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내 영혼…아시안 목소리 담고 싶다
한인 1.5세 영화감독이 만든 영화들이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동남부의 명문사립 '애틀랜타 그레이터 주니어 시니어 크리스천 스쿨'을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유펜)에서 정치학 학사,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영화, 하버드 대학원에서 정책학 등 석사 학위를 받은 정세윤씨는 지금까지 30여 편 영화의 프로듀서 및 감독을 맡았다. 2020년에는 위안부 문제를 다룬 ‘침묵을 깨다(Breaking the Silence)’로 오스카상 단편영화 부문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어둠 공포증(Nyctophobia)’이란 영화를 만들었다. 이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로 악몽 등의 이유로 잠들기 두려워하는 주인공의 감정선을 그린 영화다.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 IMDb에 따르면 정 감독은 지금까지 전 세계 영화제에서 68개의 상을 받았고 26개 상의 후보로 올랐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 감독은 아직도 미국의 영화계는 백인 중심이라며 아시아계 등 소수계가 이른바 주류 영화계로 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규정화된 영화, 즉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가 아닌 그가 만드는 실험주의적 영화는 관심을 덜 받고 있다고 했다. 감독으로서 더 권위적인 상을 수상하고 싶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신념을 버리고 영혼을 팔 생각은 없다며 그가 추구하는 방향의 영화를 계속 만들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정치학을 공부한 뒤 전공을 영화로 바꾼 계기가 궁금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정치학을 좋아했고 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부패한 정치인들도 많이 봤고 내가 현실 정치 현장에 뛰어들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로펌에서 인턴도 했는데 너무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전화 녹취를 정리하거나 문서를 검토하는 일이 따분하게 느껴졌다.” -작품들을 보면 정치학을 공부한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작품들도 많다. “나는 정치와 사회 문제가 영화나 다른 예술 작품들과 연관돼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연관성을 못 보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영화나 음악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도구라고 본다. 미국의 경우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곳임에도 아시아계, 흑인, 혹은 라틴계 커뮤니티에 대해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데 이를 알리고 싶다.” -개인 홈페이지를 보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소외 계층의 목소리를 알리고 싶다는 문구가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 다른 문제 등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 미국인들은 아시안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타이완에서 왔든 일본에서 왔든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은 그들이 소수계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다. 세계지도를 보면 가장 큰 대륙은 아시아다. 중국, 한국, 인도 등이 속해 있는 아시아는 인구도 제일 많고 소수계가 아니다. 그런데 미국 사회는 아시아인들을 소수 인종처럼 취급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음악이 됐든 영화가 됐든 말이다.” -이런 상황은 영화계도 마찬가지인가. “아시아계는 특정 모습으로 비춰져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아시아계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무엇을 하는 거지라는 생각들을 한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등 플랫폼을 통해 한국과 일본 등의 방송이 더 많이 알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 방송이 인기가 많은 것도 맞다. 하지만 이는 한국, 한국의 이야기지 한국계 미국인의 삶과는 다른 삶을 비추고 있다.” -아시아계가 영화 업계에서 겪는 특별한 어려움이 있는지 궁금하다. “문화가 더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영화계는) 백인들에 국한돼 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문제만 봐도 알 수 있다. ‘침묵을 깨다’를 촬영할 당시 이 때문에 많이 어려웠다. 아시아인의 얼굴에 맞는 화장을 할 수 있는 아티스트를 찾으려 했는데 많지 않았다. 우리는 생김새도 다르지 않은가? 영화 업계에 있는 아티스트들은 백인이나 흑인 화장은 익숙해도 아시안들에 대한 경험이 적다. (방송 및 작품에 출연하는) 아시안들이 이상해 보이거나 덜 매력적으로 비춰지는 이유다. 그러다 결국엔 이탈리아에 있는 아티스트를 찾아 작업을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 -아시아인들이 업계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백인을 비롯한 미국 감독들은 아시아계 배우들에게 특정 악센트(억양)를 요구한다. 그런데 아시아인은 매우 다양하다. 아시아계 전체가 하나의 악센트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에서 자란 2세, 3세 아시아계 배우들도 있다. 하지만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일차원적인 요구를 받는다. 라틴계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다. 업계에 들어오면 이런 문제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과거 재키 챈(성룡)류의 영화들과 비교하면 지금의 아시아 관련 영화가 더 다양해진 것도 사실 아닌가. “K팝 영향이 크다고 본다. K팝이 아시아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를 줬다. 하지만 K팝은 여전히 K팝이다. 유타와 같은 곳에 가면 사람들은 K팝을 모를 것이다. 캘리포니아나 뉴욕에서나 유명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K팝이 아시안에 대한 시각, 특히 한국계 미국인에 대한 시각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맞다고 본다.” -꼽기 어렵겠지만 지금까지 참여한 작품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침묵을 깨다’이다. 각본을 쓰는데 한 3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과거에도 위안부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대다수의 이야기들은 일차원적으로 접근한 작품이 많았다. 전쟁통에 일본군에게 공격을 당하는 이야기, 울고 있는 위안부 이야기, 뭐 다 이런 측면이다. 나는 위안부 시설에 끌려간 사람들의 삶이 정확히 어땠는지를 더 깊게 파악하고 싶었다. 대중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받게 될지 몰라 우선은 단편영화로 제작했다.” -일차원적인 접근법이라는 묘사가 흥미롭다. “타이완 위안부, 홍콩 위안부, 인도 위안부, 나아가 호주 위안부까지 다양한 여성들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한국인 위안부만을 다루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물론 대다수의 위안부는 한국 출신이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 출신, 나아가 백인 위안부도 있다. 나는 이 문제를 국제적 문제로 만들고 싶었다. 유엔이나 미국 정부 등의 지지를 받고자 한다면 이렇게 국제적 문제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장 최근 작품은 무엇인지. “‘어둠 공포증(Nyctophobia)’이다. 밤이 되면 무서워하는 공포증을 뜻한다. 이런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불을 끄고서는 잠을 잘 수 없다. 당연히 증상의 차이도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며칠이 지나면 잠을 자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계속 잠을 못 잔다. 나는 아이들의 경우는 어느 정도 수준의 어둠 공포증을 모두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어렸을 때 이를 앓았는데 나중에 사라졌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이 증세가 재발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건지. “(팬데믹 당시) 나는 영화를 다시 만들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들이 문을 닫았고 사람들이 업계를 떠나기 시작했다. 영화를 꼭 만들고 싶었고 업계를 떠나기 전 단 하나만 만들 수 있다면 이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팬데믹 당시 내가 실제로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감정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매우 힘들던 시기였다.” -예고편을 보고 왔는데 무서워 보이더라. 영화 전체가 다 공포물인지. “어둠 공포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는 실험주의적(experimental) 영화다. 대화도 하나도 없다. 주연 한 명이 계속 움직이는 모습만 담겼다. 악몽을 꾼다거나 꿈에서 나쁜 사람을 만나는 모습을 비춘다. 잠에서 깰 때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 줄거리는 이 여성이 잠에 들고 싶어하는 모습에 집중돼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장르의 영화를 좋아할지는 모르겠다. 말했다시피 대화가 하나도 없다.” -어떤 평론가가 당신을 실험주의적 영화감독이라고 묘사한 글을 나도 봤다. 이런 표현에 동의하는지. “나는 이런 구성을 좋아한다.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려면 세 개의 장으로 영화를 구성한다는 등의 규정화된 법칙을 따라야 한다. 나는 이런 제한이 싫다. 팬데믹 당시 제한된 제작 환경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구해 영화를 촬영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다고 본다.” -영화 업계에 규정화된 틀이 있다는 건 몰랐다. “팬데믹 때나 지금이나 영화감독이라면 업계가 원할 만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냥 자신이 원한다고 아무거나 만들 수는 없다. 영화가 인기도 없을 것으로 보이면 극장에도 안 걸린다. 그래서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 성향이 있다. 이 업계에서 생존, 즉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실험주의적 장르가 마음에 든다.” -팀을 꾸리는 것은 어렵지 않나. “어렵다. 나는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각본을 쓰면 제작사 등의 승인 같은 것을 받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각본을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들의 규칙과 요구를 따라야 한다. 돈은 많이 벌고 싶긴 하지만 이런 이유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본다. 모든 게 다 돈과 직결돼 있다. 배포 문제도 어려운 부분이다. 수익을 내고 싶다든가 오스카상에 도전하고 싶다면 뭔가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계속 실험주의적 영화를 할 계획인가. “모든 영화감독이 똑같겠지만 나도 더 큰 상을 받고 싶다. 하지만 사람들을 깨우치는 일도 하고 싶다. 나는 아무 의미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없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나는 지금 만드는 영화들을 계속 만들고 싶다. 아시아계와 다른 소수인종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다. 큰 상을 받고 싶지만 타협할 생각은 없다. 동종업계 종사자들은 ‘영혼을 팔지 말라’는 말을 하곤 한다. 나는 내 영혼을 팔고 싶지 않다. 나는 진실성을 유지하며 더 큰 상을 받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김영남 기자 [[email protected]]영화감독 김영남 한인 영화감독 주류 영화계 실험주의적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