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경험 한인 90%…“참는다” 70%
중앙일보·USC 공동 기획
힐링 캘리포니아 프로젝트
본지 설문 정신건강 위기 단면
3주 이상 우울 지속 답변 24%
31%는 “병이라고 생각 안 해”
전문가 “상처 놔두면 후유증”
하지만 우울증·불안장애를 방치하면 자칫 극단적 선택으로 치달을 수 있다.
본지가 LA카운티 검시국에 문의한 결과 지난 2016~2023년 사이 고 이유리(28·여·2023년 9월 30일 사망), 최혁철(57·2023년 6월29일 사망), 김지우(22·2021년 8월4일 사망), 김정성(81·2019년 6월 11일 사망)·케빈 박(45·2018년 12월 30일 사망)씨 등 10명이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의 우울증 병력은 검시국 기록에 명시됐다.
■ 한인 우울증 중증 위험 높아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인의 우울증 유발률은 18.5%로 나타났다. 한인은 어떨까. 본지는 한인사회 구성원의 정신건강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2월1일부터 12일까지 본지 홈페이지(koreadaily.com)에서 ‘한인사회 마음(정신)건강 설문조사-우울할 때 어떻게 하시나요’를 진행했다. 설문에는 캘리포니아주 등에서 한국어가 가능한 총 235명(남 52%, 여 48%)이 참여했다.
설문결과 응답자 10명 중 9명이 지난 1년 동안 우울감 또는 우울증을 1~3차례 이상 느꼈다고 답했다. 특히 전체 응답자 229명 중 59%는 3차례 이상, 10%는 2차례 이상, 22%는 1번 이상 우울함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응답자 10명 중 1명(8%)만이 우울감이나 우울증을 느끼지 않았다고 답했다.
‘우울하다고 느끼는 원인(복수응답 허용)’ 질문에는 응답자 226명 중 56%가 공허함 등 삶의 목적 상실을 꼽았다. 다음으로 경제적 문제 39%, 이민생활 고립감 및 외로움 36%, 친구 및 대인관계 24%, 가정불화 21% 순이었다. 기타 의견으로는 ‘장거리 연애, 직장상사 폭언, 사별, 건강악화, 이사’ 등이 꼽혔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이들이 모든 한인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한인사회가 직면한 정신건강 위기상황의 단면은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웃케어클리닉(KHEIR Clinic) 측은 “의학적으로 우울장애와 불안장애 진단을 받은 분들의 주요원인도 ‘경제적 어려움, 취업 어려움, 부부 및 자녀 갈등, 대인관계 스트레스’ 등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의학적 기준의 우울증 항목은 ▶슬프고 울고 싶은 감정 ▶평소 흥미를 느꼈던 활동 관심 저하 ▶체중 및 식욕 변화 ▶과한 수면 또는 불면증 ▶심한 불안 및 무기력증 ▶삶의 의욕과 활력 상실▶자존감 저하 및 잦은 죄책감 ▶사고력 및 집중력 감퇴 ▶자살 등 죽음 관심이다. 위 항목에서 5가지 이상 증상이 2주 이상 계속되면 우울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
설문결과 우울증 정도 평가 질문에서 응답자 227명 중 65%가 ‘삶이 무의미하게 느끼고(30%), 죽고 싶은 생각이 들고(21%), 한없이 슬프고 힘들다(14%)’고 답했다. 정신과 전문의는 중증 우울증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다행인 점은 응답자 223명 중 61%가 우울감 또는 우울증을 느낀 기간이 1주 이내라고 답했다. 1주일 이내 우울증은 의학적 관점에서 일상생활 속 정상적인 감정기복으로 보고 있다.
반면 나머지 41%는 2주 이상 우울감 또는 우울증을 느꼈다. 특히 3주 이상 증상이 계속됐다고 답한 응답자도 24%나 됐다.
가주한인심리학회 저스틴 최(임상심리학 박사) 전 회장은 “2021년 한 조사에서 미국 인구 1400만 명(5.7%)이 심한 우울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한인은 문화적·경제적 측면에서 ‘무력감, 불안감, 대인관계 어려움, 스트레스 중압감’ 등 심리적 어려움을 통틀어 우울하다고 자주 표현한다. 설문결과를 보면 한인들이 다양한 심리적·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최 박사는 “삶을 무의미하게 느끼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들고, 한없이 슬프다 등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표현한 분들은 만성적인 우울증 가능성이 보인다. 전문가와 면담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전문가 상담과 처방 치료 중요
우울증 예방과 치료를 위해서는 ▶꾸준한 신체운동 ▶감정상태 파악 ▶일일 일과표 작성 ▶명상 ▶충분한 수면 ▶영양식 섭취 ▶대화모임 등 정서적 네트워크 구축 ▶여행·취미·봉사 등 동호회 활동 ▶소셜미디어 활용한 네트워크 관리 등을 하면 좋다.
특히 정신건강 전문가는 우울감이나 우울증이 2주 이상 계속될 경우 심리상담가 또는 전문의 면담을 추천했다.
이웃케어클리닉 측은 “인터넷, 미디어, 다른 사람의 경험 등 정확하지 않은 정보나 치료경험을 본인에게 적용하는 것은 해롭다”며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본인의 상태, 증상을 충분히 파악하고 정확한 진단을 받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 우울증에 대한 한인들의 인식 전환과 관련 교육도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224명 중 31%가 우울증을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치료 방법을 모른다(19%) 상담이 꺼려진다(27%)창피함 때문(6%)’이라고 밝혀 치료 중요성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실제 응답자 중 70%가 우울할 때 ‘나아질 때까지 참는다’고 답했다. 반면 친구 및 가족과 대화는 18%, 약물처방 7%, 상담 등 전문가 면담은 5%에 그쳤다.
우울증 극복을 위해 필요한 것 질문(복수응답 허용)에서도 응답자 229명 중 47%가 개인 스스로 극복을 꼽았다. 친구 및 가족의 관심과 대화는 38%, 상담전문가 또는 전문의 상담은 29%, 약물처방은 9%에 그쳤다.
김자성 정신과 전문의는 “요즘은 공황장애, 우울증을 극복하는 상담과 치료가 도움된다는 추세로 변했다. 특히 심리적인 성숙도가 높은수록 상담 효과가 높다. 우울증으로 힘들 때 용기를 내 상담을 받아보길 권한다”고 강조했다.
저스틴 최 박사는 “만성적인 증상이나 큰 심리적 충격을 혼자 극복하면 나중에 ‘촉발원인이’나타날 때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거나 공황 등 다른 정신적 증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며 “팔이 부러졌을 때 치료 없이 뼈를 붙게 놔두면 심한 후유증이 생긴다. 정신적인 증상도 부러진 뼈를 제대로 맞추듯 올바른 치료를 당부했다.
■ 상담가 부족·비용부담은 과제
한편 최근 정신건강 상담 및 치료 수요 급증에 따른 한인 상담전문가 부족, 무료 상담서비스 제공하는 정부기관 및 단체 부족, 건강보험 등 비용부담은 커뮤니티가 풀어야 할 과제다.
익명을 원한 한인비영리단체 관계자는 “한인이 막상 정신건강 상담을 받고자해도 메디캘이 있거나 저소득층일 때만 무료 서비스가 가능하다”면서 “정부기관 또는 단체가 운영하는 무료상담은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치료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저스틴 최 박사는 “현재 상담소는 유례없는 과포화 현상으로 예약 잡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전제한 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전문가 심리상담 등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큰 후유증이 없다”고 말했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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