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에 견줄 레오네 감독의 뒷골목 아메리칸 드림
개봉 40주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완벽주의자 레오네가 사력을 다해 만든 걸작
뉴욕 유대계 갱의 우정·탐욕·배신에 미국 은유
251분의 장엄한 서사, 80년대 최고 영화 꼽혀
레오네는 10년 동안 제작자를 찾지 못하다가 건강이 좋지 않던 시기에 제작에 들어갔다. 건강이 악화하여 작품을 완성하기 어려웠지만 사력을 다해 촬영을 끝냈다. 결국 영화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았다. 완벽주의자이던 레오네가 영화를 마무리하기 위해 건강을 해친 것이 죽음의 주된 원인이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작품에 집착이 강했던 레오네는 이 영화를 긴 영화로 만들고 싶어했다. 실제로 촬영을 끝냈을 때의 분량은 10시간에 달했다. 1964년 5월 칸영화제에서 229분 편집본이 초연되면서 80년대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 개봉 시 배급사는 긴 상영시간 때문에 흥행이 되지 않을 것을 우려했다. 초기 편집 후 6시간으로 줄였지만 6시간짜리 영화를 극장에 걸 수는 없었다. 배급사 워너 브러더스는 더 자르라고 주문했고 레오네는 영화를 1부와 2부로 나눠 개봉하자고 제안했다.
영화는 결국 제작사 래드컴퍼니(Ladd Company)가 감독과 상의 없이 노년의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원래의 방식을 시대순으로 재편집, 139분 축약본으로 개봉된다. 그리고 평론가로부터 ‘최악의 영화’라는 혹평을 받는다. 불과 한 달 만에 최고의 영화가 ‘최악의 영화’로 전락해 버렸다. 현재는 251분 감독 확장판과 246분 칸영화제 복원판이 DVD로 출시되어 있다. 6시간짜리 판본은 아직 공개된 적이 없다.
1921년 뉴욕의 유대인 지역. 좀도둑질을 일삼던 누들스(로버트 드니로)와 맥스(제임스 우드) 일당은 밀수품을 운반하며 돈을 벌어들인다. 이들에 위협을 느낀 갱 두목 벅시는누들스의 친구를 죽이고 이에 분노한 누들스는벅시와 경찰을 살해한 후 감옥에 들어간다.
1932년 출소한 누들스는 그의 어린 시절 첫사랑 데보라(엘리자베스 맥거번, 아역 제니퍼 코넬리)와 밀주 사업을 일으켜 크게 성공한 맥스를 다시 만나 사업에 동참하지만 금주법이 폐지되면서 위기를 맞는다. 맥스는 누들스에게 연방준비은행을 털자고 제안한다. 누들스는 맥스의 위험한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그를 밀고하고 잠적해 버린다.
1968년, 노년의 누들스는 옛 친구들과 다시 만나 맥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리고 베일리 재단의 창립기념 파티에 초대를 받는다. 기념사진 속에서 데보라를 발견하고 그녀를 찾아가 자신을 초대한 베일리 장관에 대해 묻지만데보라는 그를 찾지 말라며 경고한다.
레오네는 현재형으로 진행되는 장면을 지속적으로 과거의 장면들로 대치, 전환한다. 그리고 많은 부분을 관객의 자의적 해석에 맡긴다. 누들스의 연인이었던 데보라는누들스에게 겁탈당한 후 상처를 안고 할리우드로 떠났다. 30년 만에 만난 그녀가 어떻게 맥스의 애첩이 되어 아들까지 낳았는지를 영화는 밝히지 않는다. 영화의 최대 미스터리인 맥스의 죽음 역시 관람자의 시각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영화에서의 아메리칸 드림은 희망적이기보다 염세적이다. 맥스는 엄청난 부를 이루지만 그의 야심과 탐욕의 결과는 결국 비극으로 끝이 난다. 레오네 감독은 마지막 장면을 쓰레기차와 연관시켜 그가 이룬 부의 허망함을 표현한다. 영화 시작 부분에 아편을 파는 장소가 나오고 이를 다시 마지막 장면에서 누들스가 아편을 흡입하고 웃는 장면과 연결시킨 것 역시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표현한 레오네의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레오네 감독은 ‘친구의 우정’이라는 부분에서 인간주의적 세계관으로 귀의한다. 철부지 시절부터 서로의 존재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던 누들스와 맥스의 운명은 30년의 공백 끝에 노년이 되어 다시 이어진다.
패거리의 리더 맥스는 철저한 이윤 추구자이며 후회나 죄책감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는 누들스의 손에 자신의 삶을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베일리로 신분 세탁을 하고 부정부패의 대명사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자신이 죄책감 속에서 살아왔음을 고백한다. 어린 시절 함께 놀다가 자동차가 바다에 빠지면서 사라진 누들스를 애타게 찾는 맥스의 모습이 교차편집 되면서 관객은 싸이코패스적인 그의 평소 모습과 다른 맥스를 보게 된다.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깨졌지만 순수한 우정이 있었던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픈 맥스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순간, 영화는 끝이 난다.
“난 너의 모든 것을 빼앗았어. 난 네가 살아야 할 집, 너의 돈, 너의 여자, 너의 모든 걸 가져갔어. 30년 동안 내 마음속에 쌓여온 슬픔 만이 남아 있을 뿐이라네. 이제 방아쇠를 당기게.”
쓰레기차가 지나가고 화면에서 사라지는 맥스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레오네 감독의 의도적 모호함은 이후 영화사에 영원한 숙제를 남긴다. 그는 과연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 것일까.
김정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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