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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무의 꿈은 새벽에 영글어 가고

금방 하루해가 저물었다. 뉘엿뉘엿 흐린 하늘에도 분홍의 노을이 진다. 붉거나 보라의 것에서 풍기는 강렬함 보다는 꿈같은 아련함이 온 몸에 소복히 내려앉는다. 새들도 제 집으로 날아가 버리고 토끼도 제 보금자리를 찾는 하루가 저물고 있다. 등을 기대야 하는 어둠이 오고 잠깐만에 세상은 고요 안에 스스로 잠겼다. 숨죽이고 견디다 보면 저 깊숙이 살아나는 것들이 보이고 지나쳤던 꿈들이 노래가 되어 가까이 들려온다. 나무의 꿈은 영글어 가는데….   숲속에 걸터앉은 나무가 보인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나무는 말을 걸어 오지 않는다. 가지마다 제 몸무게만큼이나 눈송이를 안고 있어도 도무지 흔들리는 일이 없다. 살아 있으나 죽은 듯 전혀 미동이 없다. 찬 바람이 불어도 눈보라가 쳐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다가가지 않는 한 넌 언제고 정지된 나무였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숲으로 돌아가 누웠다. 별빛 아래 가늠할 수 없는 꿈속에 잠들어 있다. 나무도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들고 깊이 잠들었나 보다.   나무를 보려고 새벽 커튼을 젖혔다. 어둠 저편 언덕 너머에 동이 트고 있었다. 팔을 뻗어 잔 가지의 눈을 털어주려다 되돌아왔다. 나무 둥지에 새들이 모여 재잘거리고 별빛이 스치고 간 한 밤의 짧은 미련도 사라진 시간. 누군가 내 등을 만지는 손길에 뒤돌아 보았다. 그것은 창살을 통해 들어온 나무의 긴 그림자였다. 한 발자국도 더 가까이 갈 수 없는, 한 마디 말도 걸어볼 수 없는 너의 그림자.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는 하루가 시작되는 소리였다. 왼쪽 팔을 길게 뻗어 팔베개를 했다. 나무를 향해 누웠다. 나무는 잠들기 시작했다. 먼동이 트는 이 새벽에 깊은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내가 나무가 되어 너의 창가에 서 있다. 깊은 밤 눈길을 걸어 그대에게로 가서 잠든 너의 눈시울을 잠깐 바라보다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어쩌면 눈물일지도 모를 둥글고 따뜻한 물방울, 네 등 뒤에서 맡을 수 있는 너의 향기는 지워지지 않는 긴 그림자이고, 겨울 가지를 닮은 봄으로 뻗은 뿌리처럼 깊은 나의 하루가 되었다. (시인, 화가)         눈 덮인 뒤란에 나무 한 그루 서있다 모두 잠들은 이른 아침 하루가 깨어 나는 숲에서 건져 올린 사랑이라는 단어   사랑이 사랑이 되지 못하는   너를 잃고 나마저 잃은 세상에 새벽으로 오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어깨부터 기대오는 내 안 가득 당신입니다     총총걸음으로   구름길로 걸어야 하는 곳 한 평 남짓 발 뻗은 자리에도 가는 햇살로 녹이시고 흐르는 새벽으로 챙기시는 그대의 긴 손, 향기     장독대 장들이   느리게 익어가는 별빛 아래 희끗희끗 하얀 새치처럼   눈발이 날리고 나이 먹는 어리둥절 속에 사랑을 느리게 깨달아 갈 때 아픔이 무르익기 전 그대는 잠들어야 해요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손     나무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어머니 손을 꼭 닮은   그대의 손은 약손입니다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무 새벽 나무 둥지 새벽 커튼 단어 사랑

2024-02-05

[삶의 뜨락에서] 떠나 온 집

30년 동안 살던 집을 오랜 고심 끝에 팔기로 했다. 복덕방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전화가 걸려오고 집으로 찾아오곤 했다. 방마다 가득 쌓인 물건들을 보며 참으로 난감했다. 이렇게 많은 허접쓰레기를 그동안 머리에 이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욕심 많은 내가 부끄러웠다.     시간을 들여 찬찬히 물건들을 들여다보았다. 이 물건들이 모여서 집이 되었다. 여행 갈 때마다 힘들게 모은 그림들, 어머니가 만들어 준 빛바랜 커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묵화, 맨해튼 가게에서 사들인 자주색 양탄자, 아이들의 어릴 적 물건들, 어느 것 하나 사연이 없는 것들이 없었다. 그들은 말없이 나를 지지해 준 내 삶의 조역 배우들인 것이다. 아무렇게나 처리해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가구는 Salvation Army에 연락했다. 약속한 날짜에 트럭으로 픽업해 갔다. 화병과 화분, 그동안 쓰지 않고 간직하고만 있었던 그릇과 접시, 오래된 녹슨 전축…등등, 집을 온전히 비우는데 수개월의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했다. 집안에 가구가 많으면 그만큼 가난하다는 소로우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7년이나 지난 일이었다.   진흙과 나무와 돌을 고를 때부터 인연을 맺기 시작한 이 집을 팔게 되리라고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믿어지지 않는다. 수도 없이 집을 찾아다니면서도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를 수 없어 도착한 곳이 뉴욕에서 동쪽으로 40여 마일 떨어진 소나무로 우거진 숲속이었다. 이제 막 짓기 시작한 이 집은 갈색 지붕을 올리는 작업이 끝나 있었다. 이 집으로 이사 오던 때의 1993년의 3월, 늦봄인데도 푸짐하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집 앞의 큰 소나무들과 집이 온통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사 들어 오는 첫날, 눈이 내리면 큰 축복을 받는다는 옛말을 믿으며 나는 영원히 이곳에 살리라 다짐했었다.     집은 사람을 닮는다고 한다. 늘 커다란 서재를 갖고 싶어했던 나는 차고가 들어설 자리에 큰방을 만들어 서재로 썼다. 두 벽이 천정 끝까지 닿는 책꽂이에는 학교에서 읽었던 아이들의 책,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세로로 쓰인 중국 고서, 박경리, 조정래의 한국 소설에서부터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이미 읽었거나 앞으로 읽어야 할 책들로 가득 찼다. 한국에서부터 들고 온 LP 레코드, CD, 매달 우편으로 배달되는 Smithsonian, National Geography 잡지들, 그 방에 들어서기만 하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사라진 그동안의 꿈들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이 되면 온 식구들이 이곳에서 지내곤 했다. 어느 해는 거의 50여 명의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두 마리의 커다란 터키를 굽고 스터핑을 만들고 펌킨 파이를 굽느라 동동거렸던 정신없었던 그 순간이 되돌아보면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지금도 그 방에 들어가면 터키 굽는 냄새가 진동할 것만 같다. 무엇보다 사방이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이 집은 숲속의 한가운데사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숨 막힐 정도로 찬란하게 물든 가을 나뭇잎들, 아직 해가 뜨기 전, 겨울의 이른 새벽, 어둠 속을 뚫고 비치는 하루의 첫 빛줄기는 정말 장관이다.   집을 만드는 것은 기억과 사람이지 그 안에 있는 물건이나 구조물 자체가 아니라고 한다. 사람들은 떠나고, 심지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오래전에 그들이 살았던 공간에서 산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새로운 곳으로 옮겨 간 지금에도 종종 그곳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이춘희 / 시인삶의 뜨락에서 커튼 아버지 national geography 한국 소설

2022-09-01

샌버나디노 테러 추모관 '용기의 커튼' 20일 공개

샌버나디노 총기난사 테러가 발생한 지 6년여 만인 오는 20일 희생자 추모 기념관(사진)이 일반에 공개된다.   테러는 지난 2015년 12월 2일 샌버나디노의 인랜드 지역 센터에 파키스탄계 부부인 타시핀 말릭(27)과 사이드 파룩(28)이 중무장한 채 침입해 자동 소총을 난사한 사건이다. 당시 14명이 사망했고 22명 부상했다. 말릭 부부는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숨졌다.   카운티 직원과 피해자 가족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이번 기념관 설계 입찰에 응모한 85명중 오클랜드에 기반을 둔 디자이너 월터 후드를 선택했다. 후드는 LA 브로드 뮤지움 플라자를 설계한 세계적인 조경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 알려졌다.   기념관은 샌버나디노의 노스 애로우헤드 애비뉴에 소재한 샌버나디노 카운티 정부 센터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후드에 따르면 '용기의 커튼(Curtain of Courage)'으로 명명된 기념관은 130만 달러의 예산이 들어간다. 청동과 강철로 만든 곡선형 메쉬 패널로 제작되며 방탄 조끼같은 보호 장비를 연상케 하는 커튼 모양으로 설계된다. 커튼으로 숨진 희생자들을 상징하는 총 14개의 오목한 공간이 만들어진다. 공간마다 벤치가 놓이며 커튼 벽에는 희생자 가족들이 선택한 문구가 새겨지게 된다. 벤치 안에는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가족들이 고른 유품이 보관된다. 안내판에는 영어 스페인어 베트남어로 된 사건 개요가 적혔다.   기념관은 6월 20일 오전 8시에 일반에 공개된다. 지난 2016년에는 캘스테이트 샌버나디노 대학에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관인 '평화의 정원(Peace Garden)'이 문을 열었다.추모관 커튼 테러 추모관 총기난사 테러 커튼 모양

202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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