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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포커스] ‘테무’의 급성장과 ‘99센트 온리 스토어’ 폐업

골프 셔츠가 8달러, 스니커즈 20달러, 자동차 대시 캠 50달, 휴대폰 케이스 35센트…. 폐업 세일 현장이 아니라 ‘초저가 상품’의 대명사인 온라인 쇼핑몰 ‘테무(Temu)’의 판매 가격이다. 이런 믿기지 않는 가격 탓에 초기엔 혹시 사기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테무 쇼핑’에 빠지는 소비자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워낙 다양한 품목을 저렴한 가격에 팔다 보니 한번 발을 들이면 헤어나기 어렵다. 조금 과장해서 서민도 백만장자처럼 쇼핑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간파한 것인지 테무가 수퍼보울 광고에서 내세운 카피도 ‘억만장자처럼 쇼핑하라’였다.     테무 앱의 다온로드 숫자는 이미 아마존이나 월마트를 앞질렀다는 분석이다. 미국에서만 사용자가 1억 명을 넘어섰고, 지난해엔 매출 160억 달러를 기록했다. 2022년 9월 출범 이후 1년 여 만의 성과다. 이미 쉬인·알리 등 경쟁 업체를 추월하고 절대 강자인 아마존을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     테무의 최대 무기는 역시 가격 경쟁력이다. 테무라는 이름 자체가 ‘협력을 통해 가격을 낮춘다(Team up, Price down)’는 모토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런 초저가 판매 전략은 모기업이 핀두오두오(Pinduoduo)라는 중국 기업이기에 가능하다. 그런데  아무리 ‘세계의 공장’에서 상품을 조달한다고 해도 ‘이 가격에 팔아 수익이 날까?’ 싶을 정도다. 전문 업체의 분석에 따르면 역시 팔면 팔수록 손해라고 한다. 판매 제품당 평균 7달러 정도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는 것이다. 광고비도 엄청나게 쏟아붓는다. 이미 온라인 광고 시장에선 최대 광고주 위치에 올랐다. 올해 지출할 광고비도 30억 달러에 달할 정도다.      막대한 광고비를 쓰면서도 판매는 원가 이하, 경영 원칙과는 거리가 먼 전략이다. 그러면 왜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것일까? 테무의 목표는 미국 온라인 소매시장 장악이다. 가격 경쟁력으로 경쟁자들을 따돌리면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이런 전략이 효과를 보는 듯하자 아마존도 테무를 의식하기 시작한 눈치다.    그런데 ‘테무 폭풍’이 오프라인 시장을 먼저 덮치고 있다. 저가 상품 판매 업체들의 매출 하락이다. 최근 ‘99센트 온리 스토어’의 폐업 발표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업체 측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원가 상승, 인건비 인상, 절도 피해 급증 등을 이유로 꼽지만 경쟁 구도가 달라진 것이다. 달러 트리, 달러 제너럴 등 대표적 저가 상품 판매 업체들의 매출이 동반 하락하는 것이 이를 말해 준다.     테무 상품에 대한 논란도 많다. 소비자보호국 등에 가장 많이 접수되는 불만이 안전성과 품질 문제라고 한다. 어떤 재료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제품인지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 제품에 대한 설명 부족 불만도 있다. 막상 제품을 받아보니 기대했던 것과 다르더라는 주당이다. 이런 영향인지 제품에 대한 만족도는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가격이 워낙 저렴하다 보니 소비자들은 이 정도의 불만은 감수하는 듯하다.     테무의 출혈 전략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무한정 자금을 쏟아부을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지금은 가격 경쟁력이 최고의 마케팅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품질보다 가격에 더 민감하다. 여기서 테무의 출발 시점을 돌아보자. 테무가 영업을 시작한 2022년 9월은 인플레가 극심하던 시기였다. 당연히 소비자의 구매력은 급속히 약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파격적으로 저렴한 온라인 쇼핑몰의 등장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만했다.     테무처럼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경쟁에서 이기려면 ‘원가 절감’ 방법은 찾아야 한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급성장 스토어 온리 스토어 온라인 쇼핑몰 판매 제품당

2024-04-11

[뉴스 포커스] ‘시간 당 최저 임금 20달러’ 정말 지나친가

물가와 임금은 대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물가가 오르면 임금도 따라 올라가는 구조라는 의미에서다. 만약 물가는 올랐음에도 임금 수준이 제자리라면 실질임금의 감소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임금 생활자의 ‘삶의 질’은 나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물가와 임금 수준의 이상적인 교차점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이해관계가 상충하기 때문이다. 양측의 갈등 상황이 벌어지는 것도 이 지점에서다.   가주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업계에 난리가 났다. 대형 업체들은 4월1일부터 직원의 시간당 최저 임금을 20달러로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적용 대상은 기본적으로 가주를 포함해 전국에 매장이 60개 이상인 대형 업체들이다. 그런데 ‘패스트푸드 업체’의 개념을 두고 일부 혼선도 빚어지고 있다. 규정엔 ‘테이블 서비스를 하지 않고 고객이 음식을 먹기 전 계산을 하는 업소’ 등으로 되어 있지만 적용이 애매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주 정부 측은 ‘최저 임금 20달러’ 적용 대상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매장이 3만 개, 수혜 직원은 55만7000명 가량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당연히 대상 업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최저 임금을 한 번에 25%나 올리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인건비 상승 부담을 줄이려면 앞으로 감원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미 가격을 올렸거나 직원을 해고한 업체도 있다. 소규모 요식업소 업주들도 덩달아 고민이다. 적용 대상에선 빠졌지만 어떤 여파가 미칠지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저 임금 20달러’는 정말 과도한 수준일까? 필자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30여년 전 LA의 시간당 최저 임금은 4.25달러였다. 당시 레귤러 개스의 갤런당 가격은 1달러 안팎,  LA한인타운의 웬만한 2베드룸 아파트 월 임대료는 500~700달러 수준이었다. 한 시간 일한 최저 임금으로 자동차에 개스 3.5갤런을 넣을 수 있었고, 2베드룸 아파트 렌트비를 벌려면 120시간 이상 일을 해야 했다. 이에 현재의 최저 임금 수준, 개스 가격, 아파트 렌트비 등을 대입해 보면 별반 차이가 없다. 임금 생활자의 ‘삶의 질’ 측면에서 보면 30여 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의미다.     지난해 인플레이션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때문 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기업들의 탐욕에 대한 비판이었다. 즉, 엔데믹으로 수요가 급증하자 이를 틈 타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기업들이 비용 증가 이상으로 판매 가격을 올린 것이 인플에이션 원인이라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심화로 가장 고통받은 것은 임금 생활자들이었다. 그러다 구인난으로 임금이 오르고 기업 수익률이 하락세를 보이자 기업을 옹호하는 측에서 ‘웨이지플레이션(Wageflation)’이라는 반발이 나왔다. 임금 상승률이 수익 증가율을 앞지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기업이 이익을 얻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은 다양하다.  인건비 외에 재료비용, 물류비, 감가상각비용, 금융비용 등도 필요하다. 세금과 에너지 비용도 포함된다. 기업의 수익률 하락 원인이 임금 상승 때문이 아니라 금리 인상으로 인한 금융비용 증가, 공급망 문제로 인한 재료비 상승 탓일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자동화 등을 통해 생산성이 개선되면서 기업의 인건비 상승 부담을 상당히 덜어주고 있다.     지난 1일 공화당 소속의 한 가주 상원의원은 “만우절 농담이 아니다”는 말로 시작되는 보도자료를 냈다. 시간당 최저 임금 20달러는 부정적 영향이 더 많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시간당 20달러를 받아도 소득은 가주 빈곤선을 조금 벗어나는 수준에 불과하다. 연방노동통계국이 밝힌 가주 4인 가족 기준 연간 최저 생계비가 3만6900달러이기 때문이다. 인상 전의 시간당 16달러로는 어림도 없다.  개빈 뉴섬 주지사가 지난해 9월 법안에 서명하며 “수혜자 대부분이 가장”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시간 임금 임금 수준 임금 생활자 최저 임금

2024-04-04

[뉴스 포커스] 제이비안의 꿈

그를 알 수 있게 된 것은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이다. 유튜브 영상들 가운데 그에 관한 것이 올라왔고, 그의 이름과 외모가 눈에 들어오는 바람에 클릭까지 하게 됐다. ‘혹시 한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의 이름은 제이비안 이(Xaivian Lee), 프린스턴대학 농구팀 소속이다. 올해 2학년인 그는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다.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 올 시즌 게임당 평균 17 득점, 어시스트 3.7개, 리바운드 5.7개를 기록했다. 프린스턴대가 속한 아이비리그가 강팀이 많은 곳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뛰어난 성적표다.     프린스턴대는 아쉽게도 올해 ‘3월의 광란(대학농구 토너먼트)’ 무대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시즌 24승5패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리그 토너먼트 결승에서 예일대에 지는 바람에 출전권을 얻지 못했다. 대신 ‘NIT’라는 다른 대회에 참가했지만 아쉽게도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이번 시즌 제이비안의 경기 모습을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나고 성장한 제이비안은 엄마가 한인이다. 그는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에 대해 ‘50% 코리안’이라고 밝힌다. 프린스턴대 교내 신문인 ‘프린스토니안’에 소개된 그의 별명도 ‘코리안 프라이드 치킨(Korean Fried Chicken)’이다. 어떤 연유로 이런 별명을 갖게 됐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정체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의 뒤에는 역시 ‘한인 엄마’가 있다. 토론토 지역에 거주하는 엄마 이은경씨는 시즌 중엔 격주로 아들의 경기장을 찾는다고 한다. 자동차로 편도 9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를 운전하고 다닌다. 자녀를 위한 것이라면 힘든 것도, 두려운 것도 없는 전형적인 ‘한인 엄마’의 모습이다. 하루 3가지 일을 하며 아들을 NFL(프로풋볼) 스타로 키워낸 하인즈 워드의 어머니 김영희씨의 열정도 그런 것이었다.       제이비안은 프로농구(NBA) 진출을 꿈꾼다. 그의 침대 옆에 설치된 보드에는 NBA 선수가 되기 위해 매일 해야 할 것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사실 그의 실력은 NBA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농구 전문가들은 그가 드래프트에 참여할 경우 1라운드는 아니라도  2라운드에서는 지명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 제이비안이 NBA 진출에 성공한다면 한인 이민사에는 또 하나의 기록이 만들어진다. 한인 최초의 NBA 선수가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NBA에서 잠깐 활약한 한인 선수가 있긴 하지만 그는 한국 출신이었다.     제이비안이 NBA 진출을 바라는 것에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한인은 물론 아시아계 청소년들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농구는 특히 아시아계에게 진입 장벽이 높은 종목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NBA 진출은 아시아계 청소년들에게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건’이 될 수 있다.       그는 ‘네버 투 하이, 네버 투 로우(never too high, never too low)’라는 문구를 좌우명처럼 여긴다고 한다. 이제 스무살이 된 청년치고는 참 의젓하다. 그가 본인의 좌우명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전진했으면 좋겠다.       한인 이민 역사가 쌓이면서 2,3세들의 진출 분야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들이 생각하고 활동하는 무대는 1세들의 것보다 훨씬 넓다. 그들은 1세들이 닦아놓은 토대 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1세의 잣대로만 그들을 평가하면 무리가 따르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는 의미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제이비안처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한인 차세대를 발견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그만큼 한인 사회의 밀도가 충실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제이비안 프린스턴대학 농구팀 한인 엄마 한인 선수

2024-03-28

[뉴스 포커스] 대선을 재미있게 관전하는 방법

“미국에도 이렇게 인물이 없나.”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은 한 지인이 푸념하듯 한 말이다. 그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고민이라고 했다. 누구에게 표를 줄 것인가가 아니라 투표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한다는 것이었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어느 정당에도 속하지 않은 무당파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마저도 없단다.          돌발 변수가 없는 한 올해 대선은 ‘리턴매치’로 치러지게 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대결이다. 첫 대결이었던 2020년 선거에서는 바이든이 이겼으니 트럼프로서는 설욕전인 셈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리턴매치’의 흥행은 출전 선수들의 인기에 비례한다. 과거의 명성만으로는 흥행에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데 올해 대선 리턴매치 출전 선수들의 인기가 별로다. ‘538’이라는 여론조사 사이트에 따르면 두 후보 모두 비호감 비율이 더 높다.  뻣뻣한 걸음걸이에 잇단말 실수, ‘기억력은 나쁘지만 악의없은 노인’이라는 조롱에 가까운 말까지 듣는 81세 현직 대통령과 4가지 사건으로 기소됐고 민사 소송까지 쉴새 없이 법원을 들락거려야 하는 77세 전직 대통령의 대결. 누가 이기든 4년간 미국이라는 나라를 잘 이끌 수 있을까? 냉소적인 유권자들이 갖는 의문이다.     2022년 중간선거 직후 ‘바이든-트럼프 재대결 성사될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었다. 바이든, 트럼프 모두 출마를 공식화하기 전이다. 선거가 2년 이상 남은 상황에서 이런 예상을 했던 것은 양당 모두에서 차기 인물군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흐르고 예상은 현실이 됐다. 별 저항 없이 두 사람 모두 손쉽게 본선 무대에 올랐다.      선거란 참 모를 일이다. 2년 전 중간선거도 그랬다. 선거 전에는 공화당의 압승이 예상됐다. 중간선거는 야당의 시간인 데다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워낙 낮았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연방 상하원을 모두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공화당은 하원 다수당 탈환에 만족해야 했다. 그때 공화당 일부에서 나온 것이 트럼프 책임론이었다. 검증되지 않은 후보들이 ‘트럼프의 지지’만 등에 없고 나섰다 실패한 것이 원인이라는 지적이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쉽게 ‘대선 후보’ 타이틀을 따냈다. 전직 대통령이 다시 대선에 나서는 것은 그야말로 희귀한 일이다.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이후 112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사실 한번 대선 후보로 나왔던 인물이 재도전하는 경우도 드물다.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 쟁쟁한 후보군이 새로 부상하고, 그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 정계의 관례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인 배출 구조는 상당히 합리적이다. 기초부터 다져 올라가는 게 일반적이다. 시, 카운티 등 로컬 정부 단위의 선출직으로 출발해 주, 연방으로 범위를 넓혀 간다. 많은 정치인이 주민들과의 접촉면이 넓고 즉흥 연설에 능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다른 길을 걸었다. 부동산 사업가에서 곧장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그가 대선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생각한 것도 이런 사업가적 기질이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그는 정치 문화보다는 비즈니스 환경에 더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한다.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면 굳이 정치 문화를 따를 이유도, 정치적 경쟁자를 배려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반면, 바이든은 카운티 의원에서 시작해 연방상원의원, 부통령 등을 거쳐 대통령까지 올랐다. ‘엘리트 정치인 코스’를 밟아온 셈이다.      올해 대선에 관심이 없다면 ‘정치인 vs 사업가’ 구도로 후보의 공약을 분석해 보는 것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방법 아닐까 싶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대선 관전 대선 후보 대통령 선거 트럼프 재대결

2024-03-07

[뉴스 포커스] 증시 주무르는 이민자 CEO들

요즘 뉴욕 증시를 견인하는 것은 ‘매그니피센트 세븐(Magnificent Seven, M7)’으로 불리는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의 주가 움직임에 증시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이 그룹에는 최근 가장 뜨거운 엔비디아를 비롯해 애플, 아마존, 알파벳(구글 모기업), 메타(구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등이 포함된다.     M7으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 시가총액 1위인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6위까지가 이들 차지다. 가장 순위가 낮은 테슬라도 10위 권이다. M7의 시가총액을 합하면 13조 달러(이하 2월 말 기준)가 넘는다. 미국 500대 기업의 시가총액을 합한 것이 42조 달러니, M7의 비중이 30%나 된다. 해외 증시와 비교하면 규모는 더 선명해진다. 미국을 제외하고 상장 기업 전체의 시가총액이  M7보다 많은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수익 규모도 엄청나다. 도이치뱅크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G20 국가 가운데 상장 기업 전체의 수익이 M7보다 많은 곳은 중국과 일본밖에 없을 정도다. 당연히 M7의 주가 상승률은 전체 평균을 크게 앞지른다. 한마디로 지금은 M7이  미국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셈이다.     M7에는 IT기업들이라는 것 외에 한 가지 특징이 더 있다. 이민자 출신 CEO(최고경영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7개 중 4개 기업의 CEO가 해외 출생자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리, 알파벳의 순다르 피차이, 엔비디아의 젠슨 황,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주인공들이다. 나델리와 피차이는 인도, 황은 타이완, 머스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다. 나델리와 피차이, 머스크는 유학생으로, 황은 초등학생 때 미국에 왔다. 굳이 우리 기준으로 보면 황은 1.5세, 나머지는 1세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에게도 ‘이민자’ 꼬리표는 약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최고 기업의 CEO 위치까지 올랐다. 당연히 이들의 출중한 능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버티는 것만도 성공이라는 IT업계 생태계를 고려하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황의 말처럼 끝없는 실패와 좌절을 이겨내고 그 위치에 도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 발휘도 기회가 주어졌기에 가능했다. 미국에서의 합법적 취업 기회 말이다. 만약 이들이 유학을 마치고 출신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알파벳이나 마이크로소프트는 지금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 아니 세계 IT업계의 상징처럼 된 ‘실리콘밸리’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실리콘밸리’는 그야말로 천재들의 전쟁터다. 전 세계에서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다. 취업비자 받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은 이들 기업이 쿼터의 대부분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실리콘밸리에는 제2, 제3의 나델리, 피차이, 황이 즐비하다. 다양한 출신의 구성원들이 업계에 지속해서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포용적인 이민정책이 낳은 긍정적 효과의 한 단면이다.         헌데 선거철만 되면 단골로 등장하는 이슈가 이민정책이다. 정치인들은 이민자가 미국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보다 이민자 증가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들을 부각한다. 그래야 쉽게 표를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올해 대통령선거에서도 예외 없이 이민이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가 됐다. 국경을 통한 불법 입국자 증가 문제 해결 방안을 둘러싼 공방이 핵심이다. 그런데 혹여라도 불법 입국자 문제가 반이민 분위기로 번지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워낙 휘발성이 강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코로나19팬데믹 기간에 맹목적인 인종 증오의 위험성을 경험한 바 있다. 당시 대통령의 불필요한 말 한마디로 인해 ‘반아시안’ 분위기가 조성했고, 한인을 포함해 많은 아시안이 피해를 보았다. 정치인의 메시지는 정확하고 명확해야 한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이민자 증시 이민자 출신 이민자 증가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2024-02-29

[뉴스 포커스] 달라져야 할 ‘시니어’ 개념

‘시니어(senior)’는 주로 일정 연령 이상의 노령자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딱히 ‘몇 살 이상’이라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다보니 기준도 제각각이다.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 가운데도 맥도날드,데니스,아이홉 등에선 55세 이상이면 시니어 혜택을 주지만, 60세 이상 돼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도 많다. LA시와 LA카운티도 차이가 있다. LA시는 60세 이상이면 시 소유 골프장의 그린피를 할인해 주는 반면, LA카운티는 65세 이상 부터 할인이 된다.     다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시니어의 기준은 65세 이상인 듯하다. 연방정부의 의료보험인 메디케어 혜택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가 65세 부터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무료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나이도, 복수국적이 허용 되는 연령도 65세 이상이다. 이 정도 연령이면 은퇴 생활이 시작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요즘 ‘시니어 현역’이 늘고 있다. 과거 같으면 은퇴할 나이에 여전히 왕성환 활동력을 보이는 분들이다. 70대 중반에 아직도 새벽같이 출근하는 한인 기업인도 여든 나이에 업계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매일 열심히 공부하는 한인 회장님도 이런 분들이다.           그런데 지구촌 주요 국가들은 인구 노령화를 우려하고 있다. 전체 인구 숫자는 정체, 내지 감소하는데 노령 인구 비율은 점차 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최근인 2020년 센서스 자료를 보면 미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5800만 명, 전체 인구의 16.8% 가량 된다. 그런데 이 비율이 매년 높아지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본격적인 진입 영향이다. 드디어 올해는 65세가 되는 인구가 410만 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라고 한다. 매일 1만1000명이 65세가 된다는 얘기다. 이런 증가 추세는 1962년 생들이 65세가 되는 2027년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3년 후에는 미국인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의 시니어가 된다.       인구 노령화에 대한 우려는 주로 경제적 측면에서 비롯된다. 생산활동 참여 인구가 줄어 성장 동력은 약해지는 반면, 의료·복지 등 사회적 비용 지출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한마디로 젊은층의 시니어 인구 부양 부담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성급한 전망인 듯하다. 요즘 시니어들의 모습이 과거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사회·경제적 시스템이 변화하면서 시니어들의 양상도 달라졌다. 과거에 비해 더 오래 일하고 자녀들에 대한 의존도도 줄었다.      여론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센터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미국인 가운데 20% 가량은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비율은 35년 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는 것이다. 더구나 일하는 시니어의 3분의 2는 풀타임 직업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시니어들의 자산 규모도 계속 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의 소비자 금융 조사에 따르면 65~74세 사이의 중간 순 자산 규모는 41만 달러로 조사됐다. 2010년의 28만여 달러에 비해 10여 년 만에 50% 가까이 늘었다. 시니어 자산 가치 증가는 주택가격 상승과 다양한 은퇴 투자 플랜 덕이다. 과거 시니어들이 주로 연금에 의존해 생활했다면 지금은 은퇴 투자상품, 사회보장연금 등 수입원이 다양하다. 그리고 자산과 수입이 늘다 보니 시니어 그룹은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신흥 시장의 등장에 주목하는 이유다.   시니어 층의 부상은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들의 활동 반경이 과거의 시니어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제 ‘시니어’의 개념도 달라져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은퇴 생활을 시작하는 시기가 아니라, 인생의 다음 단계를 설계하는 시기로 말이다. 김동필 / 논설 실장뉴스 포커스 시니어 개념 시니어 인구 시니어 혜택 시니어 현역

2024-02-08

[뉴스 포커스] 3월이 아니면 5월에라도?

“3월에도….”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이 한 마디가 증시에 찬물을 끼얹었다. 파월 의장이 금리 동결을 발표했던 이틀 전 일이다. 이날 뉴욕 증시의 3대 지수는 일제히 맥없이 무너졌다. 다우가 0.82%, S&P500이 1.61%, 그리고 나스닥은 2.23% 급락했다. 하루 만에 1월 상승분의 대부분을 반납했다.         말 줄임표에 있던 내용은 “3월에도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지 않다”였다. ‘1월 동결, 3월 인하’를 기대했던 투자자들로서는 실망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일부는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단어가 아예 사라졌다는 데 강조점을 뒀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연준은 “미국 경제가 견조한 확장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경기 부양을 위해 굳이 금리 인하 조치를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당분간은 경기 부양보다 확실하게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해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게 낫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의 경제 성적표는 양호하다. 비록 잠정치이긴 하지만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은 3.3%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의 예상치인 2%를 훨씬 넘어선 수준이다. 지난해 전체 성장률도 2.5%를 기록, 연초의 불경기 진입 예상을 머쓱하게 했다. 실업률도 3.7%로 거의 완전고용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 미국 경기가 좋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자영업자를 만나도, 직장인을 만나도 “힘들다”는 반응이 압도적이다. 이런 말이 습관적 엄살이 아니라는 것은 한인 은행 실적에서도 나타난다. 한인 은행들의 영업 실적은 한인 경제권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주요 지표 가운데 하나다. 은행 고객의 다수가 한인이기 때문이다. 은행 실적이 좋으면 한인 경제권도 쌩쌩 돌아간다는 것이고 반대면 어렵다는 의미다.     그런데 남가주에 본점이 있는 6개 한인 은행의 지난해 실적은 예상보다 더 부진했다. 6개 은행의 총순이익 규모는 3억781만 달러로 2022년에 비해 29% 나 줄었다. 이처럼 한인 은행권의 순이익이 뒷걸음질한 것은 드문 현상이다. 고금리 영향도 있지만 그만큼 한인 경제권 상황이 힘들었다는 것을 반영한다.     이런 괴리감은 한인들만 느끼는 게 아니다.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의 지난해 12월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8%가 미국 경제가 어렵다고 답했다. 반면 ‘좋다’는 비율은 19%에 불과하다. 팬데믹 직전 비슷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7%가 미국 경제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격차다. 불과 몇 년새 부정적 생각이 엄청나게 는 것이다. 경제 지표는 괜찮을지 몰라도 서민들의 체감 경기는 바닥인 셈이다.     이런 괴리 현상이 왜 생기는 것일까? 전문가들뿐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갑론을박이 많지만 공통으로 꼽는 첫 번째 이유는 엄청나게 오른 물가다. 최근 인플레가 둔화했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물가 너무 올라 감당이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임금 등 소득 상승폭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이다. 여기에 렌트비, 보험료, 공공요금 등 생활 비용의 상승도 체감 경기를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교육, 의료 등 사회적 투자 부족에 대한 지적이다. 칼리지보드의 조사에 따르면 20년간 공립대학의 등록금은 2배로 올랐다. 건강보험료로 5년 새 18%가 뛰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경제 지표는 좋아도 국민은 생활에 허덕이는 것이다.       지금의 인플레는 팬데믹 당시의 공격적 경기부양 결과다. 막대한 재정 투입으로 불경기는 막았지만 그 후유증을 겪고 있는 셈이다. 여기저기서 고금리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지만 연준은 요지부동이다. 인플레가 확실하게 2%대로 진입했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 무게가 실리는 전망이 ‘3월이 아니면 5월에라도’다.  조금만 더 견디면 되려나.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한인 은행권 한인 경제권 한인 은행들

2024-02-01

[뉴스 포커스] 주인 없는 ‘한인 대표 기업’ 타이틀

매년 봄이면 LA한인타운과 인접한 윌셔 컨트리클럽에서 LAPG대회가 열린다. 한국 기업이 스폰서를 맡은 대회라 더 관심이 갔다. 대회장은 한인 갤러리들로 북적였다. 한국 기업이 스폰서를 맡은 대회에서 한인 선수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대회 이름이 달라졌다. 새 대회 명칭은 ‘JM 이글 챔피언십’. 한국 기업 대신 JM 이글이라는 플라스틱 파이프 제조 업체가 대회 스폰서를 맡았다. 자연히 한인 팬들을 겨냥한 홍보에도 온도 차가 생겼다. 그래서인지 한인 골프 팬들의 관심도 많이 식은 듯하다. 한인 골프 팬들에게는 축제 같은 행사였는데 다른 한국 기업이나 한인 기업이 스폰서를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론이 길었던 이유는 JM이글이 대만계 미국인이 창업한 기업이라는 설명을 위해서다. 플라스틱 파이프 제조 분야에서 미국 내 1위 업체다. 어떤 업종이건 업계 최고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경쟁자의 끝없는 도전을 이겨내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곧 미끄러진다.  아시아계가 창업한 기업이 이런 어려움을 극복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일단 ‘업계 1위’라는 타이틀을 달면 얻는 것도 많아진다.     그러고 보니 대만계 기업인 가운데 알만한 인물들이 꽤 많다. 요즘 주식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업체가 그래픽 처리 장치 디자인 업체인 엔비디아(nvidia)다. AI(인공지능) 산업이 부상하면서 주가가 연일 고점을 찍고 있다. 그런데 엔비디아의 창업주 가운데 한 명으로 최고경영자를 맡은 젠슨 황도 대만계다. 대표적 중식 패스트푸드 체인인 판다 익스프레스의 창업주 앤드류 청도 출생은 중국이지만 대만에서 성장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대만 출신 기업인들이 ‘업계 1위’의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 대만 출신 지인이 있어 대만계 커뮤니티의 투자와 비즈니스 특징에 관해 물은 적이 있었다. 당시 그가 언급했던 것이 공동투자와 동업이다. 지인들끼리 투자그룹을 만들고 동업 내지 협업도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모든 대만계가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새겨들을만한 얘기였다.   우리에게도 내세울 한인 기업과 기업인이 있을까? 안타깝게도 언뜻 떠오르질 않는다. 포에버21 이후 ‘미국 내 대표적 한인 기업’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한 기업이 없다. 이제는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굵직한 한인 기업들이 나올 만도 한데 소식이 없다. 너무 내부경쟁에만 몰입해서일까, 아니면 어느 정도 성장하면 안주해 버리는 것일까.   한인 경제가 성장하려면 큰 기업의 등장이 필요하다. 앞장서는 기업이 있어야 시장을 키울 수 있고 그 기업을 중심으로 커뮤니티 경제 생태계도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국가 경제에서 대기업들이 하는 역할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한인 경제권도 이미 이의 긍정적 효과를 경험한 적이 있다.  과거 의류업계에서의 포에버 21 역할이다. 당시 포에버 21은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어떤  업체에는 은인과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포에버 21을 통해 기반을 닦고 성장한 한인 의류업체들도 많기 때문이다. ‘포에버 21’의 존재는 한인 의류업계에 긍정적 효과가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요즘 한인들의 창업에 대한 열기가 과거 같지 않다는 점이다. 경기 탓도 있겠지만 분위기 자체가 가라앉은 듯하다. 그렇다고 물길을 돌려 보려는 커뮤니티의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연초에 한인 사회에 희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한인 영화인들이 각종 시상식을 휩쓸고 있고, 정계와 법조계 등에서의 활약도 돋보인다. ‘청룡의 해’를 맞아 경제계에도 미국 대기업의 상징인  ‘S&P 500기업’ 을 꿈꾸는 한인 기업인들이 나왔으면 한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타이틀 한인 한인 기업들 대표적 한인 한인 경제

2024-01-18

[뉴스 포커스] 축제재단의 어이 없는 ‘세대교체’ 명분

한인 단체의 내부 다툼은 심심찮게 있었고 더러 심각한 상황까지 가기도 했다.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해 법정까지 가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면 ‘단체 무용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한인 사회에 도움은커녕 먹칠만 하는 단체가 왜 필요하냐는 주장이었다. 동료 기자들 사이에서도 종종 논쟁거리가 됐던 소재였다. 하지만 필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래도 단체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인 사회의 권리와 이익을 주장할 창구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내홍도 성장통이라고, 서로 잘 해보려다 생긴 일로 여겼다.     한인 사회에는 여러 형태의 단체가 있다. 대표적인 한인회,상공회의소 외에도 업종별 또는 특별한 목적의 단체, 다양한 비영리 단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대부분이 회장과 이사회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갈등 양상도 회장과 이사회의 대립, 아니면 이사회 내분의 형태로 나타난다.     사실 내홍의 원인 가운데는 이해되지 않는 것도 있다.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큰 사태로 번지는 경우다. 여기에는 갈등의 원인보다 당사자들의 자존심이 개입되는 경우가 많다. 한 단체장이 토로했던 말에서도 그 이유 한 가지를 찾을 수 있다.  “이사 대부분이 개인적으로는 회장님,사장님 소리 듣는 분들이죠. 지시에 따르기보다 지시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자존감도 강한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이 모인 이사회를 끌고 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요즘 한인 단체들의 활동력은 과거만 못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더 가속화 한 느낌이다. 물론 갈수록 성장하는 단체도 있지만 이름만 남거나 회장단만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단체들이 더 많다.  한인 사회 변화의 한 단면이겠지만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그나마 나름 활발한 모습을 보였던 LA한인축제재단에서 얼마 전 또 사달이 났다. 이 단체에선 과거에도 이사 제명 사태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전체 7명 가운데 절반 가까운 3명을 한꺼번에 제명했다.  절차도 남사스러울 정도다. 이사회에서 이사장이 제안하고 거수로 결정해버렸다. 50년 전통의 LA한인축제 주최 단체라는 자랑이 무색할 정도다. 직접적 발단은 이사장에 대한 고발조치였다. 3명의 이사는 이사장이 재정 관리와 의사 결정을 독단적으로 하고 있다며 이를 문제 삼았다. 이에 이사장은 ‘제명’이라는 강수로 응수한 것이다.       이번 사태가 주목되는 것은 한인 단체의 오랜 문제점과 함께 미래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우선 운영의 불투명성이다. 문제를 제기한 이사들은 재정 및 회계보고가 정관에 따라 진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이는 한인 단체 분란의 단골 메뉴 중 하나다. 정관은 단체 운영의 헌법과도 같은 것이다. 더구나 금전과 관계된 사안이라면 이유 불문하고 정관에 명시된 규정을 따르는 것이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독단적 운영 방식에 대한 지적도 마찬가지다. 정관에 따라 결정하면 될 일을 개인적 욕심이나 권위, 편의성 등을 앞세우다 보니 생기는 문제점이다.       그런데 더 이해가 어려운 것은 ‘세대교체’ 주장이다. 재단 측은 이사 3명을 제명하면서 ‘세대교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사회의 빈자리를 차세대 인물들로 채우겠다며 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세대교체는 바람직하지 않다. 단체 성장에 나름 기여했던 1세 이사들을 의견이 다르다고 강제로 물러나게 하고 차세대를 영입하겠다는 것은 온당한 방식이 아니다. 아무리 미워도 임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아량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명예롭게 물러날 기회 정도는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정치판도 아닌 ‘보람 있는 일 하겠다’고 모인 한인 단체에서 벌어진 일이라 참 씁쓸하다.       1세대의 경험과 노하우는 차세대들이 갖지 못한 것이다. 커뮤니티의 소중한 자산이 자연스럽게 차세대들에 전수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단체장의 역할이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축제재단 세대교체 이사회 내분 한인 단체 비영리 단체들

2024-01-11

[뉴스 포커스] 공격 받고 있는 ‘미국적 가치’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이 미국 사회에 뜻하지 않은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미국적 가치로 당연시했던 것들이 도전을 받으면서 갈등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논란은 ‘표현의 자유’에서 점화됐다. 지난해 10월 초 이스라엘군이 하마스의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지구를 공격하자 주요 대학에서 ‘반이스라엘’ 시위가 벌어졌다. 민간인 피해를 막아달라는 요구였다. 당연히 팔레스타인계 학생들이 주도했고 개중에는 ‘인티파타(봉기)’, ‘유대인 학살’ 등 과격한 구호도 등장했다. 그렇다고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그러자 일부 보수계 인사들이 이를 문제 삼았고, 급기야 지난해 12월 초에는 연방하원에서 청문회까지 열렸다.     청문회장에는 미국 최고 대학들인 하버드,MIT, 펜실베이니아대 등 3개 대학 총장들이 불려 나왔다. 엘리즈 스테파닉 의원(공화)은 청문회에서 “반유대주의 혐오 발언의 교칙 위반 여부를 ‘예스’, ‘노’로 답하라”고 총장들을 몰아세웠다. 총장들은 “맥락을 파악한 후 결정할 문제”라며 즉답을 피했다. 특히 클로딘 게이 당시 하버드대 총장은 “반유대주의 혐오 발언이 하버드의 가치에는 어긋나지만 표현의 자유는 있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이 전해지자 반유대주의를 부추긴다며 이들에 대한 사퇴 압박이 쏟아졌다. 결국 엘리자베스 매길 펜실베이니아대 총장은 청문회 4일 후 사퇴했고, 게이 총장도 지난 2일 물러났다. 게이 총장 사임의 표면적 사유는 논문 표절이었지만 교내 반유대주의 시위대에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았다는 것이 진짜 이유다.         그러자 반대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수정헌법 1조인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확한 한계는 없지만 실질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증오 발언을 포함한 어떤 종류의 표현도 억압받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 미국이 언론,사상,종교,학문의 자유가 가장 잘 보장되는 국가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덕분이다. 이들은 시위대의 반유대주의 구호도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들의 입을 막지 못했다고 총장을 물러나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게이 총장 사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 있다. 퍼싱 스퀘어 캐피털 매니지먼트라는 해지펀드사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빌 애크먼이다. 하버드대 동문인 그는 게이 총장이 사임을 발표하던 날 소셜미디어 X에 ‘샐리, 너마저?(Et tu, Sally)?’라는 글을 남겼다. 유명한 ‘브루투스 너마저?(Et tu, Brute?)’라는 대사를 패러디한 것이다. 샐리는 샐리 콘불루스 MIT 총장을 의미한다. 그는 청문회에 참석했던 3명의 총장 가운데 콘불루스 총장만 사임하면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런 애크먼이 전선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다른 가치에 대한 공격도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는 기업들의 ‘DEI(Diversity(다양성), Equity(형평성), Inclusion(포용성))’ 정책에 대한 비난이다. 그는 역시 X에 DEI 정책은 반자본주의적이라고 비난하는 내용의 긴 글을 올렸다. DEI는 기회의 형평성이 아니라 결과의 형평성을 요구한다며 자본주의에 해로운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적 발상으로 미국적 가치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애크먼은 게이 총장에 대해서도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DEI 덕에 하버드대 총장이 된 인물”이라고 깎아내렸다. 수익이 있는 곳이라면 전쟁터라도 투자하는 헤지펀드사 대표다운 생각이다.      DEI는 많은 기업이 경쟁력 향상을 위해 도입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같은 다인종,다문화 국가에서는 기업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가치다. 애크먼처럼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월가의 억만장자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미국 공격 하버드대 총장 게이 총장 펜실베이니아대 총장

2024-01-04

[뉴스 포커스] 한인 은행의 경쟁력은 ‘고객 관계’에 있다

매년 새해 첫날 발행되는 본지 경제 섹션에 게재되는 기사 하나가 있다. 한인 은행장들로부터 한 해 경제 전망과 이에 따른 경영 전략을 듣는 내용이다. 은행장들은 전반적인 경제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은 물론 한인 실물 경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첫 신문이었던 1월2일자도 마찬가지였다. 중앙경제 1면에는 남가주 6개 한인 은행 행장들의 전망이 실렸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된 반응은 “어려운 한 해가 될 것 같다”였다. 은행마다 이에 대비하는 해법은 달랐지만, 상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 것이다.       전망은 빗나가지 않았다. 한인 은행들은 힘겨운 한 해를 보냈다. 이는 가장 최근 자료인 3분기 실적에서도 잘 드러난다. 6개 한인 은행 가운데 4곳의 순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줄었다.       그런데 문제는 순이익의 감소 폭이다. 한인 은행들의 감소 폭은 커뮤니티 은행 전체의 배가 넘었다.  FDIC(연방예금보험공사) 자료에 따르면 3분기 커뮤니티 은행 전체의 순익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5%가 줄었지만, 6개 은행의 감소 폭은 34%나 됐다. 고속 성장에 익숙한 한인 은행들로서는 충격적인 성적표다. ‘고금리’라는 외부 조건은 동일했지만 한인 은행권이 받은 타격이 더 컸던 것이다. 이는 예상 가능한 외부 충격에 대비가 부족했다는 의미다.     올해 미국의 은행권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지난 3월 자산 규모 16위의 실리콘밸리뱅크(SVB)가 파산하면서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더구나 SVB의 파산이 뱅크런 사태 때문으로 알려지면서 은행들은 고객의 불안심리 해소를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다음은 어느 은행일까?”라는 전망이 쏟아지면서 당황하기는 고객들도 마찬가지였다. 이후에도 퍼스트리퍼블릭, 시그니처 뱅크 리저널 뱅크 두 곳이 추가로 문을 닫고서야 사태는 진정됐다. 그나마 한인 은행들은 이런 위기 상황을 잘 넘겼다.  FDIC자료에 따르면 올해 문을 닫거나 인수합병된 은행은 20여개에 달한다.       한인 은행의 순수익 급감에는 내부 요인도 있다. 오래전부터 시장과 수익 다각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뚜렷한 진전이 없고, 올해 수익성이나 경영 효율성 면에서는 경쟁 상대인 중국계 은행들에도 뒤졌다. 이런 상태면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속도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한인 은행 실적에 주목하는 이유는 한인 경제와의 관계 때문이다. 한인 은행의 주 고객은 한인이다. 따라서 한인 은행의 수익 동향은 한인 경제 상황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은행 수익이 호조를 보이면 한인 경제도 잘 돌아가는 것이고, 반대 경우라면 한인 경제도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한인 은행권의 순수익 감소 폭이 업계 전체보다 컸다는 것은 한인 경제권이 고금리의 충격을 더 심하게 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행히 내년부터 금리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은행 입장에서는 예금 조달 비용은 줄고 대출 수요는 늘어날 것이다. 한인 은행들도 영업 환경이 좋아지는 셈이다. 그러나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기회를 활용할 수 없다.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런 방법의 하나가 고객 밀착 서비스다. 고객과의 친밀한 관계 형성은 한인 금융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대형 은행이나 타 커뮤니티 은행들이 따라올 수 없는 한인 은행만의 경쟁력이다. 이는 한인 은행들이 앞장서 한인 경제권에 활기를 불어넣은 일도 될 것이다.       오늘 한 행장님으로부터 연말 카드를 받았다. 카드 내용 중에 ‘앞서가는 금융인(Bankers), 차별화된 전문가(Expert), 좋은 이웃(Neighbors)’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내년에는 고객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혔다.       내년 첫날 지면에 실릴 은행장님들의 전망에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담겼으면 좋겠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경쟁력 한인 한인 은행장들 한인 은행권 한인 은행들

2023-12-14

[뉴스 포커스] 몰라도 되는 ‘타운플레이션(town+inflation)’

한인 타운에 있는 미용실에 갔다 깜짝 놀랐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커트 가격이 25%나 올랐기 때문이다. ‘모든 게 다 올랐는데’라며 계산은 했지만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니 이 업소는 팬데믹 이후 가격을 수시로 올렸다. 지금의 커트 가격은 팬데믹 직전인 3년여 전의 배를 넘어섰다. 평균으로 보면 매년 30% 이상씩은 올린 셈이다.         요즘 점심시간이라도 한인타운 식당에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맛집으로 알려진 곳도 항상 빈자리가 있다. 고객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음식값이 많이 오른 데다 일부 업소는 주차비까지 내야 하니 고객의 발길이 줄 수밖에 없다. “둘이서 설렁탕 먹으러 갔다 팁에 주차비까지 50달러를 지출했다”는 말이 더는 놀랍지 않다.       ‘가격 급등’ 상황이 이들 업종만의 모습은 아니다. 대부분의 업소에서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가격표에 놀라게 된다.     업주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재료비·인건비가 뛰고, 임대료도 오르는데 손해 보면서 장사할 수는 없지 않냐고, 미국 전체가 인플레이선 상황인데 우리만 가격을 올린 것도 아니지 않냐고, ‘웨이지플레이션(wage+inflation)’, ‘팁플레이션(tip+inflation)’이라는 신조어들이 괜히 나온 줄 아느냐고.     일리 있는 주장이긴 하지만 100% 공감은 어렵다. 앞의 미용실처럼 물가나 임금 상승률, 동일 업종 업소의 인상폭을 훨씬 앞지르는 수준으로 가격을 올린 업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소비 활동에는 ‘심리적 저항선’이라는 게 작용한다. 구매하고자 하는 제품에 대한 소비자 나름의 ‘가격 상한선’이다. 한마디로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에 ‘이 이상의 돈은 지불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소매 업체들이 ‘99 가격 전략’을 쓰는 것도 이 저항선을 조금이라도 무너트리기 위해서다. 100달러와 99달러 99센트는 1센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고객의 느낌은 그 이상이다.     비용이 늘면 가격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고객이 납득할만한 수준 이상이라면 저항선에 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이는 고객 감소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면 한인 사회에서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타운(한인) 경제를 살리자”다.  2008년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바닥을 헤맬 때도 캠페인이 진행됐다. 한인 경제단체들이 앞장섰고 은행들도 호응했다. 심지어 총영사관도 ‘한인업소 이용하자’며 동참하고 나섰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직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영업 제한 조치로 식당업계의 타격이 크자 한인들은 ‘한인식당 도시락 주문’ 캠페인을 벌였다.      그러나 고금리로 힘든 요즘엔  ‘한인 경제를 살리자’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타운 업소들의 영업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한인 경제’라는 용어의 개념은 명확하지가 않다. 다양한 범주에 여러 의미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인 경제’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한인 사회의 경제 활동이 미국 경제 전반과는 작동 원리나 사이클에서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특이점 가운데 하나가 상부상조의 관계다. ‘한인 업주- 한인 고객’ 구조의 비즈니스가 많아 가능한 일이다. 과거 캠페인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를 거뒀는지 파악은 어렵지만 최소한 경제 주체들에게 “함께 한다”는 메시지는 전달되었을 것으로 본다.           가격 인상 요인을 고객에서 그대로 전가하는 것은 아주 쉬운 비즈니스 전략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고객의 충성심은 잃게 된다. 지금은 부담을 나누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타운플레이션(town+inflation)’ 이라는 신조어는 등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타운플레이션 inflation 한인 경제단체들 한인타운 식당 한인식당 도시락

2023-12-07

[뉴스 포커스] ‘네포 베이비’와 ‘아메리칸 드림’

한국에 ‘금수저’가 있다면 미국에는 ‘네포 베이비(nepo baby)’들이 있다. 부유층이나 명문가에서 태어나 부모덕에 유명세를 얻은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부모가 유명하다고 자녀도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이들의 출발선이 유리한 것만은 틀림없다.       요즘 주목받는 ‘네포 베이비’들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세 자녀다. 바이든의 차남 헌터 바이든은 탈세 혐의와 총기 불법 구매 혐의로 기소된 데 이어 연방하원 감독위원회 출석까지 통보받았다. 아버지의 영향력을 이용해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업으로부터 부당 이익을 취했다는 이유다.       트럼프의 자녀들은 이달 초 법정에 섰다. 트럼프 그룹의 자산가치 조작 관련 민사 소송 증언을 위해서다. 장남 트럼프 주니어와 차남 에릭은 피고인, 장녀 이방카는 증인 신분이었다. 이들은 트럼프 그룹에서 부사장 등 고위직을 맡고 있다.     전·현직 대통령 자녀들의 이런 모습은 미국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더구나 내년 대통령 선거가 바이든과 트럼프의 리턴 매치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 더 주목된다. 미국이 유지하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의 특성을 대변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아메리칸 드림’이다. 이 말에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는 미국은 기회의  나라이고,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도 달라지고 있다. 계층 고착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수성가의 사례가 줄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도 점차 부서지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아마 ‘네포 베이비’들의 증가도 그 원인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다행히 ‘아메리칸 드림’을 지키려는 노력도 있다. ‘공평한 기회’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이다.        프로농구팀(NBA) 댈러스 매버릭스를 소유하고 있는 마크 큐반은 괴짜 구단주로 통한다. 늘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경기장에 나타나는 그는 점잖은 모습 대신 열정적이다. 종종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하다 벌금을 부과받기도 한다. 그는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경영대학원(MBA)를 졸업하고 은행원 생활을 하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업체를 창업해 성공을 거뒀다. 이후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분야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고 자산 규모가 50억 달러가 넘는다는 평가다.     하지만 자녀들에게는 인색하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누구의 아들, 딸’로 살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불리는 순간 ‘얼간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에게는 10대와 20대인 자녀 3명이 있다. 당연히 이들은 어려서부터 필요한 것이 있으면 스스로 벌어 해결했다고 한다. 큐반은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 내가 체크를 써 주거나 크레딧카드를 만들어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고 한다.       로렌 파월 잡스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미망인이다. 잡스가 숨지면서 그녀는 엄청난 자산을 물려받았다. 블룸버그의 추산에 따르면 그녀의 자산 규모는 217억 달러나 된다. 그런데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천수를 다하게 되면, 나의 재산도 나와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녀는 “남편도 생전에 자녀들에게 부를 유산으로 남기고 싶어하지 않았다”며 “사회가 올바로 유지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모든 재산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초 명문대학의 ‘레거시 입학’을 금지하는 법안이 연방상원에서 발의됐다.‘레거시 입학’은 동문이나 거액 기부자의 자녀에게 혜택을 주는 것으로 부유층에 유리한 입학제도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네포 베이비’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혜택인 셈이다. 그러나 민주·공양 양당 의원들의 공동 발의에도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전망이다. 특권층의 특혜 한 가지를 없애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아메리칸 베이비 아메리칸 드림 트럼프 그룹 장남 트럼프

2023-11-16

[뉴스 포커스] 반짝 등장한 ‘넘버 3’가 통과해야 할 시험대

마침내 ‘넘버 3’의 자리가 메워졌다. 루이지애나주 출신 마이크 존슨 의원이 미국 권력 서열 3위인 연방하원 의장에 선출됐다. 케빈 매카시 전 의장이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후 22일 만이었다. 이 기간 미국은 부통령 다음 대통령 승계 2순위의 핵심 인물 부재 상황이었고, 연방하원은 업무 정지 상태였다. 새 의장을 뽑는 일에 에너지를 쏟느라 산적한 현안들은 뒷전으로 밀렸다.   새 의장 선출 과정은 그야말로 난산이었다. 스티브 스칼리스·짐 조던·톰 에머 등 3명이 차례로 나섰지만 모두 낙마했다. 공화당 내부의 생각이 달라 번번이 과반 득표에 실패했다. 결국 워싱턴 정가에서 무명에 가까운 존슨이 일약 의장에 선출되는 이변이 만들어졌다.     ‘22일간의 혼돈’은 공화당 책임이다. 당 내 ‘프리덤 코커스’라는 극우 보수 그룹이 매카시 해임을 주도한 게 혼돈의 시작이었다. 결국 연방하원 초유의 의장 해임 사태가 벌어졌고 중도파의 반격이 있었다. 이로 인해 의장에 도전했던 ‘프리덤 코커스’ 창립자 조던이 쓴맛을 보는 일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꽃놀이 패를 즐겼지만 소득은 없다.  ‘MAGA 마이크’로 불리는 존슨이 선출됐기 때문이다. 이 말에는 존슨의 정치적 정체성이 함축돼 있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는 도널드 트럼프가 앞세우는 슬로건으로 극우세력을 의미한다. 존슨이 ’친트럼프‘ 정치인이라는 의미다. 특히 그는 2020년 대통령 선거 불복에도 깊숙이 관여했던 인물이다. 헌법 전문가인 그가 법적 대응 방안을 마련했었다는 것이다. 또 존슨은 그동안의 의정 활동을 보면 낙태, 성소수자 문제 등 주요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줄곧 극우적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원의장은 다수당 대표라는 상징성 외에 실제 권한도 크다. 가장 중요한 것이 법안 처리 과정에서의 영향력이다. 하원의 법안 처리 과정은 먼저 해당 상임위원회를 거치게 된다.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이 본회의에 보내지면 의사운영위원회(Rules Committee)에서 상정 시기와 수정 범위 등을 결정한다. 본회의 상정 여부가 의사운영위원회 손에 달린 셈이다. 당연히 의사운영위는 다수당이 장악하게 되는데 다수당 몫의 위원 임명권이 의장에게 있다. 의장은 이 권한을 통해 법안 통과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본회의에서의 발언권 부여 권한이라고 한다. 본회의의 전략적 진행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연방하원 의장은 경험과 리더십이 필요한 자리다. 더구나 지금처럼 다수당인 공화당과 소수당인 민주당의 의석 격차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는 협상 능력도 중요하다. 그런데 존슨 신임 의장은 4선 의원이기는 하지만 의회나 당내 주요 보직을 맡아본 경험이 없다. 상임위원장을 거치지 않은 의원이 의장 자리에 오른 것은 140여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공화당 내 정치적 스펙트럼조차 넓은 상황에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기는 이유다.     더구나 존슨 의장의 허니문 기간은 짧을 듯하다. 2024회계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 예산안 처리라는 시험대가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극적으로 통과됐던 임시 예산안은 11월 17일이면 종료된다. 따라서 그 전에 예산안이나 새로운 임시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연방정부는 또 폐쇄 위기를 맞게 된다.     또 다른 숙제도 이미 도착해 있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등의 지원을 위한 바이든 정부의 1050억 달러 규모 안보 패키지 예산 승인이다. 존슨 의장을 포함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우크라이나 지원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라 결과가 주목된다.     매카시는 임시 예산안 합의를 빌미로 당내 소수의 극우 그룹에 굴욕을 당했다. 과연 존슨 신임 의장은‘예산안 시험대’를 잘 통과할 수 있을까. 더구나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의 예산이라 정치적 공방이 더 격렬하기 때문이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시험대 넘버 연방하원 초유 존슨 의원 연방하원 의장

2023-10-26

[뉴스 포커스] 없어지지 않는 한국 기업의 수업료

“한국에선 3개월이면 충분한 공사가 1년이 넘도록 끝나지 않고 있네요.” 수년 전 미국 시장에 진출했던 한국 업체 대표가 토로했던 답답함이다. 그는 공사 지연은 예상치 못한 변수였고 그로 인해 많은 것이 꼬여버렸다고 답답해했다. 모든 일정이 늦어지면서 시간은 시간대로, 비용은 비용대로 까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수업료를 내고 있다고 생각해야죠”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가 부담하지 않아도 될 수업료를 내야 했던 것은 시장만 생각했지 시스템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던 탓이다.    미국의 법과 시스템,문화는 한국과 많은 차이가 있다. 이는 기업 운영에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쉽게 해결 될 일이 미국에서는 어려울 수 있고, 한국에서는 통하는 방식이 미국에서는 위법이 될 수도 있다.  ‘한국식’ 잣대로 일을 처리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의미다.      ‘비싼 수업료’의 대표적인 예가 이른바 ‘김창준 의원 선거 후원금’ 이슈다. 비록 30년 전 있었던 어이없는 일이지만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간략히 내용을 소개하면 김창준 전 연방하원의원이 1992년 처음 선거에 나섰을 때의 일이다. 당시 한인 사회는 물론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적극 후원에 동참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치 후원금법에 대한 이해 부족이 문제였다. 외국 기업은 정치 후원금이 금지된 줄 모르고 후원금을 낸 곳도 있었고, 이를 피하려 편법을 사용했다 적발된 곳도 있었다. 수사는 몇 년이나 이어졌고 일부 기업은 후원금의 몇십배에 달하는 벌금을 낸 후에야 마무리가 됐다. 과잉 수사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요즘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과거와 비교해 격이 다르다. 규모와 내용 모든 면에서 엄청난 성장을 했다. 이제는 단순히 한국에서 상품을 가져다 판매하는 수준이 아니다. 협력업체 수 백개를 이끌고 오는 곳도 있고 미국 기업을 인수해 운영하기도 한다. 미국의 법과 시스템에 대한 연구도 충분히 하고 필요한 네트워크도 구축한다. 문제는 그런데도 여전히 수업료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한국 대기업 미국 법인이 관련된 노동법 소송이 부쩍 잦아졌다. 지난해에는 조지아주의 현대차 공장 협력 업체의 미성년자 불법 고용이 문제가 됐었고, 지난달에는 북가주 실리콘밸리에 있는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라는 업체의 노동법 피소 사실이 알려졌다. 이어 LG전자가 바톤을 이어받았다. LG전자 미주법인의 물류회사에 근무하던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 등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한국의 재계 순위 4대 그룹 가운데 3개가 미국에서 노동법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특히 삼성과 LG전자의 경우 한국에서 파견된 직장 상사의 ‘한국식 습관’이 문제가 됐다. 한국에서 하던 언행 그대로 한 것이 화근이었다.      미국의 직장인은 취업에 대해 계약 관계라는 의식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평생직장 또는 직장 내 상하관계 등에 대한 개념은 약하다. 한국과 달리 이직에 대한 거부감이 덜 한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또 미국은 해고가 비교적 자유로운 국가에 속한다. 최근 디즈니,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기업의 대량해고 사태가 수시로 벌어진다. 하지만 고용 상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강력한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현지화’에 공을 들인다. 한국적 경영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본사 파견 인원을 최소하 하고 현지 채용을 늘리는 것도 그 일환이다. 그런데 문제는 고위급의 인식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적 노사관이나 기업문화를 그대로 이식하려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는 간단한 원칙이 무시되는 것이다.      미국의 노동법 소송은 간단치가 아니다.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도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주의해야 한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계속 불필요한 수업료를 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수업료 한국 한국식 습관 한국 업체 한국적 경영

2023-10-19

[뉴스 포커스] 민간인은 죄가 없다

가자지구, 하마스 기습 공격,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 사상자 급증…. 익숙한 단어들이 1주일째 세계 언론의 톱 뉴스가 되고 있다. ‘중동의 화약고’라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또 폭발했다. 가자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상이 심상치 않다. 전쟁 6일 만에 확인된 양쪽 사망자만 2500명이 넘고 부상자는 1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가자지구는 길이 25마일에 폭 3.7~7.5 마일, 면적은 141스퀘어마일이다. LA시 면적(502스퀘어마일)의 3분의 1도 안되는 크기다. 이 지역에 2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  만약 이스라엘군의 지상 공격이 실행된다면 사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 뻔하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를 향해 “모두 죽은 목숨”이라는 섬뜩한 경고까지 하고 나섰다.      폭탄과 총알은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못한다. 어느 전쟁에서나 군인보다 민간인 사상자가 더 많이 발생하는 이유다. 이번 전쟁도 예외가 아니다. 무자비한 공격에 양쪽의 민간인이 보는 피해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번 전쟁을 민간인 시각에서 전한 2개의 기고문이 보도돼 눈길이 갔다. 하나는 영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출신 기자가,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인이 LA타임스에 보낸 글의 일부를 소개한다.   “토요일(7일) 오전, 런던의 집에서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폭격 소식을 들었다. 휴대폰에는 이미 300개가 넘는 메시지가 있었다. 가장 먼저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선배 기자 이브라힘에게 전화를 했다. 인턴 기자 시절 그와 함께 취재를 다니며 많은 것을 배웠다. 선배라기 보다 형처럼 느꼈다. 그는 상황이 악화하는 것 같아 사무실로 가고 있다고 했다. 얼마 후 그에게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이동하면 위치를 알려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다른 기자들에게 연락했더니 이브라힘이 실종됐다는 것이다. 가자지구의 모든 지인에게 그의 행방을 물었다. 그때 한 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이브라힘은 숨졌고, 많은 기자가 실종됐다는 것이다. 그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이 기자는 가자지구를 세계 최대 규모의 지붕 없는 감옥이라고 표현했다. 2007년 이후 이스라엘에 의해 육로와 해상은 물론 항공로도 통제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내의 사촌 동생들이 이번에 하마스가 기습 공격한 키부츠에 살고 있다. 그들의 전언을 통해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고 처참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폭발 소리에 집안 대피소로 향했다고 한다. 그런데 잠시 후 대피소 문을 부수려는 소리가 들렸고 연기와 함께 타는 냄새도 났다. 문을 잡고 버티며 옷에 물을 적셔 문틈을 막았다. 조용해진 후 밖으로 나와보니 집은 전소했고, 마을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많은 마을 사람이 살해되거나 납치됐다. 피살자 가운데는 어린이와 시니어도 많았다. 하마스는 음악 공연장까지 공격해 수백명의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 그 끔찍한 장면을 영상으로 봤다면 평생 영혼의 상처로 남을 정도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납치하고, 폭행하는 것은 투쟁이 아니라 반인륜적 행위다.”     텔아비브에 거주하는 그는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있는 평화주의자라고 했다. 그동안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군사 작전에 반대하는 시위에도 많이 참여했다고 한다. 그런 그도 이번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는 분노했다.     지금 가자지구는 전력이 끊기고 식량과 식수조차 부족하다고 한다. 인구 200만 명 중 30만 명이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하마스 기습공격의 대가를 죄 없는 민간인들이 치르고 있는 셈이다.   전쟁의 역사는 인류와 함께 시작됐다. 하지만 그 야만적이고 폭력적 속성은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좋은 전쟁’ 이란 있을 수 없다. 어떻게든 전쟁은 피해야 하는 이유다. 고위 군 관계자와 정치인들이 안전한 벙커에 앉아 발사 버튼을 누르는 순간 수많은 민간인은 탄식하게 된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민간인 가자지구 하마스 민간인 사상자 민간인 시각

2023-10-12

[뉴스 포커스] 앤디 김이 뚫으려는 또 하나의 유리천장

한인 사회에서 1992년은 여러 의미가 있는 해다. 그해 4월29일 LA폭동이 벌어졌고, 11월에는 한인 최초의 연방하원의원이 탄생했다. 아픔과 기쁨이 교차했지만 두 가지 모두 미주 한인 이민사에 큰 전환점이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LA폭동은 한인 사회가 정치력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 폭동의 최대 피해자는 한인이었지만 우리의 하소연을 제대로 들어주는 곳은 없었다. 이유를 찾기 시작했고 정치력 부재가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전까지는 그저 열심히 살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폭동 사태를 겪으며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이런 시기에 ‘김창준, 한인 최초로 연방하원의원 당선’은 그야말로 사건이었다. 더구나 이민 1세로 성공한 비즈니스맨이었던 그가 연방하원 입성까지 성공한 것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그런데 1999년 김 의원이 은퇴하면서 한인 연방의원의 명맥도 끊겼다. 하지만 도전은 이어졌다. 연방의회 진출은 아니었지만 시의원, 시장 등 지역 정부 차원의 한인 선출직 공직자가 속속 배출됐다. 이런 자양분 덕에 2018년, 20년 만에 한인 연방하원의원이 다시 탄생했다. 뉴저지주에서 36세의 앤디 김이 현역 의원을 꺾고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된 것이다. 젊고 유능한 2세 정치인의 등장이었다. 이후 한인들의 정계 진출은 더 활발해졌다. 마침내 2020년 선거에서 동시에 4명의 한인이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그리고 이들 모두 2022년 선거에서 재선 혹은 3선에 성공하는 저력을 보였다. 이는 LA폭동 이후 줄기차게 외쳤던 ‘한인 정치력 신장’의 결실 가운데 하나다.     정치력을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인 정치인을 키우고, 투표장을 찾고, 후원금을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인 사회가 영향력 있는 소수계로 평가받는 것도 이런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한인 정치인을 열심히 후원한 분으로 고 홍명기 회장을 꼽을 수 있다. 본인은 공화당원이었지만 한인 후보 지원엔 당적을 가리지 않았다. 생전 홍 회장은 “공화당 측으로부터 공화당원이 왜 민주당 후보를 돕느냐고 싫은 소리도 듣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정치력이 중요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인 사회 정치력이 한 단계 더 도약할 기회가 왔다. 앤디 김 의원이 뉴저지주 연방상원의원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하원 3선으로 중견 의원 반열에 오른 그의 출마 발표인 만큼 정계에서도 주목하는 모습이다.      각 주에서 2명씩 선출하는 연방상원의원은 하원의원과는 중량감이 또 다르다. 한인은 물론 아시아계 전체로 봐도 연방상원의원은 아직 ‘좁은 문’이다. 상원 역사에서 아시아계로 분류되는 의원은 현역인 매이지 히로노(하와이), 태미 더크워스(일리노이) 의원 등 2명을 포함해 총 9명에 불과하다. 그만큼 앤디 김의 도전은 의미가 있다.     앤디 김 의원은 능력 있고 열정적인 정치인이다. 그는 출신 지역 현안뿐만 아니라 한인 사회와 한국 관련 이슈들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가 전국적으로 주목받았던 것은  2021년 1·6 의사당 난입사태 때다. 대부분의 의원이 폭도들을 피해 피신하기 바빴던 당시 그는 손상된 의사당 내부를 청소하며 의사당을 지켰다.     뉴저지주는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당내 예비선거에서 승리하면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민주당 내에서 이미 많은 후보가 출마 의사를 밝혔거나 검토 중이다. 그만큼 내년 3월 예비선거를 향한 경쟁은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앤디 김 의원은  또 하나의 유리천장을 뚫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의 도전은 120년 미주 한인 이민사에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유리천장 한인 연방하원의원 연방하원의원 당선 한인 정치력

2023-09-28

[뉴스 포커스] 급등하는 개스 값, 정부는 뭐하나

요즘 주유소의 개스 가격표 보기가 겁난다. LA와 오렌지카운티 지역은 갤런당 6달러를 넘어섰다.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오르다시피 한 결과다. 일부 7달러대 가격표가 붙어있는 주유소도 있다.   ‘개스값 걱정’은 운전자들이 주기적으로 겪는 일이다. 안정세를 보이는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급격한 오름세로 돌아서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도 개스값 급등으로 운전자들의 불만이 높았다. LA지역의 경우 갤런당 평균 가격이 6.4달러를 넘어서며 역대 최고 수준을 보이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개스플레이션(개스+인플레이션)’이라는 말까지 등장했을 정도였다. 개스 가격이 오르는 이유도 가지가지다. 국제 원유가가 뛰었다며 인상하고, 정유시설 수리로 인해 공급이 부족하다면서도 올린다. 공통점은 매번 원가 상승 부담을 고스란히 운전자들에게 전가한다는 점이다. 개스값이 아무리 올라도 주유를 해야 하는 운전자들은 ‘봉’인 셈이다.     남가주 지역 운전자들은 특히 개스값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전국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개스를 구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자동차협회(AAA)의 자료에 따르면 21일 현재 전국 개스 평균 가격은 갤런당 3.86달러 수준, 이에 비해  LA는 6.06달러, 오렌지카운티는 6.01달러나 된다. 가주 평균은 5.79달러. LA와 오렌지카운티 운전자들은 전국 평균보다 갤런당 2달러 이상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있다. 1주일에 10갤런만 사용한다고 해도 주당 22달러, 한 달이면 100달러 가까이 더 지출해야 한다.   가주 개스 가격이 비싼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지적되는 것이 많은 세금과 공해 예방정책이다. 가주에서 개스에 부과되는 각종 세금은 갤런당 78센트로 전국 최고다. 이중 주정부 세금은 갤런당 58센트 정도로 다른 주들의 배가 넘는다. 여기에 여름용에는 갤런당 15센트의 추가 정유 비용이 발생한다.   또 하나는 정유업체들의 폭리 문제다. 가주 정유업계는 마라톤(Marathon), 발레로(Valero), 필립스 66(Phillips 66), PBF에너지(PBF Energy), 셰브런(Chevron) 등 5개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자동차 숫자 대비 주유소 숫자는 다른 주에 비해 훨씬 적다고 한다.   한 조사업체에 따르면 가주 내 주유소당 이용 자동차 숫자는 전국 평균의 두 배나 된다. 가주 주유소들은 그만큼 가격 경쟁 부담이 적은 셈이다. 정유업체들은 폭리를 부인하고 있지만 가주가 타주에 비해 수익성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개스 가격이 급등할 때마다 정유업체들로 비난의 화살이 향한다.   개스 가격 문제로 여론이 들끓으면 주 정부는 ‘철저한 조사’를 강조한다. 지난 2019년 가주의 개스 가격이 전국 평균의 두 배까지 오르자 개빈 뉴섬 주지사는 검찰에 수사를 지시했다. 정유업체들의 가격담합, 폭리 여부 등을 조사해 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개스 가격이 다시 안정세를 보이자 여론은 잠잠해졌고 수사도 유야무야됐다.   그러다 지난해 개스 가격이 또 급등하자 이번에는 더 강력한 조치가 나왔다. 개스 가격 급등으로 정유사들이 90일간 630억 달러에 달하는 추가 수익을 올렸다며 정유사 폭리 처벌법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법 시행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주 에너지위원회(CEC) 산하에 개스 가격을 모니터링하는 독립 감시기구도 만들었다.   폭리 처벌법은 지난 6월부터 시행됐지만 아직 별 발표는 없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독립 감시기구는 아직 인력 조차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주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전기차 확대를 위해 개스 가격은 방치하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온다.       물론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왜곡 현상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으로는 효과적인 개입이 어렵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급등 개스 개스값 급등 개스값 변화 개스값 걱정

2023-09-21

[뉴스 포커스] ‘머그샷 제품’ 파는 이상한 트럼프

‘머그샷(mugshot)’이 상품화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머그샷은 체포된 범죄 용의자를 찍은 사진이다. 그런데 본인이 자발적으로 상품의 모델로 나섰으니 이상한 일이다. 대부분의 용의자는 머그샷의 공개를 원치 않는다. 본인이 범죄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아서다. 그런데 이런 유쾌하지 않은 상황도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다니 참으로 대단한 발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조지아주 풀턴카운티 구치소에 출두했다. 조지아주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기 때문이다. 2020년 대통령 선거 당시 바이든에게 패배한 조지아주의 개표 결과를 뒤집기 위해 광범위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혐의다.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을 비롯해 그의 측근 18명도 함께 기소됐다. 이들의 혐의는 41가지에 달한다.     트럼프가 기소된 것은 이번이 4번째다. 스토미 데니얼스라는 여배우에게 입막음용 돈을 지급한 것과 관련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기소 됐고, 이후 정부 기밀문서 유출과 보관 관련 혐의, 1·6 연방의회 의사당 난입사태 선동 혐의 등으로도 기소된 바 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4번째 기소에서는 머그샷을 찍었다. 최초의 전직 대통령 머그샷 촬영이라는 또 하나의 기록을 보탰다. 그가 풀턴카운티 구치소에 출두한 것은 지난달 24일 오후 7시30분쯤이었다. 이후 구치소를 떠난 시간은 오후 7시55분.  이후 ‘트럼프 세이브 아메리카 조인트 펀드레이징 커미티’라는 단체가 온라인을 통해 ‘트럼프 머그샷 제품’의  판매를 시작한 것이 오후 9시22분 부터다. ‘트럼프 머그샷 제품’은 사전에 계획된 트럼프의 사업 아이템이었다.     현재 판매되는 트럼프 머그샷 관련 제품은 10여 종에 이른다. 트럼프 관련 물품 판매 웹사이트에서 티셔츠 34달러, 포스터 28달러, 커피잔 25달러, 음료수 쿨러 15달러, 그리고 자동차용 범퍼용 스티커가 12달러에 팔리고 있다. 이 외에 일부 발 빠른 업자들도 다양한 버전의 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머그샷의 상표권이 트럼프에게 있지 않아 가능한 일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트럼프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제품을 사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유죄가 확정되면 술을 따라 마시려고 술잔을 구매했다는 사람도 있다.     트럼프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는 수익금을 법률 비용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구치소 출두에도 전용 비행기를 이용하는 측의 변명으로는 옹색하다. 금전적인 목적보다는 ‘머그샷 제품’을 통해 본인이 정치적으로 압박받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지지층은 더 결속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의 전략이 먹혔는지 판대도 호조를 보인다고 한다. 이번 주 초 이미 판매고가 700만 달러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성공한 부동산 투자가로 알려졌지만 마케팅 능력도 뛰어난 사업가다. 이는 그가 과거부터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데 열심이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손을 대는 모든 사업에 본인의 이름을 사용했다.  ‘트럼프 셔틀’이라는 항공사를 설립했고 ‘트럼프 보드카’, ‘트럼프 스테이크’, 그리고 ‘트럼프 아이스’라는 물도 만들어 팔았다. 그리고 ‘트럼프 대학’도 만들었다. 모두 실패로 끝났지만 ‘트럼프’라는 브랜드는 남은 것이다. 아마 그 덕에 몇 번의 파산에도 불구 사업적으로 재기할 수 있었고 미국의 45대 대통령까지 역임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비즈니스와 정치는 생리적으로 다르다. 사업가는 수익 극대화가 목표지만 정치인은 국민이 목적이어야 한다. 정치를 사업체 운영하듯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상황으로는 내년 대통령 선거에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본인의 ‘머그샷 제품’을 파는 모습을 보면 45대 대통령 시절과 크게 달라질 것 같지가 않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머그샷 트럼프 트럼프 머그샷 트럼프 주니어 트럼프 세이브

2023-08-31

[뉴스 포커스] 어퍼머티브 액션 폐지, '속편'이 더 문제다

지난 6월 어퍼머티브 액션 폐지 논란 당시 소수계 가운데 유독 중국계와 함께 한인들의 찬성 비율이 높았다. 소수계에 대한 배려가 오히려 한인 학생들의 명문대 입학에는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방대법원의 ‘성적순 선발’ 판결은 반길 일이었다. 당장 한인 학생들의 명문대 입학에 유리해질 것이라는 발 빠른 예상도 나왔다.        대학 입학 시즌이 끝나면 “성적은 합격하고도 남았는데”라며 아쉬워하는 부모들이 많다. 주로 아이비리그 등 소위 명문대 입학이 좌절된 학생의 부모들이다. 뛰어난 학업 성적에 과외 활동까지…. 도무지 낙방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으려고도 한다.     그런데 전국의 고등학교 숫자가 2만6000개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면 조금은 위안이 될 것이다. 매년 각 학교 수석 졸업생만 2만6000명 이상이라는 의미다. 이들 대부분이 명문대에 지원할 것이고, 그들의 성적 역시  ‘합격하고도 남을 ’수준일 것이다. 여기에 이른바 이른바 레거시·기부 입학생, 해외의 지원자까지 합치면 입학 경쟁은 그야말로 바늘구멍이 된다.     소수계를 배려한다고 해도 성적이 떨어지는 소수계 학생을 뽑을 리도 만무하다. 애초부터 지원자의 성적은 입학 심사 과정에서 변별력이 떨어지는 항목인 셈이다. 대부분이 올 에이 성적표를 제출하는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성적순 선발’ 방식이 된다고 해서 한인 학생들의 합격률이 높아진다는 보장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우려했던 ‘어퍼머티브 액션 폐지’ 속편이 나왔다.  대학 입학에서 취업 문제로 버전만 달라진 것이다. 속편의 첫 장면은 어퍼머티브 액션 위헌 소송을 이끌었던  AAER(American Alliance for Equal Rights)이라는 단체가 대형 법률회사 2곳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들 법률회사가 운영 중인 소수계, 장애인, 성 소수자 펠로우십 프로그램이 공정성과 통합 정신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이 펠로우십 프로그램은 졸업 후 취업에까지 연결이 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인종에 기반을 둔 취업 프로그램으로 인해  ‘장애가 없는 백인 지원자’가 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제소된 법률회사들은 소속 변호사만 각각 1000명이 넘고 세계 곳곳에 사무실을 둔 글로벌 업체들이다. 평소 다양성과 공정성, 사회적 통합에 관심을 갖고 앞장서 실천하는 업체라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AAER가 타깃으로 삼은 이유다.      주요 대기업에도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공화당 소속인 13개 주 검찰총장들은 지난달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어퍼머티브 액션 폐지 사실을 주지시키는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이들 기업이 소수계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운영하는 다양성, 형평성, 통합 관련 프로그램들의 위축이 뻔해 보인다.     문제는 이것이 완결편이 아닐 것이라는 데 있다. 소수계 배려 중단 요구가 공공기관 취업이나 정부 조달사업 분야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AAER을 이끄는 에드워드 블럼이라는 인물은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5년 이내에 최소 두 가지 케이스는 연방대법원까지 갈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AAER처럼 어퍼머티브 액션 폐지를 주장하는 쪽은 공정성을 주장한다. 평가는 전적으로 개인의 능력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종이나 민족적 요소를 고려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말한다. 일면 타당한 주장이긴 하지만 과연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상황인가는 의문이다.      한인들에게 이민 이유를 물어보면 ‘자녀 교육’을 가장 윗부분에 둔다. 그만큼 교육열이 높다 보니 대학 진학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하지만 대학 입학이 종착 지점은 아니다. 오히려 그다음 무대가 더 중요하다. 계속되는 ‘속편’ 탓에 한인 후세들이 ‘유리천장’을 뚫는 일이 더 어려워질까 우려된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액션 폐지 액션 폐지 기부 입학생 소수계 학생

202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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