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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넷 연주자의 관악기 강연

성공회 가든그로브 교회(담임 신부 토머스 이)가 비영리법인 ‘야스마7(YASMA7, 대표 손영아)’과 함께 마련하는 수요 무료 음악 감상회가 내일(24일) 정오 교회(13091 Galway St) 내에서 열린다.   눈 튠스(Noon Tunes)란 이름의 음악 감상회 주제는 ‘관악기 이야기’다. 클라리넷 연주자 정재연(미국명 클레어 정·사진)씨가 초청 강사로 나와 금관악기, 목관악기에 관해 설명하고 클라리넷의 기원과 발전, 클라리넷의 소리와 종류 등에 관해 설명할 예정이다.   정씨는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나와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영재 입학, 조기 졸업했다. 미국에 와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USC 음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금호 영재 콩쿠르, 금호 영아티스트 콩쿠르, 한국 클라리넷 협회 콩쿠르 1위, 국제클라리넷협회 오케스트라 대회에서 2위에 오르는 등 다수의 콩쿠르 입상 경력이 있으며 베이커스필드, 샌루이스오비스포, 모데스토, 투산 심포니에서 클라리넷 주자로 활약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문의는 전화(213-537-7796) 또는 이메일(yasma7ltd@gmail.com)로 하면 된다.클라리넷 연주자 클라리넷 연주자 국제클라리넷협회 오케스트라 한국 클라리넷

2024-07-22

[삶의 뜨락에서] 혼

시인이며 소설가인 찰스 부코스키는 “네가 사랑하는 것을 찾아라. 그리고 죽을 만큼 그것에 빠져보라”라고 했다. 영혼의 작업에 집중하라는 의미이다. 불꽃을 계속 태우는 것이 삶이다. 생을 태우려면 자신이 불타는 것을 견뎌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자양분이 되는 주옥과 같은 글들을 류시화의 산문집에서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대지에 대한 경배와 긴 겨울 끝에 대지가 깨어나는 봄의 소리를 표현한다. 서곡에서 바순이 독주를 맡아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게 연주함으로써 계절이 바뀌는 불안감과 머뭇거림을 전달하고 싶은 이 작곡가는 연주를 너무 능수능란하게 잘해 오히려 봄의 위태로운 시작을 잘 표현하지 못한 바순 연주자를 해고한다. 겨울이 지배하는 차가운 대지에 첫 균열이 가는, 심장이 멎을 것만 같은 불확실한 순간을 표현하려면 연주자는 스스로 전율할 만큼 긴장해서 봄의 떨림을 전달하기 위해 그의 혼을 불어넣었어야 했다. 능수능란한 기법과는 상관이 없다. 맞다 그 혼! 우리는 악기 연주자만이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 일에 맞는 혼이 담기지 않으면 감동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나는 가벼움을 경박하게 여겨왔다. 가벼움은 속물근성이라 치부하고 생은 너무 진지하고 숙연해서 그 깊이를 죽기 전에 다 헤아리기도 역부족이라 믿어왔다. 이번에 류시화 산문집을 통해 많이 배웠다. 폴 발레리는 “깃털의 가벼움이 아니라 새처럼 가벼울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깃털처럼 정처 없이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새처럼 가볍게 날 수 있어야 한다. 새는 뼛속에 공기가 통하는 공간이 있어서 비행할 수 있듯이 존재 안에 자유의 공간이 숨 쉬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경박함이 아닌 자유를 품은 가슴의 가벼움이다. 자신을 생각의 무거움으로 짓누르는 시기를 지나 경쾌한 혼의 길로 나아가는 것, 날 수 없다면 정신적 자유에 이르지 못한다. 절실히 원하면 모든 순간이 날개가 된다. 그 중요한 순간에 생명력이 솟게 된다. 날개가 돋는다.     인간은 날개가 없는 대신 웃는다. 웃음은 가슴의 날갯짓이다. 웃음과 울음은 같은 지점에 있고 희망과 절망도 같은 곳에서 태어난다. 너무 절망적이고 황당할 때 웃어보라. 크게 마음껏 웃어보라. 저 멀리서 희망의 빛이 다가옴을 느낄 것이다. 새로운 해결책이 보일 것이다. 류시화의 글은 머리에서가 아니라 체화된 경험이 가슴을 통해 스며 나왔기에 독자의 피부 속으로 번진다. 그래서 공감력이 크다. 책의 마지막 장에 그는 ‘인생’이라는 영화 한 편을 제작했다고 말한다. 그 자신이 그 영화의 주인공이고 그가 살면서 만났던 모든 사람이 조연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삶이란 주인공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그 사실이 바로 이 영화의 흥미 요소이다.     우리는 모두 지금 각자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현재 제작되고 있다. 이 책 제목이 시사하듯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라는 제목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세상은 내가 생각한 세상이 아니다. 당연히 실망하고 좌절해서 화도 나고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 상황도 많이 겪게 된다. 그렇다고 주인공 역을 포기할 수 없다. 또 어떤 상황에서도 대역할 수 없다. 또 다른 특징은 예행연습이 허용되지 않는다. 재촬영도 없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의 전반부를 마쳤다. 이제 우리는 이 영화의 후반부를 제작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고 감동적이고 역동적인 해피엔딩을 담는 영화를 만들어야만 한다. 인생은 언제든 늦었다 싶을 때가 가장 빠른 때임을 알고 있지 않은가. 가능하면 주인공 역에 가장 잘 맞는 혼을 담은 영화를 만들기를!! 정명숙 시인삶의 뜨락에서 악기 연주자 류시화 산문집 정신적 자유

2024-05-31

[삶과 예술] 자연의 소리 ‘팬플룻’

이 세상의 악기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팬플룻은 먼 옛날 풀피리를 엮어 불다가 점점 발전하여 갈대나 대나무 재질로 여러 관을 뗏목처럼 차례로 연결해 놓은 원시적인 특징을 갖는 악기이다. 요즘은 각 매체에서도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는 몇 가지 수칙 중에 주 3회 이상 운동이나 댄스 하기, 건강한 식사하기, 인지훈련 꾸준히 실시하기 등 중에서 한 가지 악기 배울 것도 권장하고 있다. 뇌를 활성화해엔도르핀의 효과와 건강에 매우 좋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 악기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오래전 ‘Kill Bill’이란 영화의 OST 곡인 ‘외로운 양치기’(The Lonely Shepherd) 곡을 연주한 악기가 바로 팬플룻이란 것을 알았고, 대나무에서 나오는 묘한 자연의 소리에 매료되어 한동안 멜로디를 다 외울 정도로 듣고 또 듣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바쁜 생활과 댄스 지도에 매달리며 잊고 있다가 4년 전어느 날 무심코 펼친 신문광고에 남미 민속악기 팬플룻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문구를 보는 순간 오래전에 잠재되어 있던 또 다른 나의 도전의 꿈이 ‘아~ 이거다’ 하며 머리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바로 다음 날 전화를 걸고 음악실로 달려가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당연히 댄스 지도를 하며 바쁜 시간 짬을 내 공부하기는 쉽지 않았다. 처음엔 소리도 잘 안 나고, 숨도 차고, 관 이동도 쉽지 않아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었다. 하지만 이것도 예술 분야인데 어디 한 번 해보자는 욕심(?)이 생겨나 꾸준히 하다 보니, 팬플룻이란 악기는 작고 가볍고 단순한 관 형태로 만들어져서 한 관(Tube)만 부는 요령을 터득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악기란 걸 터득하게 되었다.   이일성 지도 강사님은 한국 팬플룻협회에서 지도자 과정을 수료, 수많은 연주와 서울 목신팬플룻 초대단장을 역임하시다가 이민 오시어 매년 한 번씩 팬플룻 강좌를 개설하여 교육에 열정을 다하고 계신다. 미국에서 강사님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인데, 다행히도 2015년부터 팬플룻 아카데미를 개설해 주시어 너무나도 감사하고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올봄 시즌에는 한 달간 무료 강좌가 있을 예정이다. 강사님의 목표는 아예 처음부터 팬플룻 연주자로 변신하는   과정으로 커리큘럼이 짜여 있어 무대에서 실전 연습으로 진행하는 점이 나를 설레게 하였다. 최근에는 뉴저지 밀알학교에서 장애우들에게 댄스 지도와 더불어 팬플룻 연주도 들려주며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통해 부족한 나에게 감사를 깨닫게 해준다.   팬플룻 동호회에서는 한인회, 데이케어, 교회찬양축제 등 초대받아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행사로는 뉴욕 추석맞이 대잔치, 뉴저지 팰리세이즈파크 거리축제 등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 등이 있다.   인생의 후반전에 나에게 팬플룻은 너무나 멋진 선택이었고, 음악과 함께 더더욱 풍요로워진 100세 시대에 발맞추어   왈츠, 탱고와 함께 팬플룻까지 꽃길을 걷고 싶은 이 마음~~! 한수미 / 영댄스 대표삶과 예술 팬플룻 자연 팬플룻 연주자 한국 팬플룻협회 팬플룻 아카데미

2024-03-18

[손영아의 열려라 클래식] 무대와 객석 소통이 될 때 감동

보통 한인 연주자의 무대를 찾아가면 객석 역시 한인들로 차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직도 프로그램 보다는 연주자의 인지도에 의존해서 오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얘기했듯이 매스컴에 화제 인물로 떠오르면 음악을 알든 모르든 유명한 사람 구경하러 오는데, 마치 얼마나 잘하나 확인하러 오는 듯한 사람들은 많지만, 팬심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비교적 적다.     그래서인지 한국 내 공연 문화가 활발한 데 비해 일명 주류 연주회의 객석에서는 한인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새해 벽두부터 비올리니스트 용재 오닐이 수석 주자로 있던 권위있는 연주기획단체인 ‘카메라타 퍼시피카(Camerata Pacifica)’ 정기 연주회에 바이올리니스트 김유은이 협연한다는 반가운 소식에 갔다. 이 무대에 김유은이 서게 된 것은 팬이자 같은 한인으로서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 d 단조는 유명해서 오히려 부담갈 수 있는 곡이지만, 이미 한인보다 주류 사회 팬을 더 많이 확보한 연주자답게 김유은은 진지한 해석을 바탕으로 열정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번 연주는 음악감독인 아드리안 스펜서가 그녀의 연주회에 몰래 가서 무대를 직접 확인한 후 초청하여 성사되었다고 한다. 스펜서 감독은 바흐 카메라타(Bach Camerata)에서 1994년 카메라타 퍼시피카(Camerata Pacifica)로, 무척 동료애가 느껴지는 이름으로 개명한 후 지적 호기심이 많은 사람을 위한 탐구적 무대를 많이 선보이고 있다.     그는 음악가의 개성은 청중의 개성과 일치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편견을 깨는 무대를 선보이는 데 앞장 서고 있다. 그 일환으로 꾸며진 대표적 무대에서 또 한 명의 한인 연주자를 만날 수 있었다.     퍼쿠셔니스트이자 마림바 연주자인 정지혜는 유니크한 퍼포먼스에 이어 생소하지만, 충격적일 만큼 뛰어난 연기력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무대를 선보였다. 이를 위해 무대 설치도 보통의 클래식 연주회와 다르게 꾸며져 퍼포먼스를 보기 전까진 모두 그 이유에 대해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긴 역사에 비해 클래식 음악에 있어서 독주곡으로 주목받지 못하던 마림바의 연주는 그렇게 무대 장치부터 특이하고 신선했다.     김유은과 정지혜 모두 예원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등 명문 코스를 밟은 후 현재 미국에서 활동 중이다. 이렇게 연주는 물론 퍼포먼스까지, 미국 주요 공연 무대에서 보여주는 한인들의 활약은 기대 이상으로 발전되어 가고 있다. 어디를 가도 보이는 한인 예술가들의 활약은 감동적이다.     자, 이제 우리 청중의 차례이다. 인지도에 따라 다니고 무료 입장료에 기꺼이 가는 그런 청중은 필요 없다. 무대와 객석은 서로 소통이 될 때 감동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가의 개성이 청중의 개성과 일치한다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는 이유이다. 클래식 음악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다. 지금의 연주자들이 수백 년 전의 음악이라고 해서 수백 년 전 사람들과 똑같이 연주하는 게 아니다. 인류가 발전하고 생각이 변화하듯이 연주자들 또한 발전하고 지금 청중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개성을 창출한다. 이러한 무대에 우리 한인 예술가들이 주류로 오른 만큼 우리 한인 청중들도 주류가 되는 날, 무대와 객석의 소통이 감동을 더 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손영아 디렉터 / 비영리 공인기획사 YASMA7손영아의 열려라 클래식 무대 객석 한인 연주자 탐구적 무대 무대 장치

2024-02-04

[수필] 피아노 건반

지난해 연말 지인과 함께 엔시노의 한 교회에서 열린 연주에 참석했다. 첼리스트 이방은과 피아니스트 폴 피트맨의 연주회였다. 첫 번째 곡은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가 “신선하며 열정적인 곡”이라며 좋아했다는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 A 플랫 장조, Op.70이 연주되었다. 이 음악은 조용함 속에서도 때로는 활기찬 템포로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느낌을 주었다. 다음 곡 역시 첼로와 피아노을 위한 요한 브람스의 E단조 소나타, Op.38가 연주되었다. 이 곡은 13년 동안 수많은 수정을 거치며 1878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그의 예술적 성취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물론 연주곡 모두 널리 알려진 첼로와 피아노 협주곡이다. 첼리스트 이방은님이 첼로의 4줄을 우아하게 움직이는 양팔의 모양에 따라 울려 나오는 아름다운 선율과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는 피트맨님의 힘찬 모습은 오랜만에 보는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첼로의 선율을 따라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소리와 피아노 건반에서 튀어 오르는 개성 있는 소리의 하모니 속에 내 마음은 나를 떠나 먼 곳에 머물러있었다. 휴식 시간 음률의 하모니 속에서 깨어나면서 인생의 여정을 피아노 건반에 비유한 글이 생각났다.     “인생은 피아노와 같습니다.     (Life is like a piano.)   흰색 건반은 행복을 나타내고 검은 건반은 슬픔을 나타냅니다.   (The white keys represent happiness and the black shows sadness.)     그러나 인생의 여정을 살아가면서, 두 건반이 음악을 만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But as you go through life‘s journey, remember that both keys also create music.)”   ― 에산(Ehssan)   피아노에는 52개의 흰색과 36개의 검은색을 합쳐 총 88개의 건반이 있다. 흰색 건반은 온음으로 주로 자연 음계를 형성하며, 검은색 건반은 반음계를 나타낸다. 이 88개의 건반은 피아노 연주자의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우리에게 다양한 색채와 감정을 전달한다. 흰색 건반은 순수하고 밝은 소리를 만들어내며 기쁨, 사랑, 희망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반면, 검은색 건반은 어두운 소리를 만들어내며 슬픔, 고독, 긴장감과 같은 감정을 나타낸다.     우리의 삶도 항시 즐거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힘들었던 때도 그리고 괴로웠던 때도 있다. 또한 밝고, 혹은 어두웠던 일들을 모두 경험하면서 우리는 성장하며 삶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피아노의 흰색 건반과 검은색 건반이 어울려 아름다운 화음의 소리를 내듯, 우리의 삶 역시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의 건반을 치면서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또 다른 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피아노의 88개의 음계 소리가 각기 다르듯 우리 또한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장 자주 접하는 사람들은 학교 동문, 혹은 직장 동료들이지만 이곳 이민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민족은 물론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이로 인해 대화 또는 소통의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피아노의 여러 건반을 두드리듯이 그 덕에 우리의 이민 생활 역시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이처럼 복합적인 면이 있는 이민 생활 속에서 우리는 삶의 피아노를 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연주가 끝나는 어느 날, 그 자리에 모인 청중들은 그 사람이 만들어 낸 삶의 연주를 생각하면서 그 사람의 연주장에서 나오겠지.   마지막 연주곡으로 프랑스 작곡가이자 오르간 연주자로 유명한 세자르 프랭크(Cesar Franck)가 63세 되던 해 28세이던 바이올리니스트 외젠 이자이(Eugene Ysaye)의 결혼 선물로 썼다는 프랭크의 A장조 소나타(Sonata in A Major)가 연주되었다. 이 작품은 프랭크의 뛰어난 작곡 능력과 감성적인 표현력을 잘 보여주며, 많은 음악 애호가와 연주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마지막 악장의 강렬한 에너지와 열정적인 연주의 여운에 흠뻑 빠져 연주회장을 나오고 있었다. 이명렬 / 수필가수필 피아노 건반 흰색 건반과 피아노 건반 피아노 연주자

2024-01-11

[손영아의 열려라 클래식] 보헤미안의 영혼 바이올리니스트 김유은

예원학교부터 서울예고, 서울음대 및 동 대학원, 그리고 USC에서 고토 미도리의 수제자로 아티스트 디플로마를 받기까지 우수한 재능을 인정받고 또한 수많은 콩쿠르 입상의 정통을 밟아온 실력 있는 연주자. 바이올리니스트 김유은 역시 수많은 훌륭한 클래식 연주자의 하나이다. 거기에 더해지는 매력 넘치는 외모와 무대 장악력 또한 없지 않다.     하지만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게 있다면 그녀의 넘치는 열정과 자유로운 영혼이 깃든 연주다.   그녀의 열정과 재능이 클래식 음악 애호가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팬데믹이다. 무대를 잃은 대부분의 연주자가 실의에 빠져있을 때 그녀는 실망하기는커녕 Courtyard Concert를 열어 이웃을 위로하고, 언제 정상화가 될지도 모를 막막한 시기에 델리리움 무지쿰의 음악감독인 바이올리니스트 에디엔 가라와 함께 뮤지카라반을 만들어 6개월 동안 서부 일대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연주했다. 그들의 유니크한 연주 여행 이야기는 유튜브 뮤지카라반 채널에서 15개의 에피소드로 나눠 즐길 수 있다.   그녀는 연주 여행으로 바쁘지만,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지난 여름 한국에선 연주 일정 외에 모교인 서울예고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갖기도 했다.     체임버 앙상블 델리리움 무지쿰 활동은 물론, 바로크 악기로만 연주하는 바로크 앙상블과 협연, 피아니스트 장성, 기타리스트 이네스 토메 등 유명 연주자들과의 정기적인 듀오 콘서트도 연다.     그 외에도 거의 매일 다양한 프로그램의 다양한 무대를 준비하고 소화해내고 있다. 재능 있는 연주자로 그치지 않고 활발한 성격으로 매사 적극적이어서 늘 협연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 20일 카를로 폰티 지휘의 LA 비르투오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서 그녀는 슈베르트의 A 장조 론도를 연주했다. 이 곡은 18살의 슈베르트가 보육원 음악 교사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형을 위해 작곡한 곡이었다.     이날 청중들은 김유은의 유연하고 노련한 연주에 비해 오케스트라의 수준이 미치지 못하다고 느꼈을 거다. 왜냐하면 이 곡은 학생들이 연주할 수준으로 만들어져서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게 작곡된 솔로 파트보다 사실 오케스트라 파트는 다소 엉성하게 작곡되었기 때문이다.   지휘자 폰티는 봄의 새싹처럼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연주했다. 그 안에서 균형을 맞추면서도 바이올린 파트의 매력을 발산하는 모습을 보면서, 몹시 소심했던 슈베르트가 김유은을 만났더라면 배고플 일은 절대 없었을 텐데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오케스트라마저도 리드하는 연주자 김유은이 자랑스럽다.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자신의 기량을 펼치는 연주자,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소통하기 위해 다가가는 연주자, 그러면서 품위를 지키는 연주자, 자유로움과 질서가 균형 있게 공존하는 그녀의 품격 높은 무대는 늘 감탄을 자아낸다.  손영아 디렉터 / 비영리 공인기획사 YASMA7손영아의 열려라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 보헤미안 바이올리니스트 김유은 연주자 김유은 영혼 바이올리니스트

2023-11-05

[손영아의 열려라 클래식] 할리우드 보울서 만난 K클래식

지난달 초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첫 LA 공연이 열린 할리우드 보울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남가주 한인은 다 모인 듯했다. 게다가 연주곡목은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결승 곡이던 라흐마니노프 3번이다. 유튜브로나 보던 그의 역사적인 연주를 라이브로 들을 기회라는 건 모든 한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로 의아한 점은 지난해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협연할 때처럼 상임인 두다멜이 지휘하지 않고 객원 지휘자 역시 젊은 한인이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너무나 다행이었다. 덕분에 임윤찬은 물론 지휘자 성시연까지 만나고 온 날이 되었다. 이번 라흐마니노프의 밤을 지휘한 성시연은 보기 드문 여성 지휘자이고 아직 젊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남달랐다.     임윤찬을 돋보이게 하면서도 오케스트라와의 조화와 감성 표현, 때때로 드러내는 다이나믹함이 모든 연주자가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게다가 후반 연주한 ‘교향적 무곡’도 소신 있게 선곡했다고 본다.   그 어떤 객원 지휘자들과 비교되지 않게 오케스트라를 하나의 소리로 단합시켰다. 그녀는 조용하지만 강하게 관객을 포함한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가게 하는 힘을 가졌다. 그런 인내심으로 임윤찬과의 협연을 그 어떤 지휘자보다 더 잘 마쳤다고 본다. 무대 위 모든 연주자가 주인공이 되었다.   지난해 할리우드 보울 100주년 기념 무대의 하나였던 기념비적인 무대에서 이작 펄만은 제자인 랜달 구스비와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연주했다.     연주자로서는 물론 제자와의 무대를 만든 펄만의 인품이 돋보여서 더욱 감동이었다. ‘리틀 펄만’인 구스비는 그 큰 데뷔 무대를 스승과 함께 청중을 압도했다. 두 사람은 한 피아니스트의 오른손과 왼손처럼 완벽한 하모니를 들려줬다.   올해 내 눈에 띈 할리우드 보울의 바이올린 주자는 지난달 29일 베토벤을 협연한 클라라 주미 강이다. 그는 브라질 출신의 여성 지휘자 메네지스와 함께 베토벤을 협연했다. 아쉽게도 난 그녀와 통하지 못했다. 마이크의 문제인지 일단 악기 소리가 거슬렸고 오케스트라와 각자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점점 서로 타협이 되어 가면서 3악장은 무척 강한 인상을 남기며 마쳤다.     한인 연주자가 헐리우드 보울 무대에 오르면 한인들이 많이 찾아가면 좋겠다. 우리 정서에 맞는 한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소통이 더 잘 될 것이다. 브라질 출신 지휘자는 브라질다운 연주를 하고 있었고 강주미는 독일 출생이어도 한국적 감성이 저절로 강조되고 있었다.   앞으로 어떤 연주자가 오든지 지휘도 협연도 한국인이 무대를 채우는 날이 더 많이 늘어나면 좋겠다. 우리 정서에 딱 맞는 감성 넘치는 음악을 들으면서 휴식 같은 감동에 젖어보자. 손영아 디렉터 / 비영리 공연기획사 YASMA7손영아의 열려라 클래식 할리우드 클래식 객원 지휘자들 할리우드 보울 한인 연주자

2023-09-10

[문화산책] 아름답고 따스한 손의 표정

한동안 예술가의 손을 집중적으로 관찰한 적이 있다.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살펴보니 보면 볼수록 풍부하고 아름다운 손의 표정에 감탄하게 된다. 손이 말을 하고 음악을 만들고 춤을 춘다. 말이 안 통하면 손짓 발짓으로 소통한다. 수화의 세계는 한층 깊다.   젊은 시절 연극에 미쳐 지낼 때도 손의 다채로운 표정이 보여주는 표현력과 설득력에 감탄하며 소중하게 여겼지만,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손이 건네는 말과 표정은 정말 넓고 깊고 그윽하다.   예술세계에서는 거의 절대적이다. 음악가의 손은 아름답고 신비롭다. 오케스트라를 통솔하여 조화로운 음을 만들어내는 지휘자의 손도, 악기를 애무하는 연주자들의 손도, 가수의 손놀림도 깊고 그윽하다. 황제 카라얀의 손짓은 철학적이고,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손은 음악과 하나로 어우러지며 춤춘다. 지휘자마다 추구하듯 음향이 다르듯 손짓도 그렇게 다르다.   피아니스트의 현란한 손놀림, 바이올린 연주자의 섬세한 손 움직임, 하프 어루만지는 우아한 손길, 기타 고수의 현란한 손길…. 가야금 튕기는 손, 대금 연주자의 운지, 타악기 두드리는 신명의 손….   미술작품에 그려진 손들도 다양한 표정으로 많은 말을 한다. 볼수록 정겹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신과 인간이 서로 마주하며 소통하는 손, 알프레드 뒤러의 기도하는 손, 로댕이 조각한 손… 그 수많은 명작…. 명화에서 손 부분만을 따로 떼어서 감상해도 감동적이다. 정말 많은 것을 속삭여준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손, 도자기를 빚는 도공의 흙 묻은 손, 붓을 잡은 서예가의 손, 허공을 가르는 춤꾼의 손짓….   예술작품에서만이 아니다. 우리 삶에서도 손은 아름답다. 돈벌이를 위해 마지못해 컴퓨터 자판 위를 정처 없이 헤매는 손, 습관적으로 무표정하게 휴대전화를 두드리는 손, 돈을 세는 손…. 그런 고달픈 손 말고 아름다운 손이 많다. 열심히 일하다가 구슬땀 닦는 손, 책장을 넘기는 손, 정성껏 손글씨로 편지 쓰는 손, 화초에 물 주는 손, 아내의 젖은 손 같은 고맙고 거룩한 손…. 그중 으뜸은 아무래도 어머니의 거칠어진 손일 것이다.   우리 인간이 두 발로 걷는 직립보행의 삶을 시작하면서 손은 신체에서 가장 요긴한 부분으로 진화했다. 문명 발전의 가장 효율적 연장으로 아름답고 편리하게 진화했다. 그렇게 진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더러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은 ‘손’전화(휴대폰)의 시대다. 그러다 보니, 영화 ET의 손가락처럼 이상하게 변해버린 손도 점점 많아진다.   안타깝게도 우리네 현실에는 나쁜 손, 더러운 손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매우 어지럽고 아슬아슬하다. 무섭다. 방아쇠를 당기는 피 묻은 손, 아무 의미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허공을 찔러대는 정치가의 검은 손,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기에 바빠서 정의라는 말조차 잊어버린 기자의 창백한 손, 같은 반 친구의 인생을 폭력으로 뭉개버리는 젊은 청춘의 잔인한 손, 무슨 판결문이라는 걸 읽으며 공허하게 방망이 두드리는 손, 똑같은 말을 꼭 세 번씩 되풀이하며 내 질러대는 시위대의 손, 훔치는 손, 걸핏하면 파이팅 외치며 흔들어대는 주먹손, 때려 부수는 파괴의 손….   이렇게 부정적이고 어두운 손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아름다운 손, 착한 손이 건네는 다정한 말이 그리워진다. 손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사랑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나는 엄마의 손맛, 엄마손은 약손 같은 근원적 사랑의 손길, 진정성과 체온이 그득 담긴 예술가의 손길, 인공지능에는 없는….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표정 손길 인공지능 손길 진정성 대금 연주자

2023-05-18

[문화산책] 아름답고 따스한 손의 표정

한동안 예술가의 손을 집중적으로 관찰한 적이 있다.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살펴보니 보면 볼수록 풍부하고 아름다운 손의 표정에 감탄하게 된다. 손이 말을 하고 음악을 만들고 춤을 춘다. 말이 안 통하면 손짓 발짓으로 소통한다. 수화의 세계는 한층 깊다.   젊은 시절 연극에 미쳐 지낼 때도 손의 다채로운 표정이 보여주는 표현력과 설득력에 감탄하며 소중하게 여겼지만,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손이 건네는 말과 표정은 정말 넓고 깊고 그윽하다.   예술세계에서는 거의 절대적이다. 음악가의 손은 아름답고 신비롭다. 오케스트라를 통솔하여 조화로운 음을 만들어내는 지휘자의 손도, 악기를 애무하는 연주자들의 손도, 가수의 손놀림도 깊고 그윽하다. 황제 카라얀의 손짓은 철학적이고,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손은 음악과 하나로 어우러지며 춤춘다. 지휘자마다 추구하듯 음향이 다르듯 손짓도 그렇게 다르다.   피아니스트의 현란한 손놀림, 바이올린 연주자의 섬세한 손 움직임, 하프 어루만지는 우아한 손길, 기타 고수의 현란한 손길…. 가야금 튕기는 손, 대금 연주자의 운지, 타악기 두드리는 신명의 손….   미술작품에 그려진 손들도 다양한 표정으로 많은 말을 한다. 볼수록 정겹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신과 인간이 서로 마주하며 소통하는 손, 알프레드 뒤러의 기도하는 손, 로댕이 조각한 손… 그 수많은 명작…. 명화에서 손 부분만을 따로 떼어서 감상해도 감동적이다. 정말 많은 것을 속삭여준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손, 도자기를 빚는 도공의 흙 묻은 손, 붓을 잡은 서예가의 손, 허공을 가르는 춤꾼의 손짓….   예술작품에서만이 아니다. 우리 삶에서도 손은 아름답다. 돈벌이를 위해 마지못해 컴퓨터 자판 위를 정처 없이 헤매는 손, 습관적으로 무표정하게 휴대전화를 두드리는 손, 돈을 세는 손…. 그런 고달픈 손 말고 아름다운 손이 많다. 열심히 일하다가 구슬땀 닦는 손, 책장을 넘기는 손, 정성껏 손글씨로 편지 쓰는 손, 화초에 물 주는 손, 아내의 젖은 손 같은 고맙고 거룩한 손…. 그중 으뜸은 아무래도 어머니의 거칠어진 손일 것이다.   우리 인간이 두 발로 걷는 직립보행의 삶을 시작하면서 손은 신체에서 가장 요긴한 부분으로 진화했다. 문명 발전의 가장 효율적 연장으로 아름답고 편리하게 진화했다. 그렇게 진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더러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은 ‘손’전화(휴대폰)의 시대다. 그러다 보니, 영화 ET의 손가락처럼 이상하게 변해버린 손도 점점 많아진다.   안타깝게도 우리네 현실에는 나쁜 손, 더러운 손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매우 어지럽고 아슬아슬하다. 무섭다. 방아쇠를 당기는 피 묻은 손, 아무 의미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허공을 찔러대는 정치가의 검은 손,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기에 바빠서 정의라는 말조차 잊어버린 기자의 창백한 손, 같은 반 친구의 인생을 폭력으로 뭉개버리는 젊은 청춘의 잔인한 손, 무슨 판결문이라는 걸 읽으며 공허하게 방망이 두드리는 손, 똑같은 말을 꼭 세 번씩 되풀이하며 내 질러대는 시위대의 손, 훔치는 손, 걸핏하면 파이팅 외치며 흔들어대는 주먹손, 때려 부수는 파괴의 손….   이렇게 부정적이고 어두운 손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아름다운 손, 착한 손이 건네는 다정한 말이 그리워진다. 손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사랑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나는 엄마의 손맛, 엄마손은 약손 같은 근원적 사랑의 손길, 진정성과 체온이 그득 담긴 예술가의 손길, 인공지능에는 없는….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표정 손길 인공지능 손길 진정성 대금 연주자

2023-05-11

[문화산책] 소리가 없기에 소리를 포용하는…

 지난 겨울 방학에 콘퍼런스 참석하기 위해 알래스카주에서 플로리다주로 날아갔다. 콘퍼런스가 끝난 후 플로리다주와 가까운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 사는 옛 친구를 만났다. 마침 마르디 그라(Mardi Gras)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뉴올리언스를 감싼 아프리카계·카리브계·프랑스계·스페인계 문화의 열기에 휩싸이면서 내 모국의 경계 밖에서 떠돌았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언어·예술·악기 등 문화적 요소는 (마치 미세먼지처럼) 지도상의 국경을 넘나들며 부유하고, 출신 국가의 정서와 미학을 공유한다. 그러나 일단 외국에 정착하면 그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존재로 성장하기 마련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뉴올리언스에서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프랑스어 안내방송을 들었을 때였다. 그때 나는 공자가 연주했다는 중국 전통 현악기 금(琴) 연주자인 어느 교수와의 대담에 초청받았다. 우리의 임무는 중국 악기 금과 내가 지난 30년간 한국에서 연주해 온 가야금 간의 철학적·음악적 연계를 논의·시연하는 것이었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 금과 관련된 중국 정서와 미학이 오랜 세월 동안 어떤 식으로 한국 국경을 넘어 새로운 전통을 심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캐나다에서 행사가 있기 몇 주 전 소셜미디어에 프로그램 공지를 했더니, 어느 중국 음악학자가 마치 내가 보리죽과 궁중요리를 비교하기라도 한 듯 “어떻게 가야금과 금을 비교할 수 있느냐”며 반발했다. 금에 내포된 문화·음악·철학적 가치는 중국의 정체성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금도’(琴道)에서 금은 연주 레퍼토리 이상으로, 그것과 관련된 본질을 구현하는 삶의 방식을 상징한다.   중국 죽림칠현(竹林七賢) 고사에서 금 연주자 혜강(223~262)은 ‘금의 미덕’을 관통·고요·불가측(不可測)이라고 봤다. 그는 “금이라는 조화는 고요하여, 완벽하고 심오하다”고 선언했다. 로위예층 교수는 『도의 동반자:도교 철학』 ‘칠현’ 장에서 “소리가 없기 때문에 모든 소리를 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로 교수에 따르면 이 ‘소리 없는 소리’는 “악기나 인위적인 박자에 얽매이지 않는다.” 혜강과 로 교수의 말은 오른손으로 현을 뜯는 순간 아무리 왼손으로 조절을 해도 점차 사라져가는 소리를 내포한다. 금과 가야금을 비교하는 것은 이 고요한 상상 속 공간(우리의 귀가 아닌 생각 속에서 떨림이 머무르는 곳) 안에 있는 소리다.   서양 언어로 금을 탐구했던 동양학자 로베르트 한스 반 훌릭(Robert Hans Van Gulik)은 1938년 『금도』(琴道, Lore of the Lute)에서 금의 소리 없는 아름다움이 “각각의 음에도, 심지어 음의 연속에도 있지 않다. (…) 같은 음이 서로 다른 현에서 발생하면 다른 색채를 띠고, 같은 현을 검지로 뜯을 때와 중지로 뜯을 때 다른 성격을 지닌다. 이토록 다양한 음색이 발생하는 금 연주법은 극히 복잡하다”고 말했다. 이 구절에서 저자는 가야금에 대해서도 논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가야금 연주자는 금 연주자와 상당히 유사한 방법으로 현을 뜯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거문고가 양반의 악기로 여겨졌다. 거문고는 금과 달리 술대로 연주했다. 유교 윤리와 도가 철학과 같은 맥락에서 남성적이고 심오한 금도를 구현하며, 남성 학자들의 사색을 돕는 도구로 여겨졌다. 조선시대에는 한시를 번역할 때 이런 맥락을 담아 금을 거문고로 대체해 번역하곤 했다.   그러나 가야금과 금을 비교해 보면 뜯고 퉁기는 기법이 매우 비슷하고, 악기 모양이나 세부 명칭(안족 雁足, 봉지 鳳池 등)에도 유사한 점이 많다. 현을 뜯으며 나는 소리를 꾸미는 왼손이 야생에서 자란 학 날개 같은 모양을 하는 점도 그렇다. 두 악기의 소리판이 상징하는 ‘하늘’과 ‘땅’ 위에 쭉 뻗은 현들을 연주할 때, 금 연주자와 가야금 연주자 모두 온 우주를 바라보고 안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금과 가야금은 매우 상이한 미학적 영토에 거주하면서 매우 상이한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의 마음을 반영한다.   금과 가야금의 이야기는 경계를 넘어 이루어지는 문화 구축의 핵심 원동력을 보여준다. 결국 오랜 시간이 흘러 원래의 것과 각색된 것이 마주치고, 비슷한 철학적 이상을 좇는 두 사람이 전혀 다른 미학적 목적지에 도달한다. 이런 순간은 지도상의 어떤 선보다도 각 나라의 정체성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조세린 /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문화산책 중국 소리 가야금 연주자 전통 현악기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2023-03-12

올라 아이즈너 오케스트라 한인 연주자ㆍ합창단원 모집

'올라(HOLA) 아이즈너 인터제너레이션 오케스트라(단장 토니 브라운)'가 한인 연주자 및 합창단원을 모집한다.   LA 한인타운 인근 맥아더 파크에 위치한 올라 커뮤니티 문화센터는 인종과 나이를 뛰어넘어 음악 프로그램과 연주를 통해 세대 및 문화의 장벽을 허무는 등 커뮤니티 화합을 중시하는 비영리 단체다. 특히 세대 간 화합을 중시하는 아이즈너 재단의 후원 이후 합창 및 오케스트라 단원의 연령 제한을 대폭 확대한 뒤 지난해 새롭게 변모한 올라 오케스트라는 한인 1.5세인 다니엘 석 예술 감독이 이끌고 있다.   올라 오케스트라 측은 "12세부터 75세까지 음악 및 악기 연주에 관심이 있는 한인들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며 "수준급 연주자도 환영하지만, 악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도 참여해 배울 수 있는 수업도 마련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올라 합창단 연습은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밴드 리허설은 목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오케스트라 리허설은 월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윌셔와 라파예트 파크 플레이스 코너에 위치한 문화센터에서 진행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웹사이트(heartofla.org)를 참조하면 된다. ▶문의:(213)321-4096오케스트라 아이즈너 아이즈너 오케스트라 합창단원 모집 한인 연주자

2022-09-11

[시론] 전쟁과 음악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젊은 예술가 임윤찬 군이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과 그의 연주를 듣는 감동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는다.   한국의 젊은 연주가들이 국제 콩쿠르에서 연이어 우승하면서 두각을 나타내던 차에 임윤찬 군이 정점을 찍은 느낌이었다. ‘K-클래식이 세계를 휩쓴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실감으로 다가왔다. 장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흥분이 가라앉은 뒤 다시 차근차근 살펴보니, 중요한 지점을 그냥 지나친 것을 깨달았다. 전쟁과 음악의 관계….     이번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은메달 수상자는 러시아의 안나 게뉴셰네(31)였고, 동메달은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초니(28)가 수상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상징적인 일인데, 우리 젊은이의 우승에 흥분한 나머지 그냥 지나친 것이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최종 결선에 진출한 사람은 6명이었는데 그중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가 1명, 러시아 연주자 2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대해 세계의 음악계가 엄중하게 규탄하는 분위기를 고려할 때, 심사가 공정하게 이루어질까, 청중들의 반응은 어떨까? 아슬아슬하다.     다행스럽게도 염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대회는 성숙한 분위기로 마감되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참가자가 국적 때문에 비난받는 일도 없었고, 박수를 더 받는 일도 없었다. 2000여 명의 관객 중 누구 하나 야유나 비난을 퍼붓지 않고, 박수갈채를 수상자에게 보냈다. 수상자들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서로 격려했다고 한다. 언론보도는 이렇다.   ‘올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우크라이나 국가를 연주하며 피해국에 대한 지지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면서도 러시아 연주자 개인에게는 불이익을 주거나 비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좋은 선례가 됐다’.   전쟁 중인 두 나라의 젊은 예술가가 나란히 상을 받는 장면은 예사롭지 않다. 시상식 겸 폐막식은 온라인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으니, 세계에 전하는 메시지도 막강하다. 전쟁 중에도 음악 안에서 하나 될 수 있다.   예술이 세상의 현실과 무관할 수는 없다. 국제 정치의 냉혹한 현실과 예술의 자율성 관계는 늘 아슬아슬하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세계 클래식 음악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고 있다.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가 전 세계 음악콩쿠르를 관장하는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로부터 회원 자격을 박탈당했다.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는 콩쿠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다.     러시아 출신의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서구의 공연단체들로부터 공연 스케줄에서 배제되는 일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푸틴과 친분이 깊은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등이다.     게르기예프는 독일 뮌헨필하모닉의 수석지휘자에서 해고됐고, 여러 공연 일정이 취소됐다. 예정되었던 뉴욕 카네기홀에서의 빈 필하모닉 지휘 또한 전격 취소됐다. 협연하려던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도 푸틴 지지자여서 함께 취소됐다. 바로 연주 전날 이런 일이 벌어졌다.   긴급 교체된 지휘자는 야니크 네제 세갱, 협연자는 조성진이었다. 조성진은 이 연주로 원래 예정됐던 마추예프보다 더 나은 것 같다는 격찬을 받으며, 뉴욕 음악계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전쟁 중에도 음악은 멈추지 않는다. 멈춰서는 안 된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시론 줄타기 전쟁 세계 음악콩쿠르 러시아 연주자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

2022-07-18

[시론] 전쟁과 음악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젊은 예술가 임윤찬 군이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과 그의 연주를 듣는 감동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는다.   한국의 젊은 연주가들이 국제 콩쿠르에서 연이어 우승하면서 두각을 나타내던 차에 임윤찬 군이 정점을 찍은 느낌이었다. ‘K-클래식이 세계를 휩쓴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실감으로 다가왔다. 장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흥분이 가라앉은 뒤 다시 차근차근 살펴보니, 중요한 지점을 그냥 지나친 것을 깨달았다. 전쟁과 음악의 관계….     이번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은메달 수상자는 러시아의 안나 게뉴셰네(31)였고, 동메달은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초니(28)가 수상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상징적인 일인데, 우리 젊은이의 우승에 흥분한 나머지 그냥 지나친 것이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최종 결선에 진출한 사람은 6명이었는데 그중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가 1명, 러시아 연주자 2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대해 세계의 음악계가 엄중하게 규탄하는 분위기를 고려할 때, 심사가 공정하게 이루어질까, 청중들의 반응은 어떨까? 아슬아슬하다.     다행스럽게도 염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대회는 성숙한 분위기로 마감되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참가자가 국적 때문에 비난받는 일도 없었고, 박수를 더 받는 일도 없었다. 2000여 명의 관객 중 누구 하나 야유나 비난을 퍼붓지 않고, 박수갈채를 수상자에게 보냈다. 수상자들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서로 격려했다고 한다. 언론보도는 이렇다.   ‘올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우크라이나 국가를 연주하며 피해국에 대한 지지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면서도 러시아 연주자 개인에게는 불이익을 주거나 비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좋은 선례가 됐다’.   전쟁 중인 두 나라의 젊은 예술가가 나란히 상을 받는 장면은 예사롭지 않다. 시상식 겸 폐막식은 온라인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으니, 세계에 전하는 메시지도 막강하다. 전쟁 중에도 음악 안에서 하나 될 수 있다.   예술이 세상의 현실과 무관할 수는 없다. 국제 정치의 냉혹한 현실과 예술의 자율성 관계는 늘 아슬아슬하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세계 클래식 음악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고 있다.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가 전 세계 음악콩쿠르를 관장하는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로부터 회원 자격을 박탈당했다.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는 콩쿠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다.     러시아 출신의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서구의 공연단체들로부터 공연 스케줄에서 배제되는 일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푸틴과 친분이 깊은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등이다.     게르기예프는 독일 뮌헨필하모닉의 수석지휘자에서 해고됐고, 여러 공연 일정이 취소됐다. 예정되었던 뉴욕 카네기홀에서의 빈 필하모닉 지휘 또한 전격 취소됐다. 협연하려던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도 푸틴 지지자여서 함께 취소됐다. 바로 연주 전날 이런 일이 벌어졌다.   긴급 교체된 지휘자는 야니크 네제 세갱, 협연자는 조성진이었다. 조성진은 이 연주로 원래 예정됐던 마추예프보다 더 나은 것 같다는 격찬을 받으며, 뉴욕 음악계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전쟁 중에도 음악은 멈추지 않는다. 멈춰서는 안 된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시론 줄타기 전쟁 세계 음악콩쿠르 러시아 연주자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

2022-07-14

[이 아침에] 느닷없이 웬 봉고?

나는 통증을 잘 견딘다. 오랜 기간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간호사들이 내게 참을성 있는 착한 환자라고 칭찬을 하곤 했다. 다른 환자에 비해 고통을 덜 느껴서가 아니라 입 밖으로 엄살을 부리지 않으니 그리 생각했나 보다.   관절수술 후 재활운동할 때도 물리 치료사가 칭찬을 했다. 신장 두 개를 다 떼어내고 인공호흡기를 끼고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을 때도 말이 없으니 모든 병원 스태프들이 엄지 척 나의 인내심을 인정했다.   진통제를 목에 걸어주고 통증이 심할 때마다 눌러 주입하라 했는데도 그냥 곰처럼 참으며 진통제를 남겼다. 영리하지 못한 환자이지 칭찬 받을 만한 위인은 아니다.   통증 말고 배고픔도 실연의 상처도 인간들의 험담도 무난하게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못 참는 게 있다. 그건 소리에 관한 것이다. 소음에 병적으로 예민해서 심지어 남에게 전화를 잘 걸지도 않는다. 정해진 시간을 넘겨 오래 하는 강의도 못 견딘다. 출판 기념회의 칭찬 일색의 격려사, 짜고 치는 주례사, 평론 등은 참지 못해 퇴장하는 결례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쯤 되면 청각의 문제인지 인성의 문제인지 헷갈리긴 하나 작은 소리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니 매일 저녁 부는 나팔 소리 이런 것은 어떻게 견디겠는가. 남편의 트럼펫 아르방 연습 교본의 스케일을 매일 듣는 걸 상상해보라. 20년 가까이 듣는 일은 공황장애가 올 정도로 신경이 곤두선다. 거기다 몇 년 전부터는 성가대에서 맡게 된 팀파니를 추가해 연습을 하고 있다. 소음에 앨러지가 있는 내가 매일 소음을 생산하는 사람과 살게 되다니 그 엇박자 연분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엊그제 의문의 택배 상자가 풀지도 않은 채 방안에 있는 걸 발견했다. 궁금해서 물으니 무심한 듯 ‘봉고’라고 한다. 소리에 예민한 나를 모르지 않기에 후환이 두려워 박스를 풀지 않고 두었나 보다. “남미사람들이 두드리는 봉고?” “그렇지 라틴 음악에 많이 쓰는….”   TV에서 본 방정맞은 봉고 소리와 자발없는 봉고 연주자가 뇌리를 스쳤다. 30년 넘게 남미계 직원들과 일을 하더니 라틴화된 남편. 김치보단 살사를, 타코와 케사디아, 엘 포요를 밥 대신 주식처럼 먹는다. 그러더니 이게 무슨 도발인가. 집 가까이에 사는 봉고를 가르치는 선생까지 구했다며 다음 토요일부터 레슨을 시작한단다.   며칠 전에 원하지도 않은 헤드셋을 사주더니 귀마개를 미리 마련해 불평을 차단하려는 속셈이었네. 더 할 이야기가 있지만 길어지면 나 스스로 짜증 나니 그만하기로 한다. 세상의 모든 악처들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봉고 봉고 소리 봉고 연주자 나팔 소리

2022-05-01

[이 아침에] 느닷없이 웬 봉고?

나는 통증을 잘 견딘다. 오랜 기간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간호사들이 내게 참을성 있는 착한 환자라고 칭찬을 하곤 했다. 다른 환자에 비해 고통을 덜 느껴서가 아니라 입 밖으로 엄살을 부리지 않으니 그리 생각했나 보다.   관절수술 후 재활운동할 때도 물리 치료사가 칭찬을 했다. 신장 두 개를 다 떼어내고 인공호흡기를 끼고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을 때도 말이 없으니 모든 병원 스태프들이 엄지 척 나의 인내심을 인정했다.   진통제를 목에 걸어주고 통증이 심할 때마다 눌러 주입하라 했는데도 그냥 곰처럼 참으며 진통제를 남겼다. 영리하지 못한 환자이지 칭찬 받을 만한 위인은 아니다.   통증 말고 배고픔도 실연의 상처도 인간들의 험담도 무난하게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못 참는 게 있다. 그건 소리에 관한 것이다.   소음에 병적으로 예민해서 심지어 남에게 전화를 잘 걸지도 않는다. 정해진 시간을 넘겨 오래 하는 강의도 못 견딘다. 출판 기념회의 칭찬 일색의 격려사, 짜고 치는 주례사, 평론 등은 참지 못해 퇴장하는 결례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쯤 되면 청각의 문제인지 인성의 문제인지 헷갈리긴 하나 작은 소리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니 매일 저녁 부는 나팔 소리 이런 것은 어떻게 견디겠는가. 남편의 트럼펫 아르방 연습 교본의 스케일을 매일 듣는 걸 상상해보라. 20년 가까이 듣는 일은 공황장애가 올 정도로 신경이 곤두선다. 거기다 몇 년 전부터는 성가대에서 맡게 된 팀파니를 추가해 연습을 하고 있다. 소음에 앨러지가 있는 내가 매일 소음을 생산하는 사람과 살게 되다니 그 엇박자 연분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엊그제 의문의 택배 상자가 풀지도 않은 채 방안에 있는 걸 발견했다. 궁금해서 물으니 무심한 듯 ‘봉고’라고 한다. 소리에 예민한 나를 모르지 않기에 후환이 두려워 박스를 풀지 않고 두었나 보다.   “남미사람들이 두드리는 봉고?”   “그렇지 라틴 음악에 많이 쓰는….”   TV에서 본 방정맞은 봉고 소리와 자발없는 봉고 연주자가 뇌리를 스쳤다. 30년 넘게 남미계 직원들과 일을 하더니 라틴화된 남편. 김치보단 살사를, 타코와 케사디아, 엘 포요를 밥 대신 주식처럼 먹는다. 그러더니 이게 무슨 도발인가. 집 가까이에 사는 봉고를 가르치는 선생까지 구했다며 다음 토요일부터 레슨을 시작한단다.   며칠 전에 원하지도 않은 헤드셋을 사주더니 귀마개를 미리 마련해 불평을 차단하려는 속셈이었네.   더 할 이야기가 있지만 길어지면 나 스스로 짜증 나니 그만하기로 한다. 세상의 모든 악처들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봉고 봉고 소리 봉고 연주자 나팔 소리

2022-04-26

[왜 음악인가] 공연을 중단한 지휘자

 오케스트라의 지휘대에 선 상상을 해보자. 지휘할 곡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 1악장은 4분의 4박자다.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첫 음을 시작하면 두 박자 후에 바이올린이 일제히 등장한다.  그런데 만일 바이올린 주자들의 연주가 잘못됐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욱 힘껏 박자를 젓는다? 모른 척하고 계속한다?   이달 7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파리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얍 판 츠베덴은 연주를 멈췄다. 그 후 처음부터 다시 했다. 연습도 아니고 청중이 있는 공연에서 음악을 멈추고 다시 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지휘자는 잘못된 지휘를 인정하는 수치를 견뎌야 하는 일이다. 영국의 음악 비평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1958년 지휘자 아드리안 볼트가 BBC 심포니의 연주를 중지한 후 처음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음악 무대에서는 생각보다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순간에 지나간 음(音)은 고치거나 덧칠할 수 없다. 그나마 혼자 연주할 때는 실수의 치명도가 낮다. 잘못했어도 만회할 수가 있다. 하지만 여럿이 연주할 때는 빠르게 판단할 리더가 필요하다. 바이올린 연주자 수십명이 한번 제각각 연주하기 시작하면 다시 맞추기 어려우니까.   리더가 잘못 판단하면 재앙이 된다. 2019년 러시아 모스크바. 세계적 대회인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한 중국인 피아니스트가 결선에 올랐다. 그는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기로 돼 있었는데, 지휘자는 순서를 반대로 알고 있었다. 사고가 일어날 조건은 충분했다. 연주 전 곡목을 알리는 방송은 지휘자만 알아들을 수 있는 러시아어로 나왔다. 오케스트라가 라흐마니노프를 시작했을 때 차이콥스키를 준비하던 피아니스트는 제대로 된 음을 연주하지 못했다. 상황 파악을 하고 오케스트라와 맞췄을 때는 첫 6마디쯤 놓치고 난 다음이었다.   당시 콩쿠르 측은 순서를 제대로 전하지 못한 진행 요원을 징계했지만 문제는 지휘자에게도 있었다. 피아니스트가 아무 음도 치지 못하고 당황하며 지휘자를 바라봤지만 지휘는 계속됐다. 지휘자는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고 판단도 불가능했다. 콩쿠르 측은 참가자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겠다고 했지만 참가자가 거부했고, 이 장면은 두고두고 콩쿠르의 오점으로 남게 됐다.   1958년에 아드리안 볼트는 BBC 심포니와 마이클 티펫의 교향곡 2번을 지휘하다 첫 2분을 조금 넘기고 연주를 멈췄다. 뒤로 돌아서서 청중에 “모두 나의 잘못”이라 한 후 처음부터 연주했다. 이 연주는 유튜브에서도 들을 수 있다. 이달 초 츠베덴과 파리 오케스트라가 다시 시작한 쇼스타코비치 또한 훌륭했다고 한다. 리더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으면 꼬여버린 연주로 남을뻔한 장면들이다. 김호정 / 한국 문화팀 기자왜 음악인가 지휘자 공연 지휘자 아드리안 바이올린 연주자 차이콥스키 콩쿠르

202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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