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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푸른 점 하나

이층 끝 방을 화실로 꾸몄다. 폭신한 매트와 방 안 가득 장난감에 쌓여있던 그 방을 정리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 손주 둘, 손녀 둘의 사랑방이었던 그 방을 정리 해야겠단 생각은 아이들이 하나둘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던 작년 여름이었다. 그와 맞물려 한국에서의 전시가 예상치 못하게 잡혀 그림을 그릴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챙겨야 할 장난감들은 박스에 넣어 아이들 집으로 보내주었다. 드로잉 테이블을 들여놓고 이젤과 그림 도구들을 정리했다. 창문 옆으로 쉴 수 있는 작은 소파를 들이고 턴테이블과 LP를 챙겨놓으니 아늑한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얼마가 될 지 모르지만, 이곳이 나의 피난처,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이 집을 지어 이사 올 때 심었던 매화나무가 이 층 창문을 훌쩍 지나칠 만큼 키가 자랐다. 매년 하얀 매화를 너무 한가득 피워 봄을 알려주었던 나무는 이제 스스로 나뭇잎을 다 내려놓았다. 어느 사이 잎을 떨군 가지마다 붉고 작은 열매가 빼곡히 자리 잡았다. 아마도 꽃이 진 자리마다 한 여름을 지나면서 조금씩 맺은 보람인 듯싶다. 동쪽으로 난 창문을 통해 아침마다 햇볕이 가득히 들어온다. 햇살 아래 작은 열매는 붉은 보석 같이 반짝인다. 드로잉 테이블을 창문과 마주한 덕에 붉어지는 나무의 변화를 날마다 바라볼 수 있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오늘은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하루가 다 지나가고 창문마다 불이 켜지고 저마다의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간혹 잊고 사는 티끌 같은 존재 푸른 점 하나로 날 사랑할 일이다. 그러나 누구를 향해 무엇을 위해 맹세하거나 정의하지 않을 일이다. 다만 내게 주어진 길 걸으며 만나게 될 사람들을 위해 내 분량을 덜어낼 일이다. 그리하여 가벼워진 몸으로 당신에게 날아갈 일이다. 푸른 점 하나로 나의 페르소나를 벗어내고 있다. 아니 가벼워지고 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붓끝에 물감을 찍어 하늘을 그리고, 언덕을 그리고, 들꽃을 한 아름 안고 있는 서정을 그린다. 우리의 시간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 기억하고 난 후, 기다리고 난 후, 아니면 사랑하고 난 후였을까?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가 기억하는 그날은 수년이 되어 흘렀다. 밤새 기다리다 아침이 와도 때론 무뎌지고 닳아 없어진 어처구니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당신에게 날아갈 일은 나만의 고요를 찾는 일이다. 모든 것이 사라진 이 밤의 고요는 새벽의 고요와 사뭇 다르다. 혼돈과 고요의 차이는 종이의 앞면과 뒷면의 차이 같다. 혼돈 속의 고요. 고요 속에 혼돈. 요란한 강물의 물들을 바다로 다 흘려보낸 후 찾아오는 적막과 흡사하다. 서둘러 도착해야 할 거대한 미시간 호수의 고요가 그립다. 훅 불면 사라질 티끌 같은 존재로 살아간다. 흙으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야할 존재이다. 맹세한다는 부질없음을 내려놓는다. 한없이 가벼워져 푸른점 하나로 날아 오른다. 우리 모두 흙으로 돌아간 후 기억이나 하겠는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쏟은 시간과 열정과 땀방울을. 그럼에도 날 사랑할 이유는 오직 하나 독특한 나를 세상에 보낸 당신의 사랑안에 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그리고 밝아올 새벽의 고요를 기다리겠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드로잉 테이블 미시간 호수 그림 도구들

2024-10-28

[문화산책] 미술의 다양한 기능

한국에 사는 내 친구는 출석하는 성당에 미술반을 만들어 열심히 지도하고 있다. 학생들은 거의 모두가 ‘할머니 병아리 화가’들인데 그림이라는 걸 난생 처음 그려보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어찌나 정성껏 가르치는지 인기가 대단한 모양이다. 지도하면서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고 보람을 느낀다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재능기부인 셈인데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그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는 중에 “이왕이면 무작정 그리지 말고, 생각을 담아 그리도록 지도하면 더 좋지 않겠나?”라고 어줍잖은 훈수를 두었다. 그랬더니 곧바로 친구의 명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골치 아픈 생각하지 않고, 편안해지고 싶어서 그림 그리는 사람들에게 무슨 생각을 하라고 권하겠나?”   과연 명답이다. 나의 좁은 생각을 꾸짖는 죽비 같은 명답이다. 우리의 삶에서 미술의 기능은 매우 다양하고, 모든 쓰임새가 다 소중하다. 어느 하나만 고집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미술사를 공부하고, 미술평론을 하는 이른바 전문가의 처지이므로, 화가들의 작품과 미술의 쓰임새를 이야기할 때, 예술성이나 작가의 세계관, 사회적 역할 등을 중심으로 언급한다. 그래서 미술을 업으로 하는 작가들에게 무작정 그리지 말고 생각을 하면서 그려야 하고, 보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학생이나 취미 화가, 감상자들이 생각하는 미술의 기능은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실제로 많은 취미 화가들은 골치 아픈 세상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자기 내면에 잠자고 있는 또 하나의 자아와 대화를 나누고, 아름다움과 만나는 희열을 위해 그림 그리기에 몰두한다. 그래서, 그려진 작품보다 그리는 동안의 충만한 행복감을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림에 몰두하는 동안에는 잡념 없이 순수하고 착해질 수 있다. 단순한 정신적 사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행위 자체를 행복으로 느낀다. 이것은 미술의 소중한 기능 중의 하나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림이 구원이 되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죽을 병을 이겨내기도 하고, 그림을 통해서 정신적으로 이겨내기 어려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실제로 이런 예는 우리 주위에 너무도 많다. 미술치료 같은 치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술이 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또한 미술의 소중한 기능 중의 하나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림이 정신세계를 영성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길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이들에게는 그림 그리기가 곧 도(道) 닦기인 셈이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이런 식으로 자기 예술세계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 밖에도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자체가 갖는 힘은 매우 다양하고 막강하다.   미술을 좋아하고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이들로부터 “현대미술은 너무 어렵고 골치 아프다. 미술작품을 이해하고 좋아하고 싶은데, 무슨 좋은 방법이 없나?”라는 질문을 받는 일이 더러 있다. 나의 대답은 늘 비슷하다. “자주 보세요. 자주 보면 보입니다. 그리고 직접 그림을 그려보세요. 그것이 가장 좋은 미술 감상법입니다.”   직접 그리면서 그림에 흠뻑 빠져보면, 다른 사람의 그림에도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작가와 공감하며 느끼는 동질감은 감동으로 이어진다.   그림 그리기를 통해서 참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장점도 많다. 마음을 닦고, 정서적 정신적으로 풍성해지는 등 여러 면에서 권하고 싶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그림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많은 분이 그림 그리기를 취미로 삼아 즐기기 바라는 마음이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산책 미술 기능 취미 화가들 그림 그리기 세상 생각

2024-10-17

“이중섭 그림, 타일에 베낀 위작”…LA미술관 전시 초유의 사건

LA카운티미술관(LACMA)가 지난 2월 25일부터 6월 30일까지 전시했던 체스터 장 박사 기증 한국 미술품 일부가 위작일 가능성을 인정하고 계획된 작품집 발간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LACMA는 지난달 26일 한국 미술 전문가 4인을 초청해  ‘한국의 보물들(Korean Treasures)’ 전에 전시한 미술품 관련 간담회를 가졌다.   LACMA는 지난 2021년 남가주 한인 커뮤니티의 사회공헌활동가인 한국계 미국인 체스터 장과 그의 아들 캐머런 장으로부터 회화, 도자, 수석 등 100점을 기증받았고, 이 중 35점을 골라 지난 2월25일부터 6월30일까지 ‘한국의 보물들: 체스터&캐머런 장 컬렉션’전을 열었다.   전시된 작품에는 박수근의 ‘와이키키’와 ‘세 명의 여성과 어린이’, 이중섭의 ‘기어오르는 아이들’과 ‘황소를 타는 소년’이 포함됐다.   전시 시작 직후 한국의 중앙일보는 박수근, 이중섭의 작품들이 위작으로 의심된다고 보도했다.   위작 논란 제기 후 박수근연구소와 한국화랑협회, 그리고 LA 한국문화원이 LACMA에 작품 관련 질의서를 보냈다. 특히 한국화랑협회는 지난 4월 22일, LACMA 측에 기증된 일부 한국 근대 회화에 대한 추가 연구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이에 따라 LACMA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고 한국의 전문가를 초청해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전시 개막 후 해외 전문가들을 초빙해 특별 감정을 여는 건 미국 미술관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LACMA 관계자는 설명했다. 여비 포함 1500만원 넘는 예산은  LACMA가 부담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이중섭·박수근 그림 4점 외에도 조선시대 회화·도자 등 여러 점에 대해 위작 의혹을 제기했다.     간담회는 당초 예정됐던 8시간을 넘겨 10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LACMA는 휴관일인 6월26일 해당 전시장에서 초청한 전문가들과 회의를 열었다.     전시를 준비한 LACMA의 스티븐 리틀 아시아미술부장(중국미술사)으로 시작,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 태현선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 수석연구원, 홍선표 이화여대 명예교수, 김선희 전 부산시립미술관장 등 초대된 한국의 전문가 4인이 각자의 작품 분석 결과를 공유하며 종일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 갔다.   이 자리에서 이중섭 카탈로그 레조네(전작도록)에 수록된 ‘장대놀이 하는 아이들’ 이미지가 ‘원본’으로 제시됐다. LACMA 전시에 나온 ‘기어오르는 아이들’은 이 그림을 같은 크기의 타일에 그린 위작으로 이 과정에서 세로 그림이 서명이 빠진 가로 그림으로 바뀌었다.   홍선표 교수는 박수근의 인물화에 대해 “정지한 인물 여럿을 공간감 없이 찍듯이 나열한 점, 인물에 붙어 있다시피 서명을 한 것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했고, 이중섭의 ‘소와 아이’에 대해서도 “커다란 눈망울의 소 그림들과 달리 이 그림은 소의 눈이 가로로 길고, ‘중섭’ 서명의 ‘ㅅ’은 획이 잘려 있다”고 지적했다.   LACMA 리틀 부장이 “박수근 그림의 캔버스 뒷면에 1963년 이전 뉴욕·LA의 미술재료상 스티커가 붙어 있다”고 하자 홍 교수는 “이 시기 캔버스라고 박수근 그림이 되는 건 아니다. 작가 고유의 양식과 기법에 비하면 재료의 시기는 부차적 요소”라고 반박했다.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은 이인문(1745~1831)의 ‘이백관폭도(李白觀瀑圖)’로 나온 그림에 대해 “산수와 인물 표현이 이인문의 것과 다르다. 작가 미상의 19세기 그림으로 보인다”며 “특히 그림 맨 위에 ‘충익부인’이 찍혀 있는데 충익부(忠翊府)는 1699년 통폐합된 관청이다. 이인문은 이보다 훨씬 뒤에 태어났기에 이 도장 자체가 위작의 증거가 됐다”고 말했다.   또 한국의 도자 전문가 5명과 분석한 바 12세기 청자 정병(淨甁)은 “형태만 비슷할 뿐 유약색이나 빙열(도자기 표면의 실금)이 20세기 중반 이후의 모조품”이라며, 전시된 백자 대부분을 20세기 중반 이후의 것으로 판단했다. 이 관장은 “미술품에 A~D 등급이 있다면, ‘한국의 보물들’이라는 제목의 전시에는 적어도 A·B급 수준의 작품이 반 이상은 포함되어야 할 텐데, A급 작품은 한 점도 없고, 대부분이 C·D급”이라고도 지적했다.   김선희 전 부산시립미술관장이 전시 준비 과정에서 한국미술 전문가들을 통해 검토하지 않았는지 묻자 리틀 부장이 “한국의 공립미술관장 A 씨에게 보여줬고, ‘좋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A 관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리틀 부장이 지인을 통해 ‘미술관을 보고 싶다’고 해 지난해 말 처음 만났고, 이 자리에서 본인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근대 회화 이미지들을 보여줘서 ‘더 연구해 보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LACMA 마이클 고반 관장은 “기증자에 대한 예우로 시작된 전시였다. 계획된 작품집 발행은 취소해야겠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했다.   LACMA는 지난 3월4일 특별 강연회를 열어 박수근, 이중섭 그림을 과학적인 방법과 자료조사를 통해 진품으로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권위있는 미술관인 LACMA가 위작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LACMA의 신뢰도와 체스터 장 박사의 기증품 가치에 큰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권근영, 박경은 기자la미술관 이중섭 박수근 그림 박수근 이중섭 전시 시작

2024-06-30

[이 아침에]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학기가 끝나 간다. 이제 2주 남았다. 학기는 끝나가는데, 그림이 늘었다는 생각보다는 자꾸 “아, 나는 그림 그리는 재능은 없는 모양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모범학생이다. 수업에 빠진 적도 없고, 과제물이 늦은 적도 없다. 배운 대로, 담당 교수의 가르침대로 스케치를 하고,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도 학기가 끝나가는 요즘 그림이 늘었다는 느낌보다는 이것이 나의 한계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첫 번째 그림에서는 만점을 받았는데, 두 번째 그림에서는 C를 받았고, 이번에 제출한 그림도 기대에 못 미칠 것 같다. 며칠을 곰곰이 생각한 끝에 몇 가지 문제점을 찾아냈다. 소재에 창의력이 없다. 교수가 정해준 틀에서 그림을 그릴 때는 모두가 비슷하게 그리기 때문에 별 차이가 없다. 이때는 테크닉에 따라 작품의 질이 달라진다. 소재를 자유로이 선택해서 그릴 때, 나는 일단 그리기 쉬운 것을 찾는다. 소재가 독창적이지 못하다. 잘 그리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과제물을 마친 다음 주 수업은 학생들이 그려 온 그림을 모두 벽에 걸어 놓고 평가/토론하는 시간이다. 좋은 점, 부족한 점, 개선할 점 등을 이야기한다. 다소 그리기 힘든 소재, 독특한 소재를 선택해 그린 학생들의 작품은 할 이야기가 많다. 이렇게 저렇게 고치면 좋겠다는 다양한 의견들도 많이 나온다.     내가 그린 그림을 두고는 별로 할 이야기가 없는 모양이다. 별말이 없다. 구상이나 색상에 크게 무리가 없고, 보면 그냥 그렇고 그런 그림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고치면 좋겠다는 의견도 별로 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별로 재미없는 그림이라는 의미다.     그림 공부를 하기 전에는 모르던 일인데, 좋은 그림이란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림이 아닌가 싶다. 그림에 빠져들어 이곳저곳을 눈으로 찾아다니며 보고 그곳에서 이야기를 찾아내느라 오래 보게 된다.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같은 사람이라도 다음날에는 다른 이야기를 건네오는 그림이 좋은 그림이다.     그럼 왜 나는 그런 그림을 그리지 못할까. 아마도 그동안 살아온 삶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31년을 공직사회에 몸담고 있었다. 상하, 좌우로 조직이 있고, 각자 정해진 역할이 뚜렷한 구조였다. 내가 살았던 사회가, 시절이 그러했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 부모와 자식의 역할이 있는 정서였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스러워야 하며, 노인은 나잇값을 해야 하는 시절을 살았다.     내가 듣는 미술 클래스의 학생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연령 차이도 많이 나지만, 배경도 다르다. 이란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를 둔 여학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가진 남학생, 70년대 자유로운 캠퍼스 생활을 누렸을 듯한 시니어, 자유로운 영혼의 여학생 등 모두 다른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자연스럽게 그들이 그리는 그림에는 그런 배경과 정서가 묻어난다.     학기 마지막 과제물은 소재를 기억 속에서 찾아 그리는 것이다. 소재를 쉽게 알아볼 수 없도록 추상화풍으로 그려야 한다. 며칠째 생각을 거듭하지만 자꾸만 사실화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요즘 그림 여학생 주의력결핍 며칠째 생각

2024-05-20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세상을 바라보는 눈

겨울이 봄의 탄생을 알린다. 봄은 그저 오지 않는다. 혹독한 추위와 살을 저미는 폭풍이 휩쓸고 간 계절의 끝을 견디는 사람에게 봄은 온다.   세상 모든 것들은 진화한다. 인간과 동물, 꽃과 나무도 진화한다. 길가에 피는 이름 없는 풀도 살아남기 위해 변화를 거듭한다. 진화는 천체나 항성, 화성암과 지형의 변화, 지질구조 등 자연현상에도 적용된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멸종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영국 출신 팝아트 화가 데이빗 호크니(David Hockney)는 회화뿐 아니라 사진, 판화, 삽화, 무대 디자인의 장르를 넘나들며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8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이패드 등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예술 세계를 확장해왔다.   호크니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작품이 팔리는 현대 미술가 중 한 명이다. 2018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예술가의 초상(두 인물이 있는 수영장, 1972)’이 약 9030만 달러(당시 환율 한화 1019억원)에 판매돼 당시 살아 있는 예술가의 작품 중 가장 비싼 작품으로 기록됐다. 이 기록은 2019년 제프 쿤스의 스테인리스 조각 ‘래빗(토끼)’이 1082억5000만원에 낙찰되며 깨졌지만, 현재 전 세계 콜랙터들이 아이패드 그림 한 점이라도 소장하기 위해 줄을 선다.   “세상은 제대로 바라보기만 하면 매우 아름답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을 잘 보려고 하지 않는다. 내 말은 색이란 곧 즐거운 것이란 이야기다. 내 작품 역시 관람객에게 즐거움을 주었으면 한다.” 호크니의 예술론이다.   런던에 이어 두 번째로 라이트룸서울에서 게최된 ‘데이비드 호크니: Bigger &Closer’는 현존하는 작가가 직접 전시 기획에 참여해 3년간 제작팀과 함께 몰입형전시를 선보여 풍부한 콘텐츠에 음악과 조명. 애니메이션을 더해 호크니의 예술과 삶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형태로 기획해 높은 작품성과 아름다운 영상미로 관객을 매료시킨다.   호크니는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흔들며, 강렬하면서도 매혹적인 색감, 원근•기억•공간•자연에 대한 천재적인 해석과 열렬한 탐구 정신으로 식지 않는 호크니의 인기를 회화와 접목해 새로운 시대, 새로운 관점으로 감동을 준다.   호크니는 화가이면서 멋쟁이로도 유명하다. 그림을 그릴 때도 정장을 입는다. 패션에 신경 쓰는 이유를 ‘우리는 모두 예쁘고 멋진 것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메일에는 ‘삶을 사랑하라(Love Life)’라고 적는다. “후회 따윈 하지 않는다.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그것이 삶을 사랑하는 방법이다.”라고 말한다.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나만의 눈을 가지는 것이다.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어두운 눈으로 보면 세상이 캄캄해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시간의 흐름이나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회화의 종말을 얘기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흥미로운 아티스트 중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화가들이다. 사람들은 회화를 통해 아름다움과 색채, 현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고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면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단순한 진화가 아닌, 순간에서 영생의 빛을 본다. (Q7 Fine Art 대표)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예술 세계 아이패드 그림 변화 지질구조

2024-04-30

유니온클럽 모네 그림 팔아 건물 보수

시카고 유니온리그클럽이 소장하고 있는 모네의 명화를 매각한다. 클럽은 이 그림을 팔아 노후한 시설 보수 공사에 사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유니온리그클럽은 19일 회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이사회가 모네의 그림을 판매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유니온리그클럽이 갖고 있는 모네의 그림은 ‘Apple Trees in Blossom’으로 인상주의 작가의 대표적인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는 작품이다.    유니온리그클럽이 이 그림을 소장하게 된 것은 지난 1895년 회원으로부터 500달러를 주고 구입했기 때문이다.     유니온리그클럽이 이 그림을 판매하려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20년에도 이 그림을 팔려고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화상과 계약 직전까지 갔지만 최종적으로 성사되지 않았다. 당시 그림의 거래 가격은 720만달러로 알려졌다.     현재는 이 가격보다는 더 높은 금액으로 팔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유니온리그클럽은 이 그림이 시카고 미술관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시카고 미술관은 모네 콜렉션으로 유명한 곳이다. 모네가 살았던 프랑스 파리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33점의 모네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시카고 미술관은 모네의 수련 시리즈와 건초더미 시리즈를 소장하고 있으며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으로 전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어 유니온리그클럽의 모네 그림이 향할 최적의 미술관으로 손꼽히고 있다.     한편 유니온리그클럽은 1879년 창설된 시카고의 대표적인 프라이빗 소셜 클럽이다. 회원들은 이 곳에서 열리는 각종 사교 행사에 참석하고 있으며 클럽하우스에는 피트니스클럽과 스포츠 시설도 갖추고 있다.     시카고 총영사관이 주최하는 국경절 행사 장소로도 한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클럽하우스의 위치는 다운타운 루프인 65번지 웨스트 잭슨길이다.  Nathan Park 기자유니온클럽 모네 유니온클럽 모네 모네 그림 건물 보수

2024-03-21

청소년 정체성 확립 돕는 글·그림 공모전

효사랑선교회(대표 김영찬 목사)가 ‘제11회 효 글짓기, 그림 공모전’을 개최한다.   공모전의 목적은 다음 세대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이 정체성과 성경적 가치관을 확립하도록 돕는 것이다. 올해 공모전 주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미래의 모습은 뭘까’다. 공모 대상은 전국의 K~12학년 학생이다. 공모 기간은 내달 4일(금)부터 30일(토)까지다.   김영찬 대표는 “많은 학생이 참가하길 바란다. 청소년이 확실한 가치관을 갖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효사랑선교회 부대표를 맡고 있는 남승우 목사는 “혼란한 세태에서 청소년들이 분명한 자기 정체성과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성장하길 바란다. 특히 부모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글짓기 참가 학생은 폰트 크기 12, 레터 용지 3장 이내 분량으로 글을 쓰면 된다. 영어 또는 한글로 작성하면 된다.   심사위원은 강성예, 이윤홍 시인이다. 강 시인은 “주제에 부합하는 내용인지 살펴보고, 창의성과 문장력을 종합해 심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림 규격은 가로 14, 세로 17인치이며 크레용, 수채화 물감, 아크릴 물감 등을 사용할 수 있다.   미술은 화가 미셸 오씨와 글로벌힐링문화협회(GHCA) 회장인 김은미 화가가 심사한다. 김 회장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색채 사용 등을 눈여겨볼 것”이라며 “심사할 때마다 학생들의 상상력과 표현력에 깜짝 놀라곤 한다”고 말했다.    효사랑선교회 측은 입상자에게 상장과 최고 500달러인 상금을 수여한다. 시상 내역은 글짓기와 그림 부문을 합쳐 대상(상금 500달러) 2명, 최우수상(300달러) 4명, 우수상(200달러) 6명, 헤이븐 장학상(11학년 2명, 무료 대입 컨설팅)이다.     시상식 참가자 전원에겐 지역 정치인이 수여하는 상이 돌아간다. 시상식은 4월 20일(토) 오후 2시 풀러턴의 은혜한인교회에서 열릴 예정이다.   글짓기와 그림 부문에 모두 응모하는 것도 가능하다. 단, 작품은 각 부문에 한 작품만 제출해야 한다. 그림은 효사랑선교회(Hyosarangus Mission, 7342 Orangethorpe Ave, #B113, Buena Park, CA 90621)를 방문해 제출하거나 우송하면 된다.     글은 이메일(hyosarangus@gmail.com) 제출도 가능하다.   참가비는 작품당 20달러다. 자세한 내용은 효사랑선교회 홈페이지(hyosarangus.com)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의는 전화(714-670-8004, 833-2710)로 하면 된다. 글·사진=임상환 기자청소년 정체성 청소년 정체성 그림 공모전 올해 공모전

2024-02-27

[문장으로 읽는 책] 엘뤼아르 시 선집

포도로 포도주를 만들고/ 석탄으로 불을 피우고/ 입맞춤으로 인간을 만드는 것/ 이것이 인간들의 따뜻한 법칙이다// 전쟁과 비참함/ 죽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살아가는 것/ 이것이 인간들의 힘든 법칙이다// 물을 빛으로/ 꿈을 현실로/ 적을 형제로 바꾸는 것/ 이것이 인간들의 유연한 법칙이다   폴 엘뤼아르 『엘뤼아르 시 선집』   오랜만에 엘뤼아르를 다시 읽는다. 1959년 국내 최초로 세계문학전집을 펴냈던 을유문화사가 2008년부터 야심차게 새로 선보이고 있는 『을유세계문학전집』의 121번째 책이다.   “창공이 나를 버렸을 때, 나는 불을 피웠네, / 그의 친구가 되기 위한 불,/ 겨울의 어둠으로 들어가기 위한 불,/ 더욱 잘 살기 위한 불을.”로 시작하는 ‘이곳에 살기 위하여’나 “내 초등학교 공책 위에/ 내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雪)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자유’, 양귀자 소설 제목으로도 쓰인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전문인 ‘모퉁이’까지 엘뤼아르 시 120여 편을 원문과 함께 실었다. 국내에 덜 소개됐던 초현실주의 시 등 초기부터 후기까지 두루 일별할 수 있다.   인용문은 시 ‘올바른 정의’의 부분. ‘적을 형제로 바꾸는 것이 인간의 유연한 법칙’이라는 대목에 특히 눈이 간다. “딸과 엄마와 엄마와 딸과”를 수차례 반복하는 게 전부인 ‘자장가’나 “눈의 층계/ 형태의 창살을 가로지르는/ 영원한 계단/ 존재하지 않는 휴식”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마그리트 그림이 떠오르는 ‘르네 마그리트’ 등 새로운 시들이 많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엘뤼아르 마그리트 그림 르네 마그리트 초등학교 공책

2024-02-21

[음악으로 읽는 세상] 옴팔레의 스케르초

화가 루벤스가 그린 ‘헤라클레스와 옴팔레’는 헤라클레스와 옴팔레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 근육질의 헤라클레스는 머리에 여자처럼 띠를 두른 채 옴팔레에게 조롱을 당하고 있다. 헤라클레스의 귀를 잡아당기고 있는 옴팔레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생상스는 비슷한 상황을 ‘옴팔레의 물레’라는 교향시로 작곡했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헤라클레스를 비웃는 옴팔레의 모습이 연상된다. 음악은 헤라클레스가 돌리는 물레를 연상시키는 모티브로 시작한다. 그리고 옴팔레와 여자들이 헤라클레스를 조롱하는 소리가 들린다. 헤라클레스의 물레는 회전 강도를 높이면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그 모습을 본 옴팔레와 여자들은 키득 키득 웃으며 영웅의 몰락을 즐거워한다. 그렇게 음악은 시종일관 밝고 경쾌하게 흘러간다.   생상스는 이 곡이 신화의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묘사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옴팔레와 헤라클레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느낀 감정을 그저 스케르초로 표현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곡의 테마를 ‘여자의 매혹’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여자의 매혹’이 아닌 ‘여자의 조롱’을 본다. 특히 중간중간 끼어드는 관악기의 익살스러운 음형과 현악 합주가 서정적인 멜로디를 연주하는 동안 연신 빵빵거리는 관악기에서 이런 기분을 느낀다. 생상스는 경쾌한 어조로 옴팔레의 매혹을 그리고 싶었겠지만 그렇다면 스케르초는 피했어야 했다. ‘스케르초’ 하면 ‘경쾌한 익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의 굴욕을 익히 알고 있는 우리가 스케르초를 들으며 상상하는 것은 영웅을 노예로 만든 옴팔레의 치명적인 매력이 아니다. 영웅을 노리갯감으로 데리고 노는 옴팔레의 다소 악의적인 비웃음, 통쾌한 조롱 같은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귀를 잡아당기며 재미있어 하는 루벤스 그림의 옴팔레처럼.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스케르초 루벤스 그림 현악 합주가 회전 강도

2023-12-11

이경수 화가 그림 에세이 출간

리앤리갤러리(관장 이 아녜스)의 20주년 8번째 기획전인 이경수 작가 개인전 및 출간기념회 ‘알로하! 카우아이’가 오는 7~31일까지 열린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하와이 제도 최북단 카우아이 섬에서 작가가 10년 동안 보내며 작업한 작품 전시와 트로피컬 색채가 가득한 88점의 그림이 담긴 그림 에세이 출판기념회를 함께 진행한다.     그림 에세이 ‘알로하! 카우아이’(사진)에서 작가는 감각적인 훌라댄스, 영혼을 위로하는 우쿨렐레 선율, 마당에 흐드러진 부겐빌레아, 소박하고 정 많은 하와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이경수 작가는 “화가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모든 순간이 소중했지만, 돌이켜 보면 지상의 낙원 카우아이에서 보낸 10년은 가장 특별했던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이경수 작가는 성신여대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1983년 캘리포니아로 이주 후 캘스테이트LA(CSULA)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1989년 국립현대미술관 초청 ‘이달의 작가’에 선정되었으며, 1990년부터 프랑스 소르본 대학과 코망드리 미술관에서 전시했고, 199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우수작가상을 받았다. 그 외 22회의 개인전 및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00년 하와이의 카우아이 섬으로 이주 후 카우아이 대학 미술과에서 7년간 재직했다. 2011년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후 LA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강의했다.     오프닝 리셉션은 오는 7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열린다.     ▶주소:3130 Wilshire Blvd. #502. LA   ▶문의:(213)365-8285 이은영 기자이경수 에세이 그림 에세이 이경수 작가 카우아이 대학

2023-10-01

[마음 읽기] 고갱의 그림 ‘우리는 누구인가’

태풍이 가고 습습한 법당에 향과 초를 켜놓고 고요히 앉아본다. 거센 비바람에 온몸을 흔들던 처마 끝 풍경처럼 어수선했던 마음을 따라가니, 거기 의문 하나가 남는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라는.   그러다 문득 그림 한 점이 떠올랐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고갱의 작품이다. 오래전, 인생을 논하며 한 스님이 내게 이 그림을 아느냐고 물은 적이 있어 기억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인생의 흐름을 묻게 하는 명작이다. 나처럼 그림에 문외한이어도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도록, 친절하게 작품 제목을 왼쪽 맨 위에 적어 놓았다. 나이 불문하고 모두가 느낄 만한 인생에 대한 불안한 심리가 그림에 깔려 있는 듯 보인다. 그림을 찾아보며 다시 또 물었다. 나는 지금 어디 서 있을까?   어릴 땐 하루가 왜 그렇게 길던지 시간이 안 가서 강가의 해지는 노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앉아있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덧 인생이 짧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다. 변한 건 젊어서는 남이 내게 준 상처를 곱씹으며 살았다면, 지금은 내가 남에게 준 상처에 대해 생각하고 후회한다. 그리고 이제야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의 원인은 나의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음을. 그러니 좀 더 지혜롭게 살고 싶다.   출가자든 아니든 방향만 다를 뿐, 인간의 욕망에는 쉼이 없다. 가끔 자신은 욕심 많은 사람이 아니라고 손을 내젓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세속적 잣대에 관심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알고 보면 진실이 아닐 공산이 크다. 초월한 듯 살아도 결국 그 이면에는 명예를 유지하고 싶은 욕망이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생에서 자신이 지금 어디 있는지 살펴보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얼마나 휘둘리며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하고 불온한 감정 또한 얼마나 많았던가. 돌아보면 그런 어리석은 마음작용이 인생을 엉뚱한 방향으로 자꾸만 밀어냈다.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게 하고, 외면하고 회피하도록 말이다.   중국 당나라 때, 배휴(裵休)라는 불심 깊고 학식도 뛰어난 관리가 있었다. 그가 하루는 절에 찾아왔다. 마침 그 절에는 돌아가신 옛 고승들의 초상화를 모신 작은 법당이 있었다. 배휴는 법당을 안내하는 주지 스님에게 “영정은 여기 있는데, 고승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당황한 주지 스님은 뒷방에서 참선하는 스님을 불러와 배휴를 응대하게 했다. 그때 등장한 뒷방 스님이 바로 황벽 선사다.   선사가 오자 배휴가 다시 물었다. “스님, 영정은 여기 있는데, 이 고승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그러자 황벽 선사가 호령하듯 말했다. “배휴여! 그러는 당신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이에 배휴는 대답하지 못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의 힘은 결국 근원적인 질문을 할 줄 아는 힘이며, 근원적인 것을 꿰뚫어 핵심을 파악하는 안목이다. 배휴가 자기 깐에는 근원적인 질문을 한다고 했으나, 황벽 선사는 배휴가 서 있는 자리를 외려 꿰뚫어 되물었다. 그렇게 묻는 당신은 지금 어디 머물러 있느냐고.   사람들은 삶의 문제를 객관화하여 이야기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에서 자기 자신은 쏙 빠져버리고 객관적인 척 남 이야기만 한다.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젊을 때는 당연히 사람은 죽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장년이 되면 주위의 친지들이 죽는 것을 보며, 부모도 친구도 이런저런 사유로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다 점차 자기의 죽음에 대해 인식하면서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자기 죽음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한다.   그건 그렇고, 요즘엔 인공지능 얘기가 부쩍 많이 들린다. 뭣 모르는 내게는 AI가 주는 편리함보다 미래에 대한 공포감이 더 크다. 왠지 보이지 않은 거대한 시스템, 그 힘에 의해 나도 모르게 피동적으로 주어진 삶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주는 공포감이다. 무력감과 소외감마저 느끼며 나는 생각한다. 나를 추동하는 힘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나 자신인가? 아니면 외부의 보이지 않는 힘인가? 나는 주체적인 삶을 살 것인가? 노예처럼 살아갈 것인가?   이제 우리 다시 한번 차분히 살펴보자.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대처하는 나의 행동양식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선 자리를 명확하게 인식하면서 자기답게 살아가는 일이다. “일 년 중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은 단 이틀뿐이다. 하루는 ‘어제’이고 또 다른 하루는 ‘내일’이다. ‘오늘’이야말로 사랑하고 믿고 행동하고 살아가기에 최적의 날이다.” 달라이라마 존자의 말씀처럼, 그저 오늘을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원영 스님 / 청룡암 주지마음 읽기 고갱 그림 스님 영정 뒷방 스님 오래전 인생

2023-08-18

[아메리카 편지] 오리? 아니면 토끼?

어느덧 14개월 된 딸이 요즘 온갖 동물 그림에 빠져 하나하나 손가락질하며 물어본다. 돼지 그림을 보면 “꿀꿀”, 코끼리가 보이면 “뿌우웅”, 말을 보고는 “이히힝” 소리를 낸다. 물론 아직 아이가 실제 동물을 본 건 아니다. 그런데도 그 어린 나이에 다양한 양식으로 그려진 동물을 정확히 분별하는 게 신기할 뿐이다.   시대별 회화 양식을 천착한 20세기 중반 미술 이론가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그 당시 심리학 연구를 동원해 우리가 재현된 이미지를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관해 중요한 연구를 했다. 비트겐슈타인으로 유명해진 ‘오리-토끼 그림’(사진)은 어떻게 보면 토끼로 보이고 어떻게 보면 오리로 보이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동시에 두 동물을 보기 힘들다. 곰브리치는 이를 이용해 우리가 그림을 인지하는 능력은 상상력이 동원되는 두 단계의 절차라고 생각했다. 일단 그림 자체의 물질적인 요소를 감지하고, 그러고 나서 그림이 나타내는 실체를 파악한다고 보았다.   반면에 동시대 철학자 리처드 볼하임은 곰브리치와는 달리 그림을 인지하는 과정은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담은 복합적인 하나의 절차로 파악했다. 눈에 보이는 그림의 물리적인 요소(색·모양 등)를 감지하는 동시에 그림이 나타내고자 하는 실체를 이해한다고 보았다.   흥미롭게도 이 두 이론가는 모두 그림이 나타내고 있는 ‘실체’를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돼지라는 동물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우리 딸은 여러 가지 그림이 나타내는 무언가의 공통분모를 파악하고 그 개념을 추상적으로 감지하고 있다. 그런 딸을 보고 있으면 나는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플라톤에 따르면, 이 세상의 수많은 돼지는 가장 돼지다운 추상적인 돼지 개념(이데아)의 불완전한 복사본일 뿐이다. 그 개념을 감지하는 어린아이의 지혜는 참으로 경탄스럽다.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토끼 돼지 그림 동물 그림 돼지 개념

2023-07-28

탈북민 가정 후원 전시회…청소년자선단체 VYCC 주최

탈북민과 그의 자녀들을 후원하는 한인 청소년들의 미술 작품 전시회가 오는 17일(토) 개최된다.   청소년다민족자선단체 'VYCC(Vision Youth Charity Center)'가 주최하는 이번 전시회는 이날 오후 1~6시 한미여성회(KAWA) 사무실(1932 10th Ave., LA)에서 열린다.   전시회에는 '사랑과 믿음(Love & Faith)'를 주제로 한인 청소년들이 그린 50여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7~12학년 미술입시생 및 일반 학생 약 30명이 아크릴화, 수채화, 소묘 등 다양한 작품을 준비했다.   VYCC에 따르면 이번 전시회를 통한 수익금은 미국과 한국 등에 거주하는 탈북민과 그의 자녀들의 장학금으로 기부될 예정이다.   VYCC 박민숙(영어명 폴린 박) 대표는 "전시회를 준비하기 전 세미나를 통해 먼저 아이들에게 탈북민에 관한 설명을 하는 자리를 마련했다"며 "북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한인 2세 아이들도 생명존중과 인권에 대한 메시지에 도전을 받아 진심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설립돼 지난해 비영리단체로 정식 등록한 VYCC는 청소년들이 자신을 재능을 사용해 탈북민뿐만 아니라 농아인과 발달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돕고 사랑을 전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앞서 매년 봄과 가을 기금 모금을 위한 음악공연과 전시회를 함께 진행해왔으며, 올해 처음으로 전시회를 따로 열게 됐다고 전했다.   박 대표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헌신적으로 다른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며 "자기 계발의 기회를 찾고 있는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도 누구든지 가입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문의: (714)853-0543 VYCC 장수아 jang.suah@koreadaily.com탈북민 마음 음악공연과 전시회 이번 전시회 마음 그림

2023-06-05

[신 영웅전] ‘기도하는 손’의 뒤러

인간의 삶에 어디 양지만 있으랴. 서럽게 살던 젊은 시절에는 소망의 기도를 많이 하고, 먹고 살 만할 때는 감사의 기도를 많이 하고, 인생의 황혼에 서서는 참회의 기도를 많이 한다. 그 가운데에도 인생에는 소망의 기도를 드릴 날이 그치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그런 소망마저도 없는 사람이 많다.   믿음 생활을 하든 하지 않든 성화(聖畵) ‘기도하는 손’은 큰 감동을 준다. 그 가운데 헝가리 세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독일(신성로마제국)에 이민 가서 활동한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의 ‘기도하는 손’(Betende Hande)이 특히 유명하다.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그림은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바라보는 사도들의 손을 그린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지만, 그림의 모티프에 대해 여러 일화가 있다.   뒤러에게는 평생 고락을 함께한 친구 프란츠 나이슈타인이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가난해서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제비뽑기로 나이슈타인이 먼저 돈을 벌어 뒤러의 학비를 대고, 뒤러의 공부가 끝나면 뒤러가 번 돈으로 나이슈타인이 그림 공부를 하기로 약속했다.   친구가 보내준 학비로 공부한 뒤러는 천재성을 인정받아 황실 화가가 될 정도로 성공했다. 뒤러가 빚을 갚으러 찾아갔을 때 나이슈타인은 목수(일설엔 식당 종업원)로 일하면서 뒤러의 성공을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친구는 이미 오랜 잡일로 손이 굳어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미안하고 슬픈 마음에 뒤러가 그 친구의 손을 그린 것이 바로 ‘기도하는 손’이다. 화구도 없이 푸른 잉크로 그린 단색 데생이다. 지금도 오스트리아 빈의 알베르티나 박물관에 보관돼 500년 동안 관객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동양의 관포지교(管鮑之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이런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있습니까.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신 영웅전 기도 그림 공부 친구 프란츠 황실 화가

2023-05-31

글·그림 공모전으로 차세대 정체성 일깨워

효사랑선교회(대표 김영찬 목사)가 지난 22일 부에나파크의 하나교회(담임목사 박종기) 본당에서 ‘제10회 청소년 정체성 찾기 효·글짓기 그림 공모전’ 시상식을 개최했다.   18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김영찬 목사는 “청소년들이 올바른 성경적 가치관을 갖고 성장하기 위해선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는 정체성을 일깨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또 “이 정체성은 성경과 가정에서 찾아야 한다. 부모, 형제와 믿음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고 부모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효사랑선교회는 대상 2명, 최우수상 4명, 우수상 6명, 장학상 3명 등을 포함, 총 70명에게 시상했다.   또 40명에겐 장려상, 라티노 크리스천 대안학교 학생 12명에겐 특별상, 킨더가튼에 다니는 3명에겐 드리머상을 각각 수여했다.   최은애 영 김 연방하원의원 수석보좌관은 대회에 참가한 청소년 전원에게 표창장, 효사랑선교회 스태프에겐 봉사상을 각각 전달하고 격려했다.   올해 공모전은 ‘나의 아빠(엄마)를 하나님께 소개한다면’이란 주제로 열렸다.   글짓기 영어 작품 심사를 맡은 민유경 작가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아 심사를 하며 눈물이 난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공모전 정체성 그림 공모전 청소년 정체성 올해 공모전

2023-04-26

H마트 어린이 그림대회 개최

미주 최대 아시안 슈퍼마켓 체인 H마트가 다가오는 가정의 달을 맞아 제3회 온라인 어린이 그림 그리기 대회를 개최한다.   이번 그림 대회는 스마트카드 고객을 대상으로 4월 21일부터 5월 7일까지 진행되며, 참가 대상은 Pre-K부터 5학년까지다.     참가 신청은 H마트 공식 홈페이지(www.hmart.com)를 통해 접수 양식에 따라 온라인 신청이 가능하며, H마트 스마트카드 번호를 기입하고 참가할 수 있다.     이번 대회 시상 내역은 1000달러 장학금 및 특별 상장이 수여되는 대상(1명/부문), 1등(2명/부문), 그리고 장학금 및 특별 트로피가 수여되는 2등(5명/부문), 3등(10명/부문), 장려상(54명/전체)을 포함해 수상자 총 90명에게 행운이 돌아가며 총 1만 달러 상당의 상금이 지급될 예정이다.     우승자 발표는 오는 6월 26일(월) H마트 공식 홈페이지(www.hmart.com)와 공식 인스타그램에 게재될 예정이다.   H마트는 “이번 온라인 그림 대회를 통해 아이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며, 미적 감각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관련 문의는 H마트 고객 서비스 센터에 e메일(customer_care@hmart.com) 또는 전화(877-427-7386)로 하면 된다. 박종원 기자 park.jongwon@koreadailyny.comH마트 H 마트 H마트 어린이 그림 그리기 대회 H마트 어린이 그림 대회 스마트카드 고객 H마트 고객 서비스 센터

2023-04-20

[문화산책] 예술 장르 사이의 소통

통섭(統攝)이라는 낱말과 개념에 관심이 모인 적이 있었다. 학문 사이에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벽을 칸막이를 걷어내고 건강하게 소통을 해야 우리의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이야기다. 상생(相生)의 진리다.   통섭이라는 낱말을 꺼내서 불을 지핀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과학이나 경제 등 사회 각 분야의 소통과 인문학의 보급이 시급하다고 한다. 최 교수는 통섭이란 낱말을 자기가 찾아낸 줄 알고 스스로 대견해 했는데, 알고 보니 신라시대 원효 스님께서 이미 설파하신 섭리였다고 고백한다. 통섭의 역사가 그렇게 길고 근본적이라는 이야기다.   그 뒤로 우리 사회에서 통섭이 얼마나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상당히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큰 소득이다.   사실, 통섭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분야는 예술계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그 벽은 상당히 완고하고 옹졸했다. 시인이 소설을 발표하면 안 되고, 조각가가 그림으로 개인전을 열면 영역 침범이고, 외교관이 시를 써서 시집을 내면 업무태만이고…. 뭐 그런 식으로 답답했다. 얼마 전 세상 떠난 성악가 박인수 교수는 유행가를 불렀다고 국립오페라단에서 쫓겨나는 웃픈 일을 겪었다. 따지고 보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현대사회에 와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분야마다 제 밥그릇 챙기기 싸움에만 몰두하는 바람에 벌어진 것들이다.   긴말 할 것 없이, 다양한 예술 장르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장벽과 칸막이를 하루빨리 걷어내야 한다. 옛날에는 그랬으니, 되살리면 된다. 그렇다고, 갑자기 르네상스시대로 돌아가 팔방미인이 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각 분야가 문을 열고 서로 주고받으면서 돕고 자극을 주고 격려하면 한결 풍성하고 튼실해질 것이라는 말이다. 가령, 문학과 미술, 미술과 음악 사이의 격의 없는 소통 같은 것….   동양의 전통에서는 그림과 문학의 근원은 본디 하나라고 생각했다. 글과 그림의 말뿌리(語源)는 같다는 생각, 시서화일체(詩書畵一體)…. 그러니 서로 통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특히 선비들의 문인화(文人畵)에서 그러했다. 오늘의 현실에도 되살리고 싶은 바람직한 전통이다. 화가가 시를 쓰고, 시인이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지어 부르고….   실제로 그렇게 소통한 좋은 예는 많다. 가령, 김환기 화백의 대표작인 전면점화 첫 작품의 제목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다. 친한 친구인 김광섭 시인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이다. 또 ‘항아리와 시’라는 작품에는 서정주 시인의 ‘기도 1’ 전문을 써넣기도 했다.   좋은 미술 작품의 바탕에는 시가 있다. 추상미술의 대표적 작가인 잭슨 폴록의 작품 중에도 시적인 제목이 붙어 있는 작품이 뜻밖에 많다. 밤의 소리, 달의 여인이 원을 자르다, 달의 그릇, 비밀의 수호자들, 열 속의 눈, 청색의 무의식, 어떤 과거, 매혹의 숲, 도깨비불의 발광, 바다의 변화, 라벤더 미스트, 가을의 리듬, 거미집에서, 메아리, 검은 흐름, 달의 진동 등등….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 소설가인 헤르만 헤세는 훌륭한 화가이기도 했다. ‘데미안’ 등으로 우리와 친숙한 그는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가 하나임을 몸으로 증명해준 고마운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림 그리기를 통해 자신의 문학 세계도 발전했으며 자신의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림 그리기 없이, 나는 지금의 작가가 될 수 없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내가 쓰는 문학도 한 단계 발전되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뿐만 아니라 내 마음의 깊이도 깊어짐을, 내가 예술을 보는 안목도 깊어짐을 알 수 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예술 장르 예술 장르 미술 작품 그림 그리기

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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