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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웃어른’과 ‘윗어른’

“고향 웃어른들께 오랜만에 인사를 드렸다.” “친척 윗어른들을 모시고 다 함께 성묘를 다녀왔다.”   이처럼 나이나 지위, 신분, 항렬 등이 자기보다 높은 어른을 나타낼 때 ‘웃어른’ 또는 ‘윗어른’이라 부른다. 둘 중 어느 것이 바른 표현일까.   ‘웃어른’과 ‘윗어른’ 말고도 ‘웃-’을 써야 할지, ‘윗-’을 써야 할지 헷갈리는 단어가 꽤 있다. ‘웃마을/ 윗마을’ ‘웃사람/ 윗사람’ ‘웃도리/ 윗도리’ ‘웃돈/ 윗돈’ ‘웃목/ 윗목’ ‘웃니/ 윗니’ 등이 바로 이러한 예라 할 수 있다.   ‘웃-’과 ‘윗-’을 구분하는 것은 어려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간단하다. 위와 아래의 구분이 분명한 말에는 ‘윗-’을 붙여 쓰고, 위와 아래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은 말에는 ‘웃-’을 붙여 쓰면 된다. 따라서 ‘윗마을/ 아랫마을’ ‘윗사람/ 아랫사람’ ‘윗도리/ 아랫도리’ ‘윗목/ 아랫목’ ‘윗니/ 아랫니’는 위와 아래의 구분이 명확한 단어이므로 ‘윗-’을 사용하면 된다.   ‘웃돈’의 경우 ‘윗돈/ 아랫돈’과 같이 위와 아래로 구분할 수 없으므로 ‘윗돈’이 아닌 ‘웃돈’이라고 쓰는 것이 바르다. ‘웃거름’ ‘웃국’도 위와 아래의 대응이 없는 말이므로 ‘웃-’을 붙여 사용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아랫어른’이라는 표현이 없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윗어른’이 아닌 ‘웃어른’으로 쓰는 게 바른 표현이라는 걸 알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웃어른 고향 웃어른들 지위 신분

2024-10-09

“제2의 고향 달라스에서 근심 걱정 내려놓고 흥겨운 시간”

 달라스 한국노인회(회장 이형천, 이하 노인회) 회원들이 고국에 대한 향수를 추석잔치로 달래는 시간을 가졌다. 노인회는 지난 21일(토) 오전 11시 달라스 한인문화센터 아트홀에서 ‘추석잔치’를 겸한 9월 정기 월례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주달라스영사출장소 도광헌 소장과 달라스 한인회 김성한 회장이 특별히 함께 했고, 가수 하청일 씨와 전통 공연팀 아리랑 텍사스 그룹이 흥겨운 공연 한 마당을 펼쳤다. 특히 가수 하청일씨가 ‘과수원 길’을 부를 때 몇몇 회원들은 고국에 향수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날 점심식사는 KS & JS Chong LLC에서 제공했고, 한국홈케어 유성주 원장이 행사를 후원했다.   월례회가 시작하기에 앞서 노인회는 지금까지의 월례회 모습을 담은 사진을 파워포인트로 제작해 상영했다. 이형천 회장은 앞으로 매달 열리는 월례회 모습을 사진 및 영상으로 담아 파워포인트로 상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형천 회장은 노인회관은 1930년도에 건축됐고 노인회관 대강당은 1990년도에 건축된 터라 손을 봐야 할 곳이 너무 많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형천 회장에 따르면 회원들 중에는 노인회관을 재건축하자는 의견, 대강당만 우선 수리하자는 의견, 새로운 건물로 이전하자는 의견,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달라스 한인 문화센터로 입주하자는 의견이 많다고 밝혔다. 이형천 회장은 노인회관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의견이 모아질 때까지 달라스 한인문화센터에서 월례회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형천 회장은 “항간에 우리가 후원금을 받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다. 과거에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절대 후원금을 걷고 있지 않다”며 “이는 헛소문이며, 설령 후원금을 받는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투명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달라스영사출장소 도광헌 소장은 축사를 통해 “그리운 고향에 못 가셔서 아쉬움이 크시겠지만 오늘 하루 만큼은 제2의 고향인 달라스에서 근심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껏 즐기시기 바란다”며 “노인회에 정식으로 인사드리는 것은 오늘이 처음인 것 같다. 한국 전통 문양의 작은 손주머니를 선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달라스 한인회 김성한 회장은 “달라스 한인회가 파워포인트 제작 등, 노인회를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어 기쁘다”며 “한인회 사무실도 문화센터에 있고, 노인회와 서로 공조하며 좋은 모임이 되길 바라다. 앞으로 더욱 발전하는 노인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토니 채 기자〉  달라스 고향 달라스 한국노인회 달라스 한인문화센터 고향 달라스

2024-09-27

[문예 마당] 슬픔과 함께 고향의 추억 속으로

어릴 적 친정아버지가 꾸민 서재에는 보물단지 책상 하나가 있었다. 큰오빠가 이 책상에서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 의예과에 수석으로 입학했기 때문이다. 그 연유로 고등학생이던 나의 두 사촌 오빠가 교대로 우리 집의 그 책상에서 공부하다 가는 날들이 있었다. 이들은 어머니 오빠의 아들들이었다. 그런데 큰집의 막내아들인 오빠는 서울대에 들어갔고 작은집의 오빠는 후기 대학에 합격했다. 최근 큰집 오빠의 부음을 작은집 올케로부터 들으며 둘은 가장 친한 친구 사이기도 했다는 사실도 알았다. 올케는 남편이 장례식에서 서럽게 울더라는 이야기도 전했다.     고인이 된 오빠는 자기 형처럼 유명한 농대를 졸업했지만 다른 길을 갔다. 그는 잘 난체도 열등의식 같은 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목소리도 좋고 까무잡잡한 피부의 미남이었다.     큰 외갓집은 어머니 집안의 제사를 물려받은 양자로 들어오신 삼촌이다. 외조부가 돌아가신 1928년은 딸에게는 유산을 물려주지 않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어찌어찌 어머니는 그 삼촌과 공동명의로 논밭 조금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 불편한 관계가 있었지만 나는 큰 외사촌 언니와 오빠를 좋아했다. 시청 근처인 광산동에서 외삼촌은 삼천리 자전거 대리점을 오래 운영했다. 그리고 외삼촌 댁 이층에서 제사가 있는  날이면 초중고생 사촌들이 모였다. 차례로 교자상에 앉아 저녁을 먹으며 추억을 쌓았다. 당시 오빠는 대학 졸업 후 서울의 유명회사에 지원했지만 잘 안 된다는 소문도 있었다. 오빠는 결국 외삼촌처럼 자전거 대리점을 양동 상가에 차렸고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결혼했다. 올케는 우리 동네 이웃의 착한 딸이라며 어머니는 기뻐하셨다.     당시 올케도 나처럼 교사여서  퇴근길에 오빠네 가게에 들러 올케랑 이야기도 종종 나누며 정도 들었다. “아가씨, 오셨수?”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지. 고향에 가면 꼭 하루 자고 싶은 그 다정한 오빠와 올케네 집.     얼마 전 한국의 한 지인이 나에게 공진단을 보내준다기에 대신 그 오빠에게 선물해 달라고 했다. 오빠는 그때 간암 투병 중이어서 본인이 먹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주겠다며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오빠는 공진단을 보내준 지인에게도 감사 인사를 갔었다고 한다.     오빠의 병환 중에 가끔 안부를 전하곤 했는데 최근 내가 병원에 다니느라 잠시 소홀했더니 그사이에 별세한 것이다. 언제나 다정한 목소리로 “그래그래 잘 있냐, 애 아빠 잘 계시냐”고 말했던 오빠였다. 그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문자는 “예쁜 동생아, 좋은 글 많이 써라”였다.  보고 싶은 오빠, 우리가 모르는 고민 다 떨구시고 좋은 세상으로 가시구려. 최미자 / 수필가문예 마당 고향 추억 어머니 오빠 막내아들인 오빠 오빠네 가게

2024-08-29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향 / 내가 서 있는 자리

  내게 넌 돌아오는 길이었어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말하지만   소리 없이 다가오는 저녁이었어   너의 서 있는 자리, 그리고 노을이었어       깃털의 날림 같은 공기를 밟으며   무심한 듯 가볍게 날아오르고 있어   잎사귀에 구르는 이슬, 긴 가지마다   써 내려간 너의 노래, 그리고 몸짓이었어       서둘러 모아지는 잔가지들의 유희   아쉬움에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어     너의 향기는 새벽을 깨우는   이슬이었는데   봄볕같이 스며드는 따뜻한   엄마 손이었는데   안겨 오는 바람처럼   흥겨웠던 날이었는데       돌아오는 차창 안으로 별이 스미는 날   내 힘으로 걷기 힘든 날   돌아서는 너의 뒷모습에 오랫동안   너의 이름을 부르던 날       오늘이 내일이 될 거야   내일도 오늘이 되어 지나갈 거야   기억이 차오르도록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생생한 기억의 그늘에 앉아 있으면 돼       높은 갈대숲도,   불어오는 바람도,   굽이치는 강물도,   너의 깊은 숨소리도   먼 길 돌아 스친다 해도   내게 넌 돌아오는 길이었어       이창봉 교수(Chicago 시 창작 캠프)의 12번째 강의가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다. 어제 시작한 듯 느껴지는 문학 캠프가 이제 막바지로 가까이 가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지나간 시간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간다. 갈증에 단비처럼 다가왔던 시 창작캠프 20명의 열린 마음들이 마음을 열고 강의에 임했기에 곳곳에서 시심이 터지고 꽃이 피어나고 향기가 주변에 진동하였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감추었던 마음의 표출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누구를 위함도 무엇을 위해서도 아니다. 새로운 아침이 깨어나고 한낮에 내리쬐는 햇살 아래 따사로움이 마음 문을 활짝 열게 하였다. 구름의 하얗고 푸르른 소망의 창들이 바깥 풍경을 실내로 끌어들이고 서쪽 하늘 붉은 노을이 질 때까지 우리는 움직이지 않고 하나가 되었다. 노을을 바라보는 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단단히 잠가 놓은 눈물샘이 터지듯 감성이 터져 나왔다. 신기하고도 새로운 시간들이 어느 사이 우리 앞에 서 있었다. 껍데기를 결코 바꾸지 못하는 카이로스의 시간. 감겨 있던 눈이 떠지고 닫혀 있던 귀가 열리고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동토의 땅이 녹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거둘 수 없던 마음 밭에 나도 모르는 사이 씨가 뿌려졌고 햇살과 비와 새벽이슬로 싹이 솟고 줄기와 잎사귀를 보이더니 단단한 꽃망울 피워 내기 시작했다. 머지 않은 시간에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저마다의 꽃들이 피어나게 될 것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이제 새것이 되었다.” 성경 말씀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바람이 되기도 하였다. 우리는 시 창자 캠프 동안 웃고 떠들고 서로의 벽돌을 허물어 가면서 시인의 마음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었다.     시 창작 캠프의 일환으로 1박2일의 문학 기행이 미시간 호수가 펼쳐지는 호변 에어비앤비에서 시작되었다. 간밤에 쏟아졌던 바는 마치 하늘 문이 열리고 퍼부었던 폭우였다. 어두운 호수가 밤새 일렁이고 번뜩이는 섬광 속에도 불구하고 새벽은 오고야 말았다. 모두가 일출을 기대했지만 구름에 가려진 해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일찍 깨어나 해변을 걸었고 간혹 구름을 헤집고 살짝 비친 붉은 하늘에 탄성을 지르며 어린아이처럼 발을 굴렀다. 새벽을 단장 하고 기다리고 있던 호수는 선물처럼 시원한 파도 소리를 들려 주었다. 새벽을 맞는 창문을 말끔히 닦고 찬물에 얼굴을 씻고 유인 반짝이는 눈망울로 새날을 기다릴 일이다. 목마른 사람에게 생명수를 마시게 하고 슬픔에 가슴을 조였던 사람에게는 눈물을 닦아 줄 것이다. 이 땅에서의 수고와 애씀이 사라지지 않도록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할 일이다. 소란 하지 않은 곳으로부터 호수 가득 내려앉은 고요를 꼭 닮은 당신을 맞이할 것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향 미시간 호수 창작캠프 20명 창작 캠프

2024-08-12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향

고향은 어머니의 부드러운 가슴 같아서, 스며드는 솜사탕 같아서, 언젠가 마주했던 싱그런 파란 바람 한 점 같아서, 이마에 송송 맺힌 땀방울 닦아 주는 엄마 눈물 같아서, 누군가에게 달려가 전해 주고픈 반가운 편지 같아서, 깨어 보니 멀리서부터 온 굽은 인생길 같아서, 길 따라 소담히 핀 들꽃 같아서, 무심히 걸었던 가로수길 느티나무 그늘 같아서, 붉게 피었다 이내 자취를 감춰버리는 서글픈 서쪽 노을 같아서, 하늘 멀리 달아나는 연 꼬리 따라 마냥 뛰었던 숨 가쁜 오솔길 같아서, 싸리비로 쓱쓱 쓸어낸 말끔한 안마당 같아서, 숲길 오르다 잠자리 날갯짓에 걸음을 멈춘 까까머리 친구 뒷모습 같아서, 뿌리치지 못한 애정한 손잡음 같아서, 사라지지 않는 메아리 같아서, 그렇게 또 그래서       그렇게 마음을 저미고, 그래서 또 다지고, 어느 사이 가슴을 열게 하는, 바람 불어오는 들녘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하는, 엄마 누운 한 평 남짓 로즈힐 세미토리, 먹먹한 그리움으로 유년의 기억들이 펼쳐지는, 소식 끊긴 친구 얼굴 흐르는 구름에 밀려가는, 노랑 보라 잔잔한 들꽃들이 반갑게 손짓하는, 노랑나비, 흰나비 한 쌍 날개 겹치며 뒤뚱뒤뚱 언덕 넘어 사라지는, 그 숲길에서 나를 잃고 너를 잃어버리게 되는, 노을 그 깊은 회한의 물감이 별빛에 풀어지는, 싸리문 열면 정갈한 장독대 그 옆 기슭에 앉아 편지를 읽는, 그림 하같은 풍경을 집안에 가득 들여놓고 잠들지 못하는, 그렇게 또 그래서       물병에 들꽃   한나절 햇살은 지고   싸리문 열고 들어온 노을과   가지런한 고무신 한 켤레       나에게 흐르시오   내 그대에게   나의 고요를 모두 내어 드리이다   가슴을 풀으려니   그 자리에   한 송이 꽃으로 오시오       나에게 오시오   내 그대에게   나의 아픔을 이야기 하리다   두 팔을 뻗으리니   그대 떨리는 별자리로   파랗게 손짓해 주시오      나에게 별이 뜨고   소리 없이 밤이 오고 있소   내 그대를 향해   숲이 되어 흐르리니   내 눈 가득   그대 어디라도 오시오   그렇게 또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계단의 끝은 하늘을 향해 뻗어있고, 작은 실개천이 강물로 이르고, 강이 바다 향해 흘러가듯 계단 끝에는 이상의 존재 고향이라는 아득함이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는 날마다 고향을 향해 한 계단만큼 가까이 가고, 호수에 풀어놓은 달빛은 헤어진 기억을 어루만져 올이 풀린 고향의 등을 도닥거리고, 훤히 드러난 시간을 견고한 위로의 손으로 도닥여 준다 고향이라는 위로는 풍랑 이는 바다 한가운데 높은 파도에 깊은 심지의 뿌리를 내리고 다시 살아나고, 거울 속의 나는 나를 닮지 않았다 봄이 겨울을 닮지 않았듯이 생소한 너의 얼굴에 하얀 포말의 바다가 보이고, 가보지 못한 외로운 섬이 보이고, 싸리문의 작은 집이 그리움으로 보인다 저만치에서 고향이 손짓하고, 나를 부르고, 겨울나무 바라보다 보이지 않는 나무의 뿌리를 그려보고, 그렇게 또 그래서       눈이 떠지고   귀가 뜨이는 거야   터지고 트여   보지 못한 것이 보이고   듣지 못한 것이 들리는 거야   그렇게 또 그래서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향 들꽃 한나절 친구 얼굴 노랑나비 흰나비

2024-07-29

‘고향’의 그리움 음악으로 푼다

남가주 서울대 동문합창단(단장 박진국·의대 65)이 오는 8월 24일 오후 4시 LA 다운타운 소재 콜번음대 지퍼홀(200 S. Grand Ave.)에서 한여름 밤의 향연을 펼친다.   ‘고향’을 주제로 준비하고 있는 올해 공연에서는 장진영(음대 88) 동문의 지휘 아래 합창곡, 독창과 중창 등 주옥같은 노래 11곡을 들려준다. 또 가야금 산조 연주와 재즈 앙상블까지 풍성하게 꾸며진다.   박진국 단장은 “이번 정기 공연을 위해 단원들이 지난 10개월여 동안 거의 매주 한 차례씩 거르지 않고 모여 강도 높은 연습을 해왔다”며 “관객들을 결코 실망시키지않겠다”고 자신했다.   이어 “우리 모두 고향을 그리워하는 ‘디아스포라’들”이라며 “많은 분이 오셔서 음악을 즐기시는 한편 동문끼리 교류하는 모처럼의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 2부로 나눠 진행되는 공연에서 들려줄 곡들은 유럽 대학들의 교가라는 애칭이 붙어있는 ‘대학축전서곡(GaudeamusIgitur)’부터 슈베르트의 ‘음악에게(An Die Musik)’, 장 폴 마티니의 ‘사랑의 기쁨(Plaisir D’amour)’, 파올라 토스티의 ‘세레나데(La Serenata)’ 등 한인들에게 친숙한 노래들이다.   또 소프라노 김수정 외에 박영, 조은아, 김주연, 김주혜, 테너 이규영, 베이스 장진영이 특별 출연한다.   이 밖에 김동석(음대 64) 동문의 가야금 산조 독주와 재즈 음악 앙상블도 만날 수 있다. 티켓은 20달러(도네이션).   서울대 합창단은 지난 2018년 미주에서는 유일하게 한국 국립합창단의 초청을 받아 한민족합창축제에 참여, 호평을 받은 바 있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무엇보다 음대 성악과 출신들은 물론 간호대·공대·문리대·사대·생과대·의대 등 각 단과대 동문이 고루 참여하고 있어 단원들 간의 유대관계도 매우 돈독하다는 평이다.     한편 합창단은 동문의 기부 또는 프로그램에 게재할 광고를 접수하고 있다.     ▶문의: (213) 380-3366게시판 고향 사진설명남가주 서울대 재즈 음악 서울대 합창단

2024-07-10

"거칠지만 순정의 영화…아직도 볼 때마다 싱싱"

1974년은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이 그어진 해다. 신인 감독이 만든 영화 한 편이 충무로를 뒤흔들었다. 이장호 감독의 데뷔작 ‘별들의 고향’은 당시 서울에서만 무려 46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흥행 신기록이었다. 별들의 고향은 ‘이장호’란 이름을 한국 영화 역사에 각인시킨 작품이다. 충무로의 거장 이 감독이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별들의 고향’ 상영회 참석차 LA를 방문한 그를 지난달 30일 만났다.   50년이 지나서 보는 '별들의 고향'은.   “시간이 날 때 종종 본다. 예전 영화인데, 옛날 영화 같지 않다. 볼 때마다 아직도 싱싱한 느낌이다.”   싱싱하다는 것은.   “원래 뭘 알게 되면 겁이 생기지 않나. 20대 때 만든 작품이었다. 그때는 뭘 모를 때니까 싱싱한 게 막 기어 나왔다.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이 그런 것 아니겠나. 아마 그때 관객들도 그런 감정을 느꼈을 거라 본다.”   어떻게 제작하게 됐나.   “한마디로 ‘운’이라고 말하고 싶다. 친구인 최인호 씨의 소설을 영화화할 기회를 얻게 됐다. 어릴 때라 욕심도 많았다. 그때 신상옥 감독 밑에서 조감독만 8년을 했다. 신 감독에게 작품에 관해 얘기하니까 감독으로 데뷔는 시켜주겠지만, 촬영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자고 하더라. 그렇게 하면 진짜 감독이 될 수 있겠나 싶었다. 그래서 거길 뛰쳐나왔다. 욕심은 있고, 서툰 상태에서 만든 영화다.”   왜 흥행할 수 있었나.   “내가 1945년생이다. 첫 한글 전용 세대인데, 처음으로 미국식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세대다. 1970년대는 우리 세대만의 독특한 문화가 생겨날 때였다. 송창식, 이장희 등 노래도 달라지고, 한글 중심의 한국식 발라드도 나올 때였다. 그런 시대적 맥락에서 ‘별들의 고향’이 나왔다. 그 당시 세대의 감각에 맞았던 것 같다.”   만약 지금 다시 ‘별들의 고향’을 만든다면.   “싱싱하지만 분명 거친 게 있다. 세련되지 못한 부분도 있다. 지금 다시 만든다면… 더 감각적으로, 좀 더 느린 템포로 만들 것 같다.”   오늘날 충무로는 어떤가.   “때가 잔뜩 묻었다. 상업적으로 관객의 비위를 잘 맞춘다. 돈맛을 아는 감독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그 점이 참 아쉽다. 젊은이가 젊은이답게 싱싱한 면이 있어야 하는데 매끄럽고 처세에 밝다. 한국영화가 첫 순정을 잃었구나 싶다.”   요즘은 어떤 작품을 준비 중인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건국의 역사, 구국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작품이다. 그동안 좌파로 살아왔다. 그런데 거기서 벗어나서 폄하했던 것, 왜곡됐던 것을 담아보려 한다. 작품을 위해 공부를 해보니 ‘한국의 역사는 기적이었구나’를 깨닫게 된다.”   반발은 없었나.   “‘드디어 돌았구나’라는 말도 들었다. 아는 후배가 교회를 세웠다.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면서 사회를 바라보니 속 좁게 보았던 부분을 다시 보게 되더라. 불행, 시련, 내리막길… 이런 게 모두 나중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원래는 자유민주주의를 세울 수 없는 국가였는데… 애국가에도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가사가 있지 않나.”   신앙을 가진 후 무엇이 변했나.   “과거에는 죽는 게 두려웠다. 지금은 두렵지 않다. 무섭지가 않다. 인생의 마무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나. 제정신을 찾는 것이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영화도 정신 못 차리고 만들었다. 이제는 정신을 좀 차렸다. 신앙을 통해 정리된 삶을 살고 있다.”   ‘별들의 고향’ 상영회는 어땠나.   “LA CGV와 샌프란시스코 한인회관에서 상영회를 열었다. 양쪽 모두 관객이 너무 많아서 다 못 들어갈 정도였다. 아직도 이 영화를 좋아해 주니까 너무 감사하다.”   ☞이장호 감독은   1974년 영화 ‘별들의 고향’으로 데뷔하며 그해 대종상신인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후 ‘바람불어 좋은 날’, ‘어둠의 자식들’, ‘바보 선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외인 구단’, ‘어우동’, ‘무릎과 무릎 사이’ 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 국내외 각종 영화상을 휩쓸며 당대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 섰다. 장열 기자·[email protected]한국 영화사 이장호 감독 별들의 고향 1974년 충무로 LA 미주중앙일보 로스앤젤레스 장열

2024-06-06

[라이즈 고향 학교] 소규모 장점 살려 개인별 지원 강화 명문대 진학

  한인 타운에 위치한 라이즈 고향 학교는 2012년 중학교(Rise Kohyang Middle School)를 시작으로 2016년 고등학교(Rise Kohyang High School), 2019년 초등학교(Rise Kohyang Elementary School)를 오픈, 타운 내에서 유일하게 TK~12학년까지 이어지는 공립 차터 스쿨이다.   소규모 학교의 장점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학교가 라이즈 고향 학교다. 학생 개인별 지원 관리 시스템 구축으로 학생과 교사와의 강력한 유대 관계 형성이 명문대 진학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그동안 배출한 많은 인재 가운데 중.고등학교를 거친 첫 번째 졸업생인 김영균 학생은 전액 장학금을 받고 USC에 진학해 생명공학 학위를 취득했고 USC 한인 과학자 및 엔지니어 협회에서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초등학교(TK~5학년)는 맞벌이 부모를 위한 아침 케어부터 방과 후 심화 프로그램, 댄스, ESL 프로그램, 다양한 현장 학습 등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교사, 교직원의 따뜻한 보살핌이 학생들의 흥미 유발로 이어져 행복한 학교생활을 경험하고 있다.     중학교(6~8학년)는 도전과 영감을 주는 엄격한 학업과 우수반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교내 과외 활동으로 로봇 공학부터 토론, 체스, 환경 보호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관심사를 탐구하도록 장려한다. 학년별 상담교사를 배치해 학교생활 적응과 어려운 점을 해소하고 있다. 학생들의 시야와 배움의 폭을 넓히기 위해 국립공원과 명소, 대학 캠퍼스, 박물관 등을 방문하는 ‘인생 체험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고등학교(9~12학년)는 체계화된 대학 상담 지원 시스템을 바탕으로 다양한 AP 과목 개설과 대학 수업의 이중 등록 등 명문대 진학에 필요한 다양한 진학지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결과로 대학 준비를 극대화한 공로로 AP 학교 금상과 은상을 수상하는 등 LA 상위 10대 차터 공립고교로 부상했다. 또한 캘리포니아 학교 대항 연맹(CIF)에 소속되어 있으며 농구, e-스포츠, 골프, 축구, 소프트볼 등 다양한 스포츠 참여 기회를 제공한다. 대학 등록 프로그램을 통해 올해 많은 재학생이 UCLA, 버클리 등에 진학하는 성과를 얻었다.   브라이트 스타 학교(라이즈 고향 학교를 포함 총 9개 학교) 졸업생들에게 최대 6년간 제공되는 무료 고등 교육 지원은 라이즈 고향 학교만의 자랑이다. TK 유치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 후 6년까지 거의 20년 동안 학생들의 멋진 미래와 내일을 위해 함께 하고 있다.   라이즈 고향 중학교의 첫해 입학생 학부모인 다니엘 리 씨는 “모든 교직원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모든 학생들이 서로 격려하고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 드림 대학 진학에 필요한 동기를 부여하고 무엇보다 아이가 발전하도록 지도해 준 라이즈 고향 학교를 선택한 것은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다. 우리 아이에게 삶의 동기와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와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추억이 있는 집 같은 곳이었다”라고 말했다.   라이즈 고향 고등학교는 올해 새롭게 버몬과 1가에 있는 최첨단 캠퍼스로 이전해 8월 13일부터 이곳에서의 멋진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라이즈 고향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LA의 600 S. Lafayette Park Place에 위치하고 있다.   모든 학생에게 무료로 개방된 공립 라이즈 고향 학교는 지금 2024~25학년도 신입생 등록을 받고 있다.     ▶웹사이트 www.brightstarschools.org   ▶한국어 문의: (323)954-9957(Ext. 1020)라이즈 고향 학교 소규모 개인별 명문대 진학 소규모 학교 라이즈 고향

2024-05-21

이장호 감독 ‘별들의 고향’ 재상영

재미한국영화인협회(회장 정광석)가 오는 24일 오후 5시 CGV LA지점에서 1974년 흥행 영화인 ‘별들의 고향’ 50주년 기념 특별상영회를 개최한다.     이번 상영회에는 당시 영화를 연출한 이장호 감독이 직접 참석해 관객과 대면하는 시간을 갖는다.     또 25일에는 재미한국영화인협회 디너쇼가 개최돼 재미 영화계, 예술계 인사 등 참석자들의 교류의 장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최인호 작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별들의 고향’은 이장호 감독의 데뷔작으로, 당시 유명 배우인 안인숙, 신성일, 백일섭 등이 출연했다. 1974년 한국 영화 관객이 주로 2~3000명 안팎이던 가운데 ‘별들의 고향’은 당시 46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정광석 회장은 “이번 상영회는 영화를 탄생시킨 이장호 감독이 한국에서 직접 참석하는 만큼 의미 있는 행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영회 이후 진행되는 디너쇼는 25일 오후 5시 옥스포드 팔레스 호텔에서 진행된다. 이날 이장호 감독의 색소폰 특별 연주가 있으며 이외에도 가수 김정홍씨, 민요 가수 김현숙씨 등의 공연과 단막극 ‘아가씨와 건달들’도 무대에 올려진다. 무료로 진행되는 상영회와 달리 디너쇼는 식사를 포함해 60달러의 입장료가 있다.     ▶문의: (213)663-3050, (714)743-5740 김경준 기자게시판 특별상영회 고향 기념 특별상영회 재미한국영화인협회 디너쇼 재미한국영화인협회 정광석

2024-05-19

라이즈 고향 고등학교 신축 이전, 8월 개교

라이즈 고향 고등학교가 LA한인타운에서 새롭게 문을 연다.     TK~12학년 교육을 제공하는 한인타운의 유일한 공립 차터 스쿨인 라이즈 고향 학교는 2024~25학년도 새 학기부터 새롭게 지은 건물에 고등학교를 오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버몬트 애비뉴와 1가에 위치할 라이즈 고향 고등학교(3500 W. 1st Street LA)는 오는 8월부터 공식적으로 개교할 계획이다.     그에 앞서 오는 5월에는 신규 등록 가족을 위한 투어를 진행한다고 학교 측은 밝혔다.   새롭게 오픈하는 고등학교에는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부대시설로 농구·배구 코트와 모든 트레이닝 운동기구가 완비된 웨이트룸이 갖춰져 있다.     총 23개의 최신식 교실로 구성되어있고 모든 교실은 자연 채광과 전망을 갖추고 있다.     학부모 및 커뮤니티센터도 준비되어 있으며 야외 수업이 가능한 공간을 갖추고 있어 실내외에서 학업과 창의적인 활동, 그리고 다양한 스포츠 분야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학교 측은 설명했다.     라이즈 고향 학교는 지난 2012년 중학교 오픈을 시작으로 2016년에 고등학교, 2019년에 초등학교가 차례로 오픈했다.     라이즈 고향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라파예트 공원 인근(600 S. La Fayette Park Place, LA)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라이즈 고향 공립 차터 스쿨은 2024~25학년도 TK~12학년까지 등록을 받고 있다. 자세한 등록 문의는 전화(323-954-9957, 한인 담당자 ext 1020)로 할 수 있다.     한편, 학교 측은 오는 4월 3일(수) 오전 8시 30분~10시 30분까지 커뮤니티 리더 대상 학교 설명회인 ‘커뮤니티 브렉퍼스트(Community Breakfast)’를 진행한다. 행사에서는 아침 식사가 제공되며 사전 예약(rkcommunitybreakfast.rsvpify.com/?securityToken=PhlUVdh7fHWK0yRxXj481q2Om0MmlFFD)이 필요하다.   장수아 기자 [email protected]고등학교 라이즈 라이즈 고향 고등학교 2019년 현재 라이즈

2024-03-28

[우리말 바루기] 나의 살던 고향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원수가 지은 시에 홍난파가 곡을 붙인 ‘고향의 봄’이다. 국민 동요라 할 만큼 많이 불리는 노래다.   그러나 노래 가운데 ‘나의 살던 고향’은 ‘의’를 잘못 사용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내가 살던 고향’이 정상적인 우리말 어법이다.   우리말에선 원래 조사 ‘~의’가 흔하게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을 가리키는 ‘나, 너, 저’를 예로 들면 조사 ‘ㅣ’가 붙어 ‘내, 네, 제’로만 사용됐다. ‘내 마음’ ‘네 물건’ ‘제 자랑’ 등 현재도 그대로 쓰고 있는 형태다.   ‘~의’가 붙은 ‘나의, 너의, 저의’ 형태는 조선 후기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해 개화기에는 흔히 쓰이게 됐다고 한다. 이는 일본어에서 여러 가지 문장성분으로 두루 쓰이는 조사 ‘노(の)’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선 ‘~의’를 남용하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AI의 변화하는 과정을 따라가기 쉽지 않다”는 “AI가 변화하는 과정을~”로 해야 한다. “스스로의 약속을 저버렸다”는 “스스로 한 약속을~”로 고쳐야 한다.   “소득의 향상과 식생활의 서구화로 쌀의 소비량이 부쩍 줄었다”는 ‘명사+의(の)+명사’로 이뤄진 일본어식 표현으로 ‘의’가 전혀 필요 없다. “소득 향상과 식생활 서구화로 쌀 소비량이 부쩍 줄었다”가 훨씬 간결하고 깔끔하다.우리말 바루기 고향 식생활 서구화 소득 향상 복숭아꽃 살구꽃

2024-03-26

[문예마당] 내 고향은 어디인가

한국 체류 중이던 지난해 10월 미국에 사는 5명의 친지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중 3명은 여행사 단체여행 상품으로 왔다가 개인 시간을 보낸 후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모두 가깝게 지내는 분들인데 하필 그때 발가락을 다쳐 뉴욕에서 온 친구 한 명만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미국서 함께 살다 한국에서 만나면 더 반갑고 새로운 느낌이었을 텐데 전화 통화만 한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하기도 했다.         LA로 돌아온 후 그중 한 명을 만났더니 “한국은 타향이니 이제 고향인 LA에서 만나야죠”라고 말한다. 그 말에서 ‘옛 친지가 그리워 한국을 찾았지만 반기는 사람 하나 없고 낯선 도시만 헤매다 왔다’는 아쉬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대학 졸업 직후 유학을 왔거나 유학생 배우자를 따라왔으니 반세기 훌쩍 넘게 고국을 떠나 살았다. 한국에서 산 날보다 미국에서 지낸 세월이 훨씬 더 길다. 이젠 미국이 제2의 조국이라 생각하고 살지만 아련한 향수에 잊지 않고 고국을 찾는 분들이다.     남편은 얼마 전부터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비교적 자주 한국을 찾는다. 그런데도 친지들의 즉각적인 반응이 없으면 섭섭한 마음이 든다. 나만 기다리고 있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다들 나름의 사정이 있는데 불쑥 나타나서 내 자리를 찾으려는 것은 무리다. 앞으로는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친지에게만 귀국 소식을 알려야겠다.   요즘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 이주를 고려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이민 와 고생하다가 애들도 다 커서 독립했고, 형제자매가 있는 한국서 살고 싶다”, “늘 마음속으론 고국을 그리워하며 살았죠”, “한국적인 문화가 더 친숙한 것 같아요” 등 이유도 다양하다. 한마디로 고향이 그립기 때문일 게다.  대체 고향이 뭐길래!   오랜 세월 미국에 살다 보면 알게 모르게 소위 ‘미국물’이 든다. 오랜만에 돌아가면 한국은 말이 잘 통하는 또 다른 외국일 수 있다. 달라진 한국 문화나 생활 방식에 적응하지 못해 후회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또 미국생활을 청산해서 한국에 들어와 살기 힘들 정도로 한국의 주택가격과 물가가 올랐다. 어쨌든 목표가 뚜렷해야 후회하지 않는다.   지인 중에는 “미국과 한국, 어디가 더 살기 좋아요?” 라고 묻는 분들이 있다. 이 물음에 나는 “한국에 가면 한국이 좋고, 미국에 오면 미국이 좋다”고 답한다. 공연한 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남편은 한국에 살고, 애들은 미국에 살기 때문에 내 마음에는 미국과 한국이 늘 함께 자리 잡고 있다. ‘타향도 정들면 고향’이라는데 그러면 내 고향은 어디인가?       타국 땅에 수십 년을 살아도 한국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마음속에 ‘내 나라가 어디인가’ 라는 질문에 확실한 답을 내기가 어려울 정도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지금 한국에 가도 모두 낯선 풍경으로 바뀌어 기억 속의 옛 모습은 다 사라졌다. 마음에 품고 있는 나라보다는 세월이 갈수록 내 몸이 머무는 땅이 우리나라가 된다.       한국은 ‘우리나라’라는 의미보다는 고향이라는 의미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내가 살아갈 땅이 미국이라면, 한국은 나의 고향이다. 고향인 한국이 잘되고, 살고 있는 나라도 잘되는 것, 그것이 이민자가 품고 있는 이중적 바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LA에 ‘hi-5’ 라는 5명의 친구 모임이 있다.  전부터 인연이 있거나 새로 알게 된 친구들로 나를 제외한 모두가 아직도 LA 한인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지만 한번 만나면 몇 시간이고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좋은 친구들이다.     미국에 ‘hi-5’가 있다면 한국에는 역시 5명의 친구 모임인 ‘오색회’가 있다. 학연으로 어려서부터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더니 내가 외국에 나가 사는 동안 그 친구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듯해 마음이 아팠다. 그러던 중 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빨리 연락 못 해서 미안해. 내가 많이 아팠고 서로 시간을 맞추느라고 이제야 만나자고 연락한다.”     서운했던 마음이 스르르 봄눈 녹듯 사라졌다.  5명이 모두 모였다. 한 명은 침대에서 떨어졌다며 가슴 둘레에 거북이 등 같은 보장구를 하고 나왔고, 또 한 명은 무릎이 아파 지팡이를 짚고 나왔다. 귀가 잘 안 들려 큰 소리로 말해야만 소통이 되는 친구도 있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왈칵 눈물이 차오르는 걸 참으며 보장구를 착용한 친구에게 “야, 너 검투사 같다”며 웃어버렸다. 불편함을 무릅쓰고 나를 만나려고 나와 준 친구들이 너무 고마워 귀갓길 전철 속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꾹꾹 눌러 담았다.     서양 속담에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된 것이 좋다’는 말이 있다. 고려 말 길재는 500년 도읍지 개경을 둘러보고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라고 탄식했다. 오늘날 한국은 아파트와 빌딩 숲으로 변해 옛 모습은 사라졌으나 옛 친구들은 여전하다. ‘산천은 간데없고 인걸은 의구하네’라는 생각을 한다. 오랜 친구들이 나를 변함없이 반겨 주는 곳, 그곳이 내게는 고향이다.   배광자 / 수필가수필 고향 고향인 한국 친지가 한국 한국 문화

2024-02-08

한인사회는 내 고향…안전·정의 위해 헌신

“이민온 부모님이 한인타운에서 겪은 사건 탓에 법조인이 됐습니다.”     LA 법원을 더 반듯하게 만들고 싶다는 제이콥 이(36·사진) 카운티 법원(39호) 판사 후보가 설명한 자신의 출마 배경이다. 10년차 선임 검사로 활약해온 이 후보는 한인사회를 ‘고향’이라고 표현하며 안전과 정의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전했다. 이 후보의 포부와 희망을 들어봤다.       - '강도 피해 경험’이 출마 이유라고 들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넉넉치 않은 이민 생활을 꾸려가셨는데 몇 차례 강도 피해를 받으셨다. 물론 나이가 어려서 내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이후 범인도 무섭고 경찰도 무서워 제대로 신고도 못하고 금전적 정신적 고통을 받으셨다. 당시 그런 분들이 한두분이었겠나. 그래서 검사가 됐다. 이제는 법원을 이끄는 판사로서 시민들을 보호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     - 교육과 검찰에서의 경험은     “UC버클리에서 수사학(Rhetoric) 전공 후 로욜라법대를 졸업했다. 첫 2년 동안 프레즈노 카운티 검찰에서, 이후 8년 동안 LA 카운티 검찰에서 일했다. 최연소로 ‘캘린더 검사(선임 검사)’ 역할을 맡아 다양한 형사 사건들을 다룬 경험을 갖고 있다.”   - 본인 고유의 경쟁력은   “다른 변호사 경력의 경쟁 후보들과 달리 형사 기소 검사로 일했다. 대부분 민생을 침해하는 범죄에 대해 강력한 단죄 의지를 가진 법정을 원할 것이다. 개스콘 검사장 등 법원의 제로 베일 정책에 맞서 소신있는 판단을 내리는 판사가 되겠다. 한인타운과 한인사회에서 자란 아들같은 저에게 기회를 주시면 좋겠다.”     - 검사장의 정책은 무엇이 문제인가.     “개스콘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구속 수감을 줄이고 특정 인종의 혐의를 확대 수사하지 말자는 취지였고 흑인계와 라틴계가 호응했기 때문이다. 물론 포화상태인 교도소와 재범을 줄이는 방법 하나로 제시할 수는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게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잡범들을 양산하는 부작용이 생겨났다. 시민들은 이런 정책의 조속한 폐기를 원하고 있다.”   - 현재 선거 판세는     “6년 임기로 현재 3명의 경쟁 후보가 있다. 이중에 2명은 관선변호사이며 1명은 로펌 변호사다. 3월 예선에서 50% 이상을 득표하면 본선 없이 당선된다. 그렇지 못한 경우엔 1, 2위 득표자가 11월 본선에서 붙게된다. 원래 판사 선거가 크게 화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한인 유권자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라는 부분이다.”       - 사실상 2세인데 한국어 능숙하다.     “부모님이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대학 수업, 한국어 예배 등이 도움이 됐고 아내가 한국에서 오래 생활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본다. 감사할 따름이다.”     이 후보는 현재 현직 판사 50여 명, 라티노검사연합회, 스티브 쿨리, 재키 레이시 전 검사장의 지지를 받고 있다.   최인성 기자 [email protected]한인사회 고향 개스콘 검사장 판사 후보 카운티 법원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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