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마당] 멋모르고 살았다
나는 멋모르고 엄마가 되었다. 뒤돌아보면 아찔하다. 멋모르면서 살아온 것이 내 인생인 것 같다. 그래서, 새삼, 부끄럽기도 하고, 인생의 묘미함에 놀랍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다. 진심이다. 누구에게 미안하냐고 물어 온다면, 많은 해당 인물이 있다. 전능하신 분에게도 역시 그렇다. 그렇지만, 감사하다. 따져보면,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그 자체가 뭣 모르고 생긴 일이 아닌가 싶다. 부모님이 내 의사를 묻지 않고 강제로 세상으로 데리고 나오셨으므로, 나는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언니가 졸업한 중학교에 가라 해서 뭣 모르고 그리했다. 이어서 언니가 졸업한 대학, 같은 학과로 진학하라 하셨다. 그때에는 내가 좀 철이 들었기에 곰곰이 들여다보았더니, 내가 전공할 과목은 아니었다. 여자답고, 조신하고, 예쁘고, 숙녀라는 칭찬을 들으면서 컸던 언니는 그에 적합한 가정학을 전공했다. 가정경제, 음식의 역사와 개발, 한국 의복의 개조, 여성과 소아의 예절 같은 한국 사회에 필수적인 분야들이긴 했으나,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그런 분야에 관심이 없었다. 말괄량이, ‘돌에 돌 치기’하듯 어른들에게 말대꾸도 두 번 생각하지 않고 하여대는 버릇없는 아이, 게다가 반짝이는 좋은 인물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언니의 모교로 진학했지만, 의과대학에 입학했고, 의사가 되었다. 의사가 되려는 사명감 같은 것은 없었다. 뭣 모르고 걷게 된 길이었다. 그리고 더 큰 일을 저질렀다. 한 남자한테 반해서 그 남정네랑 함께하는 삶을 택하고 그의 마누라가 되었고 함께 한국을 떠나 미국에 공부하러 왔다. 우리는 용감했었던 것 같다. 이어서 뭣 모르고 아이들을 세상에 데리고 나왔다. 삶이 고달픈 것을 알기에, 미안하다. 그뿐이랴! 뭣 모르고 한국어진흥재단 이사가 되었다. 그리고 또 뭣 모르고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까지 되었다. 내가 걸어 온 길은 잘 포장된 곧은 도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철없이 걸었기에, 길이 안전한지, 주위가 멋있고 아름다운지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꼬불꼬불, 울퉁불퉁한 길도 많았을 터이다. 돌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무릎이 까져 피가 나고, 부주의로 벌에 쏘이기도 했을 터인데, 기억나지 않는다. 잊기로 작심을 했었던 것인가. 그러나 나는 감사한다. 뒤돌아보면 나는 디아스포라 한국계 미국인으로, 양쪽 문화와 역사 속에서 숨 쉬어 왔다. 엄청난 모험을 반세기 전에 시도한 탓이다. 몇몇 곳에 임시로 정착할 때마다, 주위에는 한국분들, 비한국계 친지들이 함께해 주었다. 지금도 지속하는 문화의 섞임이 허용된 풍성한 디아스포라의 삶이다. 20세기 초, 일제 강점기 때부터 대다수 우리 조상들의 이주(移住)는 시작되었다. 그들은 러시아, 일본, 미국, 멕시코, 유럽 등 곳곳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이루었다. 어디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든지 간에, 그분들은 반드시 두 가지 일을 했다. 그중 하나는 후세들에게 한글을 가르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를 중심으로 한인 커뮤니티를 만든 것이다. 그 공동체 안에서,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도우며 어려움을 어렵지 않게 해결하고, 문제가 될 법한 일들을 문제로 삼지 않고 과제로 삼고 살아왔다. 그들은 정답을 찾기보다 해답을 알았고, 그 해답을 현명하게 실행하며 살았을 것 같다. 비록 멋모르고 철없이 시작했던 새로운 길에서, 겸손을 배웠다. 환자들을 돌보면서 성실함을 익혔다. 그들이 어깨에 지고 걸어왔던 인생의 짐 보따리는 내 것과 다를 바 없이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었기에, 그것들을 내려놓도록 도왔다. 멋모르고 시작한 한국어진흥재단의 일 또한 나를 겸손하게 하였다. 선배들은 한국어진흥재단과 함께 그 특별하고 힘든 길을 쉼 없이 걸어왔다. 한글을 퍼트리고, 세계인들이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물꼬를 트기도 했다. 우리 한국인들이 영어를 배웠던 것처럼, 세계인들도 한글을 배우는 것에 촉진제가 되었고, 그런 일에 헌신했다. 하고 나는 드디어 떠나온 모국의 ‘간접적 애국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멋모르고 시작하고, 멋모르고 살아온 나에게는 서로 꼬면서 한 몸체를 만드는 한국인의 두 유전자 실마리가 존재한다. 나의 아이들도 멋모르고 살고 있을지 모른다.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꼬임을 잘 이루고 있는 유전자의 두 실마리가 그들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류모니카 / 수필가문예 마당 수필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한국분들 비한국계 우리 한국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