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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시선] 사과배

2007년, UC 샌디에이고를 졸업하고 필자가 향한 곳은 중국의 연변이었다. 당시 경제적으로 거침없는 성장세를 이어가던 중국의 역동성도 흥미로웠지만,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길림성의 연변 자치구와 조선족을 위해 설립된 중국 최초의 중외합작대학인 연변과학기술대학교(YUST)는 다른 차원의 끌림을 주었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한인타운이 미국 LA에 있는 줄 알았는데 연길에 도착하는 순간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깨달았다. 연변 조선족 자치구의 면적은 대한민국의 절반 정도로 넓었고 어느 곳이든 중국어와 한글이 병행 표기되어 있었다. 시장과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조선족들은 구수한 연변식 한국어를 구사하며 한국 드라마는 물론 춘향전 같은 전통극과 가무도 즐겼다.  LA 한인타운과는 비교가 안 되는 규모의 또 다른 ‘코리아’가 중국 외곽에 있었다.     연변과기대에서 한 학기 동안 일하며 또래 중국 동포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는데, 그중 일수라는 친구와 특히 더 돈독해졌다. 일수는 어느 날 연변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자신의 고향 왕청시로 나를 초대했고, 나는 버스를 타고 왕청으로 향했는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40년 전 한국 어느 골목 거리를 통과하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수 집에 도착하니 일수 할머니께서 맛있는 옥수수죽을 만들어주셨다. 알고 보니 일수 부모님은 수년째 한국에서 노동일을 하며 일수 형제의 생활비를 보내고 있었다.   아마 그때였던 것 같다. 일수는 나보고 ‘사과배’라는 과일에 대해 아는지 물었다. 사과와 배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만든 사과배는 연변 지역에서 다량으로 재배되었다. 일수는 중국의 조선족들은 스스로를 ‘사과배’라고 부른다고 했다. 사과도 배도 아닌, 즉 중국인도, 조선인도 아닌 애매한 정체성에 대한 서러움과 애환의 표현이었으리라.   재미 한인인 나는 중국의 조선족 친구들 역시 정체성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자신의 조국을 떠나 해외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디아스포라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불가피하게 자아와 소속감을 찾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다고. 과연 조선족과 재미 한인, 아니, 모든 디아스포라는 과연 언제 온전한 ‘사과’ 혹은 ‘배’가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생존을 위해 혹은 주류에 동화되기 위해 사회 규범과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일부는 자신의 소수성, 경계성, 이방인성을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지배적인 문화와 체제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멈추지 않는다. 여기서 비판적 사유란 꼭 어떤 사회운동이나 정치 참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철학적이기도 하다. 12세기 프랑스 신학자였던 생빅토르의 ‘위그의 명언’을 되새겨보자.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직 미숙한 초보자이다. 좀 더 성숙한 사람은 모든 곳을 고향처럼 느끼는 코스모폴리탄이며, 궁극의 성숙한 모습은 모든 곳을 타향이라고 생각하는 이방인이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편안함과 소속감을 느끼는 세계 시민보다 오히려 자기 부정을 통해 이방인을 자처하는 이가 더 성숙한 존재라는 옛 신학자의 글에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이는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주류와 지배계급에 속하고 싶은 욕망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종교와 철학이 ‘자기 부정’과 ‘초월성’을 가장 높은 가르침으로 삼는 것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약육강식과 경쟁, 다툼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힘들지라도 시도해봐야 하지 않을까. 중심보다 변두리를 선택하고, 의식적으로 디아스포라가 되어보는 것, 그래서 ‘사과’나 ‘배’가 아닌, 그것을 초월하는 ‘사과배’ 그 자체가 궁극의 성숙이고 온전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전후석 / ‘헤로니모’·‘초선’ 감독디아스포라 시선 사과배 중외합작대학인 연변과학기술대학교 연변식 한국어 연변 조선족

2024-09-09

조선족 청춘 3명의 백두산 겨울연가

한 여자와 두 남자가 만나 우정과 사랑을 꽃피우는 청춘 드라마. 2013년 데뷔작 ‘일로 일로’(Ilo Ilo)로 칸영화제에서 데뷔 감독에게 수여하는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던 싱가포르 출신 앤소니 첸 감독의 최근작이다. 2023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섹션에 선정됐었고 싱가포르의 2024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부문 출품작이다.     겨울 폭설이 내리는 며칠간의 짧은 기간 동안 20대 청년 세 명이 만나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의 변화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배경지의 우아함을 최대한 노출시키는 촬영, 고전적 스토리텔링, 그리고 솔직하고 진지한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는 첸 감독의 스타일은 이 작품에서도 변함이 없다.   영화는 중국 북부의 국경 도시이며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연길시를 배경으로 한다. 나나(저우 동위)와 한샤오(추샤오추)는 연길에서 태어난 조선족 청년들이다. 연길을 떠나고 싶어 하는 그들이지만 처해 있는 상황이 늘 여의치 않다.     나나는 관광 가이드 일을 하고 있고 한샤오는 부모들이 운영하는 한식당 일을 돕고 있다. 한샤오의 마음에는 내심 나나를 향한 사랑이 있다. 하지만 나나는 그를 친구로만 대한다. 상하이에서 온 청년 하오평(류하오란)이 나나의 관광 버스에 손님으로 오른다. 그는 나나의 시선을 끈다.     나나가 하오평을 한샤오에게 소개한다. 세 사람 사이에 묘하고 차가운 기류를 안고 그들은 눈 덮인 장백산으로 여행을 떠난다. 나나는 하오평과 잠자리를 같이하고 한샤오가 이를 알게 된다.     그들은 각자 외롭다. 나름의 상처에 외로운 모습이 서로 다르다. 피겨스케이터의 꿈을 이루지 못한 나나와 음악에 소질이 있는 한사오는 도시 남자 하오평이 부럽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살 충동이 있다.     이들의 며칠 동안의 삼각관계는 눈덩이처럼 둥글게 보이기도 하고 고드름처럼 차갑고 아프게 느껴진다. 상처는 다른 사람들이 개입함으로 저절로 치유되기도 하다. 연변 조선족의 삶에 묻어있는 한국의 고유한 정서가 영화에 묻어있다.     세 사람은 백두산 천지를 보러 여행을 떠난다. 중국 북부 지방의 얼어붙은 겨울 풍경이 장관이다. 안개 때문에 천지에 오르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리랑’ 음악이 흐른다. 첸 감독은 한국 민요 아리랑의 가사로 영화의 메시지를 대신한다. 우울한 단조 멜로디에 이어지는 아리랑의 가사,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누가 누구를 버리는지는 각자의 처지에 달렸다.     삶은 결국 혼자 이루어가야 한다는 슬픈 깨달음이 길게 여운으로 남는다. 영화의 중국어 원제는 ‘연동’, ‘겨울연가’다.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겨울연가 조선족 백두산 겨울연가 조선족 청춘 연변 조선족

2024-01-26

“장기적으로 중국동포까지 끌어안는 한인회 돼야”

  제38대 뉴욕한인회장에 당선된 김광석 회장이 2·3세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뉴욕 일원에 거주하는 중국동포(조선족)까지 끌어안는 한인회가 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인으로서의 ‘헤리티지’를 가진 이들에게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교육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갈수록 축소되는 한인 커뮤니티가 큰 축을 놓치게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21일 당선 인사차 뉴욕중앙일보 본사를 방문한 김 회장은 중국동포의 뉴욕한인회 참여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코리안 헤리티지’(Korean Heritage) 단어에서 어디에 방점을 찍을지의 문제”라며 “중국동포들 중엔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난 선조의 후손들, 고려인 등이 포함돼 있고 우리 한인 2세, 3세들이 미국에서 소수민족으로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한인 헤리티지를 가진 사람들이 힘을 뭉칠 수 있도록 100년, 150년이 걸리더라도 당연히 끌어안아야 한다"고 밝혔다.    한인 이민사회에서 중국동포들을 멸시·배척하는 분위기가 생기자 이들도 등을 돌리고 본인을 중국인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생기곤 하는데, 이들을 놓치지 말아야 뉴욕 일원에서 한인 커뮤니티 파워도 조금이나마 더 키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인 정체성을 재정립할 수 있는 언어·문화·역사교육도 절실하다”며 “이런 부분은 한인 2·3세, 이민 1세에게도 모두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당장 중국동포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명확히 했다.   김 회장은 지난 11일 치러진 선거에서 총 6116표 중 3854표를 받아 당선됐다. 그는 “50만 한인 동포 중 6000여명만 투표했는데, 왜 다수가 무관심했는지를 면밀히 파악해야 할 것”이라며 “한인회 고유성을 끌고 나가면서도 확대하고, 참여를 독려할지가 고민”이라고 전했다.   회장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부분으로는 ‘이사회 확대·개편’과 ‘흥이 나는 한인회 만들기’를 꼽았다. 그는 “뉴욕 한인사회 곳곳을 대표할 인물들로 이사회를 확대·개편하되, 업무 연속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회장이 이사장과 일부 이사진을 임명하다시피 하는 현 규정을 손보고, 이사 임기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전했다.   이번 선거는 사상 첫 ‘세대 간 대결’로 펼쳐져 이목을 끌었다. 김 회장은 “함께 겨뤘던 강진영 뉴욕한인변호사협회 회장을 비롯해 많은 차세대 한인들이 한인회에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김 회장은 오는 27일 오전 11시 뉴욕한인회관에서 취임식을 갖는다. 리셉션은 같은 날 오후 6시 뉴욕한인봉사센터(KCS)에서 열린다. 글·사진=김은별 기자 kim.eb@koreadailyny.com뉴욕한인회 김광석 뉴욕한인회장 김광석회장 한인회 한인회장 조선족 중국 뉴욕

2023-06-21

[J네트워크] 중국은 중국을 잃어야 한다

중국이 진정한 대국이 되려면 멀고 멀었다. 지난 6일 개막한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명약관화한 증거다. 편파 판정이나 개막식 한복 논란 같은 몇몇 팩트 때문만이 아니다. 중국이 한국을 바라보는 본심은 기실, 새로운 게 아니다. 중국 지린성 윤동주 시인 생가엔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이라는 표지석이 10년째 버티고 있으며,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체계 논란 당시엔 한국 기업이 현지 정부기관은 물론 주민들에게 테러를 당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을 취재하던 한국인 사진기자 1명을 중국 정부 경호원 15명이 폭행해 안구출혈 중상까지 일어난 일도 있다.   쐐기를 박았던 건 2017년 시진핑 주석의 발언이다.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다른 곳도 아닌 미·중 정상회담에서 말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방중 당시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대국”, 한국은 “작은 나라”라 칭했다. 나라 대 나라에서 보면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번에 중국에 항의를 제대로 못 한 건 놀랍지 않다. 다음달 새로 출범할 정부는 한·중 관계를 초석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건 몇 사건에 발끈하는 일이 아니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은 비단 한·중 관계를 떠나 국제사회 전체에 ‘국격’의 가치를 되레 일깨웠다. 시 주석은 2012년, 중국이 세계의 중심 역할을 했던 과거의 영광을 21세기에 살리겠다며 중국몽(中國夢)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러나 전 세계의 축제인 올림픽을 중국 체전으로 스스로 격하시킨 중국 정부다. 소위 중국몽은 아직 미몽임을 웅변하는 증거일 뿐이다.   “덕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사람에겐 모두가 기꺼이 복종한다. 힘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은 마음으로가 아니라, 힘이 모자라기에 복종을 하는 척할 뿐이다.” 중국의 성현, 맹자가 한 말이다. 2022년 중국엔 경제력과 인구 등 국력, 즉 힘은 있지만 덕이 없다. 자국팀으로 출전한 피겨스케이팅 선수에게 넘어졌다는 이유로 야유를 보내는 게 가히 덕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중국의 또 다른 성현, 장자는 ‘오상아(吾喪我)’, 즉 “나를 잃고 나서 나를 찾았다”고 했다. 힘만을 앞세운 중국을 잊고 덕을 펼치는 중국으로 거듭나지 않는 이상 중국을 진정으로 대국으로 대접할 일은 없다. 물론 중국이 태도를 갑자기 바꾸고 진정한 대국으로 오상아 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딱하다. 중국도, 한국도. 전수진 / 한국 중앙일보 투데이·뉴스 팀장J네트워크 중국 베이징 겨울올림픽 한국인 사진기자 조선족 애국시인

2022-02-13

[노트북을 열며] 중국은 중국을 잃어야 한다

 중국이 진정한 대국(大國)이 되려면 멀고 멀었다. 지난 6일 개막한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명약관화한 증거다. 편파 판정이나 개막식 한복 논란 같은 몇몇 팩트 때문만이 아니다. 중국이 한국을 바라보는 본심은 기실, 새로운 게 아니다. 중국 지린성(吉林省) 윤동주 시인 생가엔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이라는 표지석이 10년째 버티고 있으며,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계 논란 당시엔 한국 기업이 현지 정부기관은 물론 주민들에게 테러를 당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을 취재하던 한국인 사진기자 1명을 중국 정부 경호원 15명이 폭행해 안구출혈 중상까지 일어난 일도 있다.   쐐기를 박았던 건 2017년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발언이다.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다른 곳도 아닌 미·중 정상회담에서 말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방중 당시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대국”, 한국은 “작은 나라”라 칭했다. 나라 대 나라에서 보면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번에 중국에 항의를 제대로 못 한 건 놀랍지 않다. 다음달 새로 출범할 정부는 한·중 관계를 초석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건 몇 사건에 발끈하는 일이 아니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은 비단 한·중 관계를 떠나 국제사회 전체에 ‘국격’의 가치를 되레 일깨웠다. 시 주석은 2012년, 중국이 세계의 중심 역할을 했던 과거의 영광을 21세기에 살리겠다며 중국몽(中國夢)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러나 전 세계의 축제인 올림픽을 중국 체전으로 스스로 격하시킨 중국 정부다. 소위 중국몽은 아직 미몽임을 웅변하는 증거일 뿐이다.   “덕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사람에겐 모두가 기꺼이 복종한다. 힘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은 마음으로가 아니라, 힘이 모자라기에 복종을 하는 척할 뿐이다.” 중국의 성현, 맹자가 한 말이다. 2022년 중국엔 경제력과 인구 등 국력, 즉 힘은 있지만 덕이 없다. 자국팀으로 출전한 피겨스케이팅 선수에게 넘어졌다는 이유로 야유를 보내는 게 가히 덕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중국의 또 다른 성현, 장자는 ‘오상아(吾喪我)’, 즉 “나를 잃고 나서 나를 찾았다”고 했다. 힘만을 앞세운 중국을 잊고 덕을 펼치는 중국으로 거듭나지 않는 이상 중국을 진정으로 대국으로 대접할 일은 없다. 물론 중국이 태도를 갑자기 바꾸고 진정한 대국으로 오상아 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딱하다. 중국도, 한국도. 전수진 / 한국 투데이·뉴스 팀장노트북을 열며 중국 베이징 겨울올림픽 한국인 사진기자 조선족 애국시인

2022-02-09

[중앙 칼럼] 17년 간격 두고 만난 두명의 조선족

1998년 4월 13일, 연변공항에서 '그'를 만났다. 웃음기를 띠긴 했지만 주름살 가득한 얼굴은 30대인지 50대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갈색 바지에 낡은 점퍼를 입은 그의 뒤로 역시 낡은 볼크스웨건의 '싼타나'가 서 있었다. 조선족인 그는 이틀간 조·중 국경을 따라 나를 안내하기로 돼있다. 낡긴 했지만 자동차를 소유한 그는 어엿한 독립사업자로 그 사회에서 잘나가는 축에 속한 듯했다. 하지만 우린 말만 겨우 통할 뿐 서로에 대한 이질감은 적지 않았다. 당시 나는 베이징 북경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남북차관급 회담의 취재진으로 출장 중이었다. 남한은 구호물자 전달과 이산가족 문제, 남북 기본합의서 이행 문제를 협의하자는데 반해 북한은 이와는 별도로 비료 20만톤을 선지원해 달라는 요구로 일관해 며칠 째 회담이 결렬되고 있었다. 전날 오전에서야 비로소 첫 당국자들을 회담장 입구에서 촬영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서울 본사 데스크로부터 예상치 못했던 지시가 떨어졌다. 앞으로도 회담이 지지부진할테니, 연변으로 가서 김일성 사후 첫 생일(태양절) 분위기를 취재하라는 것. 낡은 싼타나 트렁크 트림 속에 분리한 렌즈와 카메라를 감추고 국경도로 검문소를 통과했다. 아직도 강가에는 얼음이 낀 을씨년스러운 국경도로를 숨죽이며 돌았다. 두만강변에서 빨래하는 아낙들, 농장에서 일하는 이들, 하루 앞으로 다가온 태양절을 앞두고 협동농장 마당에 모여 회의를 하는 농장원들. 이 모두가 기사가 후드을 열고 차 수리를 하는 척 하는 사이 뒷좌석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들어갈 때는 모른 척하다가 나올 때 검문해서 숨겨둔 카메라를 찾아내고 돈을 요구하던 검문소 공안들, 국제전화가 안돼 애태웠던 용정 시내 호텔, 베이징으로 돌아온 뒤 다음날 신문에 실린 협동농장 사진으로 인해 동료 기자들과 통일부 언론 담당으로부터 지청구를 듣던 일들이 생생하다. 당시 타사 기자들에겐 레저 기사용 취재를 간다고 둘러댔던 것이다. 지난 달, 베이징 국제공항에서 또 다른 '그'를 만났다. 40대 초반의 그는 한손에 우리 가족 이름을 적은 종이를 들고 있었다. 여행사의 한국인 직원이겠거니 했는데, 그는 자신을 조선족이라고 했다. 하지만 말씨마저 서울말을 닮아 있고, 그의 차 또한 한국의 중형 SUV였으니, 그를 당장 한국 어디에 데려다 놓아도 전혀 이질감을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다. 17년 만에 달라진 건 도시의 모습만이 아니었다. 17년 전의 '그'와는 천양지차였다. 중국 정부의 관광 정책 덕에 이중언어 관광가이드로 수도에 입성, 부동산 투자에도 성공했고, 아내 역시 전문직 종사자라고 했다. 한달에 열흘 가까이 골프를 즐긴다고도 했다. 중국내 조선족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실감했던 일은 또 있었다. 그가 안내한 조선족 발 마사지 업소에서는 한족, 회족, 몽골족 등이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가끔 중국인들을 인솔해서 한국을 가는데, 매력적인 나라라고 눈이 휘둥그레진 다음에 으레 하는 말이 "한국이 아주 큰 나라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 이미지와 영향력은 영토 크기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다며 얼굴이 상기되기도 했다. 조선족은 중국 55개 민족 중에서 인구수 200만 여명으로 14번째다. 소득과 교육 수준은 이미 오래 전에 한족이나 다른 소수민족들의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고 한다. 이들과 비슷한 인구 200만 여명에 소수계로 살고 있는 우리 미주한인들의 처지가 생각나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아이들 역시 그런 눈치다.

2015-07-30

중국 조선족 기업들과 손잡았다

조지아한인상공회의소(회장 이경철)는 17일 중국 대련시조선족기업가협회(회장 최영철)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이경철 상의회장은 이날 둘루스 사무실에서 대련시조선족기업가협회 김송전 부회장과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앞으로 두 단체는 회원사업추진 적극지원, 무역거래 활성화 등 다양한 교류를 실시한다. 이경철 회장은 “이번 양해각서체결을 통해 대련시조선족기업들과 더욱 활발한 교류를 통한 경제활성화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송전 부회장은 “몇년전부터 상의와 함께 일을 해왔고, 개인적으로도 애틀랜타에 목재관련 사업을 위한 사무소를 두고 있다”면서 “올해 30여명의 협회 회원들과 함께 조지아를 다시 방문해 투자 가능성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에 따르면 대련시조선족기업가협회는 지난 2010년 5월 중국 대련시 조선족기업인들이 주축이 돼 설립됐다. 현재 중국내 유일하게 정부허가를 받은 소수민족상회 조직으로, 조선족기업인들의 합법적인 권익 수호와 단합을 통한 상호발전을 목표로 한다. 현재 320여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제조업, 무역, 요식업, 과학기술, 의학 등 6개 분회와 금융, 법률, 정보 등 여러 사무국을 두고 있다. 그는 “대련은 중국 북방의 항구, 공업, 무역, 금융, 그리고 관광도시로, 동북아의 중요한 항만 허브이자 물류 중심지”라고 설명했다. 조지아한인상의 이혁 부회장은 “올해 한상대회를 계기로 대련을 방문해 다양한 사업가능성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권순우 기자

2015-02-17

간판은 ‘네일’…실제론 ‘매음굴’

<속보> 한인 여성들을 강제로 성매매를 시킨 혐의로 기소된 최진화(Jin Hua Cui, 44)는 온라인 크레이그스리스트에 노골적인 성매매 광고를 게재해 호객행위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6월 30일자 A-2면·사진참조> 크레이그스리스트 광고 포스터에는 “아시안 여성 인콜 서비스”라는 문구가 버젓이 적혀있으며 업소의 자세한 위치와 전화번호, 비키니를 입은 아시안 여성의 사진까지 함께 실려 있다. 최 씨가 운영하는 헌팅턴스테이션 업소 또한 대로변에 위치해 있으며 ‘제리코 네일·스파’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네일서비스는 제공하지 않고, 광고를 보고 찾아온 고객들을 상대로 매춘 영업을 해온 것으로 검·경 수사결과 드러났다. 문제의 업소는 내부가 보이지 않게 커튼 등으로 전면 유리창을 가렸으며, 입구에는 네일과 전신마사지, 발마사지 등의 서비스가 제공된다고 적혀있다. 서폭카운티 검찰은 “업소 내부에는 네일서비스에 쓰이는 재료가 전혀 없었다”며 “이 곳의 종업원들이 강제로 일하고 있다는 경찰의 첩보를 토대로 지난 3월부터 4개월여 동안 비밀리에 수사를 펼쳐왔다”고 밝혔다. 최씨는 지난 2007년에도 매춘 카운티 경찰의 함정수사에 적발돼 구류 3개월의 처벌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1만 달러의 보석금이 책정돼 현재 카운티 구치소에 수감돼 있으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유죄가 인정되면 최고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성매매를 강요받았던 한인 여성 8명의 정확한 체류신분과 향후 거취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 여성 중 대부분은 한국 국적이며 미국 시민권자도 일부 포함돼 있다. 신동찬 기자 shin73@koreadaily.com

2010-07-01

한인 여성 8명에 매춘 강요…롱아일랜드 조선족 스파 업주 구속

롱아일랜드에서 불법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던 플러싱 거주 40대 조선족 여성이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온 한인 여성들에게 성매매를 강요한 혐의로 서폭카운티 검찰에 기소됐다. 카운티 검찰은 플러싱 158스트릿과 35애브뉴에 사는 피의자 최진화(영어명 Jin Hua Cui·44)씨 자택을 수색한 뒤 현금 2만달러와 사업체 운영 기록, 여권, 콘돔박스 등을 압수했다고 29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최씨는 서폭카운티 헌팅턴스테이션과 힉스빌에서 각각 스파를 운영했으며 한인신문에 네일살롱 구인광고를 게재한 뒤 찾아오는 한인 여성들에게 성매매를 강요했다. 카운티 검찰 로버트 클리포드 대변인은 “이번 수사는 지난 3월부터 헌팅턴 스테이션에 있는 스파에서 비밀리에 성매매 행위가 진행되고 있음을 감지한 뒤 수사를 전개했다”며 “수사결과 성매매를 하던 여성들이 모두 최씨의 강요에 의해 성매매를 했던 것으로 밝혀져 최씨와 운전자만 기소하게 됐다”고 말했다. 성매매를 강요당한 여성들은 모두 8명으로 연령대는 25~40세인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들 여성 중에는 한국 여권을 소지한 여성과 미국 시민권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폭카운티 토마스 스포타 검사장은 “최씨가 플러싱에서 여성들을 밴에 태운 뒤 롱아일랜드 스파로 데리고 와 성매매 행위를 시켰다”며 “한인 신문의 네일살롱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 온 여성들을 물리적인 협박을 통해 성매매를 강요했다”고 밝혔다. 최씨는 크레그리스트 등 온라인 매체 등에 성매매 광고를 게재해 호객행위를 했으며 60~80달러 정도의 화대를 받았으나 여성들에게는 개인 팁 외엔 돈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수사결과 드러났다. 또 최씨와 함께 체포된 운전사 권모(남·53)씨는 지난 22일 열린 공판에서 최씨가 성매매를 알선했다고 증언했다. 최씨는 보석금 1만 달러가 책정됐으며 현재 카운티 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신동찬 기자 shin73@koreadaily.com

201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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