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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고아 한인, 24년간 모국 아동 후원

전쟁 고아로 미국에 입양된 한인 여성이 오랜 시간 모국의 아동들을 후원해온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이러한 업적을 높이 평가한 경상남도는 해당 여성을 명예도민으로 선정했다.     경상남도는 린디 순 커리(이정순.1953년생)씨를 경상남도 명예도민으로 선정하고 명예도민증을 전달했다고 18일 밝혔다.     경상남도 측 설명에 따르면, 커리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고아로 발견돼 ‘진해 희망의 집’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지난 1953년부터 1956년까지 지냈다. 이후 지난 1957년 3월 홀트 입양기관을 통해 미국으로 입양됐다.     미국에서의 삶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고 하프연주자와 한국의 전래동화를 전파하는 스토리텔러로 성장했다. 그는 고국을 잊지 않고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한국 전통 민담을 통해 한국을 알려왔다.     커리씨는 미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지난 1995년 서울 동부사회복지관에서 아기를 입양해 가정을 이뤘다.     그는 지난 2000년 10월 우연한 기회로 한국에 방문하면서 자신이 지냈던 진해 희망의 집을 찾았다. 이후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모국의 아이들을 후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커리씨는 미국의 가족들과 분기별로 진해 희망의 집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고 선물과 후원금을 보내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지난 2002년 미국에서 비영리단체 ‘브리지 오브 호프(Bridge of Hope)’를 설립했다. 커리씨는 단체를 통해 진해 희망의 집 아이들을 위한 후원 활동을 계속했으며 지난 2018년까지 활동을 이어갔다. 커리씨는 현금 후원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정서적 성장을 돕기 위한 피아노, 첼로 등 악기 등도 지원했다.     또 그는 매년 2~3명의 한국 입양 아동을 미국으로 초청해 미국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해왔다. 지금까지 커리씨가 미국에 초청한 아동 수는 38명에 이른다.     이러한 공로를 높이 산 사회복지법인 경신재단과 경상남도사회복지협의회의 추천으로 커리씨는 경상남도 명예도민이 되었다.     커리씨는 “가슴속에 묻어 둔 고국의 경상남도 명예도민이 되어 감격스럽다”며 “잊지 않고 기억해 준 경상남도에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경상남도 측은 경상남도 LA사무소장을 통해 미국에 거주 중인 커리씨에게 명예도민증을 전달했다.     김경준 기자 kim.kyeongjun1@koreadaily.com전쟁 고아 시간 모국 경상남도 명예도민 한국전쟁 당시

2024-11-18

[기고] 김정은의 ‘총알받이’ 군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군의 인명 피해가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 소식이 나왔다. 러시아는 병력 손실을 줄이고 북한은 핵무기 개발 등에 필요한 군사 기술 확보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푸틴과 김정은의 ‘주고받기(Give and Take)’식 밀약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김정은은 북한의 젊은 목숨을 ‘총알받이’로 팔아 외화벌이를 하려는 것이다. 이런 속셈이지만 조금이라도 비난을 피해가려는 듯 용병이라는 말 대신 ‘러시아·북한 동맹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북한군의 개입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더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가 우려하는 전쟁 확대의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유럽의 국지전이 잘못하면 확전 양상으로 번질지 모른다는 얘기도 나온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격전지인 쿠르스크주에는 이미 북한군 약 1만여 명이 집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정보총국은 최근 쿠르스크에 모인 북한군이 실제 전투가 벌어지는 최전방 지역으로 이동하는 정황도 포착됐다며, 러시아군이 북한군 병사들을 트럭에 태워 최전선으로 수송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군이 러시아의 용병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에게 또 다른 양상이 됐다.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은 방한한 폴란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군의 활동 여하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한국의 ‘살상 무기’를 지원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는 이제까지 인도적, 또는 비전투용 물자 지원에 머물렀던 데서 크게 변화된 것이라 여겨진다. 만약 한국이 우크라이나군에 살상 무기를 지원한다면 남북의 코리안이 이역만리 유럽 땅에서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북한군의 파병은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참전을 통해 직접적인 전투 경험을 얻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병사들의 목숨값으로 러시아로부터 첨단 군사기술 등을 넘겨받는 것이다. 이에 미국은 북한군이 참전하게 될 경우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경고를 계속하고 있다. 로이드 미 국방부 장관은 북한 병사들이 전장에 나설 경우 합법적인 공격 대상이 될 것이며, 우크라이나군이 미국이 제공한 무기를 북한군에 사용하는 것에도 별도 제한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드론전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귀순을 유도하기 위해 전선에서 드론으로 안전 보장과 행동 요령을 적은 전단을 뿌리고 있다. 이런 전단은 6·25 한국전쟁 때 미군과 한국군이 사용한  ‘안전 보장 증명서’와 유사하다. 춥고 배고픈 황량한 야전 지역에서 ‘따뜻한 이밥에 고깃국 먹으러 오라’ ‘ 당신의 목숨값은 김정은 주머니에’ ‘누구를 위한 꼭두각시인가’등등 북한군을 향한 선무공작이 절실히 필요한 대목이다.     국내 탈북민 3만4000여 명 중에는 북한군 출신도 적지 않다. 그들은 왜 전쟁터에 왔는지도 모를 북한 청년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알 것이다. 탈북자 중심의 심리전을 통해 북한군의 귀순을 권고해 죽음의 현장에서 아까운 젊은이들을 구조하는 방법은 어떨까 싶다.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는 좌파·친북 세력은 생명 가치가 최우선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민족인 북한 청년을 살릴 수 있는 우크라이나 심리전 지원을 거론하면 “한반도 전쟁 획책”이라고 흥분한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파병한 ‘총알받이’의 생명 가치엔 왜 말이 없는가. 어디 말 좀 해 보시라!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김정은 총알받이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정보총국 러시아 전쟁

2024-11-11

[중국읽기] 북한 파병에 중국은?

북한 파병에 대한 중국의 속내는 뭔가? 반기는 건지 아니면 걱정이 태산인지 감을 잡기 어렵다. 두 가지 해석이 나온다. 먼저 중국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베이징이 모스크바에 직접 군사원조를 해야 하는 부담을 더는 이점이 있다는 거다. 또 미국에 일정한 압력을 가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득보다는 실이 크다는 분석이 더 많다. 북·러 관계가 끈끈해지며 북한에 대한 중국의 독보적 영향력이 타격을 받게 된다.   앞으로 한반도 유사시 중국은 러시아의 자동 개입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또 북한의 참전은 한·미·일 안보 협력을 촉진한다. 아시아판 나토 탄생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게다가 그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재자를 자처해온 중국의 평화추구 이미지가 사라질 운명이다. 그래서인지 스인훙 중국 인민대 교수는 “중국이 상당히 불안해하며 분노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 파병에 대한 중국의 속내는 크게 두 개의 공식 발언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하나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각 당사자가 긴장 완화와 정치적 해결을 위해 힘써야 한다” “북·러 발전은 그들 자신의 일”이라는 발언이다.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촉구하지만 무력감이 엿보인다. 우리가 보다 주목할 건 지난달 23일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말이다.   시 주석은 “전쟁터가 밖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고, 전쟁이 격화되도록 하지 않으며, 모든 당사자가 불에 기름을 붓지 않는다는 3원칙을 견지해 상황을 조속히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의 말은 짧지만 의미심장하다. 먼저 전쟁터가 밖으로 번지지 않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반도를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닐까 싶다. 북한 파병으로 우리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됐다.   이게 자칫 한반도로 불똥이 튀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로 보인다. 전쟁 격화에 반대한다는 말은 확전, 즉 북한 파병에 대한 분명한 반대 의사 표시다. 끝으로 모든 당사자가 불에 기름을 붓지 말라는 건 한국을 포함한 서방이 더욱 강경하게 나서며 사태를 키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중국은 늘 이렇다. 더 이상의 상황 악화를 막으려 말을 할 뿐 북한 파병 등 이미 저질러진 잘못엔 응징의 행동이 없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 때도 그랬다. 그러니 “중국은 마비와 무능 사이에 갇혔다”는 조롱을 듣게 된다. 중국은 이제 말이 아니라 행동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대국이라 할 수 있지 않겠나. 유상철 /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중국읽기 북한 중국 우크라이나 전쟁 전쟁 격화 한반도 유사시

2024-11-04

"음식 전쟁에서도 LA가 뉴욕 압도"

월드시리즈에서 LA다저스가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인 가운데 양 도시 간의 치열한 '음식전쟁'도 LA가 승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근 LA타임스(LAT)는 LA가 뉴욕에 비해서 훨씬 더 나은 음식들을 갖추고 있다며 항목별로 설명하는 기사(사진)를 게재했다.     기사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음식에 대한 부분이다. LAT는 "LA의 코리아타운이 더 크고 더 윤택하고 더 밝다"며 "뉴욕 코리아타운보다 더 나은 게 확실하고 여기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2스퀘어마일 안에 가득 차 있는 한식당 중에는 한국 각지의 향토 음식부터 단 하나의 품목을 위해 운영하는 곳까지 있어 "LA시민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라고 덧붙였다.     LAT는 지난 3월 발행한 LA 한인타운에서 가장 맛있는 식당을 선별해 소개한 특집기사를 다시 한번 언급하면서 LA를 가장 싫어하는 뉴요커조차 LA의 한국음식이 훨씬 더 낫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특집기사를 통해서는 라우더스, 치믈리에, 꼴통치킨, 비비큐치킨  등의 치킨집과 오리진 코리안 바비큐, 아가씨 곱창, 북새통, 해장촌, 길목, 박대감네, 숯불집 등의 구이집이 소개됐다.     LAT는 한식에 더해 다른 음식도 뉴욕보다는 LA가 훨씬 더 앞선다고 강조했다. 뉴요커들은 뉴욕의 베이글과 피자가 더 낫다고 주장하지만, 훨씬 더 부드러운 식감의 LA 베이글과 더 다채로운 스타일을 지닌 LA 피자가 뉴욕을 뛰어넘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뉴욕이 자랑하는 쉐이크쉑 버거와 서부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인앤아웃 버거를 비교해도 '마술과도 같은 맛'을 지닌 스프레드 소스가 함께하는 인앤아웃의 승리라고 선언했다.     LA와 뉴욕의 음식 대결에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핫도그와 타코의 대결이었다. 길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스트리트 푸드의 대명사를 비교한 것이다. LAT는 가주가 국내에서 가장 많은 멕시칸 레스토랑을 보유하고 있는 주고 전체의 30%가 가주에 위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LA에 있는 어느 동네를 가도 볼 수 있는 타코 스탠드나 트럭에 있는 타코는 맛과 가격에서 핫도그와 견줄 수 없다며 수천 개가 넘는 타코집이 LA의 우위를 굳혀준다 말했다.     LAT의 기사는 짤막한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더 이상의 논쟁은 없다. LA는 뉴욕보다 더 나은 미식의 도시다. 다저스 파이팅!"   조원희 기자음식 전쟁 뉴욕 압도 뉴욕 코리아타운 음식 전쟁

2024-10-29

LA한인타운 ‘돈가스 전쟁’ 뜨겁다

경기 냉각에도 LA한인타운은 돈가스 업소간 경쟁으로 뜨겁다.     LA한인타운에 주소를 둔 돈가스 전문점은 12곳이나 됐다. 지난 4월 라성돈가스에 이어 8월에는 마이돈가스가 올림픽 불러바드 선상에 문을 열었다   기존 돈가스 전문점인 와코를 비롯해 갤러리아마켓 푸드코트에 갤러리아 돈가스도 올림픽 불러바드 선상에 있다. 더욱이 인근에 위치한 코리아타운플라자 푸드코트 내 돈가스하우스까지 포함하면 4곳이나 포진해 있다. 일반 돈가스 가격대는 16~20달러 사이다.   한인 요식 업계는 돈가스 전문점들이 한인타운에 몰리는 이유로 ▶남녀노소와 인종에 따른 호불호가 심하지 않으며 ▶단가는 쇠고기보다 낮고 ▶프라이드 치킨보다는 상대적으로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는 점을 꼽았다. 또 돼지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고객은 쇠고기·닭고기·생선가스를 선택할 수 있어서 가족 단위 고객의 선호도도 높아 비교적 안정적인 비즈니스라는 것도 일조한다고 덧붙였다.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면서 차별화를 모색하는 돈가스 전문점들도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인 업소는 라성왕돈까스.     그레이스 조 온식스애비뉴호스피털리티 홍보 담당은 “토마토 베이스 소스가 일품인 1980년대 서울 남산 왕돈가스에서 영감을 받았다”라며 “이민 1세대 향수를 자극하고 레트로 감성을 추구하는 젊은 층 문화트렌드에 부합해 고객층이 넓다”고 설명했다.   마이 돈가스는 일본식 우나기(장어) 가츠를 전면에 내세웠다.     장은숙 마이 돈가스 대표는 “주요 고객층은 태국계 등 아시안과 백인들이고 타인종들은 치킨가스를, 한인들은 우나기 가츠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미 자리를 잡은 돈가스 전문점 와코의 몰리 김 사장은 “주차 문제로 윌셔점을 닫고 지난 13일부터 올림픽 지점으로 합쳤다”며 “윌셔점 저녁 한정 메뉴였던 감자튀김(5.95달러)과 트리오콤보(돈가스/치킨/생선가스.24.95달러)를 올림픽 점에서도 맛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돈가스 무한 경쟁 속에서 와코만의 차별화는 주류 판매 ‘특화’다. 다채로운 소주·맥주·막걸리가 준비돼 있다. 퇴근 후 안주용 메뉴인 트리오 콤보에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돈맥(돈가스+맥주)’은 젊은 층 사이 인기라고 덧붙였다.   돈가스 전문점 외에도 카페와 전문점들도 돈가스 메뉴를 추가하면 돈가스 전쟁에 참전하고 있다.     지난 8월 베버리불러바드 인근에 문을 연 카페 블루스카이블루의 이미향 대표는 식사 메뉴에 돈가스를 추가했다.     그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배워온 조리법을 통해 정통 일본식 돈가스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서재선 기자 suh.jaesun@koreadaily.comla한인타운 돈가스 돈가스 전문점들 돈가스 전쟁 돈가스 메뉴

2024-10-14

우크라이나 전쟁 향방이 워싱턴 지역경제 좌우한다

      양당 대선 후보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공약이 워싱턴 지역 경제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가장 직접적으로 군부대 재배치 계획이 엇갈리는 지점이 많다.   버지니아의 노폭과 햄튼 로드 지역은 전세계에서 가장 큰 해군 기지가 위치해 있으며, 이 지역 경제는 전적으로 해군 관련 예산에 의존하고 있다. 새로운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지역경제가 커다른 부침을 겪을 수 있는 것이다.     양당 후보는 국방비 지출을 더욱 늘리겠다는 입장이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민주당 지도부 내에서도 워싱턴 지역에 널리 분포한 대규모 부대를 이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중부 대서양 연안을 따라 형성된 군부대 벨트가 와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은 여전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내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노폭 등의 해군기지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폭과 햄튼로드 해군 기지는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NATO와 거리를 두고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공약으로 제시한 만큼, 중부 대서양 지역 해군기지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매우 친하다”면서 “취임 후 24시간 내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협상해 전쟁과 위기를 종식시키겠다”고 단언했다.   두 후보의 대중국 정책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완강한데, 결국 유럽에 편중된 미군 역량을 중국을 겨냥한 태평양 전력 강화로 선회해, 중부 대서양 해군력 약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전 대통령 대선캠프의 제프 라이어 대변인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군부대 재정비 및 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일대 개혁을 추진하기 때문에, 워싱턴 지역 수혜 폭이 늘어날 것”이라고 반박했다.     에너지 정책은 마치 양당 후보가 마치 물과 불처럼 다른 면면을 보이고 있어 이 또한 상당한 영향이 예상된다.   한편 현재 6개 경합주 중에서 해리스 부통령이 위스콘신과 미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애리조나에서 앞서고 있으며 조지아, 네바다 펜실베이니아는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다.   버지니아는 2004년 이후 대선에서 공화당이 승리한 적이 없다.   김옥채 기자 kimokchae04@gmail.com우크라이나 지역경제 우크라이나 전쟁 워싱턴 지역 대통령 대선캠프

2024-10-09

[기자의 눈] 누구를 위한 긴 전쟁인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으로 촉발된 가자지구 전쟁이 어느덧 1년을 맞았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오히려 레바논, 이란까지 전선이 확대되는 등 확전 양상을 보인다.     이쯤에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왜 이렇게 오래 싸우는가?’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휴전을 촉구하는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은 전쟁을 끝낼 의사가 없어 보인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무엇을 위해 계속 전쟁을 하려는 것인지 명분 확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생존을 이유로 무력 사용을 정당화했다. 지난 1948년 건국 이후,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 등 주변 이슬람 국가와 반이스라엘 무장 세력들로부터 지속해서 공격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먼저 공격을 시작한 것은 하마스였다. 하마스는 지난해 10월 7일 약 5000발의 로켓을 기습적으로 발사하고, 이스라엘 국경을 침입해 1200여명을 살해, 250여명을 납치했다.      이스라엘의 하마스 공격은 자위권의 행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이 점점 확대되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에 국제 사회는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특히, 군사 작전의 목표가 하마스나 헤즈볼라와 같은 반이스라엘 무장 세력에 국한되지 않고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민간 거주지역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지난 6월 19일 이스라엘 공격 분석보고서를 통해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민간인과 무장세력을 구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이스라엘군은 지난해 10월 9일부터 12월 2일까지 가자지구의 학교, 난민 캠프, 건물 등에 GBU-31(2000파운드), GBU-32(1000파운드) 등 고성능 폭탄을 투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전쟁의 고통은  고스란히 민간인이 떠안고 있다. 지난 6일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 국제이주기구 등에 따르면 이번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사상자 수는 사망자 4만여 명을 포함, 14만 명에 이른다. 난민 숫자도 약 190만 명으로 집계됐다. 또 레바논의 사상자 숫자도 지난 5일 기준 1만1000명을 넘어섰으며, 난민 규모도 54만 명 이상으로 기록됐다. 아랍계 언론 알자지라에 따르면 지난 6일까지 이스라엘 역시 98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에 따르면 가자지구 내 전력과 물 부족으로 200만명 이상의 주민이 극심한 고통을 겪는 등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전쟁에 대해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번 전쟁을 이끄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쟁 전만 해도 지지율이 바닥이었다. 지난해 사법부 개혁이라는 명목으로 행정부의 힘을 강화하려다 국민의 저항에 부딪혔다. 삼권분립을 훼손하고 민주주의 질서를 후퇴시킨다는 이유였다. 약 50만 명이 반대 시위에 참여하면서 그의 재임은 물 건너간 것처럼 보였다. 이 와중에 전쟁이 발발했고, 네타냐후 총리는 신속히 강경 대응에 나섰다.  그 결과, 그의 지지율은 반등했다. 지난해 초 10%대에 머물던 그의 지지율이 지난달 29일 기준 38%까지 올랐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중동 정세는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76년 전으로 후퇴할 위기에 놓여있다. 이스라엘이 내세우는 ‘방어적 전쟁’의 논리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그동안의 무차별적 공격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이 더는 국제사회가 묵인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명분이 전쟁의 동력이라면, 이 명분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이 전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왜 싸움을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명확한 답을 요구한다. 이스라엘이 내세우는 전쟁의 명분에 대해 근본적인 재평가가 필요해 보인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전쟁 이스라엘 기습공격 가자지구 전쟁 반이스라엘 무장

2024-10-07

미국에서 생활비가 가장 저렴한 도시 톱 25, 브라운스빌 전국 14위

 텍사스의 브라운스빌과 맥앨런 2개 도시가 ‘미국에서 생활비가 가장 저렴한 거주지 톱 25’(25 Cheapist Place to Live in U.S. 2024~2025)에 선정됐다. U.S. 뉴스& 월드 리포트 매거진이 모기지를 지불하는 주택 소유자의 평균 총 임대료와 연간 주거비 등을 기준으로 미국에서 생활비가 가장 낮은 도시 25개를 선정한 결과, 브라운스빌이 전국 14위, 맥앨런은 전국 22위에 각각 랭크됐다. U.S. 뉴스 & 월드 리포트는 브라운스빌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텍사스가 멕시코와 멕시코만을 만나는 지점인 최남단에 위치한 브라운스빌의 전략적 위치는 여러 면에서 도시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됐다. 1846년 미국과 멕시코 군대가 처음으로 충돌하여 2년간의 멕시코 전쟁의 첫 전투가 발생한 곳이 브라운스빌이다. 전쟁이 끝난 직후, 브라운스빌은 리오 그란데 강과 멕시코만에 접근할 수 있어 이 지역의 주요 무역 허브로서의 역할을 공고히했다. 브라운스빌 주민들은 일상생활에서 도시의 위치가 미치는 영향을 계속 경험하고 있다. 많은 지역 주민이 멕시코 유산을 주장하기 때문에 스페인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정통 몰레(mole) 소스를 찾는 것도 양질의 텍사스 등심을 찾는 것만큼 쉽다. 브라운스빌의 항구는 주남부의 주요 무역 및 운송 허브 역할을 하며 걸프와도 가까워서 주민들이 일년내내 이 지역의 아름다운 해변을 즐길 수 있으며 어부들은 신선한 해산물을 충분히 제공한다. 맥앨런은 단순한 국경 도시라는 평판에도 불구하고 매우 활기찬 도시며 소매, 국제 무역, 관광, 제조업의 중심지다. 좋은 삶의 질, 풍부한 의료 시설, 젊은 이중 문화권의 커뮤니티는 맥앨런을 고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추가적인 매력이다. 가을과 겨울 시즌의 날씨가 온화한 맥앨런이 위치한 리오 그란데 밸리에는 매년 수천명의 방문객들이 찾아와 수백만달러를 소비함으로써 지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멕시코에서 텍사스로 국경을 넘는 사람들의 안식처이기도 한 맥앨런은 많은 멕시코 국민들이 하루종일 샤핑을 하고 즐기기 위해 자주 찾는다고 U.S. 뉴스 & 월드 리포트는 소개했다. 한편, 미국에서 생활비가 가장 저렴한 거주지 톱 25 가운데 전국 1위는 인디애나주 포트 웨인이 차지했으며 2위는 앨라배마주 헌츠빌, 3위는 캔자스주 위치타, 4위는 미조리주 스피링필드, 5위는 아이오와주 데이븐포트가 이름을 올렸다. 이어 6~10위는 노스 캐롤라이나주 히커리,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위스칸신주 그린 베이, 아칸사주 리틀 락,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 시티였다.   손혜성 기자미국 생활비 멕시코 전쟁 도시 25개 멕시코 유산

2024-09-25

[독자 마당] 끝나지 않은 전쟁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북한군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남침을 했다. 전쟁 3일 만에 서울이 점령당하는 등 한국은 풍전등화의 상황이었다.   이후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이 참전하면서 전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맥아더 장군의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성공이 결정적이었다. 이어 9월28일에는 서울 탈환에 성공했고 한국군과 유엔군은 파죽지세로 압록강까지 북진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다시 달라졌다. 그 겨울 영하 30~40도를 넘나드는 혹한에 동사자까지 발생했다. 세계 전쟁사에 겨울 전투로 유명한 ‘장진호 전투’도 이때 벌어졌다. 장진호 전투는 미 해병대가 주축인 유엔군 3만 명이 중공군 10만 명에 맞서 벌인 전투였다. 당시 유엔군은 끝 없이 밀려오는 인해전술의 중공군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백마고지 전투도 국군 9사단이 중공군 3개 사단에 맞서 벌인 전투였다. 10일 내내 백마고지의 주인이 24차례나 바뀔 정도였다니 얼마나 치열했는지 상상하고도 남는다.  이런 전투 중 휴전협정이 이루어졌다. 전쟁 발발 3년1개월2일(1129일)만이다. 무수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남겼지만 전쟁은 휴전했을 뿐이지 끝난 것이 아니다.     지금도 북한은 온갖 도발 행위를 그치지 않고 있다. 끊임없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이젠 오물풍선까지 남한으로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휴전선은 1953년 휴전 협정을 통해 생겼다. 지금도 남북 간 긴장감이 흐르는 곳이다.     올해는 9·28 서울 수복 74주년이 되는 해다. 6·25 전쟁의 교훈을 잊지 말고 지속적인 국방력 강화가 필요하다. 전쟁은 힘의 대결이고 평화도 힘이 있어야 유지된다.  강한 힘만이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킬 수 있다. 노영자·풋힐랜치 거주독자 마당 전쟁 세계 전쟁사 백마고지 전투도 장진호 전투

2024-09-24

[기고] 보이지 않는 북극 전쟁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북극 지역 개발을 위해 거물급 인사를 극지 연구 책임자로 임명했다. 이는 북극항로에 대한 전략과 비전을 나타낸 것으로 아시아(한국, 일본 및 중국)와의 물동량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과 북극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다.     최근 중국 화물선의 북극항로 이용이 크게 늘고 있다. 수에즈 운하와 희망봉 항로는 효율 면에서 최악이기 때문이다. 미국 또한 북극항로 개척에 천문학적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알래스카를 제외하면 북극과 아무 관계가 없는 국가다. 100여 년 전 알래스카를 매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본다.     미국의 북극항로 개척 전초기지는 알래스카 서부지역의 대표도시이며 북극 입구에 위치한 놈(Nome)이다. 놈은 한국 극지 연구소와의 공동 연구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미국 정부는 우선 놈에 항공모함이나 유람선도 접안할 수 있는 규모의 부두 개발 예산을 확보했다. 이 부두는 베링해와 북극해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 이것은 북극항로의 수요가 점차 증가할 것을 예상한 투자이다. 2009년 이래 북극항로 이용 선박이 두 배나 늘어난 시점에서 시기적절한 조치로 볼 수 있다.     특히, 연안경비 강화 차원에서 놈에 군 주둔이 필요하다. 선박의 안전운항 및 사고방지를 위해 인적 및 물적 지원을 한다는 복안이다. 더욱이 사고로 인한 오염 및 기후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등 방법도 포함하고 있다. 놈은 원주민이 3800명으로 전체 인구의 75%를 차지한다. 앞으로 많은 인구 증가가 예상되며 대부분의 토지는 원주민이 소유하고 있어 원주민의 역할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북극의 해빙 감소로 북극항로의 활용이 증가할 것은 뻔하다. 그래서 북극은 미래의 전략기지이자 핵심 무역 항로가 될 것이다.       러시아는 북극에서 유전 및 천연가스를 개발하면서 한국에 LNG선을 주문한 적이 있다. 한국은 이런 사례를 활용해야 한다. 러시아가 일 년 내내 북극항로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원자력 쇄빙선을 보유한 덕이다.     반면 캐나다 방면의 북동항로는 섬이 많아 쇄빙선이 있어도 러시아보다 활용도가 떨어진다. 따라서 선뜻 항로 개발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미국은 놈을 개발하기 위해 큰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새로운 쇄빙선 건조도 2025년 마무리 된다고 한다. 이 쇄빙선은 해안경비대 소속이 된다고 한다.     북극은 군사 목적의 군함 출입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한국도 제2의 쇄빙선을 건조한다고 하지만 시기는 아직 미지수다. 현재의 쇄빙선(아라온)만으로 남극과 북극을 감당하기엔 무리다. 선장과 선원들의 피로도가 극에 달하고 있는 형편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는 러시아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항공, 우주, 천연자원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러시아와 지속해서 연구 및 산업활동을 해야 한다. 불곰사업은 한국의 군수물자 수출에 원동력이 되었고, 누리호의 성공적인 발사에도 러시아의 기술이 접목되어 있다. 비록,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모든 과학 및 산업 분야의 통로가 차단된 상태지만 말이다. 반면, 일본은 여전히 사할린에서 천연가스를 채굴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천연가스를 개발해 안정적으로 수입하고 있다.     지난 2023년 11월 앵커리지 주재 일본 영사관에서 산업 및 환경에 관한 세미나가 열린 적이 있다. 우연한 기회에 참석했지만, 엄청난 규모에 놀랐다.     평화 속에서는 뭐든 할 수 있다. 심지어 전쟁 중이라도 국가는 자국 산업과 국민을 위해 뭐든 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과연 북극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더욱이 러시아와의 관계는 물밑에서라도 긴밀하게 유지해야 한다. 이는 한국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북극 전쟁 북극항로 이용 북극항로 개척 이래 북극항로

2024-09-10

[문예마당] 시위대의 고함만이 먹히는 나라

열여섯 살은 넘었지만 이팔청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젊디젊은 나이 스물다섯 살에 올케는 ‘전쟁 과부’가 되었다. 세 살, 한 살짜리 어린 두 딸과 어떻게 나날을 버티어 나갈 엄두를 낼 수 있었을까? 나는 그때의 올케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   내 기억은 그때, 폭격으로 파괴된 괴물 같은 건물들,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던 골목길, 끝까지 타지 못한 나무가 때때로 부는 바람을 타고 떠다니던 동네, 추워도 너무 추워서 때 묻은 낡은 회색 담요를 머리까지 뒤집어썼던 아편쟁이 아줌마가 전부다. 실상 이 기억은 식구들한테 들어서 내가 상상으로 그려 본 풍경인지, 내가 직접 보았던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애매모호한 잿빛 기억 가운데 잊히지 않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다. 바로 올케가 벌였던 용감한 데모였다. 그녀는 ‘전쟁 과부’로 딱지가 붙은 같은 또래의 여인들과 함께 한동안 몰려다녔다. 이 여인들이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소통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전쟁 전에는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가 아니었던 그들은 ‘전쟁 과부’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동지가 되었다. 그들에게는 슬픔이나 절망에 젖을 여유가 없었다. 살아야 했다.     일제 강점기 억압받던 시절에 고교생이었던 대한민국의 이 여인들은 정치인들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한 번은 이승만 대통령의 행선지를 알아내고 어느 지점에서 그를 기다렸다고 한다. 대통령의 리무진이 경호대의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서서히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기다란 리무진 안에 등을 뒤로 기대고 앉아 있는 이승만 박사의 모습이 보인다. 전쟁 과부들은 팔을 벌리고, 서로 강강술래 하듯이 자동차를 둘러싼다. 앞길이 막히고, 자동차는 설 수밖에 없다.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미망인들에 대한 이슈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시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여인들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젊은 그들이 대통령의 리무진을 가로막기 이전에, 한국 국민은, 정치인들은 왜 그들을 보지 못했을까? 아비규환 속에서야 비로소 절망의 가쁜 숨소리, 가슴을 치는 신음이 들렸을까? 한국은 건국 이래 처음으로 ‘군인 사망 급여금 규정’을 만들었다.   올케가 길거리로 뛰어나가 데모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나,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된 지금이나 한국은 국민의 목소리를 데모하는 고함 속에서만 듣는 것 같다. 때로는 정치인들조차 자신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길에 나서서 데모하고 외치기도 한다.     올여름 한국은 엄청난 찜통더위를 경험했다. 그런데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한 여인이 외로운 시위를 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도대체, 왜?     그 여인의 이름은 김한나. 나의 올케가 육이오 전쟁 때 겪었던 것처럼 그녀도 20대 청춘에 ‘전쟁 과부’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이었다. 한국은 평화의 나라지만 엄연히 휴전 중인 국가다. 그러므로 아직 징병제도가 있고 군인들이 휴전선을 지키고 있다.     그녀의 남편인 한상국 중사와 관련된 외로운 시위의 사연은 이렇다. 휴전 후, 거의 반세기가 지난 1999년,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연평도 인근에서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과 대한민국의 해군 함정 간에 해상 전투가 있었다. 두 번째 ‘연평해전’에서 그녀의 남편, 한상국 중사가 전사했다고 한다.     연평도는 육이오 전쟁 이후 황해도 일부 지역을 북한에 빼앗기게 되면서, 경기도에 편입됐다가 지금은 인천광역시에 속한다. 1914년부터 현재까지 다섯 번이나 행정 구역 변화를 겪은 희귀한 역사가 있다. 서해안 최북단에 있어서 인천항에서는 120㎞나 떨어져 있다. 반면 북한의 강령 반도에서는 12km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지리적 이유로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북방한계선을 넘어오기 쉬운 곳이므로 군이 상주하며 지키고 있다.     다시 외로운 시위를 하는 여인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한 중사는 전사 후 상사로 진급은 됐지만 가족에게는 중사 연금이 지급된다고 한다.  그녀는 “국회의원님들 하루빨리 공무원인사법 만들어 나라와 국민 지키는 군인, 경찰, 소방관을 예우해 주세요!”라고 호소하고 있다. 중사와 상사의 연금 차이는 크지 않을 것이지만, 계급을 지켜주는 것은 일종의 예의라 볼 수 있다. 그녀는 군인사법과 공무원 재해 보상법 개정안을 확정해 ‘제복 입은 사람이 존경과 예우를 받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한국도 제복 입은 군인, 경찰, 소방관들을 예우해 주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항공기 등에 탑승할 때 노인, 신체장애인, 어린이가 일차고 바로 다음으로 군복을 입은 군인들을 탑승시킨다. 그들에게 나라를 지켜줘 고맙다는 방송과 함께 말이다. 참 멋있다.     피켓을 들고, 뙤약볕에서 외롭게 혼자 시위하는 한상국 상사의 전쟁 미망인 김한나 씨를 응원한다. 우리 모두 응원해야 한다. 더는 시위를 해야만 하고, 아픔을 호소해야만 하게 하면 안 된다. 이유는 말하면 잔소리이다. 류 모니카 / 수필가문예마당 시위대 나라 전쟁 과부들 육이오 전쟁 이승만 대통령

2024-09-05

[기고] 끝나지 않은 6·25전쟁

2차 세계대전 후 한반도 허리에 그어진 38선은 민족의 사선이었다. 6·25 한국전쟁은 유엔군과 중공군의 참전으로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으로 비화할 뻔했다. 그러다 1953년 7월27일 22시에 체결된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에 따라 총성이 멈추었다. 올해는 정전협정 71주년이 되는 해다.     3년 1개월 동안이나 계속된 동족상잔의 치열했던 전쟁은 UN이 나서고서야 중단됐다. 남북이 체결한 정전협정은 지금까지도 한반도 평화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유엔군에 속한 16개 회원국 외교부 장관들은 “한국이 통일되고 독립적이며 민주적인 국가가 될 수 있도록 정전협정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다짐했고 “다시 북한의 무력 공격이 있을 경우 즉각 한국에 대한 지원을 재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정전협정으로 인해 남북 간 전투는 중단되었지만, 공식적인 종전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한반도가 여전히 전쟁 상황에 빠질 위험성도 있다는 의미다. 정전은 일단 전쟁 상태를 중단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특히 북한의 위협이 여전한 상태여서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는 상황이다. 3대에 걸친 세습으로 이뤄진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인민의 생존과 유엔의 제재 등은 아랑곳하지 않고 막가파식 고집으로 대량 살상무기 개발에만 열을 울리고 있다. 또한 지속적인 도발을 통해 대한민국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우리는 6·25전쟁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토 통일의 문턱에서 후퇴했다. 이후 그토록 ‘휴전반대’를 외쳤던 우리 정부가 정전협정을 받아들인 것은 한국의 안보를 보장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얻어냈다는 이유도 있었다. 또한 정전협정에는 유엔의 깃발 아래 함께 전투에 참여했던 국가들의 희생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면서 전쟁에 대비한 전략도 매우 달라지고 있다. 변화하는 북의 위협에 대응하는 군사적 전략 수립과 훈련 방식이 필요함은 물론 유사시에 대비해 긴밀한 외교적·군사적 협력 관계를 만들어 두는 것도 필요하다.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뜻을 같이할 친구가 있다는 것은 큰 힘이다. 위협에 함께 대응해 줄 우방이 있고, 가치를 공유하며 서로의 이익을 존중하는 국가들이 70여 년 동안 유엔사의 구성원으로 함께하고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북한은 휴전협정일인 7월 27일을 ‘전쟁승리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6·25 전쟁 당시 한국군 전사자는 13만 7000여명이었던 것에 비해 북한은 52만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북한에는  전쟁 희생자를 기리는 묘지 하나 없다. 숱한 희생자를 낸 전쟁범죄자 김일성·김정일 부자는 죽어서도 호사를 누리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 정부는 마지막 한 명의 전사자라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비록 적군이지만 사망자들이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 한구석, 지도상에서 찾기도 어려운 한반도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던 용사들에게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 희생에  보답해야 한다. 6·25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이 아니라 ‘잊어선 안 될 전쟁’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낮에는 해가, 밤에는 달이 지켜준다’는 현충원과 호국원에 잠들어 있는 젊은 넋을 기리는 일이기도 하다. 자유민주 국가의 존재 가치란 숭고한 희생은 국가가 영원히 기억해 주는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전쟁 전쟁 희생자 전쟁범죄자 김일성 전쟁 상태

2024-08-04

차세대에 평화·자유 중요성 일깨워

참전용사기념비위원회(이하 기념비위원회, 회장 박윤숙)가 제1회 한국전쟁 휴전 기념일 행사를 열어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고 차세대에게 평화와 자유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기념비위원회가 화랑청소년재단(총재 박윤숙), 리멤버 727(대표 해나 김)과 함께 마련한 행사는 한국전 정전협정 71주년을 맞은 지난 27일 풀러턴 힐크레스트 공원 내 OC 한국전 참전 미군용사 기념비 앞에서 진행됐다.   참전용사를 비롯한 참가자들은 한국전쟁이 시작된 날을 상징하는 오후 6시25분에 미국 국가와 애국가를 제창하며 행사 개막을 알렸다.   데이브 민 가주상원의원, 조이스 안 부에나파크 부시장, 태미 김 어바인 시의원 등 연사들은 참전용사들의 희생에 감사를 표했다.   주최 측은 한국전 참전 영웅 로이스 윌리엄스(99) 예비역 해군 대령을 초청했다. 전투기 조종사였던 윌리엄스는 1952년 11월 소련 미그기 7대와 공중전을 벌여 홀로 4대를 격추하는 믿기 어려운 전과를 들려줘 박수갈채를 받았다.   기념비위원회는 2명의 미군 후손에게 각 2000달러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박 회장은 지난 25일 워싱턴 DC에서 케빈 스컬리(메이슨대 3학년)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27일 기념 행사에서 장학금을 받은 케빈 멀둔(변호사, 전 뉴포트비치 시장)은 2000달러를 즉석에서 기념비위원회에 기부하며 “더 어려운 참전용사 후손에게 전달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최근 3개월 동안 16개국에서 7·27 정전과 한국전쟁에 관한 에세이, 미술, 영상 콘테스트를 연 주최 측은 한국어, 영어 에세이 금상 수상자인 오현준, 박시현 학생의 작품 낭독을 통해 차세대가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을 소개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미술 작품을 출품한 다이나나 볼코바, 자크린 바코시는 특별상과 함께 한국 방문의 기회를 얻었다.   행사 참석자들은 휴전 기념일을 상징하는 오후 7시27분 일제히 촛불을 켠 뒤 묵념을 하고 아리랑을 불렀다. 행사는 주최 측이 제공한 카네이션 200송이로 참석자 전원이 기념비에 헌화하며 막을 내렸다. 임상환 기자차세대 중요성 한국전쟁 휴전 차세대가 전쟁 이하 기념비위원회

2024-07-30

[중국읽기] 그들의 전쟁 준비

예상대로였다. 공보 형식으로 공개된 회의 결과는 기존 ‘중국식 현대화’ 방안을 종합적으로 정리했을 뿐이다. 지난주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기 3중전회 얘기다. ‘별것 없네~’라는 반응이 나올 법하다.   원래 그렇다. 3중전회는 구체적인 정책보다는 경제 개혁의 큰 방향을 제시하는 회의다. 공보에 숨긴 그들의 ‘미래 셈법’을 읽어내는 건 우리의 몫이다. 2가지 사안을 주목하게 된다.   첫째 ‘고품질발전(高質量發展)과 국가 안보(안전)의 상호 연동’이다. ‘고품질발전’은 시진핑 주석이 주창하는 ‘중국식 현대화’ 달성의 핵심이다. 디지털화, 스마트화 등을 통해 산업 체질을 첨단 고부가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뜻이다. 그걸 국가 안보와 결부시켰다. 국가 안보 차원에서 산업 전략을 짜고, 독자적인 공급망 구축으로 경제 안보를 지키겠다는 의미다. 미국과의 경제 전쟁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읽힌다.   둘째 ‘인재강국(人才强國)’ 전략이다. 공보는 ‘교육, 과학기술, 인재야말로 중국식 현대화의 기초이자 버팀목’이라고 했다.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겠다고 강조했다. 혁신적인 인재 양성 시스템 구축을 위해 교육 개혁에 나서겠단다.   둘을 종합하면 이렇다. ‘미국 경제 압박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산업을 고도화하고, 이를 위해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들에겐 인재 양성이 곧 미국과의 경제 전쟁에 대비하는 길이다. 3중전회가 끝나기 무섭게 중국 관영 매체는 과학기술 분야 교육 개혁 방안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의 과학기술 연구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학계 권위를 인정받는 ‘네이처 인덱스’는 중국이 올해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과학 연구 분야 1위에 올랐다고 밝히고 있다. 세계 최상위 연구기관(대학 포함) 10곳 중에서 7곳을 중국이 차지했다. 그런 중국이 아직도 부족하다며 ‘인재 강국’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공보는 모든 개혁을 2029년까지 완성할 것이라고 못 박고 있다. 향후 5년 그들은 전쟁하듯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매진할 태세다.   우리 상황을 돌아보게 한다. 고등학교 인재는 의대로 몰리고, 대학은 학과 이기주의에 막혀 필요 산업 인력을 충분히 배출하지 못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분야는 인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MBC를 둘러싼 여야 대립으로 과학기술 관련 법안 심사는 뒷전으로 밀리는 게 우리 정치 수준이다.   ‘2029년 한국과 중국의 기술 수준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3중전회 공보를 읽으며 드는 걱정이다. 한우덕 / 한국 차이나랩 선임기자중국읽기 전쟁 과학기술 인재 교육 과학기술 과학기술 분야

2024-07-22

[FOCUS] 말 더듬고 동문서답…TV토론 거센 역풍에 ‘백기’

조 바이든 대통령이 21일 2024년 대선 민주당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지난해 4월 25일 X(옛 트위터)를 통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지 1년 3개월 만이다. “트럼프를 이길 수 있는 최고의 후보는 나”라는 자신감 속에 대선 레이스를 시작했지만, 재임 기간 이어진 ‘두 개의 전쟁’과 인플레이션 위기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역대 최고령 대통령(81세)으로서 제기된 인지력·건강 우려는 불식되기는커녕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TV토론에서 폭발했다. 바이든을 후보 사퇴로 이끈 결정적 장면 5가지를 꼽아봤다.   ▶“주먹 인사만 해주고 …”   지난 2022년 7월 15일 바이든은 사우디아라비아 제2의 도시 제다에 있었다. 마중 나온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주먹으로 인사했다. 몇달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바이든은 2018년 튀르키예 이스탄불 사우디 영사관에서 피살된 사우디계 미국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배후로 빈살만을 지목하고 강하게 비판해왔다. “사우디를 국제적 왕따로 만들겠다”고도 다짐했다.   그랬던 그가 취임 후 처음으로 사우디를 직접 찾은 건 기름값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고 미국 내 유가도 급등했다. 이 여파로 2022년 6월 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1년 내 최고치인 9.1%까지 치솟았다. 급한 불을 끄려 바이든은 ‘독재자와 손잡는다’는 국내 비판에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실질적 리더인 빈살만에 석유 증산을 부탁했다.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두 달 뒤 OPEC과 주요 산유국 간 협의체인 OPEC+는 9월 원유 증산량을 하루당 10만 배럴로 정하며 7~8월 증산량(64만8000배럴)보다 더 줄였다. “주먹 인사만 하고 뺨 맞은 셈(CNN)” “정치적 모욕(뉴욕타임스)”이란 지적이 쏟아졌다. “인플레이션도 못 잡고, 전쟁도 못 끝낸다”는 바이든에 대한 비판은 이때 시작됐다.   ▶“제노사이드 조”   지난해 10월 무장정파 하마스의 무차별 학살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9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3만 8000명이 넘는 가자지구 주민이 숨지고, 기아 등 인도주의적 위기도 심각하지만 하마스 궤멸을 공언한 이스라엘은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휴전을 요구하는 국제사회 목소리가 크지만 바이든의 태도는 어정쩡했다. 군사작전을 중단하고 휴전 협상에 나서라는 요구를 하면서도 이스라엘에 무기는 계속 공급하고 있다. 11월 대선 때문이었다. 전통 지지층인 무슬림, 반전 성향 유권자도 중요하지만 선거자금의 ‘큰 손’인 유대계 유권자 눈치도 봐야 했다.   바이든의 ‘위험한 줄타기’는 역풍을 맞았다. 4월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시작된 대학가 친 팔레스타인 시위에선 “바이든은 ‘제노사이드 조’(대량학살자 조)” “바이든과 트럼프의 차이를 못 느끼겠다”는 말이 나왔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바이든이 나약해 중동 상황이 악화됐다”고 비판했다. ‘집토끼’ 지지층도 잃고 표심 확장에도 실패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젤렌스키에 “푸틴 대통령”   지난해 6월 콜로라도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행사장. 졸업장 수여 후 이동하던 바이든이 갑자기 넘어졌다. 경호원 등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자리에 앉은 바이든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바이든의 ‘꽈당’ 넘어짐은 처음이 아니다. 2021년 3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계단을 오르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고, 2022년 6월에도 자전거를 타다 페달 클립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말실수도 잦았다. 지난 2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으로 불렀다. 5월엔 “한국 대통령 김정은을 위한 그(트럼프)의 러브레터들”이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한국 대통령으로 칭했다. 급기야 지난 11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트럼프 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푸틴 대통령”으로 부르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폭망’ TV토론     지난달 27일 열린 바이든과 트럼프의 TV토론은, 바이든으로선 ‘대참사’였다. 토론 전만해도 양측 기세는 팽팽했다. 뉴욕타임스(NYT)가 이틀 전 분석한 전국 여론조사 지지율 평균은 46% 동률이었다.   바이든은 토론 시작 직후 이상한 낌새를 보였다. 잘 들리지 않을 만큼 말에 힘이 없었고, “어, 음”을 연발하며 더듬었다. 국가부채에 대한 트럼프 질문에 “메디케어(의료보험)를 이겼다”고 동문서답했다. 트럼프는 놓치지 않고 “방금 본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것 같다. 바이든이 메디케어를 망가뜨렸다”고 받아쳤다.   토론 직후 실시한 CNN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잘했다는 응답은 67%로, 바이든(33%)을 ‘더블 스코어’로 따돌렸다. 4년 전인 2020년 9월 첫 토론 직후 CNN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이 잘했다는 응답이 60%였고, 트럼프가 28%였던 것과 정반대 결과다. 이후 민주당 내부에선 후보 교체론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주먹 쥔 트럼프 사진   쐐기를 박은 건 트럼프 암살 미수 사건이다. 토머스 매슈 크룩스(20)는 지난 13일 오후 6시 12분 펜실베이니아 버틀러의 한 공장 건물 옥상에서 AR-15 소총 방아쇠를 당겼다. 120m 떨어진 곳에서 유세하던 트럼프를 향해 탄환이 날아갔다.   트럼프가 잠시 고개를 돌리는 찰나, 총알은 그의 귀를 스쳐 지나갔다. 트럼프 지지자 1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지만, 트럼프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경호원들이 자신을 감싸며 호송을 시도하는 중에도 트럼프는 청중을 향해 “싸우자”고 세 차례 외쳤다.   귀에 피가 나는 가운데 성조기를 배경으로 주먹을 불끈 쥔 트럼프의 사진은 이후 지지자에게 영웅 이미지를 심어줬다. 공화당 일각에선 “선거는 사실상 끝났다”는 기류까지 번졌고, 민주당 내에서 바이든 하차론은 더욱 거세졌다. FOCUS 동문서답 tv토론 도널드 트럼프 사우디계 언론인 하마스 전쟁

2024-07-22

“끝나지 않은 전쟁, 통일이 곧 분단 역사의 마침표”

 제74주년 6.25 전쟁 추념식이 지난 6월25일(화) 오전 11시 달라스 한인문화센터에서 거행됐다. 달라스 한인회(회장 김성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달라스협의회(회장 오원성), 주달라스영사출장소(소장 도광헌)가 공동으로 주최한 추념식에는 100여명의 한인들이 참석해 6.25 전쟁을 기억하고 순국선열을 추모했다. 우성철 달라스 한인회 수석부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추념식은 윤석렬 대통령의 축사 영상으로 시작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불참한 도광헌 소장을 대신해 이율리 영사가 기념사를 했고, 이철모 6.25 참전전우회 전 회장, 김성한 달라스 한인회 회장, 그리고 오원성 민주평통 달라스협의회 회장 순으로 기념사를 했다. 이율리 영사는 기념사에서 “74년 전에 대한민국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령과 참전용사분들께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면서 “이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고 굳건한 한미 동맹을 토대로 대한민국을 더 크게 발전시키고 지켜 나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철모 달라스 6.25 참전 전우회 전 회장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소련과 중공의 공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진격과 후퇴를 거듭하면서 현재의 휴전선을 기점으로 해서 마침내 1953년 7월 27일을 기해서 3년 간의 전쟁을 종식하고 휴전으로 들어갔다”고 설명하며 “전쟁 중 목숨을 잃은 18만여 명의 전사들을 기억하면서 앞으로 닥칠지 모를 국난의 때를 대비해 다같이 힘을 모으자”고 당부했다. 이철모 전 회장은 6.25 전쟁 당시 미육군단에 예속된 한국군 64단 수석 중대장으로서 세계 전쟁사에 기록된 용문산 전투에서 부대를 이끌며 전쟁에 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서부전선에 이상 없다’는 소설의 한구절인 “노병은 결코 죽지 않고 오직 사라질뿐이다”를 외치며 기념사를 마쳤다. 김성한 한인회장은 “6.25 전쟁에서 한국군 13만 8천명이 전사하고 45만명이 부상했으며 2만5천명이 실종되었다. 이 전쟁으로 대한민국은 온 나라가 폐허가 되었으나 다시 일어서서 세계10위권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고 상기시키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와 번영은 참전용사들이 전쟁터에서 흘린 땀과 피와 눈물의 댓가다. 남북 평화를 위해서 미국 주류사회와 전 세계에 평화와 화해를 전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하자”고 호소했다. 마지막 기념사에서 오원성 회장은 “6.25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포성을 멈추게 한 정전협정은 현재진행형이다. 통일된 한반도를 이뤄내야 비로소 6.25 전쟁은 분단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한반도 통일을 위해 다함께 힘을 모으기를 거듭 당부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통일을 꿈꾸면 통일은 반드시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다. 앞으로도 민주평통 달라스협의회는 대한민국 정부의 통일정책에 기여하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통일된 한국을 이끌어 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전하며 기념사를 맺었다.   모든 기념사가 끝난 후 6.25 기념 영상 시청을 통해 호국용사들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갈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 이어졌고, 이후 다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태극기를 들고 6.25 노래를 제창하면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추념식에는 달라스에 거주하는 총 5명의 참전용사들 중 이철모, 김성제, 정명진 참전용사가 참석했다. 이들에게는 감사의 표시로 꽃다발이 증정됐다. 정명진(91) 참전용사는 본지 인터뷰에서 “미국에 이민 와서 36년 동안 살고 있지만 항상 고국을 잊지 못하고 고국의 번영을 바라고 있다”고 전하며 “기념식에 참석한 다른 참전용사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대한민국 조국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도광헌 소장은 6.25 전쟁 추념식에 앞서 6월18일(화) 한식당 수라에서 6.25 한인 참전 유공자들을 초청해 오찬을 갖고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날 오찬에는 DFW 지역에 거주하는 4명의 참전용사들이 참석했다.    캐서린 조 기자마침표 전쟁 전쟁 추념식이 김성한 한인회장 세계 전쟁사

2024-06-28

제74주년 한국 전쟁 기념식 엄수

'제74주년 6.25 전쟁 샌디에이고 지역 기념행사'가 한인회와 한미시니어센터 공동 주최로 엄숙하게 개최됐다.   25일 한미연합감리교회 친교실에서 열린 기념행사에는 조주호, 조정섭, 지춘학, 강호진 참전영웅들을 필두로 앤디 박 한인회 회장과 임천빈 명예회장, 김일진 상임고문 및 임원진 그리고 한청일 시니어센터 회장과 회원들, 백황기 재향군인회 SD분회장과 회원들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앤디 박 한인회장은 "오늘 이같은 기념식을 통해 우리는 74년 전 발발한 민족 상잔의 비극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고 여전히 분단상태인 상황임을 직시하면서 어떠한 마음 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 다시 한번 가다듬는 기회로 삼자"며 "또한 수많은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존재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하며 후세대에도 올바로 전해 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참전용사들은 연사들의 거수경례에 답하고 애국가와 6.25 노래를 부르며 감회에 젖는 모습이었는데 조주호 참전용사(목사)는 "육이오를 우리 후배들이 잊지 않고 있다는 것에 감사 드리고 이 전쟁은 결코 잊혀 져서는 안 된다. 꼭 기억하고 이 사상과 기본정신을 지켜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정섭 참전용사는 "감개가 무량하다. 내 나이가 95살이 됐다. 귀는 어둡지만 아직도 눈을 감으면 전쟁의 기억이 생생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춘학 참전용사도 "해병대로 참전했는데 휴전 직전 중공군과 전투하다 부상을 당했다. 평생 잊지 못한다. 해마다 이같은 행사를 통해 희생을 기억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글·사진=서정원 기자기념식 한국 한국 전쟁 전쟁 샌디에이고 조주호 참전용사

2024-06-25

“전쟁 악몽으로 매일 소파에서 잠들어”

“아직도 생생한 그날의 악몽 때문에 매일 밤 소파에서 잠을 청합니다”   6·25 전쟁 발발 74주년을 맞은 오늘.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 불려 온 이 전쟁을 절대 잊지 않기 위해 여전히 그날의 기억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지난 22일 롱아일랜드 하팍 자택에서 만난 살바토르 스칼라토 뉴욕주한국전참전용사회(KWVA) 롱아일랜드 지회장. 지하실을 가득 메운 전쟁 기록에서 한국전 참전에 대한 그의 자부심을, 반나절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내내 보인 한맺힌 눈빛에서 세상을 떠난 동료들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었다.     1933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1951년부터 해군으로 복무한 그는 이듬해인 1952년 인천에 도착해 최전방에서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1953년, 손과 목, 다리에 부상을 입은 채로 미국에 돌아왔다.     한국을 증오했다던 그는 어쩌다 “내 심장은 한국에 두고 왔다”고 말하게 됐을까.     미국과 한국을 모두 증오했다   “너무 많은 동료들이 내 품에서 죽어 나갔다”는 그는 처음으로 동료의 죽음을 목격했던 그날 밤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전했다. 전쟁터에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일주일을 앞둔 동료는 갑작스런 공격으로 총알을 맞고 스칼라토 회장의 몸 위로 쓰러졌고, 복부 압박을 했지만 결국 그의 품에서 차갑게 식어갔다. 그는 “미국과 한국을 증오했고, 왜 우리가 남을 위해 목숨 바쳐 희생해야 하는가에 대해 분노했다”고 전했다.   주머니 속 잘린 아이의 손   그랬던 그는 한 아이의 죽음을 목격하며 생각을 바꾸게 된다. 전쟁 중 폭격을 맞아 주민 대부분이 사망한 한 마을에서 손이 잘려나간 한 남자아이를 발견한 그는 잘린 손목을 주머니에 넣은 채 아이를 안고 의사가 있다는 고아원으로 향했다. 그는 “공포에 질린 아이가 남은 한쪽 손으로 내 목을 꽉 끌어안았다”며 “아이를 의사에게 넘겨주고 나왔다가, 주머니 속 아이의 손이 생각나 다시 들어가 전달했지만 이미 아이가 죽은 후였다”고 설명했다. 아이의 시체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던 그는 그때 결심했다고 한다. 이 죄 없는 한국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노라고.     그 어디에도 없었던 기록   통역병으로 전투에 참여했던 KWVA 하세종 수석부회장은 “전쟁에 참여한 미군 17만5000명 중 10만5000명은 부상, 8600명은 실종, 8000명은 포로로 잡혔다”며 “살아 돌아온 미군 중 70~80%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귀국 후에도 병원 신세를 지며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고 전했다. 이렇게 목숨 바쳐 싸웠으나 몇십 년이 지나도록 미국에서 한국전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살바토르 회장은 “1985년 한국전에 대한 리포트를 쓰겠다는 딸에게,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찾아보라고 전한 뉴욕의 한 참전용사는 ‘그 어디에도 자료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이에 심각성을 느껴 KWVA가 탄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에서 ‘잊혀지지 않은 전쟁’〈Unforgotten War〉으로       1999년 연방의회 결의안 통과로 예우받기 시작 전국 참전용사들 ‘텔 아메리카 프로그램’ 착수   한국 위상 높아지며 인식 개선…교육은 여전히 부족 어쩌다 ‘잊힌 전쟁’이 됐을까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전쟁 영웅으로 예우를 받기 시작한 건 전쟁 발발 약 50년 후인 1999년부터다. 이전까지 한국전은 트루먼 대통령 재임 당시 지시된 군사 작전(police action) 정도로만 규정됐고, 1999년 한국 정부가 미국의 참전용사들에게 메달을 지급하고 싶다고 요청하며 연방의회에서 결의안이 통과돼 전쟁 지위를 회복했다.     ‘잊혀진 전쟁’에서 ‘잊혀지지 않은 전쟁’으로     살바토르 회장은 요즘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에게 “땡큐 포 유어 서비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물론 문화·경제적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 보다 많은 이들이 한국전에 관심을 갖게 된 덕분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50개주 참전용사들의 피나는 노력도 들어가 있다. 협회가 결성된 이후 전국의 참전용사들은 ‘텔 아메리카 프로그램’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잊혀진 전쟁’으로만 남을 게 아니라, 한국을 위해 싸운 이유와 목적을 차세대 청소년들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참전용사들이 직접 발벗고 나섰다. 전국의 중·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강연했고, 또 교회와 도서관을 다니며 일반 시민들에게 체험담을 공유했다.     한국전 교육 여전히 부족   참전용사들은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전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살바토르 회장은 “지금은 예전보다 도서관에 가면 한국전 관련 책들이 몇 권 생겼다”며 “그래도 한국전은 베트남전 등에 비해 미국에 큰 의미가 없는 전쟁이라, 역사 교과서에서도 1~2페이지만 차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텔 아메리카 프로그램’도 이전에 비해 활발히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제 남아 있는 참전 용사들이 얼마 없고, 대부분의 참전용사들이 고령화돼 외부 강연이 힘들기 때문이다. 하세종 부회장은 “협회 창립 당시 회원이 3만여 명이었는데, 현재는 10분의 1에 불과하다”며 “차세대 한인들도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다시 찾은 대한민국은 반짝였다     전쟁 후 한국을 9번이나 방문했다는 살바토르 회장은 “다시 찾은 대한민국은 반짝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2010년 방문 당시 동료 참전용사가 서울의 야경을 보고 “맨해튼과 다를 게 없지 않냐”고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한국에 갈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그는 “전쟁 당시 움츠렸던 대한민국은 이제 두려운 게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전했다.     아직도 생생한 전쟁의 기억 때문에 침대에서 잠을 이루기 힘들어 소파를 찾는다는 살바토르 회장. 마지막으로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전할 말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전을 기억해달라”고. 그리고 “우리의 희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잊지 말아달라고”.  글·사진=윤지혜 기자전쟁 악몽 한국전 참전용사들 전쟁 기록 전쟁 지위

202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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