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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마음의 자유를 얻기 위해

  필자는 중학교 시절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1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그 영화 주제곡을 듣고 어떤 무상함이 강하게 일어났고, 내가 누구이며 과연 마음의 실체가 무엇일까 하는 답답함과 강한 의심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 무상한 경계를 대할 때마다 그런 의심과 답답함이 일어났는데, 당시 필자의 심경은 마치 좁은 통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의심이 해결되기 전까지 그 좁은 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외적 구속이건, 내적 구속이건 내가 어떤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해도 결코 내 ‘마음’으로 부터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필자가 원불교로 출가하고 난 후에야 그 좁은 통이 바로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고, 마음의 실체를 깨달아야만 그 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마음이 고요해지고 번뇌가 사라지면 이런저런 의심이 생깁니다. 이는 마치 호수의 물결이 잠잠해지면 호수 밑에 보이기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의심은 진리가 우리를 참 고향으로 오라는 부름이자 손짓입니다.   다음은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님의 말씀입니다.   “수도하는 이가 큰 발심이 나 가지고 공부가 어느 정도 깊어지면 자연 큰 의심 하나가 생겨나서 일체 의심이 그 의심 아래 잠을 자고, 자나 깨나 보나 들으나 어묵동정이 다 의심으로 화하여 온 천지가 그 의심 안에 들어 있다가 홀연히 한 생각을 얻어 그 의심을 부수고 나면 일체의 의심이 다 풀어지고 그로 좇아 참 지혜가 발하나니, 지금 그대들 가운데 보고 듣고 생각해서 아는 지혜는 참 지혜를 얻어 들어가는 첫 문에 첫걸음이 되나니 그것으로써 만족하지 말라.”   수도인에게이런저런 의심이 생기다가 나중에는 그 의심들이 하나의 큰 의심으로 귀결된다고 대종사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모든 강물이 결국 하나의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처럼….   불교 수행인들에게 궁극의 의심은 주로 ‘이뭣고’가 됩니다. 내가 말하고 보고 생각하는 그 실체가 무엇인가 하는 의심입니다. 우리는 이를 마음, 의식, 성품 등이라 말하지만 이는 단지 하나의 개념일 뿐 우리는 그 실체를 정확히 모릅니다. 큰 의심이 걸리면 그 의심을 통해 큰 입정에 드는 것입니다. 큰 의심이 있고 난 뒤에 큰 깨달음이 있다고 대종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큰 의심이 있는 뒤에 큰 정성이 나고, 큰 정성이 난 뒤에 크게 깨달음이 있으며, 깨달아 아는 것도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통 만통이 있나니라.”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선진포에서 나룻배를 기다리다 저절로 입정에 들어 온종일 그대로 서 계신 적이 있습니다. 큰 의심이 걸려 대정(大定)에 든 것입니다. 만공 스님께서도 스승님으로부터 “만법이 하나로 돌아갔다 하니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라는 화두를 받고 처음에는 이를 그냥 개념적으로 되뇌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이가 참으로 깊은 의심이 되었고, 그 의심 속에 먹고 자고 걸어가는 것을 거의 잊을 정도의 동정 간 입정이 몇 달 지속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부엌에서 밥을 하다가 불붙은 나무가 ‘딱’ 하며 타들어 가는 소리를 듣고 홀연히 일체의 의심이 해결되고 깨달음을 얻었다 합니다.   큰 의심을 통해 큰 정(定)에 들고 이가 깨달음의 경로입니다.     그러나 보통 수도인에게는 이런 의심이 깊게 걸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과거 불교 선종(禪宗)에서는 많은 선지식은 제자들에게 어떤 진리적인 의심거리를 주었는데 이를 ‘화두(話頭)’라고 합니다. 화두를 때때로 공안(公案)이라고도 하는데, 공안은 글자 그대로 ‘관공서의 공식문서’라는 뜻입니다. 관공서의 법적 문서처럼 공안이 공부의 기준, 깨달음의 기준이 된다는 뜻입니다.   다음은 선가의 대표적 화두 혹은 공안입니다. 한 수행자가 중국 조주 선사에게 “인도의 달마대사가 서쪽 즉 중국으로 온 까닭이 무엇입니까?” 물었습니다. 마침 뜰앞에서 있었던 조주 선사는 “뜰앞의 잣나무다”라고 답을 했습니다. 한 학인이 조주 선사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물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살아있다고 하셨는데 개에게도 과연 불성이 있을까 그 학인은 의심이 되었나 봅니다. 조주 선사는 “무(無), 즉 없다.”고 답했습니다.   학인들의 어떤 물음에 대해 선지식들이 진리를 직관적으로 바로 학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여러 가지 답을 제시해 왔습니다. 선지식들의 이러한 답은 엉뚱한 답, 비논리적인 답변으로 보이는데, 이는 생각 논리로서 알 수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많은 화두가 수수께끼처럼 보이지만 화두는 근본적으로 수수께끼와 다릅니다. 수수께끼의 답은 생각으로서 논리적 사고로서 얻을 수 있지만, 화두의 해결은 생각이 끊이진 자리에 들어가야 그 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화두(話頭)라는 말이 화(話), 즉 말과 글과 생각 이전의 자리(머리 頭)라는 뜻입니다. 말과 생각 등 모든 관념 이전의 세계로 들어가야 성품을 본다는 것입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마음 자유 의심 하나 의심 아래 마음 의식

2024-12-19

[삶의 뜨락에서] 인간의 숨결, 온기 3

이런 배경 아래 새롭게 유대교가 주목받게 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대교의 근본 전통을 이루는 율법보다는 복음의 구원에 이르는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교가 주목을 받게 된다. 그 당시 사람들은 혼란한 시기에 자신들을 구원해 줄 절대적인 힘을 갈구하고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구원자가 아니라 모든 인간을 위한 구원자임을 선포한다.     밀라노 칙령이 공포된 313년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의해 공식적으로 승인된다. 그 핵심은 인간의 존엄과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이상적인 출발이었으나 교황을 중심으로 한 계급적 제도가 여전히 주를 이루고 있어 다시 천년의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다. 고대사회 때부터 길들여진 계급적 사고는 당시 사람들의 의식에 깊이 자리 잡은 상태였다.     기독교에 의해 심어진 평등 의식이 현실 세계에서 실현되려면 사회 환경이 변화될 필요가 있었고 평등한 개인의 존엄에 대한 의식이 더욱 숙성되어야만 했다. 의식이 숙성되기 위해서는 씨앗이 필요하고 이 씨앗은 기독교에 의해 뿌려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시대정신 즉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의지에 의하면 우리의 삶은 다양한 욕망과 이성 사이의 갈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세 암흑기에서 기독교의 잠재력이 향상된다. 평등과 내면세계의 확장으로 존엄한 인간을 위한 전환기를 맞는다. 중세 후반기에 비로소 성장하는 평등의 정신, 즉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기획하고 성취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성장해 간다. 다른 이들도 나처럼 자율적으로 삶을 꾸려나갈 권리가 있으며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개인의 탄생과 더불어 온전하고 자유로운 삶의 발견이 가능하며 개인의 이상과 꿈이 존중받는 방식으로 삶을 영위할 권리가 함께할 때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으며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     중세라는 천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르네상스는 비로소 세계와 인간이 발견되는 계기가 된다. 암흑에서 빛으로 종교와 미신에서 이성과 과학으로 체제에 종속된 인간에서 자유로운 개인으로 전환되는 신호탄을 르네상스가 쏘아 올렸다. 인간은 이제 내적인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게 된다.     인간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끌어나갈 때 찾아오는 인간의 존엄과 행복이 진정 인간다움이다. 이처럼 중세 후반에 시작된 내면세계에 관한 관심이 르네상스 시대로 이어지며 자아를 가진 개인이라는 존재로 확장된다. 결국 인간다움은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기 내부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스스로 가꾸어 나가는 것이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 (Pico Della Mirandola, Giovanni)가 1486년에 쓴 ‘인간의 존엄에 대해’ 중 “르네상스 맨, 너에게는 어떤 한계도 없으며 오직 너만이 자신을 위해 자연의 한계를 정할 뿐이다. 너는 너를 세계의 중심에 놓으며 거기서 네 뜻대로 세계를 둘러보고 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너는 영예롭게 지명된 재판관으로서 스스로 틀을 짜고 제작하는 존재다. 너는 네가 원하는 모습으로 너 자신을 조각하면 된다.”라고 썼다. 르네상스의 확산과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 공통으로 떠오른 화두는 개인주의, 개인의 자율, 개인의 권리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탄생한 이성은 근대에 개인이 탄생하면서 권위주의를 대체해 모든 이들이 자유를 누리면서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과학을 발전시켜 사람의 수명을 연장하고 이전보다 더욱 윤택한 삶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과 산업혁명은 삶의 질을 높이지만 하층민은 노동에 시달리거나 빈곤에 내몰리게 된다. 지식층은 이성에 대한 회의감에 빠진다. 니체(1844~1900)는 ‘인간이란 자기 안의 색채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며 개인의 고유한 틀 내에서 자기를 실현해 나가는 존재다.’라고 한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숨결 온기 숨결 온기 평등 의식 자율 개인

2024-10-21

[뉴스 포커스] 한 올드타이머의 걱정

“20~30년 후에도 한인 커뮤니티가 존재할까요?” 오랜만에 만난 올드타이머 한 분이 자문하듯 질문을 던졌다. “글쎄요. 남아있지 않을까요.” 별 생각 없이 답은 했지만 계속 여운이 남았다. 한인 은행 이사를 하는 등 오랜 세월 한인 커뮤니티와 함께 한 분의 말이라 그냥 흘려 들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 생각은 어떤지 되물었다. “안타깝지만 쉽지 않을 거라고 봐요.” 지금 상태가 지속한다면 이름은 남겠지만 존재감은 훨씬 약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한인 사회는 주요 소수계 커뮤니티의 하나로 간주된다. 인구는 물론 정치력, 경제적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결과다. 그 덕에  한인 사회는 소수계 정책의 우선 고려 대상 그룹에 포함되어 이런저런 혜택을 받는다. 소수계 가운데는 정치적 발언권도 꽤 있는 편이다. 그런데 커뮤니티의 존재감이 약해진다는 것은 이런 위상도 함께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혜택도 발언권도 줄어드는 것이다.       그의 걱정에는 근거가 있다. 커뮤니티의 구심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금의 한인 사회는 동력이 많이 떨어진 모습이다. 과거에는 다소 거칠고 구성원간 갈등을 빚더라도 무엇인가 만들어보려는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일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현상의 원인 중 하나가 세대교체기로의 진입이 아닐까 싶다. 각 분야에서 1세들의 은퇴가 늘면서 점차 1.5세, 2세들이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서는 부모 세대가 가졌던 강한 커뮤니티 의식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한인’이라는 유대감이 1세들보다 약하기 때문이다. 한인 단체들의 활동력이 과거에 비해 많이 약해진 것이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그렇다고 차세대 모임이 활발한 것도 아니다.     신규 유입 인구 감소도 악조건의 하나다. 한국에서 새로 이민 오는 사람이 줄고 있다. 한인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한 1980~90년대의 한인 영주권 취득자는 연간 3만 명이 넘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평균 2만 명 선으로 줄었고, 요즘은 1만5000명 수준으로 더 감소했다. 이민의 형태도 가족 초청보다 취업이민이 더 많다. 취업이민자는 지역적, 직업적 분산 현상이 특징이다. 이들에게 커뮤니티 의식을 주문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다.       한인 커뮤니티의 미래를 얘기할 때 흔히 비교되는 것이 일본 커뮤니티다. 우리와 이민 역사가 비슷하고 무엇보다 ‘모국으로부터 유입 인구 감소’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반면, 중국이나 베트남, 필리핀, 인도 등 다른 아시아계 커뮤니티는 유입 인구 등에서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 이로 인해 한 세대 정도 더 지나면 한인 사회도 지금의 일본 커뮤니티처럼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름은 남아 있지만 존재감은 크지 않은 커뮤니티로 말이다.     한인 이민 역사가 120년이 넘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커뮤니티 형성은 인구가 늘기 시작한 70년대 말 무렵 부터가 아닐까 싶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인 커뮤니티의 역사는 이제 두 세대가량이 지난 셈이다.     이제 한인 커뮤니티도 갈림길에 서 있는 듯하다.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할 것이냐, 아니면 시간의 흐름 속에 퇴화할 것이냐다. 하지만 기자가 만났던 올드타이머처럼 대부분이 퇴화보다는 진화를 원한다. 숫자는 적어도, 신규 유입 인구가 없어도 한인 사회가 영향력 있는 커뮤니티로 남길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다음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거저 얻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다.  지금부터 밑그림을 그리고 준비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과연 이 일에 누가 앞장설 것인가?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만, 선뜻 나서는 주체가 없다는 것이 우리의 고민이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올드타이머 걱정 한인 커뮤니티 커뮤니티 의식 아시아계 커뮤니티

2024-06-20

[잠망경] 네고

‘네고’는 참 이상한 말이다. ‘negotiation’의 처음 두 음절만 남기고 나머지는 싹 삭제된 콩글리시다. 미국인들이 ‘deal’이라는 일상어를 쓰는 데 반하여 우리는 굳이 라틴어에서 유래한 유식한 단어를 쓴다.   ‘니고시에이션’이라 발음하는 이 어려운 말을 사전은 ‘협상, 교섭, 절충, 협의’ 따위의 한자어로 육중하게 풀이한다. 물건값을 깎으려고 흥정하는 장면이 이렇게 무겁게 느껴질 수가 없다. 클린네고, 케이블네고, 先네고, 네고王 같은 잡탕 어휘가 언어학자들을 골치 아프게 한다.     남들과 마음을 절충하는 과정을 그룹테러피의 주제로 삼는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심리적인 ‘deal’, 딜, 거래(去來)를 해야한다는 야무진 의견이 나온다. 나는 그 말에 집중한다. 거래는 갈 去, 올 來, 가고 온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말을 듣는 순간 ‘금전 거래’가 머릿속에 얼핏 떠오른다.   상거래(商去來)만 거래가 아니다. 사전에는 ‘주고받음, 사고팖’ 외에도 ‘친분관계를 이루기 위하여 오고 감’이라 나와 있다. 서로 낯이 선 타인들 사이에 친분이 오고 가는 신기한 현상은 둘 앞에 가로 놓인 강을 건너는 튼튼한 다리의 쌍방통행을 전제로 한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와 딜이 깨지는 경우는 일방통행이 이유일 때가 많다.   당신과 내가 무심코 나누는 대화의 바닥에 네고 의식이 깔린다. 더 나아가서, 비언어적 의사소통에도 모종의 딜이 숨어있다. 동물들, 이를테면 두 강아지 사이에 순식간에 네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심지어 벽에 못을 박을 때조차 못, 장도리, 그리고 못을 때리는 힘 사이에 적절한 네고가 이루어져야 한다니까.   ‘deal’은 전인도유럽어에서 유래한 고대영어로 ‘나누다, 분배하다’라는 뜻이었다. 카지노 딜러가 노름꾼 앞으로 카드를 척척 나눠주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가. 이 짤막한 말은 당신이 믿기 힘들겠지만 14세기에 성교한다는 뜻으로도 쓰였다가 15세기에 들어서서 누구를 ‘대한다’는 일반적인 의미가 됐다.   우리는 누구나 남을 대한다. 대면(對面), 대화(對話), 또는 대결(對決)하면서. 1960년도 중반에 시작하여 일상어가 된 ‘big deal’은 우리말로도 그냥 ‘빅딜’이라 하지.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대인(對人)관계가 좋아야 빅딜이 자주 일어나듯이 사람이 먼저고 돈이 나중이다.   그룹테러피에서 좀 힘이 들 때가 있다. 유물론에서 유심론으로 화제 분위기를 바꾸려는 시도 때문이다. 어느새 나는 부득이 물건값을 깎는 차원을 벗어나서 사람이 사람과 소통하는 심리적 과정에 대하여 말한다. 그룹멤버들의 반응이 줄어들고 나는 무슨 강연을 하는 기분이 든다.   ‘negotiation, 네고’의 첫소리 ‘neg’는 ‘아니’라는 뜻. ‘negative’의 첫소리와 같다. (neg=not) 이 말은 전인도유럽어에서 ‘쉽지 않다, 한가롭지 않다’는 의미였단다. 세상 어떤 비즈니스가 그리 호락호락하게 쉽거나 한가로울까나.   왜 네고라는 말을 끄집어냈나 하는 질문이 생긴다. 하다못해 ‘compromise, 타협’이라는 영국식 컨셉도 있지 않은가. 나중에 슬쩍 그 이유가 떠오른다. 한국말에 자주 나오는 말이기 때문에 머리에 떠올랐던 것이다.   ‘타협’은 어딘지 꼰대스러운 데가 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유물론적 사고방식과 한국식 도전의식에 걸맞는 태도가 아닌 것 같다. 시대정신과 단어선택 사이에 네고가 가능하냐고 자신에게 물어본다. 얼른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네고 negotiation 네고 선네고 네고왕 네고 의식

2024-05-28

교통혼잡료 시행 앞두고 보완책 급급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TA)가 다음달 30일 교통혼잡료 시행을 앞두고 보완책을 잇달아 공개하는 등 현재진행중인 소송에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공고히 하고 있다.   재노 리버 MTA 회장은 지난 12일 ABC7과의 인터뷰를 통해 교통혼잡료와 관련해 얽혀있는 최소 5건의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MTA가 예정하고 있는 인프라 확충과 관련한 작업을 끝낼 수 없다며 “많은 돈이 얽혀 플랜 B는 없다”고 강조했다.   다음달 30일 시작되는 교통혼잡료로 인해 기대되는 예상 세수는 연간 10억 달러에 달한다. MTA는 이를 통해 채권을 발행해 150억 달러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장애인 접근 가능성을 높인 전철역 확충 ▶2애비뉴 전철의 할렘 확장 ▶전기버스 구매 등이다.     현재 MTA는 ▶뉴저지주정부 ▶교사노동조합(UFT) ▶뉴욕시의회 보수성향 의원모임인 ‘커먼센스코커스’ ▶라클랜드카운티 ▶롱아일랜드 헴스테드타운 등이 제기한 소송을 진행중이다.     연방고속도로청(FHWA)의 환경영향평가가 부적절하다는 뉴저지주의 주장과 관련해서 연방정부와 MTA는 이를 거부했다. 지난달 뉴저지주서 심리가 열렸고, 계류중인 여러 소송중 일부는 이달 17일 심리가 열린다. 결과는 다음달 30일 교통혼잡료 시행 예정일 전에는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MTA는 비판 여론을 의식, 보완책도 마련중이다.   우선 오렌지카운티 및 라클랜드카운티 주민들은 메트로노스 화이트플레인스 차고에 주차 시 25% 할인을 받는다. 허드슨강 횡단 버스 및 페리의 월정 탑승권은 베테란스데이까지 시행되는 파일럿 프로그램에 의해 할인된다.   오렌지카운티 및 라클랜드카운티의 메트로노스 승객을 위한 그랜드센트럴행 허드슨라인은 로어허드슨밸리 페리의 주말 운행을 제공한다.   또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오가는 6개 익스프레스 버스 노선이 확대된다. 앞서 교통혼잡료 시행보다 이들 노선의 확충이 선행돼야 승용차 이용자들이 버스를 탈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강민혜 기자 [email protected]교통혼잡료 보완책 교통혼잡료 시행 의식 보완책 보완책 급급

2024-05-14

[문예 마당] 1.5도 마지노선

  매주 토요일 새벽이면 바다에 나갈 채비를 서두른다. 물 한잔을 마시고 사과와 바나나를 챙긴다. 두어 시간 모래 위를 걸어 다니려면 땅에서 걷는 것 보다 두 배의 힘이 필요하다. 한 주가 다르게 배구공이 파도에 휩쓸려 나갈 우려가 들 만큼, 모래사장의 폭이 아주 좁아지고 있다.   그래선가? 공놀이하는 그룹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도 해수면 높낮이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을까 싶다. 바닷가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가 하면 운동을 못 하게 될까 봐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여전히 걷고 뛰면서 젊음의 기량을 뽐내는 것은 원초적인 특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이 특권이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청지기의 특권을 남용했고 돌보는 마음을 잃어버린 탓이 아닌가 한다.   해수면 상승이 빈말이 아니다. 모래사장 가운데에 놓여있던 쓰레기통들이 파도에 휩쓸려 나가는 일들이 빈번해져 아예 걷어가 버렸다. 배구장 네트에 가까이 넘어들어온 바닷물이 저러다가 때가 되면 빠져나가겠지 하는 느긋함 또한 사람들의 마음인 것 같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그런데 빠져나갈 기미가 없이 점점 쓰레기통이 줄어들며 나머지는 해변 내려오는 입구 쪽으로 옮겨놔 버렸다. 주워 모은 쓰레기가 무거워지면 한 블록 이상을 걸어가서 버려야 한다. 크고 튼튼한 바스켓을 사용하는 것도 봉지보다는 무겁지만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편리함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어느 누가 귀찮은 짓을 자청하겠는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쓰레기를 줍기 위해 일주에 한 날은 새벽잠을 설치며 청소부 여자를 따라 운전을 해주는 한 남자는 해수면 범람으로 모래사장 폭이 좁아져 가는 현실을, 그윽한 눈빛으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바로 저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거든. 바다야~ 바다야~ 빨리빨리 덮어라~.” 헥, 무슨 심보람 “운동하고 산책하는 저 사람들은 어떡하라고.” “어떡하긴 인간들이 바다에 가까이 해봐야 쓰레기밖에 더 버려? 먼발치에서 내려다보는 게 바다를 위해서 더 좋은 거야.” “내 할 일이 없어지는 데 좋긴 뭐가 좋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내가 이렇게 따라다니는 거 좋아서 하는 줄 알아? 남의 쓰레기 치우고 다니느라 강산이 두 번 변했어.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를 계산 좀 하고나 살지.”   해수면 상승을 보고 쾌재를 부르는 그 회심의 미소에는 이유가 있다. 바닷물이 모래밭을 덮으면 여자는 청소부 노릇을 그만둘 것이고 남자는 제대로 새벽잠을 자게 된다. 남자의 각본이 임박해진 현실을 예고하듯 기후 학자들도 2050년쯤이면 캘리포니아 반경 1200마일이 바닷물에 잠길 거라는 예상과 사막화를 경고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도 기후난민 대이동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상이 그냥 기우로 끝나기를 숨죽여 기다리는 일밖에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작은 일들뿐이다. 그야말로 쓰레기를 주우며 작은 일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이루어질 수 있어서 행복을 누리는 것도 좋겠지만 자기만족과 행복감에 담긴 의미가 다르다.   때로는 만족스럽지 않아도 행복해질 수가 있다. 조건이 붙는 행복은 자기만족을 위해 원하는 것을 구하고 채우는 과정을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문제의 발단이 될 때가 있는데 기후를 상승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하며 온실효과를 가중해 지구 공동체를 희생양으로 삼아 자기만족을 꾀하는 행복은 행복이 아니다. 누구나가 이것을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좋은 일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소망이다.   나는 나에게 주워진 특권을 많이 포기했다. 아니, 지구와 자연에 반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지구와 자연이 치유될 때 우리의 후손들 또한 고통을 겪지 않고 안전한 환경 속에서 그들의 삶을 지속시키도록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조건이 붙을 때 그것이 진정한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자기만족에 갇혀있게 되면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이기심의 고질병을 앓게 된다. 지구 공동체가 피폐해지지 않도록 삶의 도덕적인 측면을 고려할 수 있는 자비심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마음을 지켜내지 못하면 우리의 삶과 지구는 더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남태평양의 가난한 섬나라들은 해수면 상승 때문에 섬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주어진 특권을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서 쓰는 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시대의 요청에 귀 막고 살기에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1. 5도의 마지노선을 꼭 붙잡아 두려면 자기만족을 반납하는 용기와 측은지심이 최선일 것이다. 최경애 / 수필가문예 마당 마지노선 수필 지구 공동체 특권 의식 기후난민 대이동

2024-05-02

몸, 마음 지친 3040 세대…“모임 만들어 달라”

현재 30·40세대는 1975년생~1994년생을 일컫는다. 이들은 사회를 지탱하는 허리 세대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가정과 사회에서 가장 활발하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연령대다. 최근 목회데이터연구소와 지앤컴리서치는 기독교계 내 30~49세 사이 교인들의 신앙 의식을 조사했다. 30·40세대가 교계에서 중심을 잡아야 교회 역시 흔들리지 않는다. 문제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의 삶과 신앙에 대한 의식들을 알아봤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3040’ 세대임에도 정작 그들의 삶은 생기가 없다.   한마디로 삶의 만족도가 연령층 중에 가장 낮다는 의미다.   지앤컴리서치측이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각 연령층에 삶의 만족도를 물었더니 40대(37%)와 30대(41%)가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60세 이상(52%), 19~29세·50대(각각 43%)보다 낮은 응답 비율이다. 그만큼 30·40세대의 삶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들의 삶이 왜 녹록지 않은지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 키워드만 뽑아보면 직장과 육아가 원인이다.   일상생활에서의 스트레스 원인을 물었더니 직장에 다니는 3040 세대 중 무려 68%가 ‘직장 또는 사회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친다’고 답했다.   기혼자들의 경우 57%는 ‘가사 노동 및 육아로 몸과 마음이 지친다’고 응답했다. 특히 여성 5명 중 3명(61%)은 육아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목회데이터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30·40세대 응답자 3명 중 1명꼴로 직장 생활(38%)과 육아(34%)가 신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며 “사회와 일상에서 오는 피로 등의 문제가 결국 교회 내 봉사 활동 소홀, 온라인 예배 전환, 신앙 관심 저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특히 30·40세대의 신앙 의식이 약화한 계기는 팬데믹이었다.   ‘코로나 이전보다 신앙적으로 약화했다’는 응답은 30·40세대(33%)가 가장 많았다. 이어 20대(31%), 50·60세대(26%) 순이다.   이러한 응답은 교회에 대한 불만으로도 이어진다.   현재 출석 중인 교회에 대한 만족도를 물은 결과 30·40세대 중 교회에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은 59%였다. 이는 50·60세대(71%)와 20대 교인들의 만족도(61%)보다 낮다.   그들에게 불만족의 이유(중복응답 가능)를 물었다. 30·40세대는 사회적으로 중심에 있다. 때문에 시대를 읽는 눈이 빠를 수 있다.   30·40세대 응답자의 30%가 출석교회가 ‘시대적 흐름을 좇아가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어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적인 태도(28%), 교회 지도자들의 언행 불일치(26%), 30·40세대에 대한 교회의 무관심(26%) 등을 꼽았다.   스트레스가 많은 30·40세대는 신앙생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주일 예배 외 다른 활동을 하는지를 물은 결과, 30·40세대의 신앙적 활동이 가장 적었다.   예배 외에는 활동이 없다고 답한 30·40세대는 65%로 나타났다. 무려 10명 중 7명이 해당하는 셈이다. 게다가 이 역시 연령층 중에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교회 내에서 예배 외에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시간이 없어서(30%)’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대신 권유를 받으면 참여할 의향을 내비쳤다. 30·40세대 교인 중 절반 이상(67%)이 ‘하겠다(18%)’ 또는 ‘생각해보겠다(49%)’고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목회데이터연구소는 “30·40세대가 교회 내에서 활동하지 않는 것은 한마디로 지치고, 피곤하고, 귀찮다는 것”이라며 “대신 봉사를 요청할 시 수락 의향이 있다는 점은 얼마든지 활동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30·40세대는 교회 내에서 자신들을 위한 모임이 구성되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30·40세대는 ‘부부 및 육아를 위한 모임(80%)’ ‘직장인을 위한 모임(70%)’ 등이 매우 또는 약간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또, 조사에 참여한 30·40세대 중 약 60%는 관련 모임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30·40세대는 신앙 교육보다 그 외 교육을 더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측은 자녀에 대한 교육 우선순위를 물었다.   조사 결과 응답자들은 인성 교육(63%)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지성 교육(39%), 진로 교육(25%), 신앙 교육(17%) 등의 순이다.   자녀에 대한 신앙 교육을 제대로 못 하는 이유에 관해 물었다.   그 결과(중복 응답 가능) 시간이 없어서(47%)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이어 신앙 교육의 구체적인 방법을 몰라서(38%), 부모인 내가 신앙이 확고하지 않아서(37%), 자녀의 학업이 우선이라서(29%)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이와 관련, 보고서에는 “30·40세대는 사회적으로 가장 바쁘기도 하지만 막상 신앙 교육을 하려 해도 방법을 모르고 있다”며 “삶 속에서 밀착하여 가르쳐야 하는 신앙 교육은 여러 교육 순위 중 가장 낮다는 점이 주목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자녀의 신앙 교육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을 물었다.   30·40세대는 ‘자녀와 함께하는 신앙 프로그램(57%)’이 필요하다고 꼽았다. 이어 부모 역할 교육(44%), 자녀와 대화법(42%), 부부 관계 및 대화법(26%), 가정 예배드리는 법(26%), 자녀 역할 교육(2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녀에게 신앙을 주로 교육할 주체는 역시 ‘부모(68%)’를 꼽았다. 이어 교회학교 교사(18%), 교회학교 사역자(9%), 담임목사(4%) 등의 순이다.   한편, 이번 조사는 지난해 9월 8~12일 사이에 개신교인 700명(30~49세)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신뢰도는 95%(오차범위 ±3.7%p)다. 장열 기자 [email protected]마음 신앙 신앙 교육 신앙적 활동 신앙 의식

2024-04-08

이재명 대표 피습, 수술 후 의식 회복…서울대서 혈관 재건술 받아

2일(한국시간) 더불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부산을 방문했다가 목을 피습당한 가운데, 체포된 피의자는 이 대표를 죽이려 했다는 살인의지를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표는 서울대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고 의식을 회복한 상태다.   부산경찰청 특별수사본부에 따르면 충남 거주 김모(67)씨는 2일 오전 10시29분쯤  부산 강서구 대항 전망대 시찰을 마치고 이동 중인 이재명 대표에게 다가가 이 대표의 왼쪽 목을 흉기로 찌른 혐의로 체포됐다. 김씨는 범행 직후 이 대표 주변에 있던 더불어민주당 당직자와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 대표는 피습 직후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된 뒤 내경정맥 혈관 재건술을 2시간 가까이 받았다. 이 대표는 현재(한국시간 3일 오전 9시) 의식을 회복한 상태라고 한다. 의료진은 피습 부위가 생명에 치명적인 경동맥은 아니라고 전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범행 당시 상의 재킷에 길이 약 7인치(18cm) 흉기를 숨기고 있다가 꺼내 이 대표를 찌른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지난해 인터넷에서 흉기를 구입했다고 한다.     김씨는 충남 아산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공인중개사로 확인됐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이 대표를 죽이려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범행동기를 수사 중인 경찰은 김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한다는 방침이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서울대서 이재명 이재명 대표 혈관 재건술 의식 회복

2024-01-02

"뿌리 의식의 출발은 효"

“차세대 청소년에게 뿌리 의식을 심어주는 출발점은 바로 효 정신을 일깨우는 겁니다.”   올해로 10회째 ‘효 글짓기, 그림 공모전’을 개최하는 효사랑선교회(대표 김영찬 목사) 측은 오는 31일 응모작 접수 마감을 앞두고 한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했다.   참가 대상은 전국의 K~12학년 학생 선착순 100명이다. 올해 공모전 주제는 글과 그림 모두 ‘나의 아빠(엄마)를 하나님께 소개한다면(How Would you introduce your father or mother to God)’이다.   김 대표는 “공모전의 목적은 청소년이 스스로가 누구인지 깨닫고 바른 가치관을 갖고 성장하는 걸 돕는 것”이라며 “부모 대신 조부모를 소개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글짓기 한글 작품 심사는 강성예 시인이, 영어 작품 심사는 민유경 작가가 각각 맡는다. 민 작가는 “전에도 심사를 했는데 수준이 매우 뛰어나다”고 귀띔했다.   그림 심사를 맡은 주아라 뉴아트 아카데미 원장은 “그림 주제로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창의력을 발휘한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시상 대상은 대상 2명(각 부문 1명, 상금 500달러), 최우수상 4명(각 부문 2명, 300달러), 우수상 6명(각 부문 3명, 200달러), 헤이븐상(11학년 3명) 등이다. 효사랑선교회 부대표인 남승우 목사는 “헤이븐상 수상자에겐 대학 진학 무료 컨설팅 이 제공된다”고 밝혔다.   참가자 전원에겐 한인 정치인이 수여하는 상장을 준다.   대회 참가비는 20달러다. 수신인을 Hyosarangus로 적은 수표를 부에나파크의 효사랑선교회(7342 Orangethorpe Ave, #B113)로 우송하면 된다.   시상식은 내달 22일 오후 2시 부에나파크의 하나교회에서 열릴 예정이다. 타주 학생 입상자의 상장과 상금은 우편으로 보내준다.   자세한 내용은 효사랑선교회 웹사이트(hyosarangusa.org)에서 찾아볼 수 있다. QR코드를 이용하면 온라인 참가 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다. 문의는 전화(714-670-8004)로 하면 된다. 글·사진=임상환 기자뿌리 의식 뿌리 의식 효사랑선교회 웹사이트 참가자 전원

2023-03-14

한인 남성, 70대 친모 돌로 가격

한인 남성이 친모를 돌로 내리쳐 중상을 입힌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뉴저지주 이브솀 경찰국은 친모의 머리를 조경석(landscaping rock)으로 내리쳐 심각한 상해를 입힌 로렌스 김(43)씨를 체포했다고 17일 밝혔다.     경찰은 전날인 지난 16일 폭행 신고를 받고 출동한 말턴 지역 한 주택에서 머리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채 의식을 잃고 쓰러진 75세 여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수사 결과 피해자의 상해는 신체적 폭행에 의한 부상임을 확인했으며 조경석에게 맞은 것으로 보인다”며 “용의자는 피해자의 친아들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 여성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고 위중하지만 안정적인 상태로 알려졌다.     경찰은 용의자를 행방을 추적한 결과, 사건 현장에서 차로 1시간 20분가량 북쪽으로 떨어진 펜실베이니아주 브린 모어 지역에 있는 것으로 확인하고는 그곳에서 그를 체포했다.     현재 김씨는 2급 가중폭행과 불법 무기 소지 및 불법적인 목적을 위한 무기 소지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은 아직 김씨의 범행 동기를 파악하지 못했다며 피해자인 친모가 의식을 회복하면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현재 김씨는 2만5000달러 보석금이 책정된 채 펜실베이니아주 지역 구치소에 수감 중이며 곧 뉴저지주로 인도될 예정이다.   장수아 기자친모 한인 한인 남성 친모가 의식 친모 머리

2023-01-18

[우리말 바루기] ‘재현’과 ‘재연’

1795년 정조는 창덕궁을 출발해 수원 화성으로 향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한 을묘원행이다. 혜경궁 홍씨의 회갑과 정조 재위 20년을 맞아 최대 규모의 능행차였다. 당시 모습을 보여 주는 행사가 열렸다.   이를 두고 “이틀간의 정조 능행차 재현에 3000여 명과 말 370여 마리 동원” “‘원행을묘정리의궤’를 토대로 해 정조 능행차를 옛 모습 그대로 재연” 등 ‘재현’과 ‘재연’을 혼용하고 있다. 어떤 단어를 쓰는 게 적절할까? 당시 왕실 행렬을 원형대로 보여 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므로 ‘재현’이란 말이 어울린다.   ‘재현(再現)’은 다시 나타나는 것이나 다시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정조가 어머니께 미음 다반을 올리는 의식, 장안문 입성 전 갑옷으로 환복하는 모습도 ‘재현’이라고 볼 수 있다. ‘재연(再演)’은 한 번 했던 행위나 일을 되풀이함을 이른다. 능행차 행사 도중 관계자가 낙마한 일에 대해 “이런 아찔한 사태가 재연되지 않게 주의하겠다”고 말할 수 있다.   “삼국시대 마을을 재현해 놓은 박물관”처럼 모습·상황을 그대로 다시 보여 줄 때는 ‘재현’, “현장검증에 나선 피의자가 범행을 재연했다”와 같이 행위·일을 반복할 때는 ‘재연’을 사용하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재현 재연 아버지 사도세자 삼국시대 마을 의식 장안문

2023-01-16

“120년 이민사 보존하는 역사 의식 중요” 장태한 UCR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장

“지금까지 한인사회가 발전할 수 있던 건 희생과 고난을 감수한 이민 선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노력을 돌아보고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UC리버사이드(UCR) 산하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장인 장태한(사진) 박사는 “초창기 이민 선조들은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받았고 2등 시민 취급을 받았다”는 말로 미주 한인 초기 이민사를 설명했다.     장 박사는 “한인들이 주류사회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건 2차 세계대전 당시 김영옥 대령을 포함해 1000여명의 한인 2세들이 미군에 입대해 미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운 후부터”라며 “그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주 한인사는 여전히 한인들에게는 낯선 기록이다. 장 박사가 최초로 발견한 리버사이드 파차파 캠프에 대한 역사와 기록도 오히려 주류사회에서 더 높은 관심을 두고 있다.     내년부터 뉴욕, 뉴저지, 워싱턴DC, 시카고, 샌프란시스코를 순회하는 파차파 캠프 전시회 진행을 준비할 예정이라는 장 박사는 “한인들은 여전히 경제 중심의 실용적인 교육만 중시하고 있지만,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는 인문학 교육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며 “120년을 맞은 한인사회가 이제는 이민 역사를 가르치는데 좀 더 관심을 갖길 바란다”고 전했다.   장연화 기자이민사 보존 역사 의식 미주 한인사 이민 선조들

2023-01-01

[기고] ‘북한은 적’ 안보적 현실이다

얼마 전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적’으로 규정하는 표현이 6년 만에 국방백서에서 부활한다는 한국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2016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에 대한 적성 용어나 구호는 사라진 바 있다. 주적 개념은 지난 1994년 남북특사교환 실무접촉에서 북측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을 계기로 1995년 국방백서에 처음 명기돼 2000년까지 유지됐다.     특히 전 정부 5년간 북한의 핵·미사일이 고도화하는 와중에도 평화 지상주의가 판치며 국민의 안보 의식을 혼란스럽게 했던 사실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2년마다 발간되는 국방백서는 그동안 보수와 진보 진영의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국가 안보 전략의 핵심인 주적 또는 적 개념은 분명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마땅하지만 정권의 색깔에 따라 주적 개념은 오락가락 국민을 혼란스럽게 한 건 사실이다.   정부 소식통은 “핵과 미사일로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이 우리의 최대 위협이라는 사실을 장병들이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2022년 국방백서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주적’이라는 표현 말고 ‘적’이란 표현으로 사용될 모양이다. 현재 휴전상태인 남과 북은 적대관계로 대치하고 있다. 적과 주적 개념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왜 구별해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주적은 군에서 주로 쓰이는 말로 대한민국의 자유와 이념, 그리고 주권에 대해서 위협을 가할 의도와 능력을 갖춘 개인 또는 단체를 의미한다. 지난 정부는 ‘주권·국토·국민·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는 문구로 대체했다. 대상이 누구라는 말도 없이 말이다. 평화에 몰두하는 와중에 안보 의식은 실종되었고 정부가 평화 지상주의에 취한 나머지 한·미 군사훈련마저 중단해 북한의 도발에 대한 군사적 대응 역량을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날 우리 군은 물론 국민까지 안보 의식이 통째로 흔들리는 혼란기를 경험했다. 2017년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을 마친 북한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위장 평화 공세에 나섰다. 그때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맹신하고 남북 정상 및 북·미 정상회담에 치중했고 심지어 종전선언까지 부르짖었다.     몇 년 전 한국 청소년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만약 한국전쟁이 또 일어나면 30%가 도망가거나 피하겠다는 통계가 있었다. 또 육군사관학교는 필수 과목에서 ‘6·25전쟁사’를 빼기도 했다. 급기야 민주노총은 전면 파업을 독려하면서 공공연히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정치 투쟁을 벌이며 이를 노조운동이라 했다. 안보 의식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이제 적의 개념을 분명히 한 국방백서 발간을 계기로 정부는 안보 전략을 가다듬어 정상화하고, 국민에게 안보 경각심을 일깨워줘야 한다.     군의 정신교육엔 전투를 목적으로 하고 전투는 승리를 목적으로 한다. 이를 망각하고 통상적인 군사훈련도 중단 아니면 폐쇄하고. 싸우기 싫어하는 착한 군대를 만들었다. 평화 무드에 젖어 있을 때 북한은 수없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남은 핵실험마저 마친 후 김정은의 가공할 민족적 실수를 우리는 결코 맥놓고 바라만 봐선 안 될 일이다.     지난날 대북한 정책이 북한의 핵 개발을 가속화 시켰고 우리 국방력을 약화시켰다. 모름지기 국토에 군사분계선이 있는 한 우리의 적은 북한 정권이고 북한군이다. 이게 바로 당면한 현실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북한 안보 안보 의식 국가 안보 평화 지상주의가

2022-12-20

[김형석의 100년 산책] 종교의 위기, 현대인은 어떤 신앙을 원하는가

반세기 전이기는 하지만 두 차례 인도를 방문하였다. 첫 느낌이 후진국가라는 인상이었다. 국가가 국민에게 베풀어야 하는 기본교육, 절대빈곤 극복, 의료혜택 보급을 위한 시설, 모두가 구비되지 못했다. 식구가 많은 가정의 빈곤한 모습을 대도시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사회학자들은 인도가 미국만한 선진국가가 되는 데는 180년의 세월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인도인도 첫째 목표는 파키스탄보다 잘사는 것이고, 다음 희망은 중국을 능가하는 데 있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한국도 개발도상국 중간단계였으니까.   무엇이 원인이었을까. 3000년 가까운 세월을 종교적 세계관의 울타리 안에서 안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세계 4대문화권 모두 원시종교를 비롯한 종교문화에서 출발했다. 인도 유럽 중동지역이 그랬다. 중국의 문화도 상고시대에는 마찬가지였다. 그 기간은 길었다. 힌두교와 불교, 유대교와 이슬람교, 기독교 등이 중세기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문학적 세계관시대를 거쳤다. 철학과 역사 문학사상의 과정을 밟았다. 그에 뒤따르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기계공학의 시대까지 창출해 냈다.    반세기 전 두 차례 인도 방문   그런데 인도는 그 어느 과정도 밟지 못했다. 인도사상을 산출시킨 우파니샤드 철학은 종교사상으로 흡수되었고 철학, 역사, 문학적인 정신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영국학자들이 인도에는 역사의식이 없었고 과학은 배척받아 왔다고 평했을 정도다. 그 대신 많은 종교를 배출했다. 종교적 세계관과 인생관이 사상·정신계의 주류를 형성해 왔다.   인도에서 가장 문화수준이 높은 뭄바이에 갔을 때였다. 관광안내를 받아 배화교 장례절차가 벌어지는 곳으로 갔다. 우거진 숲속에 설치된 장례시설이 있고, 사람이 죽으면 물과 땅을 더럽히면 안 된다고 해 시신을 시설 대에 안치한다. 독수리 까마귀들이 그 시신을 뜯어 먹고 유골은 밑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그래야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는 신앙이다.   뭄바이에는 마하트마 간디가 18년 동안 거주한 2층 건물이 보존되어 있다. 지극히 검소한 공간이다. 2층에는 간디가 직접 천을 짰던 물레가 있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사용하던 모습과 큰 차이가 없다. 대학 경제학과 출신의 안내원이 간디는 기계문명을 기피했기 때문에 손수 만든 천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영국의 경제적 진출을 막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느냐고 물으니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수도 뉴델리에 가면 간디의 석조무덤이 있는데 그 돌들 모두 기계를 쓰지 않고 손으로 갈아 만들었다는 설명을 추가하였다. 수많은 종교시설이 있고 어디에 가든지 종교적 의식과 모습을 보게 된다. 소떼가 도시 거리를 다녀도 제재하지 않았다. 신앙의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내가 인도를 다녀온 얼마 후에 종교폭동이 일어났다. 이슬람 성전 안에 안치되어 있던 마호메트의 머리카락이 없어졌는데 힌두교도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 사건이 확대되면서 두 종교인 간의 싸움이 전쟁 상태로 확대되었다. 사상자 600여 명이 생겼다는 보도였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거기에 마호메트의 머리카락이 보존되었을 리도 없고 그것 때문에 폭동이 발생했다면 그런 종교는 없는 편만 못하다. 중동지역을 다녀보았을 때는 더 심각한 문제를 발견했다. 종교의 영향이 사회문제를 넘어 국가와 국제적 문제까지 좌우하고 있었다. 종교국가들이기 때문이다. 남존여비 전통과 일부다처제는 코란경을 믿는 동안에는 지속될 것이다.   사상가들은 공산주의는 100년으로 끝났으나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분규는 200~300년 계속될 것으로 본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현대인도 같은 종교적 신앙을 수용할 수 있는가를 묻게 된다. 우리가 믿으며 공존하고 있는 불교와 기독교는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는가.   기독교의 예를 살펴보기로 하자. 종교를 잘못 받아들이게 되면 그 신앙이 인간의 가치 있는 삶을 위한 과정과 수단이 아니고, 인생의 목적인 듯이 잘못 생각하게 된다. 기독교 정신이 모든 철학이나 사상보다 인류에 희망이 되며 역사의 긍정적 가치관이 되어야 한다. 왜 현대인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가. 기독교의 정신이 휴머니즘을 탄생시켰고 인도주의 정신을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적 사유와 가치는 물론 양심과 윤리적 가치를 수용하고도 더 높은 방향으로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다. 이성적 판단이나 양심적 기준에 미달되는 종교라면 현대인들은 거부해야 하고 인생의 긍정적 의미를 종교 이외의 영역에서 찾아야 한다.   인간의 한계 넘는 구원의 약속   과학정신도 그렇다. 자연과학의 원리와 과제는 종교적 영역과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이미 법칙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사회과학의 기반과 목표는 정신적 질서와 가치를 배제할 수 없으므로 종교적 진리와 무관할 수 없다.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삶의 가치에는 공통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신과학은 삶의 가치를 위한 것이다. 그런 사회과학적 원리와 이념도 종교가 수용하면서 새로운 가치창조의 길로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는 그런 책임을 역사적으로 감당해 왔고 앞으로도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받아들인다. 기독교회가 기독교의 전부이고, 교회가 만든 교리가 인류역사의 진리와 일치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정신과 사상적 사명을 포기하거나 무관한 신앙이 된다면 기독교는 존재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교회의 수가 많고 적은 것은 문제 밖이다. 기독교가 인류의 희망이며 역사의 생명력이 될 수 있는가 함이 문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교리보다 진리이다.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구원하며 인류가 만들어 놓은 비참과 역사적 절망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 존재하며 주어지는 구원의 약속을 바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참된 신앙의 생명력이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의 100년 산책 현대인 신앙 종교적 세계관 이슬람교 기독교 종교적 의식

2022-09-16

[독자 마당] 양두구육(羊頭狗肉)

한국의 한 젊은 정치인이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말을 해 논란이 됐다. 양두구육은 양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판다는 한문 사자성어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을 말한다. 서양사람들은 좀 더 노골적이어서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말한다.   많은 동물들이 사람에 의해 수난을 당한다. 잡아 먹히기도 하고 일도 하고 등에 사람을 태우고 달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말에 의해서도 수난을 당한다. ‘여우같이 간사하다’느니 ‘곰같이 미련하다’는 등의 말에 이용이 된다.  양의 탈을 쓴 늑대라는 말도 그 중 하나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을 나쁘게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겉으로는 착한 척 하지만 실제는 악랄한 사람을 일컫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실제 양은 착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숫놈들은 짝짓기 철이 되면 머리에서 피가 나도록 서로 박치기를 하며 싸우고 때로는 이로 인해 죽기도 한다. 또 여름에는 다른 양이 시원해질까봐 일부러 몸을 맞대고 자기도 하고, 반대로 겨울에는 상대방이 따뜻해질까 싶어 떨어져 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말이나 행동이 온순한 사람을 양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반면 늑대는 사나운 사람을 비유할 때 자주 사용된다. 그러나 실제로 늑대는 착한 면이 많다고 한다. 집단생활을 하며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사냥한 성과물도 나눈다. 위계질서가 강해 질서있게 움직이고 새끼는 공동양육을 한다. 결국 동물에 관한 인식은 주관적이거나 편견에 불과한 셈이다.      만약 어떤 늑대가 평생 앙의 탈을 쓰고 양같이 온순하고 착하게 행동한다면 그것은 이미 늑대가 아니라 한마리의 양이라고 생각한다.      ‘양두구육’이라고 말한 젊은 정치인을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서효원 / LA독자 마당 양두구육 반면 늑대 공동체 의식

2022-08-01

은퇴 후에도 '목적이 있는 삶'이 행복

생업을 위한 일을 그만뒀다고 시니어의 삶이 인생의 고달픈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몸은 편한데 마음은 불편한 경우다.  앞으로의 나머지 인생, 즉 여생을 의미 있게 살 수 있기 위한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있는 6가지 방법을 알아봤다.         심리학자들은 오랜기간사람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의미 있는 목표를 어떻게 발전시켜 왔는지 연구해 왔다.   은퇴 후 목적 의식을 갖고 비영리 조직을 세우거나, 질병을 연구하거나, 어린이들에게 읽기를 가르치는 것과 같이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으로 목표를 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에서 목적 의식은 인간 진화와 함께 이전 세대보다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더 나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관련이 있는 이유다. 목적은 진화적 의미에서 볼 때 적응 방법의 한가지다. 의미 있는 목적은 개인과 인류 전체 모두가 생존하도록 돕는 방안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중요한 목적'이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 목적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이는 큰 위기이며 또한 고립의 한 증상이라고 분석한다. 고립을 극복하고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는 방법 6가지를 이 분야 저술가인 제레미 애덤 스미스씨가 제시했다.   ▶읽기   2010년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 2만6000명의 10대를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에서, 성경을 더 많이 읽는 사람이 더 강한 목적 의식을 갖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들 청소년들의 읽기 행위는 결국 목적 의식과 연관됨을 발견했다. 독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결코 알지 못할 사람과 연결해 주는 효과가 있다. 굳이 성경이 아닌 일반적인 독서도 차이를 만들어내는 결과는 비슷하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이런 경험은 의미와 목적 의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청소년들은 소설 속 등장인물을 통해 전체 인생에 대해 추론할 수 있고 생애 전체를 완전히 살지 않고도 구체적인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10대들은 다른 사람의 삶에서 목적을 보았을 때 자신의 삶에서 목적을  찾을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이는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라 시니어도 마찬가지다. 상당수의 사람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중요한 책이나 책에서 찾은 아이디어를 언급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니어가 됐음에도 인생의 목적에 대한 자기 확신이 부족해 위기라고 느낀다면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자신에게 중요할 수 있는 책을 찾아야 한다.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데 도움이 된다.     ▶상처 혹은 고통 속 치유   목적을 찾는 방법 중 하나가 살면서 체험한 고통을 들 수 있다. 다만, 자신이 이를 깨닫지 못하는 것 뿐이다.     오리건주에 거주하는 한 여성은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가족 속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지냈다. 오죽하면 자신의 존재가 실수였다고 확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16세에 대안 학교에 등록해 대학에 진학하면서 이제는 자신의 어린 시절처럼 문제가 많은 결속 가정이나 마약 오남용 가정의 아이들을 돕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경험을, 자신이 겪은 고통을 아파만 하지 않고 이를 극복한 경험 조차도 다른 사람들을 돕는 밑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다.  누구나 돌이켜 보면 나만의 끔찍한 고난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극복됐고 치유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외, 감사, 이타심   건강과 웰빙을 증진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목적 의식, 특히 경외심, 감사함, 이타심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삶을 통한 일상에서 자연 순리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면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와 연결돼 있다고 느끼며 목적 의식을 향한 정서적 안정감을 갖게 된다. 경외심 자체 만으로는 인생의 목적을 얻을 수 없다. 또한 인류 문명이나 부강한 나라, 우수한 민족의 한 부분이라고 느끼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감사와 관대함이 작동하는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동기를 가져야 한다. 이해가 쉽지 않지만, 결국 받은 것에 대한 감사는 남을 배려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자신에게 내려진 축복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을 넘어 세상에 공헌하려는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이런 공헌은 시니어라고 예외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려 주는 데 시니어는 더 능숙하다.     결국 이타주의에 도달한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의미 있고 목적이 있는 삶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는 거의 의문의 여지가 없다. 자원 봉사나 기부와 같은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 의식이 더 큰 경향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신에 대한 평가   사람들이 당신에게 감사하는 것에서도 목적을 찾을 수 있다. 예술가, 작가, 음악가는 종종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받은 감사 인사 몇 마디가 그들의 작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사실 감사를 받는 것이 목적 의식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방법으로 밝혀낸 연구는 없지만 감사가 관계를 강화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당신에 대한 직간접적인 평가를 듣고 자신의 목적 의식과 의미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일깨워야 한다. 물론 대단한 평가나 수상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커뮤니티 찾기 및 구축   많은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서 목적 의식을 찾을 수 있다. 초록이 동색이라는 말이 있듯이 좋은 의미로 끼리끼리 모인다. 봉사 단체를 조직하고 힘을 모아 일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커뮤니티다.   당초 생각했던 목적을 지켜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과 공통점이 무엇인지, 그들은 무엇을 하려는 지, 그들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봐야 한다. 긍정적인 영향인지,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들에게 내가 무엇을 줄 수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이 확신이 없다면 새로운 커뮤니티를 찾는 게 낫다. 그렇게 하면 새로운 목적이 생길 수 있다. 시니어라고 새로운 커뮤니티를 찾거나, 시도하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당신의 이야기   읽기가 목적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쓰기도 마찬가지다. 2017년에 출간된 '의미의 힘'(Power of meaning)라는 책에 따르면, 저자 에밀리 스미스는 "누구나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며 "이런 이야기는 자신의 삶,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한 도구를 제공하고 일상을 넘어서 기본적으로 경험을 이해하고 의미 있는 삶에 도움이 되는 틀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2008년 한 연구에 따르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은 사람들은 변화와 성장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으며 그곳에서 직면한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확인했고 자신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간혹 시니어가 됐음에도 항상 의욕적으로 일하고 새로운 봉사를 시작하는, 힘이 넘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인생이 빅피처 속에서 목적이 있는, 또한 의미 있는 삶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사람들이다. 이제까지 자녀를 키우느라고 은퇴를 준비하느라고 밤낮으로 뛰어다녔지만 마치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미결수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면, 늦지 않은 지금이라도 읽고, 자신을 돌아보고, 이야기를 써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장병희 기자은퇴 행복 진화적 의미 경외 감사 목적 의식

2022-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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