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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링컨이 선보인 열린 정치와 섬김의 실천

고교 시절 영어 교과서에서 접한 게티즈버그 연설은 1863년 11월 19일 링컨 대통령이 4개월 전 이곳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추모하는 국립묘지 안장식에서 행해졌다. 주 연사는 에드워드 에버렛이었고 링컨에게는 행사 17일 전에야 ‘테이프 커팅’ 정도의 극히 작은 의미라는 단서와 함께 연설을 의뢰해왔다. 따라서 에버렛은 총 1만3607 단어에 2시간이 넘는 연설을 했지만 링컨은 300단어에 2~3분에 그쳤다. 이번 전쟁이 국민 모두에게 줄 ‘자유의 재탄생’을 위한 투쟁이자 하나님이 이 나라를 영원토록 지킬 것을 소망하는 메시지였다.  
 
압권은 영국의 종교 개혁가 존 위클리프가 영어로 성경을 번역한 후 남긴 말을 국민의(of the people)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으로 약간 변형시켜 인용하므로 미국 역사에 가장 훌륭하고 세계사적으로도 민주주의 기본을 담은 대헌장처럼 대접받는 불후의 명연설문이 된 것이다.
 
링컨 당시 미국은 극도의 분열과 혼란 속에 있었다. 남·북은 물론 집권 공화당조차 보수와 진보로 사분오열되어 밤낮으로 싸웠다. 심지어 남부에 군정을 실시하고 대농장주의 영지를 몰수한 뒤 전면적인 노예해방과 함께 남부와는 손절해야 한다는 급진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링컨은 이들의 주장을 경청하는 한편 새벽마다 골방에 틀어박혀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기도로 앉은자리의 카펫에 홈이 파일 정도였다고 한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대통령의 프리미엄을 버리고 오직 새로운 미국의 창조만을 위해 열린 마음으로 반대파 및 정적들을 설득해 나간 것으로 유명하다.
 
좋은 예가 셔먼체이스라는 사람의 경우다. 링컨조차 “그는 나의 적이다. 내가 필히 그를 제거하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가짜 말과 비난 수위가 한참 선을 넘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토론회 후 그와 악수하며 만면에 미소 짓는 만족한 모습을 보고 참모들이 “그는 대통령님의 적이지 않습니까?” 하자 링컨은 “나는 이미 적을 제거했고 이제 그는 친구다”라며 내각에 영입까지 했다.
 


에드윈 스텐던은 변호사 시절부터 정규교육조차 못 받은 무식쟁이라고 링컨을 비난하고 매도해 오다 대통령 후보가 되자 “국가적 재난이다”라고 망언했는데 친화력이 좋다는 이유로 국방장관에, 금수저 출신에 정적이자 라이벌로 무수히 링컨을 괴롭혔던 윌리엄 슈어드를 국무장관에, 또 다른 정적이자 반대파 에드워드 베이츠를 우리 정부의 성공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법무장관에 기용하는 등 그의 탕평인사는 세간의 상상을 초월했다.
 
또 하나 링컨의 훌륭한 점은 제자들의 발을 씻긴 예수를 닮은 ‘섬김의 실천’이 부른 감성 정치가 아닌가 한다. 전쟁 초기 연방군 총사령관은 매클렐런 장군이었는데 한번은 링컨이 위로차 국방장관 등 주요 참모들을 대동하고 그의 막사를 찾았으나 회의 중이라는 이유로 대통령 일행을 마냥 기다리게 했다. 그런 뒤 저녁때가 되자 ‘너무 피곤해 잠자리에 들었노라’고 통보해 왔다. 너무 어이없고 무례한 행동이라 국방장관 등 참모들이 즉각 해임을 건의했지만, 링컨은 맥클렐런으로 전쟁을 끝낼 수만 있다면 나는 그의 군화를 닦고 그의 말고삐라도 잡겠노라며 오히려 참모들을 설득했다는 실화는 유명하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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