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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영웅전] ‘삼민주의’ 쑨원

쑨원(孫文·1866~1925)은 중국 광둥(廣東)성 포산(佛山)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먹고살기 어려워 형 쑨메이(孫眉)가 먼저 하와이에 이민 가 어느 정도 성공하자 형을 찾아 태평양을 건넜다. 거기서 미국 민주주의와 영어를 일찍부터 배웠다. 4년 동안 살면서 종교 문제로 형과 뜻이 맞지 않아 귀국해 홍콩의학교를 졸업했다.   병원은 꽤 성황이었다. 어느 날 산보 삼아 홍콩의 영국인 공원에 갔다가 입장을 거절당했다. 경비원이 간판을 가리키는데 ‘개와 중국인은 입장할 수 없음(No dogs and Chinese allowed, 狗與華人不得入內)’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문득 “나는 사람을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나라를 고치는 의사’(國醫)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2년 만에 병원을 청산한 뒤 조국 혁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해가 청일전쟁이 일어난 1894년으로 28세 때였다. 신산한 삶을 거쳐 신해혁명(1911년)에 성공했으나 권력에 탐닉한 위안스카이(袁世凱)와의 내전이 임박하자 임시대총통의 기득권을 양보하고 야인으로 돌아갔다.   그러던 사이에 쑨원은 일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 사회에 적응하려고 나카야마 키코리(中山樵)로 개명했다. 이때부터 중산(中山)이 그의 호로 굳어졌다. 한국인의 의식과는 아주 달랐다. 우리가 일제 시대의 이름을 이어서 썼더라면 어찌 됐을까.   1924년 중·일 갈등이 치열할 무렵 외과의사인 그는 몸의 이상을 직감했다. 암이었다. 살아서는 중국의 민주화와 자주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해 강의를 시작했으나 네 번을 마치고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었다. 나머지를 유언 형식으로 후계자 장제스(蔣介石·1887~1975)에게 남기고 눈을 감았다. 민족·민권·민생을 역설한 '삼민주의(三民主義)'가 그것이다. 역사가 영웅주의로 흐르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역사는 결국 영명한 지도자의 발자취였다.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신 영웅전 삼민주의 쑨원 역사가 영웅주의 후계자 장제스 종교 문제

2024-10-13

[살며 생각하며] 내가 너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토요일 오후, 종잡을 수 없는 봄 날씨였다. 뉴욕에 사는 친구와 함께한 갤러리를 찾아갔다. 전시실 가운데 이불 수백 개가 포개져서 천정까지 올라가 있다. 컴포터, 담요, 퀼트, 손뜨개 등 온갖 종류의 이불이 사각으로 접혀서 탑을 만들고 있다. 자세히 보니 이불마다 가격표보다 조금 큰 쪽지가 붙어 있다. 쪽지에는 이불을 보낸 사람의 이름과 사는 곳, 사연이 적혀있다. 콜로라도, 일리노이, 샌디에이고 등 전국에서 보내왔다. 다음은 한 쪽지에 적힌 내용이다.     ‘나의 이름은 페트리샤. 나의 엄마는 15살이 되기 전에 엄마와 할머니를 모두 잃었다. 그들은 다행히도 죽기 전에 엄마에게 크로켓 뜨개질을 가르쳐 주었다. 엄마는 슬픈 날이나 기쁜 날이나 손에서 뜨개질을 놓지 않았다. 그 후로 가족의 중요한 행사에 손뜨개 한 이불을 선물하곤 했다. 누구나 엄마의 손이불을 받으면 기뻐했다. 우리는 아이오와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았다. 나는 우리 가문에서 최초로 대학에 간 영광스러운 아이라고 엄마는 말했다. 기숙사로 떠날 즈음, 엄마는 밤새워 뜨개질을 시작했다. 떠날 날이 되었지만, 엄마는 한 귀퉁이를 마치지 못했다. 이불은 조금 찌그러진 사각형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 부분, 엄마가 짜다가 만 그곳에 코에 대고 밤에 잠든다.’   이불을 쌓아 올린 작가 마리 와트(Marie Watt)는 세네카 인디언과 독일계통의 혼혈이다. 마리의 엄마는 어린 시절에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보내졌다. 엄마는 자신의 언어는 잊었지만, 딸인 마리에게 세네카 부족의 신화를 들려주었다. 하늘에서 한 소녀가 땅으로 떨어지던 중에 거북이가 나타났다. 소녀는 거북이 등에 타고 포틀랜드 땅에 무사히 안착했다. 마리는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손으로는 헝겊을 만지작 거라곤 했다. 엄마가 이어서 만들어준 헝겊 이불에 천착하다 보니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이불들을 모아서 전시하게 되었다. 아픈 친구가 죽을 때까지 덥던 이불, 쌍둥이 형제가 헤어지면서 나눠 가진 이불. 이불 틈에는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개개인의 숭고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나는 가끔 나의 부모님이 사셨던 격동기의 한국을 상상한다. 어느 날 아침 외출을 나갔다가 쓰러져 숨을 거둔 아버지가 그날 만난 사람은 누구일까? 무슨 이야기를 듣고 혈압이 올랐을까? 궁금한 점이 꼬리를 문다. 어머니는 어렴풋이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그분도 아버지 곁으로 가셨다. 무엇이라도 남아 있다면, 편지든 메모든… 침묵 속으로 영면한 사연은 알 길이 없다.     “할머니의 엄마는 어떤 분이야?” 어느 날, 8살 손녀가 뜬금없이 물었다.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막했다. 또 이렇게 묻기도 한다. “정말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어?” 한글 학교에서 선생님이 들려주는 역사가 옛날이야기처럼 들리는 모양이다. 역사 시간과 한국 음식 먹는 시간이 제일 좋다고 한다. 손녀는 언젠가는 한글을 읽게 될지도 모른다. 또 그러고 나면, 누가 아는가. 나의 어느 후손이 미국에 건너온 선조에 관심이 생길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끄적거리는 글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내 이야기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오늘 첼시의 한 갤러리에서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글 한 조각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 기록이란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고유의 가치가 있다.     마리 와트의 이불 작품에는 ‘너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나의 이야기도 변한다. (My story changes when I know your story)’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어느 먼 훗날, 책상 서랍 혹은 먼지 낀 책장 구석에서 나의 글 조각이 툭 튀어나온다면, 그것을 후손 중 누군가가 읽어본다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더 알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확장할지 누가 알겠는가.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이야기 역사가 옛날이야기 헝겊 이불 이불 쌍둥이

2024-05-13

“차세대 미래 위해 헌신하자” 미주 한인의날 행사 성황

     미주한인재단 워싱턴(회장 박로사)이 10일 오전 연방의회 캐논빌딩에서 제 19회 미주 한인의 날 행사 및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그동안의 성과를 회고하며 미래를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여러 연방의원과 정관계 인사, 한인사회 리더 등 16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박로사 회장은 “1903년 하와이에 처음 도착한 이민선조들이 일제강점기 하에서도 아이들에게 한인 정체성을 강조하며 우리의 이민 역사를 지켜냈다”면서 “우리는 앞으로 차세대를 위한 헌신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계승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헤롤드 변 한인의 날 기념식 준비위원회 위원장은 미주한인의 날이 제정된 역사를 상기하며 “미주한인의 정체성이 미국의 다양성 속에 더욱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애 재단 이사장은 “121년 미주 한인의 역사 속에 2006년 처음 한인의 날을 기념한 후 지금까지 크나큰 성취를 이뤘다”면서 “이민선조의 땀과 눈물, 희생을 바탕으로 우리 또한 사랑과 헌신으로 서로 돕고 차세대를 이끌어야 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조기중 워싱턴 총영사가 대독한 축사를 통해 “한인사회가 이미 4명의 연방의원을 배출하고 한미동맹의 한 축을 형성했으며, 한미동맹 70년의 역사가 미주한인의 역사와 궤를 함께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쉘 스틸 연방하원의원은 “한인 1세대의 열성적인 교육열이 오늘의 성과를 일구었다”면서 “한인 출신 연방의원으로서, 열린 마음으로 한인 커뮤니티의 애로사항과 정책적 건의를 받을테니 언제든지 연락달라”고 당부했다.   메를린 스트릭랜드 연방하원의원은 “한인들은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룬 가운데, 특히 여성들의 헌신이 돋보였으며 젊고 유능한 여성들이 많이 배출됐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   탐 데이비스 전 연방하원의원은 미주한인의 날 제정 당시를 떠올리면서 “기념일은 한인들의 헌신에 대한 매우 온당한 댓가이며, 더 큰 결실을 예비하는 것”이라고 격려했다.   랍 휘트먼 연방하원의원은 “주변에 힘든 이민생활 속에 자녀를 웨스트포인트와 프린스턴 대학 등에 진학시키고 의사와 변호사를 만드는 한인들을 많이 본다”면서 “이제는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등 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밖에도 박충기 메릴랜드 행정법원 원장과 서정일 미주총연 회장이 축사를 했다.   기념식에서는 수미 테리 박사가 한인리더십상을 수상했다. 테리 박사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하고 윌슨센터 아시아국장 등을 역임하며 미국의 동아시아태평양 지역 외교 정책을 실질적으로 주도해 온 인물 중 한명이다. 특히 최근에는 탈북자 인권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비욘드 유토피아(Beyond Utopia)’를 제작해 큰 관심을 모았다. 테리 박사는 주로 북핵문제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했던 북한 인권과 탈북자 인권 문제에 뒤늦게 천착해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배경을 설명하며 “우리는 그동안 북한 인권에 대해 얘기했으나 주로 북한의 비핵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인권문제를 우선순위에서 배 제해 왔다”며 “앞으로는 북한 인권이 대북정책의 실질적인 한부분을 차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서 개막기도를 한 벧엘교회 백신종 목사는 한인사회가 계속적으로 번영해 미국사회 전반에 기여할수 있도록 축복해 달라고 기도했다. 아울러 살풀이 춤 등 한국전통문화 공연도 열려 관중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김윤미 기자 kimyoonmi09@gmail.com차세대 미래 미주한인재단 워싱턴 역사가 미주한인 한인사회 리더

2024-01-11

[독자 마당] 전쟁이 멈추지 않는 이유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때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들은 영웅으로 추앙을 받았다.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승리는 전쟁의 최상의 가치가 됐다.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인간도 자신의 안위가 최우선 순위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서로 화합해 분란 없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 텐데, 왜 주변 집단과 싸워야 하고, 그 싸움에서 이겨야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를 일이다.     생태계에서 약육강식이란 동종 간 강약을 겨루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먹이사슬의 하위 그룹을 제압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있는 인간이 서로 싸우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자연의 섭리에도,인간 도리상으로도 어긋나는 일이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은 종교나 이념 등의 갈등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결국은 상대편으로부터 필요한 것을 빼앗으려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두 곳의 전쟁 또한 이익 추구를 위한 욕구의 극대화에서 야기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전쟁이 계획되고 실행되는 것은 한 집단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의지에 의해서다. 그들이 병력과 물자를 전장으로 내몰 때, 일반 개인의 의지는 개입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전쟁 없는 평온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 집단에서 지도자를 잘 뽑는 방법밖에 없다. 한 집단을 이끄는 지도자가 정의·양심·겸양 등 인간적 가치를 중시하며 구성원들을 이끌고, 다른 집단과도 우호·타협·상생의 방법을 모색할 때 평화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들이 영웅인 것이다.     무능하거나 포악해서 집단을 파멸로 이끌 지도자는 필히 배격되어야 한다. 윤천모·풀러턴독자 마당 전쟁 주변 집단 안위가 최우선 인류 역사가

2023-11-28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방패와 창, 짧지만 길게 산다

나를 지키는 힘은 내게서 나온다. 타인이 막아주지 못한다. 방패는 적의 공격을 막는 병기다. 방패를 가지면 심리적으로 안정돼서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게 만든다. 살면서 항상 기댈 수 있는 방패가 돼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창은 인류 역사 초창기부터 사냥용으로 쓴 무기다. 길다란 장대 끝을 뾰족하게 만들거나 칼날을 달아 찌르고 베고 던져 사냥을 했다. 역사학자들은 인간은 수십만 혹은 수만년 전부터 가는 곳마다 대형 포유류를 멸종시켜 왔는데 그 원동력은 창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이 확실하게 먹이사슬 최정상에 올라선 시점은 창을 쓴 후부터라는 설명이다.     초나라 ‘무기 장사꾼’이 “이 방패는 아무리 날카로운 창도 막을 수 있는 대단한 물건 입죠. 요즘 같은 ‘전국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꼭 필요한 방패고 이 창은 세상에서 제일 튼튼한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천하제일 창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반드시 필요하지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노인이 “정말 훌륭한 창과 방패구려. 근데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겠소”라고 물었다. 장사꾼은 판을 거두고 줄행랑을 친다.     모순(矛盾)은 행동의 앞뒤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형용 모순(形容 矛盾, Oxymoron)은 상반된 어휘를 결합시키는 수사법이다. 그리스어로 ‘Oxy’는 날카로운(Sharp), 예리한(Keen)을 의미하고 ‘Moran’ 은 바보(fool)로 ‘똑똑한 바보’란 뜻이다. 아들녀석이 내 별명을 ‘모란’이라 불러 뜻을 찾아봤더니 저능아였다. 틴에이저 둘 건사하며 제정신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몇 있을까.   ‘눈을 감아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 ‘달콤한 슬픔’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이순신 장군의 명언)처럼 상반된 어휘의 배열은 의미를 증폭시킨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갈라치기와 흑백이론, 금수저와 흙수저. 무한 경쟁과 성공 강박, 목숨 건 당파싸움, 한 쪽이 패망해야 다른 한 쪽이 살아남는 처절한 생존 경쟁,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아전인수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아전인수(我田引水)는 자기 논에만 물을 끌어넣는다는 뜻으로 자기 이익만 챙기고 유리한 방향으로 궤변을 늘어놓는 처사를 일삼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창과 방패는 양날의 검이다. 진검승부는 패하면 생명을 잃을 정도로 명예와 권위를 다투는 대승부다. 사익과 말바꾸기, 거짓과 모함으로 언론을 도배질하는 추태를 보는 국민은 피곤하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없이 바닥을 헤매는 서민들은 기댈 곳이 없다. 허기진 몸을 방패 삼아 하루를 버티고,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등 굽은 백발 할머니의 두 손은 찌그러진 생의 병기다.       상식(Common Sence)을 고수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 일반적인 지식과 이해력, 판단력으로 분별하고, 자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이 상식이 된 사회,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진보적이며 역사를 부정하지 않고, 모순에 타협하지 않으며 자기주견의 함몰되지 않고 치열하고 담담하게 살면 사상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는 매일 반전을 꿈꾼다. 어제 보다 다른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꾼다. 반전의 기회는 늘 있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역사는 반복과 반전을 통해 발전한다.     꿈꾸는 사람, 준비하고 노력하는 사람을 능가하는 인생의 성공은 없다. 방패와 창을 버리고 사랑과 화합의 꽃이 만발하는 세상이 오면 그대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세월의 파도 속에서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세상의 끝이 안 보여도, 남은 시간을 아껴 쓰면 인생이 길어진다. 짧지만 길게 산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방패 형용 모순 무기 장사꾼 역사가 그것

2023-10-10

[아메리카 편지] 진보라는 패러독스

기록을 깨는 무더위와 예상치 못한 폭우가 이어진 올여름이다. 한반도뿐 아니라 슬로베니아 등 중부 유럽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인류의 가장 큰 숙제인 기후 변화 대처 방법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폭염과 산불 등 지구의 종말 같은 재앙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18세기 계몽주의의 후손인 우리는 미래를 향한 전진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인류의 삶이 계속 진보(progress)한다는 생각은 19세기 들어서야 형성된 개념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각종 재해가 줄을 잇는 오늘날, 인류가 과연 끊임없이 발전해서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호메로스와 더불어 그리스 서사시의 양대 전통을 이루는 헤시오도스는 『일과 날』에서 인류의 시대를 다섯 단계로 구분한다. 티탄들(거인족)이 지배하던 태평스러운 황금의 시대에서 시작해 올림포스 신들이 지배했던 은의 시대를 거치고, 무섭고 사나운 종족이 전쟁을 일삼고 죽음의 테마가 특징적인 청동의 시대에 다다른다. 네 번째 영웅의 시대는 트로이 전쟁의 배경이 되는,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같은 그리스 신화 영웅들이 거닐던 시대다. 그리고 마지막 철의 시대는 전쟁·질병과 번뇌가 가득한 현재로, 헤시오도스 자신이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한탄하며 작품을 끝맺는다.   영웅의 시대를 제외하고는 인간세계가 점차 타락해 가는 이미지를 그린 헤시오도스의 역사관은 그 이후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인류 역사가 퇴화하는 관념을 지지했고, 주기적으로 재앙과 질병 또는 홍수로 인구가 숙청되었다고 믿었다.   오늘날 우리는 무서운 속도로 발달하는 고도의 기술과 과학만을 바라보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 결과로 타격받고 있는 인류의 웰빙과 참된 행복은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닐까.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패러독스 진보 인류 역사가 오늘날 인류 재앙과 질병

2023-08-18

[이 아침에] 광복절 아침에 역사를 생각한다

다시 광복절이다. 광복(光復), 밝은 세상을 다시 찾았다는 뜻이다. 밝고 맑던 나라를 어둠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자는 누구인가. 일본이다. 일제 36년, 그 어둠으로부터 벗어난 지 78년, 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광복절을 맞은 감회는 해마다 새롭고 비장하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에 겪은 수난의 역사를 잊지 않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고난을 견디다 못해 정든 땅을 떠나 국경을 넘었다, 뜻있는 사람들은 독립을 위해 국내외서 목숨 걸고 싸웠다.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이들에게 도움을 준 이도 독립군 못지않게 애쓴 사람들이다.      그 반대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도 있었다.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일신의 영달을 위해 살았던 사람들이다. 해방된 나라에서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절호의 기회를 맞았지만 그것을 감추고 싶은 쪽에 의해 좌절되었다. 그들은 해방 된 나라에서도 대를 이어 떵떵거리며 살아가게 된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세월이 흘러갔다. 그 사이 푸른 싹이 돋아나 ‘민족문제연구소’라는 민간단체가 엄청난 어려움을 극복하고 2009년 ‘친일인명사전’를 펴내게 된다. 사회 각 분야의 기라성(?) 같은 인물 4776명의 이름이 사전에 올랐다. 해방 64년이 지난 때였다.      이 일이 한국사회에 던진 파장은 컸다. 역사는 무섭다는 것을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살아온 행적은 언젠가는 반드시 누군가에 의해 평가 받게 된다는, 그래서 함부로 살면 안 되겠다는 각성을 하게 해 준 말없는 경고가 되었다.      혹자는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 역사라고 말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부끄러운 역사를 부끄러워하고, 공과 과를 있는 그대로 알리면 된다. 평가는 다음 사람의 몫이다.      미당 서정주 선생은 ‘한국의 시성’이라고 불리는 분이다. 그의 기념관에는 명성에 걸맞게 ‘국화 옆에서’를 비롯해 많은 시가 걸려있었다. 그런데 많은 작품과 함께 ‘마쓰이 히데오! / 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 /...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라고 읊은 ‘마쓰이 히데오 오장 송가’ 등의 친일 작품들도 전시됐다. 또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 ... /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라는 내용의 ‘전두환 대통령 탄신58회 축시’ 도 보였다.      장례식장에 잘난 자식만 세울 수 없듯이, 시인의 공(功) 과(過)를 보는 이가 평가하도록, 숨기고 싶은 작품까지 함께 전시한 기념관측의 처사가 돋보였다. 훗날, 어떤 이가 왜 친일을 하게 되었냐고 미당에게 물었더니, “일본이 그리 쉽게 망할지 알았남” 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광복절 아침에 역사를 다시 생각한다. 역사는 무섭다. 무서워야 한다. 그래야 통한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걱정이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치욕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나 않을까 조마조마 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가 나 혼자만일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정찬열 / 시인이 아침에 광복절 역사 역사가 되풀이 광복절 아침 마쓰이 히데오

2023-08-14

"이민 교회 감소는 1세 중심의 교계 토양 바뀌는 것"

한인 교회가 감소하고 있다. 큰 흐름에서 보면 한인 교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회 전반에 걸친 기독교의 영향력 축소와도 맞물린다. 그럼에도 한인 교회의 감소 현상 이면에는 기독교의 영향력 약화가 주요 원인이라고만 보기에는 복잡한 요인이 존재한다. 이민 교회는 특수성이 있다. 소수계 이민자 등으로 구성된 집단이다. 문화적 민족성 세대간 차이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하는 곳이다. 한인 교회의 감소 현상을 통해 이민 교회의 오늘과 미래를 진단해본다.   기독교 전반의 영향력 감소 특수성 가진 이민 교회 요인 복잡   한인 교회는 한인들 묶는 역할 하지만 여전히 1세대 중심 구성   2세들은 교회와 이질감 느껴 '한인끼리'보다는 '다문화' 익숙    현재 '한인 교회(korean church)'는 대체로 1세대 중심의 교회다.   교회를 지칭할때 앞에 '한인'이 붙는다는 것은 그만큼 민족적 동질성이 강하게 배어있음을 알 수 있다.   UCLA 유헌성 연구원(사회학)은 "이민 교회는 상당히 특수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언어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공통된 것을 소유하고 이를 토대로 이루어진 종교 공동체"라며 "다른 주류교회와 비교했을때 상당히 복합적이다. 교회로서의 역할도 단순히 종교 기관이 아닌 여러면에서 이민 역사와 흐름을 같이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100여년 전 초기 하와이로 건너온 이민자들의 행적만 봐도 한인 사회는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발전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재미한인기독선교재단(KCMUSA)이 발표한 한인 교회 현황만 보더라도 하와이 호놀룰루 지역에는 무려 39개의 한인 교회가 몰려 있었다. 단일 교회 수로만 봤을때 호놀룰루는 LA(184개) 뉴욕(77개)에 이어 세 번째로 한인 교회가 많은 도시다. 그만큼 호놀룰루는 한인들의 색채와 이민 역사가 짙게 묻어있는 지역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본지 1월25일자 A-16면〉   한인교회는 1960~1980년대 이민 물결을 타고 급속도로 성장 확산했다. 타국에서 교회의 존재는 이민자를 한데 묶는 사회적 기능도 담당했다.   남가주 지역 한 대형교회에서 시무장로로 활동했던 유기범(76)씨는 "1세대 이민자들에게 교회는 말 그대로 '삶'이었다. 언어나 문화적으로 힘든 이민 생활 가운데 교회는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공동체였다"며 "거기서 위로와 힘을 얻고 이민생활을 견딘 한인들이 많았다. 지금의 한인교회들은 1세들의 눈물과 땀으로 세워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민역사가 오래되면서 한인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한인 교회'만의 특수성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한 예로 재외한인학회 조사에 따르면 미주 한인 2세의 절반 이상은 이미 타민족 또는 타인종과 결혼하고 있다. 8세 이하 한인의 혼혈 비율은 무려 43%에 이른다. 이는 곧 '코리안-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이 인종적 민족적으로도 약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인종과 국적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건 통계(퓨리서치센터조사)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1980년대에 비해 부모가 서로 다른 인종이거나 민족인 경우는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러한 흐름은 1세대 중심으로 모든 것이 구성된 한인 교회에 기능 역할 등에 상당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데이브 노 목사(어바인)는 "한인 교회가 감소했다는 것은 엄밀히 보면 한인 1세 교회가 줄었다는 의미일 것"이라며 "기존 한인 이민 교계의 토양이 바뀌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인 2~3세는 이미 아시안 또는 주류 교계로 흘러 들어갔고 이민자도 줄어드는 상황에서 1세 교회만의 정체성이 그만큼 약화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대가 변화하자 실제 1세 중심 교회의 기능과 역할은 다음 세대에게 다소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1세대에게 미국은 '타향살이' 이지만 2세대에겐 나고 자란 곳이다. 피부색만 다를 뿐 언어나 문화적으로 2세들은 미국화 돼있다. 실제 '한인'이라는 경계선은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   한인 2세 앤젤라 이(30)씨는 기본적인 한국어 외에는 영어만 사용한다. 현재 다민족 교회에 출석중이다.   이씨는 "'코리안-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은 분명히 갖고 있지만 영어가 편하고 다양한 인종과 어울리는 게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자랐다"며 "민족적 정체성을 '뿌리'의 시각으로 보는건 이해하지만 삶이나 교회까지 구분 지을 이유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인 2세 데니 추(37)씨는 미국 교회에 다니고 있다.   추씨는 "한인 교회에 출석하는 건 1세대 문화는 물론이고 언어조차도 안 맞는 부분이 있다"며 "그럼에도 단지 '코리안-아메리칸'이기 때문에 한인 교회에 나가야 하며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 한인끼리만 모여야 한다는 건 2세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한인 교계도 이러한 흐름을 충분히 감지하고 있지만 뚜렷한 대비책은 미흡하다.   이윤성 목사(LA)는 "한인교회들도 다음 세대를 붙잡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하고 있다. '한지붕 두 가족' 형태로 2세 교회를 지원하기도 하고 2세들만의 교회를 독립시키기도 한다"며 "그러나 다음 세대에게 '한인'이라는 공통분모만을 갖고 '한인 교회'를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건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현재의 이민 교계가 어떠한 형태 역할 등으로 미래에 존재해야 하는지는 기성 세대가 고민해봐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학준 박사(풀러신학교)는 "이중문화를 신앙의 관점으로 정리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지 않았고 2세 교육에 대한 이민교회의 대응능력은 없는 상태"라며 "1세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 건물을 짓자 했는데 사실상 2세들은 건물에는 관심이 없다. 뿌리를 찾기 위해 이민교회 역사도 알려주는 일과 이민자로서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우리가 삶에서 접하는 아주 실질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열 기자교회 이민 한인 교회 이민 교회 이민 역사가

2022-02-07

[독자 마당] 인간과 바이러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을 지탱할 근거에서 생존을 이어가며 번식하고 생육한다. 이를 우리 인간에게 대비하면 의식주를 갖추는 일이다. 요즘 우리 생활 안팎에 깊이 혼재돼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또한 이 같은 원리에 따른 수단과 방법을 가진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생존 근거로 동물이나 인간을 숙주로 한다. 이들 바이러스의 전파나 감염에 숙주는 체내 자체 방어기제로 대응한다.     그럼에도 감염을 막을 수 없을 때는 백신 등 외부 수단을 동원한다. 하지만 쉽게 막아낼 수 없어, 지난 역사에서 많은 수난을 겪었다.     이전 세계사에 등장했던 혹심한 전염병과 유행병은 우리에게 실제로 다가오지 않았기에 먼 곳의 일로 생각됐었다. 그런데 지금의 코로나는 처음 세상에 알려진 이후 2년이 지나는 동안 지구촌 곳곳에 파고 들어, 모두의 생활 전반에서 그 흐름을 바꾸고 헝클어 놓고 있다.     삶의 출발점인 의식주를 위한 모든 활동들이 막히고 묶이게 되니, 이로 인해 개인과 공동체의 생기와 활력이 꺾이고 위축된다. 마치 인류 역사가 멈춰서거나 퇴보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병원체와 숙주의 관계를 확대하면 작용과 반작용의 운동 법칙에 닿아 있다. 서로의 관계가 평형을 이루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을 때 자기 보호를 위한 조처가 반발이나 공격으로 나타나게 된다.     병원체가 숙주에 독소를 뿜는다면 이를 막아내고 제거해야 한다. 지금처럼 우리는 백신, 마스크, 거리두기 등으로 방어망을 친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이에 맞서 더 강하고 빠르게 변이, 전파되면서 공격력을 키워 가게 된다.     지금 인류와 바이러스는 서로간 상생, 공생의 관계를 위해 일정한 질서로 안정을 찾기까지 과도기적 혼란을 겪고 있다. 우리의 모든 역량과 인내를 더욱 다져야 할 때다. 윤천모·풀러턴독자 마당 바이러스 코로나 바이러스 이들 바이러스 인류 역사가

2021-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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