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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 해전까지…거장 리들리 스콧이 돌아왔다

로마 제국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서 코모두스 황제로 이어지는 시기의 웅장함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검투사 막시무스의 영웅담 ‘글래디에이터’는 2000년 73회 아카데미상에 12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 5개의 상을 받았다. 이후 속편이 제작되리라는 루머가 꾸준히 있었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이 직접 속편을 제작하기로 확정, 발표된 것은 2018년의 일이다.     전편을 감상한 관객들은 막시무스와 루실라의 어린 아들 루시우스는 어떻게 됐을까, 라는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을 것이다. 영화는 바로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속편 ‘글래디에이터 2(Gladiator 2)’는 막시무스의 아들 루시우스의 이야기다.   전편에서의 영웅 막시무스(러셀 크로)가 콜로세움에서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 뒤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릴 적 어머니 루실라(코니 닐슨이 같은 역을 다시 연기한다)에 의해 누미디아(알제리)로 보내진 루시우스(폴 메스칼)는 강철 같은 몸을 지닌 건장한 젊은이로 성장해 있다. 아내 아리사트와 함께 살고 있는 그는 덥수룩한 수염에 말이 적고 침울하다. 그는 로마로부터 이 해안 도시를 방어해야 한다.     한편 로마는 쌍둥이 형제 게타와 카라칼라 황제가 다스리고 있다. 그들은 1편에서 보았던 최악의 폭군 코모두스(호아킨 피닉스)를 둘로 나누어 놓은 듯 사악하고 무자비하며 가학적이다. 코모두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원숭이를 애완동물로 키운다는 정도. 너무 많은 권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들은 정복과 향락에 만족하지 않고 철없는 어린 애들처럼 검투사 노예들의 목숨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루시우스는 막시무스의 부하였던 마르쿠스 아카시우스 장군(페드로 파스칼)이 이끄는 로마군에 처참하게 패한다. 전쟁에 사랑하는 아내마저 잃은 루시우스는 노예상 마크리누스(덴젤 워싱턴)의 눈에 띄어 노예로 팔린다. 루시우스가 다시 자유인이 되려면 검투사가 되어 끝까지 살아남는길밖에 없다. 루시우스는 마크리누스에 의해 운명적으로 검투사로 발탁되고 복수의 칼을 갈며 로마로 향한다. 그의 아버지 막시무스가 로마에 항거하다 붙잡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검투사가 되었던 것처럼.     로마 제국에 의해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황제로 책봉된 마크리누스는 권력욕이 강하고 교활한 정치인의 표본이다. 그 자신 노예 출신이었지만 노예와 무기 거래로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다.  로마 제국의 몰락이 임박해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그는 로마의 황제 자리를 노린다.       로마에 입성한 루시우스는 오로지 생존하기 위하여 사나운 개코원숭이와 코뿔소 그리고 콜로세움이 물에 차면 들어오는 식인 상어 등의 야수들과 싸움을 거듭하며 살아남는다. 루시우스의 점점 더 거세지는 분노는 상대방의 솟아오르는 피로 분출된다. 군중들은 루시우스의 용맹에 열광한다.     루시우스는 점차, 지금은 아카시우스 장군의 아내가 된 루실라가 자신의 어머니이고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충직한 신하, 전장의 뛰어난 전략가, 콜로세움의 전설적 검투사 막시무스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카시우스와의 피 말리는 격투 끝에 콜로세움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그의 아버지 막시무스가 그랬던 것처럼.   ‘글래디에이터 2’는 성공적인 속편이라 할 수 없다. 24년 전의 원작과 비교하면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적지 않다. 속편이라기보다는 전편의 리메이크인 듯한 느낌마저 든다. 너무 느린 진행에 대본도 전작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해 왔다. 특별히 전쟁 장면의 CGI(Computer Graphic Imagery)는 강렬한 이미지로 승부하는 비주얼리스트 리들리 스콧 감독의 진수라 할 수 없다.     스콧은 실재했던 역사의 한 장에 상상력으로 접근한다. 역사 왜곡이라는 표현은 그의 영화를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다. 영화를 허구의 예술로 보는 스콧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건 역사의 재해석이 아니라 허구적 판타지다. 2000년작 ‘글래디에이터’ 는 코모두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 실존하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는 데 반해 정작 주인공 막시무스는 허구적 캐릭터였다.     전편에 비해 영화가 지닌 결함에도 불구하고 ‘글래디에이터 2’는 2025년 아카데미상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부문에 노미니될 것이 확실하다. 최고의 SF 영화 ‘에이리언’(1979), SF 판타지 ‘블레이드 러너’(1993), 페미니즘 로드 무비 ‘델마와 루이스’(1993), 전쟁영화 ‘블랙 호크 다운’(2002) 등의 작품들에서 보았듯 다양한 장르를 섭렵해온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인간 사회의 폭력적 본능이 유발하는 ‘충격’이다.   전편에서 우리는 충격적 ‘지옥’을 보았다.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공화주의자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아들 코모두스에게 살해당하면서 로마는 질투의 화신 코모두스가 지배하는 지옥으로 바뀌어 갔다. 영웅 막시무스도 코모두스가 다스리는 그 지옥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전편의 그 충격적 주인공은 코모두스였다.     속편에 실망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충격의 부재다. 특히 코모두스의 ‘카피캣’인 쌍둥이 황제의 가벼움이 영화의 무게감을 떨어뜨린다. 그들의 비열함에는 내면 깊은 곳에 출렁이는 코모두스의 질투와 불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글래디에이터’는 호아퀸 피닉스라는 배우의 광기를 세상에 알린 영화였다. 그는 이 영화에서 코모두스 역으로 ‘리버 피닉스의 동생’이라는 수식어를 떼어 내고 주인공 막시무스 역의 러셀 크로에 견줄만한 존재감으로 대중들에게 그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러셀 크로의 카리스마와 호아퀸 피닉스의 광기는 가고 없지만, ‘글래디에이터 2’는 여전히 거장 리들리 스콧의 영화이다.     김정 영화 평론가 [email protected]콜로세움 리들리 리들리 스콧 검투사 막시무스 아들 루시우스

2024-11-24

마코위츠 풀러턴 시의원 후보 체포

스콧 마코위츠 풀러턴 4지구 시의원 후보가 선거법 위반으로 체포됐다.   OC검찰은 마코위츠 후보가 11월 5일 열릴 시의원 선거 후보 등록에 필요한 유권자 추천 서명을 받는 과정에서 허위 진술을 하고 서명을 해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15일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마코위츠는 지난 8월 유권자 30명에게 추천 서명을 받았다. 당시 마코위츠는 서명을 받기 위해 유권자에게 자신이 서류를 전달했다고 적고, 위증 시 처벌을 감수한다는 서명도 했다.   선거법에 따르면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추천 서류를 전달할 수 있지만, 서류 전달자는 반드시 유권자들이 서명하는 모습을 지켜본 이와 동일 인물이어야 한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여러 유권자로부터 서명 당시 마코위츠가 없었다는 증언을 확보했으며 지난 14일 마코위츠를 체포, 샌타애나 구치소에 수감했다고 밝혔다. 또 “마코위츠가 선거에서 당선돼도 시의원 취임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1건의 중범 위증, 1건의 위조 또는 허위 문서 기록 혐의로 마코위츠를 기소했다.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되면 마코위츠는 최장 3년 8개월 동안 주립 교도소에서 복역해야 한다.   브루스 위태커 시의원 후임을 뽑는 4지구 선거엔 마코위츠 외에 비비안 하라미요, 제이미 발렌시아, 린다 위태커가 출마했다.     마코위츠가 당선될 경우, 풀러턴 시는 4지구 특별 선거를 열게 될 전망이다. 임상환 기자마코위츠 시의원 마코위츠 후보 시의원 후보 스콧 마코위츠

2024-10-15

한국 총선 결과로 한미관계 일부 변화 필연적

한미 외교전문가로 잘 알려진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한국 담당 선임연구원은 현재 양국의 선거가 70년 이후의 동맹관계를 설정하는 가장 큰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12일 본지와의 심층 인터뷰에서 한국의 자체 핵무장은 한미 외교 관계를 크게 뒤흔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년 4월 CFR을 떠나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으로 자리를 옮기기에 앞서 한미동맹관계의 미래를 조망하는 책 ‘The United States-South Korea Alliance: Why It May Fail and Why It Must Not(한미 동맹: 실패할 수도 있는 이유와 실패하지 말아야할 이유)’을 12월 초에 내놨다. 70년 동안의 혈맹 관계가 발전 또는 퇴보할 수 있는 조건과 상황들을 면밀히 분석한 책으로 한미 외교가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선거를 앞둔 한국과 미국은 바쁘다. 현재의 한미 관계는 어떤 상황인가. 당장 주목할 사안들이 있다면.     “한미 관계는 건강하며 강고하다. 잠재적으로 변화 요인이 있다면 양국에서 시작된 내년 선거다. 알다시피 양국 정치는 현재 모두 양당의 극강 대치가 특징이며 여기에 강력한 자국 이기주의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70년 넘은 양국의 동맹 관계에 대해 중대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한국 집권당이 총선에서 과반 차지를 못할 경우를 상정한다면 동맹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주게되나.     “대부분이 총선이 집권당의 패배로 돌아간다면 윤 정부가 레임덕에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을 듣고 있다. 이번 총선은 윤 대통령에 대한 평가 성격이 가장 강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가에 따라 차기 대선 경쟁 구도가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이 한국 내 전문가들의 예상이라고 알고 있다. 국민들의 평가, 즉 총선 결과로 인해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일부 외교 관계에 대한 변화는 분명히 필연적일 것으로 본다.”     -대선 주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독재자’ 표현을 동원하며 자국 이익 추구를 우선시하고 있다. 내년 대선 경쟁 과정과 결과는 한미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나.     “미국 대선도 한미관계에 영향을 준다. 지난주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선될 경우 한국과의 동맹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그 외에도 국제 외교에 대한 여러 생각을 밝히고 있다. 실제 많은 발언을 하고 있어 과연 어떤 것들이 진심인지 알기 힘들지만 지금으로 봐선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된다면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트럼프 재집권 시 판문점과 하노이 회동 등을 통해 시작된 시도들이 더욱 확대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하노이 회담 당시의 상황과 지금은 세 가지 점에서 크게 차이가 있다. 먼저 윤석열 행정부는 이전 문재인 정부와 달리 김정은 지도부와의 접촉이나 협상에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 이는 하노이 상황과 180도 다른 조건이다. 또 하나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과 갈등이 깊어졌다. 게다가 하노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판단과 활동은 대부분 본인의 정치적 입지와 이득을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세 번째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한국이 가진 미국에 대한 동맹상의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래서 이어진 것이 북의 위협에 맞선 독자적 핵 개발이다. 한국민들의 여론도 동맹이나 동북아시아 전체의 안정 보다는 ‘한국 우선’에 기반한 것이며 미국의 도움 없이 자체 무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했는데. 외교 전문가들의 여론도 비슷한가.     “내 발언은 ‘동맹 관계’의 바탕이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반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였다. 궁극적으로 핵개발로 가는 가상의 길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재 바이든 정부도 반대하고 있으며 만약 트럼프가 재집권해도 이를 허락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핵확산방지조약(NPT) 등을 차치하더라도 한국이 핵무장을 하게 된다면 양국의 동맹관계에는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미와 외교 무대를 오래도록 지켜본 전문가로서 지구촌 국가들이 한국의 핵무장을 허락할 가능성이 있고, 이 것이 상식적인가.     “현재 상황으로는 가능성이 매우 적고 상식적이지 않다. 한국은 NPT를 붕괴시키는 주역이 되어선 안된다. 한국정부도 이런 내용을 잘 인지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     -한국 여론은 70% 가까이 독자 핵개발에 찬성한다. 잘못된 여론인가.     “북의 핵 위협에 대한 우려와 걱정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가져올 피해와 여파를 면밀히 감안하지 못한 여론이라고 본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대표되는 한미간 무역관계가 개선될 조짐은 있나.     “한국의 대기업들은 최근 수십년 동안 중국 시장에 진출하며 큰 이익을 봤다. 이제 대기업들은 미국에 투자하며 시장진입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IRA라는 ‘보호 무역’ 장벽을 체감하고 있다. 그러나 IRA는 장기적으로 한국 전기자동차 입장에서는 큰 시장과 기회를 열 것이다. 세제 혜택 때문에 큰 주목을 끌었지만 결국 기회의 폭은 더 넓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책에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윤 정부와 일본의 관계 개선은 지속될 것이며 지역 안보에도 긍정적이라고 보는가.     “양국의 관계 진전이 진일보한 것이지만 현재 진행중인 선거들로 인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정서가 이런 변화로 더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점을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 개선이 가져오는 혜택이 실제로 있고 현실화된다면 자리를 잡을 것으로 예상한다.”     -앞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한국과 미국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현재로서는 북한이 대화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이뤄질 것이 없다. 북한이 먼저 문을 열어야 한다. 하지만 꽤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최인성 기자 [email protected]스나이더 스콧 대선도 한미관계 한미 외교전문가 한미 관계

2023-12-13

한미경제연구소 KEI 새 소장에 스콧 스나이더

스콧 스나이더(사진) 미국외교협회(CFR) 한국 담당 선임연구원이 한미 관계 전문 싱크탱크 '한미경제연구소(KEI)'의 새 소장을 맡게 됐다.     KEI는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현 소장인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대사가 올 12월에 퇴임하고 스나이더 새 소장이 내년 4월부터 업무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마크 피츠패트릭 KEI 인선위원장은 "한국 문제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과 함께 긴밀한 유대관계 유지에 강한 의지를 가진 스나이더는 스티븐스 대사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KEI를 성공적으로 이끌 완벽한 적임자"라고 말했다.   스나이더 소장은 CFR에서 10년 이상 한국 담당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그는 그 이전에는 아시아재단의 국제관계 프로그램 선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한미정책센터도 설립했다고 KEI는 밝혔다. 그는 라이스대 졸업 후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지역 연구 프로그램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스나이더 소장은 "한미 관계의 범위가 깊어지고 그 영향력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면서 KEI는 양국 간 더 깊은 이해와 연결을 촉진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섰다"며 "한미 관계의 기회가 확대되는 이때 연구소를 이끌게 돼 기대된다"고 말했다.   1982년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한미 관계만을 담당하는 비영리 기구로 설립된 KEI는 한미 간 정치.경제 현안 및 정책의 이해 증대를 위한 네트워킹 확대를 위해 노력해왔다.     다양한 프로그램 및 이벤트 등을 통해 정책입안자를 대상으로 한반도 관련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등 주요 이슈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는 역할도 함께 해왔다. 최인성 기자 [email protected]스나이더 신임 스나이더 소장 스콧 스나이더 신임 소장

2023-11-01

[아트 앤 테크놀로지] 종이로 만든 옷: 60년대 하이테크 패션

뮤지엄 오브 아트 앤 디자인의 특별전시장에 기획전으로 마련된 것은 ‘종이 세대: 60년대 패션 현상(Generation Paper: A Fashion Phenom of the 1960s)’이라는 신기한 패션 전시이다. 2023년 상반기에 아트와 테크놀로지를 다루는 전시가 많이 선보였지만 이처럼 특이한 기획은 없었다. 원래 애리조나의 피닉스 미술관에서 기획한 종이로 만든 드레스 전시는 1960년대 제지산업의 새로운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지금도 화장지 만드는 제조업체로 유명한 스콧 제지회사는 1966년 직조방식이 아닌 방수가 되는 페이퍼 소재의 섬유를 선보였다. 우주시대를 맞이한 신소재 개발을 홍보하기 위해 대중들을 위해서 에이 라인 스타일의 반소매 드레스, 비키니 수영복, 앞치마, 모자 등 홍보제품을 만들어서 배포하였다.     이들 소재는 지금 페덱스(Fedex) 등의 우편물 봉투 혹은 병원의 일회용 가운 등에서 보는 섬유와 비슷하다. 생분해성 의료용 가운(biodegradable medical gown)은 대부분 직조되지 않은 나무 펄프로 만들어진 옷이다. 한편 듀폰 화학회사의 터벡(Tyvek)이라고 불리는 펄프형 파이버는 사실상 플라스틱형 섬유로서 방수, 방염 등이 가능하여 봉투 등 수송 재료로 많이 활용된다.     이번 전시에 드레스들은 화려한 꽃무늬 혹은 기하학적 패턴이 강하게 들어간다. 이것은 1960년대 유행한 팝아트와 시각적 착시 효과에 주목한 옵아트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반전 운동의 시민적 저항 운동에서는 무기 대신에 꽃을 상징으로 도입하였다.     스콧 제지회사 및 여성 및 아동 생활 잡지는 이러한 홍보 물품의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서 쿠폰을 모아서 보내면 ‘종이’ 드레스를 사은품으로 선보이는 등 신소재 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 이미지를 연속으로 인쇄한 드레스도 있다. 듀라 위브(DuraWeve)라는 상표명으로 출시된 스콧 제지회사의 신소재는 1958년 특허를 취득하고 1960년대 드레스로 만들어서 홍보하였는데 세븐틴매거진에 나온 스콧 회사 쿠폰 두 장과 1달러 25센트를 보내면 화려한 종이 드레스를 보내주었다.     청소년, 젊은 여성 등은 이러한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8개월 동안 50만개의 드레스가 배송되었다. 스콧 제지회사가 홍보하는 일회용 냅킨처럼 입다가 버리는 패션은 간편해 보였지만 이것도 ‘종이’였기에 찢어지는 경우도 많았고 세탁은 불가능하였고 담뱃재라도 떨어지면 불붙기 쉬웠다. 노스캐롤라이나 애쉬빌에 위치한 마스 회사(Mars Manufacturing of Asheville)는 스콧 제지회사의 마케팅 캠페인에 힘입어 케이셀(Kaycel)이라고 하는 93% 셀룰로스와 7% 나일론으로 구성된 섬유로 만든 종이 드레스를 팔았다. 1969년 환경보호단체의 반대 등으로 종이 드레스는 유행에서 멀어지게 된다.     8월 27일까지 전시 중이라고 하니 시원한 여름 패션을 경험하는 기분으로 콜럼버스 서클에 있는 뮤지엄 오브 아트 앤 디자인을 방문해 보기 바란다. 전시에 합당한 교육적 설명문이 더 많았으면 아트와 테크놀로지의 접목을 이해하기가 더 쉬웠을 거라는 아쉬움이 든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아트 앤 테크놀로지 하이테크 종이 스콧 제지회사 드레스 전시 패션 현상

2023-06-02

[살며 생각하며] 남북전쟁의 도화선, 드레드 스콧 재판

사우스캐롤라이나 동부 해안에는 콘데 나스트 트레블러(Conde Nast Traveler)가 뽑은 인구 약 14만여 명의 소도시 찰스턴이 있다. 미식 문화, 다채로운 명소, 아름다운 역사적 건물, 다양한 볼거리와 조용한 즐거움을 안기는 이상적인 여행지로 소문나면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항구이자 군항 도시다. 이곳에 가면 꼭 둘러봐야 할 명소 한 곳이 있는데 Old Slave Market이라는 로만스카 양식의 오래된 건물, 노예 박물관이다. 150여년 전 대서양을 건너온 노예들을 목욕시키고 배불리 먹인 뒤 온몸에 기름까지 바르고 새 옷을 입혀 매대에 진열하면 남부 각지의 농장주나 중간상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감정한 뒤 상품의 가치를 흥정하던 곳이다.   1859년 건축 당시 노골적으로 노예를 사고파는 빌딩임을 과시하려 중앙 표지석에 새겨놓은 ‘Mart’라는 단어는 오늘날까지 선명히 남아 있어 관람객들의 마음을 참담케 한다고 한다. 이곳 외에도 워싱턴DC,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 및 NJ 잉글리시 타운 같은 곳이 노예 도소매 시장으로 유명한데 이곳들은 아프리카 출항 당시 가격의 두 배 정도인 인당 400달러에 거래되었고 그 후 최대의 수요처이자 노예 센터로 연간 13만5000명의 노예가 사고 팔린 것으로 알려진 뉴올리언스로 옮겨지면 값이  750달러로 껑충 뛰었다고 하니 노예무역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음을 짐작게 한다. 그리고 그 거위는 이제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개종 되어 어린이는 8달러, 어른들에게는 14달러의 알을 챙기게 하는 수익상품으로 활용되고 있음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렇게 특정 백인들의 전유물 같았던 미국의 노예제도가 위기에 처하게 되는 역사적 전기가 찾아온다. 바로 1857년 ‘드레드 스콧 재판’이다. 드레드 스콧(Dred Scott, 1795~1858)은 부인과 두 딸을 둔 흑인 가정의 세대주로 세인트루이스 출신의 군의관 에머슨 박사 소유의 노예였다. 그들 가정은 주인의 근무지를 따라 여러 주로 이주하며 살다 주인이 사망하자 자유인이 되길 원했지만 소유권을 양도받은 에머슨 부인은 합의금이 너무 적다며 거부하였고 이에 스콧은 1846년 변호사 프린시스 머독과 아프리카 침례교회 존 앤더슨 목사의 도움으로 연방법원에 제소, 온 미국사회가 초미의 관심을 갖고 지켜본 세기의 소송이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이 스콧의 주장을 7:2로 기각한 뒤 “노예는 미국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연방법원에 제소할 권리 자체가 생길 수 없다고 하며 한발 더 나아가 노예제도를 폐지함은 불법이며 정당한 절차 없이 노예주에게 노예를 빼앗을 수 없다”고 판시하면서 미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판결문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린다.   결론적이지만 이 판결은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성경 말씀은 물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온 청교도의 건국 정신에도 반하는 가장 미국답지 않은 판결이 되고 말았다. 판결 후 반응은 사뭇 달랐다. 노예가 필요악이자 헌법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던 남부 지주들은 환호했으나 펜실베이니아주를 비롯하여 이미 노예제도를 불법이라며 해방을 명문화한 동부의 산업주들은 크게 실망하면서 분리주의자들의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음은 불문가지였다.   결국 이 재판이 도화선이 되어 북남은 결코 함께하기에 먼 당신이 되어갔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남북전쟁 도화선 드레드 스콧 수요처이자 노예 건물 노예

2023-05-12

[문화산책]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꾸며

카터 전 대통령이 병원의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남은 시간을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면서 호스피스 보살핌을 받기로 했다는 뉴스를 읽고, 여러 생각이 오갔다.   98세이니 천수를 누린 셈이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벼슬자리에 올랐고,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며 말년을 보람차게 보냈고, 노벨평화상 수상의 영예까지 누렸고, 두루 존경받는 성공적 삶을 살았으니 큰 여한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죽음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죽음은 삶의 끝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무섭다.   그 마지막 순간을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사랑 안에서 평화롭게 맞이하고 싶다는 소망은 많은 울림을 준다.    ‘좋은 죽음’이라는 말이 성립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호스피스 돌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그런 현상일 것이다.   카터 전 대통령의 선택은 스콧 니어링이나 지난해 2월26일 세상 떠난 이어령 선생처럼 스스로 택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은 이들을 연상시킨다. 잘 알려진 대로, 이어령 선생은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쓰고 싶어서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집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책을 쓰고, 강연하고,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인터뷰를 통해 전했다. 몸이 너무 아파서 컴퓨터조차 다룰 수 없을 때는 육필로 글을 썼다. 그런 육필원고를 모은 것이 ‘눈물 한 방울’이라는 책이다. 그 책을 읽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이 난다.   스콧 니어링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능동적이면서도 평화롭게 세상과 작별하는 아름다운 작별을 꿈꾸었다. 죽음을 피하지 않으면서, 의식이 또렷한 상태에서 삶과 죽음의 조화로운 경계를 맞이하고 싶어 했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죽기를 원했고, 어떤 의사나 약물의 도움도 받지 않았고, 어떤 진정제나 진통제, 마취제도 거부했다. 스스로 기꺼이 자연스럽게 목숨을 버리는 평화로운 작별을 꿈꾸었다. 스콧 니어링은 100세가 되던 1983년 서서히 곡기를 끊음으로써 천천히 평화롭게 세상과 작별했다. 그렇게 꿈을 이루었다.   그는 이렇게 부탁했다. 자신이 죽으면 수의가 아닌 평소의 작업복을 입혀 침낭에 넣어 빠르고 조용하게 화장해달라고, 어떤 장례식도 원치 않는다고, 오직 영혼만을 바라보는 땅의 나무 아래 자신의 재를 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스콧 니어링이 한 달간 단식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은 부인 헬렌 니어링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 사실적으로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헬렌은 남편의 죽음이 얼마나 아름답고 자연스러웠는지를 이야기한다. 곁에서 함께하며 남편의 의연한 죽음을 완성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카터 전 대통령 기사 덕에 스콧과 헬렌 니어링 부부의 책들을 꺼내서 다시 읽는 기쁨을 누렸다. 조화로운 삶과 아름다운 마무리를 진지하게 음미하는 것은 벅찬 기쁨이다. 내 누추한 삶의 모습을 되돌아 살피며 옷깃을 여미고, 부디 나의 마지막이 추하지 않기를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죽고 싶거든 잘 살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생각하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긴다.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는 것처럼, 잘 살아낸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마무리 스콧 니어링 헬렌 니어링 병원 치료

2023-03-06

[문화산책]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꾸며

카터 전 대통령이 병원의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남은 시간을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면서 호스피스 보살핌을 받기로 했다는 뉴스를 읽고, 여러 생각이 오갔다.   98세이니 천수를 누린 셈이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벼슬자리에 올랐고,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며 말년을 보람차게 보냈고, 노벨평화상 수상의 영예까지 누렸고, 두루 존경받는 성공적 삶을 살았으니 큰 여한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죽음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물론, 종교에서 말하는 죽음은 깊고 넓은 차원이다. 가령 죽음을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으로 믿고, 사후세계의 평안을 기도하며 기쁨으로 찬양한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보면 죽음은 삶의 끝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무섭다.   그 마지막 순간을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사랑 안에서 평화롭게 맞이하고 싶다는 소망은 많은 울림을 준다. 과학의 힘에 매달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기보다는 사람답게 당당하게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는 꿈….   ‘좋은 죽음’이라는 말이 성립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호스피스 돌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그런 현상일 것이다.   카터 전 대통령의 선택은 스콧 니어링이나 지난해 2월26일 세상 떠난 이어령 선생처럼 스스로 택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은 이들을 연상시킨다. 잘 알려진 대로, 이어령 선생은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쓰고 싶어서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집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책을 쓰고, 강연하고,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인터뷰를 통해 전했다. 몸이 너무 아파서 컴퓨터조차 다룰 수 없을 때는 육필로 글을 썼다. 그런 육필원고를 모은 것이 ‘눈물 한 방울’이라는 책이다. 그 책을 읽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이 난다.   스콧 니어링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능동적이면서도 평화롭게 세상과 작별하는 아름다운 작별을 꿈꾸었다. 죽음을 피하지 않으면서, 의식이 또렷한 상태에서 삶과 죽음의 조화로운 경계를 맞이하고 싶어 했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죽기를 원했고, 어떤 의사나 약물의 도움도 받지 않았고, 어떤 진정제나 진통제, 마취제도 거부했다. 스스로 기꺼이 자연스럽게 목숨을 버리는 평화로운 작별을 꿈꾸었다. 스콧 니어링은 100세가 되던 1983년 서서히 곡기를 끊음으로써 천천히 평화롭게 세상과 작별했다. 그렇게 꿈을 이루었다.   그는 이렇게 부탁했다. 자신이 죽으면 수의가 아닌 평소의 작업복을 입혀 침낭에 넣어 빠르고 조용하게 화장해달라고, 어떤 장례식도 원치 않는다고, 오직 영혼만을 바라보는 땅의 나무 아래 자신의 재를 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스콧 니어링이 한 달간 단식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은 부인 헬렌 니어링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 사실적으로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헬렌은 남편의 죽음이 얼마나 아름답고 자연스러웠는지를 이야기한다. 곁에서 함께하며 남편의 의연한 죽음을 완성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카터 전 대통령 기사 덕에 스콧과 헬렌 니어링 부부의 책들을 꺼내서 다시 읽는 기쁨을 누렸다. 조화로운 삶과 아름다운 마무리를 진지하게 음미하는 것은 벅찬 기쁨이다. 내 누추한 삶의 모습을 되돌아 살피며 옷깃을 여미고, 부디 나의 마지막이 추하지 않기를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죽고 싶거든 잘 살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생각하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긴다.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는 것처럼, 잘 살아낸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마무리 스콧 니어링 헬렌 니어링 병원 치료

2023-03-02

[글로벌 아이] 매켄지 스콧의 특별한 기부

지난주 초 미국 걸스카우트연맹이 들썩했다. 난데없이, 그것도 단체가 아닌 한 개인으로부터 8450만 달러(약 1200억원)라는 걸스카우트 역사상 최대 금액을 기부받았다. 팬데믹 이후 회원 감소와 재정난 심화로 허덕여온 이 단체를 다시 일으킬 액수라는 평가다. 통 큰 기부자는 매켄지 스콧,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전 부인이다.   스콧의 기부 활동은 베이조스와 이혼한 2019년부터 시작됐다. 위자료 380억 달러(당시 환율로 약 40조원)의 절반을 살아 있는 동안 도움이 필요한 곳에 조건 없이 나눠주겠다는 약속(The Giving Pledge)을 꾸준히 이행해오고 있다.   스콧은 지금껏 1200여 단체에 총 120억(약 17조원) 달러를 기부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이런 기부 형태는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통상 자선가들은,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처럼, 재단을 세우고 관련 조직을 만드는 등 기부금 집행 절차에 여러 조건을 제시하는데 스콧은 사무실조차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팀을 통해 사전 조사만 하고 그냥 ‘쿨’하게 기부금을 쾌척한다는 것이다. ‘돈다발’을 받은 단체 중에는 당초 기부금 신청을 한 적도 없어 스콧 측의 기부 메일을 사기스팸으로 보고 삭제해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스콧은 1992년 프린스턴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작가를 꿈꾸었다. 우선 돈을 벌기 위해 뉴욕의 한 투자회사 행정직으로 입사했고 옆 사무실의 수석 부사장이었던 대학 동문 베이조스를 만난다. 두 사람은 사귄 지 3개월 만에 약혼하고 1994년 결혼과 동시에 동반 퇴사를 감행했다. 스콧이 운전하는 볼보 차량으로 미국 횡단을 거쳐 시애틀에 정착한 뒤 세계에서 가장 긴 남미의 강 이름을 딴 아마존을 설립한다.   아마존 최초의 직원이자 회계 및 비서 역할을 맡았던 스콧은 예나 지금이나 공개 행보를 꺼리는데 2013년 한 인터뷰에서 인생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가 일생에서 가장 걱정하는 것, 우리를 가두는 느낌을 주는 것, 우리의 실수, 우리가 겪는 불행, 사고, 역설적인 일, 이런 것들이 결과적으로 뒤돌아봤을 때 가장 감사할 일이다. 바로 그것들이 우리가 갈 곳으로 인도해주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사업부도를 경험한 그녀의 인생철학과 삶에 대한 태도를 엿보게 해주는 대목이다.   스콧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글도 남겼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우리 모두를 돕는 일이다(Helping any of us can help us all)”.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고 있다. 기부와 모금의 계절이 다가오는 요즘 다시금 곱씹을 말이 아닐까 싶다. 안착히 / 한국 글로벌협력팀장글로벌 아이 매켄지 스콧 매켄지 스콧 기부금 집행 당초 기부금

2022-10-26

[J네트워크] 매켄지 스콧의 특별한 기부

 지난주 초 미국 걸스카우트연맹이 들썩했다. 난데없이, 그것도 단체가 아닌 한 개인으로부터 8450만 달러라는 걸스카우트 역사상 최대 금액을 기부받았다. 팬데믹 이후 회원 감소와 재정난 심화로 허덕여온 이 단체를 다시 일으킬 액수라는 평가다. 통 큰 기부자는 매켄지 스콧,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전 부인이다.   스콧의 기부 활동은 베이조스와 이혼한 2019년부터 시작됐다. 위자료 380억 달러의 절반을 살아 있는 동안 도움이 필요한 곳에 조건 없이 나눠주겠다는 약속(The Giving Pledge)을 꾸준히 이행해오고 있다.   스콧은 지금껏 1200여 단체에 총 120억 달러를 기부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이런 기부 형태는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통상 자선가들은,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처럼, 재단을 세우고 관련 조직을 만드는 등 기부금 집행 절차에 여러 조건을 제시하는데 스콧은 사무실조차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팀을 통해 사전 조사만 하고 그냥 ‘쿨’하게 기부금을 쾌척한다는 것이다. ‘돈다발’을 받은 단체 중에는 당초 기부금 신청을 한 적도 없어 스콧 측의 기부 메일을 사기스팸으로 보고 삭제해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스콧은 1992년 프린스턴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작가를 꿈꾸었다. 우선 돈을 벌기 위해 뉴욕의 한 투자회사 행정직으로 입사했고 옆 사무실의 수석 부사장이었던 대학 동문 베이조스를 만난다. 두 사람은 사귄 지 3개월 만에 약혼하고 1994년 결혼과 동시에 동반 퇴사를 감행했다. 스콧이 운전하는 볼보 차량으로 미국 횡단을 거쳐 시애틀에 정착한 뒤 세계에서 가장 긴 남미의 강 이름을 딴 아마존을 설립한다.   아마존 최초의 직원이자 회계 및 비서 역할을 맡았던 스콧은 예나 지금이나 공개 행보를 꺼리는데 2013년 한 인터뷰에서 인생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가 일생에서 가장 걱정하는 것, 우리를 가두는 느낌을 주는 것, 우리의 실수, 우리가 겪는 불행, 사고, 역설적인 일, 이런 것들이 결과적으로 뒤돌아봤을 때 가장 감사할 일이다. 바로 그것들이 우리가 갈 곳으로 인도해주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사업부도를 경험한 그녀의 인생철학과 삶에 대한 태도를 엿보게 해주는 대목이다.   스콧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글도 남겼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우리 모두를 돕는 일이다(Helping any of us can help us all)”.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고 있다. 기부와 모금의 계절이 다가오는 요즘 다시금 곱씹을 말이 아닐까 싶다. 안착히 / 글로벌협력팀장J네트워크 매켄지 스콧 매켄지 스콧 기부금 집행 당초 기부금

202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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