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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사람이 그리웠다

김지영 변호사

김지영 변호사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 이런 상황이 아닐까?
 
“한 여인이 먼 외딴 섬에서 혼자 살았다. 어느 날 육지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들이 자기를 데리러 왔다는 사실은 알았다.  18년 전 온 마을 사람들도 그렇게 육지로 떠났다. 그 여인은 떠나간 그들을 만나 자기들의 언어로 수다를 떨 희망을 안고 섬을 나섰다. 그러나 그녀가 도착한 육지 마을에는 그녀의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사이 모두 죽은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 종족의 마지막 생존자, 그 종족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  
 
실제 있었던 일이다. 남가주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섬들이 있다. 산타바버러에서 70마일쯤 떨어진 산니콜라스 섬도 그중 하나다. 그 섬에는 약 1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 척박한 섬이었지만 100여명의 주민들이 먹고 살만 했다. 그들은 주변 다른 섬에 사는 추마시(Chumash)족과는 다른 언어를 쓰고 있었다.  
 
18세기 후반부터 스페인이 캘리포니아에 진출하기 시작, 남쪽 샌디에이고부터 북쪽 샌프란시스코까지 21개의 미션(mission)을 지었다. 미션이란 가톨릭 성당과 병영을 겸한 식민지 경영의 전초 기지. 미션 근처의 원주민들을 집단 수용, 그들에게 개종과 노역을 강요하였다. 1821년 멕시코가 독립하면서 지원이 끊겨 미션들이 쇠락하기 시작했지만 19세기 후반까지도 미션은 백인들이 건설한 도시의 중심 역할을 했다.  
 


19세기 초 태평양 해안 근처의 섬에 사는 원주민들을 육지로 데려와 미션에 수용시킨다. 1835년 산니콜라스 섬에 살던 사람들도 육지로 소개된다. 섬 전체의 주민 60여명을 배에 태우고 섬을 출발, 배가 섬에서 멀어지는 순간 한 여인이 배에서 뛰어내려 섬으로 돌아간다. 아이를 두고 온 것이었다. 배를 되돌릴 수 없는 상황, 그 여인은 그렇게 버려진다.
 
1853년, 그 섬에 바다 수달을 잡으러 들어갔던 백인들이 그녀를 발견해 육지로 데려온다. 아이는 죽었고, 그녀는 혼자였다. 그녀는 백인들과 같이 갔던 다른 원주민들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다른 원주민들도 그녀의 말을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수다를 떤다. 18년 동안 가두어져 있던 말의 둑이 터진 것처럼.  
 
그녀의 출현은 당시 큰 뉴스거리였다. 그녀를 보러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녀는 그들을 위해 자신이 입었던 나뭇잎 스커트를 입고 노래를 하며 춤을 추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에게 그녀가 가져온 조개껍데기도 주고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즐겁게 떠들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육지에 온 지 7주 만에 숨졌다. 혼자서 18년 동안 살아온 그녀, 희망이 없어지자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희망은 그녀의 ‘사람’들을 만나 자기들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그녀에게 ‘사람’이란 같은 종족의 같은 말을 하는 사람, 그런데 그런 사람은 모두 죽었다.
 
그녀는 숨지기 직전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세례를 받았고, 후아나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가톨릭 묘지에 묻혔다. 그녀의 이야기는 ‘산니콜라스 섬의 외로운 여인 (Lonesome Woman of San Nicholas Island)’이라는 제목의 낭만적 생존 소설로 미국의 청소년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김지영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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