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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멋진 크루즈, 36년만의 귀환

‘만인의 연인’ 톰 크루즈와 함께 신화가 되었다가 36년 만에 다시 돌아온 ‘탑건’(1986년)의 속편 ‘탑건: 매버릭’은 2022년 1억70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려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에 랭크된 영화이다. 원작의 향수를 이어가면서도 젊은 세대들에게 어필할만한 새시대적 요소들이 충분히 가미되어 있고 조연급 배우들의 인상적 연기가 흥행을 견인했다. 제95회 아카데미상에 작품상, 각색상, 음향상, 시각효과상, 편집상 등 5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있다.   영화 개봉 이후, 나이 60줄에 들어서도 여전히 섹시남의 매력을 발산하는 크루즈의 연기가 여성팬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회자했다. 영화는 원작과 36년이라는시간차를 좁히려고 노력하지 않고 오히려 크루즈의 연륜과 80년대의 감성, 그리고 아메리카니즘을 바탕으로 옛 추억의 전설을 재창조해낸다.     비행을 계속하기 위해 진급을 거부하고 현역 파일럿으로 남은 피트 매버릭 미첼(톰 크루즈) 대령은 상관 케인(에드 해리스)이 중단을 명령한 시험비행을 독단적으로 완수, 케인의 분노를 산다. 드론이 파일럿을 대체할 것이라는 케인에게 매버릭은 아직은 아니라는 답을 남긴 채 탑건 훈련학교 교관으로 전출된다. 옛 연인 페니(제니퍼 코넬리)와 재회한 그는 최신형우라늄 시설 폭격 작전에 투입될 12명의 파일럿을 훈련시키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매버릭에게는 그의 절친이며 윙맨이었던 구스를사고로 떠나보내야 했던 과거의 아픔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런데 구스의 아들 루스터가 그의 훈련병 12명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일련의 사건들이 그를 좌절하게 하지만 끝내 극복하고 국경을 뛰어넘는 위험한 임무에 들어간다. 그는 작전의 성공만큼이나 12명의 파일럿들을 끝까지 살려서 귀환시키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     ‘탑건: 매버릭’은 시기만 다를 뿐 사실상 전편과 동일한 구조와 설정으로 영화가 전개된다. 토니 스콧 감독에 보내는 의도된 오마주이다.  전설적 조종사 매버릭의 인간다움에, 크루즈의 아재다움에 매료되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영원으로 회귀하는 가치 있는 속편!.   김정 영화평론가크루즈 귀환 크루즈 36년 탑건 훈련학교 매버릭 미첼

2023-02-24

[디지털 세상 읽기] MS 검색엔진 ‘빙’ 귀환

1990년대 PC시장을 장악했던 마이크로소프트(MS)가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시장에서 고전했던 데는 구글이 검색의 강자로 떠오르는 것을 막지 못했던 탓이 크다. 구글 창업자들은 애초에 검색 엔진으로 사업을 하기보다 야후나 MS에 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1990년대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오랜 법정 싸움을 했던 MS는 구글을 인수해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기 싫었고, 그 사이 구글은 인터넷 공룡으로 자라났다.   검색 광고 수익을 놓치게 된 MS는 뒤늦게 빙(Bing)이라는 검색엔진을 개발해서 검색 시장의 일부를 차지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MS가 아무리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어 빙을 홍보해도 오히려 역효과만 내며 사용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런데 MS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인공지능 챗GPT를 빙에 탑재한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다. 챗GPT는 오픈AI라는 스타트업에서 만들었지만, MS는 이 프로젝트에 무려 10억 달러를 투자해서 키우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해 말 챗GPT가 큰 관심을 모았을 때 “이건 어쩌면 빙의 복수일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지난주 보도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었고, 챗GPT가 들어간 새로운 빙이 구글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구글에서는 적색경보(코드 레드)가 발동되었다. 구글 사용자가 한순간에 사라질 리는 없다. 하지만 구글에서 검색하는 대신 빙을 사용해 인공지능과 대화하듯 답을 알아내는 게 훨씬 편리하다는 사실이 자리 잡는 순간 구글은 검색 시장에서 큰 파이 한 쪽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검색엔진 귀환 구글 사용자 검색 시장 구글 창업자들

2023-01-20

[디지털 세상 읽기] MS 검색엔진 ‘빙’ 귀환

1990년대 PC시장을 장악했던 마이크로소프트(MS)가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시장에서 고전했던 데는 구글이 검색의 강자로 떠오르는 것을 막지 못했던 탓이 크다.     검색 광고 수익을 놓치게 된 MS는 뒤늦게 빙(Bing)이라는 검색엔진을 개발해서 검색 시장의 일부를 차지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MS가 아무리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어 빙을 홍보해도 오히려 역효과만 내며 사용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런데 MS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인공지능 챗GPT를 빙에 탑재한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다. 챗GPT는 오픈AI라는 스타트업에서 만들었지만, MS는 이 프로젝트에 무려 10억 달러를 투자해서 키우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해 말 챗GPT가 큰 관심을 모았을 때 “이건 어쩌면 빙의 복수일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지난주 보도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었고, 챗GPT가 들어간 새로운 빙이 구글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구글에서는 적색경보(코드 레드)가 발동되었다. 구글 사용자가 한순간에 사라질 리는 없다. 하지만 구글에서 검색하는 대신 빙을 사용해 인공지능과 대화하듯 답을 알아내는 게 훨씬 편리하다는 사실이 자리 잡는 순간 구글은 검색 시장에서 큰 파이 한 쪽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검색엔진 귀환 구글 사용자 검색 시장 검색 광고

2023-01-18

[한국은행 칼럼] 킹달러의 귀환

세계경제에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 팬데믹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세계 각국은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1980년대 이후 약 40년 만에 찾아온 고물가에 미국은 강력한 긴축정책에 돌입했고 이는 달러의 초강세, 이른바 ‘킹달러’ 현상을 부추기며 전 세계 금융시장을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큰 폭의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지만, 다른 나라들은 미 연준의 급격한 긴축정책으로 통화가치가 급락하는 불똥을 맞았다.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언제나 달러가 모든 자산의 피난처(safe heaven)가 된다.     미국이 금리를 높일수록 전 세계의 자금은 점점 더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고, 시장에서의 달러가치는 더욱 올라간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경제 역시 예외일 수는 없어서, 미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에 원화 가치는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1400원을 훌쩍 넘어서면서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율 변동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일까?   단기적으로 환율은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방향성(상승 또는 하락)에 대한 기대나 각종 뉴스, 은행의 외환포지션 변화, 주변국의 환율 변동 등에 따라서 움직인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달러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면 환율이 오르기 전에 미리 달러를 매수해 향후 차익을 누리고자 한다. 이러한 기대가 한 방향으로 쏠릴 경우 일시적으로 원달러 환율은 급등하게 된다. 또한 각종 뉴스는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기대에 영향을 미쳐 원달러 환율을 변동시키기도 한다.     이 밖에 은행의 외환포지션 변동도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데, 외환포지션(외화자산 - 외화부채)이 매도초과(외화부채 > 외화자산) 혹은 매입초과(외화부채 < 외화자산)의 한 방향으로 크게 노출될 경우 포지션 조정을 위한 거래가 일어나고 그 결과로 환율이 변동하게 된다.   중장기적으로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는 대외거래, 거시경제정책, 생산성 변화 등이 있다. 환율은 상품의 수출입, 서비스거래, 자본거래 등 대외거래의 결과에 따라 변동한다. 대외거래의 결과 국제수지가 흑자를 보이면 외환의 공급이 늘어나 원화가치가 상승(원달러 환율 하락)하는 반면 국제수지가 적자를 보여 외환의 수요가 늘어나면 원화가치는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 한다.     통화정책 등 거시경제정책도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용하면 통화공급이 감소하여 외국의 통화량에 변화가 없다면 원화의 상대적인 공급이 줄어들어 환율이 하락한다. 이 외에도 한나라의 생산성이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향상될 경우 해당 통화의 가치는 올라간다. 한 국가의 생산성이 개선되면 더 싼 값에 재화를 공급할 수 있게 되므로 국내 물가가 하락하거나 자국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대해 자국 통화의 가치가 상승하게 된다.   미국의 긴축적 통화정책을 좇아 금리를 올려야 하는 수많은 나라의 국민들은 높아진 이자부담으로 허리가 휜다. 이젠 고물가가 문제인지 ‘킹달러’가 문제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고물가는 허리띠를 졸라매면 된다지만, 통화가치 급락은 자칫 한 나라의 경제를 파탄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세계가 달러가치 급등으로 아우성이지만 정작 미국은 고환율로 인한 다른 나라의 고민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하다.     냉혹한 글로벌 경제논리에서 미국에게 킹달러에 대한 책임을 기대한다는 것은 순진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주체들은 투자손익과도 직결되는 환율 변동요인을 스스로 점검해보고 환율위험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구자천 / 뉴욕사무소 차장한국은행 칼럼 킹달러 귀환 외환포지션 변동 원달러 환율 환율 변동

2022-11-01

[기고] 휴전 69주년, 노병 빨간 마후라의 회상

1950년 6월25일 북한의 전면기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국군의 필사 항전과 유엔군의 참전으로 한반도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를 지켜냈다.     열악한 장비의 국군은 막대한 피해를 보았으나, 유엔군의 참전은 우리 민족에게는 실로 엄청난 행운이었다.     오늘은 한국전쟁 휴전 69주년을 맞는 날이다. 1953년 7월27일 휴전을 앞두고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얻기 위해 적군의 야간침공으로 빼앗긴 땅을 주간에는 아군 공군의 엄호하에 지상군이 재탈환하는 등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이배선 전우(공사 1기)는 한국전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으며 휴전 당일에도 무스탕 전투기로 3회나 출격을 했다. 그는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월남 후 1949년 공사 1기로 공군에 입대했다. 1992년 미국으로 이민와  LA에서 생활하다 최근 다시 한국으로 역이주를 했다.      다음은 이배선 전우가 개인 출격일지를 정리한 ‘빨간 마후라의 회상’이라는 책자와 2기 미주전우회 모임에서 증언한 내용을 정리한 것.   ‘휴전일 전까지 무스탕(P-51) 전투기로 89회 출격을 했고 휴전 당일에도 3회나 출격을 했다. 4개월 전 같은 편대기로 강원 고성 북쪽 지역에서임무 중 산화한 동료 전우(임택순)의 모습을 떠올리며.     전사한 임택순 전우는 책임감과 희생정신이 강하며 평소 온순한 성격에 유머가 넘쳤다. 그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먼저 간 전우의 몫까지 적에게 갚아줄 것을 다짐했다. 휴전일 이른 아침 90번째 출격을 하며 고성 북부 351고지 지상군 엄호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와 주스 한 잔을 마셨다. 그런데 다시 연락이 왔다. 땀이 마를 겨를도 없이  91회 출격을 했다. 지난번 전우가 적의 대공사격으로 산화한 장소 부근이다. 점심 후 우리에게는 또 한 번의 출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기지에 있는 모든 탄약을 소비하라고 외치며 92회째 마지막 출격을 시작하였다. 전쟁 중 희생된 선후배 그리고 동료들의 영혼에 대한 보답을 위해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상 포대와 병력집결소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기지로 귀환하며 나의 마지막 출격은 이렇게 끝났다. 항공기 엔진을 끈 후 정비사가 비행기로 뛰어 올라오며 성공적인 임무완수와 무사 귀환을 축하해 주었다.     출격과 귀환 시 이번 비행이 나에게 마지막 비행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항상 최선을 다짐하였다. 나는 그때마다 하나님의 가호와 은총을 기원했다. 돌아보면 매번 출격 시 나와 함께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다.’   대한민국은 지금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종전국가가 아닌 휴전국가로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국전쟁시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의 희생을 토대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루었다.   오늘날 급변하는 국제정세에서  한미 안보동맹을 확대 발전시키며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가치를 함께하며 조국의 항구적 평화와 번영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한다.   미국은 2009년부터 한국전쟁 휴전일인 7월27일을  ‘한국전 참전용사 휴전일’로 지정하고 조기를 게양하고 있다.   6·25전쟁 참전 전우, 선배님들께 머리 숙여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심인태 / 공군전우회 LA지회장기고 마후라 휴전 한국전쟁 휴전 출격과 귀환 휴전 당일

2022-07-26

떠났던 뉴요커 4분의 3 귀환

 코로나19 팬데믹 첫 한해동안 뉴욕시를 떠났던 뉴요커의 4분의 3이 돌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직장 복귀와 공립학교 개학 등 시 전역 본격 재개에 따른 것인데, 이후 예측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스콧 스트링어 뉴욕시 감사원장이 1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 7월 뉴욕시 인구 전입과 전출이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순유입으로 전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보고서는 우정국(USPS)에 신고된 주소 변경을 기준으로 분석한 내용에 따른 것이다.     2020년 3월 코로나19 감염이 급격히 확산되고 모든 비필수 사업체가 폐쇄되면서 시 전역에서 인구 유출이 본격화됐다.     이에 따르면 2020년 3월 뉴욕시 5개 보로에서 전출한 인구는 한달 전인 2월 대비 5배 이상 급증했다. 특히 이같은 인구 유출은 모든 사업체가 문을 닫은 맨해튼이 가장 심했고, 이어 브루클린, 퀸즈 순이었다. 반면, 롱아일랜드 햄튼, 버몬트와 메인 등 뉴욕 인근 주의 인구는 오히려 증가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2021년 여름부터 각종 서비스가 재개되면서 반전됐다. 인구통계전문가인 앤디 비버리지 퀸즈 칼리지 교수에 따르면 2020년의 경우 이전 평균보다 3만3000명이 더 유출됐고, 2021년에는 2만3000명의 추가 유입이 나타났다.     비버리지 교수는 이에 대해서 “빠져나간 인구의 4분의 3이 회복된 것”이라면서 “일상 회복의 조짐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같은 인구 유입은 팬데믹 발발 당시 인구 유출이 심했던 맨해튼 내 부유층 거주 지역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     팬데믹 첫해의 경우 5개 보로 모두에서 인구 유출이 발생했지만 배터리파크·그리니치빌리지·머레이힐·그래머시·어퍼이스트사이드 등 맨해튼 부유층 지역의 유출이 두드러졌다.     올해 6~9월의 인구 유입은 첼시·미드타운·머레이힐·그래머시·배터리파크·그리니치빌리지·어퍼이스트사이드 등에서 가장 많았다.     이같은 인구 유입으로의 전환은 올 9월부터 시작된 뉴욕시 공립학교 대면수업 재개와 맨해튼 등 기업의 출근 재개, 엔터테인먼트 등 비즈니스 재개 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시 전역 회복세가 지속될지 여부에 대해서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즉 회복추세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주장과 이 정도에서 주춤해 회복까지 장기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의견이 맞서는 상황이다.       아직까지 뉴욕시 전철 이용객은 팬데믹 이전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맨해튼 오피스의 직원 복귀율 또한 10월 현재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겨울 휴가철 이동에 따른 코로나19 감염 재확산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장은주 기자뉴요커 귀환 뉴욕시 인구 인구 유출 인구 유입

2021-11-17

돌아온 원정출산아…미국서 특혜만 누린다

"시민권자 아이를 LA나 라카냐다, 패서디나쪽 공립학교에 보내고 싶어요", "5학년 시민권자 아이 데리고 어바인 갑니다. 더 큰 세상을 원해요", "초등 4학년, 6학년 시민권자 아이 엄마인데 11년 만에 미국 가요", "중3 시민권자 아이가 고등학교는 미국으로 가고 싶다고 하네요. 어느 지역 공립학교가 좋을까요"….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인터넷 포털 네이버의 한 조기유학준비모임 카페에 올라온 시민권자 자녀를 둔 한국 엄마들 질문이다. 상당수는 10여 년 전 원정출산에 나섰던 엄마들이다. 10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이들은 원정출산 다음 단계 준비에 돌입한 모습이다. 시민권자 자녀를 둔 한국 부모는 원정출산을 위해 통상 1만5000~2만 달러를 썼다. 이들은 이 돈을 '투자금'이라고 서슴없이 표현한다. 2만 달러 투자로 '자녀 시민권 취득, 미국 초·중등 공립학교 무상교육, 미국 대학졸업 후 체류신분 해결'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초·중등 공립학교 무상교육은 시민권자 자녀를 둔 한국 부모가 가장 선호하는 혜택이다. 한의사 김모(40대)씨는 "괌 원정출산을 준비할 때 비용이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시민권자 공립학교 무상교육 정보를 알고 괌으로 출발했다. 애한테 선택권을 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한국 부모는 시민권자 자녀가 13~15세가 되면 LA, 어바인, 풀러턴 등 캘리포니아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시민권 자녀는 현지 홈스테이 가디언(법적보호자) 지도 아래 공립학교로 바로 입학한다. 월평균 2500~3000달러 하숙비만 내면 된다. 시민권자 청소년은 입국심사 과정에서 제약도 없다. 풀러턴 한 조기유학생 대상 홈스테이 업주는 "공립학교는 시민권자 출생증명서, 가디언 신분증 및 공증, 예방접종 확인서만 있으면 입학을 문제 삼지 않는다. 한국에서 오는 시민권자 조기유학생이 늘면서 홈스테이 '주소와 학군'이 가장 큰 고려사항이 됐을 정도"라고 전했다. 반면 한국 국적 조기유학생들은 시민권자 조기유학생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일단 한국 국적 조기유학생은 미국 공립학교 입학이 불가능하다. 합법체류 신분인 부모가 미국에 거주할 때만 공립학교 입학을 허락한다. 때문에 한국 국적 조기유학생은 미국 국무부 입학허가서(I-20), 주한미국대사관 학생비자(F1)를 받아야 한다. 학생비자 발급 조건은 미국 사립학교 등록(연간 2~3만 달러)이 필수다. 시민권자 조기유학생은 연간 4만 달러 비용이 필요하다. 한국 국적자는 학비와 하숙비로 연간 최소 7만~8만 달러가 필요하다. 시민권자 조기유학생은 미국 공립대학 진학 때 거주민(In-state) 학비도 가능하다. 시민권자 부모가 느끼는 상대적 우월감도 여기서 나온다. 시민권자 자녀를 둔 한국 부모 직종과 경제 수준은 어떨까. 조기유학생 대상 교육컨설팅 업체 아이비포커스 에듀케이션을 운영하는 김준영 대표는 "한국 국적 학생이 조기유학 하려면 학생비자 절차도 복잡하다. 미국 대학에 들어가도 인턴십 후 직장을 못 잡으면 (체류신분이 없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시민권자 자녀를 둔 부모는 의사·변호사·교수, 대기업 이사 이상인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관련 정보를 미리 파악한 한국 기득권층인 셈이다. 원정출산 시민권자 조기유학생의 미국 귀환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본지 기사를 접한 독자들은 "한국 지식인이라는 사람들 수준을 알 수 있다. 미국 납세자가 열심히 낸 돈으로 악용한다", "세금 착실히 내는 우리가 무슨 죄라서 원정출산 애까지 책임져야 하나", "납세의무를 지고 미국에 기여할 때 시민권을 줘야 한다"며 원정출산아들의 미국 귀국을 비난했다. 8·10세 아들을 원정출산한 의사는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혜택'이 엄청나다. 원정출산한 애를 한국에만 살게하면 의미가 없지않나"고 항변했다.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

2019-04-02

'원정출산 한국아동' 미국 몰려온다

#. 오렌지카운티 브레아의 한인 홈스테이집에 머물며 중학교에 다니는 김모(13)군은 요즘 미국 생활에 푹 빠져있다. 두 달 전 미국에 온 김군은 브레아 공립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며 고민도 생겼다. 김군은 "엄마가 시민권자라고 어릴 때부터 알려줬다. 나중에 군대 안 가도 된다고 했는데 크면 한국에 돌아가고는 싶다"고 말했다. 김군의 부모(아버지·의사)는 "원정출산 때 고생은 했지만 아이가 미국 공립학교에서 무상교육 혜택을 누려서 좋다"고 흡족함을 표했다. #. 지난해 선천적 복수국적 이탈신고를 접수한 LA총영사관은 신청서 약 60건을 '반려'했다. 2018년 LA총영사관이 접수한 국적이탈 접수 건수는 총 1182건, 이 중 신청서를 반려한 60건은 소위 원정출산이 의심되는 사례다. LA총영사관 관계자는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국적이탈을 하려면 한인 2세처럼 생활의 근거지가 미국이어야 한다. 국적이탈이 반려된 이들은 한국에서 장기간 살았던 이들"이라고 전했다. 어바인과 풀러턴 등 OC 조기유학생 대상 홈스테이 업계는 요즘 '새로운 시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동안 홈스테이 업계는 한국 국적 조기유학생이 주요 손님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시민권자 자녀를 둔 한국 부모의 문의가 부쩍 늘었다. 풀러턴에서 조기유학생 대상 홈스테이를 운영한 지 1년째인 이모(40대)씨는 "지금 우리 집에 머무는 아이 3명 중 2명이 시민권자 중고등학생"이라며 "한국에서 오는 연락 10건 중 3~4건은 시민권자 자녀를 둔 부모들 문의다. 이들 부모는 시민권자 자녀가 미국에서 가디언(법적보호자)만 찾으면 공립학교를 공짜로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고 말했다. 원정출산 유행 붐이 시작된 지 10여 년. 미국 시민권을 거머쥐고 태어났던 한국 아이들이 하나둘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있다. 한국에서 원정출산이 유행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 이전까지 원정출산은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이 되자 원정출산은 중산층까지 퍼져 LA 등 미국 한인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이 호황을 이루기도 했다. 급기야 2005년 홍준표 국회의원은 원정출산에 의한 국적이탈을 제한하기 위해 국적법을 개정하기에 이른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가 불이익을 당하게 된 선천적 복수국적법이다. 원정출산을 했던 부모들은 선천적 복수국적법을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되레 시민권자의 혜택에 집중하고, 복수국적법을 숙지해 일찌감치 자녀 조기유학을 선택하고 있다. 시민권자 자녀는 미국 초·중등 공립학교 무상교육 혜택을 보장받는다. 동시에 남자아이는 미국 장기거주 사실을 증명하면 만 18세 때 국적이탈 또는 병역유예(사실상 면제)까지 가능해서다. 인터넷 포털 네이버의 한 조기유학준비모임 카페(회원수 2만2750명)에는 시민권자 자녀를 둔 한국 부모들 문의가 수시로 올라온다. "중3 시민권자 아이를 위한 샌타로사 공립학교 추천해 주세요.", "시민권자 아이를 LA나 라케냐다, 패서디나쪽 공립학교에 보내고 싶어요." "초등 5학년 시민권자 아이 부모입니다. 미국 공립학교 유학을 알아봅니다." "초등 4학년, 6학년 시민권자 아이 엄마인데 11년 만에 미국 가요." 초·중등 자녀가 시민권자라고 밝힌 한국 부모들은 약속이나 한 듯 '미국 현지 공립학교'와 홈스테이 가정을 찾았다. 일부는 "아이가 시민권자인데 몇 살 때 부모초청이 가능한가요"라며 노년까지 대비했다. LA 동부에서 조기유학생 대상 교육컨설팅 업체 아이비포커스 에듀케이션을 운영하는 김준영 대표는 "한국 의사·변호사·교수 중 자녀만 시민권자인 부모가 많고 아이들이 크면 미국으로 보낸다"면서 "시민권자 아이는 한국에서 외국인학교에 다니다 대학은 미국으로 오는 경우, 중고등학교 때부터 미국 공립학교로 진학하는 경우로 나뉜다"고 전했다.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

2019-04-01

"완전한 비핵화, 연내 종전 선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연내 종전을 선언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공동 목표로 하기로 합의했다. <관계기사 3·13면·한국판> 두 정상은 27일 오후(한국시간)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회담 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서명.발표했다. 선언에서 두 정상은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선언은 또 평화체제 수립을 명문화했다. 선언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간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올 가을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도 선언에 명문화해 앞으로 주기적으로 남북 정상이 만나는 계기를 마련했다. 평화체제 전환의 구체적 실행 방안으로는 우선 개성에 남북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키로 했다. 또 6·15 등에 각계각층의 공동행사를 적극 추진키로 했으며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친척 상봉도 진행하기로 했다. 이밖에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를 위해 남북이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5월 1일을 기해 군사분계선 일대에 설치된 확성기도 철폐하기로 했다. 또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수역을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로 했으며 5월중 장성급회담도 개최하기로 했다.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도 일제히 환영 메시지를 발표했으며, 외신들도 실시간으로 이를 보도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판문점 선언'에 비핵화 조치의 구체적 내용이 결여됐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비핵화의 구체적 방안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출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한국전쟁이 끝날 것이다!"라며 "좋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오직 시간이 말해줄 것"이라고 했다. 한편 '판문점 선언' 서명과 발표를 마친 두 정상은 오후 6시를 전후해 평화의집에 도착한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 김 위원장 부인 이설주와 함께 3층 연회장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만찬에서 "남북을 자유롭게 오갈 그날을 위하여"라는 건배사를 했다. 만찬 후 열린 환송행사에서 두 정상 부부는 판문점 평화의집 전면을 스크린 삼아 상영된 '하나의 봄' 영상을 감상했다. 이어 김 위원장 부부는 문 대통령 부부와 작별 인사를 했고, 두 사람을 태운 차량이 오후 9시28분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향해 11시간 59분 동안 이어진 방남 일정이 마무리됐다. 박기수 기자 park.kisoo@koreadaily.com

2018-04-27

이설주 "아침에 남편이 문 대통령과 좋은 얘기 나눴다 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부인 이설주의 27일 판문점 방문 소식은 만찬 4시간을 앞둔 오후 2시30분 전격 발표됐다. 이설주를 태운 검은색 벤츠 차량이 평화의집 정문에 도착한 건 오후 6시18분이었다. 살구색 치마 정장 차림에 왼쪽 손에 검은색 손가방을 들고 검은색 구두를 착용한 모습이었다. 20여 분 전 평화의집에 도착해 있던 김정숙 여사가 반가운 표정으로 맞았다. 김 여사는 하늘색 정장이었다. 당시 평화의집 1층 로비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로비로 들어서자 문 대통령이 이설주와, 김 위원장은 김 여사와 인사를 나눴다. ▶문 대통령="둘이 인사 나눴나. 오늘 우리는 하루 만에 아주 많은 친분을 쌓았다." ▶이설주="아침에 남편이 회담을 다녀와서 문 대통령과 좋은 얘기 많이 나누고 회담도 다 잘됐다고 해서 정말 기뻤다." ▶김 여사="두 분 아까 다리 건너는 모습을 봤다. 얼마나 평화롭던지." ▶김 위원장="벌써(일찍) 나왔나." ▶김 여사="오면서 봤다. 무슨 말씀 하는지 막 가슴 뛰고." ▶김 위원장="우리는 카메라 피해서 멀리 갔는데 그게 나왔구만요(웃음)." ▶김 여사="미래에는 번영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설주="여사가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문 대통령="가구 배치만이 아니라 그림까지 참견을 했는데." ▶이설주="그래서 조금 부끄러웠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이렇게 왔는데…." ▶문 대통령="두 분이 전공도 비슷해 앞으로 남북 간 문화예술 교류에서도…." ▶이설주="두 분이 하는 일이 항상 잘되도록 정성을 기울이겠다." 오후 6시20분쯤 환담을 마친 네 사람은 로비에 걸려 있는 민정기 작가의 '북한산'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이설주의 등장으로 남북의 퍼스트레이디가 처음 만났다. 35세 차이 나는 두 사람은 음악을 전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경희대 성악과 출신인 김 여사가 서울시립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고, 이설주도 예술전문학교(평양 금성2고등중학교)를 나오고 은하수관현악단에서 가수로 활동했다. 이설주는 2005년 인천 아시아 육상선수권대회에 북한 응원단으로 방한한 경험이 있어 두 번째로 남한 땅을 밟는 셈이 됐다. 이설주의 판문점 방문은 어느 정도 관측이 됐다. 김정은 체제 들어 이설주를 여사로 호칭하는 등 북한 최고지도자의 배우자로서 존재와 역할을 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정상 국가들처럼 이미 지난달 김정은의 첫 방중 때 동행한 이력도 있다. 일각에선 장차 북·미 정상회담에도 이설주가 동행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위문희·김준영 기자

2018-04-27

소나무 심은 뒤 백두·한라 흙, 대동강·한강 물

남북 정상이 27일 판문점에서 보여 준 일거수일투족엔 평화와 화합, 번영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날 군사분계선 인근 '소떼길'에 심은 기념식수는 1953년에 싹을 틔운 '반송'이다. 소떼길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98년에 소떼 500마리를 몰고 방북했던 길이며, 반송은 여러 갈래 줄기로 갈라져 부채를 펼친 모양으로 자라는 소나무다. 두 정상은 나무를 심으면서 '합토합수'(合土合水.흙과 물을 합침) 의식도 진행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공동 식수 당시 삽을 들고 흙을 떠 소나무에 뿌렸다. 흙은 백두산과 한라산의 것을 섞어서 사용했다. 식수 후에는 김 위원장이 한강수를, 문 대통령이 대동강수를 각각 뿌렸다. 이들이 함께 잡은 삽에도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삽자루'는 북한의 숲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침엽수이고 '삽날'은 남한의 철로 만들었다. 반송 옆에는 식수 표지석이 놓였다. 표지석은 가로 1.4m, 세로 0.9m 크기로 경기도 파주시에서 캔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표지석에는 한글 서예 대가인 효봉 여태명 원광대 교수가 쓴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는 문구와 두 정상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다. 문구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정했다. 회담 장소인 판문점 남측 지역의 수행원 대기실에는 서울의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와 이보다 30분 늦은 평양의 시간을 보여주는 시계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화합을 뜻하는 상징물이다. 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는 순간 화동들이 전달한 꽃에도 의미가 담겨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꽃 중의 꽃으로 꽃의 왕이자 북쪽을 상징하는 작약과 남쪽을 상징하는 유채꽃, 평화를 상징하는 데이지로 꽃다발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강태화 기자

2018-04-27

"MB 뻔뻔하고 후안무치"…'BBK' 김경준, 페이스북서

'BBK 사건'의 김경준(51)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과 관련해 자신의 생각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밝혔다. 김경준은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가 책에 썼던 내용들이 기억난다"면서 3가지 의견을 썼다. 그는 "2007년 MB(이명박 전 대통령)는 김경준에게 속았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했다"면서 "11년 후 지금도 동일한 밑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주장을 되풀이하니…그의 뻔뻔하고 후안무치한 본성(Audaciously Shameless Nature)에 참 할 말이 없다"고 했다. MB가 김경준에게 속았다고 한 사건은 김경준이 투자자문사인 BBK의 자금으로 2001년 코스닥 상장사인 광은창투를 인수한 뒤 주가조작을 통해 319억여원을 빼돌린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횡령사건'을 말한다. 김경준은 "BBK의 실소유주는 MB"라고 했지만 이 전 대통령은 "김경준에게 속아서 투자했다"고 주장했다. 김경준은 지난해 본지와 8차례 연재 인터뷰에서 MB와의 만남부터 주가조작까지 그간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을 공개한 바 있다. 김경준은 페이스북에서 "2000년 MB는 내게 언제나 책임을 뒤집어 씌울 사람을 만들라고 했다. 난 거절했고, 내가 뒤집어 썼다"면서 "이제보면 MB는 책임을 뒤집어 씌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든 것 같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난 MB, 정부, 삼성 등과 정말 불가능한 싸움을 감옥에서 돈 없이 한 것이다. 너무 힘들었다"고 썼다. 그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이틀 전인 MB가 소환되던 날 본지 기자와 메신저를 통해서는 한국에 대해 '경멸만 남았다(I have only contempt)'고 가시가 돋친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2007년 내가 MB의 범죄에 대해 증언할 때 한국 사람들은 내가 감옥에 가서 입을 다물고 MB가 대통령이 됐다고 기뻐했다"면서 "그랬던 한국 사람들은 이제와서 MB를 감옥에 보내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변하지 않은 점이 있다면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나와 내 가족들에 대해 저주를 퍼붓고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구현 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2018-03-16

"최소 150이닝, 많게는 200이닝 소화 목표"

여느 때보다 중요한 2018년, 류현진(31.LA 다저스)은 몸 상태에 대한 자신감과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책임감 속에 한 단계 도약을 다짐했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은 2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LA로 떠났다. 지난 1월에 아내로 맞은 배지현 아나운서도 함께 출국했다. 아버지인 류재천씨는 출국 직전 아들 류현진과 며느리 배지현 아나운서를 포옹하며 마지막까지 배웅했다. 류현진은 2017년에 의미 있는 시즌을 보냈다. 2015~2016시즌에 부상으로 단 1경기 출장에 그쳤던 그는 지난해 25경기에서 126⅔이닝을 소화하며 5승9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77을 기록했다. 몸 상태에 따라붙던 물음표를 떼어 내기에 충분했다. 다저스가 월드시리즈까지 오른 가운데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 빠졌지만 큰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소화한 점에 나름 만족했다. 류현진은 2018년 입지 굳히기에 나선다. 올 시즌 종료 이후 다저스와 6년 계약이 종료돼 FA 자격을 얻기 때문이다. 올 시즌 활약 여부에 따라 계약 규모가 크게 달라진다. 류현진은 캠프 초반부터 전력을 다한다. 다저스의 선수층이 워낙 두꺼워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시범 경기에서부터 보여 줘야 한다"며 "최소 150이닝은 소화하고 싶다"고 목표를 밝혔다. - 출국을 앞둔 소감은. "새해를 맞아 다시 출발한다. 지난해 부상 없이 1년을 소화했다. 올해는 많은 이닝을 던지면 좋겠다." - 비시즌 동안 어떻게 운동했나. "지난해처럼 김용일 트레이닝코치님과 함께했다. 아무래도 재활 훈련에 집중했다.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한 보강 운동에 매진했다. 통증이 없고 몸 상태도 좋다." - 물음표가 붙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출국하는 심정이 조금 다를 것 같다. "그렇다. 지난해엔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치렀지만 '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첫째도 둘째도 건강이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던져야 한다. 지난해 초반보다 (몸 상태가) 좋은 것 같다. 걱정이 덜하다." - 올해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아무래도 이닝 소화다. 최소 150이닝 이상은 던져야 한다. 많게는 200이닝까지 소화하고 싶다." - 올해도 선발 경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다. 팀에 좋은 선발투수 자원이 많기 때문에 스프링캠프, 시범 경기에서부터 보여 줘야 한다. 그에 맞춰 준비하겠다." - 아내와 함께 떠나게 됐다. "아무래도 편할 것 같다. 심리적으로 책임감도 들고 여러모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 올 시즌 종료 이후 LA 다저스와 6년 계약이 종료되며 FA 자격을 얻는데. "지금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시즌을 잘 치르는 게 중요하다." - 올해부터 줄지어 국가 대항전이 열린다. 류현진의 대표팀 합류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대한민국 국민으로 최대한 참가하고 싶다. 불러 주신다면 당연히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많은 야구선수들이 메이저리그를 떠났다. "아쉽긴 하지만 각자 큰 결심을 내린 만큼 존중해야 한다. KBO 리그에 돌아간 선수들은 한국에서도 잘할 것이다. 추신수(텍사스) 형이 남아 있다. 같이 잘하겠다." - 지난해 입국 당시 신무기 커터에 욕심을 드러냈는데. "여전히 신무기 장착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변함없다. 던질 수 있는 만큼 던지겠다." -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남기고 싶은 인사말이 있다면. "개막부터 끝까지 이탈하지 않도록 준비를 잘하겠다. 많은 응원에 감사드린다. 올해도 아침마다 기쁨을 드릴 수 있도록 좋은 경기를 하겠다. 지난해처럼 시범 경기에서부터 몸 상태를 빨리 끌어올릴 생각이다." 이형석 기자

2018-01-25

"BBK를 버리자" 둘만의 계약서를 썼다

MB "BBK와 ebk 내가 세워" 인터뷰 때문에 금감원 조사 두 회사 자회사로 드러나 금융법위반 허가 취소 위기 BBK 내가 떠안고 빠지기로 밤새 계약서써서 MB와 합의 '위조 자백'은 검찰 협박때문 MB가 단 2개월만 아무 말 하지 않고 참았더라면 'BBK 사건' 자체는 아마도 터지지 않았을 것이다. 2000년 10월13일에 금융감독원(금감원)에 신청했던 e뱅크증권중개(ebk)의 예비허가가 나왔다. 말했다시피 ebk는 증권거래회사로 MB와 내가 구상한 '인터넷종합금융회사'에 반드시 필요한 자회사였다. 지주회사이자 소프트웨어 회사인 LKe뱅크 아래 BBK(투자자문업), 은행(하나은행과 투자 협약)이 갖춰졌고, 증권거래업 허가까지 받으면 비로소 전체 사업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투자자문과 증권업을 병행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그래서 ebk와 BBK는 같은 자회사였지만, 서류 상엔 주주 구조를 모호하게 했다. 물론 ebk 허가를 신청할 때도 금감원에 BBK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예비허가를 받았으니 예정대로라면 2~3개월 뒤인 2000년 연말쯤 ebk의 정식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예비허가가 나오자마자 MB는 여러 언론들과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앞서 두달전인 8월 광복절 특사에서 MB는 15대 총선 당시 선거법위반에 대한 유죄판결을 사면받았던 터였다. 정치적 족쇄가 풀렸고, 우리 사업도 순탄했으니 대중 앞에서 그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던 듯 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말한 내용들이다. '종합금융회사'를 설립했다고 밝힌 것이다. ebk 뿐만 아니라 BBK와 LKe도 자기가 설립했다고 공식 석상에서 스스럼없이 말하고 다녔다. (김경준의 이 증언은 당시 언론 보도로도 확인된다. 일명 'BBK 동영상'도 그중 하나다. MB는 ebk 예비허가가 나온지 나흘만인 2000년 10월17일 광운대 최고경영자 과정 특강에서 "올해 1월에 BBK를 내가 설립했고, 증권회사(ebk)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증권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금감원에 신청서를 냈고, 6개월 만에 허가가 나왔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MB는 금감원이 '구멍가게만도 못하다'는 말까지 했다. 금감원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조사를 시작했다. 금감원 직원들이 우리 사무실로 1주일간 매일 출근해 자금 흐름 등을 하나하나 뜯어봤다. 겉으로는 정식 인가를 위한 절차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주주 관계와 자금 흐름을 확인하려는 감사 성격이었다. 투자자들에게도 이 소식이 퍼지기 시작했고 하나은행과 삼성생명도 알게 됐다. 난 MB에게 항의했다. MB는 "걱정하지 말라"며 "금감원장을 직접 만나 해결하겠다"고 날 안심시켰다. 그래도 못 미더워한 내게 MB의 집사이자 부회장이었던 김백준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명박 회장님을 못 믿느냐"며 오히려 화를 냈다. 하지만 분위기는 점점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누가봐도 LKe, ebk, BBK는 같은 회사였다. 사무실도 같이 쓰고 있었고, 세 회사 사이에 자금이 수시로 왔다갔다 했다. 심지어 사무용품까지 같은 계좌로 구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ebk 허가가 취소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던 어느 날이었다. 2001년 4월쯤으로 기억한다. MB의 집사 김백준이 "회장님이 부르니 가자"고 했다. MB와 김백준, 나, 그리고 변호사, 네 사람이 마주앉았다. 그날 8시간 넘는 긴 회의에서 얻은 결론은 '무조건 ebk를 살리고 보자'는 것이었다. 김백준은 'ebk와 BBK가 관련 없는 것으로 정리하면 금감원에서 ebk 허가를 주는 것'으로 조율이 됐다고 했다. BBK를 버려야 했다. 책임은 내가 지기로 했다. BBK는 나 혼자 소유한 회사며, ebk와 LKe의 주주에서도 내 이름은 빼기로 합의했다. 당시 내 생각은 단순했다. 내가 MB를 지켜주면 MB가 나도 보호해줄 거라고 막연히 믿었다. MB의 ebk를 살려야 나도 살 수 있었다. MB는 날 걱정했다. "내가 김 사장 부모님들까지 만나 안심시켰는데 이렇게 해도 되겠어?" 회의를 끝내고 생각이 많았다. 밤새 사무실에서 고민했다. 그리고 내 자신을 보호할 뭔가를 마련해놓아야 했다. BBK가 MB의 회사라는 지분 관계를 분명히 한 계약서를 작성했다. MB와 나 둘만 아는 이른바 '이면 계약서'다. 계약서는 당시 업계에서 주식 매매시 흔히 쓰는 계약서 형식을 사용했다. 아침 7시쯤 출근한 MB의 방을 찾아가 계약서를 내밀었다. MB는 순순히 도장을 찍자고 했다. 회사 금고에 보관했던 MB의 인감도장을 가져와 MB 앞에서 찍고, 내 도장도 찍었다. 계약 날짜는 1년 전인 2000년 2월쯤으로 정했다. LKe와 BBK만 있던 시점이다. 현재 날짜로 쓰면 ebk와 옵셔널벤처스 주식 매입 등 당시 진행중인 사업 전반에 걸쳐 금감원에 사유를 설명하기가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2007년 당시 한나라당측은 이면계약서의 도장이 가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MB의 서명이 없는 것도 위조의 증거라고 했다. 밝혀두지만, MB의 도장은 2개였다. 회사에 보관한 것과 본인 개인 소유 도장이다. 또, 계약시 MB가 서명한 것은 하나은행의 5억 투자 계약서밖에 없다. 하나은행이 굳이 도장과 서명을 함께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외 다른 계약시 통상 MB는 회사에 보관된 도장만 찍고 서명은 하지 않았다. LKe 인감관리대장에 찍힌 도장들이 이면계약서 도장과 같다는 것이 그 증거다. 나 역시 이면계약서 존재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가 LA연방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변호사가 와서 여러 가지 서류들을 찾았다면서 내민 것 중 하나가 이면계약서였다. 난 이면계약서가 한국에서의 내 재판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래서 연방구치소에서 한국에 인도되던 2007년 11월16일 국제우편으로 한국의 박수정 변호사에게 보냈다. 당시 검찰은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면계약서 원본 종이 재질과 글꼴, 도장 사용 경위를 종합한 결과 계약 날짜(2000년)보다 1~2년 뒤 작성됐다"면서 위조라고 했다. 그러나 검찰의 발표는 거꾸로 이면계약서가 사실임을 뜻한다. 2001년에 작성했으니 말이다. 사실 검찰의 발표는 내가 이면계약서 위조를 시인했다는 자백에 근거한다. 당시 난 허위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MB는 대통령에 당선된 상황이었다. 칼은 그가 쥐고 있었다. 또, 검찰은 미국에 있는 누나와 아내를 상대로 범죄인도 청구하겠다고 협박하던 상황이었다. 내 거짓 자백의 거래 조건은 더이상 누나와 아내를 괴롭히지 않는 것이었다. (김경준은 2008년 6월26일`허위사실유포 및 한글 이면계약서 위조' 사건에 대한 첫 공판에서 위조를 인정하며 "이명박 대통령께 끼친 피해에 대해 한없이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울먹인 바 있다.) ebk는 결국 허가를 받지 못했다. 2001년 4월8일 사업을 자진 철회했다. MB와 나와의 관계는 종말로 치닫고 있었다. 남은 건 '옵셔널벤처스'의 처리 문제였다. BBK 사건수첩 이면계약서 2007년 11월20일 김경준씨의 아내 이보라씨가 LA윌셔플라자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보유한 BBK주식 61만 주(100%)를 김경준씨에게 49억9999만5000원에 매도한다는 내용이다. 한글로 된 계약서는 '주식매매 계약서'로, 계약 일자는 2000년 2월21일로 돼 있다. 매도인은 '이명박', 매수인은 '㈜LKe뱅크 대표이사 김경준'으로 되어 있다. 이 전 대통령은 개인이고, 김경준씨는 LKe뱅크의 대표이사 자격으로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으로 LKe뱅크는 BBK의 지주회사가 되는 셈이다. 또 BBK의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이라는 증거가 된다. 정구현 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2017-06-30

"유영하가 30만 달러 줄테니 입국하라했다"

기획입국 제안은 박근혜측 유영하, 연방구치소로 면회 민사소송비 30만달러 약속 조작된 편지에 두려움 느껴 "거짓도 사실로 믿는 나라" 가짜로 드러나도 처벌 없어 면죄부준 검사들 조사해야 최근 김경준이 소셜네트워크 트위터를 통해 '기획입국설'과 '가짜편지' 등 BBK 사건과 관련된 내막들을 잇따라 폭로하고 있다. 그는 21일 "내게 기획입국을 실제 제안한 자는 박근혜의 유영하 변호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MB(이명박 전 대통령)가 BBK 소유권을 자백한 'BBK 동영상'을 무마시키기 위해 MB측이 조작한 것이 '가짜 편지'이고, 그러므로 대선이 조작되었다. 검찰은 조작을 확인하고도 아무도 처벌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당일 더불어민주당은 이 글에 대해 즉시 논평을 내고 "BBK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가 필요하다"며 수사를 촉구하고 나서 파장이 예상된다. 본지는 기획입국설과 가짜 편지와 관련해 그가 트위터에 글을 올리기 전 두 차례 인터뷰했다. 주제를 가짜 편지로 정한 건 김경준 본인이다.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가짜 편지 사건을 정리한다면. "대한민국 5000만 국민 전체가 우롱당한 사건이다. 편지 하나로 대선 결과가 조작돼 MB를 당선시킨 사건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화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감옥에 갇혀있던 나만 실체를 파헤쳤고, 다들 관심조차 없었다." -가짜 편지의 존재를 언제 알았나. "당시 구속된 상태에서 들었다. 홍준표가 기자회견을 한 다음날 변호사가 접견 와서 말해줬다." -어떤 생각이 들었나. "화가 났다기보다는 두려웠다. 한국에서는 조작만 잘하면 뭐든지 사실이 되는구나 싶었다. 가짜 편지 공개 후 날 찾아온 검사들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만면에 웃음을 지으면서 '니들 다 잡았다' 그런 표정이었다. 내가 죽는 건 괜찮은데 누나의 송환과 아내까지 거론하니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싶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순간이었다." -가짜 편지 작성자로 알려졌던 신경화와는 어떻게 알게 됐나. "내가 LA연방구치소에서 수감된 지 2년 뒤(2006년)에 들어왔다. 내가 그 사람과 친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신경화는 당시 미주 중앙일보를 구독하고 있었는데 구치소에 들어온 지 몇 개월 지나 신문에 난 내 기사를 들고 오더니 '이게 너냐'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에 9년을 살았다면서도 영어를 전혀 못했다. 내게 여러 가지를 묻고 도와달라고 해서 오히려 귀찮은 존재였다." -기획입국을 실제 제안한 사람이 2007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측 유영하 변호사라고 했다. "2007년 3~4월쯤 LA연방구치소로 심원섭 변호사와 함께 찾아왔다. 유영하가 한 말의 요지는 'BBK와 MB와 관련된 증거를 내게 넘기고 빨리 입국해서 MB에 대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대담 때 증언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유영하는 한 방송에서 김경준을 면회한 사실과 한국에 오라고 말한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김경준 본인이 억울하다고 하니 와서 밝히라고 했을 뿐이다. 자기가 억울해서 나와서 밝힌다고 그러면 밝히라고 하지 그럼 밝히지 말라고 하나?"라고 말했다.) -입국 조건을 제시했나. "3가지였다. 당시 MB 측과 다스가 날 상대로 미국에서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황이었다. 변호사 비용이 없어서 내가 한국에 가게 되면 꼼짝없이 소송에서 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유영하에게 변호사 수임료로 30만 달러를 도와주면 가겠다고 했다. 또 다른 조건은 박근혜 당선시 나의 사면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유영하가 한국에서의 내 형사사건을 무료로 수임해주는 것이었다." -왜 받아들이지 않았나. "유영하가 한국에 가더니 30만 달러를 주기 어렵다고 했다. 나중에 혹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그 돈이 없으면 난 한국에 갈 수 없었고, 그래서 없던 일이 됐다." -편지는 가짜로 드러났는데 처벌받은 사람은 없다. "검찰은 내가 고소한 6명 누구에게도 죄를 묻지 않았다. 오히려 고소인인 나만 수사했다. 검찰은 당시 내 접견기록물을 다 가지고 갔다. 누군가 내게 접근해 가짜 편지를 수사하도록 사주했다고 추측했다. 어떻게 수사를 의뢰한 사람만 조사하나. 가짜편지를 무마한 검사들을 수사해야 한다. 특히 날 수사한 김기동 검사와 그 라인인 박철우 등이 포함된 당시 특수 1부 조직을 집중 조사해야 한다." -검찰이 왜 아무도 기소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시끄러워질게 뻔했다. 신명에게 가짜편지를 쓰라고 지시한 양승덕을 기소했다고 치자. 양승덕이 윗선을 불기 시작하면 관련자들이 줄줄이 드러나게 된다. 조용히 덮고 싶었을 것이다." -가짜편지의 최종 배후가 누구라고 생각하나. "MB의 손위 동서인 신기옥과 MB의 집사 김백준이다. 신기옥은 가짜 편지 사건에 처음부터 개입했다. 그 증거는 양승덕이 편지를 건넨 MB 상임특보인 김병진의 법정 진술에도 나와있다." (김경준이 본지에 공개한 진술서에서 김병진은 "BBK 동영상이 공개돼 대선 여론이 이명박 후보에게 매우 안 좋았고, 신기옥이 다급하게 신명의 방송 인터뷰를 부탁해왔다"고 증언했다.) BBK 사건수첩 가짜편지 2007년 12월 17대 대선을 앞두고 김경준씨가 이명박(MB) 한나라당 대선 후보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여권과 교감해 국내에 입국했다는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된 자료다. 편지 폭로자는 당시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이다. 대선을 엿새 앞둔 12월13일 그는 "지난 3월부터 10월까지 기획입국이 진행됐다"며 "입증할 편지와 각서가 있다"고 주장했다. 편지 작성자는 김씨와 1년 가까이 LA 연방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함께 한 신경화씨다. 편지에는 '자네(김경준)가 큰집하고 어떤 약속을 했건 우리만 이용당하는 것이니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한나라당은 '큰집'을 청와대(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로 해석하며 김씨가 집권 여당에게서 모종의 대가를 약속받고 입국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MB는 'BBK 동영상'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BBK의 실소유주라고 집중 공격을 받던 때였다. 수세에 몰렸던 MB 측과 한나라당은 가짜편지를 공개하면서 반격에 나서 MB의 당선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3년 뒤인 2011년 편지는 날조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신경화씨의 동생 신명씨의 폭로에 의해서다. 그는 "편지는 MB 가족과 측근의 부탁으로 내가 날조해서 쓴 것"이라고 했다. 강도상해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인 형에게 도움을 주려고 편지를 꾸며 썼다는 것이다. 이에 김경준은 가짜 편지 작성자인 신명 형제와 편지를 폭로한 홍준표 위원장 등 6명을 명예훼손과 사문서 위조 등의 이유로 고소했고,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조사 결과 "신명씨가 양부처럼 따르던 양승덕 전 경희대 관광대학원 행정실장(현 행정부처장)의 지시를 받아 대필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양씨는 가짜편지를 MB 대선캠프 상임특보였던 김병진에게 줬고, 은진수 BBK법률지원팀장을 경유해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에게까지 전달됐다. 그러나 검찰은 "(가짜편지의) 배후는 없다"고 결론냈다. 양씨가 대선에서 공을 세워 교육단체 감사 등 직책을 얻을 생각으로 혼자 모든 것을 꾸며냈다는 것이다. 편지는 가짜로 드러났지만 검찰은 신씨 형제 등 김씨가 고소한 6명 전원에 대해 무혐의 처분하거나 각하했다. 정구현 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2017-06-22

하나은행 문건 "BBK는 MB의 회사"

BBK 지주사 LKe뱅크 설립 자본금 30억서 60억 증자 하나은행 투자 거부서 선회 5억 받고 5만주.4% 양도 MB 별장서 직원 단합대회도 "김 사장, 우리 자본금이 얼마지?" 2000년 2월 BBK의 지주회사인 LKe뱅크를 법인으로 등록한 직후 즈음이다. MB(이명박 전 대통령)는 뜬금없이 LKe의 자본금이 얼마인지 궁금해 했다. 당시 다스의 1차 송금액 50억 중 e캐피탈에서 빌린 30억을 갚고 남은 돈과 여기저기 투자금을 합해 30억쯤 됐다. 다스는 MB의 형 이상은이 회장으로 있는 자동차부품납품회사다. MB는 내게 다스가 자기 회사라고 했다. "자본금이 그것(30억)밖에 안돼?" MB는 LKe뱅크 자본금이 무조건 60억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내게 언론들은 왜 자본금을 60억으로 결정했는지 궁금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LKe뱅크는 금융회사가 아니라 금감원의 감시를 피할 목적으로 만든 소프트웨어회사기 때문에 많은 자본금이 필요 없었다. 자본금이 60억으로 2배 뛴 이유는 단순하다. MB가 당시 하나은행 김승유 행장에게 LKe에 투자를 권유하면서 자본금이 60억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미 뱉은 말을 되돌릴 수 없어 그 금액을 무조건 맞춰야 했다. MB는 추가로 필요하게 된 자본금 30억을 마련하기 위해 나에게 다스로부터 받은 자금 등이 섞여 있는 회사 운영금을 이용해 Lke 자본 총액을 60억으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자본금을 60억으로 늘린 뒤 하나은행으로부터 5억을 투자받았다. 하나은행의 투자는 사업 파트너로서의 참여였다. 이미 밝힌 대로 MB와 내가 합의한 사업 계획은 지주회사(LKe) 아래 투자자문회사(BBK), 증권회사(ebk증권), 보험회사, 은행의 4개 자회사를 둔 인터넷종합금융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직접 은행을 세우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에 파트너 은행이 필요했고, MB와 친분이 있는 김승유씨가 행장으로 있던 하나은행이 적격이었던 것이다. 하나은행의 투자는 MB의 전화 한 통화로 이뤄졌다. 투자 유치 한 달 전인 5월 나는 'MB의 집사' 김백준과 하나은행의 인터넷 관련 팀을 찾아가 '인터넷종합금융회사' 개요를 설명했다. 당연히 투자할 거라 예상했지만, 하나은행 측에서는 시간만 끌다가 '투자 거부 통지'를 보내왔다. 사업에 차질이 생겼다는 내 설명을 들은 MB는 화를 내면서 내 앞에서 바로 김승유 행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MB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김 행장에게 따졌다. 며칠 뒤 하나은행 측 투자 실무 부서가 인터넷 팀에서 행장 직속 비서실로 바뀌었고, 곧 계획대로 일이 진행됐다. 5억을 투자받고 주당 1만 원씩 5만 주를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지분으로는 4.0%다. MB가 BBK의 실소유주라는 증거는 당시 하나은행이 작성한 내부문건에도 명시되어 있다. LKe뱅크의 지분을 나와 MB가 반반씩 갖고 있고, BBK가 LKe뱅크의 자회사라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2007년 당시 한나라당은 "하나은행에 투자 설명을 한 사람은 바로 김경준이다. 하나은행은 김경준의 설명에 근거해 LKe뱅크를 이해했을 것이고, 하나은행의 문건 작성자가 이를 오인해 품의서를 작성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LKe뱅크를 설립한 뒤 MB에게 새 명함이 생겼다. MB의 첫 명함은 BBK 회장이었지만 LKe뱅크, e뱅크증권주식회사 등 2개 회사명이 추가됐고 직함은 '회장/대표이사'였다. 이 명함도 MB가 BBK의 실소유주임을 입증하는 증거로 자주 거론됐다. 하나은행 투자로 LKe뱅크 지주회사 아래 BBK와 은행 2개 부문 설립이 완료됐다. 이때 즈음 MB가 직원 단합대회를 하자고 했다. 경기도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세 버스로 직원 20여 명과 함께 별장으로 갔다. 도착 15분 전쯤인가 그가 버스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별장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돈이 많아 이 별장을 산 게 아니라 현대건설에서 일할 때 회사를 위해 헌신하느라 쉴 시간이 없는 날 위해 회사가 휴식 공간으로 마련해줬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난 '자기 별장을 가면서 굳이 직원들한테 이런 설명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하고 의아해했던 터라 그때 상황을 잘 기억하고 있다. 은행을 파트너로 뒀으니 이제 나머지 자회사들의 설립도 서둘러야 했다. 하나은행 투자유치와 거의 비슷한 시점에 e뱅크증권중개(ebk) 인허가를 금감원에 신청했다. ebk는 우리에게 고객계좌를 열 수 있는 기능을 마련해주는 중요한 자회사였다. BBK만으로는 투자 자문만 할 수 있고, 직접 고객의 자금을 받을 수 있는 계좌를 만들 수 없었다. 금감원으로부터 ebk의 예비 인가를 받으려면 BBK와의 연관성을 철저하게 지워야만 했다. 당시에 투자자문과 증권업을 병행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그래서 BBK의 주주 구조를 모호하게 했다. 신청 4개월만인 10월에 고대하던 ebk의 예비 허가를 승인받았다. 예비 허가만 받으면 정식 허가를 받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사업은 차질없이 착착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돌발변수가 앞길을 가로막았다. 예비 인가를 받고 사업 계획이 탄력을 얻자 MB는 공식석상에서 하지 말았어야 할 말들을 쏟아냈다. ebk가 끝내 정식 허가를 받지 못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때까지 불가능을 가능케 했던 MB의 입 때문이다.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BBK 사건수첩 ▶정봉주 전 의원 1960년 서울 출생이다. 17대 대선 당시 'BBK 저격수'로 통했다. 한국외대 재학시절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위) 회장을 맡아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1983년 시위 주동 혐의로 구속돼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대통합민주신당의 BBK진상조사단장을 맡아 MB의 BBK 관련 의혹을 앞장서 알리다 '허위 사실 유표'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10년간 피선거권도 박탈당했다. 2012년 12월25일 만기출소했다. 사진은 정 전 의원이 충남 홍성교도소에서 출소한 직후 두부를 먹고 있는 장면이다.SBS 라디오 '정봉주의 정치쇼'를 진행하는 등 정치평론가로 활동중이다. ▶하나은행 내부 문건 2007년 10월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봉주 의원이 하나은행으로부터 받은 'LKe뱅크 출자 및 agreement 체결의 건'을 말한다. LKe가 '700억 원 규모의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BBK 투자자문(주)를 100% 소유하고 있으며…'라고 적혀 있다. 또, LKe의 주요 주주가 '김경준 50%, 이명박 50%'로 명시되어 있다. 당시 정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문건을 공개하면서 "BBK 주식은 단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던 MB가 BBK의 실소유주임을 입증하는 공식 문서"라고 주장했다. 문서에는 담당 직원은 물론 준법감시팀과 협의를 마쳤다는 서명과 감사의 서명, 은행장 서명까지 적혀있다. 정리=정구현 기자

2017-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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