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 한인 홈리스들이 겪는 이중고
‘중앙일보-USC 공동기획, 힐링 캘리포니아’ 4번째 시리즈로 한인 홈리스 현장을 취재했다. 한인 홈리스는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될 우리의 이야기다. 한 달 동안 LA한인타운에서 만난 한인 홈리스는 30대부터 70대까지 연령이 다양했다. 한인 홈리스 약 55명 중 여성은 10% 미만으로 나타났다. 거리에서 생활한 지 1년 3개월째라는 전 모(64) 씨는 한인 여성 홈리스가 적은 이유에 대해 “여자에게 거리생활은 정글이다. 별꼴을 다 겪는다”며 한인 여성은 웬만해서는 거리로 나앉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거리를 정처 없이 떠도는 한인 여성 홈리스가 부쩍 늘었다. 팬데믹 이후 한인 홈리스는 빠르게 늘고 있다. 홈리스를 돕는 김요한 신부 등 봉사자들은 “한인은 홈리스 위기에 처해도 품위를 지키려는 자존심이 강하다. 가족, 친구, 지인의 집에서 신세를 지거나 정 안 되면 차에서 생활한다. 텐트와 천막촌 생활은 마지막 단계”라고 전했다. 최근의 한인 홈리스 증가는 한인끼리 도와주던 손길마저 한계에 직면했다는 방증이다. 한인 홈리스들은 한인이 운영하는 무료 쉼터와 재활센터에 들어가길 바랐다. 입주가 여의치 않을 경우 한인끼리 텐트나 천막촌을 만든다. 일반 셸터는 ‘아시아계에 대한 위협, 언어장벽, 열악한 환경, 외로움’ 등을 이유로 거부감을 보인다. 결국 한인 등 소수계 홈리스는 사실상 사각지대에 방치된 셈이다. LA시 등 정책 당국은 ‘원칙’만 고집하지 말고 이들을 위한 현실적 도움을 고민해야 한다. 이들은 홈리스가 된 원인으로 ‘실직, 사업실패, 이혼 및 가족붕괴, 중독 및 정신건강’ 등을 꼽았다. 특히 수입이 끊겼을 때 LA 등 남가주 지역의 렌트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민 1세대와 2세들의 홈리스 전락 원인은 다소 차이를 보였다. 1세들은 주로 실직 및 사업실패, 이혼 등으로 홈리스가 됐다고 말했다. 알코올과 도박 등 각종 중독에 빠졌다가 홈리스가 된 경우도 많았다. 반면, 한인 2세는 약물 중독과 정신 건강 문제가 홈리스가 된 주요인이었다. 또 최근에는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에 왔던 중국동포나 탈북동포 가운데서도 홈리스로 전락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한인 홈리스들은 재기 의지가 강하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어려움에 부닥쳐 있지만 어떻게든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목표가 있기에 이들은 다른 홈리스들과 달리 옷차림이나 개인위생에도 나름 신경을 쓴다. 한인 홈리스들은 LA시 등 정부의 홈리스 정책에는 큰 신뢰감을 보이지 않았다. 비효율적이라는 것이 이유다. 그들은 한인 사회에는 ‘선입견과 손가락질’ 대신 ‘연민과 공감’의 시선을 당부했다. LA에서 태어난 샘 이(40) 씨는 팬데믹 때부터 차에서 생활했다. 이 씨는 “도어대시 등 음식배달 일을 해도 경쟁이 심해 한 달 수입은 500달러 정도”라며 “그 벌이로는 방 하나 렌트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 씨는 “주택가의 홈리스라도 말썽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될 것 없지 않나”며 “주민들은 우릴 내쫓을 구실만 찾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한인 자원봉사자는 “한인 사회가 경제적, 정치적으로 성장한 만큼 시와 정치인들에 소외된 한인 홈리스를 위한 조치도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A한인타운에서 아파트 매니저로 20년 동안 일하다 홈리스가 된 써니(46) 씨는 팬데믹 때 건물주에게 월급 좀 올려달라고 말했다가 쫓겨났다고 한다. 그는 “한인 식당에 가서 밥이랑 김치만 좀 달라고 해도 매몰차게 '안 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라며 누구든 자신처럼 한순간에 홈리스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써니 씨의 마지막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홈리스를 마약이나 하는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누구라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 그의 삶 전체를 바꿀 수 있어요.” 김형재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홈리스 이중고 한인 홈리스들 동안 la한인타운 한인 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