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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몸에 불 붙인 엄마, 징역 25년형

      화상 방치해 피부 ¼ 영구 손상   처벌 두렵다며 병원에도 안 데려가     메릴랜드 몽고메리 카운티 법원 재판부가 아들에게 벌 준다며 불을 붙여 심각한 화상을 입힌 어머니에게 징역 25년형을 선고했다.     법원 기록에 의하면 피고 킴벌리 테일러(31, 메릴랜드 저먼타운 거주)는 지난 2020년 5월 씨리얼을 먹던 자신의 8세 아들이 아파트 주방을 어지럽히는 것을 보고, 아들에게 벌을 준다며 소독용 알콜을 붓고서 불을 붙였다. 불꽃은 삽시간에 아들의 상복부 신체와 얼굴 등을 덮쳤다.     이에 더해 테일러는 처벌이 두럽다며 911에 신고하지 않고 자신의 부모에게 연락해 아들을 돌봐줄 것을 요청했다.  테일러의 부모는 2주 동안 손자를 돌봤으나 화상이 악화되자 다시 병원에 갈 것을 요청했으나, 테일러는 이마저도 거부했다.  2주 동안 테일러는 아이를 보기 위해 부모의 거주지에 딱 한번만 방문하고 자신의 집에 머물며 술파티를 벌였다.  레즈비언인 테일러는 저먼타운에서 미용사로 일하면서 동성 부인 차레즈 스노그래스-테일러와 함께 모두 6 자녀를 양육하고 살아왔다.     결국 아이의 조부모가 워싱턴DC 아동병원으로 손자를 데려갈 수밖에 없었으나, 치료시기를 놓쳐 신체 대부분이 고름으로 뒤덮혔다.  아들은 팔과 가슴, 목에 3도 화상, 얼굴과 다른 상체는 1-2도 화상을 입었다. 병원 진단 결과 신체의 25%에 영구손상 화상을 입고 말았다. 아이는 20번 넘게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테일러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닭튀김을 하고 있었으며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동안 아들이 튀김기름 냄비를 쏟아 화상을 입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테일러의 할아버지와 동성 부인도 아동학대 및 방임 혐의로 기소돼 유죄를 인정했으며, 할아버지는 집행유예, 동성부인은 징역 6개월 복역 후 5년 보호관찰형을 선고받았다.   조사결과 아들은 희귀 장기 질환을 앓고 있었으며, 이전에도 부모로부터 아동학대를 당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평생 이렇게 심한 아동학대는 처음 봤다"며 테일러에 대한 강력한 처벌에 "당연하다"고 반응했다.     김옥채 기자 kimokchae04@gmail.com아들 엄마 조사결과 아들 엄마 징역 동안 아들

2024-04-19

[열린광장] 눈 뜨고도 코 베이는 세상

신용카드를 주로.사용해 지갑을 열 일이 좀처럼 없다. 그런데 모처럼 파머스마켓에 갔더니 현금이 필요해 지갑을 꺼냈다. 어머나, 며칠 전 우편으로 받은 코스트코의 리베이트 수표가 곱게 접혀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분명 잘 둔다고 넣은 것일 텐데, 수표를 받았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오랫동안 안 하던 페이스북을 최근 다시 시작했다. 사진도 저장할 겸 메모장처럼 사용한다. 점점 약해지는 기억력도 보완해 주니 편리하다. 나는 리베이트 수표를 발견하고 공돈이 생긴 양 흥분한 일을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다.   좀처럼 전화나 텍스트를 보내지 않던 아들이 메시지를 보냈다. 아들이 엄마한테 관심을 가진다고 스스로 가스라이팅하며 반가운 마음에 얼른 메시지를 열어 보았다. 그런데 내가 오늘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보고 따끔한 지적을 한다.     ‘바코드랑 숫자가 있는 리베이트 수표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면 누군가 나쁜 사람이 온라인으로 이용하든지 수표를 스캔해서 사용할 수 있어요. 엄마가 흥분할 때마다 틀린 결정을 내리지 않으려면  행동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세요.’ ‘걱정해 주니 고맙다. 내가 생각이 짧았네’ 하고 답장을 보냈다. 아들이 나를 부주의한 관종 엄마로 생각했을까.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로 보는 것은 아니겠지.   중·고교 동창인 친구 두 커플과 미뤄두었던 환갑여행을 다녀왔다. 시카고, LA, 버지니아에 흩어져 살다가 십 년 전쯤 페이스북을 통해 만난 귀한 인연이다. 라스베이거스까지 비행기로 가서  유타, 애리조나, 네바다의 일곱 개 협곡을 돌아보는 여정이었다. 까르르 웃음 많은 사춘기로 돌아가 수학여행과 생활관 입소의 추억을 되새겨보았다. 내 생애 최초의 에어비앤비(Airbnb) 경험도 특별했고, 친구가 권유해서 유튜브로 국민체조로 하루를 시작한 것도 기억에 남았다.   추억이 될 사진과 간단한 메모를 페이스북에 공유하고 싶었지만,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참았다. 여행 사진을 실시간으로 공유했다가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유명 연예인의 기사를 기억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 집에 훔쳐 갈 만한 값진 물건도 없지만, 여행으로 집을 비웠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은 주저된다. 심지어 어떤 주택보험사들은 집에 도둑이 들었을 때 집주인이 SNS에 사진으로 집을 비웠음을 암시했는지도 확인한다니 놀랍다. 범죄자들이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빈집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것이 일반화된 시대다. 소셜 네트워크에 개인 정보를 노출하면 사기꾼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무의식중에 같은 실수를 종종 범한다. 사이버 범죄는 훨씬 복잡한 수법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어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 눈 뜨고도 코 베이는 세상이다. 최숙희 / 수필가열린광장 리베이트 수표 관종 엄마 소셜 네트워크

2024-04-16

월가 출신 딸, 엄마와 김밥 창업…샌마테오 푸드몰 얌김밥 화제

70대 엄마와 월스트리트 출신 딸이 북가주에 개업한 김밥집이 화제다.   지역 주간지 ‘더 알마낙’에 따르면 업주 김동혜(73)씨와 딸 김지희씨는 지난 2월 샌마테오 푸드몰에 ‘얌김밥(yumkimbap)’을 오픈했다. 샌마테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20마일 떨어진 곳이다.   얌김밥은 어묵과 소고기, 스팸, 야채, 비건 등 5가지 종류의 김밥을 판매하고 있다. 싱싱한 재료들과 함께 어머니 김동혜씨의 특제 레시피로 만든 무가 들어갔다.   김동혜씨는 “어렸을 적 친정 엄마가 아이들에게 만들어줘 딸 지희에게도 김밥은 특별한 음식”고 말했다.   김씨 모녀는 특별히 ‘건강한 패스트푸드’로 김밥을 소개했다. 비타민A가 풍부한 당근, 심혈관 건강에 좋은 비트주스에 담근 무,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마늘과 양파 등 모든 재료가 담긴 김밥은 건강한 한 끼를 제공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설명이다.   수년전 부터 김밥의 대박 가능성을 알아본 딸 김지희씨는 지난 2010년 경영대학을 막 졸업하고 김밥 사업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시기가 맞지 않았다. 이후 월스트리트에서 근무하던 김지희씨는 작년 초 경영하던 핀테크 회사를 매각한 후 다음 프로젝트를 고민을 하던 중 다시 김밥과 마주하게 됐다.   마침 트레이더조스 냉동 김밥이 인기몰이하는 것을 보고는 다시 한번 그녀의 오랜 꿈이 생각나게 된 것이다. 어릴 적 소풍을 갈 때 엄마가 싸주시던 김밥은 그녀에게 절대 지워지지 않는 꿈이었다.   김지희씨는 “(트레이더 조스 김밥을 보고) 김밥은 냉동식품이 아니라 집에서 만든 신선한 재료로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알록달록 한입 크기의 김밥은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는데, 6살 된 아들이 엄마에게 김밥 장사를 해보라고 권유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그녀의 꿈은 어머니의 마음에 잠자고 있던 열정에도 불씨를 떨어뜨렸다. 한국에서 이민 온 어머니 김동혜씨는 식품영양학 학위를 갖고 있지만, 평생의 대부분을 두 자녀를 키우고 심장 전문의로 일하는 남편을 내조하는데 보냈다고 전했다.   김동혜씨는 “김밥집이 내 첫 직업”이라며 “내가 일을 하거나 물건을 팔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지희씨는 고향인 샌마테오카운티에서 6개월 동안 장소를 찾아다닌 끝에 ‘고스트 키친’이 있는 샌마테오 푸드몰에서 얌김밥을 열기로 결정했다. 오픈하는 데 1년까지도 걸리는 일반식당 대신 6주 만에 빠른 창업이 가능한 배달 전용 고스트 키친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복잡한 김밥 조리 과정을 간소화하기 위해 한국에서 기계도 수입했다.   딸은 기술과 경영을 맡았고 어머니는 ‘맛’을 맡았다. 오랜 요리 경력과 지식을 담아 레시피 개발을 주도했다.   김동혜씨는 “처음에는 다른 한식처럼 너무 맵지도, 너무 달지도 않기 때문에 고객들이 싫어할까 봐 걱정했다”며 “하지만 오히려 어린이나 건강에 관심이 있는 사람, 이동 중인 사람들에게 적합했다. 많은 고객의 긍정적인 후기를 듣고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두 모녀는 얌김밥을 ‘건강한 패스트푸드’라는 별칭으로 얌김밥을 확장하고 싶다고 전했다. 김동혜씨는 “딸이 매일 ‘괜찮냐.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는데 나는 한국의 김밥을 세계에 소개하게 해준 딸이 자랑스럽다”며 “이 나이에 기회가 주어져 감사하고 딸의 도전을 응원한다. 미국인들을 위한 세계 최고의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장수아 기자 jang.suah@koreadaily.com월스트리트 김밥집 김밥집 개업 엄마 월스트리트 월스트리트 출신

2024-04-03

[이 아침에] ‘종이 쪼가리’의 한

엄마는 학교에 가고 싶었다. 엄마가 11살 무렵, 1943년의 이야기이다. 충청도 산골 지름재에 사는 또래 여자아이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마곡사 계곡에 운암 간이 학교가 있었다. 집안의 장손인 엄마 큰 사촌 오빠 혼자만 다녔던 학교.     엄마는 학교에 다니는 꿈을 자주 꿨다. 그러나 거기까지. 그 꿈을 같이 이야기할 사람조차 없었다. 지름재에서 마곡사까지 산길 20리. 길이 멀고 험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집안에 항상 할 일이 많았다. 어린애 손이라고 놀릴 틈이 없었다. 그리고 당시 동네 어른들은 여자 아이에게 글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학교는 못 가더라도 ‘은문(=언문)’은 깨치고 싶었다. 그마저 배울 길이 없었다. 장화홍련전, 숙영낭자전, 조웅전, 유충열전…. 이런 얘기책을 읽고 싶었다. 그 때 시골에서는 글을 읽을 줄 알게 되는 것을 ‘깨친다’고 했다. 스님들이 도를 깨우치는 것과 맞먹는 큰일로 생각했다.     엄마에게 선생님이 나타났다. 큰 사촌 오빠의 새 각시. 그러나 대놓고 가르칠 수는 없었다. 삼대가 한 집에 사는 새 신부는 눈치를 보아야 할 일이 많았다. 우선 종이 쪼가리 (=쪽지)에 ‘가갸 거겨…’ 한글 샘플을 써서 엄마에게 몰래 주었다. 제사 때 지방 쓰는 종이에 몽당연필로 쓴 한글 자습서.   엄마에게는 유일한 교과서였다. 어른들 몰래 틈틈이 그 종이 쪼가리를 꺼내 공부를 하셨다. 한글의 원리가 머릿속에 그려지려고 할 때 즈음 외할머니한테 들켰다. 하필 아궁이 앞에서 불을 때며 그 종이 쪼가리를 보고 있을 때였다. 외할머니는 그 종이를 낚아채서 엄마가 뭐라고 말도 하기 전에 불에 던져버렸다.     “지지배 (=계집애)가 글을 배워서 워따 (=어디에)  써먹을라고.”  외할머니의 무정한 말씀 한마디로 상황 끝.   외할머니 세대와는 달리 엄마 세대에게 글은 쓸데가 많았다. 살아오시면서 한글이 익숙치 않아서 불편을 겪을 때마다 엄마는 “그놈의 종이 쪼가리”사연을 되뇌셨다. 아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 학교에서 오는 가정 통신문을 떠듬떠듬 읽어야 할  때, 보따리 장사를 하며 외상 장부 ‘치부책’ 정리가 너무 시간이 걸릴 때, 도매상에서 물건을 사 오고 그 목록을 점검할 때….   엄마가 한글을 겨우 읽게 된 것은 해방 이후 동네 야학 덕분이었다. 시집을 와서 지름재 보다는 덜 시골인 삼바실에 사실 때였다. 글을 읽을 줄 아는 동네 아저씨가 저녁에 동네 사람들을 사랑방에 모아놓고 글을 가르쳤다. “가자에 ㄱ 하면 각하고, 가자에 ㄴ 하면 간하고,….”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 이렇게 배우셨단다.     엄마는 그때 그 상황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래도 사흘 만에 은문을 다 깨쳤지.”  삼일 밤 다니고 아이가 아파서 더는 야학에 가지 못했다. 엄마의 ‘학교’ 꿈은 이렇게 끝났다.   엄마는 겨우 문맹을 면한 한글 실력으로 남의 도움 없이 장사도 하시고, 아파트 관리비도 내시고, 은행 거래도 하셨다. 엄마 말씀대로 “손톱으로 바위를 긁듯” 살아오신 일생에 한글을 깨우친 ‘득도’가 작은 지팡이 노릇을 했다.   이제 90이 넘은 엄마는 그리도 어렵게 배운 글자도 하나하나 버리고 계시다. 엄마의 기억 속에는 이제 ‘ㄱ’자 정도 남아있을까?  ‘종이 쪼가리’의 한도 다 잊으셨기를.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쪼가리 종이 종이 쪼가리 엄마 말씀 장손인 엄마

2024-04-01

[뉴스 포커스] 제이비안의 꿈

그를 알 수 있게 된 것은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이다. 유튜브 영상들 가운데 그에 관한 것이 올라왔고, 그의 이름과 외모가 눈에 들어오는 바람에 클릭까지 하게 됐다. ‘혹시 한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의 이름은 제이비안 이(Xaivian Lee), 프린스턴대학 농구팀 소속이다. 올해 2학년인 그는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다.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 올 시즌 게임당 평균 17 득점, 어시스트 3.7개, 리바운드 5.7개를 기록했다. 프린스턴대가 속한 아이비리그가 강팀이 많은 곳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뛰어난 성적표다.     프린스턴대는 아쉽게도 올해 ‘3월의 광란(대학농구 토너먼트)’ 무대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시즌 24승5패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리그 토너먼트 결승에서 예일대에 지는 바람에 출전권을 얻지 못했다. 대신 ‘NIT’라는 다른 대회에 참가했지만 아쉽게도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이번 시즌 제이비안의 경기 모습을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나고 성장한 제이비안은 엄마가 한인이다. 그는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에 대해 ‘50% 코리안’이라고 밝힌다. 프린스턴대 교내 신문인 ‘프린스토니안’에 소개된 그의 별명도 ‘코리안 프라이드 치킨(Korean Fried Chicken)’이다. 어떤 연유로 이런 별명을 갖게 됐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정체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의 뒤에는 역시 ‘한인 엄마’가 있다. 토론토 지역에 거주하는 엄마 이은경씨는 시즌 중엔 격주로 아들의 경기장을 찾는다고 한다. 자동차로 편도 9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를 운전하고 다닌다. 자녀를 위한 것이라면 힘든 것도, 두려운 것도 없는 전형적인 ‘한인 엄마’의 모습이다. 하루 3가지 일을 하며 아들을 NFL(프로풋볼) 스타로 키워낸 하인즈 워드의 어머니 김영희씨의 열정도 그런 것이었다.       제이비안은 프로농구(NBA) 진출을 꿈꾼다. 그의 침대 옆에 설치된 보드에는 NBA 선수가 되기 위해 매일 해야 할 것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사실 그의 실력은 NBA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농구 전문가들은 그가 드래프트에 참여할 경우 1라운드는 아니라도  2라운드에서는 지명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 제이비안이 NBA 진출에 성공한다면 한인 이민사에는 또 하나의 기록이 만들어진다. 한인 최초의 NBA 선수가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NBA에서 잠깐 활약한 한인 선수가 있긴 하지만 그는 한국 출신이었다.     제이비안이 NBA 진출을 바라는 것에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한인은 물론 아시아계 청소년들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농구는 특히 아시아계에게 진입 장벽이 높은 종목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NBA 진출은 아시아계 청소년들에게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건’이 될 수 있다.       그는 ‘네버 투 하이, 네버 투 로우(never too high, never too low)’라는 문구를 좌우명처럼 여긴다고 한다. 이제 스무살이 된 청년치고는 참 의젓하다. 그가 본인의 좌우명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전진했으면 좋겠다.       한인 이민 역사가 쌓이면서 2,3세들의 진출 분야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들이 생각하고 활동하는 무대는 1세들의 것보다 훨씬 넓다. 그들은 1세들이 닦아놓은 토대 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1세의 잣대로만 그들을 평가하면 무리가 따르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는 의미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제이비안처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한인 차세대를 발견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그만큼 한인 사회의 밀도가 충실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제이비안 프린스턴대학 농구팀 한인 엄마 한인 선수

2024-03-28

[문장으로 읽는 책] 최재천의 공부

동물 세계에는 선생님이 없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 있어도 적극적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그냥 거기 있고 아이들이 보고 배웁니다. 저는 우리가 약간 동물스러운 교육을 하면 좋겠어요. 선생님은 먼저 가르치려고 덤벼들지 말고, 아이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일종의 촉진자가 되어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최재천·안희경 『최재천의 공부』   “엄마 침팬지는 실패하는 새끼 옆에서 자기 열매만 깨 먹고 있습니다. 가끔은 새끼가 엄마 침팬지 걸 뺏어 먹어요. 뺏기면 할 수 없지만 ‘배고프지? 엄마가 까줄게’ 그러지는 않습니다. 새끼는 배고프니까 어떻게든 기술을 익혀서 먹으려고 엄마 침팬지를 더 세심하게 관찰하겠죠. 마침내 자기가 혼자서 탁! 깨 먹는 순간이 오는 거예요.”   자식의 실패를 안타까워하는 조급증이 결국 자식에게 독이 됐더란 얘기는 주변에서 흔히 듣는 얘기다. 생태학자인 최재천 이대 석좌교수가 대담 형식을 통해 ‘공부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는 결국 교육 문제로 귀결된다는 결론. “사회의 고통은 과목별로 오지 않는데 아직도 교실에서는 20세기 방식으로 과목별로 가르친다”는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도 인용한다. 20대 초반에 배운 것으로 평생 우려먹고 살 수 없는 평생교육 시대, ‘취미 독서’의 나이브함도 경고한다. “책은 우리 인간이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낸 발명품인데, 그 책을 취미로 읽는다? (…) 취미 독서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독서는 기획해서 씨름하는 ‘일’입니다. 빡세게 하는 겁니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최재천 공부 최재천 이대 엄마 침팬지 취미 독서

2024-03-27

[오늘의 생활영어] what's gotten into (someone)?; ~가 왜 저럽니까?

(Mike walks into the living room to talk to his mother Janice … )   (마이크가 엄마 재니스에게 얘기하려고 거실에 들어온다…)   Mike: What's gotten into Dad?   마이크: 아빠가 무슨 일이시래요?   Janice: He dropped a hammer on his foot.   재니스: 발 위에 망치가 떨어졌어.   Mike: How did he do that?   마이크: 어떻게 하다가요?   Janice: He was hanging a picture in the family room.   재니스: 패밀리룸에다 사진을 걸다가.   Mike: That sounds so easy.   마이크: 너무 쉬운 일인데.   Janice: You know your dad; he's all thumbs.   재니스: 아빠 알잖니 손재주 없는 거.   Mike: It must have him really hurt.   마이크: 정말 아프셨겠네.   Janice: It must have because he's still limping.   재니스: 아직도 걸을 때 저는 것 보면 아픈가봐.   Mike: Do you need some help?   마이크: 도와드릴까요?   Janice: Thanks but I'm almost finished.   재니스: 고맙지만 거의 다 끝났어.   Mike: Why didn't you hang it to begin with?   마이크: 처음부터 왜 엄마가 걸지 그러셨어요?   기억할만한 표현   * hang a picture: 사진을 걸다     "We hung all of the pictures in the living room."     (우리는 사진은 모두 거실에 겁니다.)   * (one) is all thumbs: 손재주가 없다 잘 떨어뜨린다     "Don't let Uncle John hold the baby. He'll drop her. He's all thumbs."     (존 삼촌이 아기를 안지 못하게 하세요. 아기를 떨어뜨릴 거에요. 삼촌은 워낙 서투르세요.)   * hurt (someone's) feelings: ~의 기분을 상하게 하다   "He had his feelings hurt so he won't talk to anyone."     (그는 기분이 상해서 아무하고도 아무 얘기안할 겁니다.)   California International University www.ciula.edu (213)381-3710오늘의 생활영어 whats 엄마 재니스 mike walks living room

2024-03-27

스쿨버스가 불길에 휩싸이기 직전 아이들 대피... 운전기사의 '엄마 본능'

 뉴올리언스의 한 스쿨버스 운전기사가 버스에 불이 붙기 직전에 재빨리 아이들을 대피시켜 칭찬을 받고 있다. 기아 루세브는 버스에 전원이 끊기기 시작했을 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차를 세우고 잠시 후 지나가던 행인이 달려와 차량 아래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루세브는 곧바로 유치원생부터 8학년까지 학생들을 버스에서 내려 대피하도록 안내했다. 영상을 보면 순식간에 버스 앞쪽이 완전히 불길에 휩싸였다. "우리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어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영상을 볼 때마다 '와, 내 좌석에서 가장 먼저 불이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고 루세브는 말했다. 루세브는 자신의 빠른 반응에 대해 '엄마의 본능'이라고 말했다. 루세브는 "저는 모성을 발휘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생각했습니다"고 말했다. 루세브의 행동은 자신은 물론 버스에 타고 있던 9명의 아이들의 목숨을 구했다. 루세브는 "아이들을 버스에서 내리게 함으로써 아이들에게 영웅이 되고 나 자신에게도 영웅이 된 것 같아 기뻤어요"라고 말했다.  스쿨버스 운전기사 스쿨버스 운전기사 엄마 본능 버스 앞쪽

2024-03-20

[문예 마당] 마음은 언제나 30대

“우리 새 가게 이름을 ‘Forever 31’으로 지으면 어떨까?”   나보다 딱 10살이 많았던 사장님의 부인과 직원들이 오손도손 점심을 먹는 시간이었다. 사장님의 부인은 항상 거침없이 대화의 주도권을 이어나가는 분이었다. 그날도 우리는 그녀의 말에 추임새를 넣으며 30분의 점심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새로 오픈하는 의류 지점의 상호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가 화제였는데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가 내놓은 아이디어였다.   그 당시 31살로 막내였던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굳이 서른 한살이 영원하다면 무엇이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나 혼자만 공감을 못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모두 40대 였던 동료 언니들은 미시족 고객이 대상인 만큼 그 이름이 좋다고 모두 맞장구를 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장님의 마지막 결정 과정에서 미끄러졌는지 새로운 가게 상호는 ‘포에버 31’이 아닌 다른 것으로 결정됐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나 내가 40대 중반의 나이가 됐을 때 문득 동료 언니들의 격한 호응이 떠오르면서 과거 나의 서른한 살 때가 많이 그리워졌다. 사실 당시에는 올망졸망 연년생 아이들을 키우느라 내 30대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도대체 기억이 안 났다. 나는 주위 친구 가운데 가장 먼저 아이를 낳고 키웠다. 당시 독신주의를 외치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는 친구들의 모습을 부러워하며 그렇게 의미 없이 10년의 세월이 지나간 줄만 알았다.   아이들에게 ‘어서 자라라’ 하며 시간이 달려가기만을 소망했던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세월은 비호처럼 날아가 어느덧 40대 중반이 되어 돌아보니 내게는 30대 시절이 인생의 전환점이 아니었나 싶었다. 젊고, 순수했지만 웬만한 사랑 타령에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시절이었다. 물론 신혼 초라 가끔 사랑싸움 때문에 며칠씩 다툴 때도 있겠지만 그 당시 남편은 금세 미안하다며 사과도 잘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런 사랑싸움도, 미안함도 필요 없는 척하면 다 아는 사이로 변했지만…. 지금은 결혼 초 투덜투덜 사랑싸움이 왠지 그립기도 하다.   나의 30대 시절, 아이들은 세상에서 엄마가 전부인 것처럼 나에게 의지했다. 13살 이후 사춘기가 와서 하루가 다르게 성숙해진 딸을 보며 낯설어진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내 30대는 끝이 났던 것 같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 말끝에 “그때 해맑았던 너의 모습이 그립다”고 했더니 눈치가 빠른 딸이 “엄마는 언제나 나에게 영원한 36살이야”라고 한다. 딸은 엄마가 좋아하는 말인 걸 알기에 “항상 엄마는 늙지 않는 것 같다”며 립서비스를 해주곤 한다. 미용실에라도 다녀오면 무뚝뚝한 아들도 “오늘은 엄마가 좀 젊어 보이네”라고 한마디 툭 던진다.   교회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를 잠깐 한 적이 있다. 돌잡이 미만 아이들부터 5살 정도까지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아이들의 부모는 대부분이 30대였다. 그들을 대하면 마냥 밝고 이쁘게 보여 젊음이 참 부럽기까지 하다.   과거 20대 시절 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옆에 있던 지금의 내 나이쯤 된 분이 수줍어하는 나에게 등을 밀어주겠다고 하시더니 “젊어서 좋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마 지금 똑같은 상황이 되면 나도 그분처럼 수줍어하는 아가씨 등을 밀어주며 똑같은 말을 할 것 같다.     가끔 30대의 엄마들이 어린 자녀와 함께 가는 뒷모습을 보면 예전 나의 모습이 오버랩 되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순수했던  예전 모습을 찾고 싶어서.     왜 나는 30대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을까? 그때는 폴더용 휴대폰이라 사진도 많이 못 찍었다. 아이들이 주인공이고 나는 매일 애들 뒤꽁무니만 쫓아다녔던 거 같다. 이제 아득한 아기 엄마 때의 시절로 돌아가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영원한 31세로 살아야겠다.   문득 거울에 보이는 새치 때문에 슬퍼하지 말고, 팔자 주름이 펴지지 않는다고 괴로워하지 말고, 휴대폰 글자 크기를 키운다고 기죽지도 말아야겠다.   앞으로도 ‘포에버 40년, 50년’, 마음 먹은 대로 살면 되는 것 아닌가.  오늘 하루도 즐거운 추억을 만들며 즐겁게 보내야겠다. 이선경 / 독자문예 마당 마음 수필 아기 엄마 사랑싸움 때문 30대의 엄마들

2024-03-14

[수필] 시들어도 꽃은 꽃이다

‘한겨울에 밀짚모자 꼬마 눈사람.  눈썹이 우습구나! 코도 비뚤고. 거울을 보여줄까 꼬마 눈사람.’                     겨울이 되니 나도 모르게 이런 옛날 동요가 저절로 흥얼거려진다. 나이와 상관없이 마음은 아직 동심의 세계를 헤매고 있나 보다. 가끔 나는 내 나이를 잊어버리고 화장대에 앉아 보이는 여인의 얼굴이 낯설어지기도 한다.     언제부터 생긴 것인지 왼뺨에 희미한 반점이 여러 곳 보인다. 입술 언저리에는 아무리 화장품을 발라도 자글거리는 주름살들이 결단코 자리를 비켜 주지 않고 좌정하고 있다. 마음은 차마 청춘이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이렇게까지 늙었다고 느끼지는 않았는데, 어느 날 거울 앞에서 내 모습에 절망한다. 아! 이젠 아주머니가 아니고 할머니구나.  손자가 여러 명 있으니 진짜 할머니인 것은 틀림없지만, 누군가 할머니하고 부를 때면 나는 못 들은 척 한다. 나를 부르는 소리인데도….   사실 말이지 식당에 갔을 때, 웨이트리스가 “어서 오세요, 할머니” 보다 “아주머니”라고 할 때 좀 듣기가 괜찮다. 괜한 주착인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탱탱하던 볼이 호물호물해지며 때깔 곱던 손등에 굵은 심줄이 돋아 값비싼 반지를 끼워도 어색하기만 하여 보기 민망하다. 마음은 갓 잡아 온 물고기처럼 팔팔한데 마음과 몸이 함께 가지 않고, 마음 따로 몸 따로 놀면서 굵은 나태가 느직느직 거리는 몸이 한심스럽다.   젊은 날, 나이 많은 어른을 뵈면 저분들은 겉모습처럼 마음도 늙었겠구나 하고, 나는 절대로 저렇게 꼬부랑 할멈은 안 될 거야 했다. 그러나 세월이 누구를 차별하고 특혜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나라고 팽팽한 젊음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느냐 말이다. 공연히 쓸데없는 권위의식 같은 것 부리지 않고 알량한 설교 따위로 젊은이들의 눈총 맞으며 꼰대 소리 듣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   그러면서도 쉽게 노여워하고 걸핏하면 삐지기를 잘하는 감정은  늙은이의 안쓰럽기까지 한 철딱서니 없는 옹졸한 감정인가 한다. 겉으로는 의젓하고, 너그럽고, 이해심 많은 노인네로 알아주기를 원하지만, 속마음에 똬리를 틀고 있는 외로움이나, 소외감은 나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열등감 같은 게 부글부글 끓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자고 마음은 늙지 않고 육체만 늙느냐 말이다. 안팎이 달라서 뒤집어 입을 수도 없는 옷처럼 때론 자신도 난감할 때가 있다. 어느 날, 아들하고 백화점에 갈 기회가 있었다. 잡동사니들을 사고 난 후, 한 편에 한국산 옷들이 걸려 있기에 발길을 그쪽으로 돌렸다가 브래지어를 한 개 샀다. 계산대를 지나 걸어 나오던 아들이 “엄마도 그게 필요해요”라고 했다. 늙은 엄마는 이젠 여자도 아닌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주름이 자글거리는 엄마, 허리까지 약간 휘어진 늙은 여인, 아들 눈에는 엄마가 중성으로 보이겠지 하면서도 섭섭했다. 마음만 이팔청춘이면 뭘 해, 비싸고 예쁜 옷으로 휘감고 덕지덕지 화장품 떡칠을 해도 자글거리는 터키 목주름은 ‘늙었다고’ 나팔 불고 있잖은가.     지금은 성형외과에 가서 재건축하여 몇십 년 젊은 사람으로 둔갑도 한다지만, 고린 전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여염집 여인이 살, 기름 빠져 주굴 거리는 얼굴에 많은 돈 들여 재포장하는 일이 그리 쉬운가.         하나님이 인생을 그만큼만 살고 오라고 정하신 기한이 있을 거다. 그래서 사람은 나이가 들면 육신이 힘을 잃고 살가죽은 찌그러지고 힘도 빠진다.     뉴질랜드 산 사슴뿔로 만든 명약을 먹어도 나이는 숨길 수 없다. 새해 인사가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다. 그 소리가 전에는 고맙고 듣기 좋았는데 나는 그런 소리가 별로다. 오래 건강하면 다행이지만, 낡은 뼈는 삐끗거리며 피둥거리던 살갗은 부대조각처럼 퍼석거린다. 거기다가 더 늙어 대소변을 못 가려 남의 손에 의지해야 한다면 죽는 것만 못하다. 너무 오래 살면 우선 자식들에게 부담을 준다. 아니면 양로원에 가서 하늘만 쳐다보고 누웠다, 앉았다 할 꼴을 상상하면 치가 떨린다.   옛날엔 육칠십만 살아도 환갑,진갑 다 지나 장수했다고 하고 적당한 때에 죽었으니 가는 이나 보내는 이나 모두 섭섭하고 슬픈 아름다운 이별을 했었다. 그러나 늙은이가 백 살을 살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장수라는 것은 좋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좀 아닌 것 같다.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하는 덕담이 듣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아는 분이 어떤 이해득실에 걸린 재판에서 졌다고 했다. 그래서 그분은 마지막 인사를 이렇게 했다고 한다. ‘백삼십 살까지 살면서 잘해 보라고’     그 말은 저주였다. 쭈그러들고 청포묵처럼 흐물흐물해진 넓적다리가 지탱해주고 있는 몸, 힘은 빠졌어도 마음은 따라서 늙지 않고 남은 생을 꼬치에서 곶감 빼 먹듯 살아가는 늙은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자식들은 엄마는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그냥 엄마일 뿐이다.  김명선 / 소설가수필 엄마 허리 꼬마 눈사람 터키 목주름

2024-02-29

[이 아침에] 산과 바다가 만나는 곳

“로렌 엄마가 돌아가셨대.” 딸아이는 가장 친한 친구 엄마의 죽음을 허망한 목소리로 알려왔다. 이웃에 살던 로렌과 딸은 같은 중학교에 다니면서 친해졌다. 아침에는 우리 집에서 두 아이를 학교까지 태워줬고, 집에 올 때는 로렌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로렌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멀리 이사 갔다. 로렌의 부모가 일하는 마켓이 토팽가이기에 진작에 이사를 하였어야 했는데, 로렌이 대학 갈 때까지 기다렸단다. 대신에 그동안 로렌 부모는 토런스에서 토팽가까지 매일 그 먼 거리를 출퇴근해야 했다. 샌타모니카를 지나 말리부로 이어지는 태평양 연안 도로에서 우들랜드힐스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 동네가 토팽가다.     로렌의 부모도 여느 한인 이민자들처럼 토팽가에 있는 마켓에서 성실히 일했다. 그 가게는 일 년 열두 달 문 닫는 날이 없었다. 추수감사절에도, 성탄절에도, 새해 첫날에도 그 마켓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바깥출입을 삼갈 때도 그 가게에만 가면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부지런히 일한 덕에 집도 장만했고, 로렌도 대학생이 되어 조금 삶의 여유를 누릴 만 하게 되었는데 암이 발견됐다. 수술을 받기에 너무 늦었다고 했다. 병원에 몇 번 들락거리는 사이에 손쓸 틈도 없이 로렌 엄마는 남편과 두 아이를 두고 황망하게 하늘나라로 떠났다.     장례 예배의 집례를 맡았다. 가족들은 장례식장에 그리 많은 사람이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장례를 조촐히 치르길 원했다. 그러면서 혹시 토팽가에서 가게 손님들 몇 명이 올 것 같은데,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막상 장례 예배가 시작되자 예배당은 토팽가에서 온 가게 손님들로 가득 찼다.   장례 예배 중간에 혹시 고인과의 기억을 나눌 분이 있으면 나누어 달라고 부탁했다. 여러 사람이 나와 고인과의 추억을 나누었다. 그들은 대부분 로렌 엄마가 일하던 마켓의 손님들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로렌 엄마의 미소를 잊을 수 없다고 했고, 자신들을 손님이 아니라 가족으로 대해주었다고 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그들이 고마웠다. 토팽가에서 장례 예배가 드려지는 로즈힐까지 한 시간 넘게 달려와서 평생 열심히 일만 하다 떠난 한 이민자의 삶을 기억해 주는 그들이 너무도 고마웠다. 그들에게 가족을 대신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당신들 때문에 그녀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알게 되어 감사하다고 했다.     로렌 엄마가 일하던 토팽가는 태평양 연안에 살던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의 언어로 ‘산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토팽가가 샌타모니카 산맥 중간에서 태평양 바다를 마주 보고 있기에 그런 멋진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마흔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로렌 엄마에게 토팽가는 산과 바다가 만나는 곳만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만나는 곳은 아니었을까? 아니 우리가 사는 바로 그 자리가 삶과 죽음이 만나는 경계일지도 모른다. 삶은 영원하지 않고, 언제든 죽음으로 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 경계를 지나는 발걸음은 조심스러워야 마땅하다. 인생의 가장 큰 신비인 삶과 죽음을 사이에 두고 걷는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도 삶과 죽음의 경계인 인생길을 잘 걸어야겠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바다 로렌 엄마 태평양 바다 대부분 로렌

2024-01-31

한인 작가, 아픈 세상을 보듬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배우 겸 래퍼인 한인 아콰피나의 연기력과 존재감을 세상에 알렸던 영화 ‘페어웰’(2019)로 주목받았던 룰루 왕 감독 연출의 미니시리즈 ‘엑스팻츠’는 한인 소설가 재니스 리가 4명의 자녀를 기르면서 체험한 모성애를 바탕으로 5년에 걸쳐 집필한 소설 ‘The Expatriates’(2016)가 원작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교포 또는 주재원을 뜻하는 ‘Expats’는 홍콩에 거주하는 3명의 미국 여성에 관한 6부작 드라마다.     역사의 전환점인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2014년경의 홍콩. 아메리칸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신분, 가정환경, 성장 배경, 경제적인 여건 등이 판이한 세 명의 여성이 우연히 만나 서로 교류하며 각자 삶에 영향을 미치면서 극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그린다.     뉴욕 퀸스 출신의 한인 2세인 머시(유지영)는 컬럼비아대 출신임에도 임시직을 전전하다 새 출발을 다짐하며 홍콩으로 건너온 24살의 싱글 여성이다. 우아한 중년의 백인 여성 마거릿(니콜 키드먼)은 배려심 많은 한국인 남편과의 사이에 3명의 아이를 두고 있다. 마거릿의 이웃인 힐러리(사라유 블루)는 상속받은 유산으로 부를 누리고 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해 고여있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마거릿의 남편은 머시에게 육아 도우미를 부탁하고 머시는 힐러리의 남편과 관계를 맺는다. 그러던 중 마거릿의 막내아들이 실종된다. 마거릿 부부와 머시는 일생일대의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함께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그토록 아기를 갖고 싶어하지만 임신이 불가능한 힐러리, 그녀의 남편과의 관계로 원치 임신을 하게 되는 머시,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려 일상이 뒤엉켜 버린 마거릿, 이들은 씨줄과 날줄이 서로 교직하듯 한동안 서로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만남을 이어간다.   세 여성의 각기 다른 정체성과 관점, 그리고 가족 간의 깨어진 관계들. 모성애의 슬픈 한 구석, 그들의 지친 영혼과 비극 뒤에 찾아오는 용서와 화해. 그러나 이 모든 걸 이전 상태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면.   “내 새끼가 애를 낳는다고. 다 괜찮을 거야, 엄마가 있잖아. 이제 애 생각해서 밥도 잘 먹어야 해.”     어머니의 이 한마디에 부서지고 깨어진 머시의 영혼이 위로받는다. 드라마는 그 모든 답 없는 상태의 모성의 오류들에 한국적인 정서로 답을 제시한다. 머시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임신한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러나 태어날 생명을 축복으로 안아줄 준비에 분주하다.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한인 엄마 한인 소설가 여성 마거릿 한인 작가

2024-01-26

[글마당] 사찰 가는 길

“돈 잘 버는 너희들도 경비 쓰며 엄마와 아빠 데리고 여행할 수 있지 않니?”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돈을 대고 여행하면 지금처럼 즐겁지는 않을 것 같아요.”   기분이 언짢아지며 한참을 생각하게 하는 대답이다. 나도 친정아버지와 여행할 때 아이들과 같은 마음이었기에 누구를 탓하랴. 다 내 탓이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2시간 30분 만에 부산 서면에 갔다. 첫날부터 남편은 해물탕집으로 가자고 우겼다. 뉴욕서 맛본 해물탕과는 모습도 맛도 달랐다. 온갖 해물을 넣은 커다란 솥이 불에 올려졌다. 살아 숨 쉬는 해물들이 움직거렸다. 아줌마가 가위로 꿈틀거리는 낙지를 몬도가네식으로 마구 잘랐다. 우리는 식욕을 잃고 조용해졌다. 남편 혼자서 부어라 마셔라, 신나서 떠들었다. ‘아빠가 여행경비를 다 지불하니까.’ 아이들은 서로 말하며 아빠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KTX를 타고 30분 만에 경주에 갔다. 여기저기 펼쳐져 있는 둥근 거대한 왕릉이 신기했다. 세상천지에 이런 모습의 고적지는 없을 것이다. 선조들과 지나친 전생을 둘러보는 느낌이랄까? 숙연해졌다. 안압지를 둘러보고 숲속에 누워 쉬려고 했다. 불국사는 꼭 봐야 한다고 급히 불국사로 향하는 남편 등에 대고 “아이고 여행은 고행이구나!” 내가 외쳤다.   불국사에 도착하자 엄마 따라 절에 들락거리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엄마와 스님이 한동안 소곤거리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나면 엄마가 시줏돈을 내밀었다. 스님은 우리 가족 이름이 적힌 등을 천장 밑에 매달았다. 나는 옆에서 엿듣다가 스님이 바쁜 틈을 타서 “엄마, 왜 스님에게 돈을 듬뿍 주는 거야?”하고 끼어들었다.     “어른들이 하는 일에 조그만 것이 참견이나 하고.”   야단맞고 사찰 마당으로 쫓겨나 반찬 두 가지와 국이 나오는 맛있는 절밥을 기다리며 우리 엄마 예쁜 하얀 고무신을 다른 사람이 신고 갈까 봐 지키며 놀았다.     그 옛날 엄마와 갔던 사찰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월 초파일도 아닌데 절 안이 무지개색으로 울긋불긋, 절을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을 정도로 현란하다. 마당 이곳저곳에 신자들의 이름이 적힌 꼬리표가 달린 국화 화분이 널려있다. 지붕 밑은 말할 것도 없고 마당에 기둥을 세우고 화려한 깃발들이 하늘을 가렸다. 곳곳에 보살들이 앉아 시주받았다. 그들을 관리하는 우아한 보살이 시주할 만한 사람들을 눈여겨보는 모습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비즈니스 하느라고 바빴다.     어제 갔던 양산에 있는 통도사도 야단법석이어서 사찰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그나마 개울을 끼고 걷는 통도사 가는 길은 좋았다. 한적한 흙길을 신발 벗고 걸었다. 발바닥이 무척 아팠지만, 몸에 좋다길래 해봤다. 막상 사찰에 들어서니 불국사와 마찬가지로 무지개색 난발이 눈살을 찡그리게 했다. 물론 금전 없이는 사찰을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건물이 가릴 정도로 시주를 받은 쪽지가 사방팔방에 나부끼는 데는 사진에서 본 고적한 사찰 모습과 전혀 달랐다. 하기야 그 오랜 수난의 세월을 버티며 향화를 지킨 것만으로도 만족해야겠지?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사찰 사찰 마당 사찰 모습 옛날 엄마

2024-01-12

[독자 마당] 엄마의 일기

막내가 6년째 투병 중이다. 외국 여행을 갔다 쓰러져 의사의 소생 불능 진단을 받았지만 형제들이 지극 정성으로 미국에 데려왔고 1년여의 재활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후유증은 심각하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호전될 기미는 없다. 더 큰 문제는 내가 90세를 바라보는 고령이다 보니 그 아이를 보살피기가 점점 힘에 부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내의 투정은 여전하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은 먹지 않고 몸에 해로운 것만 찾는다. 약도 먹기 싫은 것은 골라내 놓는다. 야단도 쳐보고 달래도 보지만 효과가 없다. 당뇨가 심해 저혈당이 올까 봐 굶겨서는 안 되니 식사 때면 아기 다루듯 애가 탄다.   그러나 형제들은 입장이 다르다. 아이 비위만 맞추니 점점 더 버릇이 나빠져 엄마만 고생한다고 도리어 타박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능한 엄마의 행색이다.     며칠 전부터 어깻죽지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점점 심해져 온 등으로 퍼지고, 이어 목과 머리까지 올라왔다. 서 있기도 힘들고 어지럽기도 하다. 혈압도 높아졌다.     결국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X레이부터 온갖 검사를 다 했다. 그런데 심장도 폐도 머리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결론은 스트레스성 신경 근육통이라고 했다.  주치의는 힘든 일 하지 말고, 좀 쉬면 회복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은 소소한 집안  일 정도다.  빨래는 세탁기가, 밥은 전기밥솥이 해 주고 집 청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사람이 온다. 내 일은 막내 돌보고 화단에 물 주는 정도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마음과 생각은 온통 막내 곁에 맴돌고 있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임을 깨달았다. 아무리 생활 환경이 편안하고 편리해도 마음에 짐이 있다면 어깨를 짓누르는 그 무게감이 스트레스라는 강적으로 다가온다.  노영자·풋힐랜치독자 마당 엄마 일기 스트레스성 신경 심해 저혈당 병원 응급실

2024-01-09

"아이 넷 엄마…도와줘요"…팻말든 걸인, 사기 조직원

프리웨이 진입로에서 동정심을 자극하는 문구가 적힌 팻말로 도움을 청하는 걸인들이 범죄조직의 일원일 수 있다고 당국이 경고하고 나섰다.   5일 NBCLA뉴스에 따르면 어바인 경찰국은 주민들로부터 돈을 갈취하는 사기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어바인 스펙트럼 내 타겟 매장에서 한 여성이 가짜 EBT(Electronic Benefits Transfer)카드로 아기 분유 40통을 구매하려다 적발됐다.   가짜 EBT카드는 보통 여러 개의 서로 다른 기프트카드나 다른 사람들의 도용된 카드들로 만들어진다고 당국은 전했다. 특히 아기 분유의 경우 소매 범죄 조직들에 인기 아이템으로 도난이 많다고 설명했다.   더 문제가 된 것은 이 여성의 차 안에서 발견된 팻말이었다. 경찰이 여성의 차를 수색하면서 발견한 팻말에는 “장미를 팝니다. 음식을 위해 도와주세요. 4명의 아이를 둔 엄마. 신의 축복을!”이라는 구걸 문구가 적혀 있었다. 또한 차 안에서는 4000달러의 현금도 함께 발견됐다.   어바인 경찰국 캐리 데이비스 서전트는 “여성이 주로 프리웨이 오프 램프나 랄프스 등 마켓 주차장에서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할 때 썼던 팻말이었다”고 설명했다. 용의 여성은 절도 및 신원 도용 혐의로 이날 체포됐다.   당국은 이 여성 용의자가 ATM 스키밍(skimming) 수법으로 허위 EBT 카드를 만드는 범죄 조직의 일원으로 보고 있으며, 해당 조직원들 역시 여성처럼 구걸 행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지난 4일에도 같은 타겟 매장에서 허위 EBT카드로 아기 분유 구매를 시도한 사건이 재차 발생해 현장에 출동했다고 전하면서 사건의 배경과 연루된 인물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데이비스 서전트는 “음식과 같은 물품을 제공하거나 비영리 단체에 기부함으로써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또 정신건강 커뮤니티헬스팀에 연락해 대응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장수아 기자조직원 엄마 걸인 사기 해당 조직원들 사기 범죄

2024-01-05

[이 아침에] 88세 할머니의 덕질

한국의 동생이 카톡을 했다. 가수 임영웅이 필리핀에서 상을 받는데 엄마가 거기에 가고 싶어 해서 고민이란다. 동생은 아이들 방학을 맞아 취소할 수 없는 여행계획이 있다나. 개인 콘서트라면 나라도 한국에 나가 모시고 가겠지만 수상식이라니 노래 한두 곡 하는 것이 다일 텐데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핑계를 찾는다. 동생에게 부모님 시중을 떠맡겨 온지라, 마음이 개운치 않다.     콘서트에 몇 번 가본 후 엄마의 덕질은 시작됐다. TV에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신세계란다.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다. '피케팅(피가 튀는 전쟁터와 같이 치열한 티케팅)'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컴퓨터 속도로는 어림도 없고 광속을 자랑하는 피시방에서 ‘피케팅’을 해야 한다.     서울에서 표를 구하기는 불가능했다. 미국은 조금 수월해서 LA공연 표를 구해 다녀가셨다. 암표 살 돈이면 우리도 만날 겸 미국에 오는 게 훨씬 경제적이란 계산이다. 가수의 팬클럽 ‘영웅시대’에서 나온 하늘색 후드티를 입고 행여 깨질까 여러 겹 조심스레 싸 온 응원봉을 꺼낸다. 응원봉은 공연장 필수 아이템이라 비싸지만 계속 사용할 테니 샀단다. 평생 엄마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우리는 깔깔 웃었다. 거울을 보며 희미한 눈썹을 새로 그리고 립스틱을 바른 후 공연장인 코닥극장으로 갔다.   엄마는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돌아가실 때까지 혼자 돌볼 만큼 건강하지만, 구순을 바라보는 노인이다. 등도 굽고 쪼그라든 엄마에게 세월이 보여 안쓰러웠는데, 덕질을 시작하며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힘들어하던 스마트폰 사용도 가수의 팬이 되면서 금세 익혔다. 여러 유튜버에게 얻은 정보를 지치지 않고 부지런히 전한다. 노래 실력도 좋지만, 예의 바르고 성품이 훌륭하다고 칭찬이 끊이지 않는다. 일찍 혼자되어 고생하며 외아들을 키운 가수의 엄마와 가수가 대견하고 애틋하단다.   나이 들며 재미있는 일도, 감동할 일도 줄고 매사에 시큰둥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엄마를 보면 나이는 진정 숫자에 불과하다. 아버지 떠난 빈자리를 손주 나이의 가수가 채워서 허전함을 위로받는다. 누구보다 사리 분별 명확하고 이성적이던 엄마의 뒤늦은 덕질이 당황스럽다.     나는 팬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학창 시절에도 흔하던 브로마이드를 벽에 붙여본 적 없고 하다못해 연예인 얼굴을 코팅한 책받침도 없었다. 요즘 유행하는 BTS의 인기곡이 무엇인지 멤버가 몇 명인지 당최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메마른 내가 비정상인가. 내가 몰두할 열정과 호기심은 어디 있을까.   세월은 얼굴에 주름살을 남기지만 우리가 열정과 흥미를 잃을 때 영혼이 주름지게 된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어려운 일 있을 때마다 항상 뜨거운 응원과 격려로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해주던 씩씩한 엄마,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부디 아프지 말고 계속 영웅이를 벗 삼아 오래도록 우리 곁에 계셔주세요. 최숙희 / 수필가이 아침에 할머니 덕질 가수 임영웅 평생 엄마 스마트폰 사용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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