 우물이라는 말도 사어가 되지 않고 격언을 통해 의미로 남아있다. 여기에서 우물은 한정된 공간에서의 견문이 넓지 못함을 비유함으로써 젊은이들이 도시로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필연성도 내포하고 있다. 이렇듯 성장기에 공부하러 또는 살아갈 방도를 찾아서 너도나도 고향을 떠나왔지만 잘 살든 그렇지 못하든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든 사람들은 동심이 자라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품고 살아가는 것 같다.       필자가 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는 우물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마을 한가운데 있어서 두레박을 사용해서 물을 퍼 올리는 큰 우물이었는데 흰옷 입은 여인들이 그 주변에 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다른 하나는 읍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동네 어귀에 있던 골맥이 샘이다. ‘골맥이’란 마을의 수호신을 나타내는 말인데 논둑길을 따라가면 시멘트와 돌로 둘러싸인 둥그런 샘이 있었다. 바가지로 물을 퍼 올리는 높지 않는 우물이었는데 항상 물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고여있었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설날이 지나 정월 초이틀 이후 새벽 3~4시쯤 골맥이 샘으로 가 새로 고이는 차가운 물로 머리를 감고 목욕도 하셨단다.  그리고 맑은 물을 물동이 담아 이고 논둑길 제방둑길을 걸어오셨다고 한다. 머리에 고드름이 내리고 흰 한복 치마저고리는 얼음으로 버석거렸다고 하셨다. 집에 도착해서는 몸도 녹이지 않은 채 병풍을 친 소반에 정화수 올려놓고 정성스레 기도하셨다고 한다.     할머니가 별이 담긴 물을 이고 걸어오신 새벽의 얼음길은 내가 세상의 어려운 길을 지날 때마다 귀중한 자양분으로 작용한 것 같다.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에 살고 있지만 마음속으로 가끔 찾아가 산 복숭아꽃이 분홍으로 번지는 산과 들을 거닐기도 하고, 눈이 내리는 마을을 바라보기도 한다. 조상님들이 실천하시며 베풀어주신 가르침은 우물 안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처럼 내 정신의 깊은 원천이 되어 있음을 느낀다.   권정순 / 전직교사삶의 뜨락에서 우물 마을 우물안 개구리 마을 한가운데 시인 윤동주

20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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