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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앤디 김이 가야할 길

앤디 김(42) 연방 상원의원이 지난 9일 취임했다. 한인 최초의 상원의원 선서식은 120여년 한인 이민사에 큰 획을 긋는 감격스런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전례없는 첫걸음에 한인들 역시 전례없는 기대를 걸고 있다. 처음이라는 상징성을 업고 시작한 과거 한인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감이 그 기대에 녹아있다. 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과오를 덮어주기는 어렵다는 씁쓸한 경험을 한인사회는 종종 겪어왔다.   그의 마음가짐이 궁금하던 차에 지난 6일 NBC 방송이 그와 인터뷰로 묻고 싶은 질문과 듣고 싶은 답을 보도했다. 14분 분량의 방송에서 난처한 질문들이 이어졌지만 그는 단호했고, 막힘없었다.   무엇보다 돋보인 점은 현실에 대한 공감 능력과 균형잡힌 시각이다.   공화당과 어떻게 합의점을 도출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국민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면서 “치솟는 집값, 의료 문제 등이 주요 현안이라는 건 공화당도 공감하고 있지 않나. 서로의 의견에 다 동의하진 않겠지만, 상원이 제 임무를 다하고 있는 것을 보여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비상계엄에 대한 그의 시각은 한국을 경험하지 못한 한인 2세임에도 정확했다. 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뉴스를 보면서 처음엔 번역이 잘못됐나 싶었다”면서 “여당조차 윤석열 대통령을 비난했고, 한 시간여 만에 국회가 계엄을 뒤집었다. 민주주의의 놀라운 회복력이다. 미국 정부가 기대했던 결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행스러운 상황에 도달했지만 여전히 비현실적이고 정상이 아니다(crazy).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많다. 한국의 친지들로부터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역대 최저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참패한 원인을 묻자 그는 친정 눈치를 보지 않았다.     “정치에 실망한 국민의 불신 때문이다. 정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그래서 주요 현안들을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우리 모두 유권자들이 화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바꿔야 한다.”   패거리 정치가 아닌 바른 정치를 하겠다는 그의 신념을 확인한 것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사면이 국민 신뢰를 깨지 않을까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역대 대통령들의 잘못된 사면 남발을 국민은 많이 봐왔다. 유권자들의 불신이 높아질 것이다. 선을 넘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사면이 계속된다면 민주주의가 어떻게 제 기능을 할 수 있겠나. 우린 예측 불가능한 분열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숨쉬기도 어렵다는 유권자들이 있다. 이보다 나아야 한다. 정부도 의원들도.”   부디 그가 지금의 초심을 잃지 않길 바란다. 쉬운 길이 아니라 옳은 길을 걷는다면 270만 한인 모두가 그의 편이다.사설 한인 이민사 국민 신뢰 패거리 정치가

2024-12-11

[글로벌 아이] 11월로 질주하는 ‘설국열차’

온도계가 영하 30도를 찍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온몸을 찔렀다. 체감온도가 영하 40도에 육박하면서 예정됐던 집회는 줄줄이 취소됐다.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미국 아이오와에서 ‘대선열차’는 이렇게 출발했다. 11년 전 나온 영화 ‘설국열차’처럼 말이다.   설국열차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요약하면 “애초부터 자리는 정해져 있다”는 윌포드의 앞잡이 메이슨의 말에 목숨을 걸어 투쟁하고, 결국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대사로 끝을 낸다. 그런데 2024년 미국 정치판에선 이렇게 뻔하디뻔한 서사 구조가 사라졌다.   현재까지 유력한 11월 대선 시나리오는 전·현직 대통령의 맞대결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는다. 특히 상대방이 당선되면 “민주주의가 파괴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둘 중 한 명을 골라야 할 미국인의 입장에선 결과와 무관하게 민주주의의 종말이 예고된 선거란 의미가 된다.   미국 정계에서 ‘정치 박사(Dr. Politics)’로 불리는 스테판 슈미트 아이오와 주립대 교수에게 이 말을 꺼내자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뒤 “참 슬픈 현실”이라며 “인간의 공격성을 억제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혐오를 조장하며 이를 무기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익숙한 말을 이어갔다. 공화당은 입법부를 통제할 순 없지만, 의회를 멈춰 세울만한 의석이 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타협과 협상을 하지 않으면 정부 기능이 마비될 거란 설명이었다. 또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정치가 의회를 떠나 법원과 길거리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은 주어를 한국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으로 바꿔도 신기할 정도로 상황이 맞아떨어진다.   미국인들의 인식 역시 비슷하다.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4분의 3이 트럼프와 바이든의 재대결을 원치 않는다고 답했다. 또 다른 조사에선 바이든 지지자의 절반 이상이 바이든이 좋아서가 아니라 트럼프를 낙선시키기 위해 투표한다고 했다.   최선(最善)도 차선(次善)도 아닌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대선이란 뜻이다. 슈미트 교수는 “정말 미국과 전 세계에 가장 피해가 작을 것 같은 후보를 선택하는 선거가 될 수도 있다”며 “이제 미국의 대선은 더는 멋지지도 훌륭하지도 않다. 이게 솔직한 현실”이라고 했다.   영화 설국열차는 열차에 탄 승객들이 현실을 깨닫고 스스로 열차를 멈춰 세운 뒤에야 끝이 난다. 정치라는 열차 역시 유권자가 멈춰 세우기 전까지는 온갖 모순을 가득 실은 채 계속 질주할 뿐이다. 강태화 / 한국 중앙일보 워싱턴 특파원글로벌 아이 설국열차 질주 영화 설국열차 정치가 의회 슈미트 교수

2024-01-17

[시론] 정치가 ‘팬텀싱어’의 감동을 선사하려면

TV 음악 프로그램 JTBC ‘팬텀싱어’시리즈가 시작한 2016년 이후 7년이 흐른 올해 ‘팬텀싱어4’를 최근 최종회까지 모두 시청했다. 남성 사중창단의 하모니를 들으며 형언할 수 없이 감동했다. 국민평가단과 함께 눈물 흘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정치는 왜 국민에게 이런 감동을 주지 못할까.”   한국의 정치 만족도는 지난 2000년 25%로 아시아 꼴찌였지만, 2006년엔 75%로 급등했다는 한 조사가 있었다. 그만큼 괄목할만한 정치발전을 이룬 경험이 있지만, 그 후 줄곧 후퇴해 오늘날 극단적 양극화에 빠졌다. 진영의 깃발은 거세게 나부끼지만, 총선을 9개월가량 앞둔 요즘 유권자의 40%는 찍을 정당이 없다고 한탄한다.   필자가 논평가로 데뷔한 2000년대 초만 해도 정치 양극화가 이렇게 심하진 않았다. 정치인은 정당을 대변했지만, 4~6명으로 구성된 TV토론에서 적어도 2명 이상은 당파와 무관하게 전문가적 식견으로 양당 사이에서 심판관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요즘은 아예 토론이 실종되다시피 했고,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는다. 진실인지 아닌지도 모를 일방적 주장이 유튜브를 가득 채운다. 양극단이 강화될수록 합리적 유권자들은 양당을 외면하고 정치 불신은 깊어진다.   우리 정치가 후퇴한 가장 큰 이유는 합리적 담론 형성의 장이 사라진 데 있다. ‘팬텀싱어’와 바람직한 정치는 한 가지 유사점이 있다. 어제의 경쟁자가 내일의 팀원이 된다는 점이다. ‘팬텀싱어’ 참가자들은 상대 팀보다 더 잘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는데 왜 정치인들은 상대를 적대시하고 악마화할까. 정치판은 ‘팬텀싱어’프로그램의 몇 가지 우수한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첫째, ‘팬텀싱어’에 출연한 경연자는 물론 시청자도 경연 과정에서 전문가의 즉각적이고 투명한 피드백을 받는다. 엄청난 학습을 통해 같이 발전한다. 하지만 정당은 민주주의 학습이 부족한 권리당원의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흑백논리에 경도되고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린다.   둘째, ‘팬텀싱어’에서는 대학생과 기성 음악가가 평등하고 투명하게 실력으로 경쟁한다. 하지만 정당 공천은 권력자와의 친소 관계나 진영 논리의 포로가 된 권리당원이 좌우한다.   셋째, ‘팬텀싱어’는 각 팀의 하모니와 새로운 시도가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정치에선 청년들의 새로운 시도나 창의성이 억압된다. 가상의 적을 만들어 죽기 살기로 싸우고 무책임한 선동가들이 더 많은 표를 얻는다.   ‘팬텀싱어’의 평가 기준과 방식을 그대로 차용해 새로운 토론·심의 경연 TV 프로그램이 탄생하면 좋겠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학습하고 그만큼 우리 정치도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새 토론 프로그램은 ‘팬텀싱어’처럼 여러 명의 심사위원과 참가자 1명이 토론하는 예심을 통해 선발한다. 사회적 갈등 쟁점과 정책에 대한 주제를 주고 일정 기간 준비한 뒤 1대1 토론, 2대2 토론, 3대3 토론에서 살아남은 최종 12명이 세 개의 파이널 팀을 만들어 경쟁하게 된다.   각 팀의 최종 멤버 4명은 반대 입장에서 2대2 토론을 하되 서로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는 심의 과정을 통해 4명이 협력한 단일 해법을 제시한다. 세 팀은 서로 다른 정책 대안을 갖고 토론하되, 심사위원과 국민평가단이 최종적으로 가장 훌륭한 결과를 도출한 팀을 선택한다. 꼼꼼한 심의를 거친 합리적 대안은 실제 정책에 반영될 수도 있고, 여기에서 훈련받고 선발된 참가자들은 정치인에게 꼭 필요한 의사소통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결국 이 프로그램은 공정하고 투명한 정치의 등용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훈련을 거쳐 탄생한 정치인들은 생각과 이념이 다른 상대와도 협력·타협해 국민께 감동을 주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란 사실을 배운다. 지켜본 국민도 심의 과정과 협력을 통해 흑백논리가 얼마나 단세포적이고 사회를 병들게 하는지 학습한다.   이렇게 키워진 정치인들은 정파를 뛰어넘어 우정을 쌓고,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공동의 어젠다를 만들고, 해법을 제시하는 선진국 정치를 실천하게 된다. 현역 국회의원들의 참여도 환영한다. 합리적인 담론 형성의 주체인 언론사들이 민주주의 학습의 장을 제공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 주기를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기숙 /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시론 팬텀싱어 정치가 토론 프로그램 정치 양극화 민주주의 학습

2023-07-23

[살며 생각하며] 링컨이 선보인 열린 정치와 섬김의 실천

고교 시절 영어 교과서에서 접한 게티즈버그 연설은 1863년 11월 19일 링컨 대통령이 4개월 전 이곳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추모하는 국립묘지 안장식에서 행해졌다. 주 연사는 에드워드 에버렛이었고 링컨에게는 행사 17일 전에야 ‘테이프 커팅’ 정도의 극히 작은 의미라는 단서와 함께 연설을 의뢰해왔다. 따라서 에버렛은 총 1만3607 단어에 2시간이 넘는 연설을 했지만 링컨은 300단어에 2~3분에 그쳤다. 이번 전쟁이 국민 모두에게 줄 ‘자유의 재탄생’을 위한 투쟁이자 하나님이 이 나라를 영원토록 지킬 것을 소망하는 메시지였다.     압권은 영국의 종교 개혁가 존 위클리프가 영어로 성경을 번역한 후 남긴 말을 국민의(of the people)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으로 약간 변형시켜 인용하므로 미국 역사에 가장 훌륭하고 세계사적으로도 민주주의 기본을 담은 대헌장처럼 대접받는 불후의 명연설문이 된 것이다.   링컨 당시 미국은 극도의 분열과 혼란 속에 있었다. 남·북은 물론 집권 공화당조차 보수와 진보로 사분오열되어 밤낮으로 싸웠다. 심지어 남부에 군정을 실시하고 대농장주의 영지를 몰수한 뒤 전면적인 노예해방과 함께 남부와는 손절해야 한다는 급진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링컨은 이들의 주장을 경청하는 한편 새벽마다 골방에 틀어박혀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기도로 앉은자리의 카펫에 홈이 파일 정도였다고 한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대통령의 프리미엄을 버리고 오직 새로운 미국의 창조만을 위해 열린 마음으로 반대파 및 정적들을 설득해 나간 것으로 유명하다.   좋은 예가 셔먼체이스라는 사람의 경우다. 링컨조차 “그는 나의 적이다. 내가 필히 그를 제거하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가짜 말과 비난 수위가 한참 선을 넘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토론회 후 그와 악수하며 만면에 미소 짓는 만족한 모습을 보고 참모들이 “그는 대통령님의 적이지 않습니까?” 하자 링컨은 “나는 이미 적을 제거했고 이제 그는 친구다”라며 내각에 영입까지 했다.   에드윈 스텐던은 변호사 시절부터 정규교육조차 못 받은 무식쟁이라고 링컨을 비난하고 매도해 오다 대통령 후보가 되자 “국가적 재난이다”라고 망언했는데 친화력이 좋다는 이유로 국방장관에, 금수저 출신에 정적이자 라이벌로 무수히 링컨을 괴롭혔던 윌리엄 슈어드를 국무장관에, 또 다른 정적이자 반대파 에드워드 베이츠를 우리 정부의 성공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법무장관에 기용하는 등 그의 탕평인사는 세간의 상상을 초월했다.   또 하나 링컨의 훌륭한 점은 제자들의 발을 씻긴 예수를 닮은 ‘섬김의 실천’이 부른 감성 정치가 아닌가 한다. 전쟁 초기 연방군 총사령관은 매클렐런 장군이었는데 한번은 링컨이 위로차 국방장관 등 주요 참모들을 대동하고 그의 막사를 찾았으나 회의 중이라는 이유로 대통령 일행을 마냥 기다리게 했다. 그런 뒤 저녁때가 되자 ‘너무 피곤해 잠자리에 들었노라’고 통보해 왔다. 너무 어이없고 무례한 행동이라 국방장관 등 참모들이 즉각 해임을 건의했지만, 링컨은 맥클렐런으로 전쟁을 끝낼 수만 있다면 나는 그의 군화를 닦고 그의 말고삐라도 잡겠노라며 오히려 참모들을 설득했다는 실화는 유명하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링컨 정치 링컨 대통령 링컨 당시 감성 정치가

2023-06-23

[시로 읽는 삶] 그때도 좋았고 지금도 좋다

길가에 서 있는 자두나무 가지로 만든/ 매운 칼 같은 향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손가락 끝에서 미끄러지는 생기의 방울들,/ 달콤한 성적 과육,/ 안뜰, 건초더미, 으슥한/집들 속에 숨어 있는 마음 설레는 방들,/ 지난날 속에 잠자고 있는 요들,/ 높은 데서, 숨겨진 창에서 바라본/ 야생 초록의 골짜기:/ 빗속에서 뒤집어엎은  램프처럼/ 탁탁 튀며 타오르는 한창때.   -파블로 네루다의 ‘젊음’ 전문       연령층이 다른 중년 이후의 여자들 몇이서 만남을 가졌다. 대체로 연령대에 따라 관심사가 다르다. 50대는 아직 욕망의 잔해가 있다. 외모에 대해서도 포기가 없고 사회적 성취도에 대해서도 양보가 없다. 60대는 비교적 사는 일의 각박함을 내려놓기도 한다. 살아온 날들을 쓰다듬으며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열망으로 아직은 역동적이다. 70대는 말할 것도 없이 건강이 관건인 것 같다. 시간에 대해 초조함이 크다 보니 마음이 바빠지고 있다.     그런데 공통적인 것은 젊음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리움이라고 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쓸쓸함이다. 70대는 십년만 젊어 육십이면 좋겠다고 말하고 60대는 오십만 되었어도 좋겠다고 한다. 50대는 사십이면 겁날 것이 뭐가 있을까 싶다고 했다.   나이에 관한 한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보니 그저 아쉬움의 토로이겠으나 자기의 나이가 가장 위기의 나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누구나 늘어가는 나이를 반갑게 맞이하기가 꽤 어려운 게 아닌가 싶다.   젊음의 말초신경은 미세한 것까지 감지되고 행동이나 사고력도 민첩하다. 생기의 물방울들이 파르르 떨려 삶의 기능은 절정에 이른다. 야생초록의 골짜기를 말처럼 달려가는 진취성이 있어 당돌하기까지 하고 설탕 같은 키스로 녹아내리는 육체는 단내를 풍긴다.     젊음은 생의 한창때인 어느 한 지점을 말하는 것이겠다. 젊음으로 표상되는 푸르름은 찬란하긴 했으나, 최고의 시절이었을 것이지만, 모든 청춘이 푸르지는 않았다. 신체적으로 왕성한, 피돌기가 빠르고 심장 박동은 거친, 그런 때 우린 얼마나 큰 혼돈을 겪기도 했었나. 지금 생각해보면 젊음은 반짝이는 순간임에는 틀림이 없다. 가장 좋은 때, 그래서 불안하고 불안정했는지도 모른다. 주어진 젊음을 맘껏 내 것이라고 누리지 못했다. 현실이라는 피치 못할 그물에 걸리기도 했겠으나 미래라는 불모의 세계는 우리를 과하게 끌어안기도 했다.   오늘은 내 생의 가장 젊은 날이다. 심지의 불이 타면서 초가 녹듯 젊음의 기운을 태워가며 늙는다면 우린 언제나 젊다. 탁탁 튀며 타오르는 한창때는 아닐지라도 계절을 느낄 오감이 살아있고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는 뛰는 심장이 있다. 아직 탐색해야 할 세계가 있고 아직 알아야 할 것들을 향한 열망이 있는 한 우리는 젊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좋았다. 퍼덕이는 날갯짓으로 충분했다. 지나간 날들, 거기에는 지금보다 앳됨이 있었고 꿈꾸던 것이 아직도 배회하고 있을 것이어서 매운 칼 같은 향내로 가끔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때도 좋았지만 지금도 좋다. 주름진 모습으로 시간과의 화해를 모색하는, 내일보다는 젊은 오늘, 지금도 좋다. 이 말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날들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파블로 네루다는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칠레의 시인이다. 사회주의 정치가이기도 하다. 영화 ‘일 포스티노’는 네루다를 주인공으로 시인과 우편배달부의 우정이 아름다운 영화다. 조성자 / 시인시로 읽는 삶 파블로 네루다 사회주의 정치가 안뜰 건초더미

2023-01-17

[워싱턴 바로보기] 다가온 중간선거의 의미

한인들의 정치참여 운동을 위해서 미주 중앙일보에 글을 썼던 적이 있다.  매월 2, 3회씩  10여년 이상 지속했으니 그 자체가 사회운동의 톡톡한 한 몫이었다.  벌써 십수 년 전의 일이다.  대개가 워싱턴 관련 이야기지만 그것은 흥미를 끌기 위함이었고  중요한 내용은 한인들의  투표 참여 독려를 위한 ‘유권자등록과 투표 참여’에 관한 안내였다. 언제 선거를 하고 어떤 선거이며 어떻게 투표를 하는가에 관한 것, 그리고 후보자들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유권자등록 운동이 핵심이었다. 뉴욕 일원 한인사회의 투표율이 쑥쑥 높아지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이 운동은 신문의 덕을 톡톡히 봤다.     1992년  LA폭동 이후  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은 놀랄 만큼 이뤄졌다. 모든 한인의 노력과 참여의 결실임이 분명하지만 그 일등 공로자가 한인신문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다시 시작하는 글쓰기의 초점은 급변하는 미국 정치지형의 변화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21세기 지구촌의 변화는 직전 세기보다 단위 기간 그 폭과 속도가  6배에 달한다고 한다.   미국 사회의 구성 체제가 달라졌고 시민들의 삶의 양식이 바뀌었다.  정치가 집단사회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고, 정당이 변화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  미국 양대 정당이 자당의  고정 지지층을 잃기 시작했으며, 시민들은 정당을 무시하고 직접 거리로 뛰어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외곽에서 시작된 ‘민주적 사회주의’ 세력이 그렇고 공화당 쪽의 무작위 풀뿌리인 ‘티파티’가 그것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당선으로 희망을 보였던 세계에 대한 미국의 참여와 국가의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가 질시와 경멸의 반동적 사상가들과 사회활동가들에 의해  급하게 변질되어 오히려 폐쇄적인 냉소와 경멸의 인종 우월주의가 싹텄다.  그들은 보수 우익 시민들을 부추겨서 이미 당 밖에서 권력을 만들었다.  팻 부캐년, 러시 림보, 로스 페로, 뉴트 깅그리치, 로라 잉그리엄이 그들이다.  변화무쌍한 시민들의 정치적 욕구를 담아내지 못한 정당정치의 실패작이다.     2016년 트럼프의 당선이 아니었어도 이미 그것은 정치권력의 한 흐름이었다. 정치 전문가들은 그래서 지금을 정당 재편성기라 하고 문명사가들은  좀더 확장해서 인간 문명사의 대전환기라 평하고 있다.  후자가 더 맞을 듯 하다.  2010년  공화당을 점령한  ‘티파티’라는 정치세력이 바로  레이건 당선 이후 30년 동안 자라온  반공주의, 사회·종교적 보수주의,  작은정부, 자유 지상주의의 결론이다.     새로운 세기를 열어가는 것은 미국사회의 진통이다.  지구촌 공동의 과제가 이미 국가주의를 넘어서고 있다.  환경, 보건, 빈곤, 인권 등의 문제로 지구촌은 서로 얽히고 설켜 있다.  유럽의 분쟁이, 아프리카의 빈곤과 질병이 아시아의 인권과 중남미의 난민이 이미 미국의 문제다.  지금 미국이 그렇게 홍역을 앓고 있다.  미국의 정치가 보편성, 다양성, 개방성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사회는 겹겹이 혼란해진다.  예외주의, 인종주의, 냉소주의가 얼마나 심각하게 사회의 혼란을 초래하는지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다.     미국의 근·현대사는 그야말로 도전에 대한 응전의 변화체계이다.   시대정신에 대한 소수계의 각성이 미국이란 다양한 사회의 진보를 이루어 왔다.  미국의 새로운 시대는 19세기 중반의 남북전쟁에 버금가는 혼란을 예고하고 있다.  흑인 대통령에 대한 보수 우익들의 집요한 경멸과 멸시로 시작된  우파들의 정치적인 공격은 점점 더 전투적이다.  헌법을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한 지난 2021년 1월6일의 의사당 점거 반란이  제도정치권내에  그 기반을 두고 있음이  드러났다.     정치적 혼란이 후발 이민자들을 부르고 있다.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현상은 그만큼 아시아계가 성장했다는 방증이다.   ‘자유와 민주’라는 미국의 가치를  수호해야 할 과제가 아시아계로 넘어오고 있다.   민권운동 시기인 1960년대를 흑인들이 주도했고 그 운동의 동력을 살려서 지금의 흑인정치력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그 시기를 돌파하기 위해서 정치적 결집을 이루어 냈다면  21세기를 열어가는 새로운 정치력은  소수계의 정치적 결집과 연대다.        중간선거를 60여일 남겨두고 있다. 이번 중간선거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구분이 아니다.  집권여당의 중간평가도 아니다.  과연 ‘트럼피즘’은  미국 정치권에  허용될 만한 것인가?에 고민해야 한다. 이번 중간선거에 임하는 우리(소수계이민자 그룹)의 초점은 인종주의와 폭력주의, 반이민주의다.  헌법에 반하는 폭력세력과 연계하는 정치세력을 긴장해서 구분하는 선거다.   김동석 /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워싱턴 바로보기 중간선거 의미 정치참여 운동 정치가 집단사회 정치력 신장

2022-09-06

[J네트워크] 두 얼굴의 중국

지난달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우한을 찾았다. 코로나19 발생 2년 만이다. 최후의 승리까지 제로 코로나를 실행할 능력과 실력이 있다고 했다. “인구 많은 중국이 만약 ‘집단면역’ ‘당평(?平·평평하게 눕기)’ 같은 방역 정책을 취한다면 후과는 상상 못 한다”며 “잠시 경제 발전에 영향을 끼쳐도 인민의 생명과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없다”고 했다. 또 “제로 코로나는 당 중앙이 확정했다”며 경제 아닌 정치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베이징 일인자 차이치도 나섰다. 지난 27일 시 당 대회 정치보고에서 “추호도 흔들리지 않고 제로 코로나 견지”를 선포했다. 정치보고는 미래 5년 청사진을 담은 강령성 문건이다. 당 중앙을 따르겠다는 충성 맹세다.   그러자 14세기 ‘제로 페스트(흑사병)’로 방역 성공의 패러독스에 빠졌던 명(明)나라를 다룬 역사책 두 권이 회자한다. 오카모토 다카시 교도부립대 교수는 5월 출간한 ‘명대란 무엇인가’에서 “명을 건국한 주원장은 천자·황제로서 서민까지 직접 장악을 궁극의 목적으로 했다”며 “교육칙서인 육유는 ‘마오쩌둥 어록’ ‘시진핑 사상’ 같은 세뇌(indoctrination)로 이어진다”고 썼다. 저자는 “명 왕조 300년 동안의 정치·경제·사회 체제가 현재와 구조적으로 연결된 부분이 적지 않다”며 “현대 중국이 지금 같은 체제와 언행을 하는 것도 역사적 배경과 유산의 작용”이라고 알려왔다.   중국 학자도 명나라에 주목했다. 자오셴하이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갈림길의 명조’(2021)에서 ‘두 얼굴의 중국’이란 분석 틀을 제시했다. “당시 민간은 세계 경제와 문화를 선도했지만, 정권은 새로운 사조에 흔들리지 않고 거대한 전통과 관성을 고집했다”고 했다. 명 말기 중국 강남지역의 상품경제는 초기 세계화된 경제 시스템을 이끌었지만, 정치는 변방의 위기가 부른 재정 위기로 농업세를 올리면서 사회 불안과 군대·농민의 봉기를 야기했다. 사회의 번영과 국가의 쇠락, 민간의 활력과 정치의 경직화를 고질적인 중국의 두 얼굴이라고 묘사했다.   홍콩의 평론가 위안미창은 오카모토와 자오를 인용하며 “시진핑과 리커창이 각각 정치와 경제를 강제로 가르고 심지어 대립하는 이면을 보면 과거 왕조의 낡은 길로 가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중국의 역사는 줄곧 정치가 경제를 압도했다. 신냉전의 시작이라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중국은 역사의 윤회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는 중국의 과제이자 인류의 숙제이기도 하다. 신경진 / 베이징총국장J네트워크 중국 얼굴 정치가 경제 대회 정치보고 사회과학원 연구원

2022-07-08

호화코 부귀키야 -기대승(1527-1573)

호화(豪華)코 부귀(富貴)키야   신릉군만 할까만은 백 년이 못하여   무덤 위에 밭을 가니 하물며 여나문 장부야   일러 무삼하리요   -병와가곡집   “죽음을 기억하라”   신릉군은 중국 전국시대 위소왕의 아들 위무기이다.     저명한 정치가, 군사전략가로서 조나라의 평원군 조승, 제나라의 맹상군 전문,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과 함께 전국시대의 4공자로 불린다.   왕자로서 그가 누린 부와 명예, 천재성은 일세를 풍미했다. 그랬던 그도 막상 죽고 나니 백 년이 못 되어 후세 사람들은 그의 무덤 위에 밭을 갈았다.     천하의 신릉군이 그럴진대 그만 못한 다른 사람들의 경우야 말해본들 무엇하겠는가. 시간과 함께 먼지가 되어 사라져갈 뿐….   고대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 소리로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외치게 했다고 한다.     생애 절정의 순간에 인간은 결국 죽고 만다는 것을 잊지 말고 근신하라는 최고의 덕담이었다.     권력을 향해 질주하는 사람들이 새겨야 할 말이라고 하겠다.   기대승의 호는 고봉. 명종 말 선조 초의 대학자였다. 율곡 이이와 벌인 이기론 논쟁으로 유명하다. 대사성과 대사간을 지내고, 전북 고부에서 병사했다.   유자효 / 시인호화코 부귀 호화코 부귀하기 정치가 군사전략가 전문 초나라

2022-02-02

[문화예술톡] 정치가의 언어, 예술가의 언어

 한국이나 프랑스나 대선 경쟁이 한창이다. 후보들은 저마다 큰소리로 힘차게 공략을 외치며 세상을 바꾸겠다 한다. 우렁차다 못해 공격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언어의 직접성에 살짝 마음이 놀라기도 한다. 20년 넘게 예술가들이 표현하는 간접적이고 시적이고 은유적인 언어에 익숙하게 살아온 나에게 정치인들의 언어는 참으로 직설적이고 단순하게 다가온다.   얼마 전에 중동 지역 알자지라 방송국에서는 두 명의 인물을 초대해서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현대미술 작가인 아이웨이웨이(艾未未)와 아니쉬 카푸어가 나왔다. 마침 이 둘은 ‘예술은 정치적일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매우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다.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를 파헤치고, 이를 예술 작품으로 고발해온 중국 출신 작가 아이웨이웨이는 고국인 중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럽으로 망명하여 창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인도 태생으로 영국에서 살면서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하는 아니쉬 카푸어는 공간을 압도하는 대형 설치와 조각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그의 작품에서는 아이웨이웨이 작품과 달리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강한 정치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는 없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과 사회에 대한 시적이며 철학적인 사고를 공유하게 된다.   정치적으로 보다 적극적인 행동파 예술가인 아이웨이웨이에게 아니쉬 카푸어는 말한다. “나는 내 작품이 어떠한 정치적인 아이디어나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자 아이웨이웨이는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예술가가 소유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정치적인 코멘트이다” 라고 답한다. 결국 예술가의 언어는 그것이 어떤 형태이건 세상을 향한 예술가들이 지닌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결국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인 언어가 될 수 있다. 피카소가 “여러분 나의 그림은 단순히 거실의 벽에 걸린 장식품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쟁’입니다”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피카소가 말한 전쟁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개인의 삶의 음지와 양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신저로서의 예술가의 투쟁과 책임감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 언어는 소프트하고 느리고 굽이굽이 좁은 길을 돌아서 도달해야 하는 언어다. 아니쉬 카푸어는 자기가 태어난 인도에서는 자신의 코를 만지기 위해 머리 뒤편으로 손을 돌려서 어렵게 잡는다는 표현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 예술이 지니는 정치적 언어를 설명해준다고 한다. 예술은 항상 세상을 향해 이야기를 해왔다. 조용하게 혹은 저항하는 목소리로. 직설적인 목소리보다 오랫동안 조용히 세상을 바꾸는 간접적이지만 파워풀한 예술가의 언어로. 최선희 /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문화예술톡 언어 정치가 언어 예술가 정치적 언어 아이웨이웨이 작품

2021-12-26

[기고] 정치가의 언어, 예술가의 언어

 한국이나 프랑스나 대선 경쟁이 한창이다. 후보들은 저마다 큰소리로 힘차게 공약을 외치며 세상을 바꾸겠다 한다. 20년 넘게 예술가들이 표현하는 간접적이고 시적이고 은유적인 언어에 익숙하게 살아온 나에게 정치인들의 언어는 참으로 직설적이고 단순하게 다가온다.   얼마 전에 중동 지역 알자지라 방송국에서는 두 명의 인물을 초대해서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현대미술 작가인 아이웨이웨이와 아니쉬 카푸어가 나왔다. 마침 이 둘은 ‘예술은 정치적일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매우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다.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를 파헤치고, 이를 예술 작품으로 고발해온 중국 출신 작가 아이웨이웨이는 고국인 중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럽으로 망명하여 창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인도 태생으로 영국에서 살면서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하는 아니쉬 카푸어는 공간을 압도하는 대형 설치와 조각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그의 작품에서는 아이웨이웨이 작품과 달리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강한 정치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는 없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과 사회에 대한 시적이며 철학적인 사고를 공유하게 된다.   정치적으로 보다 적극적인 행동파 예술가인 아이웨이웨이에게 아니쉬 카푸어는 말한다. “나는 내 작품이 어떠한 정치적인 아이디어나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자 아이웨이웨이는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예술가가 소유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정치적인 코멘트이다”라고 답한다. 결국 예술가의 언어는 그것이 어떤 형태이건 세상을 향한 예술가들이 지닌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결국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인 언어가 될 수 있다. 피카소가 “여러분 나의 그림은 단순히 거실의 벽에 걸린 장식품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쟁’입니다”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피카소가 말한 전쟁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개인의 삶의 음지와 양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신저로서의 예술가의 투쟁과 책임감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 언어는 소프트하고 느리고 굽이굽이 좁은 길을 돌아서 도달해야 하는 언어다. 아니쉬 카푸어는 자기가 태어난 인도에서는 자신의 코를 만지기 위해 머리 뒤편으로 손을 돌려서 어렵게 잡는다는 표현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 예술이 지니는 정치적 언어를 설명해준다고 한다.     예술은 항상 세상을 향해 이야기를 해왔다. 조용하게 혹은 저항하는 목소리로. 직설적인 목소리보다 오랫동안 조용히 세상을 바꾸는 간접적이지만 파워풀한 예술가의 언어로. 최선희 /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기고 언어 정치가 언어 예술가 정치적 언어 아이웨이웨이 작품

2021-12-26

[독자 마당] 품격 없는 정치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후보들간에 서로를 비방하는 진흙탕 싸움만 이어져 이를 보는 국민은 걱정이 앞선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17개 국가에서 지지 정당 차이에 따라 사회적 갈등이 있는지 조사했는데 한국은 “매우 심각하다”라고 답한 비율이 90%였다.   대통령은 원한다고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품격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다고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흠결 없는 도덕 군자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와 상식을 구비한 사람이어야 한다.     지난 10여년간 우리 정치는 나라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K-팝, BTS, 영화, 드라마 등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 찬사를 받는 동안 정치는 정쟁에 빠져 나라와 국민을 돌보지 않고 내편 네편 갈라졌다.     잘못은 전 정부의 실정으로 돌려놓았다. 협치는 찾아 볼 수 없고 극단적 대결만 남았다. 국민의 편을 가르는 선동적 정치는 국민을 혼란 속에 빠트리고 있다. 정치가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고 준비하기는커녕 과거를 문제 삼아 상대편을 무너뜨리는데 여념이 없다.     정치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이웃의 아픔을 같이 하고 해결해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이를 위해 대안을 고민하고 실종된 공감능력을 하루 빨리 되찾기를 국민은 원한다. 대통령으로서의 역량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옛날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말이 떠오른다. 그가 남긴 혁신의 DNA는 아직도 대한민국 곳곳에 스며있다. 그가 일갈한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는 말은 지금도 여러 곳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어떤 이는 4류도 아깝다고 한다. 동감이 간다. 품격 있는 정치가 우리나라에 빨리 정착하기를 기대한다.   임순·토런스독자 마당 품격 정치 정치가 우리나라 정치가 국가 선동적 정치

202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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