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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떠나 온 집

30년 동안 살던 집을 오랜 고심 끝에 팔기로 했다. 복덕방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전화가 걸려오고 집으로 찾아오곤 했다. 방마다 가득 쌓인 물건들을 보며 참으로 난감했다. 이렇게 많은 허접쓰레기를 그동안 머리에 이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욕심 많은 내가 부끄러웠다.  
 
시간을 들여 찬찬히 물건들을 들여다보았다. 이 물건들이 모여서 집이 되었다. 여행 갈 때마다 힘들게 모은 그림들, 어머니가 만들어 준 빛바랜 커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묵화, 맨해튼 가게에서 사들인 자주색 양탄자, 아이들의 어릴 적 물건들, 어느 것 하나 사연이 없는 것들이 없었다. 그들은 말없이 나를 지지해 준 내 삶의 조역 배우들인 것이다. 아무렇게나 처리해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가구는 Salvation Army에 연락했다. 약속한 날짜에 트럭으로 픽업해 갔다. 화병과 화분, 그동안 쓰지 않고 간직하고만 있었던 그릇과 접시, 오래된 녹슨 전축…등등, 집을 온전히 비우는데 수개월의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했다. 집안에 가구가 많으면 그만큼 가난하다는 소로우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7년이나 지난 일이었다.
 
진흙과 나무와 돌을 고를 때부터 인연을 맺기 시작한 이 집을 팔게 되리라고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믿어지지 않는다. 수도 없이 집을 찾아다니면서도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를 수 없어 도착한 곳이 뉴욕에서 동쪽으로 40여 마일 떨어진 소나무로 우거진 숲속이었다. 이제 막 짓기 시작한 이 집은 갈색 지붕을 올리는 작업이 끝나 있었다. 이 집으로 이사 오던 때의 1993년의 3월, 늦봄인데도 푸짐하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집 앞의 큰 소나무들과 집이 온통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사 들어 오는 첫날, 눈이 내리면 큰 축복을 받는다는 옛말을 믿으며 나는 영원히 이곳에 살리라 다짐했었다.  
 
집은 사람을 닮는다고 한다. 늘 커다란 서재를 갖고 싶어했던 나는 차고가 들어설 자리에 큰방을 만들어 서재로 썼다. 두 벽이 천정 끝까지 닿는 책꽂이에는 학교에서 읽었던 아이들의 책,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세로로 쓰인 중국 고서, 박경리, 조정래의 한국 소설에서부터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이미 읽었거나 앞으로 읽어야 할 책들로 가득 찼다. 한국에서부터 들고 온 LP 레코드, CD, 매달 우편으로 배달되는 Smithsonian, National Geography 잡지들, 그 방에 들어서기만 하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사라진 그동안의 꿈들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이 되면 온 식구들이 이곳에서 지내곤 했다. 어느 해는 거의 50여 명의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두 마리의 커다란 터키를 굽고 스터핑을 만들고 펌킨 파이를 굽느라 동동거렸던 정신없었던 그 순간이 되돌아보면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지금도 그 방에 들어가면 터키 굽는 냄새가 진동할 것만 같다. 무엇보다 사방이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이 집은 숲속의 한가운데사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숨 막힐 정도로 찬란하게 물든 가을 나뭇잎들, 아직 해가 뜨기 전, 겨울의 이른 새벽, 어둠 속을 뚫고 비치는 하루의 첫 빛줄기는 정말 장관이다.
 
집을 만드는 것은 기억과 사람이지 그 안에 있는 물건이나 구조물 자체가 아니라고 한다. 사람들은 떠나고, 심지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오래전에 그들이 살았던 공간에서 산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새로운 곳으로 옮겨 간 지금에도 종종 그곳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이춘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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