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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4자 타령

4월은 재미있는 달이다. 우리나라 말로는 그냥 한 해의 네 번째 달이지만 영어 이름 ‘April’은 라틴어의 낱말 ‘펼치다 (aperire)’에서 왔다. 이름처럼 4월엔 겨울에 움추렸던 동물들이 기지개를 켜고 초목들은 푸르게 모습을 바꾸기 시작한다. 모두 다 새로운  삶을 펼치는 것이다.  그래서 4월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달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4자의 발음이 한자의 ‘죽을 사’와 같다는 이유로 아파트나 병원, 호텔 엘리베이터 등에 잘 쓰지 않는다.     언제부터 이런 일이 생겼는지는 몰라도 참 엉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로 소리 나는 좋은 글자가 흔한 데도 말이다. 이를테면 ‘스승 사’,  ‘향기 좋을 사’,  ‘생각할 사’, ‘부지런할 사’, ‘ 말씀 사’, ‘춤추는 모습 사’, ‘벼슬 사’ 등이다.  이처럼 좋은 글자의 소리는 제쳐 두고 하필이면 ‘죽을 사’자만 생각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 인생의 종말을 뜻하는 운명적인 글자의 소리가   뇌리를 스쳤기 때문일 것이리라.   하지만 이 4 자는 아무 거리낌 없는 사통오달의 운명을 지닌 듯 우주, 자연, 인생, 철학, 종교, 운동 할 것 없이 온갖 분야에 활개를 치고 있다.     도교에서는 도(道), 천(天), 지(地), 및 왕(王)을 우주에 있는 가장 큰  것이란 뜻에서 ‘사대’(四大)라고 한다. 유교에서는 주역이 밝힌 네 가지 원리 곧, 원(元, 봄), 형(亨,여름), 이(利,가을), 및 정(貞,겨울)이 ‘사덕(四德)’이다. 세상이 생겨나서 다시 없어질 때 까지의 네 시기를 불교에서는 ‘사겁’(四劫)이라고 말한다.  번복하는 마음을 두지 말고, 물욕이 서로 가리게 하지 말고, 헛말로 세상을 어지럽히지 말며, 그리고 한울림을 속이지 말 것, 이 네 가지를 천도교에서는 ‘사계명’이라고 일컬으며,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듣지 말고, 말하지 말며 그리고 움직이지 말라’는 논어의 교훈을 ‘사물(四勿)’이라고 일컫는다.     어디 그뿐이랴. 삶의 기본이 되는 네 가지 계획, 곧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한 해의 계획은 봄철에, 일생의 계획은 부지런함에 또한 한 집안의 계획은 화목함에 있다는 말을 ‘사계(四計)’라고 일컫고, 품성이 군자와 같이 고결하다는 뜻에서 매화, 난초, 국화 및 대나무, 이 넷을 ‘사군자(四君子)’라고 말하며, 누구에게나 좋은 얼굴로 대하며 무사태평하게 사는 사람을 ‘사시춘풍(四時春風)’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태극기의 4괘 생각이 떠올랐다. 본디는 사괘(師卦)를 건괘와 김괘로 나눈 것이었는데 태극기의 네 괘에 건(乾), 곤(坤), 감(坎), 이(離)를 그렸고 이를  4괘라고 부른다.     아무튼 4자는 이래저래 매력 있는 숫자임이 틀림없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4월30일 취임 연설에서 “자유의 신성한 보존과 공화당 정부의 운명은 미국 국민이 실천한 삶의 경험에 최종적으로 의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유명한 말을 남겼다. 윤경중 / 목회학박사·연목회 창설위원열린광장 타령 우주 자연 초대 대통령 공화당 정부

2024-04-21

[프리즘] 우주 대항해 시대

22일 우주기업 ‘인튜이티브 머신스’의 우주선 ‘오디세우스’가 달에 착륙했다. 미국으로서는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52년 만의 달 착륙이고 민간기업으로서는 처음이다.   기업의 우주 탐사는 낯설지 않다. 스페이스X와 블루 오리진은 이미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우주로 진출하고 있다. 오디세우스가 착륙하자 빌 넬슨 연방항공우주국(NASA) 국장은 “오늘은 나사의 상업적 파트너십의 힘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날”이라고 자축했다. 새로운 형태의 우주 탐사가 성공 궤도에 올랐다는 선언이다. 나사는 우주선 등을 직접 개발하지 않고 민간 기업에 맡겨 경쟁을 유도해 적은 비용으로 속도를 내는 ‘아르테미스’ 계획을 수립해 달 탐사 프로젝트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오디세우스도 아르테미스와 연계한 ‘민간 달 탑재체 수송 서비스’(CLPS) 계획의 일부였고 나사가 1억18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아르테미스의 목표는 오디세우스의 착륙점에 들어있다. 오디세우스가 내린 곳은 물 공급원이 될 수 있는 지하 얼음이 존재하는 달 남극 근처다. 이번엔 필요한 정보를 확보하지만 다음 달에는 지하 얼음을 시추할 우주선을 보낸다.     물이 있으면 인간이 거주할 수 있다. 또 수소와 산소를 분리해 로켓 연료로 사용하면 다른 행성으로 가는 데 필요한 우주 주유소, 우주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희토류 광물과 헬륨-3 채굴 이야기도 나온다. 영화 ‘에일리언’에 등장하는 우주 광산 개발과 식민지 건설 회사인 ‘웨이랜드-우타니’ 같은 기업이 이미 문을 연 겻인지도 모른다.   나사는 2026년에 우주비행사를 달에 보내는 아르테미스 3단계에 들어가고 궁극적으로는 정기적으로 우주 함대를 보낼 계획이다. 이미 ‘파이어플라이 에어로스페이스’ 기업은 우주 배달 서비스를 목표로 나사와 협력해 세 번째 달 탐사선을 발사할 예정이다. 시간이 흐르면 2개월 이상 거주가 가능한 일종의 달 정착촌이나 달 농업, 달 경제 같은 말이 익숙해지는 때가 올 수 있다.   1960년대 달 탐사는 냉전 시기 국가 경쟁의 산물이었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은 패권 경쟁의 연장이었고 공포에 휩쓸린 측면도 있다. 핵무기가 대기권을 벗어났다 재진입하는 공간인 우주는 공포와 파괴를 연상시켰고 대중문화 속의 외계인은 온통 기괴한 외모에 가늠할 수 없는 파멸적 힘을 가진 존재로 그려졌다. 그 시대 달 착륙은 적국을 압도하는 역량과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기술 능력의 과시이기도 했다. 달은 국가의 힘이 뻗어갈 수 있는 최대치인 점이어서 어떤 의미에서 달에 갔다 오는 것만으로 충분했을 수 있다.   이제 달은 찍고 오는 점이 아니라 활동 공간으로 넓어지고 있다. 당장은 기술과 경제지만 정치와 생활, 문화가 확장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팝아티스트 제프 쿤스의 달 조각 125개가 오디세우스에 실려 도착함으로써 달 최초의 예술작품이 된 것은 상징적이다.       나사가 민간 기업과 손잡고 우주 진출의 새로운 역사를 연 것은 왕실이 탐험가를 후원하면서 지리의 발견과 대항해 시대가  시작된 것과 유사하다. 대항해 시대는 결국 유럽의 세계 패권 장악으로 이어졌고 최종적으론 미국의 개국으로 귀결됐다. 지금이 우주 대항해 시대의 출발점이라면 이 흐름에 올라타느냐 탈락하느냐가 오랜 시간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인도와 러시아, 일본, 이스라엘이 경쟁적으로 달 착륙에 뛰어든 이유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을 때 한국 신문의 1면 톱 제목은 '인간 달에 서다'였다. 신문 1면 톱에서 '인간 달에 살다'라는 제목을 보게 될 때가 그리 머지않을 수 있다. 안유회 / 뉴스룸 에디터·국장프리즘 대항해 우주 우주 탐사가 우주 경쟁 넬슨 연방항공우주국

2024-02-25

[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자기 홀극

일상에서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생소한 용어다. 하지만 일단 그 속뜻을 알고 나면 아주 쉽게 이해가 간다. 자석은 한쪽이 N극이면 다른 쪽은 항상 S극이다. 길이가 한 뼘쯤 되는 막대자석을 반으로 자르면 짧은 자석 두 개가 된다. 그 두 자석 모두 한쪽은 N극이고 반대쪽은 S극이다. 계속해서 반으로 나눠도 항상 한쪽은 N극이고 다른 쪽은 S극이 된다. 심지어는 N극 끝에서 조금 떼어내도 그 조각의 반대쪽 끝은 여전히 S극이다.     하지만 전기는 그렇지 않다. 양성자는 +전하만을 띄고 전자는 -전하만을 갖는다. 전기는 +와 -가 각각 독립해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마치 전기의 예처럼 자기 홀극이란 N극이든 S극이든 한쪽 극만 갖는 상상 속의 자석을 말한다.   1980년경 미국 MIT 공대 대학원생이던 앨런 구스는 왜 자석은 전기처럼 독립된 N극과 S극이 존재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빅뱅 직후 존재했던 자기 홀극이 왜 지금은 발견되지 않는지 알고 싶었다. 오랜 기간 연구를 거듭했지만, 그는 결국 자기 홀극을 발견하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좀 뚱딴지 같은 결론을 내렸다. 빅뱅 후 우주가 급팽창하게 되어 공간이 엄청나게 커지자 자기 홀극 입자가 희석되어서 눈에 띄기 힘들다는 이론이다.     쉬운 예를 들어 어느 작은 연못에 물고기가 많아서 물 반, 물고기 반이란 말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 그 연못이 태평양만큼 커지자 그 많던 물고기가 다 어디로 갔는지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앨런 구스가 우주 급팽창 이론을 처음으로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이 그의 이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우주가 급팽창하는 바람에 자기 홀극이 희석되어 찾기 불가능하다니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빅뱅 후 우주 온도가 내려가면서 상전이 현상이 생기고 거기에서 발생한 엄청난 에너지가 우주를 급팽창시켰다는 이론이 탄력을 받자 그동안 빅뱅 이론의 문제점이던 우주 지평선 문제, 우주 편평도 문제, 그리고 자기 홀극 문제까지 한꺼번에 해결되어 버렸다.     정신 나간 대학원생의 얼토당토 않은 이론인 줄 알았는데 앨런 구스의 우주 급팽창 이론은 우주의 진화 과정을 아주 잘 설명해 주었다. 지금은 빅뱅 이론과 함께 우주 급팽창 이론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최근에 일단의 한국 과학자들이 초전도체를 발견했다고 해서 난리가 났다. 지금은 세계 여러 연구소에서 검증하고 있다. 초전도체의 성격상 회의적인 시선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혹시 앨런 구스가 찾던 자기 홀극을 발견한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우주에 존재하는 힘이 4가지라고 알고 있지만, 어떤 학자들은 다섯 번째 힘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관측되지 않아서 잘 모르기는 하지만 우주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정체도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고, 블랙홀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물리학도 나올 것이다.     무엇보다도 상온 상압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는 수소 핵융합 발전과 함께 우리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다. 백여 년 전에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라고 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도 피부로 느낄 수 없는 얘기지만,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새로운 미래에의 전야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         박종진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우주 급팽창 우주 지평선 우주 온도

2024-02-09

[이 아침에] 노래가 흐르는 길

색은 빛이 만들어낸 신비스러움이요, 노래는 소리가 만드는 아름다움이다. 새벽 햇살이 어둠을 몰아내고 새들의 노랫소리에 산과 들이 꿈에서 깨어나는 아침, 새날은 기지개 켜고 일어나 새로운 전설을 꾸미기 시작한다. 아기가 자라며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부모의 사랑에 행복해 즐거운 듯 노래하고 춤을 추어 보인다. 이 땅 위에 사람도 말을 하기 이전부터 노래 부르고 춤을 추었으리라.   아기가 태어나 자라는 과정은 우리 생명의 지난날들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아기의 잉태 과정부터 정자가 수억의 경쟁자를 물리쳐야 하는 생존경쟁이다. 이후 어머니 뱃속에서 성장하며 많은 과정을 거쳐 태어난다. 마치 인류가 태초부터 오늘에 이르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탯줄이 끊기고 소리 내어 우는 때까지 인류의 창조는 진화의 순서이었음을 이야기해 준다.   우리는 모두 한 우물에서 왔다. 뿌리를 찾아가면 모두 한곳에 모이고 뿌리가 있기 전에 씨앗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노래, 창은 동편제와 서편제로 나누어 문자가 있기 이전부터 노래에서 노래로 전해져 민요, 설화, 무가, 판소리들로 오랜 옛날의 이야기가 후세에 전해졌다고 한다. 노래는 언어로 발달하고 언어는 문자를 만들고 문자는 문학을 탄생시켜 우리가 즐겨 쓰는 시는 문학의 어머니가 되지 않았을까.   시를 쓰는 시간이면 즐겁기만 하다. 모든 잡념에서 벗어나 하나의 생각과 느낌을 마음에 담아 상상의 날개는 한없는 공간을 오르내리며 온 우주를 누빈다. 창작의 희열에 취했다가 깨어나 가끔은 독자가 되어 나를 돌이켜 보며 현실을 관조하기도 한다. 오감을 동원하여 감각적으로 그려 보이면 묘사를 하고 은유적으로 암시하면 독자도 나름대로 전율을 느껴 작가의 느낌을 상상 속에 더욱 선명하게 공명하여 시의 주제는 더욱 깊은 감동으로 전해진다.   달 밝은 밤 둘이서 언덕 위에 앉아 손잡고 부른 노래는 가슴을 울려 새로운 인생길이 열린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가족을 꾸려가는 삶은 한없는 기쁨과 어려움을 겪고 하늘이 모든 목숨에 내려준 임무였음을 지나고 난 세월을 돌이켜 본다. 이제 내 한평생 노래하고 말하고 글을 쓰게 되어 이 땅 위에 자국을 남기었다.   사랑이 있었기에 종교가 있고, 노래와 춤이 있었기에 예술이 있고, 이성이 있었기에 과학이 있어 우리는 영성, 감성, 이성의 세 다리를 짚고 고구려의 삼족오(다리 셋의 까마귀)처럼 자신의 인생을 꾸려가고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인류의 막내는 성숙한 어른이 된다. 그리고 그들이 낳고 키울 우주세대는 성스러운 믿음, 고귀한 예술, 우주를 나르는 과학으로 인류의 황금기를 맞을 것이다. 막내가 길러낸 우주세대는 인공지능을 가진 죽지 않는 기계 인간으로 우주 안에 보금자리를 찾아 별나라에서 노래 부르며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최용완 / 건축가·시인·수필가이 아침에 노래 예술 우주 잉태 과정 이후 어머니

2024-01-16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세월의 끝자락에서

’나는 떠난다. / 청동의(靑銅)의 표면에서/ 일제히 날아가는 진폭(振幅)의 새가 되어 / 광막한 하나의 울음이 되어 / 하나의 소리가 되어. / 인종(忍從)은 끝이 났는가. / 청동의 벽에 / ‘역사’를 가두어 놓은 / 칠흑의 감방에서 / 나는 바람을 타고 / 들에서는 푸름이 된다. / 꽃에서는 웃음이 되고 / 천상에서는 악기가 된다 / 먹구름이 깔리면 / 하늘의 꼭지에서 터지는 / 뇌성(雷聲)이 되어 / 가루 가루 가루의 음향이 된다 -박남수의 ‘종소리’     시인의 종소리는 청동의 벽에 갇혀 있다. 종소리는 벽을 뚫고 세상에 울음으로 퍼져 나간다. ‘새’가 되어 ‘광막한 하나의 울음’으로, ‘하나의 소리’가 되어 세상을 진동시킨다. 역사 속에 갇혀 있었던 시간을 해방시키는, 꼭지 터지는 천둥 소리가 되어 자유를 찾아 푸르름이 되고 웃음이 되고 새가 된다.     유년의 종소리는 즐거웠다. 시작을 재촉하는 종소리도 끝을 알리는 종소리도 모두 좋았다. 선생님이 교무실 앞에 달린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색 종을 치며 “얘들아” 하고 부르면 하던 재미있는 놀이를 멈추고 동무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교실로 달려 갔다.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는 1984년 이화여대 음대 김메리교수가 유일하게 작사 작곡한 동요다. 유년의 종소리는 청명한 울림으로 시작과 멈춤을 알리며 생의 곳곳을 스며 든다. 시작과 끝은 아련한 반복으로 세월의 종을 울린다.   이젠 아무도 종을 쳐 주지 않는다. 언제 시작을 해야 하는지, 어디서 멈추어야 하는지, 어느 쯤에서 길고 긴 방황을 끝을 접어야 하는지를 말해 주지 않는다. 아득한 길 위에서 길을 찾으며 길을 잃고 길을 헤맨다. 또 다시 지난 해의 그 자리에 서있다. 달라지려고, 좀더 나아지려고 애를 썼지만 달라진 것 하나 없이 빈 손으로 바람 앞에 내가 서 있다.   작은 것들이 모여 무리를 이룬다. 태산도 원래는 평지였다. 하나 둘 모여 육지가 되고 바다가 되었다. 우주 기원의 가설인 빅뱅(Big Bang)에 의하면 태초에는 모든 에너지가 한 점에 모여 있었다. 물리학자 조르주 르메트르(George Lemaitre)는 ‘최초에 모든 것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불꽃놀이가 있었다. 그 후 폭발이 있었고 하늘이 연기로 가득 찼다’라고 주장한다. 찬란한 불꽃놀이와 엄청난 폭발, 앞이 안 보이는 혼돈 속에 탄생한 우주 속에 한 개의 점으로 인간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사라지면 우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사는 우주의 주인공이다. 내가 없으면 그대 사랑도 허공을 맴돈다. 후회와 미련으로 지난 날을 닦달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세월의 끈을 푼다. 묶여 있던 것들을 떠나 보낸다. 그리움의 언덕에는 갈대가 서걱인다. 무겁고 힘든 것들의 매듭을 풀지 않으면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세월의 끝자락은 흔들린다. 달력의 마지막 장은 펄럭인다. 유년의 일기장, 빛 바랜 추억 속 얼굴, 작별 담은 그대 편지, 소복 입은 어머니의 무명치마는 바람 앞에 서면 펄럭였다. 마음의 끈 다잡아도 그리움의 빈 칸을 눈물로 채웠던 날들이 바람개비로 허공을 맴돈다.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지치면 쉬어가면 된다. 슬픔은 삼키면 약이 된다. 고통은 용기가 되고 절망은 희망의 뿌리가 된다. 아픔은 진주처럼 영롱하고 그리움은 별이 된다.     끝날 때까지는 끝이 아니다. 잠시 멈추고 있을 뿐이다. 시행착오는 반복되고 세월이 연륜을 만든다. 인생 역전 드라마는 아직 방영되지 않았다. 누가 더 잘 사는지, 잘났는지 키 재기 하지 말고, 소중한 내 모습 그대로 세월의 끝자락에 내일의 꿈을 새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끝자락 세월 바람개비로 허공 우주 기원 천둥 소리

2023-12-26

[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성간 여행

우리 우주에는 약 2조 개나 되는 은하가 있다고 추측한다. 그런 은하와 은하 사이를 날아다니는 것이 우주 여행인데 아무리 공상 과학의 나래를 편다고 해도 그런 여행은 절대로 100% 불가능하다.     우주에 산재한 수많은 은하 중 우리에게 익숙한 이웃인 안드로메다은하는 우리 태양이 속한 은하수 은하에서 250만 광년 떨어져 있다. 빛의 속도로 250년이 아니라 250만 년이나 걸린다는 말이다. 관측 가능한 우주의 지름을 과학적으로 어림잡으면 약 930억 광년이라고 하니 우리에게는 무한대의 거리다.     그러면 스케일을 확 줄여서 이번에는 성간 여행을 생각해보자. 우리 우주에 2조 개나 있다고 하는 각각의 은하 속에는 평균 4천억 개나 되는 별이 존재하는데 그런 별과 별 사이의 여행이 바로 성간(星間) 여행이다.     북극성이나 직녀성 같은 멀리 있는 별을 예로 들 것이 아니라 우리 지구가 속한 태양이란 별에서 시작해 본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 알파 센타우리다. 우리 태양은 홑별이지만 일반적으로 별은 두 개가 쌍을 이루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어쩌다 별이 세 개인 것도 있고 더 많은 별이 모인 것도 있는데 멀리서 보면 모두 하나의 별처럼 반짝인다.     알파 센타우리는 별 세 개가 모여서 이루어진 삼중성계인데 우리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다. 그런데 태양 빛이 그곳에 도착하는 데 무려 4.3년이나 걸린다. 다시 말해서 빛의 속도로 간다고 해도 태양이란 별에서 가장 가까운 별에 가는 데만 4년이 더 걸린다는 말이다. 우리 별에서 다른 별에 가기도 이처럼 쉽지 않다.   1977년 지구를 출발한 보이저 1호는 35년을 날아 비로소 태양권을 벗어났다. 거기서부터는 별과 별 사이라고 해서 성간이라고 부른다. 보이저호는 지금 태양이란 별과 알파 센타우리 별 사이 공간을 성간 여행 중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과학기술 수준상 우주 여행이나 은하 여행은 불가능해도 성간 여행은 하는 셈이다.     문제는 성간을 여행하기 위해서 태양계를 벗어나는 데만 35년이나 걸렸다. 게다가 태양에서 가장 가깝다는 알파 센타우리 별까지 도착하는데 지금 보이저호의 속도인 시속 6만1천㎞로 2만 년이 걸린다. 그러므로 성간 여행도 불가능하다는 말을 이렇게 구구절절 하고 있다.   우리의 별인 태양 주위에는 지구를 포함해서 총 8개의 행성이 돌고 있다. 그 중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이 바로 화성인데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는데 7달 반이 걸린다. 우주 여행, 은하 여행, 성간 여행은 고사하고 태양계 내에서 가장 가깝다는 지구에서 화성까지도 이렇게 오래 걸린다. 미래에 엄청나게 빠른 우주선이 개발되면 화성까지는 며칠 만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태양계를 벗어나서 다른 별까지 갈 수 있을까? 우리 은하 안의 더 먼 곳에 있는 별에도 갈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 우리 은하를 벗어날 수도 있을까? 가장 가까운 외부 은하인 안드로메다은하에까지 갈 수 있을까? 더 먼 은하까지 갈 수도 있을까?   세상에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니까 결국 속도의 끝은 광속이다. 그런 광속으로도 수만 년, 수억 년 걸리는 것이 별과 별 사이며 은하와 은하 사이의 공간이다. 사람이 죽었다 살아날 수는 있다고 해도 그런 거리를 극복한다는 것은 상상의 세계에서도 불가능하다. (작가)       박종진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여행 은하 여행 우주 여행 은하수 은하

2023-08-25

[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우주를 향하여

우리는 반세기 전에 이미 다녀왔던 달에 또 가려고 한다. 1969년 7월 20일 인류는 지구 밖 천체인 달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미국은 구소련과 한창 냉전 중이었는데 소련이 스푸트니크 계획을 착착 진행하면서 우주에서는 미국에 앞서고 있었다. 이에 자극을 받은 미국은 아폴로 계획을 수립하고 결국 아폴로 11호가 달착륙에 성공하면서 구소련을 추월했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후 다시 달에 가려는 아르테미스 계획을 세우고 2025년까지 달에 우주 정거장을 건설하려고 한다.   그동안 달은 잊혀 있었다. 구소련이 몰락해서 경쟁도 없는 데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도 없는 일에 납세자들의 혈세를 쓰기가 버거웠다. 잊힌 달이 다시 수면 위로 떠 오르게 된 것은 희귀 광물 조달 문제, 기후 문제, 군사적인 이유, 미래의 에너지원 문제, 그리고 달이 화성으로 가는 전초기지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동안 산업화에 따른 부작용으로 지구는 엄청나게 파괴되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극지방의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고 자연재해가 그치지 않고 있다. 인구 증가가 적정선을 넘으면서 그에 따르는 식량과 마실 물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게다가 첨단 기술에 꼭 필요한 희귀 광물과 미래의 에너지 수단인 핵융합 원료 헬륨-3도 달에 풍부하다. 달은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아서 식민지화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위에서 열거한 몇 가지 이유만으로 달 개발이 절실해졌다.   과학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전기의 존재를 알고 전기를 사용한 것이 불과 몇백 년 전의 일인데 지금은 전기 에너지가 없으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게다가 컴퓨터가 탄생한 것이 불과 몇십 년 전의 일인데 이제는 양자 컴퓨터가 등장하고 인공지능이 상용화되는 세상으로 변했으며 핵융합 발전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지금은 우주여행에 화석 연료를 사용하고 있지만 대체 연료가 개발되면 우주여행은 한층 빨라질 것이다. 스페이스 X 일론 머스크의 호언처럼 어쩌면 화성에 100만 명 이상이 사는 식민지를 이번 세기 안에 건설해 인류는 다행성 종족으로 진화할 것이다.   뉴욕 시립대학의 교수 미치오 카쿠 박사는 화성으로의 이주는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라고 단언했다. 사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의 상황과 아주 흡사하다. 발견 초기에는 탐험 전문가들도 목숨을 걸고 가야 하는 멀고도 험한 곳이었고 천우신조로 거기까지 갔다고 해도 새 땅에서 자리 잡고 뿌리내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돛단배를 타고 두 달이나 걸려 도착해도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지금의 과학기술 수준으로 달까지는 3일이면 갈 수 있지만, 지구에서 화성까지는 로켓을 타고 7달을 날아야 한다. 이 상태라면 화성은 유인 탐험조차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두 달 걸려 유럽에서 신대륙을 갔던 그 시절 고민과 비슷하다. 하지만 인류가 이룩한 과학기술은 그렇게 가기 힘든 미국을 세계 제일의 나라로 만들더니 지금은 런던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출발하면 해 질 무렵 뉴욕에 도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 7달이나 걸리는 화성까지의 여행이 7일 정도 되는 날이 곧 올 것이다. (작가)     박종진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우주 우주 정거장 에너지원 문제 희귀 광물과

2023-08-18

[박종진의 과학이야기] 중력파

사람은 눈이 없으면 사물을 볼 수 없지만, 가시광선 파장 너머의 전파를 사용하는 모기나 박쥐, 그리고 레이다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것까지 감지한다. 물론 우리가 무엇인가를 볼 수 있게 하는 빛도 전자기파의 한 부분이다. 그런 식으로 모든 물질은 전자기파에 반응하고 따라서 우리는 지금까지 전자기파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우주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소위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체의 4%에 지나지 않는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현재 과학자들의 추산으로 우주는 아직 우리의 과학 기술이 밝히지 못한 암흑물질이 22%, 그리고 암흑에너지가 74%쯤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주의 96%가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 나머지 4% 중 성간 가스 3.6%를 빼면 별을 포함하여 눈에 보이는 것은 고작 0.4%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마저도 수명을 다해서 죽어가는 과정에 있는 별은 거의 빛을 내지 않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주위에 널려있는 물질은 우주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거의 없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력파란 쉽게 말하자면 우주 저 먼 곳에서 블랙홀 같은 거대한 질량을 지닌 천체에 변화가 생길 때 중력이 우주 공간으로 빛의 속도로 퍼져 나가는 파동을 말한다. 상대적 시공간에서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에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을 다루던 뉴턴 물리학에서 그런 개념조차 없었다. 1915년에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아인슈타인에 의해서 추측되기는 했지만, 그 측정이 너무 어려워서 오랫동안 이론으로만 존재하다가 딱 한 세기 후인 2015년에 관측에 성공했다. 그 공로로 중력파를 발견한 사람들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우주 공간에서 질량이 큰 물체가 폭발하거나 충돌할 경우 그 결과 중력의 변화가 생긴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아인슈타인은 이런 중력의 변화가 시공간을 흔들 것이고 그런 출렁임이 파동으로 퍼져 나갈 것으로 예측했는데 이것이 바로 중력파다. 하지만 당시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그런 미미한 파동을 관측할 수 없어서 그 후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것이 한 세기가 지나서 관측 장비가 개발되자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아인슈타인답다.   만약 전자기파에 의한 통신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중력파를 이용한 통신이 개발될 경우 엄청난 통신 혁명을 맞게 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몸 속에 이상이 생긴 경우 외과적인 수술로 몸을 열어보지 않고도 X선의 도움으로 몸 속을 촬영하여 진단하는 것처럼 중력파는 물질과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항성의 내부라든가 심지어는 블랙홀도 관측할 수 있다.     갈릴레이 이후 향상된 천체망원경을 통해서 우리는 밤하늘을 살폈다. 그러나 광학 망원경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 후 인류는 지구 대기권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전파를 이용한 망원경으로 우주 구석구석을 뒤졌다. 그 유명한 허블 천체망원경이 가시광선을 이용한 것이라면, 이번에 발사한 제임스 웹 천체망원경은 적외선을 이용한 망원경이다. 이 두 망원경은 지구 대기층의 영향을 피하려고 우주 공간에서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만약 중력파를 이용한 천체망원경이 개발된다면 중성자별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으며 빅뱅에 대한 더 확실한 연구도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작가)   박종진박종진의 과학이야기 중력파 허블 천체망원경 우주 공간 우주 구석구석

2023-08-04

‘우주 공장’서 약품 제조하는 시대 오나

우주 관광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우주 제약’에 나선 기업이 있어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캘리포니아 기반 스타트업 ‘발다(Varda)’다. 발다는 우주의 ‘극미중력(microgravity)’ 상태에서의 제약 효능과 효율을 연구하기 위해 스페이스X 로켓에 제약 설비를 갖춘 연구 캡슐을 탑재해 발사했다고 최근 밝혔다. 극미중력 상태에서 약을 제조할 경우, 일부 약의 화합물은 지구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아서 인체에 효과가 더 좋다는 설명이다.     발다는 우주 제약 연구를 통해 제약 효율이 뛰어난 약을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전했다. 업체 측은 로켓이 우주 궤도에 안착하면 로켓에서 연구 캡슐을 분리해 지구의 중력이 없는 유사 무중력 환경에서 약을 제조하는 실험을 진행한다고 덧붙였다.   CNN은 단백질 결정 등 일부 화학 결과물은 극미중력 상태에서 더 완벽한 형태로 형성돼 인체에 흡수가 더 빠른 장점이 있다고 전했다. 제약회사 MSD는 최근 업체의 암치료제 ‘키트루다’의 핵심성분인 ‘펨브롤리주맙(pembrolizumab)’이 우주에서 제조했을 때 더 안정적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발다는 우주에서의 첫 실험 대상은 HIV 치료제이자 최근 코로나19 항바이러스제로 사용되는 약인 ‘리토나비르’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실험을 모두 마친 연구 캡슐은 다시 지구의 대기를 통과해 착지 후 수거된다.     업체가 스페이스X 로켓에 탑재한 연구 캡슐의 총 무게는 약 660파운드이며 비용으로 200만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추정됐다.   한편 일각에서는 지구 귀환 시 시속 1만8000마일이 넘는 속도로 인한 온도 상승이 제조한 약에 미치는 영향, 우주정거장에서의 실험 대비 효율성 등의 과제는 업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훈식 기자 woo.hoonsik@koreadaily.com우주산업 우주관광 제약 우주 우주 제약 우주산업 다음

2023-06-19

[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관측 가능한 우주

우주는 무한히 커지고 있으며 관찰점에서 멀어질수록 더 빠른 속도로 팽창한다. 그런데 관찰점에서 어느 정도의 거리를 넘어서면 팽창 속도가 빛보다 빠르다. 물론 우리 우주에서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 그러나 빛이 여행하는 공간 자체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팽창한다. 팽창하는 공간에서도 빛의 속도는 여전히 우주에서 가장 빠르다. 따라서 빛보다 빠른 속도로 후퇴하는 곳에 어떤 천체가 있다면 그곳에서 지구를 향해 출발한 빛은 아무리 날아도 우리에게 도달하지 못하게 되므로 그 천체는 영원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 경계를 우주 지평선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주 지평선 바깥은 도무지 알 방법도 없고, 어떻게 보면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곳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신이 창조했다고 믿는 우주의 중심에서 살았다. 그래서 우주의 중심에는 항상 지구가 있었다. 관측 가능한 우주 역시 그 중심에는 지구가 버티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어서가 아니라 관측자가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안드로메다은하에 사는 외계인이 관측 가능한 우주를 그린다면 안드로메다은하가 우주의 중심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서 관측하느냐에 따라서 관측 가능한 우주의 영역이 달라진다.   빅뱅우주론에 의하면 지금부터 138억 년 전에 대폭발이 있었고, 그 후 우주는 계속 팽창했다. 그러므로 빛이 여행할 수 있는 최장 거리는 빅뱅의 시작부터인 138억 광년이다. 그런데 빅뱅 직후 우주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급팽창을 했기 때문에 계산보다 훨씬 더 커진 우주에서 실제로 빛이 여행한 거리는 138억 광년이 아니라 465억 광년이라고 한다. 그것이 관측 가능한 우주의 반지름이므로 전체 관측 가능한 우주의 규모는 그 지름인 930억 광년이다.   관측 가능한 우주 바깥에도 무엇인가 있겠지만 빛이 우리에게까지 올 수 없어서 볼 수 없으니 우리와 상관없다. 그런 경계인 우주 지평선은 지구를 중심으로 모든 방향으로 빛이 465억 년 걸려서 도착할 수 있는 지점을 잇는 큰 공처럼 그릴 수 있다. 그러므로 관측 가능한 우주란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빛의 속도로 930억 년 걸리는 상상 속 공의 안쪽이다.     그러나 빛의 속도를 내려면 우주선의 길이가 없고 무게도 없어야 하는데 설령 과학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해서 그런 비행체를 만들 수 있다고 해도 930억 년은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세월이 아니다.   아무리 천문학적인 숫자라고 해도 그 정도면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다시 정리해 본다. 달은 지구를 돌고, 지구는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태양과 같은 별이 수천억 개가 모여서 은하가 되고, 그런 은하가 다시 수천억 개가 모여서 우주를 이룬다. 그런데 가속 팽창하는 우주의 어떤 지점부터는 팽창 속도가 빛의 속도를 능가하게 되고 그곳을 우주 지평선이라고 부른다. 관찰점인 지구에서 사방팔방으로 우주 지평선을 연결하면 둥근 공 모양이 되는데, 이 거대한 공의 안쪽을 관측 가능한 우주라고 부르며 이것이 우리의 실제 우주다. 설령 그 바깥에 무엇이 있다고 해도 우리와는 상관없으니 알 필요가 없다. 관측 가능한 우주에는 적게는 수천억에서 많게는 2조 개 정도의 은하가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작가)       박종진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관측 우주 우주 지평선 직후 우주 우주 바깥

2023-06-16

[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시뮬레이션 우주

우주론 이야기는 아직 공상과학 수준에 머문다. 대체로 우리의 물리학 수준이 그런 것들을 명쾌히 증명할 수 없는 처지여서 그렇다. 여기 소개하는 시뮬레이션 우주도 여전히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다. 하지만 테슬라 자동차를 만들고, 스페이스X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최초로 민간 우주 탐사를 시작한 일론 머스크가 주장하는 이론이다.     코스모스 시리즈 속편의 진행을 맡은 닐 디그래스 타이슨은 칼 세이건의 후계자인데 그는 우리가 사는 우주가 시뮬레이션일 확률이 50%라고 보았고, 천체물리학에 해박한 일론 머스크는 시뮬레이션 우주가 아닐 확률이 10억 분의 1이라고 단언하였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 이 우주의 운행을 모의 실험해 보는 과정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가 우연히 스스로 오늘날의 모습으로 진화할 확률은 절대로 없기 때문이다.   우리 은하수 은하와 이웃한 안드로메다은하는 서로의 중력에 이끌려 가까워지다가 충돌할 것이라고 한다. 수많은 관련 정보를 입력하여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해 보니 앞으로 40억 년 후에 타원 모양의 은하로 합쳐질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몇 년 전에 하버드 대학에서 빅뱅 우주를 슈퍼컴퓨터를 이용해서 석 달 정도 걸려 시뮬레이션해 보았더니, 지금 우리 우주의 모습과 무척 닮은 결과를 얻었다. 그렇다면 우주는 시뮬레이션의 산물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꿈속의 꿈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거울 두 장을 서로 마주 보게 놓으면 그 속에서 수없이 많은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도 그런 시뮬레이션 속의 시뮬레이션 우주 중 하나일 지도 모른다.     우주는 빅뱅으로 시작하여 순식간에 갑자기 부풀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 빅뱅 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관측 가능한 우주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도저히 알 방법이 없다. 게다가 블랙홀은 우리 물리학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과연 블랙홀의 특이점처럼 부피는 없는데 질량이 무한대일 수 있을까? 무한한 우주에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는 것도 이상하고, 우리가 진공이라고 부르는 곳에 무엇인가 있어서 팽창하는 우주를 안정시키고, 원자핵 속 양성자끼리의 전기적 반발을 억제하는 힘이 딱 그만큼인 것도 수상하다. 그런 것들이 아주, 아주 조금만 크거나 적어도 우주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 프로그램에 입력된 정보가 아니었을까?   양자역학에 그나마 잘 어울리는 것이 시뮬레이션 우주론이다. 양자역학이란 미시세계에서 에너지의 불연속성을 다루는 학문이다. 바늘이 있는 시계는 시간이 연속적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디지털 시계는 55초나 56초라고 표시할 뿐, 그 사이의 값은 없다. 양자역학으로 본 세상은 에너지가 띄엄띄엄 떨어진 디지털, 즉 정보뿐이다. 그것을 다루는 도구가 바로 행렬역학이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는 것이 맞다. 지금 설명이 이해가 간다면 당연히 거짓말이다.   이 이론이 맞는다면 삼라만상을 위시한 우리의 존재는 모두 컴퓨터가 만들어 낸 가상 현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그램 속의 일이다.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정보가 만들어진 것이라면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홀로그램일지도 모르는 세상에 사는 것이 우리의 참모습인지도 모른다. (작가)       박종진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시뮬레이션 우주 시뮬레이션 우주 컴퓨터 시뮬레이션 우주론 이야기

2023-06-02

[박종진의 과학이야기] 우주 돛단배

'언젠가는 우주 공간에 부는 바람을 이용하는 돛단배들이 떠다니고, 끝없는 우주를 무서워하지 않는 자들이 광활한 우주로 나아갈 것이다.'   17세기에 활동했던 요하네스 케플러가 한 말이다. 그는 비록 같은 시기에 활동하던 갈릴레이나 데카르트에게 밀리기는 했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점성술에 가까웠던 천문학에 물리학을 도입하여 지금의 천체물리학을 시작한 선구자였다. 비록 상상 속 이야기였다고 해도 과학자로서 미래를 내다본 유의미한 추측이 아닐 수 없다. 실용 가능한 솔라 세일(햇빛을 이용한 항해)의 아이디어를 맨 처음 낸 사람은 '코스모스'란 TV 시리즈로 유명한 칼 세이건이다. 그는 우주를 일반 대중에게 소개한 선구자였다.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고 관찰한다. 돌이 손을 떠나서 호수를 향해 날아갈 때 돌은 입자다. 그 돌이 수면에 떨어질 때 생긴 동심원이 호수면 위에 퍼져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파동이다. 파동이란 수면 위에 보이는 여러 동그라미처럼 물리량의 변화가 어떤 주기를 가지고 공간에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빛은 입자인가 파동인가 하는 논쟁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데모크리토스는 빛은 입자라고 생각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파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빛에 대한 논쟁은 뉴턴 때에 이르러 입자설이 주류가 되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은 빛이 입자라고 생각했는데 그 당시는 뉴턴의 권위에 그 누구도 대들 수 없던 형편이었다.     19세기에 들어와서 이중슬릿 실험을 통해 파동설이 슬며시 고개를 들다가, 전기의 아버지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에 의해 빛이 전자기파로 밝혀지면서 빛의 파동설이 정설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광양자설로 인해 다시 입자설이 부상하다가 지금은 빛이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양면성을 갖는다고 정리되었다.   입자로서의 빛은 그 충돌 에너지가 너무 약해서 나뭇가지에 매달린 잎에 쏟아지는 빛도 작은 나뭇잎 하나를 흔들지 못한다. 하지만 대기가 없고 중력이 약한 우주 공간에서는 형편이 다르다.     통통한 거미 한 마리를 잡아서 손가락에 거미줄을 몇 바퀴 감아 봐도 아무 감각이 없다. 그러나 무시해도 될 만큼 가는 거미줄이라고 해도 손가락에 수백 바퀴를 감으면 나중에 피가 안 통해서 손가락이 파랗게 변한다. 그대로 며칠 놔두면 결국 손가락을 잘라야 한다.     마찬가지로 빛의 충돌 에너지가 아무리 약하다고 해도 우주 공간에 펼쳐놓은 돛을 계속 때리면 부딪히는 광자에 포함된 운동에너지가 돛으로 옮겨져서 그 힘으로 우주선을 움직이는 것이 솔라 세일의 원리다. 실험은 벌써 성공했고 이제는 실용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만 남았다.   현대 우주선은 여전히 화석 연료를 산화시켜서 생기는 힘으로 난다. 하지만 우주 돛단배는 큰 돛을 펼쳐놓고 태양에서 나오는 빛 알갱이가 돛에 부딪힐 때 얻는 충돌 에너지로 비행한다.     이론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식으로 광속의 1/5 정도를 최대 속도로 얻을 수 있다고 하니 솔라 세일은 우주여행의 혁명이다. 손으로 노를 저어서 배를 움직이던 인류는 나중에는 배에 돛을 달고 바람을 이용하여 지구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이제는 태양 빛이 돛을 때리는 힘을 이용하여 우주를 여행할 날이 눈앞에 다가왔다. (작가)     박종진박종진의 과학이야기 돛단배 우주 우주 돛단배 현대 우주선 우주 공간

2023-05-26

[이 아침에] 우주 쓰레기

생물은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폐기물을 배출한다. 이를 유기체의 속성이라 한다면, 배설물이나 노폐물의 생성이 없는 물체는 살아 있는 유기체라고 할 수 없겠다.     과학 문명의 발달이 급속히 이루어지기 전에는 쓰레기 처리가 큰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대소변 처리 문제만 하더라도 인간은 다른 동물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오랫동안 자연 속에서 그대로 해결해 왔다.  1960년대 서울의 일반 사무실 책상 밑에는 쓰레기통이 있었고 책상 위에는 항상 담배 재떨이가 놓여 있었으며, 수세식 화장실이 일반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건물 복도에는 침을 뱉는 용도의 용기가 비치돼 있었는데, 이런 것들은 정기적으로 수거돼서 쓰레기장으로 옮겨 처리됐다.   해양 쓰레기에서 보듯이 쓰레기 처리가 과학 문명의 발달과 궤를 같이하여 지구의 당면한 현실 문제로 대두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주 공간에 도달할 만큼 스마트한 인간이 대자연의 훼손을 예방할 지혜와 능력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며, 현대인은 그렇게 무감각한 존재가 아닐뿐더러 자연을 훼손하면 자연의 혜택을 입을 자격이 없다는 것도 잘 안다.     1957년까지만 해도 지구 궤도를 선회하는 인공위성은 스푸트니크 하나뿐이었다. 구 소련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우주 공간을 향해 쏘아 올린 것인데 지금은 그 수가 줄잡아 9000개에 이르며, 물경 100조 개에 달하는 각종 잔해물이 띠(Belt)를 형성하여 지구 궤도에 떠다니고 있다고 지난 3월 9일 과학 잡지 ‘사이언스’는 밝히고 있다. 이는 일단의 국제 전문가들이 국제 여론에 호소할 목적으로 사이언스지에 보낸 공개서한의 내용이다. 갖가지 부스터 보조 장치, 볼트, 페인트 칲스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이 같은 물체가 시간당 약 2만8200km(1만7500mph)의 속도로 우주 공간을 날아다니는데, 아무리 작은 물체라도 다른 물체와 부딪친다면 총알과 같은 충격을 가할 수 있다고 한다. 우주 정거장에 머무는 우주 비행사들도 사고 예방을 위해 정거장 옆에 부착돼 있는 소유스나 스페이스X로 주기적으로 대피한다고 한다. 이런 잔해들이 대기권에 떨어질 때면 궁극적으로 연소하고 말 것이긴 하지만, 지구 궤도를 선회하는 각종 쓰레기의 수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우주 오염을 종종 해양 오염에 비유하는데, 해양 오염은 수세기가 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일어난 일인데 반해 우주 오염은 불과 지난 수십 년 동안에 빠른 속도로 빚어진 현상이라는 것이 다르다고 한다. 해양 플라스틱 공해 문제 해결을 위한 2022년의 국제 협정처럼, 우주 쓰레기 문제에 대처하는 국제협약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이유이다.     “해양 쓰레기나 우주 쓰레기는 인간의 능력으로 충분히 피할 수 있는(Anthropogenic Detriment) 문제들이다.”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대학 우주 공학과의 모리바 쟈 교수의 이 간단명료한 말속에 답이 담겨 있다.    라만섭 / 전 회계사이 아침에 쓰레기 우주 우주 쓰레기 해양 쓰레기 우주 오염

2023-04-20

조지아 우주 발사대 건설 무산 위기

  플로리아와 맞닿아있는 조지아 남동부의 캠든 카운티에 건설 예정이었던 우주 공항(spaceport)이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카운티에 따르면 해당 부지는 1965년 로켓 엔진 시험 장소로 쓰인 적이 있으며, NASA(미국 항공 우주국)가 캠든 카운티를 아폴로 계획의 대체발사 장소로 염두에 두고 있었을 정도로 우주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 부지는 약 1만 2000에이커 크기로, 카운티는 이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약 1100만 달러를 지출했다. 당초 계획에 의하면 인공위성, 보급품 등을 실은 소형 (상업적) 로켓을 1년 최대 12번 궤도로 발사할 수 있는 공항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실시된 스페이스포트 캠든 건설 찬반투표에서 카운티 유권자들 3대1 비율로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그리고 7일 조지아주 대법원은 캠든 카운티가 주민투표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고 만장일치로 판결한 것이다.     캠든 카운티 커미션은 대법원 결과 후 성명을 통해 "낙담스럽다"며 "스페이스포트 캠든의 미래는 커미션의 결정으로 남아있으며, 향후 회의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스페이스포트 캠든'이라는 이름의 우주공항을 건설하기 위해 캠든 카운티는 지난 2015년부터 연방 항공국(FAA)에 승인을 요청해왔으며, 지난 2021년 마침내 우주 정거장 건설 허가를 얻어 해안 토지를 소유한 화학 회사와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캠든 주민들은 카운티가 오염됐을지도 모르는 토지를 구매하는 것에 반대하며 2022년 1월 지방법원에 특별 투표(special election)를 하게 해달라는 청원을 마쳤다.     카운티와 정거장 건설 관계자들의 입장에서는 수년 동안 작업한 프로젝트가 비로소 빛을 보나 싶었지만,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특별 선거를 승인한 유언 검인 판사를 고소했으며, 조지아에 우주 공항이 들어올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윤지아 기자조지아 우주 우주 공항 조지아주 대법원 조지아 남동부

2023-02-07

[중앙 시평] 우주 탐사는 인류의 자기 성찰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달나라 탐사를 최근 재개했다. 1960년대에 케네디 대통령이 주도해 인간을 달에 보내고자 했던 아폴로 계획은 결국 1969년에 그 목표를 달성했다.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도착한 우주비행사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기고 거기서 흙을 채취해오는 엄청난 업적을 이룩했다.   그런 일을 그 당시 기술로 해냈다는 것은 돌이켜보면 운도 좋았고 대단한 일이었다.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달나라에 가 보니 토끼는 없더라는 소식에 실망한 어린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1972년에 아폴로 17호가 다녀온 후에 NASA는 달나라의 유인 탐사를 중단했다. 현재 진행 중인 아르테미스 계획은 50년 만에 다시 인간을 달에 보내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11월 16일 발사된 아르테미스 1호는 인간 대신 마네킹을 싣고 달나라 근처를 돌아보면서 모든 장비 작동을 시험했다. 그 우주선은 26일간 200만㎞ 넘는 거리를 비행한 뒤 지구로 돌아와 낙하산을 펴고 멕시코 인근 태평양 수면에 안착했다. 아르테미스는 많은 관측자료를 가지고 돌아왔고, 비행 중 이미 그 자료의 일부를 지구로 전송했다. 이렇게 시운전을 잘 마쳤으니 앞으로 인간을 다시 달에 보내 많은 활동을 시도할 계획이다. 그동안 왠지 움츠렸던 미국 특유의 진취적 기상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느낌이다.   아르테미스가 보내온 사진들에는 달 표면 가까이 돌며 촬영한 분화구 등의 생생한 모습이 많은데, 사실 그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그 머나먼 곳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이다. 암흑같은 텅 빈 우주공간을 배경으로 밝게 보이는 자그마한 푸른 구슬같은 지구 모습은 신기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 모습은 아름답다. 아르테미스 1호는 또 달의 궤도를 넘어선 지점까지 가서 지구가 달을 다정하게 옆에 거느린 사진까지 찍어 보내줬다.   혹시 외계인들이 지구를 방문하게 된다면 그들도 우리 행성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생각할까. 실제로 지구에 도착해 보면 느낌이 달라질 것이다. 80억이라는 엄청난 인구로 지구의 표면을 덮어버린 인간들은 서로를 죽이고 고문하고 협박하고 착취하고 모욕하며 살아간다. 멀리서 볼 때는 평화로워 보이겠지만, 전쟁이 끊이지 않으며 생태계와 환경의 균형은 인간들의 무책임한 활동으로 파괴될 위기를 맞고 있다.   우주 탐사 작업에 많은 기여를 했으며 대중 과학의 세계 1인자로 꼽혔던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을 지금도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가 주도해 제작했던 TV다큐멘터리  ‘코스모스’와 이를 바탕으로 만든 책은 세계 각국의 청소년들에게 과학을 꿈꾸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칼 세이건 교수는 우주에서 본 지구의 아름답고 가련한 모습을 보고 잘 성찰한다면, 편협하고 이기적인 생각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우리 모두가 그 조그만 구슬 위에 다닥다닥 같이 사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서로 싸우고 죽이는 일을 그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세이건의 이상은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를 넘어 범인류의 공영을 추구하는 ‘세계주의(cosmopolitanism)’였다. 그런데 20세기말에 득세한 것은 이와 비슷하게 들리지만 전혀 의미가 다른 ‘글로벌리즘(globalism)’이었다. 세계화의 이상이 변질된 것으로, 국경을 무시하고 넘나들며 더 많은 돈을 벌겠다는 초국가적 자본주의이다. 세계 무대에서 일한다는 진취적 기상이 온 세계를 지배한다는 탐욕과 얽혀 들어가는 현상이다.   사실 이는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유럽인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진취적 기상을 가진 사람들이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누비며 머나먼 지역을 탐색한 결과였다. 많은 경우 그런 탐험가들은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되었다. 지금은 진취적인 사업가들이 다국적 기업을 통해 세계를 정복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온갖 최첨단 과학과 기술도 이를 위해 우선 사용된다. 이제는 정보통신기술을 통해 사방을 직접 누빌 필요도 없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우주 탐사도 달나라에서 값진 광물을 캐내 돈을 벌겠다는 등의 욕심으로 하겠다는 세력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우주 탐사를 정복으로 생각하지는 말자. 전 인류가 나눌 수 있는 명상과 자기 성찰의 장이 돼야 한다. 세계 열강이 적어도 남극대륙에서는 영토 다툼을 하지 않고 과학연구에 협력하듯이, 달 탐사를 하면서 진정한 세계주의를 살리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아직은 어느 나라에서도 소유하지 않은 곳이라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주에서 보면 조그마한 ‘지구촌’에서 깨지기 쉬운 생태계 균형도 조심스레 유지하고, 같은 인간들끼리 잘 살아보자는 의미의 세계주의를 부활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취적인 사람들이 우주에 나가서 지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다들 우주에 갈 수는 없지만 사진이라도 보면서 상상해 보자. 장하석 /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중앙 시평 우주 탐사 우주 탐사 우주비행사 암스트롱 달나라 탐사

2022-12-23

[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팽창하는 우주

아인슈타인은 이미 120년 전에 시간은 일정하지 않고 상대적이란 생각을 인류 최초로 했던 사람이다. 게다가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이란 개념도 질량을 가진 천체가 공간을 누르므로 생긴 공간 왜곡 현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가장 간단한 E=mc²라는 질량-에너지 공식을 만들었으며, 광양자 설로 양자역학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런 천재의 눈에도 이 우주는 항상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였던가 보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뉴턴에 이르기까지 이 우주는 무한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아인슈타인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자연과학이 발달하면서 그런 정적인 우주에 반하는 이론, 즉 동적 우주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벨기에의 가톨릭 신부 조르주 르메트르가 태초에 우주가 한 점에서 폭발하여 시작했을 것이라는 빅뱅 이론을 주창하자, 러시아 출신 미국의 과학자였던 조지 가모프가 이 팽창 우주론을 지지했다.     그런데 정상 우주론자였던 영국의 프레드 호일은 우주 공간이 지속해서 팽창하고 있다는 동적인 우주론 입장이긴 했지만, 어느 날 그가 라디오 대담 프로에서,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은 이 우주가 태초에 '꽝(Big Bang)'하고 터지면서 시작했다네요"라고 비꼬았다. 그렇게 비아냥거렸던 빅뱅 이론이 지금은 거의 정설로 굳고 있다.   만약 이 우주가 팽창하지 않는다면 은하와 은하 사이의 중력에 의해서 서로 가까워져야 하고, 결국 스스로 찌부러진다는 생각을 한 아인슈타인은 그런 중력에 반하는 어떤 힘을 가정하고 그것을 우주 상수라고 이름 지어서 자신의 상대성이론을 합리화시켰다. 몇 년 후 허블에 의해서 은하와 은하 사이가 점점 멀어진다는 것이 증명되자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억지를 부려서 만든 우주 상수를 폐기했다.   허블의 업적은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나중에 팽창 속도를 구해서 역으로 계산해 보았더니 138억 년 전에 모든 것이 한 지점에서 퍼져나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실수를 바로 인정했다. 최근에 이르러 우주는 점점 빠르게 팽창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런데 문제는 가속 팽창하는 우주가 어느 순간 중력을 이기게 되면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팽창하다가 결국 찢기는 상태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우주는 중력에 대항하는 그 어떤 힘이 있는지 그동안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빛을 포함한 전자기력에 의해서 반응하는 물질이라는 것은 이 우주에 고작 4%밖에 없다. 그 나머지는 우리가 알 수 없고, 그것을 우리는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이라고 이름 붙였다. 아인슈타인이 죽기 전에 예견했던 중력파도 최근에 발견되었다. 어쩌면 아인슈타인의 실수였던 우주 상수도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과 어떻게든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이 글을 쓰고 읽는 순간에도 우리 우주는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고 있는데 우리로부터 138억 광년 떨어진 먼 우주는 빛의 속도로 우리와 멀어지고 있다고 한다. (작가)         박종진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팽창 우주 우주 상수도 팽창 우주론 동적 우주론

20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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