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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도시 LA, MZ 세대 살기 고단하다

[본지 새내기 기자의 한 달 가계부]

20대 인구 10년 새 10% 급감
높은 임대료, 생활비 감당 안 돼
보험료, 개스비 내고 나면 헛웃음
돈 아끼려 영화도 반값 티켓만

김경준 기자는 가성비를 찾기 위해 샴푸 한통을 사도 가격을 비교해 볼 수 밖에 없다. 김상진 기자

김경준 기자는 가성비를 찾기 위해 샴푸 한통을 사도 가격을 비교해 볼 수 밖에 없다. 김상진 기자

LA를 누가 ‘천사의 도시’라 했나. 현실을 보면 천사라는 애칭이 무색하다.
 
LA타임스는 젊은 층이 모이는 도시라는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LA 카운티가 고령화되고 있다고 지난 2일 보도했다.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럴만하다. 높은 임대료, 치솟는 주택 가격, 고물가로 인한 생활비 문제 등은 젊은 층에 좌절감을 안긴다. 이는 출산율 감소, 교외 지역 이주 등의 문제로 이어지며 젊은 층이 LA를 떠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본지 김경준 기자는 미시간 대학을 막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다. 지난 1월 LA에 둥지를 틀었다. 이곳에서의 삶은 만만치 않다. 지갑을 여는 게 무섭다. 젊은 층이 높은 생활비 때문에 LA를 외면한다는 뉴스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김 기자의 빠듯한 한 달 가계부를 1인칭 시점을 통해 공개한다. 〈그래픽 참조〉
 
 
USC 도웰 마이어스 교수(인구 정책학)는 LA의 고령화 현상이 “미래에는 매우 치명적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20대는 가주에서 가장 중요한 세대”라며 “그들이 너무 부족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기자도 20대다. 중요한 세대면 뭐하나. 좋아하는 파스트라미 샌드위치 하나 사 먹는 것도 LA에선 어려운 일이다.
 
LA한인타운 인근의 유명 델리 숍인 랭거스(Langer's)에 갔다. 샌드위치 하나가 세전 기준 24달러다. 미시간 대학 캠퍼스에서 사 먹던 샌드위치가 그립다.
 
한국에서 아버지가 전화로 묻는다.
 
“LA사는 건 어때. 살만해?”
 
농담조이지만 현실을 담아 답했다.
 
“아메리칸 드림은 커녕 '아메리칸 악몽'이에요.”
 
김 기자가 차에서 휴대폰을 통해 적은 가계부를 보여주고 있다. 김상진 기자

김 기자가 차에서 휴대폰을 통해 적은 가계부를 보여주고 있다. 김상진 기자

 
매번 가계부를 적는다. 헛웃음이 나온다. 아파트 임대료는 가장 큰 지출 항목이다. 매월 첫날이 되면 '1477달러'가 은행 계좌에서 어김없이 빠져나간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4명이 함께 살기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다. 다시 말해 5900달러가 넘는 한 달 임대료를 룸메이트 4명이 나누어 내는 셈이다.  
 
한국의 친구들은 LA지역 임대료 현실에 다들 놀란다. 젊은 층이 가장 많이 몰리는 한국 강남역에서 도보로 30초 거리의 오피스텔 월세도 이 정도는 아니다. 언젠가는 가정도 꾸려야 할 텐데 종잣돈을 모으기 힘든 상황에서 집을 산다는 건 엄두도 못 낼 것 같다.
 
사람 만나길 좋아하고 맛집 찾아다니는 게 취미다. 가계부에서 엥겔지수(총 소비 중 식비 비율)가 높았던 이유다.
 
LA로 오고 나서는 엥겔지수가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 맛집 찾아다니다간 되레 “굶어 죽겠다”라는 위기감이 생겼다. 비싼 음식값에 팁까지, 게다가 대리 주차 비용까지 더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최근 동료들과 한인타운 한 치킨집에 갔다. 치킨 두 마리에 68달러다. 대리 주차 때문에 5달러를 더 냈다. 팁까지 합하면 치킨을 먹는데 '100달러' 지폐 한장이 우습게 날아간다.
 
지난 한 달 외식 비용을 합산해봤다. 총 558.96달러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전달과 비교했을 때 계속 줄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은 너무나 중요하고 고마운 제도다. 단, 요즘은 '도둑놈들' 같다. 매달 자동차 보험으로만 300달러를 지출한다. 회사와 거주지가 모두 한인타운이다. 통근 거리도 짧은데 보험료 산정을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주유소에서 개스를 넣을때도 한숨이 나온다. 높은 개스값과 보험료 때문에 운전하는 게 부담이다. 김상진 기자

주유소에서 개스를 넣을때도 한숨이 나온다. 높은 개스값과 보험료 때문에 운전하는 게 부담이다. 김상진 기자

 
요즘은 돈이 '물' 같다.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모든 게 다 돈이다. 차가 없으면 발이 묶이기 때문에 젊음을 마음껏 누리기 힘들다. 그만큼 주유 비용도 부담이다. 한번 주유할 때마다 '60달러' 가량 소요된다.
 
센서스국에 따르면 LA카운티의 중간 연령은 현재 37.4세다. 지난 10년(2012~2022년) 사이 2.6세가 더 증가했다.  
 
연령대로 나눠보면 20대는 이 기간에 무려 10.2% 감소했다. 10세 이하(-20.2%), 10~19세(-14.1%) 등 젊은 세대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의 친구들과 통화하면 미국 생활에 대한 환상이 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팜 트리가 가득한 말리부 해변 도로를 자주 드라이브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오산이다. 한번 차를 운행할 때마다 개스비 나가는 걸 생각하면 해변가 드라이브는 꿈도 꿀 수 없다. 생활비를 아끼려고 어쩔 수 없이 '집돌이'를 자처하게 된다.
 
문화생활도 사치다. LA에 온 이후 극장에서 영화를 본 건 단 두 번뿐이다. 영화 한 편도 마음 편히 즐기는 게 쉽지 않다. 머릿속으로 계산부터 한다. CGV는 매주 화요일 영화 티켓(18달러)을 반값에 판매하고 있다. 애처롭겠지만 LA에서 본 영화 두 편은 모두 '화요일'에 봤다.
 
곧 스포츠 빅 이벤트도 있다. 축구를 사랑하는 20대다. 오는 27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의 친선 경기가 LA에서 열린다. 물론 그림의 떡이다. LA에 살면 뭐하나. 영화 한 편도 반값 티켓인 '화요일'에만 보는 처지에 100달러가 넘는 축구 티켓은 사치다.
 
그들이 LA를 떠나는 이유는 명백하다. 한마디로 살기가 어렵다.  
 
젊은이들이 '꿈'을 꿀 수 없다면, LA는 곧 악몽의 도시로 전락할 수 있다. 천사의 도시에서 진정 살아보고 싶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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