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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휴전 69주년, 노병 빨간 마후라의 회상

1950년 6월25일 북한의 전면기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국군의 필사 항전과 유엔군의 참전으로 한반도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를 지켜냈다.  
 
열악한 장비의 국군은 막대한 피해를 보았으나, 유엔군의 참전은 우리 민족에게는 실로 엄청난 행운이었다.  
 
오늘은 한국전쟁 휴전 69주년을 맞는 날이다. 1953년 7월27일 휴전을 앞두고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얻기 위해 적군의 야간침공으로 빼앗긴 땅을 주간에는 아군 공군의 엄호하에 지상군이 재탈환하는 등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이배선 전우(공사 1기)는 한국전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으며 휴전 당일에도 무스탕 전투기로 3회나 출격을 했다. 그는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월남 후 1949년 공사 1기로 공군에 입대했다. 1992년 미국으로 이민와  LA에서 생활하다 최근 다시 한국으로 역이주를 했다.  
 


 다음은 이배선 전우가 개인 출격일지를 정리한 ‘빨간 마후라의 회상’이라는 책자와 2기 미주전우회 모임에서 증언한 내용을 정리한 것.
 
‘휴전일 전까지 무스탕(P-51) 전투기로 89회 출격을 했고 휴전 당일에도 3회나 출격을 했다. 4개월 전 같은 편대기로 강원 고성 북쪽 지역에서임무 중 산화한 동료 전우(임택순)의 모습을 떠올리며.  
 
전사한 임택순 전우는 책임감과 희생정신이 강하며 평소 온순한 성격에 유머가 넘쳤다. 그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먼저 간 전우의 몫까지 적에게 갚아줄 것을 다짐했다. 휴전일 이른 아침 90번째 출격을 하며 고성 북부 351고지 지상군 엄호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와 주스 한 잔을 마셨다. 그런데 다시 연락이 왔다. 땀이 마를 겨를도 없이  91회 출격을 했다. 지난번 전우가 적의 대공사격으로 산화한 장소 부근이다. 점심 후 우리에게는 또 한 번의 출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기지에 있는 모든 탄약을 소비하라고 외치며 92회째 마지막 출격을 시작하였다. 전쟁 중 희생된 선후배 그리고 동료들의 영혼에 대한 보답을 위해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상 포대와 병력집결소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기지로 귀환하며 나의 마지막 출격은 이렇게 끝났다. 항공기 엔진을 끈 후 정비사가 비행기로 뛰어 올라오며 성공적인 임무완수와 무사 귀환을 축하해 주었다.  
 
출격과 귀환 시 이번 비행이 나에게 마지막 비행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항상 최선을 다짐하였다. 나는 그때마다 하나님의 가호와 은총을 기원했다. 돌아보면 매번 출격 시 나와 함께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다.’
 
대한민국은 지금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종전국가가 아닌 휴전국가로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국전쟁시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의 희생을 토대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루었다.
 
오늘날 급변하는 국제정세에서  한미 안보동맹을 확대 발전시키며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가치를 함께하며 조국의 항구적 평화와 번영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한다.
 
미국은 2009년부터 한국전쟁 휴전일인 7월27일을  ‘한국전 참전용사 휴전일’로 지정하고 조기를 게양하고 있다.
 
6·25전쟁 참전 전우, 선배님들께 머리 숙여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심인태 / 공군전우회 LA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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