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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엘뤼아르 시 선집

포도로 포도주를 만들고/ 석탄으로 불을 피우고/ 입맞춤으로 인간을 만드는 것/ 이것이 인간들의 따뜻한 법칙이다// 전쟁과 비참함/ 죽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살아가는 것/ 이것이 인간들의 힘든 법칙이다// 물을 빛으로/ 꿈을 현실로/ 적을 형제로 바꾸는 것/ 이것이 인간들의 유연한 법칙이다
 
폴 엘뤼아르 『엘뤼아르 시 선집』
 
오랜만에 엘뤼아르를 다시 읽는다. 1959년 국내 최초로 세계문학전집을 펴냈던 을유문화사가 2008년부터 야심차게 새로 선보이고 있는 『을유세계문학전집』의 121번째 책이다.
 
“창공이 나를 버렸을 때, 나는 불을 피웠네, / 그의 친구가 되기 위한 불,/ 겨울의 어둠으로 들어가기 위한 불,/ 더욱 잘 살기 위한 불을.”로 시작하는 ‘이곳에 살기 위하여’나 “내 초등학교 공책 위에/ 내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雪)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자유’, 양귀자 소설 제목으로도 쓰인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전문인 ‘모퉁이’까지 엘뤼아르 시 120여 편을 원문과 함께 실었다. 국내에 덜 소개됐던 초현실주의 시 등 초기부터 후기까지 두루 일별할 수 있다.
 
인용문은 시 ‘올바른 정의’의 부분. ‘적을 형제로 바꾸는 것이 인간의 유연한 법칙’이라는 대목에 특히 눈이 간다. “딸과 엄마와 엄마와 딸과”를 수차례 반복하는 게 전부인 ‘자장가’나 “눈의 층계/ 형태의 창살을 가로지르는/ 영원한 계단/ 존재하지 않는 휴식”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마그리트 그림이 떠오르는 ‘르네 마그리트’ 등 새로운 시들이 많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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