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마당] 내 고향은 어디인가
한국 체류 중이던 지난해 10월 미국에 사는 5명의 친지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중 3명은 여행사 단체여행 상품으로 왔다가 개인 시간을 보낸 후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모두 가깝게 지내는 분들인데 하필 그때 발가락을 다쳐 뉴욕에서 온 친구 한 명만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미국서 함께 살다 한국에서 만나면 더 반갑고 새로운 느낌이었을 텐데 전화 통화만 한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하기도 했다.LA로 돌아온 후 그중 한 명을 만났더니 “한국은 타향이니 이제 고향인 LA에서 만나야죠”라고 말한다. 그 말에서 ‘옛 친지가 그리워 한국을 찾았지만 반기는 사람 하나 없고 낯선 도시만 헤매다 왔다’는 아쉬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대학 졸업 직후 유학을 왔거나 유학생 배우자를 따라왔으니 반세기 훌쩍 넘게 고국을 떠나 살았다. 한국에서 산 날보다 미국에서 지낸 세월이 훨씬 더 길다. 이젠 미국이 제2의 조국이라 생각하고 살지만 아련한 향수에 잊지 않고 고국을 찾는 분들이다.
남편은 얼마 전부터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비교적 자주 한국을 찾는다. 그런데도 친지들의 즉각적인 반응이 없으면 섭섭한 마음이 든다. 나만 기다리고 있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다들 나름의 사정이 있는데 불쑥 나타나서 내 자리를 찾으려는 것은 무리다. 앞으로는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친지에게만 귀국 소식을 알려야겠다.
요즘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 이주를 고려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이민 와 고생하다가 애들도 다 커서 독립했고, 형제자매가 있는 한국서 살고 싶다”, “늘 마음속으론 고국을 그리워하며 살았죠”, “한국적인 문화가 더 친숙한 것 같아요” 등 이유도 다양하다. 한마디로 고향이 그립기 때문일 게다. 대체 고향이 뭐길래!
오랜 세월 미국에 살다 보면 알게 모르게 소위 ‘미국물’이 든다. 오랜만에 돌아가면 한국은 말이 잘 통하는 또 다른 외국일 수 있다. 달라진 한국 문화나 생활 방식에 적응하지 못해 후회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또 미국생활을 청산해서 한국에 들어와 살기 힘들 정도로 한국의 주택가격과 물가가 올랐다. 어쨌든 목표가 뚜렷해야 후회하지 않는다.
지인 중에는 “미국과 한국, 어디가 더 살기 좋아요?” 라고 묻는 분들이 있다. 이 물음에 나는 “한국에 가면 한국이 좋고, 미국에 오면 미국이 좋다”고 답한다. 공연한 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남편은 한국에 살고, 애들은 미국에 살기 때문에 내 마음에는 미국과 한국이 늘 함께 자리 잡고 있다. ‘타향도 정들면 고향’이라는데 그러면 내 고향은 어디인가?
타국 땅에 수십 년을 살아도 한국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마음속에 ‘내 나라가 어디인가’ 라는 질문에 확실한 답을 내기가 어려울 정도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지금 한국에 가도 모두 낯선 풍경으로 바뀌어 기억 속의 옛 모습은 다 사라졌다. 마음에 품고 있는 나라보다는 세월이 갈수록 내 몸이 머무는 땅이 우리나라가 된다.
한국은 ‘우리나라’라는 의미보다는 고향이라는 의미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내가 살아갈 땅이 미국이라면, 한국은 나의 고향이다. 고향인 한국이 잘되고, 살고 있는 나라도 잘되는 것, 그것이 이민자가 품고 있는 이중적 바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LA에 ‘hi-5’ 라는 5명의 친구 모임이 있다. 전부터 인연이 있거나 새로 알게 된 친구들로 나를 제외한 모두가 아직도 LA 한인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지만 한번 만나면 몇 시간이고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좋은 친구들이다.
미국에 ‘hi-5’가 있다면 한국에는 역시 5명의 친구 모임인 ‘오색회’가 있다. 학연으로 어려서부터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더니 내가 외국에 나가 사는 동안 그 친구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듯해 마음이 아팠다. 그러던 중 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빨리 연락 못 해서 미안해. 내가 많이 아팠고 서로 시간을 맞추느라고 이제야 만나자고 연락한다.”
서운했던 마음이 스르르 봄눈 녹듯 사라졌다. 5명이 모두 모였다. 한 명은 침대에서 떨어졌다며 가슴 둘레에 거북이 등 같은 보장구를 하고 나왔고, 또 한 명은 무릎이 아파 지팡이를 짚고 나왔다. 귀가 잘 안 들려 큰 소리로 말해야만 소통이 되는 친구도 있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왈칵 눈물이 차오르는 걸 참으며 보장구를 착용한 친구에게 “야, 너 검투사 같다”며 웃어버렸다. 불편함을 무릅쓰고 나를 만나려고 나와 준 친구들이 너무 고마워 귀갓길 전철 속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꾹꾹 눌러 담았다.
서양 속담에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된 것이 좋다’는 말이 있다. 고려 말 길재는 500년 도읍지 개경을 둘러보고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라고 탄식했다. 오늘날 한국은 아파트와 빌딩 숲으로 변해 옛 모습은 사라졌으나 옛 친구들은 여전하다. ‘산천은 간데없고 인걸은 의구하네’라는 생각을 한다. 오랜 친구들이 나를 변함없이 반겨 주는 곳, 그곳이 내게는 고향이다.
배광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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