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23년 한국 풍경
8개월여의 한국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며 한국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돌아봤다. 뜨거운 사회적 이슈가 꽤 많았지만 그중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 몇 가지를 적어봤다. 우선 유례없는 폭염, 폭우에 이어 태풍까지 찾아와서 놀랐다. 내가 겪은 최악의 여름이었다. 쏟아지는 집중호우로 홍수가 나서 소들이 둥둥 떠내려가고 재산과 인명 피해가 잇따랐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이 무너져 망연자실한 사람들이 TV에 비칠 때마다 가슴이 아파 보기 힘들었다. 너무 더워 미칠 지경인데 어느 TV프로에 환경위기 전문가가 나와서 “지구 온난화 시대는 끝났고 지구 열탕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하며 “우리 인생에서 올해가 가장 시원할 것” 이라고 했다. 맙소사! 더 이상 기후위기에 눈 감아서는 안 되겠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늦은 밤에 여자 혼자 밤거리를 돌아다녀도 될 정도로 안전한 나라로 외국인들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의 번화가에서 대낮에 흉기 난동과 ‘묻지마’ 살인사건이 발생해 시민들이 불안에 떠는 상황이 됐다. 거리에는 무장한 경찰특공대에, 장갑차까지 등장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 브러더 같은 CCTV가 곳곳에 있건만 흉악범죄는 날로 더해갔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서울 지하철 안에서 “난동범이 있다”는 소문이 퍼져 급히 내리려던 승객들이 뒤엉키며 7명이 다쳐 병원에 옮겨졌다. 이 소동은 BTS 콘서트를 관람하고 귀가하던 팬들이 SNS 라이브 방송을 보다가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른 게 발단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3 세계 잼버리 대회’가 우여곡절 끝에 K팝 공연으로 잘 마무리됐다. 새만금의 열악한 환경과 관리 부실로 나라가 망신을 당하고, 부산 EXPO 유치에도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온 국민이 걱정했다. 국가 이미지 실추라는 위기 앞에 IMF때 금반지 정신으로 정부와 민간이 일치단결해 잼버리는 훈훈한 미담으로 끝났다. 한국은 위기에 강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던 스물셋 초임 여교사가 근무하던 교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 일이 도화선이 되어 전국의 교사 수만 명이 ‘교권을 보장하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학부모들의 갑질이 도를 넘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학부모는 ‘우리 아이는 왕의 DNA를 가졌으니 왕자처럼 대해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학생이 교사를 때려도 교사는 맞고만 있어야 하는 현실이다. 학생의 인권만 있고 교권은 땅에 떨어졌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던 우리 세대에겐 지금의 상황이 낯설기만 했다. 소설가 김훈 씨는 교사들의 집회현장을 다녀와서 ‘내 새끼 지상주의’라는 칼럼을 썼다. 칼럼에선 ‘내 새끼 지상주의’를 완성한 인물로 조국 전 장관과 그 부인을 언급했다. 이에 조 전 장관의 지지자들은 김 씨에게 “책을 다 버리겠다” “노망났다" 등 맹공을 퍼부었다. 펜싱 국가대표 출신 남현희의 재혼 상대였던 전창조가 벌인 사기 행각도 화제였다. 전 씨는 일론 머스크와 대결하기 위해 펜싱을 배우겠다고 남 씨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뉴욕 출신 재벌 3세, 파라다이스 그룹 회장의 혼외자 행세를 했다. 그는 경호원까지 데리고 다니며 능란한 언변으로 어떤 땐 여자로 어떤 땐 남자로 성별까지도 속이며 황당한 사기극을 벌였다. 희대의 사기꾼인 그에 대한 의혹과 논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매일 매스컴을 도배했다. 특히 전씨가 한국말에 서툰 척 영어를 섞어 쓴 "I am 신뢰에요~"는 ‘I am 행복’, ‘I am 공정’ 등 여러 패러디 물을 양산하기도 했다.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 미국에 처음 와서 낯설었던 것 중의 하나는 일상화되어 있는 팁 문화였다. 최근 한국에서도 카페나 식당에서 팁을 요구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얼마 전 누군가 잘못된 미국의 팁 문화에 관해 쓴 글을 읽었다. 키오스크 하단의 팁 옵션을 건너뛰었더니 옆에 서 있던 종업원이 노골적으로 눈치를 줬다고 했다. 미국에서 골칫거리가 된 팁 문화가 한국에서도 공식화될까 봐 우려된다. 한국에선 요즘 ‘맨발 걷기’가 대유행이다. 너도나도 맨발족에 동참했고 어디서나 만날 수 있을 만큼 열풍이 불고 있다. 뭐가 좋다고 하면 순식간에 퍼진다. 행여 발바닥에 유리라도 박힐까 걱정이 된다. 유독 덥고 힘들었던 한국의 풍경을 나름대로 스케치해봤다. 배광자 / 수필가수필 한국 풍경 8개월여의 한국 환경위기 전문가 초임 여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