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오리건 살이] 오리건 숲속 4년, 안빈낙도는 멀다

미국이 딱히 오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10여 년 전 첫 직장이 워크아웃에 빠지면서, 남들보다 빨리 다른 곳을 바라보게 된 나는 일단 지긋지긋한 서울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땅을 드릴로 뚫어 지구 반대편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찾아보니,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앞의 바닷가쯤 되었던 것 같다. 무작정 부에노스 아이레스행 티켓을 두 장 끊고, 양가에 떠나겠다고 말씀드렸지만 흔쾌히 가라고 허락해 주실 리 만무했다. 바다는 건너야겠다고 설득해서 가까스로 허락받은 곳이 미국이었다.   부부 둘이서 큰 여행 가방 두 개씩 들고 샌프란시스코에 내리니, 어학연수 때 돈이나 쓰고다니던 편한 마음은 없고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중압감이 몸을 눌렀다.     미국에서 제일 비싼 동네가 북가주 베이 지역이다. 그것도 모르고 친구가 방 싸게 빌려준다는 말 한마디에 아무것도 모르는 와이프를 이역만리 타국으로 데리고 왔다. 나쁜 남편이 맞다. 서울에 있었으면 아파트에라도 살고 있었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여자를 데리고 샌프란시스코의 쪽방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비싼 어학연수 값을 내면서 신분을 유지하고, 그 와중에 회계사 준비를 하며 살다 보니 둘이 한국에서 3년간 악착같이 모은 돈이 눈 녹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렌트비 낼 돈이 모자라 선택한 것이 오리건으로의 이사였다.     이사한 뒤에는 정말 잔고가 바닥을 보였다. 배송업체에서 근무하며 팔레트에 짐을 쌓기 시작했다. 와이프는 스타벅스 바닐라 라테를 먹고 싶어했지만, 4.5불 곱하기 30일이면 135불이라 안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길거리에서 꺼이꺼이 우는 모습을 보고 못난 남편이 여기 있구나 생각했다.   회계사에 붙으면 부자가 될 줄 알았다. 미국 유수의 내로라 하는 기업들이 여섯 자리 숫자 연봉을 줄 테니 제발 좀 와주십사 해줄 줄 알았고, 영주권도 금세 해결될 줄 알았다. 참 아무것도 몰랐다. 이력서를 100장 넘게 보내도 면접 볼 기회조차 오지 않고, 막상 면접을 봐도 내 영어실력이 형편없어 붙을 리 만무했다.   신분이 없으니 면접이 잘되어도 스폰서를 받지 못했다. 내가 갈 수 있는 선택지는 영주권 스폰서가 가능한 한국계 기업들로 좁아졌다.     여러 옵션 중에 LA 한 언론사와 면접 기회를 얻었다. 화상 면접이었는데, 면접 시간에 맞춰 집으로 가는 길에 앞쪽 차 3대가 연쇄 추돌사고를 냈다. 차들이 박살난 사이를 뚫고 집에 도착해 허겁지겁 모니터를 켰다.     다행히 면접은 늦지 않았고 합격했다. 하지만 아내가 징조가 너무 안 좋으니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그럴 수 없었다. 주머니에 돈이 절박했고 기회를 주는 회사라면 맨발로라도 뛰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못난 남편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돌아오자고 기약없는 약속을 한 뒤에 아내 손을 다시 끌고 남쪽으로 차를 돌렸다.   그렇게 LA에서의 세월이 하염없이 흘렀다. 영주권이 나온 뒤 남들 마냥 급여가 높은 회사로 이직을 했다. 배가 부르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질려 오리건으로 왔던 나는 LA에 또 질려갔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우리는 좋은 기회에 오리건에 집을 샀다. 사람 만나고 술 먹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나는 항상 어디론가 숨고 싶어했다.     오리건의 가을이 그립기도 했다. 가끔 바람이 불면 단풍이 하염없이 떨어져서 하늘조차 안 보이는 오리건으로 돌아가 아무도 모르게 숨만 쉬고 살고 싶었다. 우리는 2020년 5월28일 LA에서 짐을 싸고 다시 오리건으로 올라왔다.   그렇게 벌써 4년이 지났다. 영원히 건강하실 줄 알았던 부모님의 나이 듦을 보게 되고, 새롭게 아이가 태어났다. 안빈낙도를 꿈꾸며 이곳에 다시 왔지만 직장 3곳에서 근무하며 돈의 노예 마냥 몸을 갈아서 일하고 있다. 복잡한 LA 생활이 싫어서 숲 속으로 들어왔지만 그새 사람이 그리워 갈구했다. 막상 친구가 그리워 한국에 잠시 가면 팍팍한 한국에서의 삶에 금세 염증을 느껴버린다.     말러의 3중 고뇌라고 했던가. 나는 오리건에서는 LA 사람이요, 미국에서는 1세대 이민자이며, 세계에서는 한국인인 셈이다.     오리건에 겨울이 오면 해는 일찍 지면서 추적추적 비가 멈추지 않는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일본 마켓에서 사온 회 한 접시에 소주를 홀짝거린다. 10분 정도는 몸이 데워지는 느낌을 흠뻑 즐길 수 있지만, 이내 함께 잔을 기울일 친구가 그립다.     이유건 / 회계사오리건 살이 안빈낙도 오리건 오리건 숲속 면접 기회 면접 시간

2025-01-01

작은 책방, 작은 행복 '숲속작은도서관' 오픈

발달장애인 선교기관 '더숲'은 21일 오전 뷰포드 사무실에 '숲속작은도서관' 개관식을 가졌다.   이날 개관식에서 김창근 목사는 "숲속작은도서관은 언제든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누구나 환영받는 곳"이라며 "작은 책방에서 작은 행복을 찾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도서관은 윤보라 관장이 맡아서 관리한다. 윤 관장은 "도서관에 책이 많이 없지만, 여러분과 함께 채워갈 예정"이라며 신청받은 도서를 구매하거나 소모임을 지원하는 등의 계획을 설명했다. 3개월마다 새 책 또는 신청받은 책을 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윤 관장에 따르면 숲속작은도서관은 매달 세 번째 화요일 월 1회만 운영하지만, 필요에 따라 개관일을 늘려갈 예정이다.   도서관은 누구나 방문해서 책을 대출할 수 있으며, 전화로 신청한 후 픽업할 수도 있다. 대출 기간은 다음 개관일까지이며, 한 달 더 연장할 수도 있다. 한 달에 두 권까지 빌릴 수 있다.   이날 개관식에서 윤보라 관장이 시 낭송을, 안수민 오케스트라 숲의 단원이 플루트를 연주하며 축하를 전했다.    주소=3959 Woodruff Park Way, Buford 문의=470-330-9086 윤지아 기자숲속 개관 이날 개관식 발달장애인 선교기관 안수민 오케스트라

2024-02-22

[정호영의 바람으로 떠나는 숲이야기] 증기 기차 타고 거목 감상

▲헨리 코웰 레드우드 주립공원   살아있는 생명체로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몸집을 갖고 있어 ‘The largest living things on earth’라고 표현하는 나무가 세코이어 나무다. 이 나무 하나로 방 5개짜리 40채를 지을 수 있다고 한다. 이 거목은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서쪽, 요세미티 국립공원과 세코이어, 킹스캐년 국립공원 지역에서만 서식한다. 같은 종류로서 몸통이 조금 가늘고 키는 더 큰 ‘Tallest tree species on earth’라 표현하는 ‘레드우드’가 캘리포니아 태평양 연안 북부부터 오리건주까지 군집해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75마일, 샌타크루즈 근처의 헨리 코웰 레드우드(Henry Cowell Redwoods) 주립공원은 캘리포니아 북쪽까지 달리지 않고 거대한 레드우드 숲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30마일의 하이킹 트레일은 체력과 시간에 따라 원하는 코스를 선택하여 탐사할 수 있다.   수령 2000년의 레드우드 삼목 숲에 들어서면 높이 270피트, 둘레 17피트의 거대한 나무들이 품을 벌리고 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햇볕은 숲과 나무에 차단되어 산책하는 내내 빛이 여러 갈래로 발산하며 신비의 숲을 만들고, 대낮이지만 나무들의 그림자에 의해 어둡고 밝은색의 대비를 이루는 길들이 명화 속에 들어온 것 같다. 숲향의 신선함이 산소가 되어 피부에 와 닿을 땐 자연이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자주 이런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폐 속에 집어넣어 달라고…그러면 더 건강하게 해 주겠다고…그리곤, 즐기라…”   ▲로링 캠프 레일로드   헨리 코웰 레드우드 주립공원 바로 옆에는 레드우드 숲을 1시간 30분 동안 증기기관차로 가로지르는 프로그램도 있다. 로링 캠프 레일로드(Roaring Camp Railroad)다. 1000여년이 넘는 레드우드 숲속을 달리는 동안 삼목에 딱따구리 등이 도토리를 숨기기 위해 만든 나무 구멍, 불타버린 기차선로, 북미대륙에서는 가장 가파른 경사진 철도 선로를 달리며 숲향을 만끽할 수 있으며, 숲속에서 산책 시간도 갖게 된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증기기차로 숲을 달리는 동안, 태양 빛을 가리는 레드우드의 정기가 산소처럼 온몸에 담긴다.   수천 년 생명으로 자리를 지키던 거목들이 그들을 찾아 나선 방문객들에게 가장 신선한 공기를 선사하고 있다. 초창기 캘리포니아에 발을 들여놨던 탐사자들이 이 거목들을 벌목하여 실어나르던 철로를 이제는 역사의 한 부분으로 가슴에 담기 위해 찾은 방문객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자주 찾아 달라…그때마다 보약 몇 첩 드는 것 보다 더 건강한 삶을 선사하겠다…”   근처에는 실리콘밸리. 샌프란시스코, 산타크루즈 등 또 다른 볼 곳이 많다. 삼호관광의 레드우드, 샌프란시스코 2박 3일에참여할 수 있다.  정호영 / 삼호관광 가이드정호영의 바람으로 떠나는 숲이야기 증기 기차 레드우드 주립공원 레드우드 숲속 레드우드 삼목

2022-11-03

[열린 광장] 한 해를 돌아보는 숲속 산책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가 되면 마음이 분주해진다. 하던 일들을 모두 정리해 보기 때문이다.     간단한 차림으로 숲속을 걷기 위해 혼자 산으로 갔다. 혼자 숲속을 걷는 시간이 삶을 깊이 생각하고 지난날을 조용히 통찰해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숲길에는 낙엽이 되어 걷는 이의 발걸음을 포근히 감싸주는 잎들이 있다.     푸른 잎들 사이에서 홍조를 띠며 색채를 바꾸어 가는 작은 잎들도 있다. 큰 나무를 덮고 있는 저 무수한 작은 잎들도 앞서고 뒤서며 결국은 모두 쇠락해 앙상한 가지만 남을 것이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속절 없이 달려가는 세월을 본다. 이런 자연의 변화는 우리 사유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켜 준다.     혼자 숲길을 걷는 시간은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이다. 자신의 영혼을 만날 수 있고 내면 깊숙이 있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 정복 당해 가는 시대를 사는 자신을 다시 한번 성찰해 볼 수도 있다. 삶을 조용히 관조하는 일은 자신을 더 성숙하게 한다.     살면서 자주 멈칫하게 하는 일들 때문에 생각까지 멈춰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이럴 때 걸으면 생각의 흐름이 다시 이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혼자 걷는 길을 예찬하고, 걸으며 사유하며 글을 쓴 작가·사상가·철학자들을 소개한 책이 있다.     프랑스의 철학 교수 프레데리크 그로의 저서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다. 젊은 니체는 걸으면서 생각하고 그 생각들을 모아 놀라운 책들을 썼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 그의 여러 저서들이 그렇게 나왔다. 하루에 5~7시간 걸을 때도 있었다 하니 걷기가 작가의 생각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혁명의 이론적 토대가 된 ‘사회 계약론’ 등 다양한 저서   를 남긴 장자크 루소도 매일 오랫동안 걸으며 책을 쓴 사람이다. 그는 “걸어야만 명상을 할 수가 있다. 걷기를 멈추면 생각도 함께 중단된다. 내 생각은 반드시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라고 썼다.     미국의 위대한 철학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2년여를 동부의 콩코드에 있는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자급자족하며 자연 속에서 살았다. 검소한 생활의 기쁨을 예찬하고,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윌든’ ‘시민 불복종’ 등 여러 저서로 간디, 톨스토이 등 많은 후대의 작가와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그도 “홀로 떠나는 도보 여행이 최고의 여행이다”라고 했다.     이들과 같은 사유를 통해 세상일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에 겪는 번민에서 벗어나 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코로나 변이 때문에 생기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도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이 주는 기쁨과 함께 자연에서 지혜를 얻는다면 옛 조선의 선비처럼 ‘초가삼간 지어 내어 반간은 바람으로 채우고, 반간은 달빛으로 채우고, 강산은 들일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라는 경지에 조금은 다가 설 수 있을 것이다.     한 해의 끝에서 지난 시간을 반추하는 숲속의 산책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최성규 / 베스트영어훈련원장열린 광장 숲속 산책 숲속 산책 프랑스 대혁명 철학 교수

2021-12-29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