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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의 시대 어두운 내면을 엿듣는 예리한 귀

현대 영화사의 걸작들인 ‘대부’, ‘대부2’, ‘지옥의 묵시록’ 등을 감독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1974년 ‘대부’의 차기작으로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을 발표했다. 영화는 그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상 작품상,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코폴라의 다른 대작들에 비해 비교적 생소한 이 영화는 ‘대부 1’(1972)과 ‘대부 2’(1974) 사이에 발표됐다. ‘대부’ 시리즈에 비하면 캐스팅, 제작비 면에서 규모가 작은 영화로 보일지 모르지만 무너지는 미국의 도덕에 들이대는 코폴라의 칼날이 예사롭지 않다. 코폴라와 주연 배우 진 해크먼은 추후 이 영화를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밝힌 바 있다.     코폴라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지속적으로 재편집하는 완벽주의자로 정평이 나있다. 오늘날 여러 버전의 ‘대부’ 시리즈와 ‘지옥의 묵시록’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러나 코폴라는 1974년 개봉한 이래 50주년이 되는 오늘까지 이 영화만큼은 손을 대지 않았다. 그 스스로도 완벽한 영화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멀리 떨어진 곳, 방해 전파와 소음 속 낯선 이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이 직업인 도청 전문가 해리 콜(진 해크먼).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거주지를 옮긴 그는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며 고립된 ‘감시자’의 삶을 살고 있다. 수줍은 성격의 해리는 필연적으로 외롭고  우울하다. 뉴욕에서 있었던 불행한 일이 아직도 그의 잠재 심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혼자 아파트에 있을 때만 색소폰을 연주하는 해리의 연락처를 누구도 알지 못한다.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는 여성과의 만남조차도 거리를 유지한 채 절제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해리는 거금의 착수금을 받고 젊은 커플의 일상을 도청하라는 의뢰를 받는다.     샌프란시스코 공원에서 도청한 커플의 대화에는 이들이 불륜 관계이고 ‘그’가 그들을 죽일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해리는 이들의 일상의 대화를 음모로 오인한다. 무고한 사람이 죽어야 했던 뉴욕에서의 일이 되풀이될 것 같은 불안이 그의 심리를 파고든다. (당대의 조연 배우이며 코폴라가 최애했던 로버트 듀발이 크레딧 없이 의뢰인 ‘그’를 연기한다.)   남의 대화를 엿들어야 하는 해리의 심리는 늘 양심과 충돌한다. 비극이 임박해 오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그는 의뢰인에게 테이프를 넘기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그의 ‘음모론’은 더욱 그를 고립시키고 동료,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고통의 당사자는 도청을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청 전문가로 자부해왔던 해리 자신이다.     해리는 결국 도청 테이프를 빼앗기게 되고 젊은 커플이 암살당하기 전 테이프 속에 담긴 그 누군가와 증거를 찾기 위해 호텔로 향한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정반대의 상황에 부딪힌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로 알았던 의뢰인이 피해자가 되어버린 기막힌 상황에 이르자 해리는 이제껏 자신을 지탱해주던 정체성에서 이탈해버린다.     극도의 불안 증세, 무력감과 절망감, 죄의식이 그를 조여온다. 그의 모든 것을 삼켜버린 편집광적 의심은 마침내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광기를 유발하기에 이른다.     해리의 광기는 고독과 단절의 다른 모습이다. 영화는 해리가 누군가 자신을 도청하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미친 듯이 아파트 전체의 바닥을 뜯어내고 허탈감에 빠져 그나마 온전히 남아 있는 색소폰을 연주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컨버세이션’은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의 수사 직전에 발표되었다. 영화가 발표된 1970년대는 베트남 전쟁과 반전운동, 흑인들의 민권운동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차이나타운’(1974),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 ‘마라톤 맨’(1976), ‘블랙 선데이’(1977), ‘브라질에서 온 소년’(1978) 등 음모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이 시기에 쏟아져 나왔다.     코폴라 감독은 해리의 도청과 감시를 관음증의 한 형태로 표현한다. 철저히 단절된 상태에서 남을 엿보는 감시와 도청이 지속되는 동안 해리의 죄의식은 쌓여만 간다. 그 누구도 그를 도와줄 수 없다. 혼자만의 처절한 사투 끝에 반전의 결말은 충격과 고통 그 자체이다.   감독의 예리하고 냉소적인 관찰은 진 해크먼이라는 대배우의 대체불가 연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해크먼은 관음에 대한 죄의식으로 고민하고 방황하는 가운데 나락으로 빠져가는 해리의 어두운 심리를 스릴과 서스펜스로 묘사해낸다.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고 내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해크먼은 자신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이전 작품 ‘프렌치 커넥션’(1971)을 통해 각인시켰던 냉정하고 강직한 캐릭터를 이 영화에 그대로 가져온다. 두 인물 모두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 조용히 무너져 내리는 안티 히어로들이다. 당시 44세의 해크먼은 노년에 접어들어 주연 못지않은 조연 연기로 더욱 그의 진가를 발휘했다. ‘수퍼맨’ 시리즈의 렉스 루터 역은 그가 연기한 대표적 악역이었다.   레인코트를 걸치고 철 지난 뿔테 안경 차림의 내성적인 해리는 사실 외향적인 성격의 해크먼과는 반대되는 인물이어서 연기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엔딩의 색소폰 연주 장면을 위해 해크먼이 색소폰을 배웠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영화에는 메릴 스트립의 연인이었으며 고작 5편의 영화에 출연, 영화 5편이 모두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그중 3편이 작품상을 수상했던 존 카제일(‘대부’에서 마이클의 둘째 형 프레도 역), 젊은 시절의 해리슨 포드, 해크먼에 버금가는 연기파 배우 로버트 듀발 등이 모습을 보인다. 김정 영화평론가내면 음모 그해 칸영화제 현대 영화사 코폴라 감독

2024-09-11

"거칠지만 순정의 영화…아직도 볼 때마다 싱싱"

1974년은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이 그어진 해다. 신인 감독이 만든 영화 한 편이 충무로를 뒤흔들었다. 이장호 감독의 데뷔작 ‘별들의 고향’은 당시 서울에서만 무려 46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흥행 신기록이었다. 별들의 고향은 ‘이장호’란 이름을 한국 영화 역사에 각인시킨 작품이다. 충무로의 거장 이 감독이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별들의 고향’ 상영회 참석차 LA를 방문한 그를 지난달 30일 만났다.   50년이 지나서 보는 '별들의 고향'은.   “시간이 날 때 종종 본다. 예전 영화인데, 옛날 영화 같지 않다. 볼 때마다 아직도 싱싱한 느낌이다.”   싱싱하다는 것은.   “원래 뭘 알게 되면 겁이 생기지 않나. 20대 때 만든 작품이었다. 그때는 뭘 모를 때니까 싱싱한 게 막 기어 나왔다.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이 그런 것 아니겠나. 아마 그때 관객들도 그런 감정을 느꼈을 거라 본다.”   어떻게 제작하게 됐나.   “한마디로 ‘운’이라고 말하고 싶다. 친구인 최인호 씨의 소설을 영화화할 기회를 얻게 됐다. 어릴 때라 욕심도 많았다. 그때 신상옥 감독 밑에서 조감독만 8년을 했다. 신 감독에게 작품에 관해 얘기하니까 감독으로 데뷔는 시켜주겠지만, 촬영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자고 하더라. 그렇게 하면 진짜 감독이 될 수 있겠나 싶었다. 그래서 거길 뛰쳐나왔다. 욕심은 있고, 서툰 상태에서 만든 영화다.”   왜 흥행할 수 있었나.   “내가 1945년생이다. 첫 한글 전용 세대인데, 처음으로 미국식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세대다. 1970년대는 우리 세대만의 독특한 문화가 생겨날 때였다. 송창식, 이장희 등 노래도 달라지고, 한글 중심의 한국식 발라드도 나올 때였다. 그런 시대적 맥락에서 ‘별들의 고향’이 나왔다. 그 당시 세대의 감각에 맞았던 것 같다.”   만약 지금 다시 ‘별들의 고향’을 만든다면.   “싱싱하지만 분명 거친 게 있다. 세련되지 못한 부분도 있다. 지금 다시 만든다면… 더 감각적으로, 좀 더 느린 템포로 만들 것 같다.”   오늘날 충무로는 어떤가.   “때가 잔뜩 묻었다. 상업적으로 관객의 비위를 잘 맞춘다. 돈맛을 아는 감독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그 점이 참 아쉽다. 젊은이가 젊은이답게 싱싱한 면이 있어야 하는데 매끄럽고 처세에 밝다. 한국영화가 첫 순정을 잃었구나 싶다.”   요즘은 어떤 작품을 준비 중인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건국의 역사, 구국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작품이다. 그동안 좌파로 살아왔다. 그런데 거기서 벗어나서 폄하했던 것, 왜곡됐던 것을 담아보려 한다. 작품을 위해 공부를 해보니 ‘한국의 역사는 기적이었구나’를 깨닫게 된다.”   반발은 없었나.   “‘드디어 돌았구나’라는 말도 들었다. 아는 후배가 교회를 세웠다.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면서 사회를 바라보니 속 좁게 보았던 부분을 다시 보게 되더라. 불행, 시련, 내리막길… 이런 게 모두 나중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원래는 자유민주주의를 세울 수 없는 국가였는데… 애국가에도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가사가 있지 않나.”   신앙을 가진 후 무엇이 변했나.   “과거에는 죽는 게 두려웠다. 지금은 두렵지 않다. 무섭지가 않다. 인생의 마무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나. 제정신을 찾는 것이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영화도 정신 못 차리고 만들었다. 이제는 정신을 좀 차렸다. 신앙을 통해 정리된 삶을 살고 있다.”   ‘별들의 고향’ 상영회는 어땠나.   “LA CGV와 샌프란시스코 한인회관에서 상영회를 열었다. 양쪽 모두 관객이 너무 많아서 다 못 들어갈 정도였다. 아직도 이 영화를 좋아해 주니까 너무 감사하다.”   ☞이장호 감독은   1974년 영화 ‘별들의 고향’으로 데뷔하며 그해 대종상신인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후 ‘바람불어 좋은 날’, ‘어둠의 자식들’, ‘바보 선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외인 구단’, ‘어우동’, ‘무릎과 무릎 사이’ 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 국내외 각종 영화상을 휩쓸며 당대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 섰다. 장열 기자·jang.yeol@koreadaily.com한국 영화사 이장호 감독 별들의 고향 1974년 충무로 LA 미주중앙일보 로스앤젤레스 장열

2024-06-06

씹다 버릴 껌 취급…영화사 최대의 핵무기 조롱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그리고 3일 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다. 제2차 세계대전에 종말을 고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후 역사의 주도권은 더 이상 인류가 아닌, 핵으로 넘어간다. 그들은 신무기가 전쟁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원자폭탄은 점차 인류를 위협했고, 세상은 지금까지 멸망의 기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사에서 전쟁이 중단된 적은 한번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는 동안, 원로들은 협상 테이블에 앉아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들의 안위와 이익을 우선적으로 챙긴다. 그들에게 원자폭탄은 껌과 같은 존재이다.     올해로 개봉 60주년을 맞은 스탠리 큐브릭의 매스터피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연신 껌을 씹고 있다. 껌의 역할은 불안을 완화하는 일이다. 단물이 빠지면 뱉어 버리면 그만이다. 껌은 일회성이라는 본질에 반해 사라지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원자폭탄이 일본에 투하되고 있을 때, 핵무기를 껌 정도의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있던 늙은이들이 모여 앉아 인류 평화를 논한 결과다.   큐브릭 감독은 단물을 다 빨아먹고 나면 뱉어 버리는 책임감 없는 정치인들에 대한 풍자의 도구로 껌을 사용했다. 영화의 부제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걱정할 필요 없어. 폭탄 하나만 있으면 돼)은 큐브릭 감독이 인류사에 던진, 영화사상 최대의 조롱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허무주의, 절망과 광기에 대한 심화된 고찰이며 전쟁과 정쟁을 유머로 승화한 최고의 영화로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개발로 위기감이 고조되던 냉전 시대에 발표됐다. 그러나 핵에 관한 인류의 우려는 60년이 지났어도 본질적으로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영화에 담겨 있는 메시지와 많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영화의 모든 설정은 큐브릭의 우스꽝스러운 상상에서 시작한다.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기반하지만 그 설정을 완전히 뒤틀어 버린다.     인류는 언제부터인가 폭격만능주의에 빠져 있다. 냉전시대 미 공군 참모총장을 지낸 커티스 르메이는 “We're going to bomb them into the Stone Age”(폭격으로 석기시대로 되돌려 보내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미사일과 폭탄이 눈앞에 당면한 문제 해결의 최선책이라고 믿는 사람은 르메이 뿐만이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반공주의자 잭 D. 리퍼 장군은 전형적인 폭격 만능주의자다. 그는 성기능 장애의 원인이 소련의 공산주의자들이 불소로 미국 남성들의 힘을 빼고 있기 때문이라 믿는다. 리퍼 장군이 난사하는 기관총은 남성의 성기를 의미한다. 증류수와 빗물만 받아 마시는 그는 마침내 소련을 응징하기 위해 핵폭탄을 실은 폭격기를 발진한다.   리퍼 장군의 망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치의 게르만 우월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마지막에 가서야 등장하는 나치 독일의 망명 과학자 스트레인지러브 박사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성을 중심으로 국가를 세우고 남녀 비율은 1 대 10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트레인지러브 박사의 이러한 제안은 나치의 '히틀러 유겐트'를 연상케 한다. 나치는 제1제국을 신성로마, 제2제국을 독일제국으로 보고, 나치 지배의 제3제국 수립을 선포했다. 유소년과 청소년들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훈련시켜 엘리트들을 양성한다는 '인류 계획'이었다.     큐브릭은 영화를 통해 결과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이 본질적으로 나치, 소련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시사한다. 기득권 정치인들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얼마나 희생되는지에 관심이 없다. 그저 껌처럼 씹고 뱉으면 그만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인들은 대화를 시도하지만 종국에는 실패로 돌아간다.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으로는 절대 타협점을 찾을 수 없다. 머플리미 대통령이 전쟁 상황실에서도 서로 싸우는 참모들에게 “Gentlemen, you can’t fight in here. This is the War Room!”이라는 대사를 던지는 장면은 상징하는 바 크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전쟁에서 아이러니를 찾고 비참한 코미디로 마무리된다. 영화가 최고의 정치 풍자극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피터 셀러스라는 위대한 천재 배우의 연기 때문이다. 출세작 ‘핑크 팬더’와 1인 다역으로 유명한 그는 3명의 중심 캐릭터 라이오넬 맨드레이크 영국군 장교, 머킨 머플리 미국 대통령 그리고 스트레인지 박사를, 돌아가면서 시니컬한 익살과 씁쓸함으로 연기해낸다.     영화는 핵이 폭발하는 몽타주와 함께 노래 ‘We’ll meet again'으로 끝이 난다. 자신들의 기득권과 안위를 우선시하는 자들이 전쟁 상황실에 모여 앉아 있는 한 전쟁은 반복될 것이다. 3차대전 이후 인류는 더 이상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60년 전큐브릭이 경고한 인류의 섬뜩한 미래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핵무기 영화사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영화사상 최대 핵무기 개발

2024-02-02

파업의 여름, 폭염 속 시민은 이중고…오늘 LA시공무원 1만명 시위

LA를 들끓게 하는 ‘여름 대파업’이 할리우드, 호텔업계에 이어 시 공무원들에게 까지 확산하고 있다. 노사 갈등에 따른 각종 서비스 차질은 폭염 속 시민들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되고 있다.     LA시에 고용된 지역 산별노조(SEIU 721) 노조원 1만여 명이 파업에 돌입한다. 이들은 주로 시 관리 재산의 청소, 보수 유지 및 관리를 담당하는 직원들이며 공항의 청소와 위생 관련 노동자들도 포함된다. 30여 곳에서 온종일 파업 행진과 시위가 예상된다.   시 당국은 오늘 관내 쓰레기 수거가 중단돼 하루씩 늦어지게 되며, 주차 단속, 야외 행사 관련 교통 통제 서비스 등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다만 관내 모든 경찰국 및 소방국 서비스는 정상 제공되며, 도서관과 유아원도 정상 운영된다고 밝혔다. 공공 수영장의 경우는 지역에 따라 폐쇄되거나 단축 운영될 수 있으며 LA 국제공항은 충분한 시간 여유를 두고 이용해달라고 당부했다. 시민 민원서비스 전화인 ‘311’ 서비스는 정상 운영되지만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캐런 배스 시장은 5일 짧은 입장문을 통해 “노조원들의 서비스는 수많은 시민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며 “노조원들은 정당하고 공정한 계약 조건을 요구할 권리가 있으며 시는 협상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전했다.   데이비드 그린 노조위원장은 “시는 파업으로 빠진 인력을 보충해야 할 것이며 시민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도 경청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1년짜리 계약에 서명한 노조와 시 당국은 24일 새로운 계약 협상을 재개할 예정이다.   ▶호텔 파업, 한달여 계속   호텔 노동자 파업은 그 규모가 개별 호텔로 분산되면서 관심도가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유나이트 히어 로컬11 소속 노조원들은 피켓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LA 다운타운은 물론 샌타모니카, 롱비치 등 호텔 인근에서는 아침 이른 시간에 시위 행렬을 볼 수 있다. 협상 결렬이 장기화하면서 노조원들은 출근 직전, 퇴근 직후에 시위 행렬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외침을 이어가고 있다.   7월 초 휴가 시즌을 눈앞에 두고 파업을 단행했던 호텔 노동자 노조는 호텔 업주 측이 제시한 추후 12개월 동안 시간당 2.50달러 임금 인상과 4년에 걸쳐 총 6.25달러의 추가 인상안을 거부한 상태다.   ▶할리우드 파업도 난항 지속   할리우드 작가들의 파업은 현재 LA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TV 프로그램 창작자들의 축제인 에미상 시상식도 9.11테러 이후 22년만에 취소돼 내년으로 연기됐다. 지난 4일 작가 조합(WGA)은 정당한 어떤 조건도 고려해보겠다며 제작자 측을 대표하는 프로듀서 연합회(AMPTP)와 대화를 제안해 만났지만, 다시 평행선을 그리며 끝났다.   문제는 작가들의 파업에 발맞춰 배우 조합원들까지 일제히 3주 전에 파업에 나서면서 콘텐트 제작 자체가 불가능해진 상황이라는 것이다. 유사한 작가 파업은 2007년과 2008년에 벌어진 바 있는데 지난주 협상 직전 WGA는 성명을 통해 “유례에 없는 파업으로 모두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협상 상대가 비공식적인 대화 채널이 있다고 소문을 내는 등 소통이 더욱 어려워진 상태”라고 밝힌 바 있다.   구체적인 협상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경전이 길어지고 있으며 당분간 제작 스튜디오는 비어있는 상태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한편 여름 휴가로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할리우드 인근에는 작가들의 피켓 시위가 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이밖에 가주 아마존 배송 운전기사 80여명이 사상 처음으로 노조를 결성해 지난 6월부터 무기한 파업중이다. 이들은 폭염속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아마존의 운전기사들은 100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하루 400건 이상의 배송 업무를 처리해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인성 기자 ichoi@koreadaily.com파업 다운타운 인터컨티넨탈 호텔 노동자들 파라마운트 영화사

2023-08-07

[영화몽상] 모험 영웅의 마지막 귀환

1980년대의 영화 팬이라면 ‘인디아나 존스’는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4편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털 해골의 왕국’은 2008년인데, 1편 ‘레이더스’부터 3편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까지는 모두 80년대에 개봉했다.   개인적인 기억은 2편 ‘인디아나 존스’부터다. 중·고교마다 전교생 단체관람으로 ‘킬링 필드’를 보러 가던 때로 기억하는데, 이웃 학교 고학년들이 단체관람을 빠지고 다른 영화를 보러 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수업 대신 영화를 보는 자체가 좋았던 터라 그 이유를 몰랐다. 바로 그 영화가 ‘인디아나 존스’였다.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다. 이색적이고 이국적인 배경에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액션, 임기응변에 능한 주인공의 매력과 흥을 돋우는 음악까지 할리우드 오락영화의 맛을 제대로 알려줬다. 주인공이 고고학자인지, 고고학자가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정확히  알았던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요즘 처음 봤다면 감상이 좀 달랐을지 모르겠다. 서구 이외의 세계를 묘사하는 할리우드의 시선, 남의 나라 유물을 약탈했던 제국주의 역사를 의식하며 비판할 점부터 찾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새로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4편 이후 15년 만에 나온 5편. 30대에 인디아나 존스를 연기하기 시작한 해리슨 포드는 이제 80대 초반이다. 극 중 젊은 시절 묘사에 디지털 기술의 도움을 받을 거라는 건, 이미 알려졌던 터. 영화를 보면서는 엉뚱한 걱정을 혼자 했다. 대역 등이 있었더라도 액션 장면이 이 배우에게 과하진 않았을까, 이러다 인공지능으로 해리슨 포드를 만들어 시리즈를 이어가면 어쩌지 등등. 알고 보니 전편들의 설정에 따르면 인디아나 존스는 1899년생. 1969년이 주요 배경인 이번 영화에서는 아직 70대 초반이다. 또 외신 보도에 따르면 영화사 디즈니는 이번이 시리즈의 마지막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어찌 됐건 영화의 마지막 대목에서야 비로소 안도했다. 교수도 퇴임하고 아내와도 별거하던 인디아나 존스는 옛 동료의 딸 때문에, 나치 잔당에 맞서 고대 아르키메데스의 발명품을 찾으려는 모험에 나섰다가 무사히 집에 돌아온다. 명성을 얻는 대신 상처 많은 삶을 마주하며 회복을 꿈꾸는 결말이란 점도 마음에 들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아닌 다른 감독이 이 시리즈를 연출하는 건 처음인데, 각본에도 참여한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이 시리즈의 미덕을 잘 아는 듯 보인다. 위치 추적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는 시대를 배경으로, 물론 실제는 디지털 기술을 많이 결합했겠지만, 아날로그 단서와 탈 것만으로 시리즈의 고전적 추격전을 펼친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할리우드에서도 실현되기를, 인디아나 존스의 모험도 여기서 마무리되기를 바라게 된다. 이후남 /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영화몽상 모험 영웅 할리우드 오락영화 영화사 디즈니 추격전과 롤러코스터

2023-07-09

할리우드 작가들 총파업…작가단체-제작사 협상 결렬

영상 스트리밍 시대에 걸맞은 보수체계 개편을 요구해온 작가단체가 결국 총파업을 강행하기로 했다.   작가조합(WGA)은 1일 월트디즈니, 넷플릭스 등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들과 진행해온 임금인상 단체교섭이 아무런 소득 없이 최종 결렬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WGA 소속 조합원 1만1500명은 이르면 기존 협약이 종료되는 2일 낮 12시 1분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WGA 차원의 총파업은 2007년 말 이후 약 16년 만이다. 당시 파업은 2008년 초까지 약 100일간 지속했다.   이 단체는 웹사이트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제작사들은 노동시장 내부에 ‘긱 이코노미’(gig economy·임시 계약직 위주의 인력운용)를 만들었고, 이번 협상에서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으며 작가 업무를 평가절하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배신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형 제작사들을 대표하는 영화·TV제작자연맹(AMPTP)은 “WGA와 합의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인상을 제안했다”며 반박했다.   WGA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며 드라마·시트콤 등 시즌당 편수가 평균 20여편에서 10편 남짓으로 줄어든 데다 작품 재판매 수익을 지급하는 재상영분배금(residual) 역시 감소했지만, 업무량은 오히려 늘어나며 작가들의 어려움이 커졌다는 입장이다.   인공지능(AI) 활용 작업 여부도 뜨거운 감자다. WGA는 제작사들이 AI를 활용해 이전에 작가들이 작업한 시나리오·각본에서 새로운 스크립트를 생성하거나, 이렇게 AI가 만든 대본 초안을 작가들에게 손보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파업이 현실화하면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팰런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등 심야 인기 토크쇼의 제작이 중단되는 것은 물론 일부 드라마들의 방영도 중단될 수 있다고 로이터는 전망했다.   특히 가을 시즌 방영되는 TV 프로그램들의 제작을 위한 대본 집필이 통상 5∼6월쯤 시작된다는 점에서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올가을 새로운 작품 공개가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이번 파업의 불씨가 다른 직역으로도 옮겨붙을 공산이 크다고 AP는 짚었다. 배우방송인조합(SAG-AFTRA)과 AMPTP 간 기존 계약은 6월 30일 만료되며, 오는 10일부터 협상이 시작된다.     김상진 기자사설 할리우드 할리우드 작가 파라마운트 영화사 피켓 시위

2023-05-03

[영화몽상] ‘대부’와 할리우드의 반세기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저는 미국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영화의 팬이라면 눈치챘겠지만, 모두 ‘대부’의 대사에 나오는 표현이다.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가족을 통해 마피아의 세계를 그린 이 영화는 미국에서 1972년 개봉해 엄청난 호평과 함께 기록적인 흥행 성공을 거뒀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널리 회자하는 것은 대사만이 아니다. 말런 브랜도가 연기한 ‘대부’ 비토 콜레오네의 카리스마, 가업을 멀리하려다 결국 아버지를 이어 비정한 대부가 되는 셋째 아들 마이클 콜레오네의 변신을 비롯해 캐릭터와 연기, 장면과 촬영, 연출과 원작 등 얘깃거리가 넘쳐난다.   이제는 전설이 되다시피한 제작과정도 마찬가지. 마이클 역의 알 파치노처럼, 코폴라 감독이 낙점한 캐스팅 대부분이 영화사 파라마운트의 반대에 부딪혔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1편의 대성공 덕에 3편까지 만들게 되지만, 코폴라도 처음부터 이 영화를 내켜 하진 않았다. 젊은 신예였던 그를 추천한 사람은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인 파라마운트 간부 피터 바트. 직전에 마피아 영화 여러 편이 흥행에 참패한 데다, 폭력과 범죄를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기에 십상인 소재라 이미 여러 감독이 연출을 거절한 뒤였다.   코폴라는 자신의 영화사 조트로프가 한창 돈에 쪼들리고 있던 상황이라 연출을 맡긴 했지만, 그의 비전은 파라마운트와 수시로 부딪혔다. 나중에 피터 바트가 밝힌 바에 따르면 파라마운트는 몇 번이나 코폴라를 해고하려 했단다.   이런 와중에 요즘 말로 ‘영혼을 갈아 넣어’ 영화를 만들었으니 코폴라 감독이 대단해 보일 수밖에. 새삼 눈에 띄는 것은 또 있다. 당시 할리우드가 황금기를 누리기는커녕 나날이 극장 관객 수가 줄어드는 힘든 시절이었다는 점이다. 그 중에도 파라마운트는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마침 베스트셀러 원작의 영화 ‘러브 스토리’로 뜻밖의 대성공을 거둔 이후 또 다른 베스트셀러를 찾아 영화화에 나선 것이 ‘대부’였다고 한다.   이처럼 우여곡절 속에 탄생한 ‘대부’는 명실상부 할리우드의 걸작으로 대접받는다. 50주년인 올해 파라마운트는 3부작을 최신기술로 복원한 고화질 버전을 내놓았다. 얼마 전 아카데미 시상식은 코폴라 감독과 알 파치노, 2편에서 비토 콜레오네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로버트 드니로 등 세 사람을 무대에 세워 50주년을 기념했다.   할리우드가 잘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처럼 자신의 자랑스러운 유산을 끊임없이 불러내는 점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전통적인 할리우드가 아니라 넷플릭스 같은 OTT가 주도하는 지금 시대의 영화도 몇십년 뒤, 이를 기념하게 될까. 이후남 / 한국 문화선임기자영화몽상 할리우드 반세기 영화사 파라마운트 명실상부 할리우드 당시 할리우드

2022-04-13

[J네트워크] 영화 ‘대부’와 할리우드 반세기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저는 미국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영화의 팬이라면 눈치챘겠지만, 모두 ‘대부’의 대사에 나오는 표현이다.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가족을 통해 마피아의 세계를 그린 이 영화는 미국에서 1972년 개봉해 엄청난 호평과 함께 기록적인 흥행 성공을 거뒀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널리 회자하는 것은 대사만이 아니다. 말런 브랜도가 연기한 ‘대부’ 비토 콜레오네의 카리스마, 가업을 멀리하려다 결국 아버지를 이어 비정한 대부가 되는 셋째 아들 마이클 콜레오네의 변신을 비롯해 캐릭터와 연기, 장면과 촬영, 연출과 원작 등 얘깃거리가 넘쳐난다.   이제는 전설이 되다시피한 제작과정도 마찬가지. 마이클 역의 알 파치노처럼, 코폴라 감독이 낙점한 캐스팅 대부분이 영화사 파라마운트의 반대에 부딪혔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1편의 대성공 덕에 3편까지 만들게 되지만, 코폴라도 처음부터 이 영화를 내켜 하진 않았다. 젊은 신예였던 그를 추천한 사람은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인 파라마운트 간부 피터 바트. 직전에 마피아 영화 여러 편이 흥행에 참패한 데다, 폭력과 범죄를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기에 십상인 소재라 이미 여러 감독이 연출을 거절한 뒤였다.   코폴라는 자신의 영화사 조트로프가 한창 돈에 쪼들리고 있던 상황이라 연출을 맡긴 했지만, 그의 비전은 파라마운트와 수시로 부딪혔다. 나중에 피터 바트가 밝힌 바에 따르면 파라마운트는 몇 번이나 코폴라를 해고하려 했단다.   이런 와중에 요즘 말로 ‘영혼을 갈아 넣어’ 영화를 만들었으니 코폴라 감독이 대단해 보일 수밖에. 새삼 눈에 띄는 것은 또 있다. 당시 할리우드가 황금기를 누리기는커녕 나날이 극장 관객 수가 줄어드는 힘든 시절이었다는 점이다. 그 중에도 파라마운트는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마침 베스트셀러 원작의 영화 ‘러브 스토리’로 뜻밖의 대성공을 거둔 이후 또 다른 베스트셀러를 찾아 영화화에 나선 것이 ‘대부’였다고 한다.   이처럼 우여곡절 속에 탄생한 ‘대부’는 명실상부 할리우드의 걸작으로 대접받는다. 50주년인 올해 파라마운트는 3부작을 최신기술로 복원한 고화질 버전을 내놓았다. 얼마 전 아카데미 시상식은 코폴라 감독과 알 파치노, 2편에서 비토 콜레오네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로버트 드니로 등 세 사람을 무대에 세워 50주년을 기념했다.   할리우드가 잘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처럼 자신의 자랑스러운 유산을 끊임없이 불러내는 점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전통적인 할리우드가 아니라 넷플릭스 같은 OTT가 주도하는 지금 시대의 영화도 몇십년 뒤, 이를 기념하게 될까. 극장 재개봉이나 DVD 한정판 발매 같은 방식이 그때에도 통할까. 이후남 / 한국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J네트워크 할리우드 반세기 영화사 파라마운트 명실상부 할리우드 영화사 조트로프

2022-04-11

[열린 광장]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능력

 겨울이 되면 우리는 봄을 기다린다.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어찌 봄 뿐일까. 코로나가 가져온  어두운 기운을 쫓아낼 희망의 전령도 같이 기다린다.   실패했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새롭게 시작한 일이 큰 성공이 되는 경우도 있다.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이다. 그는 디지털 혁명을 통해 인류의 삶을 크게 변화시켰다.   2005년 6월 그는 스탠퍼드 대학의 졸업식에서 그의 출생, 성공과 좌절 등에 관해 짧지만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대학원생으로 미혼모였던 스티브 잡스의 생모는 그를 입양하기로 결심한다. 우여곡절 끝에 양부모에게 입양됐는데 그들은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생모는 강력하게 요청해서 아들을 꼭 대학에 보내주기로 약속 받고 입양동의서에 서명했다. 스티브는 17세에 칼리지에 입학했다. 양부모의 평생 모은 돈이 학비로 다 사용되는 것을 보고 6개월 뒤 자퇴하기로 결심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컸지만 18개월을 더 캠퍼스에 머물며 듣고 싶은 과목을 청강했다. 기숙사 친구 방의 바닥에서 잠자고, 음식을 사 먹기 위해 5센트짜리 빈 캔을 모았다. 그때 청강한 과목 중에 서체학이 있었다. 당시 리드 칼리지는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서체학 강좌를 가지고 있었다. 이 공부가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될지 전혀 몰랐지만 그는 자신의 의지, 직관, 선택을 믿었다.   20세에 양아버지의 차고에서 친구와 애플을 시작하고 9년 뒤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매킨토시를 만들 때 그때 배운 서체학이 사용됐다.     애플에서 큰 성공을 거뒀지만 그는 30세에 애플에서 쫓겨나게 된다. 세상이 끝나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이뤄 온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고 생각했다. 몇 달간의 방황 끝에 자신 속에 아직도 자기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음을 깨닫고 다시 일을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영화사 픽사와 넥스트를 설립하고 5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 애플에서는 성공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일을 아무 부담 없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연구하고 개발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때 설립한 애니메이션 영화사는 지금 세계 최고가 되어 있다. 어려움을 겪던 애플로 다시 돌아간 그는 그때 만든 혁신기술로 애플을 재도약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는 일생에서 겪었던 가장 어려운 역경과 시련을 극복하고, 가장 위대한 성취의 기회로 활용한 것이다.   우리에게 일생에서 겨울이 있다면 지금일 것이다. 코로나처럼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일깨워 준 것은 일찍이 없었다. 그동안 이룩했다고 자랑스러워했던 모든 것들이 일순간에 사라지는 경험도 했다. 백신접종 문제로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돼 서로 비난하는 아픈 경험도 했다. 아직도 언제 더 무서운 변이가 나타날지 몰라 무거운 마음이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생각하고 믿어야 한다. 우리는 역경과 시련을 벗어나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라도 극복되지 않는 것은 없다. 겨울이 지나면 다시 일상이 회복되는 봄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때 지금 한 일이 자양분이 되어 앞으로의 우리 삶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현명하게 겨울을 보내며 멀리 내다보고 더 큰 마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지금 겪는 시련 때문에 새로 시작한 일이 우리 일생을 바꾸는 경험을 꼭 스티브 잡스만 하라는 법은 없다.  최성규 / 베스트영어훈련원장열린 광장 위기 기회 출생 성공 서체학 강좌 애니메이션 영화사

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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