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영화는 내 영혼…아시안 목소리 담고 싶다

한인 1.5세 영화감독이 만든 영화들이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동남부의 명문사립 '애틀랜타 그레이터 주니어 시니어 크리스천 스쿨'을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유펜)에서 정치학 학사,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영화, 하버드 대학원에서 정책학 등 석사 학위를 받은 정세윤씨는 지금까지 30여 편 영화의 프로듀서 및 감독을 맡았다.   2020년에는 위안부 문제를 다룬 ‘침묵을 깨다(Breaking the Silence)’로 오스카상 단편영화 부문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어둠 공포증(Nyctophobia)’이란 영화를 만들었다. 이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로 악몽 등의 이유로 잠들기 두려워하는 주인공의 감정선을 그린 영화다.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 IMDb에 따르면 정 감독은 지금까지 전 세계 영화제에서 68개의 상을 받았고 26개 상의 후보로 올랐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 감독은 아직도 미국의 영화계는 백인 중심이라며 아시아계 등 소수계가 이른바 주류 영화계로 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규정화된 영화, 즉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가 아닌 그가 만드는 실험주의적 영화는 관심을 덜 받고 있다고 했다. 감독으로서 더 권위적인 상을 수상하고 싶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신념을 버리고 영혼을 팔 생각은 없다며 그가 추구하는 방향의 영화를 계속 만들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정치학을 공부한 뒤 전공을 영화로 바꾼 계기가 궁금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정치학을 좋아했고 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부패한 정치인들도 많이 봤고 내가 현실 정치 현장에 뛰어들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로펌에서 인턴도 했는데 너무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전화 녹취를 정리하거나 문서를 검토하는 일이 따분하게 느껴졌다.”     -작품들을 보면 정치학을 공부한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작품들도 많다.     “나는 정치와 사회 문제가 영화나 다른 예술 작품들과 연관돼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연관성을 못 보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영화나 음악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도구라고 본다. 미국의 경우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곳임에도 아시아계, 흑인, 혹은 라틴계 커뮤니티에 대해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데 이를 알리고 싶다.”   -개인 홈페이지를 보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소외 계층의 목소리를 알리고 싶다는 문구가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 다른 문제 등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 미국인들은 아시안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타이완에서 왔든 일본에서 왔든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은 그들이 소수계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다. 세계지도를 보면 가장 큰 대륙은 아시아다. 중국, 한국, 인도 등이 속해 있는 아시아는 인구도 제일 많고 소수계가 아니다. 그런데 미국 사회는 아시아인들을 소수 인종처럼 취급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음악이 됐든 영화가 됐든 말이다.”   -이런 상황은 영화계도 마찬가지인가.     “아시아계는 특정 모습으로 비춰져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아시아계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무엇을 하는 거지라는 생각들을 한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등 플랫폼을 통해 한국과 일본 등의 방송이 더 많이 알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 방송이 인기가 많은 것도 맞다. 하지만 이는 한국, 한국의 이야기지 한국계 미국인의 삶과는 다른 삶을 비추고 있다.”   -아시아계가 영화 업계에서 겪는 특별한 어려움이 있는지 궁금하다.     “문화가 더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영화계는) 백인들에 국한돼 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문제만 봐도 알 수 있다. ‘침묵을 깨다’를 촬영할 당시 이 때문에 많이 어려웠다. 아시아인의 얼굴에 맞는 화장을 할 수 있는 아티스트를 찾으려 했는데 많지 않았다. 우리는 생김새도 다르지 않은가? 영화 업계에 있는 아티스트들은 백인이나 흑인 화장은 익숙해도 아시안들에 대한 경험이 적다. (방송 및 작품에 출연하는) 아시안들이 이상해 보이거나 덜 매력적으로 비춰지는 이유다. 그러다 결국엔 이탈리아에 있는 아티스트를 찾아 작업을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     -아시아인들이 업계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백인을 비롯한 미국 감독들은 아시아계 배우들에게 특정 악센트(억양)를 요구한다. 그런데 아시아인은 매우 다양하다. 아시아계 전체가 하나의 악센트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에서 자란 2세, 3세 아시아계 배우들도 있다. 하지만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일차원적인 요구를 받는다. 라틴계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다. 업계에 들어오면 이런 문제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과거 재키 챈(성룡)류의 영화들과 비교하면 지금의 아시아 관련 영화가 더 다양해진 것도 사실 아닌가.   “K팝 영향이 크다고 본다. K팝이 아시아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를 줬다. 하지만 K팝은 여전히 K팝이다. 유타와 같은 곳에 가면 사람들은 K팝을 모를 것이다. 캘리포니아나 뉴욕에서나 유명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K팝이 아시안에 대한 시각, 특히 한국계 미국인에 대한 시각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맞다고 본다.”     -꼽기 어렵겠지만 지금까지 참여한 작품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침묵을 깨다’이다. 각본을 쓰는데 한 3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과거에도 위안부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대다수의 이야기들은 일차원적으로 접근한 작품이 많았다. 전쟁통에 일본군에게 공격을 당하는 이야기, 울고 있는 위안부 이야기, 뭐 다 이런 측면이다. 나는 위안부 시설에 끌려간 사람들의 삶이 정확히 어땠는지를 더 깊게 파악하고 싶었다. 대중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받게 될지 몰라 우선은 단편영화로 제작했다.”     -일차원적인 접근법이라는 묘사가 흥미롭다.     “타이완 위안부, 홍콩 위안부, 인도 위안부, 나아가 호주 위안부까지 다양한 여성들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한국인 위안부만을 다루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물론 대다수의 위안부는 한국 출신이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 출신, 나아가 백인 위안부도 있다. 나는 이 문제를 국제적 문제로 만들고 싶었다. 유엔이나 미국 정부 등의 지지를 받고자 한다면 이렇게 국제적 문제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장 최근 작품은 무엇인지.     “‘어둠 공포증(Nyctophobia)’이다. 밤이 되면 무서워하는 공포증을 뜻한다. 이런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불을 끄고서는 잠을 잘 수 없다. 당연히 증상의 차이도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며칠이 지나면 잠을 자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계속 잠을 못 잔다. 나는 아이들의 경우는 어느 정도 수준의 어둠 공포증을 모두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어렸을 때 이를 앓았는데 나중에 사라졌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이 증세가 재발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건지.   “(팬데믹 당시) 나는 영화를 다시 만들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들이 문을 닫았고 사람들이 업계를 떠나기 시작했다. 영화를 꼭 만들고 싶었고 업계를 떠나기 전 단 하나만 만들 수 있다면 이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팬데믹 당시 내가 실제로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감정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매우 힘들던 시기였다.”   -예고편을 보고 왔는데 무서워 보이더라. 영화 전체가 다 공포물인지.     “어둠 공포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는 실험주의적(experimental) 영화다. 대화도 하나도 없다. 주연 한 명이 계속 움직이는 모습만 담겼다. 악몽을 꾼다거나 꿈에서 나쁜 사람을 만나는 모습을 비춘다. 잠에서 깰 때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 줄거리는 이 여성이 잠에 들고 싶어하는 모습에 집중돼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장르의 영화를 좋아할지는 모르겠다. 말했다시피 대화가 하나도 없다.”   -어떤 평론가가 당신을 실험주의적 영화감독이라고 묘사한 글을 나도 봤다. 이런 표현에 동의하는지.     “나는 이런 구성을 좋아한다.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려면 세 개의 장으로 영화를 구성한다는 등의 규정화된 법칙을 따라야 한다. 나는 이런 제한이 싫다. 팬데믹 당시 제한된 제작 환경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구해 영화를 촬영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다고 본다.”     -영화 업계에 규정화된 틀이 있다는 건 몰랐다.     “팬데믹 때나 지금이나 영화감독이라면 업계가 원할 만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냥 자신이 원한다고 아무거나 만들 수는 없다. 영화가 인기도 없을 것으로 보이면 극장에도 안 걸린다. 그래서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 성향이 있다. 이 업계에서 생존, 즉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실험주의적 장르가 마음에 든다.”     -팀을 꾸리는 것은 어렵지 않나.     “어렵다. 나는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각본을 쓰면 제작사 등의 승인 같은 것을 받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각본을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들의 규칙과 요구를 따라야 한다. 돈은 많이 벌고 싶긴 하지만 이런 이유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본다. 모든 게 다 돈과 직결돼 있다. 배포 문제도 어려운 부분이다. 수익을 내고 싶다든가 오스카상에 도전하고 싶다면 뭔가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계속 실험주의적 영화를 할 계획인가.   “모든 영화감독이 똑같겠지만 나도 더 큰 상을 받고 싶다. 하지만 사람들을 깨우치는 일도 하고 싶다. 나는 아무 의미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없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나는 지금 만드는 영화들을 계속 만들고 싶다. 아시아계와 다른 소수인종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다. 큰 상을 받고 싶지만 타협할 생각은 없다. 동종업계 종사자들은 ‘영혼을 팔지 말라’는 말을 하곤 한다. 나는 내 영혼을 팔고 싶지 않다. 나는 진실성을 유지하며 더 큰 상을 받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김영남 기자 [kim.youngnam@koreadaily.com]영화감독 김영남 한인 영화감독 주류 영화계 실험주의적 영화

2024-11-20

‘대부’에 견줄 레오네 감독의 뒷골목 아메리칸 드림

가장 위대한 이탈리아 영화감독,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창시자 세르지오 레오네. 그의 영화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가 개봉 40주년을 맞았다. 갱스터 장르에 누아르의 분위기를 가미한 이 영화는 ‘대부’ 시리즈에 필적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레오네는 ‘대부’를 감독해줄 것을 제안받았지만, 이 영화에 전념하고 하고자 파라마운트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레오네는 10년 동안 제작자를 찾지 못하다가 건강이 좋지 않던 시기에 제작에 들어갔다. 건강이 악화하여 작품을 완성하기 어려웠지만 사력을 다해 촬영을 끝냈다. 결국 영화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았다. 완벽주의자이던 레오네가 영화를 마무리하기 위해 건강을 해친 것이 죽음의 주된 원인이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작품에 집착이 강했던 레오네는 이 영화를 긴 영화로 만들고 싶어했다. 실제로 촬영을 끝냈을 때의 분량은 10시간에 달했다. 1964년 5월 칸영화제에서 229분 편집본이 초연되면서 80년대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 개봉 시 배급사는 긴 상영시간 때문에 흥행이 되지 않을 것을 우려했다. 초기 편집 후 6시간으로 줄였지만 6시간짜리 영화를 극장에 걸 수는 없었다. 배급사 워너 브러더스는 더 자르라고 주문했고 레오네는 영화를 1부와 2부로 나눠 개봉하자고 제안했다.     영화는 결국 제작사 래드컴퍼니(Ladd Company)가 감독과 상의 없이 노년의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원래의 방식을 시대순으로 재편집, 139분 축약본으로 개봉된다. 그리고 평론가로부터 ‘최악의 영화’라는 혹평을 받는다. 불과 한 달 만에 최고의 영화가 ‘최악의 영화’로 전락해 버렸다. 현재는 251분 감독 확장판과 246분 칸영화제 복원판이 DVD로 출시되어 있다. 6시간짜리 판본은 아직 공개된 적이 없다.   레오네는 그의 주종인 이탈리아 갱스터들의 이야기에서 유대계 미국인 갱스터로 소재를 옮겨 간다. 어릴 적부터 한 동네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의 우정과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소재로 한  영화는 1920년대 유년기에서 시작해 금주법과 공황이 한창이던 1930년대의 청년기, 그리고 베트남전쟁으로 인한 혼란기인 1968년도까지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영화는 시대순이 아닌 노년의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921년 뉴욕의 유대인 지역. 좀도둑질을 일삼던 누들스(로버트 드니로)와 맥스(제임스 우드) 일당은 밀수품을 운반하며 돈을 벌어들인다. 이들에 위협을 느낀 갱 두목 벅시는누들스의 친구를 죽이고 이에 분노한 누들스는벅시와 경찰을 살해한 후 감옥에 들어간다.   1932년 출소한 누들스는 그의 어린 시절 첫사랑 데보라(엘리자베스 맥거번, 아역 제니퍼 코넬리)와 밀주 사업을 일으켜 크게 성공한 맥스를 다시 만나 사업에 동참하지만 금주법이 폐지되면서 위기를 맞는다. 맥스는 누들스에게 연방준비은행을 털자고 제안한다. 누들스는 맥스의 위험한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그를 밀고하고 잠적해 버린다.     1968년, 노년의 누들스는 옛 친구들과 다시 만나 맥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리고 베일리 재단의 창립기념 파티에 초대를 받는다. 기념사진 속에서 데보라를 발견하고 그녀를 찾아가 자신을 초대한 베일리 장관에 대해 묻지만데보라는 그를 찾지 말라며 경고한다.     데보라의 만류에도 누들스는 마침내 의문의 베일리 장관을 만난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맥스가 베일리였으며 누들스의 밀고 이전에 맥스의 배신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그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조정되고 있었다는 충격적 사실을 알게 된다.   레오네는 현재형으로 진행되는 장면을 지속적으로 과거의 장면들로 대치, 전환한다. 그리고 많은 부분을 관객의 자의적 해석에 맡긴다. 누들스의 연인이었던 데보라는누들스에게 겁탈당한 후 상처를 안고 할리우드로 떠났다. 30년 만에 만난 그녀가 어떻게 맥스의 애첩이 되어 아들까지 낳았는지를 영화는 밝히지 않는다. 영화의 최대 미스터리인 맥스의 죽음 역시 관람자의 시각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영화에서의 아메리칸 드림은 희망적이기보다 염세적이다. 맥스는 엄청난 부를 이루지만 그의 야심과 탐욕의 결과는 결국 비극으로 끝이 난다. 레오네 감독은 마지막 장면을 쓰레기차와 연관시켜 그가 이룬 부의 허망함을 표현한다. 영화 시작 부분에 아편을 파는 장소가 나오고 이를 다시 마지막 장면에서 누들스가 아편을 흡입하고 웃는 장면과 연결시킨 것 역시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표현한 레오네의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레오네 감독은 ‘친구의 우정’이라는 부분에서 인간주의적 세계관으로 귀의한다. 철부지 시절부터 서로의 존재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던 누들스와 맥스의 운명은 30년의 공백 끝에 노년이 되어 다시 이어진다.   패거리의 리더 맥스는 철저한 이윤 추구자이며 후회나 죄책감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는 누들스의 손에 자신의 삶을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베일리로 신분 세탁을 하고 부정부패의 대명사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자신이 죄책감 속에서 살아왔음을 고백한다. 어린 시절 함께 놀다가 자동차가 바다에 빠지면서 사라진 누들스를 애타게 찾는 맥스의 모습이 교차편집 되면서 관객은 싸이코패스적인 그의 평소 모습과 다른 맥스를 보게 된다.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깨졌지만 순수한 우정이 있었던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픈 맥스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순간, 영화는 끝이 난다.     “난 너의 모든 것을 빼앗았어. 난 네가 살아야 할 집, 너의 돈, 너의 여자, 너의 모든 걸 가져갔어.  30년 동안 내 마음속에 쌓여온 슬픔 만이 남아 있을 뿐이라네. 이제 방아쇠를 당기게.”     쓰레기차가 지나가고 화면에서 사라지는 맥스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레오네 감독의 의도적 모호함은 이후 영화사에 영원한 숙제를 남긴다. 그는 과연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 것일까.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미국 아메리칸 이탈리아 영화감독 아메리칸 드림 칸영화제 복원판

2024-05-22

[기고] 한인 이야기 담은 영화가 필요하다

최근 애틀랜타의 한 광고사에서 한국 국악, 특히 장구를 칠 줄 아는 사람을 찾는다는 문의 메일을 받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문화나 한국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는데 많이 달라진 현상이다.   요즘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인기가 대단하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을 시작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기생충’까지 큰 인기를 끌었고, 한국 스타들은 할리우드 스타에 버금가는 지명도를 얻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한국 영화, 드라마의 인기가 할리우드 영화, 드라마에도 반영되고 있을까? 다시 말하면 한인들의 모습이 할리우드 영화, 드라마에 제대로 반영되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최근 UCLA사회학과가 발행한 할리우드 다양성 보고서(Hollywood Diversity Report 2023)에 따르면 그에 대한 답은 ‘No’인 것 같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단 최근 11년간 할리우드 영화 출연 배우의 인종은 수치상으로 볼 때 다양해졌으며, 특히 흑인 배우들의 출연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 등 아시안 배우들의 출연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2022년 극장 개봉된 미국 영화 출연진 가운데 백인이 63.9%, 흑인이 14.8%였지만, 한인 등 아시안 배우의 비중은  6.5%에 불과했다.     배우가 아닌 감독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영화감독의 절대다수인 83.1%가 백인이었으며, 아시안 영화감독은 5.6%에 불과했다.     여성 감독의 숫자는 늘어났지만, 백인 남성 감독이 만드는 영화에 비해서는 훨씬 저예산 영화들이었다.  지난해 극장 개봉된 영화의 감독 가운데 백인 남성은 65명인 반면, 백인 여성은 9명이었다. 아시안 영화감독은 남성 4명, 여성 1명에 불과했다. 특히 여성 감독의 경우 여성 취향의 저예산 코미디 영화에 치중돼 있었다는 특징을 보였다.   반면 영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흑인, 아시안 등 이민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개봉된 ‘아바타’ ‘쥬라기 월드’ ‘닥터 스트레인지’ 관객의 절반 이상이 비백인이었다. 그런데 영화 출연진과 감독은 백인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아시안 전용 채널 AAPI Entertainment Network를 소유한 차임TV(ChimeTV)의 타카시 정 국장은 아시안의 입장을 대변하는 영화가 아직도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몇 년 전 아시안이 주연한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Crazy Rich Asians)’이 대성공을 거뒀지만, 정작 아시안의 영화계 진출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한탄한다.     정 국장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1990년대  중국계 이민자를 다룬 영화 ‘조이 럭 클럽(Joy Luck Club)’에 이어 20여 년 만의 아시아계 주연 히트작”이라며 “앞으로 아시안 영화가 나오려면 또 20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그는 “미국에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영어로 된 영화로 전달(home grown cultural stories from our community in the English)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년 전 한인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미나리’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미국에 이민 온 한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대사 상당수가 영어가 아닌 한국어라는 이유로 ‘외국 영화’가 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할리우드의 ‘인종차별’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한인 등 아시안 이민자들은 미국 땅에서 더는 손님, 외국인으로 취급받아서는 안 된다. 이제 한인들도 좀 더 적극적으로 할리우드의 영화, 드라마 제작 업계에 진출하고 아이디어를 내어 한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종원 / 변호사기고 이야기 한인 아시안 영화감독 할리우드 영화 영화 출연진

2023-09-10

[문화산책] 소설가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

소설가 로맹 가리는 1956년 소설 ‘하늘의 뿌리’로 세계 3대 문학상이며, 프랑스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에밀 아자르는 1975년 소설 ‘자기 앞의 생’으로 프랑스 공쿠르상을 받았다. 두 사람은 동일인이었다. 로맹 가리가 죽기 직전에 밝혀, 세상이 깜짝 놀랐고, 널리 알려졌다. 그렇게, 중복수상 금지로 유명한 공쿠르상을 두 번 받은 역대 유일의 작가가 된 것이다,   러시아계 프랑스인 로맹 가리(1914~1980)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는 바람에 어머니와 함께 3세 때부터 리투아니아, 폴란드를 거쳐 18세에 프랑스의 니스에 정착한 유대인이었다.   그의 삶은 소설이나 영화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고 치열했다. 전투기 조종사, 제2차 세계대전 영웅, 외교관, 소설가,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며 격정적으로 살았다. 여배우 진 세버그와 결혼한 화려한 삶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진 세버그는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의 대표작인 ‘네 멋대로 살아라’의 주인공으로 세기적 영화 아이콘이었다.   이처럼 비현실적일 정도로 화려한 삶을 살았던 그가 정작 가장 괴로워했던 것은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는 삶이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었으나, 대중의 환상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평생 온갖 헛소문에 시달리며 살았다.   “난 내가 삶을 산 거라는 확신이 그다지 서지 않는다. 오히려 삶이 우리를 갖고 소유하는 게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나는 살면서 선택권을 거의 갖지 못했다.”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새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것도 세상에서 다시 한번 자신으로 살기 위한 절실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로맹 가리를 퇴물 취급하던 사람들은 혜성 같이 나타난 천재작가 에밀 아자르를 찬양했다. 둘이 동일인물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런 세상에 보기 좋게 한 방 먹인 것이다.   그리고, 1980년 겨울, 그는 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향년 66세.   로맹 가리를 생각할 때마다 감동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그의 어머니다. 억척스러운 홀어머니의 지대한 관심은 오로지 그가 성공해 행복한 프랑스인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 바람대로 로맹 가리는 법학을 공부했고, 2차 세계대전에 항공 대위로 참전한 공로로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중복 수상이 금지된 공쿠르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소설가로도 성공했다.   로맹 가리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공군에서 복무할 당시, 어머니의 편지를 계속해서 받았다. 편지에는 사랑하는 아들이 전쟁 위험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마음의 평온을 찾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들은 오랜 시간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지만, 사랑이 듬뿍 담긴 어머니의 편지를 계속 받아 읽으면서,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편지들은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낸 편지들이었다. 위암에 걸린 어머니가 전쟁터에 있는 아들을 위해서 200여 통의 편지를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어머니란 그런 존재다.   로맹 가리는 그 사실을 3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이런 어머니 사랑 덕에 천재작가 로맹 가리가 있었다.    1980년 12월 2일 ‘결전의 날’이라는 제목의 짧은 유서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한바탕 잘 놀았소. 고마웠소. 그럼 안녕히.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소설가 아자르 소설가 영화감독 에밀 아자르 러시아계 프랑스인

2023-08-31

뉴욕한국문화원, 1960년대 한국영화 특별전

뉴욕한국문화원이 9월 1일부터 17일까지 ‘한국영화 황금기 1960년대 특별전’을 개최한다.     필름 앳 링컨센터 내 월터 리드 극장에서 개최되는 해당 행사는 김기영, 심상옥, 유현목, 김수영, 이만희 등 1960년대 활동했던 대표 영화감독들의 한국 고전영화 총 24편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영화 황금기’라 불리우는 1960년대는 현재 월드 클래스가 된 영화감독 봉준호, 홍상수, 박찬욱 감독의 영화적 기반이 된 시기로 평가되고 있다. 한해 평균 200편에 가까운 영화가 제작됐고, 코미디, 멜로드라마, 청춘, 액션, 호러, 전쟁영화, 몬스터 영화,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 영화가 탄생했으며 한국 전쟁과 독재를 겪는 가운데에서도 아트하우스, 상업영화, 실험영화 등 다양한 시도가 진행됐다. 또 1962년 영화법 제정과 대종상 영화제 탄생 등 한국영화 104년 역사상 어느 때보다 빛나는 시대로 대표되고 있다.     이번 특별전에 상영되는 영화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1961년 제1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국제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강대진 감독의 ‘마부(1961)’, 여성 감독인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1962)’ 등이다. 또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 빌(Kill Bill)’에 영향을 주고 아시아 영화 최고 북미 박스오피스 기록을 오랫동안 유지했던 ‘죽음의 다섯손가락(King Boxer)’을 연출한 정창화 감독의 작품 ‘순간은 영원히(1966)’와 ‘황혼의 검객(1967)’도 상영작에 포함됐다.   김천수 문화원장은 “이번 특별전은 우수한 한국영화사를 현지 영화계에 소개하는 뜻깊은 행사가 될 것이며, 세계의 고전영화를 아끼는 뉴욕 영화팬들에게 특별한 경험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입장권 구입 및 상영 스케줄 문의는 웹사이트(www.filmlinc.org)를 통해 할 수 있고, 티켓 구매시 KOREANYC 할인 코드를 사용하면 5달러를 할인 받을 수 있다.  윤지혜 기자 yoon.jihye@koreadailyny.com뉴욕한국문화원 한국영화 한국영화 황금기 대표 영화감독들 영화감독 봉준호

2023-08-16

[수필] ‘더 파벨맨(The Fabelmans)’ 영화를 보고

영화관을 찾았을 때 보고 싶었던 영화는 상영하지 않았다. 어떤 영화를 볼까 망설이다 직원에게 좋은 영화를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더 파벨맨(The Fabelmans)’를 추천해 주었다.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차츰 전개되는 내용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어릴 때 겪었던 일화들로 엮어져 그의 반 자전적인 영화 스토리란 걸 알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알고 있던 스필버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유태인 후손 가운데 이름을 떨친 사람들이 많다. 아인슈타인 박사, 헨리 키신저 박사,  엘렌 그린스펀, 할리우드 영화계를 주름잡는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등 많은 유태인 디아스포라의 후손들이 미국의 경제계, 언론계, 방송계를 주름잡고 있다. 그 유명한 후손들 가운데 나는 스티븐 스필버그에 관해 얘기하고 싶다.     스필버그의 어머니 리아 아들러(Leah Adler)가 로스앤젤레스에서 경영하는 식당에 기자가 찾아가 인터뷰한 내용을 보니 그녀의 아들 스필버그는 어릴 때 매우 소심했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도 잘 안 가고 집구석에 처박혀 그림이나 그리고 사진기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이나 찍고 놀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 가면 급우들이 항상 “더러운 유태인” 이라고 놀려 대고 왕따를 당해 말할 수 없는 모욕감과 수치심으로 고통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야단치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격려해 주고 장려했다고 한다.     특히 그의 할머니는 “너는 둘도 없는 위대한 사람이 될 거야” 하며 그의 잠재 능력을 바라보고 앞으로 대성할 것을 기대하면서 그를 위로했다고 한다. 스필버그 부모의 교육관이 보통의 부모들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한인을 포함해 보통의 부모님들은 자녀가 학교에 무단으로 결석하면 호통을 치고 큰일이 난 것처럼 자녀에게 등교를 강요하지만 스필버그의 어머니는 자녀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개발시켜 나가도록 뒷받침해 준 것이다. 그리하여 스필버그는 영화감독이 되어 영화계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가 있었다. 쉰들러 리스트로 아카데미 감독상까지 받게 된다.  그는 인디아나 존스,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 많은 영화 수작을 만들었지만, 쉰들러 리스트는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태인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품으로 자기가 어릴 때 격은 아픔을 쉰들러 리스트에 반영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 새미가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감독 존 포트를 소개받아 만나게 된다. 이 유명한 감독은 영화 제작이 얼마나 험난한 줄 아느냐며 자기 벽에 걸어 둔 그림들을 가르킨다. 그림 하나하나 무엇을 말하는지 말하라고 하자 새미는 장황하게 설명한다. 감독 존 포드가 수평선이 어디 있느냐며 묻자 새미는 밑에 있다고 대답한다.     또 다른 그림을 가리키며 수평선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새미는 밑(bottom)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 감독은 기상천외의 대답을 한다. “수평선이 밑에 있으면 흥미로운 일이고, 수평선이 위에 있으면 이 역시 흥미로운 일이고, 수평선이 중앙에 있으면 싫증 나는 일이다(When the horizon is on the bottom. It's interesting. When the horizon is on top, it’s interesting. When the horizon is in the middle, it's boring.)” 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빨리 꺼지라고 소리친다.     새미는 무슨 뜻인지 잘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그의 사무실에서 나오면서 그 뜻을 곰곰이 생각하다 얼굴이 밝아지고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이 장면은 실제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계에 뛰어들기 전 처음 만난 유명한 감독에게 발탁되는 과정을 담은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불우한 가정을 묘사한다. 새미는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관계가 차차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친다. 어머니는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가족을 부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새미는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영화계에 뛰어들게 된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어려운 모든 환경을 극복하고 영화계에 투신하여 전무후무한 명감독으로 영화계에 우뚝 선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김수영 / 수필가수필 파벨맨 영화 영화감독 스티븐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스토리

2022-12-29

[그 영화 이 장면] 오마주

지난 11일 열린 아시아태평양스크린어워드에서 남녀 배우를 통틀어 수여하는 베스트 퍼포먼스 부문 수상자는 ‘오마주’의 이정은이었다. 이정은은 런던아시아영화제에서도 배우 부문 수상을 했으니, 올해 국제적으로 가장 성과를 거둔 여성 배우인 셈이다.     그의 첫 주연작인 신수원 감독의 ‘오마주’는 영화에 대한 영화다. 이정은은 영화감독 지완으로 나오는데, 세 번째 영화까지 내리 흥행에 실패한 상황에서 제안을 받는다. 한국의 두 번째 여성 감독이었던 홍은원의 ‘여판사’(1962)라는 작품 복원 작업이다. 온전히 남아 있지 않은 영화의 사라진 조각을 찾기 위해 지완은 동분서주한다.   결국 찾아간 곳은 지방의 어느 허름한 극장이다. 극장주가 모자 사업을 했다는 그곳 영사실엔 수많은 모자가 쌓여 있지만 ‘여판사’의 흔적은 없다. 여기서 작은 반전. 오래전 상영이 종료된 영화의 필름은 잘라서 모자챙으로 재활용되곤 했는데, ‘여판사’ 프린트도 그렇게 사용됐던 것이다. 지완은 빛 아래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이미지를 확인하는데, 이때의 표정은 ‘오마주’에서 이정은의 ‘베스트 퍼포먼스’ 아닐까 싶다. 이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절제돼 있고 일상적이며 정적이지만 이 장면만큼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드러낸다. 단 일차원적으로 터트리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 얼굴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감정의 충만함을 드러내는 환희의 표정. 연기의 완급 조절은 이런 것이다. 김형석 / 영화 저널리스트그 영화 이 장면 오마주 영화감독 지완 베스트 퍼포먼스 극장주가 모자

2022-11-18

딸과 나, 갈등하는 엄마의 숨겨진 삶

‘질렌할(Gyllenhaal)'은 다소 발음하기 힘든, 그러나 영화 팬들에게는 제법 익숙한 이름이다. 제이크 질렌할은 ‘브로크백 마운틴’(2006), ‘자헤드’(2005),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2019) 등의 작품으로 많은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할리우드의 스타다. 제이크와 그의 누나 매기는 영화감독 아버지와 시나리오 작가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연기 생활을 해왔다.     2002년 ‘세크리터리’에서 마조히스트 여비서 연기로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매기는 뛰어난 연기력에 비해 제이크만큼 대중적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지난달 28일 넷플릭스에 올라오자마자 첫 주에 시청률 1위에 오른 ‘로스트 도터’는 매기의 감독 데뷔작으로 ‘나의 눈부신 친구’의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4부작 소설 중 한 편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2021 베니스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고 황금사자상 경쟁후보작에 올랐다. 매기의 데뷔작임에도 벌써부터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현재 골든글로브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색상 부문에 후보로 올라 있다.     대학교수이며 번역가인 레다(올리비아 콜맨)가 그리스의 바닷가에 도착한다. 밝은 태양 아래서 독서와 수영을 하며 모처럼 혼자만의 휴가를 즐길 참이다. 그러나 밤이면 그녀의 방을 지나는 등대 빛에 수면 방해를 받기 시작하면서 레다의 불안 심리가 표출된다.     레다는 주변을 관찰한다. 그녀의 시선은 어린 딸, 남편과 함께 바닷가에 나타난 니나(다코다 존슨)의 가족에게 집중된다. 책을 읽는 대신, 니나와 딸을 유심히 바라보는 레다에게도 두 딸을 기르던 시절이 있었다. 20년 전 딸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즐기는 젊은 시절 레다(제시 버클리)의 모습이 플래시백으로 겹쳐진다. 레다에게 숨겨진 이야기가 있음이 암시된다.   ‘로스트 도터’는 엄마와 딸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엄마의 육아 본능을 깊이 있게 다룬 심리극이다. 엄마와 딸 사이에 존재하는 엄마의 본능적 모성애와, 그 이면에서 딸들로부터 벗어나 자기만의 삶을 갈구하는 엄마의 자아가 끊임없이 충돌한다.     엄마는 딸들이 존재함으로 엄마다. 그러나 엄마는 또 하나의 자아이다. 질렌할 감독은 아이를 항상 친절과 너그러움으로 포옹할 수만은 없는 엄마의 갈등 심리와 고뇌를 파헤친다.     치매를 다루었던 작품 ‘더 파더’에서 앤서니 홉킨스의 딸 역으로 지난해 거의 모든 영화상에서 윤여정과 조연상 경합을 벌였던 올리비아 콜맨의 진가가 또다시 발휘되는 작품이다. 사실 이 시대에 그만큼 주요 영화상의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배우도 없다. 신예 감독 질렌할의 세밀한 연출에 콜맨의 관록 연기가 더해져 품격 있는 심리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김정 영화평론가갈등 엄마 갈등 심리 아카데미상 작품상 영화감독 아버지

2022-01-07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