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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도 꿈도 없는 미국, 그래도 여인은 꿋꿋하다

‘앨리스는 이제 여기 살지 않는다(Alice Doesn’t Live Here Anymore)’는 남성성의 상징적 영화들을 만들어온 현대 미국영화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보기 드문 여성 주연의 로맨스 드라마다. 남성에 의존하면서도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여주인공 앨리스가 여러 남자들을 거치면서 자아를 발견해 가는 과정을 다룬다.     이 영화는 ‘내 문을 두드리는 자는 누구인가’(1969), ‘비열한 거리’(1973) 등의 독립영화로 비평가들의 관심을 모아오던 스콜세지의첫 번째 스튜디오 영화다. 이후 스타로 떠오른 조디 포스터,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로라 던의 초기 모습을 볼 수 있다. 스콜세지 영화의 단골 배우 하비 카이텔과 다이앤 래드도 모습을 보인다.     1974년 개봉된 대작들 ‘대부2’와 ‘차이나타운’에 밀려 아카데미상에서는 엘렌 버스틴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데 그쳤지만, 영국아카데미상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스콜세지는 2년 후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불멸의 명작 ‘택시 드라이버’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다. 그는 네 작품 만에 거장의 대열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그의 나이 34세에 불과했던 시기의 일이다.     35세의 평범한 가정주부인 앨리스(엘렌 버스틴). 12세 아들 토미를 옆에 태우고 뉴멕시코와 애리조나 사막을 달리고 있다.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살림을 정리한 후 고향 몬터레이로 가는 중이다.     트럭 운전을 하던 건달 남편은 아들이 앨리스의 이전 남자의 아이라며 토미를 학대했다. 앨리스는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아들을 새 학교에 입학시키고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가수의 길을 가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이들의 여정은 두 모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앨리스는 집으로 가는 도중 돈을 벌기 위해 술집 밤무대 가수로 취직하고 술집 주인 벤(하비 카이텔)을 만나 사귀기 시작한다. 그러나 곧 벤이 유부남인 사실이 드러나고 이에 실망한 앨리스는 사이코 기질이 농후한 벤을 피해 목장 마을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연하남 데이비드(크리스 크리스토퍼슨)를 만난다. 그녀는 셔츠 단추도 제대로 끼지 못하는 데이비드의 신사다운 매너와 친절함에 호감을 느낀다. 앨리스에게 ‘완벽한 남자’로 다가온 데이비드와 함께 이제 그녀는 고통스러웠던 지난 삶을 뒤로 하고 새로운 행복을 찾을 수가 있을까.     사회의 모순이나 부정적 현실에 비판적 시각이 강했던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의 성향이 강한 이 영화는 영웅도, 신화도, 꿈도 없는 미국 사회의 실상을 통해 남녀 관계 속에서 억압 받는 여성을 동정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일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은 영화의 통속적인 결말에 대해 스콜세지가 할리우드와 타협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남편을 잃고 미망인이 된 한 여인의 홀로서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두 모자의 여정을 그린 로드무비 ‘앨리스는 여기 살지 않는다’는 엘렌 버스틴에게 오스카상을 안겨주었다. ‘레퀴엠’, ‘엑소시스트’ 등의 작품으로 당시 ‘여자 잭 니컬슨’으로 평가받던 버스틴은 최고조에 오른 감정 표현 연기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의 박수를 받았다. 그녀는 아들 토미 역의 아역 배우를 리드하며 엄마와 아들이 서로에게 짜증을 내는 즉흥적이고 웃픈 장면들을 연출해냈다.   연기파 배우 다이앤 래드의 조연 연기에도 찬사가 이어졌다. 가시가 돋친 말로 앨리스를 골탕 먹이는 동료 웨이트리스 플로렌스를 연기한 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래드의 딸 로라 던이 영화 속에서 아이스크림 먹는 여자아이 역으로 출연한다.   엘튼 존의 ‘다니엘’, 돌리 파튼의 ‘I Will Always Love You’ 등의 노래들이 앨리스의 지치고 고달픈 인생 여정을 묘사하는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 1976년 이 영화를 원작으로 한 시트콤 TV 스핀오프가 기획되어 로버트 앨트만 감독의 연출로 9년 동안 CBS를 통해 방영됐다. 김정 영화평론가미국 여인 스콜세지 영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여주인공 앨리스

2024-09-04

[살며 생각하며] 무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너무 더운 7월이다. 새벽에는 서늘한 바람이 잠깐 불어온다. 일어나서 뉴스를 검색하던 중이었다. ‘문학 거장 앨리스 먼로의 어두운 가족사’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두 달 전 봄쯤으로 기억한다. 캐나다 작가 먼로의 부고를 신문에서 읽은 것이. 앨리스 먼로는 올해 5월에 92세로 생을 마감했다. 2017년에 절필 선언을 했고, 마지막 십 년 동안은 치매를 앓았다. 그런데 작가가 죽은 지 두 달 후인 지금, 난데없이 이 문학 거장에 대한 기사가 또 나왔다. 그것도 그녀의 친딸에 의해서, 마치 어머니가 죽기를 기다린 것처럼 말이다.     내가 좋아했던 작가였다. 2013년에 캐나다인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녀의 단편집 ‘디어 라이프(Dear Life)’를 읽으면서, 그 문체에 매료되기도 했었다. 그녀의 소설에는 캐나다의 척박한 시골에서 사는 일상인들이 등장한다. 집안일에 치여서 시름시름 죽어가는 병약한 어머니, 사양길에 접어든 농장을 운영하며 가끔 사냥하러 다니는 무뚝뚝한 아버지, 아버지의 사냥을 쫓아가서 딴 여자가 있음을 알게 되고 어머니에게 입을 다무는 딸, 이런 시골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아들들은 키우는 말처럼 주목을 받지만, 딸은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가 먹히는 닭과 같은 처지다. 먼로의 주인공들은 주로 여자이며, 그들은 피폐한 삶에서 탈출하려고 시도한다. 작가의 단편을 읽고 있으면, 회고록인지 소설인지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그날 아침, 내 눈을 끌어당긴 기사는 뉴욕타임스의 어떤 기자가 쓴 글이다. 기자는 먼로의 딸이 캐나다 신문에 발표한 글을 바탕으로 다음의 내용을 7월 7일 자 신문에 기고했다.   ‘엘리스 먼로는 딸이 어릴 적에 이혼했다. 딸 안드레아는 친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었다. 9살 무렵에 안드레아는 어머니가 사는 온타리오를 방문했다. 그날 저녁, 어머니가 외출했을 때, 계부는 안드레아의 침대로 다가왔다. 소녀는 성추행을 당했고, 이 사실을 말했지만, 부모는 모른척했다. 어머니는 계부와 끝까지 함께 살았고, 친아버지 역시 침묵했다. 안드레아는 어른이 된 후에 상담 교사가 되었다. 자신처럼 어린 시절에 트라우마를 당한 사람을 치유하는 직업을 선택했다. 현재 말 농장을 운영하면서 온타리오에 살고 있다.’       앨리스 먼로는 의붓딸을 강간한 계부의 이야기를 단편 소설로 쓴 적이 있다. 소설 속의 딸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현실 속의 딸은 조금 더 용감한 것 같다. 어머니 먼로는 문학계에서 정상에 올랐다. 캐나다 최초의 노벨상 수상은 시골 출신의 소녀가 이룬 세계적인 출세였다. 안드레아는 어머니의 명성에 흠집을 낼까 봐 몇십 년 동안 비밀로 간직했다. 명상으로 마음을 다독이고 사람들을 상담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평생을 두통과 불안에 시달렸다고 한다. 자신을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은 세상에다 고백하는 것이었을까? 계부도 친모도 세상을 떠난 지금, 그들은 자신의 이름이 신문 지상에 오르락 하는 것을 알 길이 없다.     무덤 속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는 먼로가 이 사실을 안다면 작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을까?     그녀의 허스키한 음성이 서늘한 새벽바람에 실려서 들려오는 듯하다.     ‘그게 사람이야, 사람이 사는 모습은 소설이나 현실이나 같아.’ ‘어쩌면 현실이 더 소설 같을지도 몰라. 흐흐흐…’     열어놓은 창으로 나지막한 웃음소리도 들려온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목소리 무덤 어머니 먼로 앨리스 먼로 어머니 사양길

2024-07-22

“스코필드 여사 묘비 제막 뭉클”

“앨리스 스코필드 여사 묘비 제막식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어요.”   시인이자 수필가인 김수영(애너하임)씨가 지난 11일 캐나다 토론토의 마운트 플레젠트 묘지에서 열린 고 앨리스 딕슨 스코필드(1889-1959) 여사 묘비 제막식에 참석, 연설까지 해 주위의 눈길을 모았다.   스코필드 여사는 캐나다의 선교사로 한국의 독립과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한 프랭크 스코필드(1889~1970) 박사의 부인이다. 결혼 후 1916년부터 남편과 한국에서 생활했다. 스코필드 박사의 활동에 대한 일제의 위협을 견디지 못하고 임신한 상태에서 정신질환을 앓게 됐다. 치료를 위해 캐나다로 돌아가 출산한 스코필드 여사는 이후 40년 동안 정신질환자 시설에서 고생하다 1959년 타계했다.   김 작가는 스코필드재단(대표 김만홍) 주최로 열린 묘비 제막식에서 연단에 올라 고인을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선교의 사명을 다하며 한국인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 스코필드 박사 부부의 놀라운 인생을 기린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스코필드재단에 3000달러를 기부했다.   김 작가는 서울대 사범대 재학 시절인 19세 때, 당시 수의과 대학에서 강의하던 스코필드 박사의 통역을 맡은 것을 계기로 그와 소중한 인연을 맺었다. 지난 2021년엔 스코필드 박사와의 인연을 담은 한·영 수필집 ‘스코필드 박사와 에델바이스의 추억(한국신춘문예협회)’을 출간했다. 수필집 제목은 스코필드 박사가 스위스 여행 후 한국에 돌아와 말린 에델바이스 꽃잎을 넣은 액자를 김 작가와 김영교(시인) 자매에게 선물한 일화에서 비롯됐다.   김 작가는 한국에 가면 현충원을 찾아 스코필드 박사 묘소에 참배하고 동상 제막식 등 고인을 기리는 행사에 여러 차례 참석했다.   임상환 기자스코필드 여사 스코필드 여사 스코필드 박사 앨리스 스코필드

2024-05-20

앨리스 주 박사 21개월 징역형 선고

사무실에서 일했던 매니저의 거짓고발과 부당한 재판 진행으로 기소된 한인 의사 앨리스 주(한국이름 주애리) 박사가 1심 판결에서 21개월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9일 뉴왁법원에서 열린 엘리스 주 박사 메디케어 사기사건 관련 1심 선고 공판에서 윌리엄 마티니 판사는 주 박사에게 21개월 징역형(커네티컷 댄버리교도소 수감 예상)과 2년간의 보호관찰, 그리고 추후 결정될 액수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 측은 최초 60년 구형에서 줄어든 최소 10년형 선고를 주장했으나, 마티니 판사는 변호인 측이 제출한 반박 의견과 한인동포를 포함 전세계에서 답지한 탄원서와 청원서의 진정성 등을 고려할 때 검찰 측 구형은 과도하다며 상대적으로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   이날 주 박사는 비록 실형을 선고 받았으나 3월초에 열릴 예정인 항소심에서는 1심에서 형량이 낮아진 데다, 한인사회 청원운동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여 무죄 판결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이날 공판에는 100여 명의 한인들이 참석했는데, 그동안 주 박사 구명을 위해 팰팍한인회·한미연합회·퇴역군인단체·포트리 시니어아파트 주민·동문회·의사단체·재미여성연합회 등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종원 기자 park.jongwon@koreadailyny.com앨리스 주 주애리 앨리스 주 판결 앨리스 주 구명운동 주애리 박사 1심 판결

202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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