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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느닷없이 웬 봉고?

나는 통증을 잘 견딘다. 오랜 기간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간호사들이 내게 참을성 있는 착한 환자라고 칭찬을 하곤 했다. 다른 환자에 비해 고통을 덜 느껴서가 아니라 입 밖으로 엄살을 부리지 않으니 그리 생각했나 보다.
 
관절수술 후 재활운동할 때도 물리 치료사가 칭찬을 했다. 신장 두 개를 다 떼어내고 인공호흡기를 끼고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을 때도 말이 없으니 모든 병원 스태프들이 엄지 척 나의 인내심을 인정했다.
 
진통제를 목에 걸어주고 통증이 심할 때마다 눌러 주입하라 했는데도 그냥 곰처럼 참으며 진통제를 남겼다. 영리하지 못한 환자이지 칭찬 받을 만한 위인은 아니다.
 
통증 말고 배고픔도 실연의 상처도 인간들의 험담도 무난하게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못 참는 게 있다. 그건 소리에 관한 것이다. 소음에 병적으로 예민해서 심지어 남에게 전화를 잘 걸지도 않는다. 정해진 시간을 넘겨 오래 하는 강의도 못 견딘다. 출판 기념회의 칭찬 일색의 격려사, 짜고 치는 주례사, 평론 등은 참지 못해 퇴장하는 결례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쯤 되면 청각의 문제인지 인성의 문제인지 헷갈리긴 하나 작은 소리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니 매일 저녁 부는 나팔 소리 이런 것은 어떻게 견디겠는가. 남편의 트럼펫 아르방 연습 교본의 스케일을 매일 듣는 걸 상상해보라. 20년 가까이 듣는 일은 공황장애가 올 정도로 신경이 곤두선다. 거기다 몇 년 전부터는 성가대에서 맡게 된 팀파니를 추가해 연습을 하고 있다. 소음에 앨러지가 있는 내가 매일 소음을 생산하는 사람과 살게 되다니 그 엇박자 연분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엊그제 의문의 택배 상자가 풀지도 않은 채 방안에 있는 걸 발견했다. 궁금해서 물으니 무심한 듯 ‘봉고’라고 한다. 소리에 예민한 나를 모르지 않기에 후환이 두려워 박스를 풀지 않고 두었나 보다. “남미사람들이 두드리는 봉고?” “그렇지 라틴 음악에 많이 쓰는….”
 
TV에서 본 방정맞은 봉고 소리와 자발없는 봉고 연주자가 뇌리를 스쳤다. 30년 넘게 남미계 직원들과 일을 하더니 라틴화된 남편. 김치보단 살사를, 타코와 케사디아, 엘 포요를 밥 대신 주식처럼 먹는다. 그러더니 이게 무슨 도발인가. 집 가까이에 사는 봉고를 가르치는 선생까지 구했다며 다음 토요일부터 레슨을 시작한단다.
 
며칠 전에 원하지도 않은 헤드셋을 사주더니 귀마개를 미리 마련해 불평을 차단하려는 속셈이었네. 더 할 이야기가 있지만 길어지면 나 스스로 짜증 나니 그만하기로 한다. 세상의 모든 악처들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정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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